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놀토다.
지지난 주부터 2주간 등교하는 토요일이었는데 말이야.
토요일이 쉬는 날이 되면 누가 손해를 볼까?
회사 사장님이겠지.  
쉬는 날이 많으면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경기가 많이 풀리는 원린데 말야.
학교도 몇 년 후면 토요일은 쉬는 날이 되겠지. ^^
민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ㅋㅋ 

오늘은 1950년대.
전쟁 이후의 각박한 시대에 쓸쓸한 시를 쓴 박인환이란 시인 이야길 좀 할게.
우선, 그이의 유명한 '얼굴'을 읽어 보자.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얼굴) 

수미상관으로 나오는 이야기.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유행가 가사에 이런 말이 있더라.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되어 버리는 사연...' 

사람의 관계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지.
아는 사람도 '관심있는 사람'과 '별 관심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고...
<남>이란 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니,
'별 관심 없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해.
근데, 모르는 사람이야 나랑 관계가 없는 거니깐...
관계를 맺으면서 <관심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뭐, 이런 거 아닐까?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1950년대는 한국전쟁이 있었단다.
전쟁.
그 무서운 시대.
전쟁이 무서운 것은 <우리 편> 아니면 다 죽여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야.
바로 <남>이 그만큼 무서운 거지.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 전쟁이란다.  
전쟁 이전에는 <너와 나>보다는 <인간>이란 한 종족 안에서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큰 전쟁 이후에, <너>와 <나>는 남이지. 또 <너희 나라>와 <우리 나라>는 적대국이고. 

이런 시기에 유명해진 것이 <실존>이란 것이야.
일반적으로 <인간>은 이렇다... 말고,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실제 존재.
살에서 땀냄새가 나고, 발고랑내도 좀 나고, 밥먹으면 입냄새도 나는... 그런 실존.
그러던 사람이 폭탄 한 방 터지면... 온기가 사라지는 시체 토막이 되어버렸거든.
그런 시대의 노래야. '얼굴'

기를 꽂고 사는 일.
깃발은 이편 저편을 가르는 표시잖아. 청군과 백군. 미국과 소련... 이렇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념의 깃발이 다른 것.
그런 것이 인간 실존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 이런 생각이겠지.
기를 꽂고 산들 무엇하나. 

물빛(검은 색)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처럼 고상하게 살려고 해도 소용없어.
인간은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야.
총알 한 방이면 차가운 시체로 누워버리는 존재니깐.

사랑을 아는 나이 이전부터, 기다림부터 배워버린 불쌍한 실존.
밤새 비가 내리고, 눈물도 흘러 내리고...

가슴에 쌓은 돌단은...
뭔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인데,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단 한마디만 여운을 남기는데,
바람처럼, 신기루처럼, 아스라한 별처럼...
그대와 나의 관계는 허무할 뿐이었나봐... 

그래서 이 사람은 이런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어.
물음 : 도대체 왜 사람마다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을 갖게 된 걸까?
화자의 답 :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다음엔 아주 유명한 노래야.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한 번 읽어 보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이 노래도 수미상관이지.
이제 그 사람 이름은 잊은 것 같아도, 내 마음 속에 뚜렷이 남은 그 사람.
마지막에 <내 서늘한 가슴> 이렇게 촉각적으로 표현했구나.
서늘한 가슴~ 하니깐 어떤 느낌이 나니?
헤어짐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진 않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에 가슴 아픈 느낌.  
1970년대에 박인희란 가수가 노래로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한국도 전쟁 이전엔 농촌 사회였고 변화가 적은 사회였단다.
그렇지만 전쟁 이후,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시대가 되고 말지.
도시적인 삶이 주는 상실감, 그리고 그 추억과 회상...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가슴에 남는 느낌을 '정서'라고 한단다.
이 시의 정서는 <상실한 것들을 가슴에 남겨 두는 그리움의 애상감> 같은 것이지.

모든 것이 떨어지는 가을의 벤치 가에서
헤어져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슬픈 노래.

이 노래는 명동 어느 술집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읊었고,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는 에피소드가 함께 노래로 잘 알려진 작품이란다.

전쟁 이후의 상실감, 그리고 떠돌이(보헤미안)의 피난 경험, 헤어짐의 허무함 등이 드러난 도시적인 시야.
전쟁의 상실감을 드러내주는 시를 한 편 더 보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시의 제목은 '목마와 숙녀'란다.
목마는 <동화적인 순수한 꿈>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이고,
숙녀는 처음에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란 작가라고 생각해 보자.
근데, 버지니아 울프는 전후의 불안과 절망으로 얼룩진 신경증으로 투신자살한 영국의 여류작가란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제목이 <To the Lighthouse 등대로...> 이런 책이야...
시에도 나오잖아. 그치?
그러니까, 순수한 꿈은 어디로 가고 전쟁 후의 불안과 절망만 가득한가... 이런 것으로 봐도 좋겠다. 

주제는 딱 나와있어. <페시미즘>, 비관주의, 허무주의, 허무함. 이런 것.
그런 전쟁 후 허무주의를 잘 드러낸 사람들에게 <다다이즘>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 '다다'가 '목마'란 뜻이래.
어린 시절의 동화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잃어버린 참혹한 전쟁 이후의 시대.
다다이즘의 시대, 페시니즘의 시대... 

허무하니깐 뭐가 나오지? 술~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별은 보통 무얼 상징할까?
희망, 꿈, 소망... 이런 거잖아.
허무로 가득한 술병에 소망이 떨어져 내린대... 슬픈 시대.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은 '남성의 성기'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원시적 생명력의 건강함을 뜻하기도 해.
동물적인 생명력만 남은 전쟁 이후의 허무한 시대.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 시절.
쓸쓸한 가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전쟁 이후의 시절.
술에 취해 쓰러뜨린 술병.
목메어 우는 삶. 

이런 힘겨운 인간 존재를 <실존 주의>는 그리고 있단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화자가 가치있게 생각했던 것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무서운 상황...

그런 무서운 상황을 수용해야하는 화자는 슬프겠지.
주제는 <전쟁 이후의 허무와 고독으로 가득한 인간의 실존>,
또는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과 허무> 이런 것이 되겠다. 

'한 잔의 술, 버지니아 울프, 목마, 숙녀, 방울 소리, 가을, 술병, 별, 가슴, 소녀,
정원, 초목, 문학, 인생, 사랑, 진리, 애증의 그림자, 세월, 고립, 작별, 바람, 여류 작가,
등대, 불, 페시미즘, 희미한 의식, 바위, 청춘을 찾는 뱀, 잡지의 표지, 가을 바람 소리'

이런 시어는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시를 읽고 강한 서러움 또는 서글픔을 느낄 수 있는 시였을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라면... 

지금도 살기는 팍팍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이런 전쟁 직후에 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배부른 우리 <실존>은 조금 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자꾸나. 

