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썼던 윤동주와 함께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
감옥에서 번호가 264번이어서 원래 이름을 버리고 이육사로 불리기도 한대. 

이육사 시는 뭘 배웠지?
고등학교 책에서 <광야> 배웠고, 중학교 때 <청포도> 배웠나?
우선 '청포도'랑 '광야'부터 간단하게 보고 시작하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이 <단정>하다는 거야.
마치 조선의 강직한 선비처럼 단정한 한복을 다려 입은 듯한 형식이지.
연의 길이가 비슷해서 시각적으로 단정하단 느낌을 준단다. 

이 시에선 <시각적 심상>이 많이 나오지?
<심상>이란 글을 읽고 마음에 그려지는 '감각'인데,
직접 감각이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마음 속에 그려지는 것이지. 

청포도의 푸른 색, 하늘과 바다의 푸른 색과 흰 돛 단 배, 푸른 도포의 엷은 옥색,
은쟁반의 은빛과 하이얀 모시 수건...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라고 하지. 

그리고 전설에 따라서 화자가 간절히 기다리는 대상은 누굴까?
가장 힘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
희망을 품게 해 주는 존재. 그런 것이겠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게 해 주는 존재.
일제 강점기임을 고려하면 독립이나 해방 같은... 

그래서, 준비를 하자고 하네. 하이얀 모시 수건과 은 쟁반.
마지막 연의 '아이야,'는 시조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감탄사>와 유사한 구절이지.
전통적 형식을 이어받은 거라고 볼 수 있단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도 '아아'로 4/4/2의 세번째 부분이 시작하고 있었던 것 기억하니?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손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럼, <광야>를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5연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연이 몇 행?
가지런하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절정>도 4연이 모두 2행이었고, <교목>도 3연이 모두 3행으로 일정했단다.
물론 더 넣고 싶은 말이 있었어도 퇴고 과정에서 많이 뺐겠지. 

이 시 '광야'는 참 스케일이 큰 시란다.
보통 이육사의 시를 <남성적>이라고 하는데, 꼭 남성만이 웅장한 건 아니지만,
규모가 크고 웅장한 것을 보통 '남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수능에 그런 용어가 나진 못해. 고발당하거든 ㅋㅋ 

이 시는 1,2,3연과   4연,      5연의 세 부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되어있단 건 배웠겠지?
1연을 줄이면 "옛날에"가 되고,
2연을 줄이면 "광야에서"가 되고,
3연을 줄이면 "역사가 열렸다"가 되지.
보통 '강물'은 '역사'를 <상징>하니깐. 

잠깐, 상징을 이야기할게.
<상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생각나는 걸 말해. 마법적 연결이라고 하지.
'비둘기'는 더럽고 지저분한 새일 수도 있는데 무엇의 상징?
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평화!
'십자가'는 형틀인데 무엇의 상징?
그렇지, 예수님 또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이지.
보통 '강물'은 흐르는 '역사'를 상징해. 

다시 4연으로 가서. <현재> 기상 상태가 어떻습니까? 지금 눈 내리고... 지.
상태가 안 좋아. 일제 강점기.
근데, 그 눈 속에 핀 꽃이 있어. 절개가 곧은 꽃.
추워도 핀다면 피는 꽃. 매화지.
매화는 지조가 곧은 선비의 상징으로 쓰인단다.
예로부터 '매화, 난초, 국화, 대'(매난국죽)을 4군자로 불렀어.
선비의 상징.
화자는 그 일제 시대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추워도 할 일은 하는 거지.
윤동주 처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소명 의식.
또는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붉은 피를/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는 희생 정신. 속죄양 의식.
이런 게 드러나지.

내가 <현재> 뿌린 씨앗이 '천고의 미래' 나중 나중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노래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이 시의 주제는 배웠지?
이육사 시의 대부분의 주제는 이거야.
<앞부분에서는 고난>, <뒷부분에서는 극복> 합치면, <시력, 고난의 극복>
이 시도 그래. 고난 극복의 의지. 강한 의지적인 시라고 할 수 있지.

<절정>과 <교목>은 전에 했으니 패스~
이 시들도 가지런하고,
시련 극복의 의지가 들어있는 시란다.
이육사의 선비 정신이 가득한 시.
다음엔, 이육사의 '꽃'을 보자.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꽃)


이 시도 역시 3연이 모두 4행으로 형식은 어때?
단정하고 가지런하지.
앞에서 시련을 뜻하는 단어 뭐가 있을까?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은 그때,
북쪽 툰드라의 찬 새벽, 이런 거지. 

그럼, 희망과 의지를 나타내는 시어는?
1연의 가뭄에도 오히려 빨갛게 피는 꽃.
2연의 옴작거리는 꽃 맹아리. 저버리지 못하고 날아올 제비와 피어날 꽃의 약속.
3연의 꽃이 성을 이룬 장면, 나비처럼 <의지>를 갖고 <희망>을 부르는 무리들(우리 민족)

이 시의 1연의 <오히려>, 2연의 <마침내> 3연의 <불러 보노라> 이런 시어들은
아주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니?
이육사의 특징이 잘 드러난단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 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노정기)

노정은 '어떤 지점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나 시간'을 뜻하는 말이야.
<노정기>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 또는 기록이지. 

