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를 통해 죽음에 대한 관조를 읽어 봤다.
산다는 일은 죽음의 뒷면과도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는 날까지 열심히, 잘 살아 보자. ^^ 

오늘은 고은 시인의 <눈길>이란 특이한 시를 살펴 볼 거야.
왜 특이한 시냐면, 고은 시인은 '스님'이 되었다 환속한 경력을 가진 분이었는데,
이 시에서는 인생에 대한 관조와 함께, <어둠>이란 단어를 독창적 상징으로 쓰고 있는 시라서 그렇게 말한 거다.
우선 읽어 보자.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고은, 눈길)

첫 행의 <이제 바라보노라>는 마치 영화에서 인트로의 역할을 하는 구절 같구나.
영화에서 과거를 회상하겠다는 부분과도 같은 구절.
말투는 조금 거창하고 경건한 느낌이야.
무얼 바라보냐면,
<지난 것이 다 덮인 눈길>을 바라본대.
화자가 살아온 인생길이겠지.
그리고 겨울처럼 냉혹한 그 길을 떠돌고 와
지금은 <낯선 지역>에 서 있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시 같다.  

화자가 어떻게 살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온 겨울을 떠돌고> 왔다는 것으로 보아 많은 고난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제 화자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이 오버랩된다.
이제까지 마음 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치고 성난 파도가 용솟음쳤다면,
이제 마음 속에 눈이 고요하게 내리고 있다.
세상은 지금 묵념을 드리는 것처럼 고요하다.
내가 살아온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가 가득 덮인다.
눈이 소복소복 덮이는 그 위로... 
시각적 효과를 위하여 '눈'이나 '겨울'이 동원되었지만, 사실은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10행에 다시 <바라보노라>가 등장한다.
다시 시각적 효과를 통해 화자의 심리가 펼쳐지겠지.
그런데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바라본다고 했어.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표현 기법이 쓰인 걸 알 수 있겠니?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서 말이야.
움직임은 뭔가의 변화가 보이는 상태잖아. 역설적 표현이지.
그럼 도대체 이 사람은 뭘 본걸까?
보이지 않는 속에서도 움직이는 것.
그런 것은 <자연의 이치, 섭리>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늘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지는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화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보인다.
바로 '하늘과 대지'의 섭리지.
대지가 고백하고 하늘이 울리는 함성을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화자는 수도자가 되는구나.

여태까지는 귀를 달고도 듣지 못했던 그 소리.
이제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고 외치고 있어.
화자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에 소복하게 쌓인 풍경을 보며 아까 얻는 <평화>로 가득하고,
                    안에서는 <어둠>만이 가득하단다. 

화자의 마음 안에 가득한 <어둠>은 보통 '어둠'이 상징하는 '악, 잘못, 죄스런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란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구별, 분별'을 버린 마음. '선악과 좋음이나 나쁨'을 버린 마음을 얻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밝은 곳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나뉘잖아.
그런데 마음 속에 어둠이 가득하다는 것은 <판단>할 필요가 없는 참된 <평화>의 경지를 말한다고 봐야겠지.  

여기서 <어둠>이 평소와는 달리 <평화로운 마음의 표현>이란 상징으로 쓰였는데,
이런 것을 <독창적 상징>, <창의적 상징>이라고도 부른단다.
뭐,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지?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그 어둠을 얻게 된 기쁨을,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반복하고 있지.
좀 이해가 되니? 

겨울같이 흔들리고 시달리던 삶을 살아온 화자에게
이제 눈길같은 평화와 어둠같은 고요함이 찾아온 것이란다.
얼마나 마음 속 깊은 기쁨이 샘속겠니?
얼마나 소리쳐 기쁨을 표현하고 싶겠니?
그런 것을 고요하게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로 표현하고 있는 거야.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온 고은 시인은 최근 몇 년째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곤 했지.
한국에서 그것도 <시>처럼 번역이 불가능한 장르가 수상하긴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아마 통일이라도 되면 시든 소설이든 수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만큼 노벨상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이란다.
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북의 김정일과 평화회담을 진행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거든.
고은 시인의 <머슴 대길이>는 전에 읽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인보>에서 10,000명의 개인사를 시로 적음으로써
이 민족의 삶을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시인이 고은 시인이다.
이제 고은 시인의 <화살>을 한번 읽어 보자.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고은, 화살)

어때? 짜릿하지 않니?
독재 시대. 저항의 기운이 열기처럼 솟구쳤던 그런 시란다.
물론 노래로 불리우기도 했지. 

