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다는 것 미래의 고전 4
최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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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다는 것...이란 책을 상품 검색해서 입력하려고 검색창을 두드렸더니...
같은 제목의 다른 책도 한 권 검색이 되었다.
아마도, 출산 관련 힐링 서적이라 생각해서 눌러 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두려움을 제공하는 출산의 경험담을 쓴 책이다. 

그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두려웁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아가를 기르는 행복감은, 호르몬의 작용이든 모성 본능이든 간에 가장 행복한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이생규장전이란 단편소설의 한 대목처럼,
개성 낙타교 인근에 사는 이모군(고교 2학년)이 보충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담 너머 최모양(중학 3학년)과 눈이 맞았다고 치자.
그래서 이모군은 담을 넘어(아, 너머와 넘어의 실제적 차이란...) 최 모양의 방으로 틈입하여, 2박 3일을 지냈다고 치자.
그래서,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이모군의 건강한 수억 개의 정자 중 한 녀석이 최모양의 성숙한 난자에 입성을 하여 생물학적으로 튼튼하게 최모양 자궁에 착상을 하였다고 치자. 

최모양과 이모군이 50:50으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할 이 생산적이고도 건설적인 활동에서...
이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최모양이다.
금오신화가 新話(뉴 스토리)인 이유는... 이런 최모양을 두고, 최모양의 아버지는 여느 애비처럼 "야, 이 년아,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당장 자결하여라!"하는 근본을 갖춘 가문의 영광을 내세우지 않고, 보잘것없는 이모군의 집에 매파를 보내는 것인데,
아직도 이 나라에선, 남녀가 대등한 역할, 내지는 남자의 성적 쾌락을 만족시킬 몇 분간의 대가로 여자 아이가 임신을 했을 때... 여자 아이는 마치 돌로 쳐야 할 것처럼 바라보면서, 대등한 역할을 수행한 남자 아이에 대한 비난을 구경하는 일은 좀처럼 쉬운 노릇이 아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 그 성스럽고 소중한 경험을... 버림받은 고통 속에서 겪어야 하는 아직은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리틀맘의 당당한 세상살이를 이 책에선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 이 나라가 깨어야 할 의식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 책은 짚어내고 있다고나 할까... 

수년 전에 <세계의 여성>이란 티비 프로그램에서 핀란드 고딩이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걸 본 일이 있다. 고딩이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 아래 출생 신고가 되고, (이넘의 대한민국에선 호주제가 작년에 폐지되었는데, 아직도 그걸 아는 인종이 얼마나 될는지...) 고딩이니깐 수입이 없을 게 뻔하므로 육아 수당, 우윳값... 등등의 복지 비용이 지출되었다.
학교에 가야 하므로, 당연히 갓난아기 보육 시설이 제공되며, 그 비용까지 모조리 제공된다.
고딩이 가방 메고, 기저귀 가방도 메고, 탁아소에를 웃으며 드나드는 아름다운 모습...
아, 화장실에서 자기 아이를 유기하다가 범죄자가 되는 이 땅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과 너무도 극명한 대조를 보여...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리틀맘도 엄연한 엄마란 것을, 이 나라가 세계 몇 위의 경제력을 맨날 씨월거리면서도, 아직 세계 몇 위의 아기 수출국이란 것을...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청소년에겐, 순결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임신과 책임 교육을 시켜야 할 노릇이다.
교육이란 당연히 그렇게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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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0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된다는 것~~ 정말 행복한 두려움이죠.
최은영씨가 제법 깊이 있게 그렸나 봐요?
 
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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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참 귀중한 연수를 들었다.
봄방학이라 쉴 수도 있지만, 좋은 공부를 할 때면 쉬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야말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였다. 
수능 주관처인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출제 팀장님들이 어려운 시간을 내서 부산으로 발걸음을 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하여 문항 출제를 위한 다양한 시각과 팁을 듣고, 실습까지 하게 된 시간을 통하여 교사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출제를 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던 이야기 중, 수능 때 우리나라 교수들은 길게 40여 일 합숙을 하는데, 물론 교수 섭외가 쉽지는 않지만 대체로 쉽게 승낙을 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그런 합숙을 견디지 못한단다. 영어 듣기 평가에 원어민이 참가해야 하기때문에 그들이 함께 합숙을 하고 갇혀 지내야 하는데, 자유로운 영혼들에게 감옥같은 생활을 제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란다. 군대도 가지 않은 그들에게... 