이 시도 역시 5행이 각각 3연으로 가지런하다.
1연에서 초라한 '목숨'을 이야기하지.
2연에서도 '작은 배 쩡크선'처럼 세상에 찌든 모습이고.
3연에서 '암초, 태풍'과 싸우는 시련 가득한 인생.
2연에서 <남들은 기쁘다는 인생>, 3연에서 <산호섬>도 <남십자성>도 없는 슬픈 인생을 회고한단다. 

4, 5연에서 쫓기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뭍에 오르면
시궁창과 거미와 다 삭아빠진 소라껍질에 붙어 온 자신의 인생.
흘러 흘러 먼 항구로 흘러들어간 자신의 슬픈 생활을 들여다 보는 시.
아빠가 이야기한 것이 하나 다르지?
이 시에는 <시련, 고난>은 있는데, 뭐가 없어? 
그래. 이 시는 <회고적, 비극적>인 시일 뿐이지, <의지적>, <희망적>인 시는 아닌 거야.
이 시의 주제는 <쫓기는 삶의 비애, 과거의 어두운 삶 회고> 정도가 되겠지.

이육사는 1904년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단다.
이 시절 선비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육사도 어린 시절에는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어. 
그는 1925년에 폭력도 서슴지 않던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한다.
1931년 북경으로 다시 건너간 육사는
이듬해 조선군관학교 들어가서 두 해 뒤에 조선군관학교 제 1기생으로 졸업한다.
1943년 일본 형사대에 붙잡혀 해방을 일년 남짓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육사(陸史)라는 그의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27년 처음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그이 죄수번호가 264번이어서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어.
육사는 투쟁론의 입장에 선 독립운동가이며 또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시험에 엄청 나오지.

이렇게 시에는 시인이 살아온 <시대>와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물결이 지나가고 난  뒤의 모래밭처럼 남게 되어 있단다.
민우도 살고 난 뒤,
어떤 모랫결을 남기게 될는지...
잘 생각해 보는 주말이 되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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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철로 된 쌍무지개
    from 男兒須讀五車書 2010-11-07 23:47 
                   요즘 읽고 있는 미술 도서가 사바나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옥 씨의 <아침미술관> 2권이다. 작년에 발간된 1권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올해 나온 2권에 대한 기대도 컸다. 365일 매일 아침 그림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1권은 1월에서 6월까지, 2권은 7월에서 12월까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1
 
 
cyrus 2010-11-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육사 시인은 어두운 시대 속에 살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차분하게 시로 표현하고 있어서 좋습니다.
글샘님에서 소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절정>이라는 시도 좋았습니다.
제가 쓴 페이퍼 중에 <절정>에 대한 글 한 편 썼는데 여기 먼댓글로 올려도 되는지요?
그리 잘 쓴 글은 아니고, 이육사의 시에 대한 감상이 없지만,,
이육사의 <절정>과 어울리는 그림 한 편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샘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봅니다. 글샘님뿐만 아니라 글샘님의 서재에 들리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샘 2010-11-07 20:48   좋아요 0 | URL
'절정'은 전에 <역설> 공부할 때 한번 다뤄서 여기선 뺐습니다.
먼댓글로 붙여 주세요. 어떤 그림일지 궁금하네요.

cyrus 2010-11-07 2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샘님.

반딧불이 2010-11-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포도>를 처음 읽었을 때 포도는 온데간데 없고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이 도드라져보였던 기억이 있어요. 모시수건에 포도물이 드는걸 걱정하기도 했었구요. 청포도 사진과 함께 하니까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글샘 2010-11-07 20:4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푸른 이미지보다는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 이미지가 정말 선명하죠.
ㅋㅋ 포도물이 드는 걱정까지...
 

어제 김영랑을 이야기했지.
1930년대 어두운 시대에 '언어를 갈고 닦은 조탁자, 세공사'란 이야기를 들었던 김영랑. 

오늘은 1940년대 중요한 작가 윤동주 이야길 하자.
그럼 내일은 이육사가 되겠구나. 

윤동주의 시중에 가장 유명한 시가 뭘까?
알겠지? 서시(序詩).
우선 서시부터 한번 읽어 보자꾸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참 단정한 시다.
일제 강점기 후반, 윤동주는 감옥에 갇혀서 죽어가는데,
이런 시를 쓰면서 자신을 단정하게 가다듬었겠지.
'나한테 주어진 길'
이런 것을 '소명'이라고 한단다.
민우 앞의 길에는 어떤 길이 주어져 있을까?
일제 강점기가 아닌 것이 참 다행이잖니? ^^ 

다음엔 문학 교과서에서 배운 '쉽게 씌어진 시'를 보자꾸나.

1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2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 볼까,

3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4 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5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6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7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8 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9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0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전체적으로 10개의 연으로 이뤄져 있는데, 수미 상관이 있단다. 바로 1연과 8연이지.
그럼, 화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1연과 8연 사이에서 다 나오겠지? 
나머지 2연은 조금 분위기가 다른 연이란다.  

1연에서 6첩방은 다다미가 6장 깔린 방이란 뜻이야.
다다미는 일본식 바닥재인데, 일본이 공간적 배경이지.
시를 쓰는데, 3,4연에선 조금 부끄럼을 느끼고 있단다.
부모님이 힘겹게 보내주신 학비로 '늙은 교수의 강의'나 듣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
윤동주는 일제 때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을 갔던 거야. 

5,6연에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걸 '자아 성찰'이라고 해.
무얼 하겠다고 유학을 온 건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유학생...
7,8연에서는 자아 성찰의 결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지. 반성. 

