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새는 울지 않는다 푸른도서관 4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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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오월. 

학살자를 학살자라 불렀다고 욕설을 퍼붓는 세상.
아직도 독재자의 딸이 세습도 아닌데도 여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나라.
전직 대통령을 온갖 치욕스런 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조차도, 그것을 추모하는 일조차도 억누르는 부조리한 나라. 

그나라의 오월에,
아이들 스무 명을 데리고 민주 공원엘 다녀 왔다.
아이들은 민주주의가 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는 얼굴로 떠들고 있었고,
감옥 체험장에서도 장난이나 치고 있었다.
편안한 자세로 동영상을 한 편 보고 온 아이들의 감상문에, 글쎄 어떤 글들이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피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그 무섭고 장엄한 4.19와 5.18의 이야기를
그리고 화려했던 6월 항쟁과 어리숙한 6.19의 이야기를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과 IMF 이야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임을... 

교원 평가를 하면 간혹 아이들이 나더러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둥,
자기들을 내 생각대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둥 주관식 답을 적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다. 여기는 부산인 것이다. 

판소리 명창을 꿈꾸는 방울이는
광주의 뜨거운 한복판에서 총상을 입고 죽는다.
생일 선물로 잡아준 금방울 새와 민혁 오빠,
이제 갓 생리가 시작된 몸을 버리고 금방울 새 속으로 들어간 방울이. 

윤상원 선생의 영혼 결혼식과 오버랩된 광주의 뜨거운 지난날을,
아이들이 읽기 쉽도록 잘 적었다. 

물론, 전두환이 주범인 학살의 시대도 그려져 있다.
이런 책을 읽지 않은 자들이,
이런 책을 내는 것조차 빨갱이들이고,
학살자는 없다는 말을 지껄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임은 변함이 없다.
봉하의 2년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풀뿌리나 적실 따름인 것을 보여준다. 

다시 역사 교과서 논쟁을 시작한다는 뉴라이트란 이름의 친일파들의 발호를 보면서,
민주주의 뿐 아니라, 민족주의 조차도 이 땅에선 피를 먹고 근근히 살아남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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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아틀라스 시원의 책 1
존 스티븐슨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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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어린이라면,
어린이날 선물로 이런 책을 받았다면 아마 밤새워 잠을 자지 않고 책 속의 세계로 빠졌을 것이다. 

올해 어린이날 전날, 4일 11시에는 전국적인 대규모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아마도 내년 총선이나 대선 전까지는 뉴스에 재난과 북한이 연이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을 왜 찍었는지, 그러다가 이제 왜 안찍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날 전날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축제따위엔 관심이 애초에 없을 것이다. 

모든 판타지 소설은 두 세계를 상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삼총사' 트리오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그 트리오가 남매라는 것.
그리고 남매의 첫째 케이트가 첫 번째 '시원의 책'의 주인공이 되고,
그렇다면 이어질 2,3권에서는 둘째, 셋째가 주인공이 될 터이다. 

해리 포터를 읽고난 뒤엔 판타지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도 비슷하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구조로 이뤄진 판타지물이다. 

에메랄드빛 책이 세 권의 '시원의 책'중 한 권이며,
그 책을 통하여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아이들을 통하여
어린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꿈꿀 기회를 가지게 되기도 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 만화방 지배인을 하면서 만났던 만화들의 해피엔딩은
유치하기는 커녕 삶의 희망이 되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삼 남매가 버려지고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알고 보면 그 아이들이 세계를 구할 인물일 수 있음은,
비록 현실에서 경쟁에 뒤떨어진 아이들이라도,
매일 경쟁에 내몰리는 생활에 지친 아이들이라도,
이런 책을 통해서 마음 속에 자신만의 꿈을 가지는 일도 아름다운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제1권이 '시간의 아틀라스'였다면, 다음 권은 '공간의 아틀라스'와 '삼차원의 아틀라스' 정도 될까?
판타지 소설의 정석처럼 다음 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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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가디언 푸른도서관 44
백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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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시간은 늘 흐르고 있다고 느끼고 알고 있다.
지금은 곧 과거가 되고, 과거는 망각된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은 확정되지 않은 것이라 미래라 부르지만, 그 미래는 곧 현재가 되고,
또 곧 과거로 흘러가서 망각의 강을 건너고 말지. 

공간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느끼고 아는 인간에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공간에 머물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지나간 시간에 움직인 내가 여기 도달했기 때문에 존재하며,
지금 내가 움직이는 곳을 향하여 미래에 나는 다른 공간에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가버린 공간에 대한 기억 역시 과거가 되고 망각된다.
기억에 남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미래에 도래할 공간 역시 마음 속에 존재할 뿐이며, 마음 속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시간을 되돌리고 공간을 복잡화할 수 있다면? 

