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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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라는 땅은 지구의 블랙홀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류시화의 시선을 좇아 움직여 본 인도 사람들의 삶은 행복을 위한 여행, 그 자체이다. 늘상 '아 유 해피?'라고 인사하고, 인도 말을 하나 가르쳐 달라는 시화의 말에 처음으로 '아즈 함 바후트 쿠스헤!(오늘 난 무척 행복하다)고 가르쳐 줄 수 있는 행복의 달인들. 누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인도의 스승들은 '그대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라'고 알려 준다. 신은 언제나 어디에나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면 불행할 일이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도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우리는 잃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하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늘 행복하고, 불행할 수 없으므로, 늘 '노 프라블럼'을 외치는 짧은 식민지 영어로 사는 사람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더럽지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신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사기꾼같은 스승들도 만나고, 반딧불이로 홈시크를 고쳐준 소마의 따스한 사람의 마음. 주그누, 순다르 주그누(반딧불이,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불평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나의 신세에 대해 쉽게 불평하며 사는가.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원숭이가 골프 경기를 방해할 때마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이 신의 뜻임을 이해하는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창조한 어제와 내일에 마음 태우지 말고, 신이 창조하신 '오늘'을 심호흡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마음 속 울림이 너무 컸던 기억이 난다. 한 5년 전이던가. 이제 다시 류시화를 만나 보니, 지구별을 여행하는 그같은 사람이 있어, 이 좁은 서재에서도 네모난 산들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감싸안고도 더럽지 않은 어머니 강, 갠지스가 내려다 보이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몇 년 마다 한 번 씩 그와 함께 인도를 거닐고, 멍하니 대지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축복받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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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한 조각 - 전2권
린다 수 박 지음, 이상희 옮김, 김세현 그림 / 서울문화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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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수 박. 이름이 좀 웃겼다. 수박이라고... 근데 책을 넘기면서 점점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의미를 뛰어넘는 뜨거운 것이 그의 글 속에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금파리'란 말을 알고 있을까? 원 제목은 A single shard이다. 샤드는 도자기, 질그릇의 파편이라는 뜻이다. 뜻은 통하는 말이라지만, 샤드와 사금파리 만큼의 정서적 거리가 세상에는 있을 수 있다. 김세현 씨의 그림은 참 정감넘치는 그림이다. 색감이 온화하고, 선이 친근했다.

고아로 자란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마치 선문답이나 선지식을 전수하는 과정과도 같다. 어느 날 두루미 아저씨가 생선을 놓치고 와서 지팡이를 다듬으며 던진 다음과 같은 말은, 불교의 화두가 될 만 하다.

'오늘 저녁에 생선을 못 먹었으니까.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때문에 속상해 하는 건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엔 나도 멀쩡한 두 다리를 갖게 되겠지...'

민영감은 고지식하고 성격이 강퍅한(강파르다)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도공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고, 그 부인은 모성과 여성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난 민영감보다는 그 부인의 마음 씀씀이에 더 감동받았다. 목이의 곤궁함을 돌봐주는 섬세한 마음. 현모양처가 봉건 사회의 여성들에게 족쇄의 역할을 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지극한 사랑의 시원인 모성애를 이젠 어디서 찾아야 된단 말인가.

린다 수 박은, 먼 옛날 고려청자의 신비를 통해 고난받던 민족의 한 조각 예술혼을 승화시키고 있다. 이 절대지향적인 예술혼 앞에서는 사소한 '사악함'은 얼마든지 성스러운 힘으로 극복되고 있다. 람세스를 읽으면서 람세스가 위기에 닥칠 때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듯이.

그는 비록 이국땅에 태어나서 이국의 말로 이 동화를 썼지만, 그의 뜨거운 붉은 적혈구들은 우리 조상들의 산수윳빛 혈액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피의 의미가, 사랑이고, 민족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의 해, 작년 6월에 우리가 가슴 벅차하며 감격했던 바로 그 것말이다. 오랜만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책을 써 준 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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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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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읽어도 보아도 무슨 소린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김규항이 '급진적인 고양이'라는 추천사(?)를 적어 줬다는 거다. B급 좌파, 아웃사이더, 쾌도난담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김규항의 관심사가 됐다는 것은 일견 참 색달라 보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의 표지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서, 다 보고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획일적인가.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신입사원을 눈꼴사나워하고, 추석같은 명절이 되면 의무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북적거려야 하고(그 밥하고, 음식하고, 상 차리는 여자들은 차롓상에 인사도 못 하는 걸), 동창회 같은 데나 부서 모임 있으면 빼먹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참석하지 않으면 귀가 근질거려 못 산다. 얼마나 욕들을 해 대는지... 정말 그 사람이 그만치 모자라는 인간이었던가. 우리는 그에게 전혀 관심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속을 뒤집어 보면, 늦게 퇴근하는 직장 상사는 집에 가도 애들도 다 커서 학원갔다 늦게 오고, 아내와도 뾰족한 취밋거리가 없어 밍기적 거리다가 늦기 일쑤고, 명절에 모여서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스톱 치기와 음식 먹기(술 포함), 텔레비전 보고, 아이들은 컴퓨터 하거나 피시방 가고... 뭐가 있나? 동창회는 돈 잘 벌고 있는 놈 돈자랑 하고, 그놈들 마누라들도 지들대로 돈자랑하고... 회사 부서 모임이라고 가봤자, 죽어라 술 마시고, 상사들 욕이나 하고, 남들 욕하고... 간혹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 나오면, 뒷날은 오리무중.