그래서 9,10연에서는 변화된 자아가 도출돼.
아마 이 시는 밤중에 썼을 거야.(밤비가 속살거려...라고 했구나.)
밤중엔 감정이 잘 변하고 스스로 생각이 이리저리 바뀌곤 하지.   

 

 

 

 

 

 

 

 

윤동주는 아주 강인한 사람은 아니었단다.
일제 강점기만 아니었다면 부드러운 학자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지. 생긴 걸 봐. ㅎㅎ
'어둠'이나 '밤'은 전통적으로 <악의 무리>를 <상징>하지.
그런데, 부드러운 윤동주란 남자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겠다고 해. 조금.
그리고 역사는 당연히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되겠지. 그걸 기다리는 '최후의 나'가 있어. 

'최후의 나'란 어떤 의미일까?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며 싸울 때, 최후에 죽는 전사도 있을 거잖아.
그런 의연한 결의가 담긴 말로 볼 수 있겠구나. 내가 최후에 죽더라도... 나는 아침을 기다린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시도한다.
<자아 성찰>을 통해서 <자기 반성>을 했고, 그래서 <최후의 나>가 되었잖아.
자아 성찰 이전의 '나'는 <좀 부끄러운 나>였고,
자아 성찰 이후의 '나'는 <최후의 나>를 각오하는 사람이야. 의지적 인물로 변했지.
그래서 앞의 '나'가 뒤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성찰 이후의 나>가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되는 거지. 어렵나? ^^
바뀐 나를 '본질적 자아'라고 하고, 바뀌기 전의 나를 '현상적 자아'라고도 해. 

자기 반성을 통해서 각오를 다지는 그런 시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조금'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여기서 잠시,
그와 상반된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이육사'의 시어를 한 번 보자꾸나.
전에 '강철로 된 무지개'란 절정을 썼던 시인이지. '광야'는 수업 시간에 배웠잖아.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이육사, 교목 喬木>

교목은 <높을 교, 나무목>을 써서 곧고 높게 자라는 나무를 뜻해. 키다리 나무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옆으로만 퍼지는 나무를 관목 灌木 이라고 하지. 떨기나무라고 그래.
이 시에서는 교목처럼 우뚝한 이육사의 높은 기상, 기개 이런 것이 느껴지잖아. 

특히 '차라리~말아라', '아예~아니라', '차마~못해라' 이런
'강한 부사어'와 '부정어'가 정말 강철같은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
이런 시와 비교해 보면 윤동주의 시어가 얼마나 보드레한지 느껴지지.

이번엔 동시 풍의 시를 한번 보자꾸나.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동시가 많단다.
시작은 동시야. 중간에 돌변하긴 했지만 말이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十字架))

쫄래쫄래 걷다보면 해가 따라오잖아. 그러다 교회당 꼭대기에 해가 걸렸어.
동시같은 화자의 상상.
저렇게 높은 뾰족탑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맘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서성일 때까진 평범한 사람이지. 

그러다가 갑자기 4연에서 분위기가 바뀌지.
'괴로웠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는 역설 다룰 때 했던 기억 나니?
죽음을 예정한 '괴로움'과 인류 구원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지. 

<처럼>을 행을 바꾼 이유는 뭘까?
그 앞에선 그저 옛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 건데,
<처럼> 뒤에선 누구 이야기가 나오겠니?
그렇지. 화자의 이야기가 나와야 돼.

나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그래서 나의 죽음으로 우리 민족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잖아.
그런데, 잠깐.
여기서 또 윤동주의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나온단다.
피를 흘리는 '희생'을 하는데 어떻게 흘린다고 했지? 

응, <조,용,히>...  
이렇게 부드러운 남자를 죽게 만든 시대라니... 참 잔인하다. 

윤동주 시 중에 제일 어려운 시가 <또 다른 고향>이야.
2년 전에 교육청 시험이 이 시가나왔는데 애들이 바짝 쫄았지.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안 났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시를 보고 쫄게 돼.

1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2 어둔 방은 宇宙(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3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4 志操(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5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6 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白骨(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좀 어렵고 낯선 시를 보면, <제목>부터 보는 습관을 들이자.
제목이 '또 다른 고향'이지.
'고향'은 자기가 나고 자란 동네. 농경 사회에서 가족이 사는 동네를 뜻해. '공동체 문화'의 기억이 있던 곳. 
그런데, '또 다른 고향'이라면... 고향이 두 개로 분리된 것 같지?
아까 '쉽게 씌어진 시'에서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된 것처럼 말이야.  

고향에 돌아왔더니, 내 백골이 한 방에 누웠대. 내 백골은 <가치있는 존재>로 보이냐? 반대일까?
그래. 무가치한 존재로 보이지. 아주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마음.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면 될 거야.
어두운 방(침울한 분위기)은 안정적이지 않아서, 우주 어디론가 가버릴 거 같아.
방 안에 하늘에서 소리나듯 바람이 썰렁하게 분대.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되어 가는 백골을 보는 <나>
그 백골은 남의 뼈가 아니라 <나의 뼈>야. 가치없는 나의 모습. 부끄러운 나의 모습.
눈물이 나는구나.
그 눈물은 내가 흘리는 것이고,
가치 잃은 나의 백골이 흘리는 것이고,
높은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혼이 흘리는 것이지.  

자, 여기까지에서 <지금의 고향>, <돌아온 고향>은 어떤 분위기지?
춥고 썰렁하고 으시시한 고향.