타임머신이라는 둥,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둥,
인간의 상상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 한순간에 빨려들어가는 상상을 늘 해왔다.
그러나,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과 거기서 만나는 인간들은 늘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나와는 무관한 일들이 벌어지거나 황당무계한 존재들이 거기선 일상이 된다.
아기공룡 둘리가 날아간 우주 공간도 그렇고, 해리포터가 들어선 마법의 공간도 그렇다.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어서,
책을 놓는 순간, 시간과 공간은 금세 현실의 이 장소로 복귀한다.
복잡화된 시간과 공간은 한 순간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타임 가디언, 그들이 지키는 시공간은? 

조금 색다르다.
과거로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꼭 과거의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미래의 한 시점에서 달려간 과거의 한 시점.
거기 존재하는 캐릭터들은 자신보다 훨씬 더 미래의 지점에서 달려온 존재들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
엄마는 남자가 되고, 자신이 엄마가 되는 혼돈은 작가가 저지르는 시공간의 여행의 의미를 증대시켜준다.
타임 가디언들이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쓰는 시공간은,
바로 부처가 그토록 골똘히 찾아왔던 질문에 대한 해결 과정이다.
그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길찾기의 시작 말이다. 

그래서, 만남은? 헤어짐은?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이뤄내는 한 지점에 두 존재가 놓일 때 그 현상을 우린 만남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이후
서로 다른 지점에 놓인 두 존재는 대뇌 피질의 지직거림의 전파를 따라 서로를 상상할 수 있다.
만나지 않은 지점에서 만남이 가능하게도 하고,
전혀 다른 지점에 놓인 두 존재는 인터넷 세상 속에서 아바타의 속성을 띠고 만날 수 있다.
그 만남은 만나지 않은 지점에서 마주치는 것인데,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이라면 충분히 마주침 이상의 만남을 형성할 수 있다. 

헤어짐이란 

동일한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공유하던 존재들이,
공간을 달리하여 놓여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시점에서 봤을 때 정해지는 그 지점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
좌표의 원점(0,0,...0,0)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
모든 존재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뒤틀린 형상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임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곡면 칠판에 그린 평면을 굳이 평면도형이라 우기는 수학선생님같은 시각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점의 면적이 의미가 없다는 수학선생님이 피부과에 점을 빼러 가서도 같은 주장을 할 것인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3만원 짜리 점 하나 빼면 그 주변의 점 세 개는 공짜로 빼 드린다는 원장님 말씀에,
점은 면적이 없으니 네 개 가격 12만원을 지불하고 나올 것인지를 말이다. 아니면 네 개를 공짜로 해달라고 우기든지... 

삶은 수학적이지만은 않다. 

충분히 시공간이 뒤틀릴 수 있어서,
나의 과거는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고,
나와 너의 만남은 과거가 될 수도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더 우월한 존재인 내가 더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시공간이 뒤틀려버렸을 때 한 순간에 뒤바뀌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터이다. 

필연과 우연 

하나의 차원에서 절대적 원점을 상정한다면 시공간의 마주침은 필연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차원의 원점이 뒤틀릴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모든 필연은 우연의 수준과 다를 바 없다. 

점쟁이와 의지 사이 

인생을 한 좌표 평면 위에 두고 콤마링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면 점쟁이를 의지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러나 좌표 평면이 힘의 변동에 따라 충분히 일그러지고 다원화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삶이라면,
현재 자신이 유영하고 있는 우주의 별자리를 즐기는 마음으로,
아라란 이름의 '바다'를 서핑하는 여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사는 것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판타지 속의 시간과 공간 

결국 판타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삶이 남기는 것도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의 특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 남긴 삶의 이야기들은 모두 환상이며 그림자다.
금강경의 저 유명한 게송처럼,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꿈같과 환상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같고, 이슬같고, 또한 번갯불같은.... 그런 것. 

나의 오늘도 판타지 

판타지 속의 한 좌표에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해야할 일은?
이 순간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것.
지나가버린 과거에 불평갖는 어리석음과,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 어리석음은 모두 탐욕에서 오는 법.  

기적은 오로지 지금 숨쉬고 있는 내가 여기 있다는 그 사실.
확실한 일도 내가 여기 있다는 그것 하나. 

부활절, 삶은 = 달걀 

예수께서 선과 악을 가를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희생한 것과,
모든 보속을 감당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지나가버린 과거에 죄책감을 갖고 살지 말라는 말씀과,
어린아이처럼 미래의 두려움에 떨지 말고 살라는 말씀을 전해주심이리라. 

어린아이같이 살면, 천국에 간다고? 뷁! 

어린아이는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서 천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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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비아동문고 43
톨스토이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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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첫 독서토론 교재로 이 책을 나눠줬다. 

토론 주제는 1.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 가치인가, 정신적 가치인가.
2. 과연 세상은 '바보 이반'의 편인가?
3.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이런 것이었다. 

날카로운 아이들은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직 이런 책을 읽을 수준이 안 되는 녀석들도 있어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토론은 자유로운 것이어야 하는데,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아이들이 아직 많다.

