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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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오정희 컬렉션을 주문해서 꽂아두고

첫 책을 <새>를 빌려왔다.

 

그의 책은 읽은 것들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필사 筆寫의 유혹을 느낀다.

 

가난한 세상.

어미는 없고 아비도 허수아비같은 누나와 앓는 동생.

차가운 세상은 그들의 방 안에 햇살 한 줌 나누어주지 않는다.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을 맞으면 살도 피도 뼈도 혀도 차갑고 딱딱하게 죽어버린다고 했다.

죽은 나뭇가지같이 비틀린 팔과 다리를 늘어뜨린 채

양지쪽에 나와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바람 맞은 늙은이들은 무서웠다.

고개를 숙이고 뜀박질하듯 빨리빨리 그 앞을 지나쳐 한참 떨어진 뒤에도,

뒤를 돌아보면 뿌연 눈빛이 머리 뛰꼭지까지 바짝 따라와 있곤 했다.(8)

 

별것 아닌 문장들인데,

문장들이 명료하고 정확하다.

단어들이 삐걱거리지 않고 제자리를 잡아 착 달라붙는다.

 

컬렉션으로 좋은 책들이다.

 

인생살이가 소꿉놀이 같아.

한바탕 살림 늘어놓고 재미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오지.

그러면 놀던 것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고

뿔뿔이 흩어져 제집으로 가버리는 거야.

사람 한평생이 꼭 그래.(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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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기쁨
금정연.정지돈 지음 / 루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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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기쁘지 않은 부분은

해설 부분을 읽어야 할 때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문학에서 기쁨을 느낄 때는 이렇다.

시집을 읽는데, 마음에 박히는 시가 몇 편 확 달려드는 때,

그런데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다가 시집을 다시 읽으면,

완전히 다른 시들이 또 고개를 들 때,

 

소설을 읽으면서도 인물의 생생한 삶이 오롯이 마음을 울리고,

그가 지구 위에서 나와 같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존재의 비애를 느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이렇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반면, 기쁘지 못할 때는,

시집 한 권을 다 읽었는데도,

유명한 이의 소문난 시집인데도,

마음을 끄는 시를 한 편도 만나지 못했거나,

도대체 이 작자가 뭔 소리를 하려는 건지를

아예 생각조차 맞추어볼 수 없을 때...

 

어린 시절에는 해설을 읽으면서 어떤 것을 느껴야했던지를 돌아보았지만,

이제 해설을 붙인 것 자체를 가증스럽게 생각하고 염증을 낸다.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한줌의 사람들만 듣는다는 것,(28)

 

그런 글을 읽으면 안타깝다가 화가 나기도 한다.

김현의 글 같은 데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울분,

아름답고 쉽게 적혀있는 문장론, 이런 것에 반하게 되는가 하면,

어떤 이의 문학론~인체 하는 해설에서는

서양의 어떤 어휘들을 끄집어 들여서

억지로 시를 해설하려 틀 속에 욱여넣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난다.

더더군다나 국문학과를 나와서

그런 일 자체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아름답지 않은 글을 자주 만나면...

 

외국의 경우

잡지에 실린 단편이나 출판사 출간 소설은

모두 투고를 통해 선정됩니다.

한국처럼 상을 받으며 등단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아요.(48)

 

연고 주의가 문학에도 파고든 것이다.

외국이 어떤가는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기다려지는 작가가 점점 드물어지고,

멋진 작품도 귀하게 되는 풍조는 아쉽고 안타깝다.

 

지금은 사막에 창비, 문동 같은 오아시스 몇 개 있고

그 부근에서 지지고 볶는 느낌.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사막을 가로질러서 사람사는 도시로 가는 것.

오아시스 부근 생태계에 머무는 건 작가의 임무도 아니고,

좋은 전략도 아니다.

문단 권력 논쟁은 오아시스 너머를 안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막을 건너고 싶다.

내가, 누군가 사막을 건너고 나면

지금의 문단 권력 논쟁은 되게 웃기는 거였다고 알게 될 거.(65)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의 장강명이 한 말이다.

 

그는 올해 이것을 '계급'으로 명명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멋지다.

 

 

 

<관료제 유토피아>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나눈다.