개가 짖는다. 그런데 그 개의 짖는 소리가 <지조 높은 개>로 들리는구나.
지조 높은 개의 소리는 나를 일깨우는 소리야.
5연에서 <나를 쫓는 소리>라고 하잖아. 
시험에 <지조 높은 개>는 화자에게 어떤 존재인지 물었어?
답은 <일깨우는 존재>였지. 쉽지?

마지막 연에서는 어디론가 가자고 해.
그 지향처는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야.
지금 백골이 풍화되어 누워있는 이 무기력한 곳, 우울한 공간 말고,
평화롭고 따사로운 행복함이 있을 곳,
김소월이 <엄마랑 누나랑 가고 싶던 강변> 같은 곳.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있는 곳.
그런 <또 다른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희망. 

역시 윤동주의 소심한 표현이 등장하지.
후딱 가지도 않고, 뚜벅뚜벅 가지도 않고, 눈보라를 헤치고 가지도 않아.
백골 <몰래> 가재. ^^ 아빠는 윤동주의 이런 시어를 보면 혼자 싱긋이 웃음이 난단다. 

<서시>처럼 맑고 고결하게 살고 싶던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나 <십자가>, <또 다른 고향>처럼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의지를 가지게 되지. 
그렇지만 그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해방이 되던 1945년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해. 

그의 죽음은 일제 말 생체실험의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어.
남긴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전해지지. 

아, 오늘은 시험에 많이 나오는 윤동주를 읽었다.
좀 분열적인 자아를 가진 시들이지만, 시대가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 

민우가 사는 지금은 일제 강점기의 청소년에 비한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인지, 이 행복을 다 누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말이 되는구나.
아빠의 강의를 듣는 소감이 어떤지 답장 한 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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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정에 갔을 때 들렀던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 허허벌판의 확신할 수 없는 묘지도 생각하며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글샘 2010-11-06 08:41   좋아요 0 | URL
공부 젤 열심히 하시는 거 같아요. ㅎㅎ 보람이 있습니다. ^^

마노아 2010-11-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윤동주를 읽는 밤이라니, 즐거웠던 문학 수업이 떠올라요. 모의고사 보던 날 시간이 남아서 별헤는 밤을 외웠어요. 그 다음날 야자 시간 쉬는 시간에 친구랑 별을 보면서 시를 읊었어요. 그랬던 여고 시절이 생각나요.^^

글샘 2010-11-06 08:42   좋아요 0 | URL
십여 년 젊어 지셨나요?
자~ 별 헤는 밤 외워 보세요. ㅎㅎㅎ
시 읽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데, 애들은 왜 싫어할가염... ㅠㅜ
누구나 시험 치면 싫을 거 같네요.

낮에나온반달 2010-11-0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에게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쯤 되는 것 같아요.
저 많은 책들을 언제 보시고, 이 많은 글들을 언제 쓰시는지...
게다가 대충 쓰시지도 않으니.... 감탄할 따름입니다.
아드님께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니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을 느끼게까지 하십니다.
열심히 출석 중입니다.

글샘 2010-11-06 21:33   좋아요 0 | URL
하루가 원래 240시간 아닌가요?^^
책은 대충 봐서 그렇구요, 글도 대충 써서 그렇습니다. ㅎㅎ
열심히 출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0-11-0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 시절에 <별 헤는 밤>을 공부하면서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국어 선생님이 이 시의 훌륭함과
윤동주 시인의 생애에 대해 자주 언급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7 20:47   좋아요 0 | URL
학창 시절에 엄청 모범생이었나봐요. ^^

부산의 준영맘입니다 2010-11-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동주 시인 대신 정지용 시인이 자꾸 떠오르네요

어제 샘의 블로그를 발견한 후 컴을 켜면 손길이 이리로 이끄네요.

좋은 시에 쉬운 설명을 곁들이니 제 마음이 호사를 누립니다.

글샘 2010-11-21 21:11   좋아요 0 | URL
정지용도 언제 한번 다루게 되겠지요.
천천히 읽어 주시길...
 

오늘은 날이 갑자기 차가워졌구나.
따뜻하게 입고 다니자. 감기 안 걸리게~ 

1930년대라면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본격화하던 시기란다.
그 시대엔 독립 운동 같은 것 하기는 정말 어렵던 시대였지.
그래서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모양이야. 

김영랑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란다.
한 번 읽어 보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무서운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시답지 않지?
시는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란다.
그러면서도 험난한 세상을 극복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다는 <시의 가슴>이 다가서지 않니?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발음(ㄹ 같은 소리)을 고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
또 순수 우리말을 살려 쓰려고 한자어를 모두 빼버린 노력도 대단해.
에메랄드 같은 외래어가 있지만,
그건 1930년대가 서양 문물이 밀려들면서 그런 언어에 대한 동경도 드러난 시대기 때문일거야.
모더니즘 시라고 해서, 이 시대의 시들에 서양 말들이 많이 튀어 나오기도 한단다. 

한 행은 대체적으로 3음보로 끊어 읽을 수 있겠다.

돌담에 /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이렇게 말이야.

같은 시인의 시 중에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음들을 골라 쓴 시가 있단다.
왜 그를 '언어의 세공사' 내지는 '조탁자(갈고 쪼아대는 사람)'라고 하는지 느껴 보렴.

내 마음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마음 속 어딘가에서 강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느껴져.
돋아오르는 아침 햇빛이 빤짝, 은빛으로 빛나는 강물이야.   

마음은 어디 있을까?
이 평화롭고 잔잔한 마음은...
가슴에, 눈에, 핏줄에...
어디에서도 보이진 않지만, 
그 모든 곳에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겠지. 