'우리'라는 말을 처음에 쓰고 있구나.
동지 의식의 강조로 보인다.
<화살>은 <목표물>을 향해 조준하는 무기다.
군사 독재 정권이란 목표를 향해 <화살>이란 무기가 되어 날아가자는 선동으로 이뤄진 참여시지.  

화살이 가는 길은 정해진 길이 없단다.
허공을 뚫고 가야 한다.
앞서 누가 갔던 길도 아니다.
홀로, 외로이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야 한다.
마음만 조금 도와주는 그런 희생이 아니라, 온몸을 바치는 희생. 

저항하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감옥에 가서 썩을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서는 돌아오지 말> 각오로 투쟁해야 함을 드러냈던 시란다.
과녁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자. 그리고 돌아오지 말자. 

참으로 비감했던 시대였다.
장엄했던 시대였다.
가진 것. 명예와 부 같은 것들.
누린 것.
쌓은 것.
이런 것들을, 행복했던 다사로운 나날을 넝마처럼 버려야 하는 희생정신.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 뭣이라던가 /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
단 한 번 /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이런 말들은 이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구나.
일제 강점기에만 <속죄양>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시기건 어두운 시기에는 누군가의 피가 여럿의 행복의 제단에 바쳐지곤 했던 것이 역사란다.
그런 역사를 쉽사리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

<캄캄한 대낮>은 절망적 현실 상황을 역설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대낮조차 절망으로 캄캄하게 여겨진다는 말이지.
고은 시인처럼 스님이기도 했던 만해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도 함께 읽어 보자.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고 당신은 행인이란 비유가 시종일관하고있다.
나룻배는 강물을 건너 주는 도구다.
당신은 지나가는 사람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행인의 강 건넘>일 것이다. 

당신은 이 강을 건너야만 하는 행인이다.
그런데 나는 나룻배로서 당신을 건너게 해 줄 준비가 다 되어 있다.  

2연에서 흙발로 나를 짓밟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은 나를 고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에, 당신을 싣고 강 건너로 갈 것이다.
아무리 깊은 물 빠른 여울이라도 나는 기꺼이 당신을 안고 간다. 

이 <나룻배>는 참으로 희생정신이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참을성이 많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강을 건넘>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불교에서 뗏목의 비유를 많이 쓴다.
강을 건널 때 뗏목을 필요로 한다.
강을 건너고 나면 행인은 뗏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코 행인은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지는 않는다.
강을 건너면 뗏목은 버리고 계속 가야할 뿐이다. 

일제 강점기에 제국주의 일본 세력과 투쟁하기 위하여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를 세운 사람도 있고, 중국으로 가 <임시정부>를 세운 자도 있다.
이들의 <공산주의>, <학교>, <임시정부>는 모두 뗏목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뗏목이 아니다.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리는 것이다. 

민우야.
세상을 사는 일은 강을 건넘과 유사한 점이 많단다.
행인인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도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교>도 다니고 <졸업장>도 딴다.
그렇지만 <학교>나 <졸업장>은 뗏목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행인의 걸음걸이인 것이다. 비유가 너무 어렵니? 

3연에서 이 나룻배는 <당신을 기다린>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버린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간다고 했다.

낡아 가는 것은 <고난>이겠다.
일제의 고난, 삶의 고뇌.
그것은 날마다 날마다 되풀이된다.
그렇지만 당신이 언제든 오면, 나룻배가 필요하기에 당신을 기다린다고 했다.

