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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예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은 영감과 지침을 얻고자 고대 로마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위계질서를 둘러싼 믿음을 고대 로마의 유산으로부터 차용했다. 그들이 보기에 황제의 임무는 여러 통치자들을 중재하고 평화의 치세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가장 위대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는 그 터무니없는 학술적 행위에 가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왕들과 바보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평하며 보편 군주는 보편 폭군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만인의 적이고, 만인이 그의 적들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에라스뮈스가 두려워한 "세계 군주국"을 실현할 뻔했다.

그럼에도 항목별로 배열되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19세기와 20세기까지 지속된 합스부르크 가문 치세의 특징이 엿보인다. 제국의 각 부분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정부, 법률, 귀족, 명문가, 의회 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분은 통치자 개인에 의해서만 한데 모인, 거의 독립적인 나라들이었다. 각 부분 간의 거리를 감안하면 이러한 부조화 현상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었지만, 서로 큰 차이점이 있는 여러 민족들이 부재하는 주권자에 의한 지배를 감수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적 정책의 소산이기도 했다.

몇 개의 왕국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들조차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구성 요소들의 특이성이 차츰 희박해져 원래의 독자적 성격과 제도가 사라지면서 지방보다 중앙으로 저울추가 기울기 마련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 목표를 결코 이루지 못했다. 사실, 짧은 막간을 제외하면, 목표를 이루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행정 및 법률 기관을 일부 통합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는 주권자가 무한한 권력을 지닌 초超군주가 아니라 각 영토의 영주에 불과한 듯이 통치되었다.

문제는 신성 로마 제국에 각 영토 및 도시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줄 정부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국에는 중앙 행정 기관이 없었고, 정기적인 세입도 없었으며, 수도도, 통치자가 위임한 법을 집행하는 법원의 위계 구조도 없었다. 권력의 향방은 대영주들과 대제후들에게 달려 있었는데, "로마인의 왕"을 군주로 선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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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4 파리의 풍경 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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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은 심판을 받았다. 지나친 호기심, 편협함과 위선, 수사(修士)연한 어리석음, 수녀연한 정숙한 티가 그곳을 지배한다. 옛 미신의 이 개탄할 만한 유물이 철학이 빛을 전파하는 도시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이 신성한 감옥의 담장은 그 희생자들을 모든 지배적인 이념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판편에 가장 묵시적인 복종이, 다른 한편에 편협한 명령권이 존재한다. 이에 덧붙여 대다수의 절망, 일부의 평온한 체념, 더 영적인 이들의 정신적인 우둔화가 나타난다. 여기서 의무란 관행일 뿐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4 Tableau de Paris>에서 주제를 찾는다면, '제1계급 이야기'로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습관적으로 '앙시앵 레짐의 모순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 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앙시앵 레짐의 모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제의 모순으로 구체적으로는 제1계급인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들의 부패'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부분 우리는 이를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영어로 "Let them eat cake"로 번역되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793)의 말로 상징화해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기억한다는 단정은 아니다. 다만, 속(俗)의 지배계급의 학정은 우리에게도 쉽게 다가오지만, 성(聖)의 지배계급인 성직자 계층의 부정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남북국 시대의 신라말 또는 고려시대 말을 살았다면, 성직자 계층의 부패에 대해서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분도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날 대형교회처럼 꼭 그런것만은 아닐듯 싶다). 서두가 길었지만, <파리의 풍경 4>는 가톨릭 국가에서 제1계급의 권력과 이에 대한 비판이 소개된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가톨릭(catholic)과 라틴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필 필요가 있다. 


 가톨릭 국가에서 축제일은 1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사반세기 전에 이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로 그것은 13~14일이 줄었다. 5일 연휴가 여러 번 있으며, 3일의 연휴도 꽤 자주 있다. 그러고도 일요일에는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미신이 공격받고 있지만, 절반밖에 개선이 되질 않았다. 축일이란 교회가 선술집에 가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며, 그날 온통 술꾼들이 거기서 일주일의 벌이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게가 문을 닫지 않는 날을 '평일(jours ouvrables)'이라고 부른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78


