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 배우는 귀농귀촌교육은 매주 주말 1박 2일의 교육 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읍 주변에 거주하는 70%정도 되는 인원들은 토요일 교육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 같이 먼 타지에서 온 교육생들은 이곳에서 1박을 해야 한다. 때문에 교육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저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에서 볼 수 있는 사랑방 모임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 때 나누는 이야기들이 실제 교육에서 받는 것 이상으로 도움이 되고, 때론 한없이 웃기며 때론 가슴 먹먹한, 선배님들의 이야기들에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저번주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있는데, 한 선배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귀농 생활을 하면서 배운 점은, 흙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뻔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런데 몇 번 곱씹고 나니까, 이 말이 굉장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그 선배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은 말이었다고 할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선배는 얼마나 많은 아픔을 당했던 것일까. 그 많은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못해 벌어진 채로 고통을 간직하고 살았을 삶 속에서, 자신이 쏟은 만큼의 노력과 정성과 사랑을 받은만큼 되돌려주는 흙에서 선배는 얼마나 위안을 받아왔을까.


   오직 인간만이 배신을 한다. 하지만 배신의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인간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했기에,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흙은 인간의 이해를 바라지도, 오해를 원하지도 않는다. 받는만큼 되돌려준다. 왜 사람들이, 아니 내가, 귀농에 끌리는지,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조금, 아주 조금 깨달은 것 같은 가을 밤의 한 때였다.


   물론 이것도 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인간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했기에,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다고. 서글프지만,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오해라면, 긍정의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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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하려다 인터넷에서 방황하던 중에 이런 기사를 봤다. 


   '고시 수준' 말까지 나오는 환경미화원 채용 - 클릭


   기사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환경미화원 채용 응시인원의 70% 이상이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태 한탄을 하려고 기사를 들먹이는 게 아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으니까.


   꿈이 없어서 그랬다. 목표가 없는 삶이었기에, 그 어떤 항로표지도 없이 인생을 표류하고 있었다.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무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없었다. 그래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들, 아파트 경비, 청소업체, 도서 물류, 청원경찰, 배달 등의 일들을 구했다. 


   지금 하고 있는 귀농귀촌 교육 또한, 꼭 이거야 한다는 이유가 없었다. 저 위에 기술한 여러 직업들 중 하나였다. 운이 좋으면 걸리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요즘 매주 시골에 내려가 교육을 받으면서,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농촌 생활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고 할까. 귀농귀촌에 대한 전반적인 매뉴얼도 좋고,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좋고...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했었지만,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기능서들만 만들어서였을까, 이제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으려했던 출판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생각일 뿐이다. 책을 만들 능력도 여력도 아직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기획을 만들고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그래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앞으로 내가 귀농한 농부가 될지, 귀촌한 편집인이 될지, 농사 짓는 작가가 될지, 아니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직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꿈이 있어 한 발 한 발 내딛는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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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1-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달아 두근두근하네요. ^^

Tomek 2013-11-14 13:0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Forgettable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

동생 2013-11-1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나도 말만들어도 설레고 흥분되!!
넘넘 신나는 일일거같아....
그리고, 이렇게 가슴뛰는 일을 발견했다는것자체가 넘 부럽네.
난 오빠말대로 무기력해지고 고립된게 지금 내 몸상태의 원인인거같아.
나도 어서 오빠처럼 가슴뛰는일을 구하고싶어.

Tomek 2013-11-14 13:10   좋아요 0 | URL
일단은 사람들을 만나. 그러면 절반은 해결되는 것 같아. 시작이 반이랬으니.

타지에서 몸 건강하고!
 