시인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그런 잔잔한 마음이 우리 안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고,
그런데, 세상은 날마다 힘든 일 투성이라서...
이런 시를 조용히 앉아서 쓴 걸 거야. 

이 꽃이 뭔지 알까?
모란이야. 우리 학교 교화.
작약하고 비슷한데, 모란이 더 꽃이 크고 화려해.


김영랑 시인의 유명한 시를 하나 더 보자꾸나.
제목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야.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처음하고 끝이 같게 끝나지.
수미상관, 수미상응... 뭐 이런 거란다. 

똑같은 말이지만, 느낌은 달라.
처음엔, 이야깃거리(토픽)를 던져주는 것이고, 
중간 부분에서 그 토픽을 왜 이야기하는지를 전개하겠지.
그러다가 같은 구절을 반복하게 되면서 시상이 강조되고,
더 깊은 뜻을 느끼게 되는 거야.  

이 시에서 말하는 건 뭘까?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눠서 한번 설명해 볼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필 때까지는 '나의 봄'을 기다린다네.
'봄'이란 '활짝피는 날'이지.
즐겁고 기쁜 일만 일어나는 계절. 희망으로 가득찬 느낌.
실제 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봄'은 그런 계절을 <상징>하지.
청춘(靑春).
이 말에 벌써 '봄'이 들어가잖아. 

봄이란 계절은 동사 '보다'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겨울은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계절이고, 뭔가 자꾸 보게 되는 계절이 봄이지.
보고 싶고, 볼 게 자꾸 생기고... 뜨거운 피.  

모란이 필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살던 화자는,
모란이 떨어져 버린 날,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거래.
저 큰 모란이 뚝뚝 떨어진 어느 날.
'봄을 여읜 설움'이 마음에 가득차겠지.
희망이 사라져 버린 느낌.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실제 모란은 5~6월에 피었다 져.
이 시가 쓰여지던 시기만 해도 음력 5월(양력으로 6월) 쯤이었을 거야.
무더워지는 여름인데,
모란이 떨어지고,
천지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동안 가졌던 희망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동안 모란이 필 것만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며칠 피어있던 모란은 금세 지고, 금세 시들어 버리니, 낙망이지. 

요즘 9988234란 말이 있더라.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 4망하는 게 복이래.
내 주변에 어떤 선생님은
엊그제 월요일까지 멀쩡하다가
몸이 피곤하다고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판정을 받아서 다음 날 돌아가시고 말았대.
아직 아이들도 중,고생인데 말이야.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란다.
기대를 가지고,
좋은 날을 기다리며 살아 가는 거지만,
어느 날,
뚝뚝 떨어져버린 모란 꽃잎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겠지. 

그치만, 이런 허망함만 그렸다면 이 시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가 그 다음에 나올 거야.
기대해 보자.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 희망과 기대의 모두였던 모란이 지면, 1년은 아무 의미가 없대.
그래서 남은 날들을 하냥 섭섭해 울고 있다는구나.
그렇지만,
처음의 이 구절이 다시 반복되면서, 그 울음 속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지 않아?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내년에 다시 필 모란을 위해서,
기다림을 간직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화자의 결연한 눈빛이 보이는 것 같구나. 

전에 '역설'에서 배웠지?
찬란한 슬픔.
나는 모란이 떨어져서 슬픕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역설이 느껴져.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닌 까닭은? 

다시 필 모란을 기다리는 일은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야.
다시 기다림의 '찬란한' 기쁨이 담긴 슬픔이겠지. 

김영랑의 앞의 두 시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
앞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에서는
정말 깨끗하고 순정하게 살고 싶은 화자의 욕망이 반영되어 나타났지.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살아지지 않더란 거야.
일제 강점기.
우리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던 그 암흑의 시기에
화자는 이런 시를 쓰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모란을 기다리는 것은,
김영랑만이 알고 있는 어떤 '희망'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르고... 

아, 오늘은 희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그림이 생각난다.
 

워터하우스란 작가가 그린 <판도라>의 그림이야.
세상 모든 악덕이 빠져나간 뒤에 급히 닫아버린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갇힌 녀석.
그 희망이란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일제 강점기처럼 힘든 시기도 저렇게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줬는데,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지?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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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도 즐거운 하루 되셨길....

글샘 2010-11-04 23:14   좋아요 0 | URL
네, 반딧불이님두요...

비로그인 2010-11-05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는 노래로 만들어진 그 시가 맞죠, 글샘님?

글샘 2010-11-05 10:4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참 예쁜 시죠. 어쩜 저런 말을 골라내는지 몰라.

cyrus 2010-11-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인의 시는,, 한편의 음악인거 같습니다.

글샘 2010-11-06 08:41   좋아요 0 | URL
정말 음악이죠.
 

오늘은 더할 나위 없는 '절망'을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 언어의 마술사,
역설의 달인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 <님의 침묵>을 보자.
우선 한 번 읽어 보렴.

1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4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5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6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7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읍니다
8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9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0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너무 길어서 내가 10행을 번호를 붙였어.
향가 같은 거 배울 때, 4구체, 8구체 이런 말 들어 봤니?
우리나라 노래의 전통 형식이 4줄이야. 한시와 유사하단 말은 전에 했지.
그런 걸 4/4/2로 쓰는 일이 많아. 축구의 442 전법처럼...

