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
다음 한 주도 보람차게 보내자꾸나.
일요일은 푹 쉬고, 월요일에 슬슬 계획을 짜서 시작하는 조금은 느린 삶도 좋을텐데...
현대는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마음만이라도 좀 느긋하게 가져 보자.
오늘은 '유치환' 시인의 시를 몇 편 살펴 보자.
유치환의 '깃발'은 배운 적 있니?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시를 썼단다.
그런데 처음에 '역설'이 쓰였지? 소리없는 아우성.
전에 역설 할 때 설명했는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던 한 남자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은 들끓고 있는... 그런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야.
영원한 노스탤지어... 향수, 돌아갈 수 없는 향수란 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해선 안 되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느껴질까?
그렇지만, 불륜은 아니래. '순정'이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맑고 곧은' 깃대 끝에서 깃발은 나부끼다가,
백로가 날개를 펴듯, '애수(슬픔)'가 펼쳐진단다.
깃발을 보면서 슬픔이 가득한 마음이 된 거지.
아아,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감탄사가 많이 나온다 그랬지? 전통적으로...
마지막 두 줄은 읽기 좋게 음률을 맞춰 두었지. 몇 음보인지 읽어 보렴.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4음보로 읽을 수 있겠지?
이 시의 주제를 보통 '이상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라고 참고서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이성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가깝단다.
유치환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시라고 봐야지.
자, 깃발은 화자와 어떤 점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일까?
깃발은 깃대에 묶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못가는 존재지.
화자도 역시 결혼한 사람이란 관습에 묶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도.
깃발이나 화자나, 그 묶인 것만 아니라면, 어딘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유사성이 있지.
그래서 <화자의 처지 = 깃발> 이렇게 표현한 거란다. 이런 것이 은유법이지.
유사성에서 이어진 두 사물의 연결.
전에 <상징>은 마법적으로 이어진 거라고 했잖아.
'햇볕'은 사랑이고, '어둠'은 악이라는 이런 게 상징이야.
잘 알아 두렴. 은유법.
은유법, 그러면 제일 많이 들은 설명이 있지?
바로 A=B다. 그러면서 나오는 예가, '내 마음은 호수다.' 이거지.
그런데, 이렇게 하나 물어볼게.
내 마음은 호수다. 내마음과 호수 사이에 뭔가 유사점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잔잔함? 고요함? 조용함?
그건 답이 아니야.
내 마음은 호수~란 비유의 뜻은 그 뒤를 다 읽어봐야 돼.
은유법은 무조건 <유사점>을 찾아내야 되는 거지.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김동명, 1연)
어때? 호수와 내 마음의 유사점이 뭐지?
거부하지 않음이야. 이런 거지.
내 마음은 호수야.
언제나, 언제까지나... 당신의 마음만 내키시면, 마음을 내서 노저어 오시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가득해서,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겠어요~
이런 사랑의 표현.
이제 비유법, 은유법을 좀 알 것 같아?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빗대어 표현하는 거란다.
내가 잘 드는 예로, '사랑은 피자'란 게 있어.
사랑은 피자와 뭐가 유사할까?
피자 위의 토핑은 먹기 싫은 거 골라 내버리면 피자가 아니잖아.
그건, 피자 도우지~
먹기 싫은 토핑도 같이 먹어야 맛이 나듯이, 사랑도 입맛에 맞는 상황만 즐긴다면,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지?
그런 비유라면, 사랑은 피자다!
사랑과 피자는 둘 다 <입맛에 맞을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견디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다고 봐야겠지.
다음엔,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한 번 읽어 보자.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 어떤 것이 더 행복할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참 행복할 거야.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하대. ^^
그 설명을 아래에서 붙여 두었겠지.
그래서 화자는 우체국으로 가지.
자신의 사랑을 <주는> 행위로 편지를 보내려고 말이야.
3연이 아마도, 편지의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세상에서 만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은,
바람결에 나부끼며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피어난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같다~는 연애 편지.
화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느낀단다.
주제라면 이런 거겠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복> 정도.
이 꽃이 진홍빛 양귀비 꽃이야. 자기의 사랑과 양귀비 꽃을 같다고 했으니, 유사성을 찾을 수 있겠지?
<연련(강하게 정을 느끼는)한 사랑> <강렬한 사랑> 이런 것 아닐까?
앞의 두 편은 유치환이 <사랑>을 노래한 시였다면,
이제 살펴볼 세 편은 유치환의 <생명력에 대한 갈구>에 대한 시들이야.
우선 <생명의 서 書>란 시부터 읽어 보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생명의 서)
책 이름을 <~~의 서>라고 붙인 책으로 <티벳 사자의 서>란 책이 있다.
티벳 지역은 지금 중국이 강점하고 있는 지역인데,
죽은 자의 책이라고 해서, 죽은 뒤 영혼이 어떻게 사는지, 그 준비를 하도록 적은 책이야.
이 시는 좀 어려운 한자도 많고, 딱딱하구나.