  지난 주말에 정읍에 가서 다섯 번째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이번 주는 교육 장소가 내장산 초입에 있는 정읍농경문화체험장으로 바뀌어 정읍역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171번 버스를 탔다. 때는 바햐흐로 단풍이 절정을 맞이하는 음력 10월 7일. 버스는 등산객들을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정읍에 주말마다 (다섯 번째로) 내려왔는데 내장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근처에서나마 내장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 조금 서글펐다고 해야하나 아쉬웠다고 해야하나. :)


   이번 주에도 여러 교육을 받았는데, 일요일 하루는 온종일 아로니아 식재 실습을 했다. 아로니아는 10월 20일에 텃밭 실습장에서 식재실습을 했고 11월 3일에 농장견학을 했기에 어쩌다보니 전북귀농학교에서 총 세번의 집중 교육을 받은 셈이 되었는데, 이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우선은 아로니아가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충분히 전망있는(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작물이라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이제 2기수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전북귀농귀촌학교'의 안정적인 운영비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교육으로 여러 효과를 기대하는 김준성 대표님의 모습에서 농사 짓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농부는 한 걸음을 걸어도 열 걸음 후를 생각한다. 쌀이나 고추같은 안정적인 작물이 아닌 이상, 아로니아 같은 특수작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함과 동시에 유행이 끝날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은 비단 농부뿐 아니라, 자기 사업체를 가진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1월 10일. 가을의 흔적을 남기고 성큼 다가온 겨울의 날씨 속에서 교육생들은 아로니아 식재를 했다. 약 600여 평의 빈 땅을 개간하며 비닐을 씌우고 묘목을 식재하는 일은, 혼자 힘으로 한다면 아마도 며칠을 걸렸을 테지만 20여명의 인력들이 붙으니 금새 끝이 났다. 게다가 두 번째 반복하는 일이다 보니, 전체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의 숙련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많은 인원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적어도 나의 경우) 회사에서의 일은 점점 개인화 되어간다. 내 할 일은 내가, 네 할 일은 네가. 사고가 나면, 역추적해서 원인 제공자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저 큰 공정 중에 하나를 책임지는 부품에 불과하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시스템. 아니, 남을 신경쓸 수 없는 체계. 그런 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땀을 흘리는 일은 정말로 벅·찼·다. 향약이니 두레니 품앗이니, 각기 명칭도 다르고, 행한 주체도 다르고, 일어난 지방도 다르지만, 결국엔 다같이 일을 하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저 조선시대 단어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에게 귀농이란, 잃어버렸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 사는 것도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이 처절하다면, 그 처절함 속에서 그나마 인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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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마눌님께서 스콘을 자시고 싶다고 명하사, 직접 만들어봤다. 스콘은 쿠키에 가깝기 때문에, 홈베이킹이 빵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왠만한 빵보다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쩌겠나, 하명을 받들어야지.


   재료를 저울에 정확히 계량하고 반죽한 후, 반죽에 어느 정도 윤기가 흐르기 시작할 때 비닐(혹은 랩)에 잘 싸서 냉장실에 1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반죽은 두 번에 걸쳐서 하는 데, 처음 버터를 넣을 때는 가루가 고슬고슬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고 두 번째 우유와 계란을 넣을 때는 위에 기술한 대로, 글루텐이 형성될 (윤기가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쳐주는 게 좋다.





   숙성된 반죽을 꺼낸 후, 성형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전에) 배웠을 때, 스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죽 숙성과 성형이었는데, 홈베이킹의 특성상, 그냥 손가는 대로 만들었다. 이스트가 없어 구울 때 부풀지 않으니, 패닝은 적당한 간격으로 하면 끝. 반죽을 꺼낼 때 오븐을 미리 예열시키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오븐에 넣기 전에 계란물을 위에 살짝 발라주면 끝. 귀찮다면 귀찮고, 간단하다면 간단한 스콘 만들기다. (이렇게 대충하면 안되는데... 귀차니즘과 홈베이킹의 어드벤티지라 생각하...)





   이 상태에서 오븐에 넣고 약 15~20분간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스콘이, 가운데 부분이 (마치 조개처럼) 살짝 갈라지면, 반죽이 잘 됐다는 증거다. 당연히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





   마눌님 이 모습을 보시고 흐뭇하시어, 남편이 이렇게 제 할일을 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하시며 냉장고에서 호박을 꺼내 볶음 반찬을 시작하시는데, 고소한 버터향 풍기는 스콘에 얼큰한 새우젓 향이 스며들기 시작, 이 복잡 미묘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남편은 심히 울적했더라. 그렇게 멜랑꼴리한 감성에 빠진 때, 잠깐의 빈틈을 알아차린 스콘들이 스스로 제 몸을 태우니, 아뿔사, 스콘이 타버렸구나. ㅠㅠ





   자세히 보면 맨 위아래 두 개만 좀 탔지 나머지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 음식을 만들고 나면, 손이 먼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입은 별로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집사람의 손은 다행이 호박볶음을 먹었기에, 스콘을 무리 없이 먹었다. 난, 탄 거 두 개 먹었고. 평범한 일상도 이렇게 터치를 하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상에 대한 의미 부여랄까? 그런 것에서 예술이 시작하는 것이겠지.