우선 수비수로 도입부의 4행까지,
수비수는 뭐 축구에서 얼굴도 잘 안 나오지.
늘 골 넣는 사람만 인정하는 더러운 게임 ㅋㅋ
4행까진,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우리 헤어졌어요~~ 이런 거. 전부 '갔습니다'로 끝나잖아.

그 다음 4줄. 8행까지가 박지성의 미드필더 자리야.
수비도 하고, 공격도 이뤄지는 그야말로 축구의 최강자들이 접전을 벌이는 곳.
5행에서 '역설'이 나온단다.
역설, 기억 나?
두 가지 상황이 서로 모순이 되는, 하나가 일어나면, 다른 하나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 함께 놓인... 모순 관계.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이런 상황 이해가 가니?
그이의 목소리만 들으면 세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귀먹고 마는 사랑의 경지.
지독한 사랑에 빠진 거야.  

근데, 일상 언어로는 '향기로운 말소리에 귀가 뜨이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걸 역설이라고 그래.
(한글 맞춤법에는 '님'이 아니라 '임'인데. 고전이라서 그냥 님으로 적을게.) 

6행에서 이별로 놀란 마음이 나와. 슬픔. 대놓고 슬퍼요~
그치만 7행에서 반전이 돼.  
이별을 쓸데없이 '울음, 슬픔'으로만 만들면 제 스스로 사랑을 깨뜨리는 결과가 됨을 이 화자는 알아.
그래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희망의 정수를 만들지.
회자정리 거자필반(만난 이는 이별하고, 떠난 이는 돌아온다)...
이런 윤회의 진리를 믿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두 줄. 이 부분은 최전방 공격수야.
독일의 클로제나 아르헨의 메시의 자리.
폼도 죽여주지. 앞의 4,4에서 패스해준 볼을 골로 연결시키고,
골을 넣고 세레머니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축구 선수의 꽃.
이 시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화려한 꽃에 해당하는 부분이야.
두 줄이지만, 짧고 굵게! 강하게! 가는 겁니다.

한국의 시들은 향가, 고려가요, 시조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계속 저 4/4/2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의 2행 앞부분에 감탄사를 넣는 경우가 많아.  

여기 또 나오지. 역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안 보냈다...
함께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더 간절한 화자의 마음이 느껴지니?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부재, 님이 가서 현실에 없는 상황을 '님의 침묵'이라고 이름붙인 거야.
그렇지만, 님이 현실에 없다고 화자는 "굿바이, 세상에 반은 남자!" 이렇게 쿨하게 변하지 않고,
님이 없지만, 사랑의 노래를 불러.
그 사랑의 노래는 님의 부재를 둘러싼 화자의 마음을 계속 감싸고 있고...
마치 향 연기가 번져서 방 안이 향 냄새로 가득하듯... 

아빠는 저 마지막 구절에 참 애착이 간단다. 
축구로 몰아붙이자면, 완벽한 드리블에 완벽한 슛으로 '골~~~'을 얻은 거 같은 느낌이랄까.
님의 침묵과,
스스로 이기기 힘든 사랑의 노래와,
그리고 님의 부재를 휩싸고 도는 나의 사랑 노래...
어쩌면, 종교적으로 승화된 느낌까지 나지 않니? 
그 사랑은 얼마나 깊고 큰 사랑일는지.

만해 한용운의 일생으로 보아, 님을 조국, 또는 부처 등으로 해석하지만, 그저 사랑하는 님으로 봐도 멋진 시인 거 같아. 

자, <반어, 역설 끝내기> 특강! 대 공개~~ 

우선, 반어부터 연습하자꾸나. 반어는 무조건 반대로 말하면 돼. 

잔칫집에 너무 음식이 먹을 게 없어. 뭐라고 말할까?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려 하네요... 이럼 되겠지?
시험을 완전히 망쳤어. 반어로 뭐라고 할까? 완전 잘 쳐서 120점 나오겠다. 잘쳤다고 하면 되겠지.
너무 못생겼으면, 엄청 잘 났다~
지각했으면, 참 일찍 왔다~ 

시험, exercise!! 

현진건의 소설 중에 "인력거꾼" 김첨지가 나오는 소설이 있어.
유난히 영업이 잘 되는 날인데, 날씨가 궂어서 눈도 오고 하지.
집에 아픈 아내가 있는데, 술을 한 잔 하고 집에 설렁탕을 사가지고 들어갔어.
근데 그날 아내가 죽어서  아기만 울고 있는 거야. 이 날을 뭐라고 제목 붙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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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반어'야. 

다음은 '역설'을 연습해 볼게. 역설은 모순된 두 가지를 늘어 놓으면 돼. 

민우는 학생이다. (                                   )
(      )에 뭐를 넣으면 역설이 될까? 

>> 접힌 부분 펼치기 >>

근데, 왜 이런 표현을 하지?
강조하기 위해서야.
앞에서는 민우는 그냥 신분이 학생일 뿐이란 이야기고,
뒤의 학생이 아니란 것은 '일반 학생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거나,
'일반 학생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란 걸 강조하는 거야.  

이런 거지.
민우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냥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 깡패 두목이었다.
민우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예사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바둑의 고수로 소문이 났다. 

아빠는 선생님이셨다. (                              )  

여기 들어갈 말은 '보통 직업으로서의 선생님'을 뛰어넘는 훌륭한 점이 있거나,
희한한 점이 있는 경우에 '그러나 아빠는 선생님이 아니셨다.'를 넣으면 되겠지. 

