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지정학이 영토, 자원, 입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판적 접근은 인적(人的)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지정학’을 생산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지정학이 실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혹적인 방식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지정학이 흔히 단순화와 객관화를 취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도가 한몫을 담당한다. 대중적인 심장부(heartland), 축(pivot), 원호지대(arc), 접경지대 같은 프레이밍 도구도 마찬가지다.

지정학(geopolitics)에서 ‘지(geo)’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의 과제는 어디선가 사건이 항상 벌어진다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지리적인 것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다채로운 방식에 관해 사고하는 것이다.

이 지정‘학’(‘science’ of geopolitics)은 지구의 자연 지리라는 ‘사실’(대륙과 대양의 배치, 여러 나라와 제국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으로 구분)에 입각하여 국제 정치에 관한 ‘법칙’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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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5
데이비드 밀러 지음, 이신철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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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환경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세계 시장의 충격, 문화 수준을 낮추는 세계 문화의 특성 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 운동의 형태로 세계화에 대한 반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경제성장이 최상의 목표라는 관념에 도전하며, 그러한 도전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는지의 물음을 제기한다. 이것들은 정치철학의 핵심적 물음이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13/111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의 <정치철학>은 공동체의 가치와 가치를 성취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여러 정치 철학을 언급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철학은 결국 '사회 정의'라는 가치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효율적 운영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하나 더해지는 것이 바로 시장의 원리, 자본주의이며, 이들간의 관계설정은 정치철학의 주요 과제라는 점이 드러난다.

나 자신의 견해를 말하자면, 사회 정의 이론은 롤스가 제시한 처음의 두 가지 원리, 즉 평등한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견지해야 하지만, 차등의 원리를 이것과는 다른 두 가지 원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최소한의 사회 보장 원리다... 둘째는 공적의 원리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69/111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데모스(demos)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 제도와 자본주의 시장의 실패가 가져온 불공정 문제 등은 공동체의 가치인 공정을 흔들리게 한다. 물론, 불공정이 가져온 정치적, 경제적 실패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근대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가 갖는 한계성과 공공 영역에서의 자원 배분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갖는 부족함은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요구하는 바가 많은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종종 복잡하고 자신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할 때 자제하기를 요구한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43/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사회 가치관을 추구하고 유지해야 하며, 정치권력은 이를 위해 권위와 제재의 형태로 작동하게 된다. 이처럼 저자는 <정치철학> 본문을 통해 근대 민족국가들의 정치, 경제 제도의 한계와 함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결론에 제시한 저자의 방안은 다소 원론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결론에 이르기 전 현대 사회의 여러 논점들을 정치철학적으로 포섭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공허한 이데올로기 대신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정치철학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다른 한편으로 법 준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제재라는 위협에 의해 준수를 강요받게 된다. 법 위반자들은 체포되어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은 상호 보완적이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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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서 국민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불렀다. 즉, 사람들끼리 직접 마주 대하는 공동체와는 달리, 이러한 공동체는 상상이라는 집합적 행위에 그 존립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나 미국인 또는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특정 가족의 일원이라거나 특정 마을의 주민이라는 것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는 서로를 강화한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한편, 이러한 방식으로 결합된 사람들은 공통의 정치권력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이고 국가가 공격당할 때에는 그 방어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국민국가는 정치적 단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왔다. 즉, 국민국가는 제국의 군대에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갖지만, 동시에 저항이 필요할 때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작은 규모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것이 이 장에서의 내 논지다. 도시국가가 아마도 그 이상적 형태일 것이다. 국민국가가 성공한 것도 대중 매체를 사용해 사람들에게 정치의 실제에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감각을 최소한으로나마 부여함으로써 도시의 친밀성을 모방해온 데 있었다. 그러나 세계정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점점 증대되는 문화적 다양성이 현재 많은 국민 국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그 문제는 세계정부에 더욱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정부는 현존하는 주요 문명들을 포괄해야만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문명 각각은 공공 정책에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이 반영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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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권력에 관한 것, 즉 누가 권력을 쥐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관계가 정치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지적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성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는 그 관계를 다루는 데서 보이는 정치의 태만을 둘러싼 것이다.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온 정치권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특유하게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매개 변수를 설정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의 태만은 많은 점에서 지적할 수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다른 집단이 품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경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중요한 선(善)의 하나다. 아울러 정치적 올바름을 약화시키는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문화가 자유와 평등?특히 여성을 위한 자유와 평등?에 적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강력하게 그 문제성을 주장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앞에서 우리가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를 정치철학의 오랜 물음들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그런 물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으로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로서는 이제 그런 견해가 정당화되었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정치권력,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에 관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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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023년 서재의 달인. 북플 마니아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님의 성실함에 대한 작은 보상 🎁 이라고 생각해요.
한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함께 합시다!