나룻배는 바로 <불법><불도>와도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일 수도 있다.
독립운동가에게는 <독립군>과도 같은 단체가 될 수도 있고.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룻배>가 아니라 <행인>이라는 인식이다.
<나룻배>는 행인의 강 건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고귀한 떠받듦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용운 스님에게 있어 <불교>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민족이 이민족에게 짓밟히는 모멸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불교란 나룻배로 강을 건너가기를 강렬하게 소망하는 시로 읽을 수도 있겠구나.
나룻배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널 수 있는 도구다.
물론 당신은 강만 건너면 나룻배는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말이야.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이렇게 독립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시인일 수도 있겠다.
어떤 치욕도 헌신적으로 인내하는 <나룻배>의 비유는
<행인>의 물 건넘을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름대로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했고,
독재 정권 하에서는 또 다른 폭풍우를 견뎌야 했던 민족.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로 남은 민족.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을 일상으로 여기고 대립이 평상이 된 현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나룻배>가 필요하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팝송이 있었듯,
민우가 건너야 할 세상의 바다에 어떤 <나룻배>가 소용이 될지...
글쎄다.
혼자서 헤엄쳐야 하는 정도로 외톨이가 아님을 고맙게 생각하렴.
그리고 부모가 <나룻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때 유용하게 쓰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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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음'이라는 좀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 해 보자. 
얼마 전에 장석남의 <번짐>이라는 시에서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이렇게 읊은 구절을 읽을 기억이 나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느 순간,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멎는 순간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의학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단다.
그것조차도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야.
사람은 의식이 없이도 그러니까 뇌가 활동하지 않는 뇌사상태일 때에도 청각같은 것은 살아있대.
감각을 한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호흡이 멈추면 사람이 죽은 거냐면 
호흡이 멈추고도 심장이 뛰고 있는 경우도 있단다.
한국의 '법'은 '사망'을 '심장사'로 결정한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심장이 멈췄을 때를 죽음으로 친다, 고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지. 
그래서 '뇌사'이 경우, 뇌는 멈췄으나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면 살아있는 사람 취급을 하는 거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그것을 <번짐>으로 표현한 장석남도 멋지구나.
죽음의 순간은 그래서 번져 나가서 고인의 삶을 환하게 밝힌다.
죽고 나면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욕먹을 사람이었는지 평가받을 수도 있지.
죽음 이후에 안타까움을 많이 남기는 사람이 있고,
후련함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죽음에 대한 절창은 뭐니뭐니해도 천상병의 <귀천>이 아닐까 해.
우선 한번 읽어 보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아주 짤막한 시다.
제목도 <하늘로 돌아가리>하는 뜻의 귀천이야.
천상병은 서울대 상대 재학 중, 1967년 동베를린사건(동백림사건)을 날조(거짓으로 지어냄)한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의 피해자란다.
감옥에 다녀온 후 바보가 되어버린 바보 시인이지.
그래도 특이하게 결혼을 하여 아내가 <귀천>이란 찻집을 내서 먹여 살리곤 했다더구나. 

고문을 받으면서 죽음을 생각했던 것일까?
죽는 일은 <원래 우리가 온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인생을 <아침 이슬>에 비유하곤 한다.
풀잎에 가득 매달렸던 이슬은 햇살이 와 닿으면 금세 스러져 버리는 허망한 것이거든.
그래서 구운몽에서도 금강경의 한 구절을 빌려서 이렇게 노래했잖아.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고,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

인간의 모든 일은 꿈 같고, 허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이슬 같고 또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러함을 볼 것이다. 

삶은 뭐 엄청 장엄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왔던 어던 기슭에서 놀던 것이래.
그러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가면 되는 가벼운 것이지. 

3연이 절창이야. 삶은 곧 <소풍>과 같다는 발상.
비유는 '유사한 점'을 찾는 것이잖아.
소풍은 어때?
소풍을 2박 3일 가는 일은 없잖아.
금세 갔다 오는 것이고,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그런 거잖아.
재미도 조금 있지만, 사실은 시시하고 뭐 좀 그런 것. 
그리고 순진한 아이들 시절에나 가는 그런 것. 

이렇게 인생을 다 초월한 것 같은 관점을 <달관>한 것 같다고 표현하지.
이 시에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것도 한때일 뿐,
곧 스러져버리고 마는 존재로 '이슬과 노을'을 들고 있단다.
인간도 그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 

이렇게 '유사성'을 가져다 대는 것을 빗댄다고 하고, 어려운 말로 비유라고 해. 

