홉스는 절대적 주권자를 창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 주권자는 그 명령이 어떠한 세속적 제한(홉스는 주권자가 여전히 신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믿었다)에도 구애받지 않는, 권력의 분할되지 않는 원천이다. 이 주권을 쥐는 주체가 단 한 명의 인간(즉 군주)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홉스는 군주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군주의 의지는 일정하고, 의회와는 달리 내적 분열에 빠지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절대군주에게 의탁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너무 위험하다. 그 대안으로서 우리는 지혜롭고 유덕하며 민중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게 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말 그대로는 ‘최선자의 통치’를 의미하는 귀족정(aristocracy)을 지지하는 논의인데, 최소한 19세기 중반까지 대다수의 정치철학자가 이 논의에 납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은 국민 투표라는 드문 기회에만 행해지는 것일까? 그 이유로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결정의 배후에 놓인 쟁점들을 이해할 능력이 단적으로 없으며, 그래서 이러한 사안을 다루는 데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결정을 맡긴다고 하는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민주 사회에서 보통의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인터뷰나 설문 조사에서 정치적 지식의 수준이나 관심이 낮게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형적으로 그들은 지도적인 정치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주요 정당들의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설명은 현행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정치적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할 동기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민주주의란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아니라 민중 전체에게 국가적 사안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지속적인 싸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수자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 전 단계부터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결책에 찬성 투표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에 그들은 상대편의 주장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을 형성하려고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요구하는 바가 많은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종종 복잡하고 자신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할 때 자제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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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보았듯이 민주주의적 관념들의 영향력 있는 원천이었던 루소조차도 민주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적인 조건들을 고려할 때,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당시 실행 가능한 정부 형태가 아니었다.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홉스는 늘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며 죽음의 위협에 맞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가능한 한 더 많은 힘을 모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이 없는 삶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영원한 전쟁’으로 만드는 것은 불신으로부터 생기는, 다른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시장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용하고자 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 근거하여 작동한다. 그리고 공공재의 문제성은 바로 그것들이 대가를 지불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제공된다는 점일 따름이다.

시민 불복종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데는 허용 가능한 수단일 수 있지만, 언론의 자유나 평화적 저항권이 인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정치적 의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더욱 엄격하다?는 것이 보통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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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government)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려는 것은 ‘현 정부’, 즉 특정한 시점의 사회 속에서 권력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 즉 그것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는 내각, 의회, 법원, 경찰, 군대 등과 같은 정치 제도보다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그러한 도전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는지의 물음을 제기한다. 이것들은 정치철학의 핵심적 물음이다.

우리는 정치에 관해 생각할 때 종종 스스로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가정들, 즉 기저에 놓여 있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근본적으로 변하는 가정들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홉스가 저술하던 시대에는 정치적 논의 때 종교적 원리, 특히 성서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다. 그의 항구적인 유산들 가운데 하나는 정치에 관해 순수하게 세속적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의 목표는 아나키스트와 국가주권주의자, 민주주의자와 엘리트주의자, 자유주의자와 권위주의자, 국가주의자와 세계주의자 등등이 서로 논쟁할 때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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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습니다. 이 시리즈 5권 있는데, 현대철학과 정치철학이 얇으면서도 읽을만 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완독한 건 아닌데, 몇몇 절을 읽어보니 꽤 괜찮은 시리즈 였습니다. 여유가 되면 이 시리즈 싹다 갖춰놓고 싶어요..ㅎㅎ

겨울호랑이 2023-11-25 12:1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특히 철학 시리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신 yamoo님 말씀이니 믿고 시리즈를 정주행해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추운 주말 건강하게 보내세요! ^^:)
 
포퓰리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36
카스 무데 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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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언제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과 보통사람들에 대한 과찬을 포함한다고 말해도 지나치게 논쟁적인 주장은 아닐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포퓰리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다(p10)... 포퓰리즘에는 세 가지 핵심 개념이 있다. 민중, 엘리트, 그리고 일반의지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12/99

카스 무데 (Cas Mudde)와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Cristobal Rovira Kaltwasser)의 <포퓰리즘>은 소수 엘리트에 대한 민중의 일반의지가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민중들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특히 경제공황과 같은 궁핍한 시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정치적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 민중들의 불만은 쌓이면서 정치적 에너지를 갖게 된다.