씁쓸했다.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지금 용산에서 아직 3천 여명의 시민들이 '용산참사 범국민 시민대회'를 열고 있고, 그 주위를 수만의 경찰 병력이 바퀴벌레 등딱지같은 헬멧을 쓰고 둘러싸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유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리밭에서 종달새가 날아 오르듯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민중의 반란은 철저하게 응징청의 대상이 되었던 시민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땅에서 아직도 자라나는 학생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복종>이 체화되고 있는 중이다.  

학교엘 가면 우선 군복 대신 교복을 입어야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
남학생이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니거나 얼굴이 좁아 보이게 기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학생도 생머리를 풀고 다닐 수는 없다. 핑계는 학생 보호다.
교사인 나로서는 한편 동의하는 면도 있지만, 거부감도 많다.
그리고 정해진 50분 정도의 시간에 천여 명이 식사를 마쳐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운동장 내지 체육관에서 군인들의 사열과 같은 전체조회를 하고, 그때마다 일제시대의 동방요배와 같은 순서의 식이 진행된다. 지긋지긋하다. 

생활지도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사소한 잘못으로 질책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넥타이가 없다거나 등교 시간을 1,2분 넘겼다는 이유로 기합을 받고, 머리가 길면 간혹 가위질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상습적으로 규범을 어기는 학생들은 더욱 강한 제재를 당하기도 한다.
흡연을 했다거나 거짓말을 했을 경우 각목으로 구타를 하는 일도 있고, 증거 확보를 위해 흡연자 적발을 위한 흡연치수측정기도 있고, 으슥한 곳에는 cctv도 설치하고 있다. 

갈수록 아이들의 비행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범죄의식이 약해지는 문제가 있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수십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단속하는 것은 실효가 없어 보인다. 

어른들은 늘 아이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아이들은 늘 불안하게 자라는 중이다. 열일곱 살의 털은 아이들의 자존심이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의 머리에 별을 그려주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세입자들의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리 쉽게 바뀌지야 않겠지만... 

학생들의 '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학생부장 역할을 맡게된 나에게 온 '열일곱 살의 털'은 나를 더 고민스럽게 만든다. 과연 진로상담을 앞에 내세워 아이들을 덜 억압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것이 어른들의 바람이지만,
아이들이 밝지만은 않은 미래를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임을 또한 아는 내가 아이들의 '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지금 고등학생 안단테가 시민대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될 뻔한 것을 시민들이 겨우 빼냈다고 한다.
작년에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 강의석 군이 십여 년만에 대로에 나선 탱크 앞에 나섰다가 논란을 제공한 일이 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자유'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로 '지향'해야할 것으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창백한 이론서로서의 교육학과 먼지구덩이 교실 안에서의 행위 사이의 간극은, 별을 스치는 바람과 나의 상념 사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열일곱 살의 털을 이유없이 깎이는 학생부장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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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들이 리뷰대회에 요 책으로 우수리뷰 뽑혔지요.
중학교 2학년때 학교 담도 넘어다녔다고 썼더라고요~ 허걱, 아들의 재발견!ㅋㅋ

글샘 2009-03-02 01:3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늘 재발견의 대상이죠. 자기들도 자신을 모를테니깐요. ㅎㅎ
 
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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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이란 이름의 작품들이 갖는 형식 중 하나가 역경을 이겨내는 장한 청소년 이야기다. 그렇지만, 공선옥은... 그런 달콤한 거짓말쯤 하지 않는다. 용기있는 작가이고, 용감한 작가여서, 꼭 필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같은 공 모 씨의 글처럼 이제 쓰라린 과거쯤 잊어 버리고... 달콤한 현실을 즐기라는 사탕발림에 공선옥은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공 모 씨의 작품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때 공선옥은 가끔 울림을 주는 책 한 권씩 낼 뿐이다. 