실제로 화자의 삶은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는데 마지막에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하고 표현했어.
삶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태도가 잘 드러난 표현이라고 봐야겠지.
이 시의 주제라면, <삶에 대한 달관이 드러난 죽음에 대한 관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이 시가 감동을 준다면 어떤 면에설까?
시인의 인생이 비극적이었는데도 <아름다웠던 소풍>으로 미화하는 데 있을까?
시어의 단순성과 소박함이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시인의 서정을 더 북돋우고 있는 것 같다.

이 시에서 죽음과 삶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과연 '죽음'의 반대말이 '삶'인 것일까?
아니지?
여기서 죽음은 삶과 분리된, 구분된, 구별된 개념이 아니란다.
우리는 원래 어디에선가부터 인연을 맺어 왔고,
이승에 잠시 태어나 삶을 살았고,
삶이 끝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불교의 윤회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단다.
이 시의 화자가 죽음을 맞는다면, 글쎄, 슬프다기 보다 평화로운 얼굴로 맞을 것 같기도 하구나. 

다음엔 황동규의 <풍장>이란 시를 보자.
사람이 죽으면 장례의 풍습엔 여러 가지가 있대.
한국은 주로 매장과 화장을 하지만, 요즘엔 수목장이라고 나무 밑에 뼛가루를 묻는 일도 흔다단다.
몽골 사람들은 '조장'을 하기도 한대. 들판에 냅두면 새들이 와서 처분해 주는 것이지.
이 시의 풍장은 '풍화'되도록 시신을 자연에 내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 풍장 1) 

'풍장'은 한국의 '법'에 따르면 금지되어 있단다.
법을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되어있지. 그래서 시신을 들판이나 어디 무인도에 가져다 버리면 벌을 받는다.
좀 웃기지 않니?
어차피 시신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건데,
유언에 따라 산에 묻든, 바다에 뿌리든, 나무 밑에 묻든, 무인도에 내버리든...
인간이 얼마나 주관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단다.   

그런데도 죽으면 풍장시켜 달라고 한 것은, 그만큼 죽어서라도 자유를 맛보고 싶다는 이야기지.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성가신지 몰라.
그냥 가져다 묻는 게 아니란다.
무조건 의사의 <사망진단>이 떨어져야 하고,
그 뒤에 관에 넣을 수 있고, 장례식이란 거추장스런 절차를 거쳐야 하고,
마지막이란 이름으로 고인의 지인들이 와서 대접도 해야 하고...
손님이 오면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곡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2,3일 지나서 관을 싣고 화장장으로 가서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해야 한단다.
화장한 것도 일정 기간 항아리에 넣어서 납골당에 모셔야 한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그저 홀가분하게 죽고 싶다는 욕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옷도 전자시계도 그대로 달아 놓으란 이야기는 아무런 꾸밈없이 죽고 싶다는 희망이다.
사람이 죽으면 새로 '수의'라고 해서 옷도 삼베로 입힌다. 당연히 돈도 비싸지.

군산과 곰소는 전라북도의 지명이다.
무인도에 가서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살을 말리'고 싶은 화자의 소망.
세상의 구속, 질곡(수갑과 족쇄를 뜻하는 말, 구속과 비슷한 말, 어렵지만 꼭 알아 둬야할 말)이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화장도 해탈도 없이' 가고 싶은 화자는 세속의 가식적인 장례가 무의미함을 드러낸단다.
죽고 나서 종교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모두 '니미 뽕(영화 글러브의 용어 ㅋ)'이란 외침이기도 하다.