아이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그리고 나는 바보처럼 사는 걸까, 권력이나 재물을 위해 사는 걸까.
그리고 나는 뭘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성실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나의 성실은 정말 국가 정책의 한켠을 디디고 선 관료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닌지... 

요즘 회의감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를 추스리기 어렵다.
그런 주제에 아이들의 독서토론을 듣고 있자니...
어쭙잖은 어른인 내가 부끄러웠다. 

역시 근원을 묻는 책을 읽는 일은 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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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안녕하세요.
가장 마지막 문구가 가슴에 와닿아서요.
근원을 묻는 책을 읽는 일은 저 역시 늘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아 그렇구나 하구요.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글샘 2011-04-18 14:39   좋아요 0 | URL
애들을 잘 가르치는 건 어떤 건지... 갈수록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적은 말이에요.
근원을 묻는 일.
월욜인데 벌써 TGIF만 기다리는 마음... ㅠㅜ

양철나무꾼 2011-04-19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결말이 사람에게 한평 땅이면 족하다 였던 것 같은데...
요즘 세상으로 치면 정답이 바뀌어야 하는 결말인 거네요.

전 직업 자체가 근원을 물어야 하는 것의 연속인데,무뎌질려구요~

글샘 2011-04-19 11:25   좋아요 0 | URL
죽는 데는 한 평이면 되지만, 사는 데는 글쎄요...
근원을 묻는 일... 무뎌지면 또 부끄럽잖아요.ㅎㅎ

낙지날다 2012-02-2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독후감 내용 일부를 아고라 유명 논객이 인용했더군요.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글을 쓰는 분인데, 경제를 돈만으로 해석하지 않는 분입니다. 경세제민, 즉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구한다'는 의미가 '경제'라는 말에 있듯이 사람을 빼고 경제 본질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톨스토이의 생각을 비유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학부모로서 글샘님과 동일한 고민을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하니까요. '나의 성실에 대한 회의'는 정확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나찌 수용소 가스실을 성실하게 운영했던 아이히만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현대인은 그런 무감각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궤도에서 잠시 이탈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힘든 일을 하시는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글샘 2012-02-28 02:32   좋아요 0 | URL
누가 되다뇨.
관료제 사회에서 사는 일은 늘 자기 반성을 필요로 한답니다.
더 높은 중심으로 달려가려고만 하다보면, 뒤처진 영혼을 수습하기 힘들겠지요.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잘 가르쳐야죠. ^^
 
안네의 일기 올 에이지 클래식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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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를 삼중당 문고 작은 책으로 첨 읽은 게 중학교 때쯤이었나보다.
상상 속의 안네는 옹색한 공간에서 갑갑한 생활을 하면서도 톡톡 튀는 끼를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다.
늘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멋진 일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안네는 영원히 소녀 시절에 묻히고 만다. 

 

실제 무덤이 아닌 상징적 무덤 속에서 안네는 웃고 있을까?
인류의 가장 잔혹한 역사 중 한 순간인 시클로 가스실 안에서 안네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빛을 잃어 갔을까. 

 

살고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닐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안네가 펼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그의 부재를 기화로 하여 오히려 안네를 영원히 남게 하였다. 

1944년 8월 1일 '모순 덩어리'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고,
안네는 언니 마고트와 아우슈비츠로 간다.
베르벤-벨젠 수용소에서 언니 마고트는 티푸스로 죽고, 안네도 충격으로 죽는다고 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영국군은 수용소를 모두 태웠고, 시신도 모두 태워 한 구덩이에 묻는다.
그들의 무덤도 상징적 무덤일 뿐이다. 

안네가 1944년 3월 14일에 쓴 일기에서,
아, 전쟁이 4년째 접어들었어. 지긋지긋해.
이 썩어빠진 비즈니스가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쓰고 있다. 

열 세 살 소녀가 전쟁을 <비즈니스>라고 표현했다니.
아마도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훌륭한 통찰력을 가진 사회학자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전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한나 아렌트처럼 폭력에 대한 연구를 평생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
이런 구절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키티'를 창조하고, 페터와 대화를 나누지만, 안네의 마음을 채워줄 상대는 없다.
그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지만, 그는 없다.
무서운 세상은 무심히 돌아간다. 

안네가 지긋지긋해하던 비즈니스는 아직도 지구 어느 모퉁이를 돌아,
여전히 바삐 일하는 넥타이 맨 사내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는 일도 참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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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삼중당 문고로 읽었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글샘 2011-04-19 11:26   좋아요 0 | URL
삼중당 문고의 손에 꼭 들어가는 세로쓰기 책을 읽던 시절의 가난함이 참 풍족하던 거였죠. ㅎㅎ

북극곰 2011-12-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삼중당으루. ^

글샘 2011-12-20 09:47   좋아요 0 | URL
그땐 그게 행복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젠 책들이 너무 기름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