 천년제국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가 공인된 후 육(肉)의 제국은 붕괴했지만, 영(靈)의 제국은 다음 천년의 유럽을 지배한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가톨릭 국가에서 성(聖)은 속(俗)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소비(C)는 미덕이라는 말그대로 '고전케인즈주의'의 경제를 실천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개신교는 이러한 축제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신교도 국가에서의 경제발전 양태는 사뭇 달라지게 되는데, 이로부터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1920)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찾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톨릭 세계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 모태신앙( 母胎信仰)으로 이어져왔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성직자와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결은 주일 미사(Missa)를 통해 강화되는데, 미사전례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각국 언어로 미사전례가 허용되기 전까지 라틴어로만 진행되었다. 사제에게도, 신자들에게도 라틴어는 큰 부담이었지만, 덕분에 '감시받지 않은 권력'은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세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존재, 지위, 운명을 결정하는 호적을 탄생시킨다. 그의 생애의 모든 상황에서 이 세계증명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소한 전치(轉置), 사소한 실수도 심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같은 증명서에 실수를 교정하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9


 신부는 촛불을 들고 의자 위로 올라간다. 그는 필사본 더미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고르고, 거의 값을 깎지 않고 수단 속에 그 경건한 원고 뭉치를 숨겨 황급히 가져와, 방 안에 틀어박혀 좌우에 널린 문장들을 베끼고 훔친 글귀들로 '표적 작품'을 만드는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의 설교와 찬사를 신부는 버젓이 교회 설교단에 판매한다. 그리하여 큰 수집장을 가진 양피지 제조인에게 그가 준 20에퀴는 100배의 이익을 낳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51


 귀족사회가 혈연이라는 붉은 피로 연결되었다면, 성직자 사회는 라틴어를 매개로 푸른 피로 연결되었다. 라틴어를 통한 정보의 배타적 독점(獨占). 수도원이라는 깊은 은둔 안에서 라틴어제국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이러한 독점을 깬 파격적인 혁명이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개 '종교개혁=면죄부판매 반대'라는 공식에 익숙해 있지만, 사실 역사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인다. K-POP의 아이돌 스타 이면에 기획사가 있듯이. 


 모든 것이 라틴어로 되어 있다. 이것이 이 터무니없는 관습을 보급하는 이유인가? 현학자여,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심지어 공공기념물에까지 국어의 사용을 금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말하라....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 p32


 이것이 깊은 은둔이 하는 일이다. 여기서 모든 열정은 부패한다. 오만은 여기서 훨씬 더 무자비한 성격을 갖춘다. 이 고독한 벽 속에서 중간은 없다. 바로 여기서 영혼은 절멸하든지, 아니면 가장 높은 정도의 사악함으로 상승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9


 성숙기에 접어들어 마음속에 가장 강렬한 불꽃이 튀는 시기에,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신학생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신학적인 문제들밖에 없다. 금서 몇 권이 들어오면 유명한 신학적 명제들의 토대가 흔들리고, 신학생들은 그들을 적시고 있는 진리들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갖지 못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27


 그런 면에서 프랑스 대혁명 이전 몰리에르(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1699),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1684)에 의한 프랑스극(劇)의 발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는 것, 이들 작품을 통해 민중들은 시대를 읽을 수 있었고,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라틴어의 독점권 소멸은 속(俗)에서 절대권력이 붕괴하는 전조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불안과 경계심, 전율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볼 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작품을 판단하는 무서운 군중과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영감을 일으키는 이 순간으로 인해 그에게는 독특한 착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착상들을 외부로 알리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당사자 역시 마음속으로 성찰을 하며 여러 차례 은밀히 미소 짓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이건간에 인간의 무리를 지배하면 그 무리를 비웃고 싶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움직임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의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한계 또한 발견하게 된다. 노예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인가. '자유, 평둥, 형제애'의 프랑스 대혁명 3대 이념에서 '형제애'는 앞의 두 이념에 따라 규정된다. '누가 나의 형제인가?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인가'. 로베스피에르(Augustin Bon Joseph de Robespierre, 1763~1789)와 몽테뉴파(La Montagne)의 몰락과 함께 대혁명의 한계는 규정지어졌고, 언어의 이중 견해를 이겨내기 위한 혁명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혁명의 한계는 교회의 부패에는 비판적이었음에도, 무신론을 거부하는 대중들의 관용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로 눈이 가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다시 번역된 김에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자꾸 예정없는 옆길로 빠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기한에 쫓기지 않는 독서가 갖는 장점이라 생각하며 일정에 추가하자...


