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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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상상력 끝내준다. 


세상에 없는 신선한 방식으로 찬탄하는 말을 하고 싶어도, 표현력도 달리거니와 그저 모두가 오, 진짜? 정도로 수긍 공감할 수 있게 단순히 감상을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으까... 라고 쓰는 순간, 아마도 하지현 선생님 책에서 본 것 같긴 한데 '헐' '열여덟*나' 로 모든 의사소통이 다 되던 젊은냥반들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손이 오그라붙었다. 아... 그나마 '상상력 끝내준다'를 붙여놔서 다행일지. 저는 그 랭귀지패밀리에 끼기엔 좀 연식이 그러한지라.


아무튼...


읽을 책을 고를 때의 내 모습을 머릿속에 재생해 보면 대강 이렇다. 대체로 일단 '읽어야 할 책들' 칸에 꽂아둔 책들을 주욱 눈으로 쓸어본다. 여기서 먼저 골라 읽는 게 맞는데, 이쪽 칸에서 뽑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 여긴 왜 사다 메워놓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게 의문이네요. 아마도 비어보이면 좀 쓸쓸하니까...?


그 TBR(To Be Read)칸을 지나 90도로 꺾어지게 놓인 책꽂이로 옮겨오면 이미 안쪽에 꽂아둔 책들은 책등의 존재조차 보이지 않게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앞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들이 빽빽하게 몸을 누이고 있다. 아이고 보는 내가 다 불편하고 좀이 쑤시네. 미안. 도서관 책들은, 당연하게도 대출기한이 있으므로 먼저 손이 닿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인생, 뭐가 됐든 마감이 없으면 진도가 안 나가요. 휴...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달인가 아니면 그 전인가, 신간 프리뷰 적을 때 '오 읽고 싶어!!' 하고 핀해 둔 것인데 마침 도서관의 신간서가에 꽂혀 있더라. 이상하게 내가 읽고는 싶지만 새 책은 그만 좀 사들여야하지 않겠어? 하고 결심하고 난 뒤로(물론 결심은 깨기 위해서 하는 거고)상당히 많은 수의 관심신간들이 우리 도서관에 들어왔다. 

어머 이거슨 웬 우연. 나의 지독한 공상과 기대의 헛발질이지만, 어쨌건 간에 굉장히 땡큐한 마음으로 잔뜩 빌려다는 놓습니다만, 어떤 것들은 허겁지겁 읽고 어떤 것들은 열 페이지 남짓 읽다가 도로 반납하고... 어째 식생활을 이런 식으로 했으면 소화불량에 위염 걸리기 딱 좋은데. 그런 불량한 독서생활을 지속 중이다. 이것도 무슨 큰 병이나 지독한 슬럼프라도 오지 않는 이상 쉽게 낫지 않을 중병 같아 보인다. 


이게 다 무슨 횡설수설인지, 또 각설을 한 번 더 하고 


<책에 갇히다>는 개중 끝까지 다 챙겨 읽었고 재미도 쏠쏠하니 챙겼다. 실속 있는 독서였다고나 할까. 앤솔로지는 늘 카달로그처럼 읽는다.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저는 카달로그를 그 옛날 영단어 공부하듯 집중 정독하면서 읽는 스따일입니다. *-_-* 

상품 카달로그가 그렇듯 어머 이건 사야해(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 괜찮지만 내 스타일 아니네(이걸로 끝), ... 그리고 뭐 기타등등, 그런 것이다(잔인한 말은 무조건 생략해야한다). 


책과 서점 그리고 이야기에 대해 쓴 이야기들은,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무조건 읽을 수밖에 없다. 이건 나한테만 있는 병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좀 유난히 혹독하게 걸린 것은 맞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발군이다. 특히 우리가 고전의 반열에 올린 작품들이 부족 탄생 설화가 되어있는 세계의 이야기, 종이책 대신 살아있는 책이 되어 인권이란 게 없는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인간책의 이야기, VR책의 주인공 실종사건 이야기. 이 단편들은 기막힌 아이디어의 승리였고 물개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마음을 준 이야기는 <켠>이었다. 나는 헌책방 이야기도 좋아하고 우리가 흔히 별 자각없이 아무렇게나 쓰는 말들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 반질반질하니 윤을 내고 원래의 색을 입혀주는 단어발굴가(누가 사전덕후 아니랄까봐)를 발견하면, 그냥 막 마음이 다 노글노글해진다. 


