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다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올림픽 때 보다는 몰입하며 본 장면들이 있다. 셀린 디옹의 노래는 뭉클했고, 긴 막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아찔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리슐리외 도서관에서 책으로 대화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였다. 그냥 흘려보고 흘려듣다가 몇 번씩 멈춰가면서 본 장면이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개막식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 사진의 출처인 MBC공식 유튜브 채널도 개막식 영상을 풀로 제공해주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CJbhThAkcXg -SBS 채널에서 프랑스인인 파비앙이 발음해주는 작가와 책 제목이 프랑스를 더 잘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이후에는 SBS 영상을 본 까닭에 이후 이 글에 삽입된 사진은 SBS 영상의 캡처본이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여기는 알라딘이니까 책에 대한 궁금증을 좀 풀어보려고 한다. 영상을 보는 내내 알지도 못하는 불어를 읽어내려고 눈을 부릅뜨곤 했으니 분명 알라디너 중에도 나처럼 저 책이 무엇이며, 국내 번역본은 있는지 궁금했을 거라 짐작하면서 말이다.
#1. 사랑의 시작
여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신호 - 폴 베를렌의 말없는 연가
랭보의 연인으로 내겐 더 이해가 빠른 폴 베를렌의 [Romances sans paroles]로 여자가 남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첫 책이지만 다행히 '로망스'도 '파롤레'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책 제목을 처음 들어 무슨 책인지 쉽게 알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도 같은 제목으로는 번역본이 없고, 국내에선 [베를렌 시선]이 출간되었다. 파비앙의 말로는 자기들 고등학교 때 읽어야 했던 책들이 다 나오고 있다고 하니 프랑스에선 폴 베를렌의 시가 많이 읽히나 보다.
남자가 여자에게 답하는 말 - 알프레드 드 뮈세 장난삼아 연애하지 마소
아모르는 아모르인데 경계하는 마음이 있는 듯 하다. 앞의 폴 베를렌이 랭보의 연인이라면, 이 책의 저자 알프레드 드 뮈세는 조르드 상드의 연이이었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가 맘에 들었을까? 상처받을까봐 두려운 걸까?
#2. 유혹
여자의 대답 -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다행히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존경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내 사랑은 열정이지, 장난이 아니라는 여자의 답! 그런데 이 둘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남자에게 - 모파상의 벨 아미
지켜보는 남자는 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제스처였을까? 벨 아미를 툭 던진다. 삼각관계인 건가? 남자의 답이 궁금하다. 사랑의 정령일 거라고 기대했다가 벨 아미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이 남자도 이 사랑에 끼어드는 건가?
남자가 여자에게 - 레일라 슬리마니의 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남자는 벨 아미는 거들떠도 안 보는 듯 여자에게 갑자기 대범한 메시지를 던진다. 뭔가를 결심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여자와 따라 일어나는 남자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
#3. 사랑할 결심
먼저 서가에서 메시지를 찾은 여자가 남자에게 - 레이몽 레디아게의 육체의 악마
표지부터 제목까지 에로티시즘이 가득 찼다. 이 이야기 과연 도서관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이야기인가? 책 제목만으로 에로티시즘을 시전하는 파리 올림픽이다.
이에 질세라 지켜보는 남자의 선택은 위험한 관계
아, 이 남자 역시나 이 사랑에 끼어드는 사람이구나! 미안하게도 작가 이름은 이번에 알았다. 책은 문지판으로 꽤 오래 전에 읽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로 갈 것인가! 남자의 대답이 남았다.
#4 남자의 대답 - 몰리에르의 멋진 연인들
누구를 향한 말이지? [멋진 연인들[이라고 하면 그와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데, 전자책의 번역본 제목인 [대단한 애인들]이라고 읽으니 두 사람 모두를 향한 말 같다. 갑자기 책을 다 찢어서 공중에 흩뿌린 후에 한 자리에 모인 세 사람. 그러더니 다같이 도서관 밖으로 뛰어나간다. 역시 도서관 안에서 끝낼 이야기가 아니었다!
#4. 사랑의 승리
세 사람이 떠난 후, 도서관에 남겨진 책은 마리보의 사랑의 승리
도대체 누구의 사랑이 승리한 거지????? 마리보의 책 중 이 책은 번역되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예술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부족하다. 아무튼 다 나가니까 해방감은 든다. 밖에 나가니 비슷한 옷을 입은 연인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달린다. 이 세 사람은 어딘가로 향하고 그곳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자, 정리해보자. 도서관에서 눈이 맞은 남녀가 있어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남자는 경계하는 듯 했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그를 유혹한다. 두 사람의 유혹을 받은 남자는 이제 대범하게 여자에게 말을 걸고 서로를 유혹한다. 지켜보던 남자도 질 세라 가세한다. 남자의 선택은? 사랑의 나라답게 파격적인 결말이다. 자유와 평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궁금하시면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