 '이중 견해 - 개방적인 측면은 민중을 위한 것이고, 비의(秘義)적 측면은 교양인과 학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 - '의 목표는 학문의 명성, 그리고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의 명성을 보존하기 위한 책략이 아니라, 노예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진실에 손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한 사려 깊은 대비였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43


 무신론은 인간 정신의 모든 잔악함의 총합이다. 오만, 광신, 무지, 뻔뻔함이 그 안에 포함된다. 그것은 세상의 찬란한 정경을 사막으로 만드는, 정신착란과 매우 유사한 파괴적인 광기이다(p194)... 융통성없는 무신론자는 위험한 존재이다. 가장 계몽된 사람이라도 평범한 백성들처럼 생각해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95


 글의 마지막은 18세기 프랑스의 풍경 중 재밌는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에 열광하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치'는 앙시앵레짐으로 볼 수 없는 인간본성의 일부로 봐야할까...


 마차는 출세의 험난한 길에 들어선 모든 사람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다. 행운이 따르는 첫걸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모는 이륜마차를 구비한다. 두 번째 단계로 사륜마차 쿠페가 온다. 세 번째 단계는 신사용 사륜마차이다. 마지막이 숙녀용 사륜마차이다. 재산이 늘어나게 되면 아들이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집사가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76

신문들은 엄격하게 등급이 매겨져 있다.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지루하고 형편없는 신문이 된다 해도 신문의 특권은 유지된다. 그런데 다른 데 관심을 쏟는 것은 허락하면서 각각의 신문에 제작 능력을 키울 자유는 왜 남겨주지 않는 것인가? 2~3년이 지나면 좋은 신문들은 승리를 구가하고, 나쁜 신문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금액의 돈은 다시 찾을 것이고, 잉크, 종이 및 활자의 거래는 3배나 더 빨라질 것이다. 굶주림을 호소하는 인쇄업자, 가제본업자, 제본업자, 행상인 등의 라틴어 제국은 이러한 것들로써 먹고 살게 될 것이다. - P291

신문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고 가장 뻔뻔스러운 소문의 나팔수들이다... 기자들의 말을 반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작품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가장 악의적인 비평가들을 쓰러뜨리는 데에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된다. 훌륭한 상대이든 형편없는 상대이든, 경멸이 담긴 침묵이야말로 그 상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무기이다. - P323

오늘날 계몽철학의 횃불을 끄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등대는 불이 밝혀졌고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절대 권력의 바람이 그 불꽃을 굽히려 하지만, 그저 그 불길을 일으키고 더 강렬하고 찬란한 광채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이미 준비하고 있는 20명의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인간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국가 통치자들로서는 공정하고 온건해지는 것 외에 더 이상 달리 취할 방도가 없다. 인간은 자신들의 권리들을 알았다. 거짓이 지배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 P346

진리는 국민의 중심부로부터 나온다. 사지(四枝)가 정신의 뜻에 따르듯이, 진리는 국민의 의지에 따른다. 머리가 둔하거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피신처인 모호함, 애매한 암흑의 상태는 전혀 없다. 편파적인 외침, 과장, 매문(賣文)과 풍자적인 글들이 때로는 진실을 흐리게 하지만, 진실 역시 의견대립의 결과일 뿐이다. 진실은 짙은 구름 같은 것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성은 그 절정에서 하층민 작가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정신이 일관성을 갖고, 변화를 읽고 예측하게 되는 모습을 갖는다. 그러한 것이 정치에서는 성공의 담보가 된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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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3 파리의 풍경 3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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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악덕은 바보같은 짓에서 나온다"는 말이 옛말인 줄 알았는데, 오늘날에도 결코 틀리지 않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 순간 이처럼 슬픈 사실을 읽는다. 가엾은 인간 정신이여, 아직도 계몽의 빛이 필요하구나! 그대는 매순간 가장 비천한 미신에 빠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마법, 마술, 점성술을 받아들인 그대, 그대는 정치적 잘못까지 저질렀다. 그 추악한 잘못을 저지른 그대 눈뜬 장님이여, 그를 슬퍼하노라.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72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3 Tableau de Paris> 또한 이전 권들과 같이 파리의 풍경과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해석과 비판이 잘 드러나지만, 이번 <파리의 풍경 3>은 앙시앵 레짐의 모순을 넘어선 저자의 대안, 계몽주의적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질세계는 모든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뭇잎은 하나의 조직이고 원자에는 특성이 있으며 곤충은 먼지가 되어도 경이롭다. 정신세계 역시 무시무시한 혼돈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을 우러러보면 우리의 생각은 고양되고 대담해진다. 신이 손을 내밀어 내려주는 그 많은 기적 앞에서 환희와 감탄으로 타오르는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조물주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379


