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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매화가 핀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목련들이 꽃등을 밝히기 시작했고, 곧 찻길 가로 노랗게 개나리들이 수를 놓을 것이다.
봄은 꽃과 함께 온다.
선창엔 해가 길어 향연기 하늘거리는데
한 베개 가에 바람따라 대나무 그늘 곱네
상인은 잡결의 눈빛 서늘한데
연석에 앉아 서로 보며 늙음을 모르네(진화, 금명전석창포)
창포 곁에 앉은 스승과 제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禪의 세계를 나눈다.
내 흑수정에 대해 들었는데
술 담그면 온갖 근심 풀 수 있네
맹세코 한 방울이라도
양주 백 개와 바꾸지 않으리(성삼문, 촉포도)
양주자사는 큰 벼슬이다.
사랑을 그렇게 뻥튀겨 표현한 것인데 역시 성삼문답다.
달의 항아와 토끼, 계수나무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목서' 이야기도 아쉽다.
은목서 금목서로 향기를 날리는
밥풀같은 꽃들을 보면,
아름다운 여인 항아의 절구질이
펄펄 날리는 쌀의 향연처럼 느껴지고,
어떤 향수보다 은은한 가을을 매만져 주는 목서의 향을
계수나무라 부르지 못하고 일본 계수, 서양의 월계수에게 빼앗긴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만리교 옆 여교서는
비파꽃 아래 문을 닫고 사네
소미재자가 지금 젊건만
봄바람 관리하는 일은 전혀 모른다네(당 왕건, 촉의 설도 교서에게 부침)
당의 여류시인 설도는
뛰어난 재능으로 여성 교서랑이라 불린다.
소미재자는 아름다운 눈썹을 그린 여성.
비파꽃 핀 여교서의 상상이란...
원래 아름다움은 상상 속에서 더 부풀려 지는 법이니.
설도의 시는 '동심초'라는 노래로 널리 알려진 시를 소월이 번역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풍화일장로風花日將老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가기유묘묘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불결동심인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공결동심초空結同心草
한 주제를 잡고서
이렇게 문학과 세상과 어우러지는 일도 멋진 일이다 싶다.
난 어떤 주제를 잡고서 아직 젊은 내 나이를 살아갈까나...
일본의 어떤 할머니가 환갑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여
여든에 노인용 게임을 만들었다 하니,
나이를 한할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