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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첫사랑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5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의 원제는 'hard love'다.
밥 프랑케의 노래는 이렇다.
내 어린 시절, 어제 일처럼 생생해. 엄마와 아빠는 최선을 다했어. 나를 제 길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힘든 시간과 술이 쉬운 사랑을 날려버렸어. 내가 아는 사랑은 힘든 사랑뿐이야.
힘든 사랑이었어, 하루의 시간 시간이, 크리스마스에서 내 생일까지는 수백 만 년,
그 사이에 가득 찬 공포로 내 기쁨은 눈물졌어. 아빠의 집에는 사랑이 있었어, 하지만 힘든 사랑이었어.
네게 내게 보여준 부드러운 호의를 기억해. 내가 즈끼는 모든 사랑을 난 점잔 빼며 숨기려 했는데,
웃음의 노래는 사실 모두 눈물의 노래였어. 쉬운 주말이 아니었어. 힘든 사랑이었어...
그러니 말할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널 사랑해.
그리고 말할게. 넌 매일매일 내 인생을 바꿔 주었어.
내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 줬어. 잊지 않고 말할게.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힘든 사랑이라고 해도.
그래 힘든 사랑이야.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야.
그저 그런 환상은 아니지만 게임도 아니야.
기적이라 이름 붙여도 좋은 것은 이것뿐.
우리의 인생을 치료해주는 사랑은 힘든 사랑이니까.(257)
영어 위키백과에서 찾은 '하드 러브'는 이렇게 해설되어있다.
Hard Love is an award-winning young adult novel written by author Ellen Wittlinger. It was published in 1999.
'하드 러브'는 1999년 출판되었고, 엘렌 위트링거가 써서 '프린츠 상'을 수상한 <영-어덜트 소설>이다.
여기서 '영-어덜트' 소설이란 장르가 특이하다.
이 소설이 단순한 청소년용 로맨스가 아니라는 이야기인지, 그동네선 '영-어덜드 나블'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이 소설은 <어른이 읽어도 될 만한>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볼 꼭지들이 많은 소설이다.
1인 잡지를 발행하는 존과 우연히 마주치는 마리솔.(마리솔은 무자비한 태양이란 뜻이란다.)
마리솔은, <지루해하는 사람들은 내적 자원이 없다고 했어>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괴짜 영재다.
레즈비언이란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살면서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한 재원이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불안감과 증오를 키워가던 존에게 마리솔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첫사랑이되, 이뤄지기 힘든 사랑이었다.
마음이 통하지만, 자꾸 덜커덕거리는 장애물이 등장하는 사랑.
'후회가 없다'는 것은,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앞으로 펼쳐질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108)
또다른 1인 잡지 기사를 쓰는 다이애나의 글에서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 글이 '영-어덜트' 소설이 되는 것은,
쌉쌀 달콤한 첫사랑이 아이들의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문장들은 가끔, 어른들에게도 '넌 어떻게 생각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서 그런 듯 하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한데,
마리솔은 늘 지오에게 진실만을 말해달라고, 스스로에게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지오는 자기 이름부터 감추고,
'난 감정 결핍이다. 내 기억으로는 쭉 그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정에 호소해도 나는 끄떡없다.
어쩌면 나는 감정이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10)'
이런 벽 뒤에 숨어버리는 아이였다.
지오를 보면서, 나도 그런 구석이 있음을 느낀다.
뭐, 누구나 그런 구석을 가지고 있겠지만, 다소간 그 벽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시절, 날 유난히 좋아하던 선배가 나더러 '크레믈린'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또 다른 친구는 나를 '밀폐용기나 통조림'처럼 뚜껑을 따본 적 없는 존재라고도 했다.
난 나의 감정을 드러내 말하는 데 극단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쓴 리뷰들을 보면, '나'에 대해서는 지극히 객관적인 이야기만 등장한다.
그게 나임을 부정할 순 없게 만드는 게 이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성찰이랄까...
지오가 마리솔을 통해 벽 뒤에서 나오게 되지만,
마리솔은 자신의 정체성을 '레즈비언'이란 틀 안에 가둔,
또다른 지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이런 '지오'와 '마리솔'들이 얼마든지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힘들지만,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그런 측면일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인정해주는,
나의 결핍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를 열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기를 끝없이 갈망하는 것이,
이뤄질 수 없는 인간 욕망의 한 구석인지도 모르겠다.
여느 청춘 소설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뉴욕으로 떠나려던 마리솔이 감동적으로 달려와서 존의 품에 안기고 대미를 장식하겠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에선 그런 신파를 연출하지 않는다.
존은 남고, 마리솔은 떠난다.
그것이 하드-러브다.
힘든 사랑은 이뤄지지 못해도 인생의 한 페이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인간의 정체성을 이뤄주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옮긴이의 말처럼,
"인간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사람은 성장해야 할 몫이 있고 그에 따른 고통의 몫도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마지막,
지오의 모습처럼 오늘을 의미있는 날로 만들고
다가올 일에 대해 준비하기로 결심할 필요는 누구에게나 있다."
는 작가의 메시지가 제법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