청소년기의 소녀들은 요망스럽다.
얼핏 봐서는 어리삥삥한 중고등학생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그 아이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규정할 수 없는 다양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 깜짝, 은 사람을 진저리치게 하기도 하고, 소스라치게 하기도 한다. 감동을 줄 때도 간, 혹, 은 있지만서도... 

공선옥의 시선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향해 있다.
1997년 겨울... 구제금융기 이후 가정은 파괴되어가고 있다.
인간들은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돈 앞에서는 후안무치가 되는 인간들로 변해버렸고,
그래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고, 러시앤캐시에서 빌려서 꽃등심을 쏘아야 인간처럼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를, 그런 세상 앞에서 돈이 없는 어른들은 부끄럽다. 

아, 세상이 그런데... 그 어른들과 함께, 또는 떨어져 사는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신산하랴.
98년 그 이후로 학교에는 등록금을 안 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물론 못 내는 아이들은 이리저리 해서 감면을 해 주지만, 졸업식날까지 기백만원의 식비, 수업료를 안낸 학생의 부모들이 졸업식날은 우아하게 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한다. 지겹다.  

여느 성장소설에선 여간해 보기 어려운 가난한 집 아이들의 고민을...
학원에 다니는 쳇바퀴 인생이 아닌, 가난해서 알바를 하고, 부모들이 헤어져 살고, 그래서 더 서러운 날이 많고 외로운 날이 많아 밤늦게 기댈 친구를 찾아 갔다가, ... 뜻밖의 임신을 해버리게 되는 승애처럼... '나는 죽지 않겠다'는 굳센 마음으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이 어둔 밤에 어느 창문 안에서 저 별들을 깜박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서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고마운 소설집이다. 

많은 단편소설집들이 요즘 '소설'이란 제목으로 출판된다. 장편인줄 알았다가 단편집임을 알게 되면, 사기 당한 느낌이 든다. ㅠㅜ 공선옥은 그런 면에서도 정직하다. 

가난해서 삶의 희망이 없는 아이들, 그러다 보니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학교에서도 괄호 밖으로 내치려고 한다. 그러고 나면 학교는 조용하니깐...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두면 속시끄러운 일이 자꾸 생기기만 하니깐...
1차 집단과 2차 집단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이 불명확한 학교라는 집단은 아이들을 내치기도 끌어안기도 힘든 애매한 집단이다. 

봉숭아는 아름다운데, 아름답지 않은 떡볶이집 아줌마. 아줌마가 원래부터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원래부터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아름다운 꽃을 기를 수 있을까? 아줌마에게도 이 꽃처럼 아름다운 때가 있기나 했을까? <힘센 봉숭아>에서 민수가 뇌까리는 이 구절을 공선옥은 몇 번이나 고쳐썼을까? 

꽃같은 내가 풀이 되었다... 니 아버지가... 거친 파도와 같은 아이엠에프의 파고를 온몸으로 넘다 보니... 꼭같은 내가 풀이 되었지만서두... 나두 한때는...<울 엄마 딸>의 꽃같은 엄마가 풀이 되었다는 술주정이야말로, 이명박이라는 <괴물의 시대>를 잉태한 <계급을 배반한 의식>을 형성한 시대를 적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날 밤, 슬픔의 바다란 말을 몇 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그 말을 자꾸 읊조리다 보면 정말로 이스트 넣은 빵처럼 슬픔의 감정이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그것이 명분이 되어 내가 집을 뛰쳐나가리라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는 대목을 읽노라면... 이스트 넣은 빵이 일어나는 모습과 슬픔의 감정을 부풀대로 부풀린 삶에서 우러난 소설임을 실감한다. 

미친 것들이 미친 법을 만든다고 온통 광풍이 몰아치게 만드는 나날이다.
미친 어른들의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또다시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집밖으로 뛰쳐나가버릴 것인지... 그악스런 어른들만큼 딱딱해지는 아이들의 마음씀씀이에 공선옥 소설은 메마른 입술만 쓰디쓰게 만든다.  