이런 책들은 번역돼서 지구상의 적고적은 우리 동족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에 이르러서 이건 안되겠구나,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이 미묘한 말과 뜻의 맛을 살리는 건, 이건 번역이 안 되겠지. 앨리스나 팬텀 톨부스가 우리말로 번역됐을때 니맛도 내맛도 아닌 밍숭맹숭한 텍스트가 되어버린 것과 똑같겠... 


뱀발_

갑자기 궁금해져서, 이 텍스트를 그대로 카피해다 파파고에 한 번 넣어보았다. 파파고의 영작 실력은 50점 주고 싶었... 

조승연 작가가 오래전에 어디 방송에서였나, '번역기 성능이 좋아진대도 우리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뭐 이 비슷한 강의를 했었는데, 맞는 말이다. ㅋㅋㅋㅋ 오밤중에 포복절도했음. 특히 'nyangban'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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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도 하지, 유명한 할머니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희한케도 닮은 데가 있다. 배운척 해본척 아는척, 그 척하는 느낌이 없다. 하나 더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다. 손만 서툴지 살아온 세월이 서툰 게 아니어서 그 요상한 미스매치의 간격에서 배어나오는 느낌은 솔직함과 천진함이다. 굳이 잘나 보일 이유도 없고 세상에 더 무슨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 그 달관한 듯한 태도가 아니면 도저히 이런 그림들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나보다. 



공포영화라는 매체로 사람을 들여다본다는 컨셉이 좋기는 한데 왠지 다 읽고 나면 잠이 좀 안 올 것 같다. ㅎㅎ 재작년에 집 근처에 어떤 댁에서 핼러윈을 너무 요란하게 챙기셔서, 아이 학교 데려다주는 길 내내 한 달 남짓 아주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음험한 웃음소리를 내며 끼익대고 움직이던 페니와이즈 인형이... -_- ... 



어떤 사물이 꼭 그 형태를 띠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아마도 어릴 적에는 궁금했었던 것 같다. 살다보니 고민해야 할 게 하도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그건 원래 그런 거야' 카테고리에 들어가버린 호기심들이 참 많은 듯. 



어 이거 내 이야긴데, 생각했는데 좀 민망하긴 하다. ㅋㅋ 길가에 핀 민들레보고 울컥해 본 적 있는 사람이 접니다... 엄청 건강이슈에 예민한 사람은 못 되는데 그런 것치곤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편에 속해 가끔 별일일세... 하긴 했는데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건가 (해몽이 좋다...) 



우리 집에 개코 오브 더 개코가 하나 살아서 그런가 도대체 무슨 메커니즘으로 그런건지 좀 궁금해. 

(더불어 필요이상으로 불안지수가 높은 것도 설마 그거랑 관련이 있는걸까)



여전히 어중이떠중이 수준으로만 구사하는 영어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니 이놈의 것을 이번 생에는(...;;;) 격파를 하고 가야겠노라 결심을 하고 나름 실천중인데 요즘 의외로 이런 책들이 되게 유용했었어서 요것도 일단 flip through 해보러 나갈 예정. 



지난번 에세이도 좋았는데. 흘깃 본 본문 중에 내 눈을 순간적으로 탁 잡아끈 것.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하는 거라 이거죠. 역자 의견은 반영이 안 된다고... 그럼 앞으로는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이 제목은 대차게 까도 되겠구나 혼자 슬몃 웃었... 



요즘같은 시기에 더더더 선생님 같은 선생님 찾기가 힘들어서 오만가지 감정이 다 치밀어 올라올 때(... 할말하않...) 배움과 가르침, 그리고 스승에 대해서 쓴 글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고 때로는 실용적인 조언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은, 후자의 이유로 들춰보고 싶다. 



기후위기를 부르짖는 것도 중요하지만, '별생각없음'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효과적으로 빠르게 되돌려서 귀기울이게 하는 좋은 방법이 이렇게 생활밀착형 이슈로 묶는 거 아닐까 싶다. 당장 내일 아침 커피를 못 마신다면 어쩌시겠어요? 질문 한 마디면, 나 같으면 네? 뭐라고요? 반문이라도 할 것 같거든요.



동네마다 '문화방' 같은 곳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거창한 거 말고, 그 동네에서 나름 진기명기급 되는 주민들이 오며가며 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가끔 즉석에서 뭔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뭔가 배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이런 거 가르쳐 주실 분 찾습니다 구인광고도 붙이고. 문 앞에는 꼰대출입사절, 한 장 써붙이기도 하고. 한마디로 사람들이 심심찮게 드나들이하는 살아있는 공간 말이지. 이 책 제목을 보다가 갑자기 오래 묵은 이 생각이 느닷없이 살아났다. 