겨울호랑이 2023-12-05 08: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을 비롯한 이웃분들께서 부족한 글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12-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12-06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항상 좋은 격려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선거제도의 이해 (수정판)
데이비드 파렐 지음, 전용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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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에 우리 유권자는 투표하며, 그 후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지, 각 정당등은 몇 석을 얻었는지, 그 결과를 기다린다. 바로 여기서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데이비드 파렐 (Farrell, David M.)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에서 선거제도를 '유권자가 행사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는 개인이 명시적으로 표시한 의사표시를 전체 집단의 의지로 해석하는 여러 방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집단 의지'에서 어디까지를 집단으로 볼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유권자의 다수만을 집단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수 의견까지 집단으로 포함시켜야 하는가의 문제. 이로부터 비례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비례적(non-proportional)' 결과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은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저자는 본문을 통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다른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제도임을 말한다. 그렇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또한 단점을 갖고 있다. 유권자는 자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며, 특히 폐쇄식 정당명부제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극대화된다. 부분으로 개인 의지와 전체로서 집단 의지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개인의 선택이 오히려 제약받게 된다는 점은 최선의 선거제도를 도출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여러 형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제도 개혁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비례성이 매우 높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 집단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우수성을 감안한다면, 언젠가 모든 국가가 결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149

특정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정부나 정치체제의 안전성 정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상반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에서 정부 안전성 정도가 높다고 결론짓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35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선거법과 관련한 주요 논쟁은 정당의 이해관계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선거법 개선을 말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크게 군소정당의 입지를 늘리자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은 정당이 아닌 유권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연동형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선출되는 대표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다소 극단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왜 우리는 공간(空間)으로 구획된 지역대표만 선출해야 하는가? 시간(時間)으로 구획된 세대별 대표를 선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20대와 30대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의석 수를 해당 세대에 맞게 배부하고 이에 대해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성별 비율도 함께 접목시켜 의원을 선출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대의제가 확립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디어라 이러한 생각에 문제점이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대표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i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말처럼 의무만 부담하고 권리를 행사할 방안을 갖지 못하는 계층, 집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함을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을 보며 마음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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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1-30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비례대표제가
이상적인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2023년 한국에서는 현실
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현실정치는 상대방의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시간과 세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11-30 16: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제도 개선에 대한 전체의 공감대 형성이 된 상태에서 제3자에 의한 제도변경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견수렴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제3의 독립기관에서 추진하는 편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도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을 보면 아직 갈길이 멀어보이네요...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3-11-30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더 많이 뽑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이므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절대 반대합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제도 없애야 합니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뒷거래의 민낯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바로 매관매직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공정한 경쟁에도 위배되는 행위입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23-12-01 08:09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이 정치판을 거의 양분하는 현 구조에서 비례대표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소수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수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그리고 거대정당 외 다른 정당에 대한 선택이 가능할 수 있는 상식적인 국정운영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매번 선거때보다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거대 담론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어 피로감이 많이 쌓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