 메르시에는 과학 아카데미를 보며 메르시에는 과학(科學, science)의 뜻에 대해 말한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물질세계의 원리와 자연법칙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빛의 시대(계몽시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메르시에는 과학으로 밝혀진 인간 이성(理性)의 빛이 고대 시대 야만의 어둠마저 밝혔기에, 고전시대에 대한 향수마저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그리고 예술을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과학이 없다면 짐승보다 나을 바가 없으리라. 광물학이 없으면 양식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인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인육을 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냄비에 넣고 삶아 먹는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하면서 살 것이다. 정의, 감사, 자비는 쟁기, 낫도끼, 낫을 만들 철을 발견한 덕에 생겼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1


 감성이 있는 영혼의 비약이 없이는 우주는 춥고 죽었으며 불모이다. 인간이 사고를 전개하여 자연에 혼을 불어넣음으로써 자연을 만든 노동자와 그 작품 사이의 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기원을 당당하게 여겨야 한다. 세상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사고는 항성들의 빛이 미치는 한계를 뛰어넘으며, 빛보다 활동영역이 더 넓다. 인간의 사고는 창조된 모든 것이 다다를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381


 다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은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自由)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계몽군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계몽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포괄적 지원을 통해 인간 이성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고 신(神)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낸 자연(自然)의 숨겨진 법칙을 발견하고, 이러한 노력이  더이상 팽창할 수 없는 영역까지의 확대될 때까지 지속되기를 메르시에는 강렬하게 요구한다.


 오직 자유주의를 믿는 군주만이 학문과 예술을 밀접하게 연결하여 상응하게 만들 수 있다. 개인이 제아무리 재산과 지식이 많고 공을 들인다 할지라도, 모든 자료를 모으거나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하거나 수많은 정신을 녹여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3


 모든 관념은 저장고로 들어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운동하고 발효하여 새로운 발견을 준비한다. 그리고 국민의 모든 지식은 개인의 지식이 서로 보태고 도와줄 때야 비로소 빛난다. 그 지식은 기초를 세우고 뒤섞여 그렇게 해서 모든 제국과 시대를 구별해 주는 빛을 만든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과 예술을 연결하는 일이 불가능한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해력의 한계를 설정하거나,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지 말하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2


 계몽주의자로서 메르시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인다. 메르시에는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자연을 잘 이용하고, 신의 뜻에 가까이 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시앵 레짐(ancient Regime)의 굴레에 있는 프랑스는 자신이 갖추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저자는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메르시에는 비록 프랑스 혁명기를 살았던 인물이지만 민주정(民主政)보다는 패도(覇道)에 반대하는 계몽군주정(啓蒙君主政)을 이상으로 삼았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비록 자신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예언했다고 했지만, 자신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이 패도에 대한 절대자의 심판으로 비춰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의 풍경 3>에 실린 새롭게 탄생하는 왕자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철학자 알레토필의 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숨쉬는 자는 모두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며, 인간의 규약보다 앞서 존재했던 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일 백성의 대다수가 가난하다면 왕관은 치욕스러운 것이 되며, 이름은 불명예스러워져 친구들조차 기억하려 들지 않게 된다. 산업은 결코 필요의 산물이 아니다. 사람은 가난 때문에 쓰러지거나 무력해지거나 희망을 잃고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사람은 모두 재산에 목마르기보다 극단적인 결핍 상태에서 그 지경으로 내몰렸다. 왕자여, 이러한 잘못을 최소로 줄이고 싶은가? 생활필수품을 늘려주고, 각자 생업에 매달리도록 하고, 자기 일을 남에게 팔거나 떠맡기지 않게 하라. 그 결과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생긴다. 왜냐하면 부자가 모든 것을 탐욕스러운 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면, 가난한 사람은 막다른 길로 내몰려 부자의 손아귀에 든 것을 강제로 빼앗으려 들기 때문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43


ps. 18세기 철학자가 오늘날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대대적인 자선사업을 하는 이유와 낙수효과의 유무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고전이 지혜의 보고(寶庫)인 것인지, 인류가 역사 속의 기출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계속하고 있는 둘 중 어느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둘 다 일수도 있겠지만. 밑줄긋기 내용은 리뷰와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에도 참 유용한 글이라 옮겨본다.