힘든 삶을 앞에 두고 고민하던 경수에게 이런 소설 권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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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9-02-2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이 주신 별 다섯개 책은 꼭 사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보관함에 옮깁니다.^^

글샘 2009-03-02 01:36   좋아요 0 | URL
꼭 사 보세요. 재밌습니다. ^^

순오기 2009-03-0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은 한때 내 가슴 아프도록 보듬어 주고 싶은 작가였어요.
신산함은 작가의 삶에서 나온...공 모씨와 같으면서 다른 삶이라 작품도 확연히 다르죠.
이 책 나도 담아갑니다. 아드님 소감은 어땠는지요?

글샘 2009-03-02 01:37   좋아요 0 | URL
다른 공 모 씨는, 참 젠장이죠.
맨날 돈버는 데 재미가 쏠쏠한 모냥이에요.
이번에도 잡담으로 돈좀 벌더군요.
거기 비하면, 공선옥은 쑥구렁에 묻힌 옥돌같은 보배라고 생각해요.
순오기님과 제가 좋아하는, 그리고 알아 주는 보배요. ^^
 
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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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험 점수를 높게 받는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무척이나 나무랐고, 돌아보곤 하였다.
나의 삶과 아이의 삶과는 전혀 별개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의 삶에 어른이 배놔라 감놔라 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또 있을까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나태한 모습에 실망만 거듭하다가 3년만에 도망치듯 옮겨온 지금 학교에도 거기나 별반 다름없는 아이들이 교실마다 가득하다.
별볼일 없는 산동네 주변의 고등학교는 아무리 일반계 고교라 하더라도 아이들의 성적이 형편없다. 서울에서 강남의 고교와 강북의 고교 사이에 보이는 격차가 이를 증명한다.
강남에서 선생하면 왠지 어깨가 으쓱하다가 강북으로 전근이라도 갈라치면... 죄인처럼 미안하다. 

실업계 아이들은 입학할 때부터 자신감이 없다.
그나마 입학할 땐 조금 반짝이던 아이들도, 한 학기가 채 지나가기 전에 '공고생'이 되어버린다.
이 책의 표지에 쓴 글씨와 꼭같은 글씨를 아이들이 쓰고 있으며,
생김새도 이 아이들처럼 생겼다.
게으르기는 세상에 짝이 없을 정도이며, 어른들 말을 들은 체도 않는 데는 도가 텄다. 

시험 공부를 시켜도 도통 관심이 없으며, 예상문제가 아닌 기출문제로 수업을 해도 아이들은 무심하다. 세상 많이 살아본 티를 낸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빨리 어디로든 사라지려 온갖 수를 다 쓴다. 요즘엔 교육부에서 11월 중순까지 실습을 못나가게 만들었다. 참 무책임한 교육부다. 아이들은 그래서 학교에 와서 엎어져 잔다. 종일 교실엔 교사가 얼씬도 하지 않는데... 

이런 아이들이 변칙적인 현장에 파견된다. 거기서 생기는 소동 속에는 학교의 모순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애정이 가지는 불편한 감정과, 어른들의 거짓된 면모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청소년이란 그야말로 세상의 블루오션이다.
인류의 미래는 청소년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청소년은 가엾고 또 가엾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이유는... 교육 정책에 철저한 실패...에 있다. 

결국 한국의 미래는 없는 셈이다.
지금도 한국의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고, 대학 졸업자들은 해외의 노동현장에 관리자와 기술자로 나가 일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 이야기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만은 아니다.
어른들에게, 과연 공부가 뭔데, 애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지... 진지하게 묻는 이야기고,
공부 못한다고 자기 자식도 구박하는 나라가 과연 정상인지... 참담하게 되묻는 이야기다.
인문계 다닌다고 으스대고, 실업계(발음이 족같다고 전문계로 바꾼 넘들 대갈통도 참 전문적으로 돌대갈님이시다.) 다닌다고 고개 숙여야 하는 가엾은 아이들을 양산하여 결국 자본주의의 더러운 꼬락서니를 재생산하는 것이 학교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르짖지만... 정말 전문계에서 어떤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지... 반성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재미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뒤로... 경찰차가 들어오며 마무리짓는 대목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주인공이 상을 받든지... 어떤 오해가 있어 그 갈등이 풀리든지... 하지 않고 마무리 지은 데는 작가의 뜻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어떤 뜻인지... 좀 다소 쫌, 이해가 안 간다. 