화자의 지식이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 같을 때,
회의는 자꾸 의심이 드는 거야.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그래서 회의적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거랑 통한단다.
삶이 힘들어 병든 나무처럼 시들었을때, 화자는 <사막>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사막은 백일(白日, 태양)이 작열(이글거리고 불타는)하는 '모래의 땅' '사멸의 땅'이지.
거기서 고독(孤獨)한 가운데 호올로 서면 ‘나’와 대면(對面)하게 될 거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지, 늘 눈치를 보며 사는 존재잖아.
그런데, 아무도 없는 사막에 가서 혼자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면... 제대로 '자아 성찰'이 가능하겠지?
거기서 <나의 생명>, <본연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모래언덕에 후회없이 죽어서 백골이 되리라~ 이렇게 강하게 적고 있단다.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강한 의지가 드러난 시라고 할 수 있지. 이런 게 주제란다.
이 시가 워낙 유명해서 유치환을 <생명파> 시인이라고도 해.
다음은 비슷하게 딱딱한 <바위>란 시를 보자.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
정말 단단한 시 같지 않니? 연 조차도 나뉘지 않았어. 시어들이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인 것 같아.
화자는 <바위>가 되고 싶대.
바위의 '속성'의 어떤 점을 닮고 싶은 것일까?
2연부터 그걸 열거하고 있단다.
애련(사랑과 연민)에 흔들리지 않고, 희로(기쁨과 성냄)에 움직이지 않고,
오랜 세월 침묵하며, 내적 성찰을 하고,
흐르는 구름과 먼 우레(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바위.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죽어서 바위가 되고자 했을까?
지금의 삶은 너무도 '애련', '희로', '정', '말들'에 시달려서 힘들다는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죽어서 바위가 되어, 사랑도 모르고 정도 없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시로 쓴 것 같아.
다음에 쓴 시는 유치환이 1960년 4.19 일어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시래.
4.19 혁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이승만 정부가 부패하는 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고,
온 국민이 일어서서 싸운 훌륭한 사건이란다.
그렇지만 1년 뒤,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를 시작하지.
그 4.19 직전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참 부족한 사람이었대.
빨갱이를 잡으려고 제주도에 미군을 비롯한 토벌대를 보내서 사람을 엄청 학살했단다.
1948년 4.3 이야기지.
그래서 제주도에 여자가 많은 섬이 되고 만 거야.
1950년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도망가서 한강 철교를 폭파하도록 한 부족한 대통령.
그래놓고도 권력을 오래 잡고 있으려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다가 4.19로 쫓겨나고 말았지.
그 시대를 노래한 시를 한 편 보자.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1960. 3)
고독은 욕되지 않고, 견디는 사람에겐 영광이래.
독재 권력 아래의 치욕스러움을 <영광>이라고 표현했으니까 역설법이라 할 수 있지.
부정에 저항하는 일이 오히려 <영광>스럽다는 말이니깐.
2연에서 '겨울(독재시대)'엔 요조(아름다움)하던 빛깔, 설레이던 몸짓이 모두 사라졌어.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처럼.
독재시대는 그래서 앙상하고 차가운 하늘뿐이어서, 지조를 지키는 저항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좋대.
정막 독재가 좋을까? 반어적인 표현이겠지?
참된 것, 옳은 것은 학살하는 독재의 시대.
자신의 뜨거운 노래는 언 땅(독재)에 깊이 묻겠대.
땅에 묻는 것은 '싹이 트기를 기다림'의 표현이라 해도 좋겠지?
마치 이육사의 <광야>에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했던 표현이나 마찬가지 의미지.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나의 <노래>, 화자의 <의지>가 있어.
나를 죽여도 좋지만, 절대 죽일 수 없는 <의지>.
바로 <독재>에 굴할 수 없다는 <자유의 의지>겠지.
차라리 자기 노래를 땅에 묻을지언정,
비도(非道, 도리가 아님, 부정함)를 치레(꾸밈)하기에 쓰이도록
비리, 부정함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지.
거짓의 거리에서는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와 '훌륭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소리가 울리지만,
다들 옳은 정신을 팔고, 독재 국가에 봉사할지라도.
자신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마지막에 다시 의지를 단단히 하지.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이번 주엔 G20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대.
Group of 20 은 2008년 미국의 자본이 크게 흔들린 사태 이후,
세계 강대국 7개국(미프영독일이캐)과, 12개의 신흥공업국, 유럽공동체까지
20개 국가의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데서 시작된 거래.
결국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지.
한국같은 신흥 국가는 언제나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된단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협력해야 하는 처지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적 모임을 우려하곤 한단다.
강대국의 <자유 무역> 의지는 늘 약소국의 희생을 강요하게 마련이지.
한국같은 어정쩡한 나라에선 늘 <재벌>의 이익과
<민중>의 희생을 다시 만들어내는 구조로 작용하게 된단다.
이런 사회의 흐름에도 관심을 조금은 가지기 바란다.
어차피 사회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다시 한 주일의 시작이다.
날이 차니깐, 감기 조심하고, 늘 기쁘게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