 고대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찬양할 의식이란 없다. 이들은 자기 시대를 찬양하기는커녕 오히려 슬퍼한다. 이들은 테렌티우스나 플라톤의 평판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찬양거리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결점을 찾기 바쁘다(p125)... 이들은 야만의 시대보다 빛의 시대에 더욱 치명적인 잘못을 없애려고 무척 노력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6



고관대작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단지 가끔 특정인에게 눈길을 보내느라고 말을 끊었을 뿐이다. 이렇게 반 시간 정도 대화한다. 그동안 그는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서재 쪽을 본다. 이것은 연극이 끝났다는 신호이다. 그를 에워싼 사람들은 공손히 길을 터준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문 앞자리를 차지하는 알 만큼 꾀바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관대작은 구석에 있는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한 말로써 마지막으로 말을 건넨다. 이로써 그가 거기 온 모든 이에게 골고루 호의를 베푼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것은 진정한 구경거리이다. - P31

독점은 또 다른 독점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막대한 이익을 보장한다. 튀르고는 독점체제를 없앤다고 하였지만, 뿌리까지 자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공직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그것이 다시 생겨났다(p93)... 정치에서 선은 악의 소산이다. 그 어떤 것도 정확히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윤리주의자의 성찰은 나날의 정치와 경험으로 언제나 혼란을 겪는다...더 무거운 세금이 있다. 그것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 P94

파리 시민은 항상 속으면서도 이튿날 또 속으리라. 그는 남이 건네주는 그릇된 정보에 속으려고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그는 매번 똑같이 그릇된 정보를 주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가 확실하다고 믿는 사실은 모두 며칠 뒤면 불명확해지지만, 그는 그 점도 깨닫지 못한다. 그가 믿는 진실이란 사실상 약간의 진실을 교묘한 거짓의 현란한 색으로 칠해서 아주 생소한 차원으로 제시한 것일뿐임에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 P224

높으신 분들에 대한 이런 복수(벽보)는 이제는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아무런 오점도 남기지 않고 평온하게 경력을 마칠 것이다. 그들이 죽은 다음에야 역사가 과오를 밝혀낼 것이다. 그들은 생존 시에는 진실을 방종의 산물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감추어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p321)... 풍자가 가슴 속에 갇혀서 부글부글 끓고 신랄해지는 것보다는, 조각상의 입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말로 불만을 충분히 토로하면 민심이 가라앉아 봉기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 P323

대중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대중은 이해하기도 전에 심판을 내리려고 설치는 대중이 아니다. 모든 견해들이 서로 부딪힌 다음에는 진실을 대변하는 어떤 결론이 내려지는데, 이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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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2 파리의 풍경 2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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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취미는 최상위 계층에서 최하위 계층까지 널리 퍼져 있다. 때로는 그것이 교육을 완성시키거나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억양과 몸가짐 그리고 교육을 동시에 교정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흥은 대도시에만 적합하다. 어느 정도의 사치와 그다지 엄격하지 않은 풍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상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여, 연극 공연에 주의하라. 연극을 두려워하라.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극작가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25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2 Tableau de Paris> 역시 전편에 이어 파리의 여러 풍경 모습이 담겨있다. 절대왕정의 정체(政體)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더이상 담아내지 못하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한계 상황은 2권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1권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러한 문제가 2권 전반에 걸쳐 서술되는 극장, 작품, 작가 등의 주제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입법자로서의 진정한 천재성을 갖고 있는 토스카나 대공은 사려 깊게 고안된 많은 규범들 가운데 작품 선택의 절대적 자유권을 모든 극장에 주었다. 경합과 경쟁심이 연극이라는 아름다운 예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편협한 분류 풍조가 연극의 비약적 발전과 위대함을 손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규칙보다도 경합과 경쟁심이 이 아름다운 예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31


 높이 평가되는 모든 미덕도 우스꽝스러운 신흥귀족도 공격할 수 없는 희극은 필연적으로 말재주로 전락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p401)... 희극작가는 최근의 본보기를 그려내야 하므로, 풍속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양립시키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거의 미덕을 묘사함으로써만 악덕을 공격할 수 있을 뿐이고, 악덕의 머리털을 잡고 악덕을 무대 위로 질질 끌고나와 악덕의 추한 얼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대신, 따분한 훈계의 장광성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정치체제 아래에서는 결코 실감나는 희극이 진작될 수 없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402


 계급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인기가 있었던 희극(喜劇, comedy)의 활성화는 정치가들의 입장에서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작동했다. 때문에, 연극상연과 관련해서 '자유 自由'라는 명목으로 극장에게 많은 권한을 제공하였지만, 정작 연극 내용과 관련해서는 엄격한 검열을 실시했음을 독자들은 <파리의 풍경 2>에서 확인하게 된다. 모두가 연극을 선호하지만, 누구나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유있는 선택된 이들만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현실에서 메르시에는 극장 안의 열기와 함께 극장 밖의 어두운 현실을 함께 보여준다.