즐겁고 보람찬 주말, 행복하게 보내자~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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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1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 박인환 시인의 시를 가사에 붙인 노래인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박인희라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난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글샘님이 소개된 두 편의 시는 우리나라의 명시 베스트에 손꼽을 정도로
유명한 시이지만, 요즘 문학 교과서나 문학 문제집에는 보기 드문 시인거 같습니다.
아마도 '실존' 이라는, 수험생들에게는 까다로울지 모르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과
내용이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요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시인과 작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는 이 박인환의 대표작인 두 시를 문학 수업 시간에 배워서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우연히 국어 선생님이 소개하게 되어서 알게 되었답니다. 예전에는 문학 교과서에 자주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노래가사로 만들 정도로 유명한 시인데도 요즘 성적 위주의 입시 사회라서
학생들이 정말 시 감상다운 감상을 하지 못한게 씁쓸하기만 하네요.
주말에도 좋은 시 감상했고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14 21:10   좋아요 0 | URL
70년대는 가난과 낭만이 좌절과 희망 사이에서 나부끼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시절에 어울리던 목소리의 박인희가 조금 떨리는 톤으로 읽어준 시들은 가슴에 깊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욕망과 가난의 간극이 갈수록 멀어지는 시대를 만나, 다시 박인희를 듣자니 가슴이 쎄~~합니다.

비로그인 2010-11-1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인환 시인 하면 아주 나이 드신 분들은 명동을 떠올리겠지만 제 또래는 아마도 가수 박인희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세월이 가면>을 노래한데다 <목마와 숙녀>를 낭송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니까요. 덕분에 오랜만에 옛생각에 젖어보았습니다^^

글샘 2010-11-14 21:10   좋아요 0 | URL
그래요. 이런 시를 읽으면, 옛 생각을 않을 수가 없죠. ^^
벌써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옛날 생각이나 하고... ㅋㅋ

gimssim 2010-11-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은 박인환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음미하게 되었군요.
학창시절, 무던히도 외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외람되게도 그럴듯한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한구절씩 슬쩍 인용했던 기억도 납니다.
특히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되기 싫은 까닭이다'를요.
가슴절절 끓었던 시절은 가고
인제는 정말 '국화 앞에 선 누님'의 세월 위에 서 있군요.
오늘 교회에 갔다와서 셀카로 이십여 장의 사진을 찍었드랬습니다.
화장을 하고 성장을 할 때가 주로 주일이어서...
적당히 살이찌고 주름진 아줌마가 프레임 속에 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만하면 됐다, 위로했드랬습니다.

글샘 2010-11-16 22:30   좋아요 0 | URL
ㅎㅎ
박인희의 그 목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청청하죠.
이제는 돌아와 국화 앞에 선 나이들이 되었지만,
옛 시절의 맑은 정신, 그 젊은 마음은 내 가슴에 남아 있죠. ^^

반딧불이 2010-11-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박인희도 생각나지만 박인환이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도 안갔다는 김수영이 더 생각납니다.

글샘 2010-11-24 21:08   좋아요 0 | URL
ㅎㅎ 김수영 사진 보면, 역쉬 꼴통같이 생겼어요. ㅎㅎ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 몰랐습니다. ^^
 

아, 요즘엔 수능 바로 코앞이라서 아빠가 많이 바쁘구나.
지난 번에 '공감각적 심상' 이야기한 김광균 이야기를 마저 하자. 

말만 했을 뿐인데,
눈 앞에 환하게 그려져 보이는 시각적 심상이나,
향기가 확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후각적 심상, 이런 걸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자.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데생)  

이 시는 제목 자체를 '데생'이라고 붙였구나.
데생은 '상세하게 묘사한 그림', '소묘' 이런 뜻으로 쓰이지.
연필로 슥슥 그린 그림이란 뜻인데, <서양의 언어>잖아.
이런 것을 '모더니즘'이라고 그래. 

이 시를 읽으면 눈 앞에 석양에 물든 평화로운 경치가 눈에 선하지 않니?
그 곱다란 노을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란다. 향기까지 나지. 향료를 뿌린 듯... 이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후각화 한, 공감각적 심상. 

비유도 멋지게 쓰인단다.
구름이 붉게 물드는 석양 무렵을, 보랏빛 색지 위에 한 다발 장미를 마구 칠한 것 같다,고 표현했으니...
그런데, 그 아름다운 경치에서 화자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는구나.
주제는 '해질 무렵의 쓸쓸한 경치' 이런 정도면 되겠지? 

1학년 국어에서 '정지용의 유리창'을 배웠잖아.
죽은 아이에 대한 아비의 마음을 쓴 노래.
감정이 절제되어있던 노래.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역설적 표현법을 썼던 노래. 

김광균도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모양이야.
하기야 190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으니 영아 사망률도 높았겠지.
정지용과는 아이 잃은 슬픔을 어떻게 쓰는지 보자.
이때도 감각적 심상을 잘 살려서 쓰는지 어떤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은수저)

시어는 쉬우면서도 허둥대는 화자의 심정이 보이는 듯 잡히지 않니?
아기를 화장해 뿌리고 왔겠지.
밥상에 우두커니 놓인 한 쌍의 은수저를 보고 화자는 눈물이 핑 고인다. 

밥상을 치우고 멍하니 누웠는데 바람이 부는구나.
바람 소리 속에 애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애기가 방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들창문을 열어보기도 한다. 

꿈이라도 꾸는지...
먼 들길에 애기가... 맨발로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도 않고...
그림자만 아른거리는 꿈 속. 
아, 어렸을 때 그 예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어떻겠니?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마음에 묻는다는 말이 있단다.
평생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가난해서 마음껏 먹이고 입히지도 못한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이 잘 느껴지지.
반짝이는 외롭게 앉은 은수저를 통해서 말이야.  

자, 다음엔 조금 긴 시를 하나 보자.
외국인 마을이란 '외인촌'이야.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뭍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외인촌 外人村)

6연으로 된 시다. 한 연씩 살펴볼까? 

우선 1연. '모색'은 저물녘의 햇빛이야. 하이얀 이유는 안개가 끼었거나 그렇겠지.
안개가 뽀얀 저물녘, 산간 마을에 마차가 한 대 지나가고 있어.
<하이얀> 배경으로 <파아란> 등불이 대조적이지? 

2연에선 산마루(꼭대기)에 선 전신주 위로 구름이 빨갛게 솜사탕처럼 불타고 있어.
1연과 함께 한 장의 그림인데,
1연에선 <하이얀> 배경에 <파아란> 등불이고 2연의 바다쪽에선 <새빨간> 노을이 두드러진다.