소세지, 오이지, 단무지, 쓰리지란 농담이 있다.
A형은 소심하고 세심해서 지랄같고
B형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라 지랄같고
O형은 단순 무식해서 지랄같고
AB형은 지랄같고 지랄같고 또 지랄같은 성격이란 농담. ㅍ 

웃자고 만든 소리지만...
사람을 이렇게 하나의 범주 안에 넣으려 하면 꼭 튕겨져 나가는 부분이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도끼로 쳐낼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인데... 

인간을 기르는 일에 종사하면서, 꼴찌들도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즐겁게 만드는 길은 없을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과연 머리를 기르는 일이 교칙을 위반하는 일이어야 하는지...
담배를 피우는 일이 다섯 번 거듭되면 퇴학처분 받아야 하는 일인지...
그런 것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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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은데 사서 봐도 괜찮을까요?

글샘 2009-02-26 21:21   좋아요 0 | URL
사서 보지 마세요. ^^ 제가 한 권 선물할게요.
아래 주소 남겨 주셈.

바다여신 2009-03-02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리뷰 참 잘 읽었습니다. 님의 교육관에 저도 동감합니다. 이 <꼴지들이 떴다> 책 저도 구입해서 보았는데, 이 책이 단순한 청소년성장 소설이 아니라 어른세계 즉 현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깊이가 있고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고 한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이 책 끝부분은 열린 결말로 처리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일시적으로나마 화해가 이루어진 마을에 경찰이 더덕 도둑을 잡으러 들어오고 또 그 뒤로는 A급 태풍이 따라오고... 한 차례 더 큰 풍파가 닥친다는 의미가 아닐는지요. 인생이란 끝임없이 반복되는 역경과 고난과의 싸움이라는 메시지도 주면서, 독자 스스로 상상하라는 말이겠죠.

바다여신 2009-03-02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해요! 주제넘게 아는 체를 해서.. 저는 국어교육과 학생인데요. 소설도 쓰고 있어요. 저는 이 책 모든분들께 강추하고 싶어요. 정말 괜찮았어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자기 돈을 주고 구입해서 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야지 책에 애착을 가지고 꼼꼼히 보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또 미안해요. 까불거려서.. 아무튼 글샘님 반가웠고요, 즐거운 날 되세요. 또 뵈어요.

글샘 2009-03-02 19:47   좋아요 0 | URL
아, 학과로 보면 제 후배님이시군요. ㅎㅎ 소설도 쓰신다니... 훌륭합니다. ^^ 그리고, 이 책을 사서 보지 말라고 한 건요... 순오기 님께 제가 얼마전에 선물을 받아서, 저도 보답을 하겠단 거였습니다. 다른 님들께 사지 말란 말이 아녔어요. ㅋㅋ 까불거려도 됩니다. ^^ 저도 반갑습니다. 또 뵙시다.
 
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 여성들의 성장 소설의 이면에는... 슬픔과 소외감이 가득하다. 박완서의 소설이 그렇고 신경숙의 소설이 그렇고 은희경도 그렇다. 그런 소설들을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소설읽는 일에 염증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원래 영원의 출구,란 제목의 이 소설은 일본 작가 모리 에토가 쓴 성장소설이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그린 여자 아이의 성장 소설인데, 밝지만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검은 마법과 쿠페 빵, 이란 제목이 영원의 출구보다는 친근해 보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에게 어울릴 이 소설이 그닥 유명하지 않은 것 같아 좀 아쉽다. 특히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려서 주목받은 <아즈망가 대왕>은 한국에서도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았던 걸 보면, 아직 한국에선 여학생들의 삶에 주목하는 성장 소설이 부족하단 느낌을 많이 받는다. 