죽어서도 가죽가방 안에서 다리 오그리고 있다가,
뭍에 배가 닿는 기척에 시간을 떨어뜨리겠다는 등의 표현으로 보면,
죽어서도 아주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은 삶의 연관성을 조금 드러내고 있단다.
그렇지만, 육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형식적인 장례에 대하여,
인간의 삶은 과도하게 겉치레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천상병의 <귀천>이 순수한 아이가 깔깔거리듯 읊은 시라면,
황동규의 <풍장1>은 얽매이는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사가 귀찮아진 어른이 남긴 시 같지.
주제라면 <자유로운 죽음을 맞고 싶은 의지> 정도면 되겠지.
죽음이란 현실에서의 존재가 소멸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란 의식도 있고 말이야. 
'바람'이란 자연에 묻어 가고픈, <순환>의 의지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죽어서라도 자유롭고 싶다는 것을 보아,
살아서의 현실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것이었던지 추측해 볼 수 있다.
황동규의 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전에 배운 적 있잖아?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은, 문의 마을에 가서)

이 시는 시인이 동료 시인의 모친상을 맞아 찾아간 충북 청원군에 있는 문의마을에서
죽음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경건하고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는 시란다. 

우리는 보통 '죽음'이라고 하면 무서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서프라이즈 같은 데서는 '귀신'이 뭔가 신령스런 노릇을 한다고 설정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생명체는 드래곤 볼 일곱 개를 모으기 전까지는 모두 유한한 존재다.
죽음은 삶의 <번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또 죽음은 <소풍>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유로워지고 싶은 <절차>로서의 풍장을 소망하기도 하고 했던 거지.  

이 시에서 문의(文義) 마을은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시골마을에 가서,
거기까지 닿은 길이 꼬불꼬불 찾아갔는데,
거기서 또 산길로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런 유사성이 있구나... 하는 발견을 적은 거야.

동료 시인의 초상집이라고 찾아가는데, 힘들게 묻고 또 물어가면서 꼬불꼬불 찾아간 길 끝에 상가(喪家)가 있겠지.
그런데, 그 집이 목적지였지만,
그 목적지의 옆과 뒤에는 다시 길이 몇 갈래 펼쳐져 있었던 걸 보면서,
아, 삶의 종착역까지 우리는 힘겹게 꼬불꼬불 살아 가겠지.
그렇지만 종착역에 가 보면, 거기가 끝이 아닐 거야.
거기서 시작되는 길이 다시 몇 갈래 펼쳐져 있을 거야.
이런 오묘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란다. 

여기서 <길>은 중의(重義)적으로 쓰였지. 두 가지 뜻으로...
하나는 화자가 걸은 길이고, 또 하나는 인생길이고... 

죽은 뒤에도 길이 이어진단다.
대신에 삶의 길은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그것이지만,
죽음의 길은 길이 <적막>하겠지.
<귀를 닫고> 쓸쓸하고 비정한 길은 <추운 쪽>으로 뻗어 있단다.
그 <적막하고 추운 길>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 되겠지. 

죽은 자는 그렇게 떠나보내고,
그러나,
살아있는 자들은 그 길에서 돌아가 집으로 간다.
거기서 고인의 유품을 태워 재를 날리지.
그러다 문득 팔짱 끼고 바라본 산.
이제까지 <먼 산>이라 생각했던 앞산이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초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겠지.

눈에게 묻는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하고.
죽은 이의 무덤을 눈이 포근하게 덮어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눈은 살고 있는 사람의 집도, 길도 다 덮어주고 있기도 하잖아.
그러니, 눈은 죽음과 삶을 모두 덮어주는,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포용하고 안아주는> 그런 시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2연은 마찬가지 모티프로 보면 될 거 같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은
삶이 번져 죽음이 되는 것과 한치도 다름 없는 표현이구나.
죽음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기에, 사절(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었음인데,  
저만큼(거리감) 가다가 삶을 되돌아보게 되겠지. 

죽음의 위치에서 삶을 되돌아 보니,
아, 참으로 모든 것은 <낮>구나.
참으로 보잘것이 없구나.
살면서 그토록 애걸복걸 매달렸던, 인간관계, 명예, 재산, 지위,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낮은 것>이었구나.
이렇게 한 순간에 <겸허함>을 되찾게 한 공간이 <문의 마을>이었다. 