3연에서,
오르내리는 창문을 단 집들은 한국식이지 않지?
바로 외국인 마을이 보이는구나.
돌다리 아래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4연에서,
화원지는 꽃밭이야. 벤치는 역시 '이국적'이지? <모더니즘>
시든 꽃다발이 흩어진 꽃반의 벤치.
이런 건 보이는 건데, 거기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이 흩어져 있대.
웃음은 들리는 거잖아. 청각적 심상.
근데, 흩어져 있다고 했으니깐, 공감각적 심상이지?
청각의 시각화~ 이제 술술 나오겠지? 공감각적 심상과 청각의 시각화 이런 거. 

5연에선 외국인 묘지가 나오는구나.
한국식 묘지는 동그스름한 밥그릇같잖아. 근데 외국인 묘지는 십자가가 돌 위에 있겠지?
이국적인 모습의 외국인 묘지에 밤이 되어 별빛이 비친다.

마지막 연.
공백은 하얗게 텅 빈건데 환한 아침이 된 모양이고, 하늘에 높직하게 걸린 시계가 열 시가 되니, 
언덕 위 낡은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린단다.
근데, 또 공감각을 쓰고 있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종소리를 들었는데, 분수처럼 흩어진다고 했으니 청각의 시각화!

공감각적 심상은 김광균 시만 공부해도 충분하단다.
유명한 것이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란 시에 나오는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란 구절이 있단다.
태양을 봤으니 시각인데, 태양이 울리는 것처럼 표현했으니 시각의 청각화!가 되겠지? 

외인촌은 '외국인 마을을 보고 느낀 감상'을 쓴 시야.
시간이 저녁~밤~아침으로 흐르고, 다양한 감각적 심상이 쓰이고 있지.
또 시적 허용, 시적 자유가 해당되는 시어가 몇 있단다.
하이얀, 파아란, 가느단, 시들은... 이런 말들.          

다음엔 '눈오는 밤'의 심사를 그린 '설야'란 시를 한 번 보자.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 

이 시는 멋진 비유가 돋보이는 시로 유명하단다.
퍼얼펄~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한밤중...
화자는 마루 위에서 그 눈이 내리는 걸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지. 

우선, 한밤중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을 보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같다고 표현했어.
화자는 무슨 소식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겠지.

처마가 있는 걸 보니, 한옥의 마루쯤에 기대서 있는 사람이야.
처마 밑에 호롱불은 마당에 외등 역할을 하는 등불이지.
호롱불 가늘게 밝힌 마당에 흰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서글픈 옛 자취>인 양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무슨 소식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데,
지금은 사라진 서글픈 옛 자취와 관련있는 소식인게야.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데, 소식은 없고 서글픈 옛 생각에
<가슴이 메>이는구나.
그래서 허전한 마음에 등불을 하나 더 켜들고
혼자서 밤 깊은 시각에 뜰에 내려간다. 

잊지 못할 옛 사랑을 떠올리는 것인지,
어디 신춘 문예에라도 응모를 해 두고 입선 소식을 기다리는 것인지,
일제 강점기 멀리 끌려가신 임을 기다리거나,
집나가서 소식이 없는 자식이라도 기다리는 것인지...

뜰에 내려가니 눈이 내리는데,
마치 그 소리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같다고 표현했어.
이 대목을 가르치면 애들이 야하다고 난린데...^^
이 소리는 풀을 정성껏 먹인 빳빳한 한복 치마가 접히듯 나는 소리를 뜻하는 거야.
눈이 내릴 때 그런 '사르락 사르락' 소리가 난다는 건,
함박눈이 아닌 싸라기눈일 수도 있겠구나.
바람이 안 불 때 습기 많은 공기가 엉킨 눈은 덩치가 큰 함박눈이 되고,
습기가 적은데 바람이 많이 불어 엉킨 눈은 싸라기눈이 되기 쉽지. 

희미해지는 눈발을 본다.
그 눈은 마치 <잃어버린 추억의 조각>같대.
그리고 <싸늘한 후회의 추억>이 마음에 떠오르는 모양이야. 

뭔가 그 기다리는 소식, 잃어버린 추억은 화자에겐 회한(후회하는 감정)을 남긴 일인가 봐.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는 그런 사연.

흰 눈은 '환한 빛을 내지도 강한 향기를 뿜지도 않는' 존재인데,
차단한(차가운, 단정한) 의상을 입은 존재처럼 쌓이는데,
화자의 <슬픔>이 그 위에 서리서리 쌓인대.

눈내리는 밤, 화자는 눈을 통해서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구나.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회포>라고 그래.
회포에 잠긴 화자는 뜰을 거닐면서 쓸쓸하고 슬픈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고...  

사람이 그럴 때가 있잖아. 
바람불고 비가 오면 마음이 쓸쓸할 때...
그런 마음을 보통 시간이 지나면 잊기 쉬운데,
시인이란 사람들은 이렇게 그 순간의 마음을 <시어>로 사로잡아 두는 사람들이구나.
누구는 <사진>으로, 누구는 <그림>으로 자기 마음을 남기는 법이지. 

아빠는 이렇게 글로 마음을 남기곤 한단다.
민우도, 네 마음을 무언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즐겁고 신나는 주말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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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2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이 마음을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을 잡아둘 수는 있는 거군요.

마음을 무언가로 남길 수 있는 방법,기억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0-11-13 13:59   좋아요 0 | URL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표현하고 잡아두려는 시도 정도야... ^^

반딧불이 2010-11-2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 한 것 같아요. 문득 김광균이 실제로도 이렇게 감각적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글샘 2010-11-24 21:06   좋아요 0 | URL
김광균 시인 사진보면, 별로 감각적일 거 같지 않게 생겼어요. ㅋ 술꾼이고 둔하게 생겼는데, 시어는 엄청 감각적이죠. 저 데생~ 보면...
 

자. 오늘은 시험에 잘 나오는 시인, 김광균을 공부해 보자.
오늘 시 간단하게 두 개만 하고, 다음 시간에 더 해야 할 것 같아.
김광균 시가 시험에 많이 나거든. 

그럼, 김광균 시가 시험에 잘 날 만한 요소가 뭘까?
우선, 그의 시는 <이미지즘> 시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감각적 심상을 활용하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공감각적 심상'도 많이 등장하지.
우선 '가스등'을 한자로 적은 표기, '와사등'부터 읽어 보자.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녀 있다.
내 호올노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애를 접고
느러슨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저저
찰난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의 벙어리 되여 입을 담을다.

피부의 바까테 숨이는 어둠
낫서른 거리의 아우성 소래.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석기여
내 어듸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왓기에
기일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듸로 어떠케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니여 잇다. (와사등) 1939년 

한글 맞춤법이 1933년에 처음 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땐 전혀 교육되지 않을 때였으니, 그 당시 표기엔 이렇게 일관성이 없기도 하구나. 