 대(大)시인과 대배우를 우쭐하게 만드는 박수갈채란 어떤 것인가? 침울하고 알 수 없는 정적이 극장 안에 흐를 때,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에 젖은 관객이 갈채를 보낼 생각도 못하고 그럴 힘도 없을 때, 그때 터져 나오는 박수이다. 바로 이때 관객은 결정적인 환상에 빠져 배우를 잊고 기교를 망각하는 것이다. 그의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성취된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관객의 영혼 속에 새겨지고, 불가사의한 기운이 오랫동안 관객 주위를 감돈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23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이들이 연극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극을 보지 않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극장들의 치열한 경쟁이 민중들의 직접적인 삶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고, 크지 않은 시장에서 얻어지는 제한된 이윤은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생필품 시장에서 문제는 이와 달랐다. 


 전주(錢主)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놀이를 한다. 그런데 가난이 극심해질수록 손에 돈을 쥐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는 법이다. 극빈자에게는 대출도 없다. 같은 이유로 극빈자는 방계 왕족보다 포도주와 고깃값을 더 비싸게 내고 사며, 엄청난 값을 치르고 6리브르짜리 에퀴 한 개를 얻는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극빈자는 자신이 빠져 있는 깊은 구렁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며, 밖으로 빠져나오려 할 때면 손과 발이 미끄러진다. 1만 리브르로 100만 리브르를 벌어들이는 것보다 5수로 6프랑을 버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42


 한 사람이 상품 전체를 완전히 독차지한다. 그리고는 전제적(專制的)으로 행동한다. 이럴 때 거래는 위험하고 억압적이 된다. 본래 거래란 공정한 교환이었다.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래는 무산된다. 계약당사자 중 어느 한 편이 압도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거래가 아니라 독점이며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 억압적인 사람은 제 값보다 더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판다. 그런데 이러한 상품이 생필품이라면, 즉 그것이 빵이나 포도주, 채소, 기름 따위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이지 상대방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164


 우리는 <파리의 풍경2>를 통해 자본가들의 돈이 돈을 부르고, 생필품 시장의 독점(獨占)은 민중의 삶을 점점 더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극장 밖에서 돈이 없이 고달픈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민중들이 지친 걸음을 걷고 있을 때, 극장 안에서는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한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는 곳. 메르시에의 <파리의 풍경 2>는 이러한 18세기 파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이 당대 프랑스인의 비극이라면, 이러한 파리의 풍경이 그렇게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비극일 것이다...


 민중에게는 더 이상 돈이 없다. 그것은 커다란 재앙이다.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복권이라는 악랄한 도박에 의해, 그리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치명적 유혹의 부채에 의해 그들에게서 남아 있는 돈을 우려낸다. 자본가와 그 측근의 주머니에는 최소한 6억이라는 금액이 숨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자산으로 그들은 왕국의 시민들과 끊임없이 겨루고 있다. 그들의 지갑은 동맹을 결성했고, 그 금액은 결코 다시 유통되지 않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157

당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하라. 모든 것이 당신들 손에서 곧 새어나가게 될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이 아무리 메말라 있을지라도, 어쩔 수 없이 당신들에게 닥쳐올 회한을 느끼지 않으려면 연민을 가져라.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는가? 그들은 당신들이 그들의 생계에서 빼앗아가는 몫을 다시 요구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폭음/폭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있다. - P151

소수의 수중에 있는, 화폐로 주조되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모두가 조각내고 분할하고 해체하도록 하라. 그렇게도 기다리는 이 금속이 법, 지위, 기괴한 규정, 끝없는 금지사항들을 만드는 대신에 널리 퍼지게 할 경로를 뚫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와주어라. - P157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플라톤적인 법칙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자연 사회의 와해, 사치의 끔찍한 결과, 그리고 사치에 의해 초래된 전반적인 타락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는 부패한 병든 몸이다. 국가에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신체의 의무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거의 치유 불가능해진 상처에 맞추어 국가를 치료해야 한다. 사치만이 사치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그것은 전체에 필요해진 독소이다. - P193

사유하고 말하게 내버려두라. 대중이 판단할 것이며, 그들은 저자들의 잘못을 고쳐줄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을 정화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은 그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장애물은 자극만 줄 뿐이다. 금지, 반대는 불평의 대상이 되는 소책자들을 낳는다. - P263