거기에 눈이 쌓인다. 
살면서 참으로 <돌에 맞기 싫어> 그렇게 애를 태웠던 날들이었는데,
인간관계에서, 명예, 재산, 지위, 그 모든 것들에서 돌을 맞기 싫어 공을 들였는데,
삶을 떠나고 보니,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이 시의 주제 의식은 <삶과 죽음이 하나의 실체>라는 깨달음이 되겠다.
죽음을 통해 삶의 경건함을 깨닫고, 겸허함을 되찾는다는 이야기겠다. 

죽음은 참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누구도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겠지.
이런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저 부유하게 <잘살기>만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잘 살기>를 위해 노력할 것인가?
이런 철학적 사색의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일일 게다. 

입춘이 지나더니 날이 많이 풀렸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물질성을 가진 존재라고 그러지.
사색하는 인간의 삶이 온 건물에 울리는 파이프오르간 소리처럼 웅장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사색으로 얻어진 자기의 입장, 신념, 소신 이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단다.
아빠의 시 읽기가 지향하는 바가 그런 것이기도 하고...
환절기일수록 감기 조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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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06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죽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 시인의 말마따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밤이네요.
덕분에 좀 편안해졌습니다. 설은 잘 쇠셨죠 글샘님?^^

글샘 2011-02-06 23:05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런 걸 편안해 하시는군요.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편안한 날도 있죠.
후와 님도 설 잘 쇠셨겠죠?
 

내일이면 설날이다.
원래 음력설을 쇠던 것이 조선의 풍습이었겠지만,
을미사변 이후 개혁을 한답시고 양력만 쓰라고 억압을 하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러고 놀았다.
까치가 왜놈을 지칭하게 된 사연이야 정확하지 않지만 그런 사연이야 늘 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독재를 하면서 구습을 쓸어버린다고 해서 음력설을 폐지했다.
법적으로 휴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양력설(신정)은 쉬고, 음력설(구정)엔 출근을 하는 쇼가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음력설날 아침 일찍 차례를 올리고 출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는 '민속의 날'이란 희한한 이름으로 설날이 부활되었다.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는 아예 '설날'과 '추석'을 3일 연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추석 무렵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이 원래 공휴일이어서
대기업의 불평이 많아지자 국군의 날과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제외시켜 버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휴일 하나에도 역사적 굴곡이 담겨 있단다. 

오늘은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이 잘 각인된 시를 몇 편 보자.
뭐, 지금이라고 넉넉하진 못한 살림들도 많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궁핍한 나라들 축에 들었으니 그런 상황을 그린 시들이 많다. 

우선 박용래의 '시락죽(시래기죽)'을 읽어 보자.

바닥난 통파
움속의 降雪(강설)
꼭두새벽부터
降雪(강설)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木手巾(목수건) (박용래, 시락죽) 

팥죽을 끓여 먹던 풍습이 있던 날, 동짓날. 양력 12월 22일.
통파(대파)가 바닥나고 만 저장고(움) 속에 눈이 내렸다. 

 

꼭두 새벽부터 마당의 눈을 쓸고 시락죽(팥죽이 아닌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이나 끓여야 하는
후살이하는 여인(이 시에서는 박용래의 누이를 칭한다)의 고단한 삶을
목수건(무명으로 만든 수건)에 집약시켰다.  

박용래는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는 평이 많다. 
이 시는 짧고 간결한, 지극히 절제된 시어들의 나열 속에서 느껴지는
후처 사는 여동생의 가난함을 안쓰러이 지켜보는 오라비의 아픈 가슴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동짓날 / 시락죽이나 / 끓이며 / 휘젓고 있을... 후살이의 / 목수건. 

그저 마음이 아프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마음은 분명히 두뇌에서 인식하는 것인데, 실제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다음엔 같은 시인의 '저녁눈'을 읽어 보자.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저녁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 이야기다.
눈발이 '붐빈다'고 했다.
눈송이가 바람에 설렁설렁 날리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휘날리는 풍경을 이렇게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
박용래의 <소묘법>이 잘 드러난 시다.
마치 동영상으로 마구간 호롱불에 붐비며 휘날리는 눈송이,
그래서 조랑말 발굽 아래 붐비는 눈송이가,
여물 써는 소리와 함께, 마당 가 빈터로 몰려 다니며 붐비는 모습이 비쳐지는 듯한 느낌이 잘 살아 있다.
뭔가 마음 속이 흐뭇한 풍경이다. 설날이라도 된 것일까? 

