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소외양간, 돼지우리라도 널찍하고 곧아서 법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장작더미나 거름구덩이까지도 모두 정밀하고 고와서 마치 그림과 같았다. 아하! 제도가 이렇게 된 뒤에라야만 비로소 ‘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이용을 한 후에야 ‘후생‘을 할 수 있고, 후생을 한 연후라야 ‘정덕‘을 할 수 있다. 쓰임을 능히 이롭게 하지 못하고서 삶을 두텁게 하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삶이 이미 스스로 두텁게 하기에 부족하다면 어찌 자신의 덕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p69)

(의주) 만상 중에서 ‘한(씨)‘이나 ‘안(씨)‘과 같은 자들은 해마다 북경 출입하기를 마치 제집의 문과 뜰을 드나들듯 하여. 북경의 장사치들과는 서로 짝짜꿍이 맞아서 물건을 조종하고 값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이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달려 있다. 중국 물건의 값이 날로 오르는 이유가 실상은 그들 때문인데도, 온 나라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역관만 탓하고 나무란다.(p59)

정묘, 병자호란의 국치 이후 백년이 지났지만, 명나라 숭정의 연호를 사용하며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조선. 그렇지만, 그동안 경제적으로 청은 동아시아 경제의 패권국이었고 조선은 이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연암의 눈에 조선의 많은 제도는 청의 그것에 비해 개선할 점이 많아 보였다. 이러한 하부구조의 부실함을 인정치 않고, 성리학의 질서를 구현하려는 ‘북벌‘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가를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다.

후세에 땅의 경계를 상세하게 알지 못하고서 한사군의 땅을 모두 압록강 안으로 한정해 사실을 억지로 합치시키고 구구하게 배분하고는, 그 안에서 ‘패수‘가 어디인지 찾으려 하였다... 이는 조선의 옛 영토를 전쟁도 하지 않고 줄어들게 만든 격이다.(p84)

여기에 더해 우리 역사도 제대로 고증하지 않는 당대의 학문풍토는 우리의 상부구조 역시 빈약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종이 더 오래살았다한들 북벌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인가. 「연암일기 1」에서 우리는 옛 영토이자 국경지대인 요동지역을 통해 북벌의 한계와 이른바 ‘강건성세 - 강희, 옹정, 건륭 -‘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는 청나라의 실상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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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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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이며, 하나의 권위이며, 하나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하나의 종족이라 함이 옳습니다. 이웃 일본을 세세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입니다.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은 이 같은 집단 심성에 의해서입니다. 바로 반일 종족주의 때문입니다.(p21)

이영훈은 「반일종족주의」에서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근대사와 현대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조망한다. 초반에는 저자의 전공인 한국 근현대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그래프와 함께 분석하는 저자의 해석은 일견 반박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의 문장을 보자.

자본금 규모를 보면 일본인 회사가 압도적으로 컸으며, 대규모 자본이나 근대적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일본인이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인이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조선인은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자본과 기술의 축적이 일천했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었지만, 이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p60)

저자의 말처럼 본문의 그래프 상에서 보여지는 조선 공장수와 회사수는 분명 매우 빠르게 증가한다.하지만, 이러한 수의 단순 증가가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조선이라는 제국의 한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통계의 착각으로 볼 수도 있다. 한반도에 한국인의 절대인구가 일본인 수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며, 많은 인구에서 더 많은 기업이 생겨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의미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당시 일본제국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편이 더 맞는 분석이 아닐까. 같은 시기 일본 제국 전체 통계에서도 그런 추세가 나온다면 저자의 분석이 맞겠지만, 조선인의 수가 압도적인 지역에서 단순 양 비교는 무의미하다 여겨진다. 아니면 일본 본토와 조선의 1인당 GDP 수치 변화는 어떨까. 정말 ‘내선일체‘가 1910년대 이루어져 근대화가 되었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식민지 조선이 일본의 경제수준에 근접한 통계가 있음직하다. 그런 통계를 제시해야 수탈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 수 있지 않을까.

초기의 이런 실증분석과 함께 책에는 이 책을 반대하는 이들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논리도 함께 제시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와 저자들의 주장이 섞여 있어 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조선인의 높은 재해율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조선인을 험한 곳으로 고의로 떠밀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입니다. 더 나아가, 그 한 세대 앞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그 조상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입니다.(p87)

오늘날, 일제에 대한 협력과 북한 정권에 대한 협력 중에서 더 중대한 과오는 어느 쪽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p224)

그렇지만 정말 저자의 주장대로 과거사에 책임을 묻는다면 반일종족주의에 빠졌다고 비난받을 것이기에(저자는 일본기업이나 일본정부의 배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맞지 않아 선뜻 이해가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책에는 다른 문제도 있는데, 이는 적절한 근거 제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문장을 얼버무리기도 하여 독자들의 신뢰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한국 사회가 유난히도 물질주의적인 것은 이미 여러 연구자가 여러 지표로 지적하고 있는 바입니다.(p20)... 더 자세히는 소개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같은 백두산 인식은 19세기 말까지 면면하게 이어졌습니다.(p142)

이처럼 「반일종족주의」는 실증사학자의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근거 제시가 부족하며, 저자의 개인견해가 많이 들어간 책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책 자체가 커다란 모순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경제사를 가르쳤던 저자의 자기 고백에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다‘라고 외친 어느 크레타인의 일화가 생각난다...