1연과 5연은 수미상관이지?
이 시에서 '차단---한' 하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단어야.
'차가운' '차단된' 이런 정도의 뜻으로 쓰인 말이겠지.
이렇게 화자가 만들어 쓸 수 있는 용어를 '시적 허용, 시적 자유'라고 한단다. 

차가운 가로등이 '텅~ 빈(쓸쓸한 분위기겠지?)' 하늘에 걸려 있어.  
화자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를 모르겠대.
농촌에서야 해지면 집으로 가는 것이지만, 쓸쓸하고 고독한 도시 생활이 보여지지. 

긴---여름 해 황망히 날애를 접고
느러슨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저저
찰난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의 벙어리 되여 입을 담을다.

2연을 보면, 화자의 '시각적 심상' 활용이 잘 드러난다.
길던 여름해가 지는 모습을 '해가 당황하며 급하게 날개를 접'는다고 했지.
시각적 감각에 보이는 것 같잫아. 해가 주저주저하면서 지는 모습이...
늘어선 고층 빌딩이랬자, 그 당시엔 3층 정도 됐겠지.
건물들도 마치 <묘비석> 같다는구나. 생기가 없고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
찬란한 야경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잡초처럼 헝크러져 있고,'
화자는 생각이 멈춘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고 있대. 

전체적으로 도시의 고독한 분위기가 '감각적(시각적)'으로 그려지고 있지. 

피부의 바까테 숨이는 어둠
낫서른 거리의 아우성 소래.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다음 3연은 '공감각적 심상'이 드러난 부분이야.
어딘지 찾을 수 있겠니?
'스미는 어둠'이야.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어둠은 보이는 거(시각)잖아. 피부에 스며드는 것은 촉각이겠지.
근데 이 사람이 피부로 느낀 걸까, 눈으로 본 걸까?
어둠은 본 거잖아. 그걸 피부에 스며든다고 과장해서 표현했으니,
<시각의 촉각화>라고 하는 <공감각적 심상>이 쓰인 거란다.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이런 것은 너무 '감상적'이라고 해.
'음악 감상' 이런 감상이 아니라 '감각을 아프게 하는 감상', 영어로 센티멘탈...이라고 하지. 
도시의 경관을 그리는 시를 <모더니즘> 시라고 하는데 좀 센티~한 부분이 들어가서 분위기를 죽이네.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석기여
내 어듸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왓기에
기일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생각나지?
많은 사람 속에서 더 외로운 법이지. 남들은 다들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난 뭔가~ 싶어서 말이야.
화자의 마음은 '비애'와 '어두움'이구나.

전체적인 주제는 '도시 문명 속에서 느끼는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정도가 되겠지. 
1930년대 후반, 어두운 도시의 문화를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는 시란다.

이 시가 3년 전에 수능에 출제되었는데,
수미상관의 특징 찾는 쉬운 문제,
그리고 <슬픈 신호>, <늘어선 고층>,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이 다섯 개 중에 아래 설명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찾는 문제가 출제 되었어.

서정적 자아는 세계를 내면화한다. 이런 작용으로 서정시에서 자아는 상상적으로 세계와 하나가 된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의 문명사회에서 자아와 세계의 조화나 통일은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근대 이후의 서정시에서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분열에 대한 자아의 반응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
이 자주 나타난다. 

답은 당연히 두 번째 것이었지. 어렵지 않지?
수능에서 어려운 시가 나오면, 문제에서 해설을 많이 붙여 두니깐, 긴장할 필요 없이 즐겁게 풀면 된다. 

 

다음엔, 김광균의 <추일 서정>을 한번 읽어 보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ㅡ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 - 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우러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추일서정 秋日敍情) 1940년.


제목 추일 서정은 '가을날의 정서를 쓴다'는 뜻이지. 

폴란드의 도룬 시, 전쟁으로 인한 황폐와 망해버린 정부의 쓸모없는 지폐...
이런 역사적인 정황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감각적으로 피폐함을 느낄 수 있단다. 

이 사람이 본 것은 폴란드나 지폐가 아니야.
'낙엽'을 본 것 뿐이지.
그 '낙엽'을 무엇에다 빗대냐면,
망해버린 폴란드의 쓸모없는 지폐에 빗대는구나.
그저 낙엽이라고 하는 것보다 '지폐' 쪽이 훨씬 눈에 잘 보이는 것 같다. 

구불구불한 길을 '구겨진 넥타이'처럼 비유하고,
햇빛이라고 하면 될 것도 '햇빛(일광)의 폭포'라고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오후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리는데(현대적인 모~던한 분위기, 모더니즘)
기차 연기는 '담배 연기'같다고 비유하네. 

포플라 나무, 공장의 이빨같은 지붕, 철책 모두 현대적인 소재란다.
셀로판지도 마찬가지지. 

이 부분까지는 그야말로 <가을의 풍경>이란다.
앞부분에서 '풍경'을 노래하는 <선경>
그럼 뒷부분에선 뭐가 나오지?
<후정>

자욱 - 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우러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어떤 감정이 느껴지니?
풀벌레소리 가득한데, 혼자서 마음이 바삭 부스러질 것 같은 외로움.
그래서 별 의미도 없이 돌 하나 던져 본다.
돌이 반원을 긋고 떨어지는 모습조차 <고독한 반원>이 되었구나.
뒷부분의 감정은 <외로움, 애수> 이런 거란다. 

자,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의 공감각적 심상을 하나 보자.
이 사람의 '감각'이 느낀 것은 뭘까? 풀벌레 소리를 들은 거야.
그런데 '자욱한 풀벌레 소리'라고 했으니까,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거지? 청각의 시각화.
그런데, 그 <자욱한 풀벌레 소리>를 발로 찼다고 하는구나.
차는 건 촉각화잖아. 이 표현은 (<청각을 시각화>한 것을 다시 촉각화>)하는 공감각적 심상을
겹쳐 쓰는 방법을 쓰고 있지. 

그리고, 외로움도 생각을 어쩔 수 없어 허공에 돌팔매 하나 띄웠는데,
기울어진 풍경 저쪽으로 고독한 반원으로 떨어져 가는 돌의 모습을 통해 외로움을 드러내는 시각적 수법을 쓰지. 

자. 이 시의 주제는?
가을날의 애수 어린 풍경과 고독감, 이정도가 되겠지? 

오늘은 김광균의 시 두 편을 통해 <감각적 이미지>를 다양하게 쓴 시를 읽었다.
어두운 시대를 보여주는 방법도 다양하지? 