뭔가를 끈덕지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좀, 그렇지...? 하는 시선을 단숨에 꺾어버릴 것 같은 기세가 있는 책인 듯. 그런데 안 그래도 때려치우는 데 일말의 거리낌도 없던 사람은 그럼 어디서 인내를 재발견하면 될까요... 



망가지면 버리고 새로 사기보다, 고치고 보완해서 더 오래 쓰는 습관과 태도. 이미 오래전에 멸종한 것 같지만 한번쯤 다시 되살려보자는 운동이라도 할 만한 미덕이 아닐지.



그러게요, 정말 영화는 뭐였고 무엇이고 뭐가 될 것인지??? 



박현숙 작가님은 정말 '수상한' '구미호'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신 게 아닐지... 아무튼 한국형 판타지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1인으로서 구미호 이야기는 환영.



책소개 글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이 소설은 책 속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의 모험을 담은 미하엘 엔데의 청소년 고전 『끝없는 이야기』와 결을 같이한다. 흠... 정말요? 



예전에... 마션을 영화로만 보고 소설은 안 읽었다는 친구에게 소설도 정말 재미있어, 하고 권한 적이 있었다. 다만, 다만... 그게 좀, 하고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친구가 단박에 '테크니컬 디테일 때문에?' 라고 반문하더라. 어 바로 그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읽고 싶은데 읽으까마까를 무한반복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관심은 주욱 있었는데 작가의 전작이 썩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서 젖혀두고 있었다. 그런데 본업의 의사시라고. 그럼 좀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토록 평이 좋은 걸 보면 괜한 편견으로 모르쇠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여러번 밝혔듯, 저는 사전 덕후니까요... 



엄마, 요즘 애들이랑 얘기가 좀 통하려면 편의점에서 뭐가 맛있는지,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돼, 이 비슷한 뉘앙스로 큰딸이 말한 적이 있었다. 아니야 괘안아... 내가 뭐 10대 애들이랑 말할 일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늬들은 이미 지금도 느무 말이 많아... 난 니네하고 대화를 좀 줄여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상처받겠(삐치겠)죠. 



좋은 소설은, 지금까지 고려해 본 바 없는 시점에서 뭔가를 바라보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고,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는 답안지를 안은 채 걸어가게 만든다. 확신에 차게 하기보다, 조금 불안하고 주위를 살펴보며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묻고 조언을 구하고 종종 불안한 믿음만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은 열심히 구입하고 있다. 읽는 속도는 묻지 마시길,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여기서의 가능성은 PROBABLY 쪽에 무게를 싣도록 하자. 



이 비슷한 컨셉트로 오래전에 나왔던 그림책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곤충들의 세계 쪽이었고, 이 책은 좀 더 범위가 넓다. 



'앞으로의 일' 카테고리에 반드시 올려놓고 싶은 책. 신간 둘러보기니까 당연히 읽어보지도 실물구경도 해보지 않았지만, 찍어사재기 인생 오래 묵다보니 나도 자주 체크하는 분야에서는 이 책은 괜찮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 확 오는 책들이 있다.



이 분은 참말 인생 재미나게 사신다. 이만큼 하고싶은 거 다 하면서도 비교적 소박하게(아니, 스케일로 보면 안 소박쪽에 가까운데, 그걸 세상 소박하게 포장하는 것도 재주다 정말) 사시는 그 재간이... 아마 이런 재미진 관점 내지는 기획력 때문이 아닐까 추리하게 됨. 



아, 동지시네요. 저도 좀 그런 편입니다. 근데 딸린 식구가 많다보니 요즘은 좀 자제중이고.

나는 고마 하산해라, 한 기억 없는데, 언놈의 유전자가 허락도 안 받고 제멋대로 가출해서 딴살림 차리는 바람에 그 병이 둘째한테로 옮겨간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서 특히 읽고 싶은 꼭지가 있는데, 이것들입니다.

시간 거지의 하루, 확 깨는 글씨체, 끊을 수 없는 은밀한 즐거움, 드라마 대사의 저주, 인생의 절정기,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모험.