획일적인 사람들의 사회를 뒤따라 가지 못하면 뭔가 모자란 듯이 느껴야 했던 획일성을 통렬히 (사실 통렬하진 않고 은근히;;) 풍자하는 이 만화의 표지 그림은, 책을 다 보고서야 의미를 느끼게 된다. 획일적인 교육기관(옥상에 있는 놈은 곧 뛰어내릴 지도 모른다. 왼편에 쪼그리고 앉은 놈은 실패한 놈 같지?), 연단에서 잘난 척 하는 녀석은 몇몇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몇몇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누구누구는 들은 척도 안하는 소리들이다. 스노우캣처럼 종이상자 뒤집어 쓰고 듣지고 않고, 자기 보고 싶은 쪽만 볼 수도 있어야 자유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웅변이 들린다.

우리 나라의 어색한 지역 주의나, 학벌, 해병대 주의(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같은 것들이 실상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우리는 어른들이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너무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많은 선생님들 중에 뭔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손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처녀 총각이었고... 아줌마 아저씨들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간혹 혼자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권윤주씨의 어눌한 표현에 적극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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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이 있는 풍경 - 삼국유사 사진기행
김대식 글, 사진 / 대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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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터 옆에 차를 세우면 좋은 점이 많다. 가까이 분황사 탑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분황사 터 안에 핀 작은 꽃들이 참 정감 넘친다. 분황사 옆의 황룡사 터는 신라인들의 장엄한 불심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달궁터나 임해전지처럼 왕족들의 추회만이 아닌, 온 신라인들의 원력이 여기 담겼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옛날, 지금처럼 크레인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황룡사 구층탑을 세웠던 뜻은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경주를 걷는 것은 이야기 속의 세계를 떠도는 일이다. 많은 유물들이 박물관 안에 비장되어 있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서 밝힌바와 같이 경주는 평생 살면서 구경해도 다 하지 못할 산책로다. 삼국유사를 줄줄이 읽으려면 정말 어렵다. 이런 글들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큰 의문 하나를 풀었다. 일연 스님이 단군신화와 함께 설화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삼국 유사의 뒷면을... 몽고의 80년에 걸친 국토의 유린을 복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일한 길은 상상속의 세계를 떠도는 길뿐.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정말 wonderland이다. 신과 부처와 꿈과 현실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속에서 우리는 앨리스가 되어 우리 나라를 산책한다. 그러다 보면, 앨리스는 절망하고 좌절하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삼국유사의 존재 이유를 많은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보면 좋겠다. 사진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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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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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finding flow'이다. 그리고 일종의 생활의 지침서이다. '흐름을 찾아서'란 제목과 '몰입의 즐거움'은 과정과 결과의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삶의 경험과 일과 여가, 인간간의 관계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흘러가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는 건 왜일까. 저자는 몰입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몰입한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니깐.

그러나 몰입이 인간 행동의 중요한 한 특징임을 밝히고 있다. 인간은 무엇엔가 몰입할 때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재단해 나갈 때 삶의 보람을 느낄 것이라는 거다. 그는 확실히 서구적 세계관을 가졌다. 자연의 흐름은 엔트로피(무질서의 방향)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을 거스르는 것을 덕(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낙하가 선인데, 상승이 선인 모습은 서양의 분수의 미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上善若水임을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동양의 노장 철학은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흐름이고, 물은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수 대신 폭포를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질서정연함보다는 무질서한 방향으로 쏠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무질서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놓아 버리는 '해탈'의 즐거움도 간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선(禪)'이라고 하는 '몰입의 기법'의 역사가 아주 길다. 그러나 '좌선'은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방법, 과정인 것이다.

삶의 흐름을 좇다 보면 그 결과가 몰입이 아니라, 몰입(좌선)의 과정에서 행복한 결과(이것이 선이자 삶의 목표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는 확실히 서구적 시각이 효과적이지만, 그것을 종합하는 힘은 동양의 노장의 힘이 큼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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