선행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불우한 사람에게 도덕적 의무를 치러야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불우한 사람을 살려낸다. 언제나 돈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관심, 조언, 방문, 단순한 교섭, 적시에 제출된 진정서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이여, 가장 고결한 직무에 충실히 복무함으로써 선행에 유익한 이 성향을 부단히 키우고 간직하라!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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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시대 - 공포정의 끝인가, 출구인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10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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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아시냐 지폐의 가치가 폭락하고 빵값이 치솟고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계속 참기만 했던 빈곤층이었다. 최고가격제를 법으로 정했지만, 농민들이 법을 준수하지 않았고 생산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늘 허덕이게 마련이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청원서를 작성해서 참석자들에게 서명을 받은 뒤 대표단을 뽑아 시정부에 제출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0

모든 수단이 국내외의 적을 물리치는 투쟁을 정당화시켜주었다. 연합국과 대적하는 일도 벅찬 바람에 남부에서는 방데의 반란자에 비할 만큼 극렬하게 저항하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반혁명 세력이 힘없는 농부와 일꾼들을 납치해서 죽이기도 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최고가격제를 전국적으로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만세력이 더욱 늘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306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10권 <반동의 시대 - 공포정의 끝인가, 출구인가 Liberte>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 1794)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1789년 어려워진 경제상황으로 폭발된 혁명은 혁명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는다.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Convention thermidorienne)으로 인해 혁명은 더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혁명정부는 지지부진하게 유지되다가 결국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의 쿠데타로 프랑스는 제정으로 넘어가게 되었음은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혁명은 왜 실패했는가.

전통적 달력으로 7월 27일(일요일), 공화력 2년 테르미도르 9일, 프랑스 혁명에서 또 한 고비를 넘기는 날이 왔다. 의원들은 이 모든 죄목을 열거한 뒤, 막시밀리엥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를 모욕했으므로 체포하라고 사방에서 성화였다. 과연 로베스피에르와 그 측근은 하룻밤 사이에 적들이 이렇게까지 단합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의원들은 당장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하기로 의결했다(p338)... 이제 몽타뉴파가 갈가리 찢어졌고, 그 속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적들이 생겼다. 로베스피에르가 적을 만들었다. 임지에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남용한 의원들을 소환한 뒤, 이들은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으니, 결국은 로베스피에르가 만들어낸 적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339

직접적인 원인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컸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독점체제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1차 대불동맹 이후 고립된 프랑스의 상황을 악용하여 개인의 부(富)를 축적하는 지도층과 부르주아 계급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본질이었다. 또한, 이들 거상(巨商)들은 항구도시와 생산지를 장악하여 파리의 지배권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연방주의와 결탁하여 혁명의 중심지 파리를 고립시키려 했다. 대외적으로는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대불동맹세력, 대내적으로는 부르주아-연방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세력이 반(反)혁명세력으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거물급 도매상들은 국가의 번영을 막는 핵심세력이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무역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기회를 이용해서 식료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 지주들은 토지를 팔아서 돈이 될 만한 상품을 산 뒤 그것을 가지고 외국으로 망명했다. 프랑스에 남기고 간 것은 쓸모없는 문서조각일 뿐... 이에 더해 연방주의도 문제였다. 프랑스를 갈기갈기 찢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 밑으로 권력을 모으려는 연방주의는 교환, 상업, 신뢰, 인간관계를 무너뜨린 범죄다. 프랑스의 각 부분이 자기 이익에 빠져 공공의 관계를 끊고 공화국을 와해시킬 지경이 되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66

연방주의자들은 지롱드파 지도자들이 많이 도피한 북쪽의 캉, 동쪽의 프랑슈콩테, 서남쪽의 보르도, 남쪽의 리옹, 그리고 지중해 연안의 마르세유와 툴롱의 다섯 곳을 중심지로 국민공회에 저항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에스파냐,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다섯 곳의 반란군과 어떻게든 연계해서 파리를 고립시킨다면 혁명은 끝나고, 유럽 열강의 이익에 부합하는 왕정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59