 

관료주의에서 결정적인 특징 하나는,

특정 개인과 무관한 공식적 기준 - 필기시험 - 에 따른 선발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그들은 실력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 시스템이 수천 가지 다른 방법들 중에서 타협 줄충된 것임을 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의 첫번째 기준은 공범이 되는 것이다.(152)

 

멋진 구절을 가끔 만나기 위해

금정연과 정지돈의 이야기를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내가 꼼꼼하게 다 읽지 않았지만,

그들이 떠드는 위상수학을 빌려 말하자면,

장강명이 목소리 높여 외친 원기둥이나

그들이 떠드는 내용이나 같다는 것 아닌가 싶다.

 

지들은 도너츠나 츄러스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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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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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점은 신뢰도를 좀 떨어뜨린다.

탐사는 그나라 사람이 온갖 연줄과 언어 소통을 통해서도 하기 힘든 분야인데,

프랑스인이 쓴 이 책은 주간지의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일본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홈리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시대 이후

흔들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공통일 터인데...

 

한국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인데...

 

자살과 증발 모두

사회적인 절망의 표현으로 그 원인은 같다.

실적, 자기반성, 자기희생을 강요받으면서도

끝없는 경제 위기로 인해 빈곤해지다보니

일본 사람들이 불행하다.

힘을 휘둘러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모리배나 악덕 사채업자, 일부 고용주를 비난하고

그냥 운명이려니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비판한다.

 

"사람들이 증발을 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을 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199)

 

미미여사의 '화차'가 등장한 시대도 이런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일본 열도는 압력솥 같다.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압력을 견딜 수 ㅇ벗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다.

증발문제는 터부시되고 있지만

연간 자살자 수 33,000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128)

 

한국이 연간 만이천 여명 자살한다는데,

한국에서도 '자연인' 같은 프로그램만 봐도,

인간 증발의 징후는 짙다.

 

엄격한 교육,

어디서나 늘 최고가 되어야 하는 사회적 압박,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과 직장 스트레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일본의 속담...(118)

 

아 저런 속담이 일본에서 온 것이구나...

미워하면서도 많은 부분 유사한 한국과 일본...

 

폭력적이고 소통이 어려운 가족 관계인 것도 유사하고,

버블 경제와 혼란기를 지나는 것도 유사하다.

한국 사회가 더 잔인할 정도로 급격히 몰락하고 있는 모습도 찾을 수 있을 듯 한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나

혼자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런저런 일터의 일꾼들도 많을 듯 싶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땅을 잃어버린 인간은 소외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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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8-06-0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연간 실종 아동수, 한국의 연간 실종 여성수들도 음모론적 시야를 넓혀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인간증발도 이성적 관점 보다 색안경을 끼게 만듭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요?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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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는 보드를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라더니,

설산 시리즈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엉뚱하게 살인자로 몰린 다쓰미라는 대학생과

경찰 집단의 상명하복에 질린 고스기라는 형사의 만남이 인상적이다.

 

손을 허공에 대봐도

아무 느낌이 없는데

우산을 쓰지 않으면

서서히 옷이 눅눅해질 만큼의 안개비가

음울하게 내리고 있었다.(351)

 

유쾌하던 소설이 흥미진진 달려가던 끝자락에서 만난

이런 구절은 반전을 예고한다.

 

일본어 제목은 '유키케무리 체이스'다.

雪煙... 눈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눈보라라 한다.

아름다운 말이다. 이런 뉘앙스를 느끼는 것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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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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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가 재미있었던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학교에서 철부지 동기들을 만나는 그 공간이 싫었을까?

초등학교 동창회를 몇 번 나가다 말았는데,

몇몇은 초등학교 시절을 좋았던 그림으로 기억하기도 했고,

역시 그런 아이들이 꾸준히 모임을 나오곤 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참 철없는 아이들이 엉망으로 뒤엉켜 사는 곳이다.

거기서 올바로 성장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친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자들인가 하면,

이 만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전부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신앙과 종교의 질곡은 청소년기의 자유로운 영혼을 잡기 힘들다.

자유로운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마음을 패치워크로 만들어

조각조각 정성을 담은 담요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도 그런 곳이 될 수 있다면,

학교도 그런 곳이 될 수 있다면...

 

작가가 간절히 원한 바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너희 안에, 그 가운데 있은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사는 곳이 되면 좋겠다.

 

저들 목회자들의 헛된 말소리에 있지 않고,

속세의 경쟁과 승부에 매달려 있지 않고,

승진과 출세에서는 어떻게 해도 천국을 누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저러한 담요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이,

인간을 살만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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