강우식의 '어머니의 물감상자'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단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딱 보니 알겠지? 역설.
이 뒤에 무슨 말이 나올 거 같아? 어머니가 꼴통이었다? 그건 아니잖아.
어머니는 여느 물감 장수와는 다른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이래야지 강조지.
그 뒤는 이래.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여느 물감 장수는 물감 팔아서 먹고 사는 데 목적이 있을 뿐이지만,
어머니는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 

사람들의 마음이지.
싱그럽고 포근한 사랑의 마음.
그래서 어머니의 물감 상자를 통해 화자가 느끼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로 가슴을 물들이라"는 어머니의 정신이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화자는 역설을 쓴 거란다. 
평범한 말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보다 '역설'을 써서 '강조'하려는 의도지.

이제, 역설법 마무리.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승무) 

'곱다'는 '기쁘다'와 가까운 감정인데, '서럽다'와는 모순되지.
얼굴이 고운데 왜 서럽냐. 그치? 못생겨야 서럽지.
여승이 참 고운 거야. 그러니깐 그걸 본 사람이 맘이 아프대.
야, 너같이 이쁜 애가, 어쩌다 이렇게 비구니(여승)가 된 거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소리없다'는 '침묵'과 어울리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때 쓰던 말이었단다.
이미 결혼했던 화자는 과부인 상대에게 '들끓는 마음'을 '소리'로 표현할 수 없었지.
그래서 그 마음을 역설적으로 쓴 구절이야.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윤동주, 십자가)

윤동주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움을 쓴 시야.
'괴로웠던 예수'가 '행복한' 이유는 이해가 가니?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야 하니 괴로웁지만,
예수는 죽어서 인류를 구원했잖아. 그게 '괴로운 행복함'으로 표현된 거지.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한용운,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시간이 흐르면 남강은 당연히 흘러가지. 근데 왜 가지 않는다고 했을까?
제목에 힌트가 있지.
논개의 '애국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겠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할 때 (이형기, 낙화)

이별을 축복이라고 했어. 헐~ 그럼, 사랑하지 말고 맨날 이별해야 되게~ 그치. 
나무에서 꽃이 떨어져야 씨앗이 영글어 열매를 맺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이별을 통하여 '영혼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는 구절이야.

제일 어려운 역설 하나만 하고 오늘 수업 끝!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4연으로 된 시는 기승전결!
앞의 두 부분은 '마음의 풍경', 뒤의 두 부분은 '화자의 감정' 선경, 후정. 
강철과 무지개는 반대잖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강철, 실제로 있지도 않은 허상 무지개...
저항시인 이육사의 절정은 '일제 강점기의 절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나타낸 시란다.
아, 일제 강점기는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는데... 끝이야 나겠지.
어차피 폭력으로 강점한 것은 망할 수밖에 없으니... 무지개 같은 거야.
그런데, 그 일본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더럽게 강한 거야. 그게 '강철로 된 무지개'란다.  

이육사 나온 김에 절정을 다 한번 보자.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1연에서, 일제 강점기의 채찍질의 고통으로 북쪽 한계까지 갔어.
2연에서, 높은 고원까지 올라갔는데, 칼날처럼 좁은 곳이야.
3연, 이제 생각한단다. 발 디딜 곳도 없구나.
4연, 좌절하지. 일제는 엄청 센 놈이구나. 망하긴 망하겠지만, 쉽게는 안 망하겠구만~~ 

아빠가 인쇄해 준 걸 매일 2번 정도 읽어 보면 문학에 대해서 좀 가까워 질 거라고 생각해. 

다음 시간에는 1930년대 김영랑의 시로 만나자.    

잘자,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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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면서 간만에 학창 시절의 국어 수업이 떠올렸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 장래희망이 국어 선생님인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글샘님의 수업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중간에 축구 선수들을 언급해서 내용은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의 수상 네루가 자신의 딸을 위해서 편지 형식의 <세계사 편력>을 썼다면,
글샘님이 쓰신 글들은 아들분을 위한 <국문학 편력>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4 10:40   좋아요 0 | URL
어젠 몸이 피곤해 하루 잤습니다.
역시,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술집 주인 말씀)예요. ㅎㅎ
오늘 시간날 때 김영랑을 쓰죠.

양철나무꾼 2010-11-0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저런 뜻이란 거 오늘 처음 알았어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졸았나 보네.

아빠가,"잘자,아들,사랑해~"라고 한단 말이죠.
저희집에선 엄마가 하는데요~^^

글샘 2010-11-04 10:41   좋아요 0 | URL
새겨보지 않으면 쉬이 넘어가는 게 언어죠.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안 졸았어도, 밑줄 쫙 하느라고 기억에 남지 않았을 듯 싶네요. ^^
이제 사랑해~ 이런 말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아서요. ㅎㅎ

반딧불이 2010-11-0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시들은 향가, 고려가요, 시조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를 '신라 향가, 고려가요, 조선시조' 이렇게 각각 불러주면 각 시대와 장르가 더 잘 정리되는 않을까요?

글샘 2010-11-04 15:48   좋아요 0 | URL
그러기 어려운 게요... 향가는 고려시대에도 많이 만들어 졌거든요.
고려가요는... 고려와 조선이 단절된 국가였기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고려때 노래가 급조된 국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쓰이다가 훈민정음으로 창제되었구요.
시조도 고려말 사대부들이 부르기 시작했던 거여서 이름붙이기 좀 어렵죠.
 

