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는 도덕의 기원을 해부해 도덕이 이타적 성향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는데, 니체는 레의 주장을 피상적인 인식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더 파고들어가 결국 도덕이 비도덕적 뿌리에서 자라난 것임을 밝혀낸다. 이 작업은 특히 《아침놀》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뒷날 《도덕의 계보》에서 가공할 폭로 작업으로 완결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동정의 도덕’을 분석하고 비판하기 시작한다. 니체는 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약자들이 쓰는 무기라고 여긴다. 그들은 강자들의 약점을 찾아내는데, 그것이 바로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약자들은 이런 강자들의 약점을 이용한다. 강자들의 동정심을 끌어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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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강자는 동정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천재 혹은 최고의 지성은 강한 활력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데,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따뜻한 마음, 동정심의 도덕은 삶의 강한 활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제거해버린다. 사회주의가 꿈꾸는 보편적 평등의 유토피아는 인류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니체에게 이 생각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원칙이다. 인류는 오직 천재, 위대한 지성, 강력한 개인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니체의 이 천재 사상은 뒷날 초인 사상으로 이어진다.

《아침놀》은 최악의 건강 상태에서 요양지를 전전하며, 그리고 고통의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조명탄 같은 정신의 고양 상태를 거치며 쓴 575편의 단편 모음이다. 《아침놀》에 대해 니체는 자서전에서 "이 책으로 도덕에 대한 나의 전투가 시작된다"《이 사람을 보라》, ‘아침놀’, 1절라고 선언한다. 도덕에 대한 전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아침놀》에 와서 그 전투가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집요하고 치열한 것이 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 책은 후기 니체의 도덕 비판서들의 진정한 예고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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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창조하려면 노예 계급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인식을 니체는 주저하지 않고 현대 세계에 그대로 적용한다. 바로 이런 과감함 혹은 과격함에 니체 고유의 특징이 있다. 니체는 노동의 존엄이니 인간의 존엄이니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부정한다.

니체는 대중의 대척점에 천재를 놓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천재의 탄생이었고, 문화의 창조였다. 대중을 옹호하고 대중을 떠받들고 대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이 천재의 탄생을 방해하고 문화 창조를 훼방 놓을 뿐이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젊은 영혼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너는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무엇이 너의 영혼을 높이 끌어올렸는가? 그리고 그것들을 ······ 네 앞에 세워놓아라. 그러면 그것들은 너에게 ······ 너의 진정한 자아의 근본 법칙을 보여줄 것이다. 이 대상들을 서로 비교해보라. 하나가 다른 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확장하고 능가하고 미화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그 대상들이 네가 이제까지 너 자신에게로 기어 올라갔던 사다리가 되었는지를 보라. 왜냐하면 너의 진정한 본질은 네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위로 측량할 수 없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니체 사상의 핵심 중의 핵심을 요약하는 한 문장을 뽑으라면 "자유로운 인간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아닐까. 훗날 무섭게 울려 퍼질 초인의 외침이 이 문장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응축돼 있다.

니체는 인식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혹은 신앙이 어리석은 것임을 이렇게 보여주면서, 인식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라고 암시한다. 인식을 위해 삶이 훼손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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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를 만나기 전에 벌써 바그너주의자가 되었던 니체는 바그너라는 인간과 대면하면서 이 희대의 카리스마가 발산하는 가공할 매력에 사정없이 빨려들었다. 트립셴의 바그너를 만나고 온 직후 니체가 바그너에게 보낸 편지는 두 사람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형식을 띠게 될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니체는 바그너의 인격과 힘에 압도당했다.

말하자면 바쿠닌은 바그너의 무의식을, 무의식 내부의 파괴 욕망을 자극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매기는 바그너가 이 무렵 쓴 정치 칼럼들이 되풀이하여 모든 것을 없애버리자는 호소를 담고 있었으며 바그너는 그 뒤로도 무차별로 불을 질러버리자는 생각으로 자꾸 돌아갔다고 말한다.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 예술을 그리스 비극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리스 문화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에서 시작해 바그너의 음악극(오페라)에 대한 지지로 끝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은 명백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에 대응한다. 세계의 본질인 맹목적 의지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면, 그 의지가 드러난 현상인 ‘표상’은 아폴론적인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의지의 부정과 의지의 소멸을 주장하는 쇼펜하우어를 니체는 정반대로 뒤집는다. 니체는 의지를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지를 적극적으로 시인하고 긍정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가장 충직한 제자일 때조차도 쇼펜하우어 철학의 결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니

니체는 노동자 계급을 현대의 노예 계급으로 보았다. 그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관용이나 동정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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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주는 것은 믿음이지, 믿음 뒤에 있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다. ······ 모든 진실한 믿음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을 지닌 자가 믿음 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을 얻게 해주지. 그러나 진실한 믿음은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칸트의 본체계와 현상계, 즉 ‘사물 자체’와 ‘현상’은 쇼펜하우어에게 와서 ‘의지의 세계’와 ‘표상의 세계’가 됐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현상 세계가 ‘표상의 세계’이며, 인식할 수도 지각할 수도 없는 ‘사물 자체’의 세계가 바로 ‘의지의 세계’다.

니체의 귀족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보수주의로 그치지 않고, 쇼펜하우어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격을 띠면서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파괴성 안에 창조성이 잠복해 있었다.

니체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했으며,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런 충동 혹은 노력 끝에 그가 도달하고자 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이 기이한 동어 반복이 니체의 일생이었다.

바그너와 니체를 묶어준 것은 쇼펜하우어 철학 중에서도 특히 음악 사상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다. 음악만이 세계의 본질인 ‘의지’ 자체와 직접 교감하며 의지 자체를 직접 드러내고 구현한다고 강조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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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아버지들에 대한 니체의 표현들, "높은" "위풍당당한" "근엄한" "유능함" "존경" 같은 말은 니체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니체에게 더 큰 문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었다. 만일 신이 없다면, 만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만일 성령과 계시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종교적 환상을 빼고 나면 어떤 실제적인 것이 남을 것인가? 신을 통해서 모든 것이 의미와 목적을 얻게 되는데, 만일 신이 사라진다면 자연과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고 만다.

<운명과 역사>로 돌아가면, 니체는 그 에세이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정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답한다. 삶을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상승시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니체 정신의 본질적 성분이 드러나 있다. 니체 삶을 요약하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투쟁일 것이다. 아니, 투쟁보다는 전쟁일 것이다. 병약한 지식인 니체는 평생 홀로 전쟁을 벌였다. 그는 사유의 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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