사람은 언제 어느 시대를 살든 자신이 작아 보이고 쓸쓸하게 느낄 수 있단다.
특히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을 땐 그렇지.
이런 말이 있어.
사람은 희망만으론 살 수 없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더욱 살 수 없다.
힘이 빠질수록, 뭔가 희망을 찾아서 붙들고 사는 것이 삶의 '원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민우도, 그 희망 하나 꼭 잡아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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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1-0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창작블로그 글인데도 오늘은 드래그가 되는 걸요. 고등학생 조카 있으면 저도 매일 인쇄해서 챙겨주고 싶어요.^^

글샘 2010-11-09 22:27   좋아요 0 | URL
지금은 또 안 되네요. ^^ 고딩에게 좀 도움이 될는지요. ^^

반딧불이 2010-11-1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각이미지를 배울 때 들었던 '멀리서 들려오는 푸른 종소리'인가 하는 시구가 생각나요. 소개해주신 시를 보니 시인이 공감각 이미지를 아주 즐긴것 같네요.

글샘 2010-11-11 13: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김광균 시인 하면 공감각적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 외인촌)와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박남수, 아침 이미지)가 대표적이죠.


cyrus 2010-11-1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균 시인은 정말 공감각적 이미지 표현의 달인 같습니다.
같은 시인이 쓴 <설야>라는 시도 참 좋고요. 눈이 오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표현이 참 기발하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에 그 구절 때문에 학생들이 시의 아름다운 무드를 깨곤 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이 구절,, 야하지 않은데 말이죠)
저는 김광균의 시 중에서 <설야>를 아름다운 시로 꼽고 싶습니다.

글샘 2010-11-11 13:40   좋아요 0 | URL
설야... 멋진 시죠. 가슴이 설레는 그런 허전함... 아름다운 시입니다.

2014-06-28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한국 현대시사상 가장 시를 잘 쓰는 시인 서정주에 대해 이야기하자.
더불어 <형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거야.

오늘의 시는 교과서에서 배운 서정주의 <추천사>다.
난 첨에 저게 레커멘데이션...인줄 알았어. 위 사람을 ~~ 해서 추천한다는 이야긴 줄.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랬어.
근데 읽어보니, 웬~ 향단이? 방자전 찍나? 
우선 한번 읽어 보자.  



 

추천사 -  춘향의 말 1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우선 제목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자.
추천 鞦韆은 '그네'를 한자로 표현한 거야. 요즘 말로 옮기면 '그네뛰기 노래'쯤 되겠지. 


그런데 보통 시들은 <화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는 청자가 상정되어 있는게 특징.
춘향의 말 - 이라고 해서, 춘향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라는 거지. 청자는 향단이로 드러나 있어.
근데, 서정주는 도대체 왜 춘향이가 향단이더러 쫑알거리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 했던 걸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시의 주제는 인간의 한계 의식과 좌절이란다.
그네가 영어로 swing 이잖아. 근데 그 그네는 '진자 운동'을 하기때문에, 딱 갈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어.
우리가 그네를 재밌게 타는 이유도, 그네가 갈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
그네를 타고 '토이스토리 버즈'처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가버린다면, 헐~ 무섭겠지?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너무 딱딱할 거 같으니깐,
만만한 옛날 이야기, 그것도 가장 유명한 리바이벌의 대명사,
춘향전에 이야길 집어 넣기로 한 거야.
그렇게 하면 일단 추상적 이야기가 <비주얼>로 떠오를 수 있으니까 말이지.
소나기에서 소녀가 죽을 때까지 입고 있었다던, 분홍 스웨터와 남색 스커트가 바로 형상화야.
이야기보다 머릿속에 남는 <그림>, <시각적 이미지>.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형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 그런 것을
전형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보여주는 것
을 <형상화>라고 해.
그냥 일제 강점기에 징용가는 일은 무서운 거였어...
이렇게 말하는 것 보다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에서처럼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이야기를 늘어 놓는 일이
훨씬 독자의 머릿속에서 끔찍하단 생각이 강한 것 처럼 말이야.
 

일단은 춘향이가 그네 뛰면서 향단이에게 하는 말이다...
이렇게 제목을 붙여 두고 나니깐, 형상이 보이잖아. 그지? 


자. 1연. 일단은, 그네가 한계점을 향해 출발~~
그 출발 동력은, 향단이가 미는 힘이지.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먼'을 머언~~ 이렇게 길게 발음한 것은, 저 머언 바다를 향한 기대감 이런 것일까?
향단이에게 그넷줄을 밀라고 하는 춘향의 시선은 어디로 가 있지?
머언~~ 바다를 향하여.
거기는 이도령이 있을지,
서울이란 도시가 있을지,
무지개 꿈이 있을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춘향의 눈은 머언 바다를 향하여 꿈에 가득찬 표정인 것이 보이지?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기때문에 그래. 


자, 아빠가 지방에서 공부하다가, 대학을 서울로 갔어.
내일이 입학식이야.
향단아, 머언 바다고 배를 내어 밀듯이... 그런 기분 이해가 가니?
머언~~ 바다, 이상향에는 무언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가득한 기분을.


2연에서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 베갯모에 놓이듯 풀꽃더미, 나비새끼 꾀꼬리들, 
이런 소재들은 '현실'이지.
가난한 우리집,
늘 하루 벌어먹기 힘든 삶에 지친 어머니,
시궁창으로 돌아다니는 탐욕스런 쥐와 함께,
늙고 병들고 아픈 자들로 가득한 이웃들이 있는 현실 말이야.
베갯모는 베개 옆에 수놓인 걸 이야기해. 옛날 동그란 베개의 양옆, 마구리라고 하지.
현실은 너무도 맘에 안 드나 봐.
엄마는 술집하는 기생이지.
아버지란 존재는 뭐, 성서방네 양반이랬는데 알지도 못하고.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춘향이의 신세도 참 환장하게 더러운 거지.
암만 얼굴이 반반하고 머리가 좋으면 뭐해?
아이큐가 160이면 뭐해. 멘사에서도 천민 사절!!인데...
양반만 알아주던 더러운 세상 아니었던가, 조선은? 정말, 국가가 해 주는 게 뭐가 있었냐고. 


얼마나 현실이 싫었던지, 1연에서 그냥 <내어밀듯이>... 가 2연에선 <아주 내어밀듯이>가 되었구나.
그만큼 벗어나고픈 소망이 컸던 거겠지. 


3연.
이제 춘향이는 서울로 간단다. 대학도 간다. 꿈으로 가슴이 벅차지.
서울로 가서 대학 나오고 하면 세상엔 완전히 별천지로만 여겨질 것 같지.
'저 하늘', '채색한 구름' 이 있는 이상향으로
울렁이는 가슴으로 올라가려고 그래.
현실에서는 '산호'와 '섬'에 얽매이지만, 나의 미래는... 행진, 행진...만 있을 것 같지.


그러나. 4연.
춘향이는 급좌절해. 왜요?
그네를 타고 있기 때문이지.
춘향이는 이도령이란 양반집 자제랑 결혼해서 신분 상승을 꾀하고 있던 여자 아이였어.
그래서 계속 올라가고 싶었겠지만,
그네는 계속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날아갈 수 없어.
버즈도 결국 중력의 작용을 받는 토이에 불과했잖아.
그네에 매여 있지,
중력은 그만 잡아 당기지,
서쪽으로 가는 달,
그를 따라 가야 이상향이 나오는데,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단다.
좌절하고. 눈물나지.
왜, 남들은 다 되는데, 난 안 되는겨? 어무이~~~  이런 느낌이 4연이야.