제목이 정말 침흘리게 하네요 +_+ 



표지에 낚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우비를 썼어도 흠뻑 젖은 것 같은 꼬마한테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



음... 일단 프리뷰 게시물에 책 목록을 좌르륵 저장해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쓰는 편인데 이 책은 가만 보니 한참 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인 듯하다. 심지어 내가 갖고 있던... 그러니까 이게 진짜 낚인거지 ㅋㅋㅋ 



앞으로 정말 우주산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것도 예전에도 쓴 얘긴데, 난 정말 요즘 (하루키가 오래전에 썼던) 독서로봇 내지는 비서가 된 기분이다. 갖은 책들을 다 훑어보고 가끔은 정독하고 ***님, 이건 읽으셔야만 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필살기가 될 겁니다. ***님, 이건 목차만 훑어보시고 필요하신 챕터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러고 산다. 그런데 정작 그 분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모론, 비하인드 스토리, 역사, 세 가지 키워드에 다 환장하는 중딩이가 읽지 않을 수 없겠다. 정작 나는 이런 데는 별로 관심없는데 내 참, 이 집의 사서 내지는 리딩 어시스턴트 내지는 잡역부-_- 로서 옛날 같으면 쳐다도 안 봤을 장르까지 살펴보고 있어야 하는 팔자야... 근데 이 가문 분들은 이 수고를 알아주는 것인가 난 모르오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 누가 해달래? 가 정답일 듯)



덧.

제목의 헤아려봐야 할 숫자는, 

읽겠다고 사다놓고 표지도 안 건드려본 책들의 권수를 의미합니다.

물론 세어보지 않았음. 

뭐하러 심정 상하는 일을 하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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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네의 일기』는 가방에서 꺼냈다. 잠들기 전에『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이 오랜습관이었다.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읽을지 정해놓은 것ㅇ느 아니다. 그날 우연히 펼친 부분 한두 페이지, 혹은 하루 분량의 일기를 소리내어 읽었다.

어쩌다가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안네의 일기』는 어머니의 유품이다. 어머니는 내가 열여덟 살 때 돌아가셨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세상에는 잠들기 전에 성서를 읽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할 거라고, 호텔의 침대 옆 서랍에서 성서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물론 어머니는 신이 아니다. 다만 의식이 육체를 떠나기 직전 먼 곳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그 회로가 닮았다는 것이다. -18쪽


조금씩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일상의 리추얼이란 것이, 의외로 머리를 기울이고 기억을 쏟아보면 한두개쯤 바닥에 데구르르 굴러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문단이었다. 


노파를 상징하는 물건이 달력인 것처럼 주인공을 상징하는 물건은『안네의 일기』일 것이다. 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닻을 내렸다 감아올렸다하며 구둣점을 찍어주는 상징물이니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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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읽고 싶었었는데, 내가 알아봤을 때는 분명히 번역서가 없었다. 원서 제목을 그대로 입력하면 역서가 출간됐을 경우 그 책이 뜨던가, 작가 이름이 나오던가 뭐 아무튼 그런 결과가 나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길래 그냥 원서를 샀더랬다. 아무래도 원서는 역서보다 읽는 속도가 현저히 더뎌지기 때문에, 이미 읽어야 하고 읽고 싶어서 쟁여둔 원서가 내 키만큼(작지 않다는 게 함정) 쌓여있는 까닭에 번역이 있다면 굳이 원서에 손을 먼저 뻗지는 않는단 말이다. 


예약해둔 「키르케」와 「침묵 박물관」을 찾아서 그냥 나오려다 한 번 둘러만 보고 가지 뭐... 진짜 들러만 본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1초간 잠시 경직의 시간을 가졌다. 왜때문에 너는 원서 표지 그대로를 달아서 바로 내 눈에 띄어버린거니. 잠시 당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올라오는 신경질의 스멜. 


뭐... 아무튼지간에 있으니까 너를 읽도록 하겠노라하는 기분으로 뽑아가지고 왔달까

여러가지 이유로, 집에 어차피 사둔 게 있으니까 원서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는 게 문제다. 


바바야가 설화를 바탕에 두고 쓴 소설이다. 바바야가는...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마녀(비슷한 존재)인데,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정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외려 아이들을 잡아먹는, 어쩐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 비슷한데 훨씬 늙고 음습하게 생기고 공포스럽고 그런 느낌.


열두 살 난 마링카는 할머니가 늘 강조하는 자기의 운명이 몸서리나게 싫다. 그 운명이란 할머니처럼 죽은 자들을 저승문으로 인도하는 망자들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마링카는 망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의 세계에서 어울려 살고 싶어하지만 야가인 할머니도, 닭다리가 달린(생명체나 다름없는) 집도 마링카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마링카는 결국 금기를 깨고 또래의 죽은 소녀를 저승으로 인도하지 않고 숨겨둔 채 자기의 친구로 삼는 대형사고를 치고, 이 때문에 마링카는 상상하지도 못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만다.