불안해진 사회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한 개인 또는 정당에 의해 민중들의 불만을 달래줄 자극적인 이데올로기를 겉에 두른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고, 이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정계에 발판을 구축하거나 정권을 탈취하게 된다.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만연할 때, 포퓰리즘 수요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극적인 경기 침체와 같은 중대한 정책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만천하에 드러난 체계적인 부패 사례는 국민들 사이에서 포퓰리즘적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기능할 수 있다(p68)... 포퓰리즘적 태도를 활성화하는 다른 핵심 요인은 정치체제가 응답하지 않는다는 전반적인 느낌이다. 시민들이 정당과 정부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요구를 무시한다고 느낄 때, 적어도 기득권층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포퓰리즘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69/99

우리는 포퓰리즘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개의 포퓰리스트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비현실성에 속아넘어가는 민중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민중들이 현혹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 부패한 엘리트층을 탓해야 하는가. 또는, 선동가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민주주의제도를 고쳐야 하는가.

본문에서 포퓰리즘은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의 오랜 갈등과 틈을 활용해 정치적 역량을 활용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 제도로 설명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포퓰리즘은 한 시대가 해결하지 못하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사회에 알려주는 자명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상대를 포퓰리스트라고 비난하기보다, 포퓰리즘이 기생하는 숙주이데올로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포퓰리즘의 근원적인 해결과 나름의 의의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포퓰리즘은 아주 기본적인 일군의 이념인 까닭에 숙주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대규모 집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더 폭넓은 해석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민중'과 '엘리트'에 대한 특수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포퓰리즘과 숙주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33/99

우리의 주장은 포퓰리즘이 선거민주주의 또는 최소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민주화에 이바지하는 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체제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7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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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파시즘은 특히 운동 단계에서 대중의 지지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포퓰리즘에 추파를 던졌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와 파시즘 모두 본질적으로 포퓰리즘보다 엘리트주의에 더 가까운 이데올로기이자 정체(政體)로 보아야 한다.

특히 개발도상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포퓰리스트들은 이제 신뢰를 잃은 기존 지도자와 정책에 대한 광범한 불만을 표현했다. 그들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섞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정책과 이 정책을 실행한 자국 엘리트층을 공격했다.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와 남한의 노무현 같은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체제 안에 존재할 수 있으며, 유의미한 포퓰리스트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도 많다. 그러나 세계에서 민주적 이상의 헤게모니가 강해지는 추세, 아울러 선거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중의 일반의지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인 포퓰리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포퓰리즘은 아주 기본적인 일군의 이념인 까닭에 숙주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대규모 집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더 폭넓은 해석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민중’과 ‘엘리트’에 대한 특수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포퓰리즘과 숙주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원하는 결과는 자신들의 대표들, 즉 ‘민중’의 대표들이 정권을 잡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포퓰리즘 정당은 포퓰리즘을 활용해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한편, 자신들의 대표가 없다고 느끼는 집단에게 발언권을 준다.

포퓰리즘 정치가 본질적으로 ‘순수한 민중’ 대 ‘부패한 엘리트’의 투쟁인데다 국민주권을 기필코 옹호하는 체하는 만큼, 포퓰리스트 지도자에게는 스스로를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로 내세우는 것이 극히 중요한 일이다.

이 구성물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연관되는 두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나는 엘리트와 분리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앞의 과정은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아웃사이더 지위와 관련이 있는 반면, 뒤의 과정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주장하는 진정성과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해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면서도 현대 세계에서 지배적 모델인 자유민주주의와 충돌한다. 포퓰리즘은 그 무엇도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원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따라서 소수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보장책’에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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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0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도 좋아요~~
근데 책값은 ㅎㄷㄷ

겨울호랑이 2023-11-20 13:54   좋아요 0 | URL
네,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간결하게 잘 정리한 좋은 시리즈인 것 같아요... 각 권은 가격 부담이 없는데 시리즈가 많다보니... 조금 부담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