로베스피에르,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 ~ 1794)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몽타뉴파들은 반(反)혁명 세력의 본질을 '자유주의 세력'으로 해석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존재하는 한 인민들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들은 '자유' 대신 '평등'을 우선 순위에 두고 혁명을 진행시켜나갔다. 그런 면에서 국민공회시기는 '자유 VS 평등'의 대결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들은 인민들의 인내심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공포정'을 통해 혁명을 빠르게 진행시키려고 무리하게 정적을 숙청하면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만다. 결국 '평등'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도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자유주의' 시대가 산업화와 결합되면서 자유지선주의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로베스피에르도 바를레의 말을 반박했다. 따지고 보면 구국위원회와 국민공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베스피에르의 생각도 과격파와 비슷했다. 그는 혁명의 적을 악인과 부자들이라고 보았다. 적들은 중상비방과 위선으로 무지한 상퀼로트를 쉽게 속인다. 인민에게 이러한 진실을 깨우쳐주어야 하겠지만, 적들은 돈으로 작가들을 매수해서 거짓과 파렴치한 글로 인민을 오도한다. 자유를 확립하는 일을 방해하는 대외전쟁과 내란도 빨리 끝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국내의 위험이 부르주아 계층에서 오며, 그들을 이기려면 인민을 규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42

"인민은 공포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올바른 의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포정이 진정한 목표를 지향하기를 원합니다. 귀족주의자/이기주의자/음모자/반역자를 겨냥해야 합니다. 비록 자연으로부터 큰 힘을 받지 못했지만 미약하나마 조국에 여러모로 헌신하는 인민을 두려워서 떨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통의 의도는 이처럼 분명했다. 국민공회가 혁명정부를 조직해서 인민을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113

뒤푸르니가 연단에 올라 제안했다. "우리는 모든 공식 문서의 첫머리에서 자유, 평등을 읽습니다. 이 말 때문에 대개 자유로워야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평등해야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나는 자코뱅 회원들이 모든 프랑스인에게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자고 제안합니다. "평등 만세!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 또한 모든 공문서의 첫머리에 '자유, 평등' 대신 '평등, 자유'라고 씁시다. 이제는 평등이 자유의 앞으로 나왔다. 자유를 억압받는 공포정 시기에 '평등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가 생길 판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12

이와 함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의 마지막 <반동의 시대>는 프랑스 혁명정신과 국민공회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유, 평등, 우애'를 혁명 정신으로 삼았지만, 프랑스 혁명을 통해 살아남은 가치는 '자유'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평등'의 반격이 좌절될 때까지, 혁명기간 프랑스를 지배했던 것은 부르주아들의 '자유'였다. 이런 면에서 결국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성공한 부르주아 혁명'이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실패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아직 프랑스에 충분한 노동자계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혁명의 의의는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48년 혁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 기간동안 확대된 자유와 평등의 불균형은, 결국 양 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체제의 붕괴 후에야 균형점으로 수렴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카리에의 사례는 역사가들이 공포정의 본질에 대해 계속 토론할 거리를 제공한다. 혁명은 폭력 그 자체라는 주장, 아니 특별한 상황 때문에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 끊임없는 논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생산적이다. 죽이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었는가? 단지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가 죽어 마땅한 죄인가? 더 나아가 인간이 원래 악마인가, 아니면 '인간관계' 속에 악마가 숨었다가 위기의 순간에 불쑥 나타나는가?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90

다른 한편으로 로베르스피에르의 공포정의 결과는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는 <군주론 The Prince>를 통해 주장한 미덕(美德)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대상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고,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라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지속된 공포가 대중들을 공포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은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5년의 프랑스 혁명시기를 보면서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정부 5년을 계속 비교하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 대혁명과 다르게 성공한 혁명이 되길 원했지만, 역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가슴아프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꺼져버린 프랑스 혁명과는 다르게 우리가 촛불의 불씨를 간직할 수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무엇인가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실패한 혁명의 아쉬움을 다시 생각하며 시리즈 리뷰를 갈무리한다...

국민공회는 중대한 음모를 계속 차단하고 범죄자들을 단죄했지만 아직도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여태까지 모든 범죄는 덕을 공격하는 행위였다. 모든 범죄를 추적하고 단죄하는 동시에 윤리를 타락시키고 공공의 번영으로 나아가는 모든 통로를 막은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를 중심으로 모든 헌법기관이 협력하는 평화적 수단을 강구하고 적용해야 한다. 적들이 고갈시키려고 노력하는 번영의 원천을 풍부하게 개발하고 지켜야 한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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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9-0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짜장이 생각나네요.

겨울호랑이 2022-09-08 22:56   좋아요 1 | URL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의 등장인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커피소년 2022-09-09 20:01   좋아요 1 | URL
왜이리 기운이 없으신가요.. ㅎㅎ겨호님 힘내세요.. ㅎㅎ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9-09 20:21   좋아요 1 | URL
아, 저는 괜찮습니다.^^:) 연휴 즈음이라 조금 바쁘긴 했습니다만...논리야놀자님께서도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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