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김동식을 응원한다. 주류가 아니지만 그의 상상력과 도덕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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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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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로 알고 있던 완당 김정희의 일대기이자,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십여 년 전에 완당 평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 새로 펴낸 추사 김정희를 읽자니,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북학(맹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상보다는 현실, 관념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일)의 시대,

공맹이 한물 간 시대의 지식인 노마드로서의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정조 사후의 순조, 헌종 시절을 거치면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용산(강상)으로 겨우 돌아오고,

노년에는 다시 함경도로 귀양을 갔더라는 사실은 시절의 혹독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씨는 '유재'의 두 글자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340)

 

뭔가 예술과 삶이 하나의 도의 경지를 품은 인격을 느끼게 된다.

 

추사의 재능은 감상이 가장 뛰어났고,

글시가 그 다음이며, 시문이 또 그 다음.(495)

 

감상은 미술품 감식,

금강안 혹리수.

서화 감상하는 데는 금강역사 같은 눈과

혹독한 세리 같은 손끝이 있어야 그 진가를 다 가려낼 수...(496)

 

금강안 혹리수... 멋지고 날카로운 말이다.

 

즐거운 독서를 하면서, 못내 눈에 밟히는 해석이 몇 군데 있었는데,

소소한 작품이야 내가 다 번역할 능력이 안 되지만,

유명하고 굵직한 작품들이라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한시 번역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의 도움으로...(580)

 

보통 부족한 점은 자기의 소치로 여기던데,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 탓인 걸까?

 

호고연경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옛것 좋아 때때로 깨진 빗돌 찾았고,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쉴 때는 시 읊었지(199)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전혀 대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구절은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시도 읊지 못하네>가 어울린다.

쉴 때 시를 읊는 것과 비석을 찾는 것은 대구가 되지 않는다.

비석 찾고 경전연구 한다고 시도 못 읊는다는 즐거운 비명인 셈이다.

 

이런 어색한 구절은 유명한 '다반향초'에서도 등장한다.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마시다가 향을 처음 사르고

오묘한 작용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394)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족한 해석을 넘어 틀린 풀이다.

 

다반향초는... 차를 절반 마셔도 향은 처음처럼 남는단 의미다.

술이름 <처음처럼>의 원조라 할 만하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반잔을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이고,

묘하게 음미하면, 입안에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런 해석이 더 가깝겠다.

차를 마시는 일의 향기로움을 입 안에 꽃이 피는 것에 비유한 셈이다.

다반향초는 '오랫동안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께 다반향초 하소서... 하는 덕담도 많았다.

 

 이 작품의 제목을 <장강 서세>라고 적었다.(520)

 

장강 일만 리가 화법 속에 다 들었고

글씨 기세 외론 솔의 한 가지와 꼭 같구나.

 

정민 선생의 번역 이야기에 글에 충실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화법은 장강만리가 있고

서세는 외론 솔한가지 같다... 순서를 바꾸는 일도 읽기에 불편하다.

 

 

맞춤법 고칠 곳... 513쪽.

 

논어에서 사야는 올곧은 군자의 모습을 일컬은 표현으로,

'세련됨과 거침'이라는 뜻이다.... '거칠다'의 명사형은 '거칢'으로 써야 옳다.

'거침'은 중간에 어디를 거쳐서 온다고 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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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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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文... 세상이치에 통달한 사람, 이라는 의미렷다.

박지원의 광문자전을 아주 재미있게 해석했다.

 

평범한 날들이 쌓여

오늘 이 모양이 된 거니까요.

사람이 사람이 되고

삼이 삼이 되려면

특별함이라곤 전혀없는 하루하루가 필요한 법(88)

 

달문은 거지 왕초이며 광대이지만,

평범한 날들이 가진 가치를 헤아린다.

 

그 많은 문제를 다 알지는 못할 텐데, 답을 그리 막 해도 돼?

저처럼 못배운 놈이 답을 알리 없습죠.

저들도 거지에 까막눈인 제게 딱 맞아떨어지는 답을 들으러 온 건 아닐 겁니다.

저한테까지 와서 하소연하는, 그 답답한 심정을 헤아릴 뿐입니다.

해답은 모르겠지만 그 문제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겠다고 받아주는 게 전부(117)

 

세상 문리라는 것이 해답이 있을 리 없다.

순식간에 바뀌고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고민하고 다툰다.

 

달문은 맞붙어 다투지 않았다.

경쟁이 격화되어 한쪽이 다칠 가능성을 스스로 지웠다.(140)

 

조선이라는 신분제가 공고했던 사회에서

세상 이치에 통달한 이가 살기란 참 버거웠을 것이다.

투쟁이 먹히지 않는다면, 도를 통하고 무를 실천할 수밖에 없다.

그이 연예(광대)는 삶의 길이었고

집착하지 않는 버림의 도였다.

 

아름다움이란 바위처럼 불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며 채워 나가는 거랍니다.

달문 오라버니는

움직이면서 순간순간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채웁니다.(310)

 

김탁환의 변화가 곱다.

조선 시대 멋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던 글쟁이였던 그가,

세상의 혼탁한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세월호가 소설가였던 그를 광대 달문의 눈으로 바꾼 셈이다.

 

책임없이 사랑하는 게 훨씬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책임이든 뭐든 딴 걸 덧붙이면 안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엉뚱한 걸 사랑이라 붙들고 세월을 낭비하지 않습니다.(315)

 

달문이가 그랬고,

세월호 잠수사가 그랬다.