마지막 연.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는 건, 이것도 한계가 있잖아.
파도가...
얘도 무한한 공간 저 너머까지 못 가잖아.
그렇지만, 계속 밀어 올려달라고 부탁해.
향...단... 아... 처절하죠.
힘든데,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티려는 걸, 수능 용어로 <의지적>이라고 그러지.  


자, 이 시 전체를 두고 보면.
1~3연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춘향이의 모습이 보여.
그러다 4연에서 급 좌절하고,
5연에서는 한계를 알면서도 의지를 보이는 춘향이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

그렇다면, 서정주 시인이,
한국 시 역사상 시를 가장 잘 썼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그 시인이 여겼던 '한계'는 어떤 것일까?
뭐, 그 사람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우선, 자기 시에 대한 한계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 일부> 

 이것도 서정주 시인데, 서정주가 추구하던 바를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어.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낫다>는 건,
세상의 여러 일 중, 자기는 시 쓰는 일을 최고의 업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겠고,
근데, 또 그네를 타지? ^^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ㅋㅋ
잘 달리는 말, 천리마래도... 바닷가에 가서는 멈출 수 밖에없지.
그래서 꽃,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 가서 신신 당부를 해. 문 좀 열어 달라고~~~.
근데, 말투 보니깐... 열릴 거 같지 않지? ^^ 


그러면, 서정주의 '한계 의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서정주처럼 언어를 부려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말이야.
그의 아름다운 언어 한 번 볼까? 어째서 한국 시역사상 최고의 시인이란 칭찬을 듣는지...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 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귀촉도, 전문)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동천, 전문) 

<귀촉도>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한탄, 줄여서 '회한'으로 가득한 여인이 노래야.
여인이란 근거는,
2연에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이냥 베어서,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을 올올이 아로새겨서... 이런 거.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아, 이런 서러움을 누가 표현이나 할 수 있다니?
'귀촉도'란 소쩍새 우는 소리의 애절함을 나타낸 말이래.

<동천 冬天>도 마찬가지야.
임의 눈썹같은 가느단 초승달이 겨울 하늘에 매달렸어.
초승달 보고나 생각하는 임의 눈썹...
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그랬더니 하늘을 날던 새도 그걸 아는지 비껴가는구나... 또 눈물나지. ^^    

이 시들은 소리내어 읽어보면, 입에 착 붙는 느낌이 있어.
민요조의 3음보거든.
한 행을 세 마디로 나눠서 읽어볼 수 있으니. 꼭 소리내어 낭송해 봐.



그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도 내가 좋아하는 시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읍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닥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 뒤안 툇마루>


 
그 나라의 시인은 그 나라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야 하는 법이야.
푸근한 정이 살아 넘치던 외할머니 뒤안 툇마루의 먹오딧빛 툇마루,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얼굴마저 들이비치던 그 추억이 서정주의 시로 인해 남아있으니 얼마나 아름답니?
한국의 정,
이러면 무슨 초코파이도 아니고, 형상이 없잖아.
근데, 서정주가 군지렁거리면서,
자기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좁은 툇마루가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이면, 거기로 갔더라는...
꿈과 전설이 가득할 것 같은 공간이 오롯이 형상화되고 있지.
이런 것이 좋은 시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  

그런 그의 한계 의식의 한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 그의 <자화상>이란 작품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한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한국 사회는 세계사적으로 가장 최근까지 '노예제'가 실시되던 국가였대.
갑오개혁(1894)으로 공식적으로 폐지된 양반-상놈 제도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위세를 펴고 있지.
지금도 누구누구 이름을 대면, 뭐, 해주 최씨가 어떻네, 전주 이씨가 어떻네 족보를 외워대는 사람도 있어.
족보가 뭐야?
그게 바로 연좌제란다. 법으로 금지하는 연좌제. (가족을 묶어서 벌주고 상주는 제도) 

88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지.
그러고 나서 노동자들이 한 일이 뭔지 알아? 집집마다 족보 만들기 였어.
기백 만원 주고 사는 거.
그래서 지금 집집마다 족보 없는 집이 없어. 다 돈 주고 산 족본데...
한국 사회는 이런 사회야. 아직도 '쌍놈의 새끼'가 '개새끼'보다 못한 욕인 사회.
자기는 양반 자식이 아니고, 그래서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살아 온 것이란다. 

그래서... 그래서 권력을 가진 세계로 편입하려고 아무리 그네에 올라 발을 굴러도,
그네는 매번 뒷걸음질치곤 했던 모양이.
그래선지, 그는 '뉘우치지 않을 짓'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단다. 진짜 그의 한계지. 

그래서, 서정주가 또라이 소리를 듣기도 해.
아무리 재주가 좋으면 뭘 해?
정신머리가 오락가락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근데 친일파 단죄 문제, 이건 쉽지가 않아. 나도 일제 강점기였다면 아마 친일파 했을 지 모르거든. ㅠㅜ
독립 운동가 돼서 집안 망하는 거보다, 친일파 해서 입신양명하는 것이 사실은 거의 모든 집안의 숙제였지.
이런 현실에서 그냥 욕만 퍼부을 순 없는 거 같아.)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살 먹은 사내/(…)/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이것이 <오장 마쓰이 송가>란 건데.
조선 출신 학도병 '마쓰이 히데오'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영국, 미국 항공모함을 향해 처박혀 죽는 영웅이 된 것을 칭송하는 노래지.
시대가 어두웠으니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이건 좀 심한 거였어.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완전 사기였단다. 평화의 댐)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서정주(1987. 1)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ㅋㅋ 

1980년 광주에서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쿠데타를 일으킨 자에게...
이런 미친 짓을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지. 

또, 그의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국화 옆에서>도 사실은
천황폐하를 알현하는 신하의 마음으로 썼던 거라는 비판도 힘을 얻고 있어.
일본 왕가의 문장인 국화.
일본의 시조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이미지라고 보기도 하지.
그의 시가 워낙 미친 아낙 널 뛰듯, 럭비공같은 진로를 보여주다 보니깐, 이런 욕도 먹고 있는 거겠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 

이 유명한 시는 '원숙한 삶을 위한 고통'을 쓴 시라고 하는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는 데도,
봄부터 소쩍새의 울음이,
여름엔 먹구름 속 천둥의 울음이 필요했던 거란다.
이제, 가을이 되니,
머언 먼 인생의 젊음을 뒤안길로 돌아온
내 누님같은 원숙한 아름다움을 지닌 국화가 피었어.
차가운 겨울이 되었는데도 피어있는 국화.
무서리 속의 국화.