이 나라의 국민이 거짓말을 일삼고,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나라의 거짓말하는 학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은 거짓말의 온상입니다. 이 나라의 대학은 거짓말의 제조공장입니다.(p14)


「반일종족주의」의 역사관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뉴라이트 사관에 기반한 학자들의 프로파간다를 잘 보여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며 간략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 리뷰를 마무리한다...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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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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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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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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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0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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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브로긴 2019-12-28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라이트식의 일본제국주의 시대 한반도 경제에 대한 해석과 논리전개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올해 읽긴 그른 것 같고 내년에나 펼쳐볼 수 있겠군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01:12   좋아요 1 | URL
Comandante님 감사합니다. 일반적의 상식과 다른 논리 전개지만, 통계 데이터를 제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그들의 논리의 모순된 점을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독서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12-28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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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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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28 1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겨호님의 리뷰로 만족하렵니다.

이런 책들이 베셀이 된다는 게 비극
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자년에도 열심히 달려 주시기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13:47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내용의 책은 안 된다 생각됩니다. 읽을 책도 많은데 말이지요. 레삭매냐 님께서도 연말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12-31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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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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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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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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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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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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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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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제주 4.3과 여순 사건의 역사적 기원을 동아시아 30년 전쟁과 한국독립운동사를 넘어 1592년 임진왜란에서 찾으며, 이를 한국현대사의 사건이 아닌 세계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사건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오늘날 지소미아 문제 - 주한미군 방위분담금로 대표되는 한, 미, 일 관계를 바로 보는 계기가 되리라 여겨진다.

또한, 정치-경제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지만, 대중은 결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문제에 움직인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미군정은 미곡을 자유시장에 맡겨 버리는데 그것은 결국 쌀의 매점매석, 그리고 쌀값의 폭등을 야기시켰다. 그러자 미군정은 도시민에 대한 삭량배급을 명분으로 1946년 1월 25일 ˝미곡수집령˝을 공포하고 식량공출을 단행하는데, 결국 미곡 자유시장을 포기하고 과거 일제 강점기의 공출보다 더 잔인한 강제수거를 단행했다.(p293)

이 미군정이야말로 1946년 전국적인 10월봉기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남로당의 정치적 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남로당은 그러한 대중동원조직체계나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민중에게 절실한 것응 오직 ˝쌀˝이지 공산이념이 아니었다.(p294)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은 하나의 사건으로 통관되어야 한다. 제주도민과 여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이승만이 그 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이 없었더라면 이승만은 정권을 유지하지 못했다. 더 크게 말하면 그는 6.25전쟁의 최대 수혜자였다. 6.25전쟁이 없었더라면 이승만은 정권을 유지할 길이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태극기부대가 준동하는 우익친미기독교국가가 될 길이 없었다.(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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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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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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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6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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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6 0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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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보다 2019-11-26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운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11-26 16:07   좋아요 0 | URL
햇살보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나비의 노래 일본군 위안부 만화
정기영 지음, 김광성 그림 / 형설라이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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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이다.‘라는 말을 그녀는 부정한다. 그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일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나에게도 연분홍 꿈은 있었다. 삶을 찾아 날개짓하는 나비의 꿈을 간직한 때가 있었다... 그녀는 끌려갔고,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그녀는 없었다.(p9)

남자들은 걸핏하면 국가입네 민족입네 거창하게 얘기하지. 강제로 끌려가서 당한 우리만 죄인이고. 불문곡직하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야. 우리가 정신대로 끌려갈 때 조선 남자들은 뭘 했는고?(p99)... 왜정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 여자들이 십 수만 명이래. 위안부로 등록한 할머니 이백 몇 십 명을 뺀 수많은 할머니들은 한을 안고 소리 소문 없이 죽거나 외롭게 살아가것제. 그넘들이 끌어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아프고 병들면 처분해 버리고... 정말 골병들었다.(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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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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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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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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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4: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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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 흑서 -상권 - 16~21세기 말살에서 참회로
마르크 페로 책임 편집, 고선일 옮김 / 소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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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단일화를 추구했던 일본 식민주의는 식민지 주민이 처한 실존적 현실을 부정했고, 이는 일본 식민주의에 대한 격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식민지 주민을 문화적으로 일본화하려는 동화정책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제적인 동화정책은 차별과 과도한 착취라는 엄연한 현실을 은닉하고, 인권 침해와 사회적 관계의 노골적 폭력성 등 식민 질서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어두운 현실을 결코 빗겨 갈 수 없었다.(p665)

일본 군부가 1930년대 기획하고 1942년부터 본격화한 납치 사건, 곧 조선과 중국 및 동남아시아의 젊은 여성을 강제로 징발하여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지역의 곳곳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진지에 공급한 사건은 식민통치의 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근대화, 산업화, 탄압정책,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일본 식민체제는 겉으로나마 그럴 듯하게 보이려 애썼다.(p665)

조선에서 일본 식민주의는 식민지 엘리트 계층을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여, 독립 이후 이들은 국가 재건과 경제 발전의 주체가 되었다. ‘일본식 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반공 이념을 기치로 내세운 독재 정권 아래서 1950~1970년대 남한을 재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분단된 국가에서 북한의 공산 정권에 이념적으로 맞서기 위해, 이들은 단순하고 거의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이라는 범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하여 민족 정체성을 재확립했다.(p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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