시간 참 잘 간다.
벌써 11월이야.
이제 올해 달력도 두 장 남았구나.
민우도 이제는 마음을 단단히 먹겠다고 약속했는데, 요즘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구나.
또 아빠의 수업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오늘은 짧게 할게.
월요일 표정을 생각하면 ㅋㅋ 길게 하면 지치겠지? 

어젠 김소월과 <반어>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
반어가 뭔지 기억나니? 말해봐~~ 

>> 접힌 부분 펼치기 >>

김소월의 <진달래 꽃>과 <먼 훗날>에서 반어가 들어있었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도 그렇고. 

오늘의 시인은,
독립운동가이고,
꼿꼿한 스님인 분이란다. 누굴까? 호는 만해인데...  



<사랑하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 사랑하고 기리는 것은 다 님이래>

바로 한용운 스님이야.  '임의 침묵'이란 시로 유명한...  

스님의 <복종>이란 시를 우선 읽어 보자.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이런 걸 '통념'이라고 그래.
자유를 사랑하는 것이 통념이지. 복종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학교에서 자습하는 것보다, 집에 가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 바로 '자유'에 대한 사랑이잖아.
그런데, 이 사람은 통념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데 '달인'이야. 

한용운 스님은 스님이면서 모든 시가 '연애시' 같은 분위기란다.
사실 연애시집으로서 가장 뛰어난 시집은 '임의 침묵'이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어.
도 닦는 스님 같지 않지? ㅋ
복종이 달콤하고 행복한 거래. 정말 좋아하는 거지.
그런데, 사랑하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고 하면... 그건 안 된다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면, 당신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한계가 있어서,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기 어려우니깐...  

  

<스님이 님의 침묵이란 시집을 쓴 백담사란 절이야. 독재자 전두환이 도망가 있기도 했던...
스님의 호가 만해인데, 전두환 호는 일해였어. 10000배나 차이나지? ^^>

스님의 시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연인'으로 보면 <사랑 노래>가 되겠고,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린 조국'으로 보면 <애국 노래>가 되겠고,
'스님으로서 탐구해야할 진리의 대상'으로 보면 <종교적 노래>가 되겠지. 

여기서 표현 방법 하나만 공부하고 넘어가자. 어제는 반어 했으니 오늘은 <역설>로. 

역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한 문장 안에서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이 존재하는 논리적 모순을 뜻해.
사랑하는 사람이랑은 '함께 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해야 하잖아.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겠다... 이런 건 모순인 상황이지. 이런 걸 역설이라고 해. 

<복종>이란 시에서는 어떤 역설이 있을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유를 좋아한다. 나도 사람이다. 그럼 어떤 결론이 와야 하지?
당연히 <나도 자유를 좋아한다.>가 나와야 논리적이지.
그런데, 화자는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니깐, 한 문장 안에서 모순이 발생하지.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유를 좋아하고, 난 사람인데, 나는 자유 말고 복종을 좋아한다. 

그 모순이 근데 알고 보면,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면 더 감동적인 거지. 

한 문장 안에서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이 보일 때, 그걸 역설이라고 정리해 둬. 

그 예를 두어 가지만 들고 오늘은 끝!  

 

<사람들이 무슨 소원들을 빌면서 돌탑을 쌓았어. 계곡도 아주 시원하고 맑아 보이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정지용, 유리창 1) 

'찬란'은 '빛남, 아름다움, 즐거움, 기쁨, 좋은 일' 이런 말과 어울린다면,
'슬픔'은 '어두움, 어수선함, 괴로움, 불행함, 나쁜 일' 이런 말과 어울리는,
즉, 상반된 주장을 담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잖아. 그러니깐, 역설법! 
그렇지만, 찬란한 슬픔은, 지금 당장은 모란이 져서 슬프지만, 내년에 네가 필 때를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큰 찬란한 즐거움인지... 그러니까 역설법을 활용해서 강조하는 표현이 되고,

'외로운'도 '쓸쓸함, 슬픔, 괴로움,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 유리창이 주는 단절'에서 오는 것이고,
'황홀한'은 '반가움, 기쁨, 즐거움, 아들을 떠올린 고마움, 유리창이 주는 만남의 계기'에서 오는 것이니,
또 상반된 주장을 담은 표현이지. 이것도 역설법.
여기서도,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을 만남의 계기를 통하여 황홀한 경험으로 번지게 되니깐,
역설법을 통해서 아들을 생각하는 절실함을 강조하는 표현인 거야. 

내일 또 한용운 스님의 '임의 침묵'을 보면서 역설을 더 공부하자꾸나.
11월 계획 잘 세워서 실천하기 바란다.
D, V, P  잊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책상에 적어 놓고,
얼마나 하고 싶은지 매일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라는 말~ 나쁜 말은 아니지? 

오늘은 꼭, 민우의 소감을 이야기해 줘~
날씨가 추우니깐, 감기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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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어와 역설, 쉬운 설명과 예로 잘 이해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샘 2010-11-04 10:41   좋아요 0 | URL
ㅎㅎ 쉬운 수업이 가장 성공한 수업이죠. ^^ 젤 좋은 칭찬이네요.

부산의 준영맘입니다 2010-11-1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용어 설명 역시나 편안하게 와 닿습니다.
차근 차근 읽어가며 공부하는 재미 솔솔 ^^

글샘 2010-11-21 21:10   좋아요 0 | URL
쉽다고 하시니 제가 다행입니다. ㅎㅎ

주히님 2012-04-1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년동안 몰랐던 역설이랑 반어를 알게됬어요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