사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의 국화는 '오상고절'이라고 절개의 상징이었거든.
그것도 강인한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다음 시조를 보면 그런 걸 알 수 있지.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시절이 험악해도,
미친 짓은 안 하는 게 좋단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이 말.
한번 곱씹어 보자꾸나.
즐거운 일주일~ 힘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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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투리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0-11-09 13:20 
    * 글샘님 시 공부하다가 인터넷에서 찾은 단어들  아랫 것들 중에 몇개나 알고 계시나요? - 늘총박이, 어벅다리, 육바라기, , 털메기, 따배기, 세코짚신, 네날박이, 탑골치, 노파리, 결은신, 죽신, 짤짜리, 쭉신 - 그 외 ; 감발, 신발한다, 신발차, 모숨, 총, 들멘다, 신들메 또는 들메끈, 운두, 우너리, 달창, 재리, 사갈
 
 
cyrus 2010-11-0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수업은 읽다가 중간에 웃기도 했습니다.ㅎㅎ
저도 학창 시절에 <추천사>가 그냥 추천하는 글인줄 알았다는,,,^^;;
재미있었습니다. 미당이 친일 시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다보니
그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도 친일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론도 언급되기도 하는군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오늘도 문학 수업 잘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의 시인이 누군지
기대가 되네요.

글샘 2010-11-09 18:24   좋아요 0 | URL
cyrus님 꼭 학생 같아요. ㅎㅎ 읽고 부지런히 댓글도 다시고... ^^

cyrus 2010-11-10 17:20   좋아요 0 | URL
글샘님의 표현 방식대로 말하면, 저는 지금 '큰' 학생입니다. (재미 없죠^^;;)
글샘님의 문학 수업을 읽으면 예전 학창 시절의 국어 수업도 생각나면서도
글샘님에게 문학 수업을 받게 되면 수업도 재미있게 듣고, 성적도 더 좋을 것이라는
미련도 드네요.

2010-11-09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1-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질문 있어요. 달이 지는 서쪽을 이상향으로 보는건 왜 그런거에요?

글샘 2010-11-09 18:26   좋아요 0 | URL
서쪽을 보통 극락, 서방정토라고 보는 불교적 해석의 영향 아닐까 합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에서도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나오니까요.
 

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
다음 한 주도 보람차게 보내자꾸나.
일요일은 푹 쉬고, 월요일에 슬슬 계획을 짜서 시작하는 조금은 느린 삶도 좋을텐데...
현대는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마음만이라도 좀 느긋하게 가져 보자. 

오늘은 '유치환' 시인의 시를 몇 편 살펴 보자.
유치환의 '깃발'은 배운 적 있니?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시를 썼단다.
그런데 처음에 '역설'이 쓰였지? 소리없는 아우성.
전에 역설 할 때 설명했는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던 한 남자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은 들끓고 있는... 그런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야. 

영원한 노스탤지어... 향수, 돌아갈 수 없는 향수란 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해선 안 되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느껴질까? 

그렇지만, 불륜은 아니래. '순정'이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맑고 곧은' 깃대 끝에서 깃발은 나부끼다가,
백로가 날개를 펴듯, '애수(슬픔)'가 펼쳐진단다.
깃발을 보면서 슬픔이 가득한 마음이 된 거지. 

아아,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감탄사가 많이 나온다 그랬지? 전통적으로...
마지막 두 줄은 읽기 좋게 음률을 맞춰 두었지. 몇 음보인지 읽어 보렴.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4음보로 읽을 수 있겠지? 

이 시의 주제를 보통 '이상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라고 참고서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이성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가깝단다.
유치환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시라고 봐야지. 

자, 깃발은 화자와 어떤 점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일까?
깃발은 깃대에 묶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못가는 존재지.
화자도 역시 결혼한 사람이란 관습에 묶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도.
깃발이나 화자나, 그 묶인 것만 아니라면, 어딘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유사성이 있지.
그래서 <화자의 처지 = 깃발> 이렇게 표현한 거란다. 이런 것이 은유법이지.
유사성에서 이어진 두 사물의 연결.
전에 <상징>은 마법적으로 이어진 거라고 했잖아.
'햇볕'은 사랑이고, '어둠'은 악이라는 이런 게 상징이야.
잘 알아 두렴. 은유법. 

은유법, 그러면 제일 많이 들은 설명이 있지?
바로 A=B다. 그러면서 나오는 예가, '내 마음은 호수다.' 이거지.
그런데,  이렇게 하나 물어볼게.
내 마음은 호수다. 내마음과 호수 사이에 뭔가 유사점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잔잔함? 고요함? 조용함?

그건 답이 아니야.
내 마음은 호수~란 비유의 뜻은 그 뒤를 다 읽어봐야 돼.
은유법은 무조건 <유사점>을 찾아내야 되는 거지.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김동명, 1연)

어때?  호수와 내 마음의 유사점이 뭐지?
거부하지 않음이야. 이런 거지.
내 마음은 호수야.
언제나, 언제까지나... 당신의 마음만 내키시면, 마음을 내서 노저어 오시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가득해서,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겠어요~
이런 사랑의 표현.  

이제 비유법, 은유법을 좀 알 것 같아?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빗대어 표현하는 거란다.
내가 잘 드는 예로, '사랑은 피자'란 게 있어.
사랑은 피자와 뭐가 유사할까?
피자 위의 토핑은 먹기 싫은 거 골라 내버리면 피자가 아니잖아.
그건, 피자 도우지~
먹기 싫은 토핑도 같이 먹어야 맛이 나듯이, 사랑도 입맛에 맞는 상황만 즐긴다면,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지?
그런 비유라면, 사랑은 피자다!
사랑과 피자는 둘 다 <입맛에 맞을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견디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다고 봐야겠지.  

다음엔,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한 번 읽어 보자.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 어떤 것이 더 행복할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참 행복할 거야.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하대. ^^
그 설명을 아래에서 붙여 두었겠지. 

그래서 화자는 우체국으로 가지.
자신의 사랑을 <주는> 행위로 편지를 보내려고 말이야.

3연이 아마도, 편지의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세상에서 만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은,
바람결에 나부끼며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피어난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같다~는 연애 편지. 
화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느낀단다. 
주제라면 이런 거겠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복> 정도. 

 

이 꽃이 진홍빛 양귀비 꽃이야. 자기의 사랑과 양귀비 꽃을 같다고 했으니, 유사성을 찾을 수 있겠지?
<연련(강하게 정을 느끼는)한 사랑> <강렬한 사랑> 이런 것 아닐까? 