   오늘의 예술: 음식,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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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2일부터 (주)예비사회적기업 전북귀농귀촌학교와 정읍시에서 주관하는 귀농귀촌강의를 매주 듣고 있다.



   귀농에 대한 생각은 어렴풋이 가지고만 있었다. 각박하기만 한 도시에서의 삶에 몸도 마음도 다쳐, 어딘가 나를 치유해줄 공간이 필요했었다.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갈망이든, 회피든간에,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귀농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잘 알아보지 않고 감상적으로 택한 결정은 언제나 비싼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미리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늦더라도 천천히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귀농귀촌학교의 입교였다.


   "매주 1박2일 총 8번에 걸쳐 총 108시간 동안 실습과 이론 교육을 실시"한다는, immersion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교육이라 생각해, 큰맘 먹고 교육을 신청했고, 지금까지 총 4번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귀농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나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농이 얼마나 어려운지, 성공한 사람들조차 밝히기를 꺼려하는, 감추고 싶은 민낯까지도 가르쳐주곤 했으니까.


   

   지금까지 들은 바에 따르면, 아니 내가 느낀 것을 얘기하자면, 귀농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할 일도 없는데) 농사나 해볼까?"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가) 농사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앞서나가야 겨우 첫발을 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영농기반이 없거나, 귀농하려는 지역에 인맥이 없거나, 최소 2~3억의 자본이 없으면, 귀농은 그냥 실패라고 보면 된다. 물론 성공한 사례가 있으나, 만일 당신이 그렇게 성공한다면, 아마도 TV에 나올 것이다. 쉽게 말해, "공부가 제일 쉬었어요" 인간 승리의 부류들. 그정도로 처절하게 들러붙지 않으면 백이면 백 모두 실패다.


   물론,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농사 말고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농사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농촌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농촌이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 농촌에서는 농사만 잘 지어서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기 일수다. 농사 하나만 제대로 짓는 것도 어려운데, 1차산업인 농산물을 생산하고, 2차산업인 가공품을 만들고, 3차산업인, 유통과 판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국가나 지자체 혹은 대규모 중간상인이 헐값에 사들이는 것만을 기대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데, 요즘엔 6차산업(=1×2×3차산업)이라고 해서 이 모든 걸 다 하면서, 거기에 또 체험장, 민박 같은 부대시설도 만들어야 한단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이었나, 간단히 말해 국가가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었던가? IMF이후 비용절감을 핑계로 인력을 줄인 후, 남은 인력에게 그 일을 떠맡는, 결국 개인이 수퍼맨이 되어야 하는 비극 아니었던가? 하긴, 이런 추세는 내가 몸을 담았던 출판계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처음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는, 기획과 편집만 했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점차 편집인이 해야할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거의 혼자서 출판 과정 전체를 떠앉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에 쥐어 짜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귀농이라기 보다는 귀촌에 가까운 것 같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으며, 내 먹거리는 스스로 생산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삶. 하지만 현실은, 모두들 겉으로는 스콧 & 헬렌 니어링의 삶에 감동을 받으면서, 정작 속으로는 빌 게이츠를 꿈꾼다. 그걸 뭐라 탓하지는 않는다. 돈이란 숭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아가는데 충분히 존중받을만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농촌에 대한 감성, 혹은 향수가 사라지는 듯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진심으로 슬픈 일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농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농에 대한 희망 혹은 설렘을 간직하는 것은 바로 생명의 신비, 생명의 순환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심어본 무청이 싹을 틔우고, 상추 모종이 고개를 들며, 양파 모종이 빳빳하게 허리를 곧추세우는 모습을 매주 확인할 때면, 바로 이맛에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이 나를 지배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보려 한다. 어쨌든 내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될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하고 알아나가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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