스스로 소설이야 '모독'일 뿐이라 자학하더라도,

분명 세월호 전의 김탁환과는 다른 눈빛의 작가가 되었다.

월하 정인의 느긋한 풍정과

실학자들의 풋풋한 논쟁보다는

삶의 핵심에 짓쳐들어간 느낌이다.

 

그의 바뀜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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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중했던 것들 (볕뉘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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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와 황현산을 번갈아가면서 읽는데,

확연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이기주는 예쁜 말들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떠담으려 애쓰고 있지만,

내 마음의 시선은

세상이 마뜩잖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내내 못마땅해 혀를 차는

부글거리는 분노에 휩싸인 황현산에 가까웠다.

 

황현산의 글에서는 지난 몇 년간의 우울과 분노가 오롯이 묻어났지만,

이기주의 글에서 눈에 띄는 '세월'이라는 단어조차

생각없음으로 보일 정도로

내 눈은 세상의 빛에 닳고 닳았던 모양이다.

 

당신의 눈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햇볕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에 햇살이 어른거리지 않으면

우린 언제나 겨울이다.(작가의 말)

 

우리가 살아온 계절이 겨울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요즘 '계엄령' 뉴스를 보면서 정말 두려웠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촛불로 계엄령을 겨우 막은 정도의 당랑거철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세월호 수장 뉴스 역시 가슴을 치게 만든다.

그런 뉴스를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기자 출신 작가의 깔끔한 사진조차 나는 낯설다.

 

대부분 사람은 기운으로 사는 게 아니라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110)

 

어떤 약사의 말을 인용하는데, 역시 스트레스는 인체의 적이다.

지난 며칠간 나는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야말로 기분이 최악이었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쿡 찌르면 금세 울어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표를 내버리고 싶었고,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것은 시간이지만,

갈수록 삶과 맞닥뜨리는 스트레스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짓처들어오면

삶은 속절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과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이 조직에서 나를 지켜내야 하는가.(24)

 

직장인이라면 이런 우울을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

조직에서는 내가 잘한다고 즐거울 수는 없다.

조직원들은 늘 게으르고 마음에 안 들기가 쉽다.

결국 조직을 떠나는 시점을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이기주의 낱말들이

조금 더 세상 속의 사람들의 아픔 속으로 다가서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황현산의 글들처럼...

 

 

155. 이 글에서 '대갚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되갚음'이라면 모르되, '대갚음'이라니...

그런데 찾아보니 '되갚음'이란 말은 없고, '대(對-)갚음'이 표준어라 한다.

마음이 조금 상한다.

맛있는 '무우'를 거두절미 '무'로 표준어 처리한 것처럼 서운하다.

 

85쪽. 천품의 한자가 틀렸다. 물건 품이 아니라 '稟' 여쭐 품, 자를 처야 한다. 기안 올릴 때 '품의'한다고 쓸 때는 여쭈어 본다는 뜻이고, 천품에서는 '내려받다'는 뜻이다. 하늘이 내린... 자질이라는 말이다. 편집자들이 젊어지는 것은 이런 한자에 무지한 것을 보면 아쉬운 점이다. 한문이 담고 있는 상형문자의 함축성에 맹하게 노출된 한글 세대도 한문 공부 좀 해야한다. 편집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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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세탁소 - 정미경 소설집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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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작가의 작품집을 읽은 것은 처음인데, 무척 인상적이다.

툭 던지는 한 마디는 대체로 '화두'에 가깝다.

제목도 생뚱맞다.

원래 삶 자체가 생뚱맞고 당황스런 것이니,

게다가 나이든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야...

회의 중 방귀를 나뉘어 조심조심 뀌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210)"

소리를 듣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정미경 작가는 쉰 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뜬다.

삶은 그렇게 부정교합의 연속이다.

 

'남쪽 절'이라는 작품에서는 캄캄한 어둠을 걷는 설치미술을 만난다.

삶이 그런 것이라는 듯...

 

휘어진 모퉁이에서 핸들을 꺾을 때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숲이 팔을 들어올려 휘청,

얼굴을 가렸다.(63)

 

운전하다 보면,

밤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치는 세상은 현실과 다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작가처럼 적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삶의 속살을 만나는 일이 잦은 사람은 삶이 더 고단할 것 같기도 하다.

 

탈북한 예술가가 남한에서 겪을 생경함은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겪는 곤란과도 오십보 백보다.

 

"그 사람은 외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외로움을 무척 좋아하지."

외로움이란 고독과는 달리 취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이는 느낌일 텐데.(178)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그린 부분도 일품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통계 내기 좋아하지.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걸 알려주는 통계는 없어.

그건 각자의 몫이겠지.

일생동안 행복했던 순간, 사랑 때문에 가슴 조였던 순간,

혼자 눈물 흘렸던 시간, 그런가.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인 순간이 얼마나 될까.(180)

 

'남쪽 절'에서나 '프랑스식 세탁소'에서나,

그 제목들은 뜬금없는 상관물(오브제)들일 뿐이다.

나, 라는 존재 역시 다른 자들에게는 그렇게 하나의 오브제일 뿐이라는 듯...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달리는 말의 등에 채찍질하며 그 귀에 속삭였네.

말아, 제발 천천히 달려 다오.(작가의 말)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달려가버릴 것임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것임을 작가는 예감했던 것일까.

스스로 파괴하는 줄 알면서

그 풍요로움의 단맛에 집착한 삶에 대하여...

이런 작가가 가버렸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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