'소녀'란 이름의 여자 청소년들은, 한편 깜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마음 속에는 구렁이 할머니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정신 세계를 갖고 살아가게 마련인데, 일반적으로 '청순가련'으로 덮어버리는 경향이 많다. 겨울동환지 뭔지에서 최지우나 소나기의 여자아이나, 뭐 요즘 유행한다는 일본 만화 꽃남의 금잔디도 마찬가지다. 일단 서민이라도 얼굴이 청순가련이라야 한다.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여자 아이들 성장 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처럼 이성 교제가 어정쩡한 국가에선 '소녀' 이미지에 대한 동경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원조 교제가 인기인지도 모르겠다.
노래라고 만드는 것도, 지지지지지..베이베... 지지배가 상품화된 것들뿐이고...
남자 아이들에게건, 여자 아이들에게건 서로의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줄 수 있는 소설들이 앞으론 필요하다. 

청소년들을 마치 '성적 폭발 직전의 핵폭탄' 취급하는 몽정기 류의 영화들은 정말 짜증난다.
실제로 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영화처럼 저질스런 표현들로 일관하는 것은 실제 청소년들의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벗은 몸을 보기 쉬운 인터넷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오히려 변태스런 '의도된 기획'을 정상이라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에 더욱 많은 성교육과 매체들을 접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노리코랑 키스하고 싶었어'
헤어진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키스보다 결혼하고 싶었어'
이게 노리코의 대답이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이렇게 남녀는 다르다.
남자 아이들은 손을 잡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진도가 나가고 싶은 '문제 해결형'인 반면, 여자 아이들은 안정적인 정서의 공감을 원하는 편인 것이다.
가르칠 일이 많은데 방기하고 있는 게 얼마나 많으냐... 

태양의 스무 배나 밝은 별, 시리우스는 너무 크고 너무 빛나기 때문에 수명은 5억년이다.
태양은 50억년 뒤에 백색 왜성으로 흩어질 거라는데...
산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거시적 입장으로 바라보는 일도 성장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늘 자신의 좌표가 불안정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개체의 이야기지만, 그 불안정한 개체가 점차 안정감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니깐... 그렇지만, 길게 본다면 안정된 삶이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걸 읽게 되는 일은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다. 

머리가 뭔가로 맞은 것처럼 흔들렸고, 손가락 끝이 싸늘해졌다. (303)
이런 묘사도 실감난다. 정말 충격받으면 손가락 끝이 싸늘해 질 때 있잖은가.
요즘 너무 적나라한 노래 가사처럼, '총 맞은 것처럼'이라든가,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같은 용어들을 쓰지 않고도 아린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을 듯 싶은데... 

우주는 매일 팽창하고 있어서, 지구와 달은 매년 3센티미터 쯤 멀어지고 있다는데...
우리들도 내년이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안 정해도,
아무리 싫어도 어딘가 멀리 있게 될 테니까.(338) 

그래.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어려선 왜 그리 하루 햇살이 지루한지, 나른한 오후를 보냈던 기억을 가지고 살다가,
나이 들면 하루하루가 뭣이 그리 허무한지,
나이 들어 보면, 어린 시절 꿈꾸던 것보다는 훨씬 다른 먼먼 곳에 둥지를 틀고 불안정하게 살고있는 아직도 '어리(석으)ㄴ' 나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담담하게 적어내고 있다. 

다음 주면, 새학기가 시작된다.
누구도 싫어한다는 이유로 새학기에는 학생부장을 맡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뭐, 학생부장이 별건가.
학생들과 함께 하면 되는 거라 생각하고 1년을 설계한다.
아이들과 머리 '털'이나 '담배' 연기로 실랑이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진로에 관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부장 생활이 되길 나름 기대하고 있다. 동창회 활동과 선후배를 연계하는 상담 활동 같은 것도 '꿈이 없고 미래가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고, 마음은 바쁘고 몸은 더 바쁜 2월이다. 

아직은 냉랭한 봄빗속에 매화가 튼실하게 이미 피었다.
아이들은 같은 열일곱 나이래도 이미 스물 이상의 구렁이가 들어앉은 넘부터 아직 은초딩 부럽잖은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아기도 있는 법이다.
한국에도 이런 기억에 오래 남을 '성장 소설'이 자꾸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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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2-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아직 못 읽은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