형체는 없되 먼지구름처럼 뭉게뭉게 주변을 떠다니던 욕망이 실체를 띠고 하나의 목적으로 단단하게 뭉치면서 마링카는 어린아이의 시절을 벗어나는 계단을 오른다. 삶의 양면성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아이이니만큼 충실하게 자기의 마음을 좇던 아이는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수습해보려는 단순한 시도들이 계속 엉크러지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에 쫓기면서 마지못해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일을 하지 않고서는, 꼬여버린 자기의 앞날을 하나도 제대로 풀 수 없게 된 마링카는 어떤 선택을 할까. 


환상적인 소재로 예쁘게 쓴 소설 같은데 은근히 무겁게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다. 어른 입장에서는 이 철딱서니가 도대체 왜 이렇게 끝까지 이기적으로 굴까, 생각하게 되지만 13-16세의 아이들은 마링카에게 절대적으로 이입할 수밖에 없을 거다. 강인한 자아와, 건강한 욕망과, 끝까지 버티는 책임감을 배워야 하는 나이에 읽으면 참 좋은 소설. 


뱀발_

마링카가 언젠가 그것이 할머니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언젠가 그것이 그들의 어른들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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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표지는 독자를 홀린다. 독자가 아닌 사람마저 홀릴 때가 있다. 아주 오래 전 대학생 때 북커버 디자이너를 잠시 지망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게 언제적????).... 꽤 유심히 본다. 표지가 엄청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를 타이틀이 뿜는 의미와 아주 잘, 단단히 매듭지어놓은 그런 표지다. 그런데, 


작가에게 붙은 각종 타이틀과 전적이 화려해서 기대가 너무 컸다. 음, 나쁘다고 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세련되지 못했다. 표지처럼은. 이것 역시 아주아주 옛날에 강경옥 작가가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일수록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 해야 한다고(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뉘앙스로 기억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말했듯 워낙 옛날에 읽은 거라). 그 말이 쟁쟁 머릿속에 울리더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너무 잘 이해하겠다. 시종일관 아주 우직하게 말하고 있는데다, 머리로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이해하겠는데 그걸 전달하기에는 좀... 캐릭터가 힘이 모자랐다. 설득력이 떨어져서 아까웠다. 조금만 더 묵혀 두었다가 썼으면 훨씬 잘 썼을 것 같아서 더 아깝더라. 어쨌거나 앞으로 쓸 소설들도 기대되는 작가였다.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은 가서... 


충격의 대반전도 조금 무리수가 있는 듯하고요. 대반전이라고 하고 싶었으면 거기까지 이르는 길을 잘 닦았어야 했는데 덜 닦였거든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깔끔하게 휙 뒤집은 부침개가 되어야 하는데 덜 익은 것을 초짜 부엌쟁이가 엉거주춤 뒤집어보려다 절반은 그럭저럭 뒤집어지고 남은 절반은 반죽이 깨져서 들러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orz  분명 반죽은 엄청 잘했는데... 예술적인 맛이 나올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안타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도 말했듯, 심지가 있는 이야기였고 소재도 좋고 무엇보다 누구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불쏘시개를 당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꺼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심하게 쓴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되-게 불편한데 정말 이게 뭐지 싶은 건 아예 얘기도 안 꺼내는 법이니까요, 네. 


덧. 

이게 분량이 얼마나 된다고 지난 주부터 쓰다말다쓰다말다했는데 난데없는 눈 통증에 겁먹고 연이어 따라온 이상증세에 어쩐지 이것은 망막박리인것만 같다고 혼자 또 드라마를 쓰다말다하고 온라인 라이프를 모조리 접어버리고 생존에나 신경쓸까 고민도 하다가 어영부영 여기서 줄여버리게 되었다. 원래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책이었는데(말이 많아지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개인적인 감정의 풍랑을 겪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소설이 다 뭐냐, 내 사는 일이 소설 같은데. -_-;;


"자신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타인을 믿는 상황 자체를 못 견디지. 애초에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타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이해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아올려야 하는 거고. 그런 걸 태만히 한 자는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자네가 말하는 합리성은 이 경우 불합리일세. 왜냐하면 나는 나지만 타인은 타인이니."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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