앞의 두 편은 유치환이 <사랑>을 노래한 시였다면,
이제 살펴볼 세 편은 유치환의 <생명력에 대한 갈구>에 대한 시들이야.
우선 <생명의 서 書>란 시부터 읽어 보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생명의 서)

책 이름을 <~~의 서>라고 붙인 책으로 <티벳 사자의 서>란 책이 있다.
티벳 지역은 지금 중국이 강점하고 있는 지역인데,
죽은 자의 책이라고 해서, 죽은 뒤 영혼이 어떻게 사는지, 그 준비를 하도록 적은 책이야. 

이 시는 좀 어려운 한자도 많고, 딱딱하구나.
화자의 지식이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 같을 때,
회의는 자꾸 의심이 드는 거야.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그래서 회의적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거랑 통한단다.
삶이 힘들어 병든 나무처럼 시들었을때, 화자는 <사막>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사막은 백일(白日, 태양)이 작열(이글거리고 불타는)하는 '모래의 땅' '사멸의 땅'이지. 

거기서 고독(孤獨)한 가운데 호올로 서면 ‘나’와 대면(對面)하게 될 거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지, 늘 눈치를 보며 사는 존재잖아.
그런데, 아무도 없는 사막에 가서 혼자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면... 제대로 '자아 성찰'이 가능하겠지?

거기서 <나의 생명>, <본연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모래언덕에 후회없이 죽어서 백골이 되리라~ 이렇게 강하게 적고 있단다.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강한 의지가 드러난 시라고 할 수 있지. 이런 게 주제란다. 
이 시가 워낙 유명해서 유치환을 <생명파> 시인이라고도 해. 

다음은 비슷하게 딱딱한 <바위>란 시를 보자.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

정말 단단한 시 같지 않니? 연 조차도 나뉘지 않았어. 시어들이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인 것 같아.
화자는 <바위>가 되고 싶대.
바위의 '속성'의 어떤 점을 닮고 싶은 것일까? 

2연부터 그걸 열거하고 있단다.
애련(사랑과 연민)에 흔들리지 않고, 희로(기쁨과 성냄)에 움직이지 않고,
오랜 세월 침묵하며, 내적 성찰을 하고,
흐르는 구름과 먼 우레(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바위.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죽어서 바위가 되고자 했을까?
지금의 삶은 너무도 '애련', '희로', '정', '말들'에 시달려서 힘들다는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죽어서 바위가 되어, 사랑도 모르고 정도 없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시로 쓴 것 같아.

다음에 쓴 시는 유치환이 1960년 4.19 일어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시래.
4.19 혁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이승만 정부가 부패하는 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고,
온 국민이 일어서서 싸운 훌륭한 사건이란다.
그렇지만 1년 뒤,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를 시작하지.
그 4.19 직전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참 부족한 사람이었대.
빨갱이를 잡으려고 제주도에 미군을 비롯한 토벌대를 보내서 사람을 엄청 학살했단다.
1948년 4.3 이야기지.
그래서 제주도에 여자가 많은 섬이 되고 만 거야.
1950년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도망가서 한강 철교를 폭파하도록 한 부족한 대통령.
그래놓고도 권력을 오래 잡고 있으려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다가 4.19로 쫓겨나고 말았지.
그 시대를 노래한 시를 한 편 보자.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1960. 3)

고독은 욕되지 않고, 견디는 사람에겐 영광이래.
독재 권력 아래의 치욕스러움을 <영광>이라고 표현했으니까 역설법이라 할 수 있지.
부정에 저항하는 일이 오히려 <영광>스럽다는 말이니깐. 

2연에서 '겨울(독재시대)'엔 요조(아름다움)하던 빛깔, 설레이던 몸짓이 모두 사라졌어.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처럼.
독재시대는 그래서 앙상하고 차가운 하늘뿐이어서, 지조를 지키는 저항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좋대.
정막 독재가 좋을까? 반어적인 표현이겠지? 

참된 것, 옳은 것은 학살하는 독재의 시대.
자신의 뜨거운 노래는 언 땅(독재)에 깊이 묻겠대.
땅에 묻는 것은 '싹이 트기를 기다림'의 표현이라 해도 좋겠지? 
마치 이육사의 <광야>에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했던 표현이나 마찬가지 의미지.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나의 <노래>, 화자의 <의지>가 있어.
나를 죽여도 좋지만, 절대 죽일 수 없는 <의지>.
바로 <독재>에 굴할 수 없다는 <자유의 의지>겠지.

차라리 자기 노래를 땅에 묻을지언정,
비도(非道, 도리가 아님, 부정함)를 치레(꾸밈)하기에 쓰이도록
비리, 부정함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지. 

거짓의 거리에서는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와 '훌륭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소리가 울리지만,
다들 옳은 정신을 팔고, 독재 국가에 봉사할지라도.
자신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마지막에 다시 의지를 단단히 하지.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이번 주엔 G20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대.
Group of 20 은 2008년 미국의 자본이 크게 흔들린 사태 이후,
세계 강대국 7개국(미프영독일이캐)과, 12개의 신흥공업국, 유럽공동체까지
20개 국가의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데서 시작된 거래. 

결국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지.
한국같은 신흥 국가는 언제나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된단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협력해야 하는 처지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적 모임을 우려하곤 한단다. 

강대국의 <자유 무역> 의지는 늘 약소국의 희생을 강요하게 마련이지.
한국같은 어정쩡한 나라에선 늘 <재벌>의 이익과
<민중>의 희생을 다시 만들어내는 구조로 작용하게 된단다. 

이런 사회의 흐름에도 관심을 조금은 가지기 바란다.
어차피 사회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다시 한 주일의 시작이다.
날이 차니깐, 감기 조심하고, 늘 기쁘게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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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 없는 아우성. 역설법으로 시험문제 보기에 자주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글샘님 같은 내용을 쉽게 재미있게 설명하시는 선생님을 만났으면 국어 수업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국어 시간 중에서 고전시가 수업 빼고는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글샘님 수업에는 요즘 시세와 재미있는 표현들이 섞어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고전시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학생들은 국어 시간 중에 고전 문학에 대해 어렵게 여기고 재미없어 하더군요.
글샘님이 바쁘신건 알지만 글샘님의 고전문학 특히 고전시가 수업을 기대 해봅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8 13:11   좋아요 0 | URL
요즘엔 수능에 고전이 반영되는 비율이 낮아서, 고전은 현대문으로 번역된 걸 분위기 파악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전 문학도 나름대로 가르칠 맛이 있는데 말입니다.
틈틈이 조금은 다룰 겁니다. ^^

반딧불이 2010-11-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환의 시에서는 한자가 참 견고하고 확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저는 처음 보는데 익숙치 않은 탓인지 느낌이 좀 다르네요.

글샘 2010-11-08 19: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아무래도 한자들이 자의식을 드러내기 좋은 역할을 한 시들이 있죠.
그래도, 연애시 <깃발>과 <행복>에선 그렇지 않거든요. ^^
<뜨거운 노래~>는 신문에 실렸던 건데, 4.19 전야의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