요즘 시인 중에 함민복이란 시인이 있다.
그는 강화도 동막골(막다른 동네란 뜻)이란 곳에 산다.
시를 쓰기만 하여 먹고 사는 사람이라 가난하다.
그렇지만 그는 가난을 천직인 양 그저 그렇게 산다.
자기는 가난하다고 시를 쓰며 산다.
그렇지만, 돈 없어서 죽겠다는 소리 안 내고 산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그에게 시는 곧 '밥'이다.
그런데 시 한 편 써봤자 3만 원 밖에 안 준다.
하루에 시가 한 편씩 나오는 것도 아닌데...
참 보잘것 없는 액수다. 
그런데도 화자는 그 '불행'을 '행복'으로 금세 바꿀 줄 아는 마법의 혜안을 가졌다.
쌀이 두 말(20되)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적은 돈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든든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시집 한 권을 쓰려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이십 년이 걸린다.
그런데 그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참 보잘것 없는 액수다.(요즘엔 칠천 원 정도 한다.)
그렇지만 삼천 원이면 국밥이 한 그릇인데 하고 생각해 보면,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반성해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 그런 사람이 달인이 아닐까?
가고 가도 계속 길 위에 놓인 사람.
계속 가고 있는 그런 사람. 

시집 한 권 팔리면 삼백 원 남는다고 속이 상하다가도,
박리(낮은 이윤)여서 돈이 안 되니 기분 나쁘다가도,
그 돈이면 소금 한 됫박 살 수 있으니,
소금은 세상을 상하지 않게 하는 존재고, 또 자신의 속도 상하지 않게 해 준다는 이야기다. 

부정적인 현실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운용'을 아는 지혜의 눈이 본 세상 이야기다.
세상은 <그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더럽다고 욕하면 항상 부정적으로 보인다.
불만투성이로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바꿔먹으면 세상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이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한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고,
세상에 오로지 '나의 마음'만이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세상이 객관적으로 여기 놓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주관과 객관 같이 복잡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인데도,
시인은 간단하게 말했다.
세상이 아무리 허름하게 자신을 홀대해도,
자신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반전의 어법을 지닌 시인이다.

그의 시 중에 <눈물은 왜 짠가>는 산문시다.
수필이나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있는 듯 한데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살아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양념장)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제목이 '눈물은 왜 짠가'이다.
그런데 시이기 때문에 눈물이 짠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게 된 경위를 죽 늘어놓고는,
가난을 탓하거나 세상을 탓하는 논설을 가져다 대지 않고서,
눈물은 왜 짠거야?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여 이모네 집에 모셔다 드리려고 가는 길에,
고기를 먹으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어머니가 고깃국을 사먹자고 갔던 데서
가난하지만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고 울부짖던 신경림의 이웃집 청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일본의 소설 <우동 한 그릇> 이야기처럼 주인 아저씨는 슬그머니 깍두기나 가져다 주는 인정을 베푸는데,
화자는 가난에 속이 상하고,
돈 없으면 인간적으로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에 속이 상하고,
돈 없어도 시 잘 쓸 수 있는 시인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에 금이 가서 속이 상한데,
그걸 드러내 놓고 표현할 수 없어 그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눈물은 왜 짠가? 

그렇지만 그의 이 한 마디에
자본이 자본을 낳고,
자본이 인간을 짓누르는 세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서정주는 <무등을 보며>에서 '가난은 남루(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화자가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고 살려고 해도,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고,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사회다.
함민복의 시는 그런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이 시는 박재삼의 '추억에서'의 '엄마 생각'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 시다.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물이 깔리는 해다진 억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삼, 추억에서)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화자는 어린 아이다.
열무 삼십 단이면 참 보잘 것 없는 상업이다.
밭에서 기른 열무를 삼십 단 팔려고 시장에 간 엄마는 해가 져도 안 오신다.  

해가 시들었다는 것은
해가 지는 시각적인 표현을 시들시들한 감각(촉각)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표현 되시겠다.
(시각의 촉각화)
해가 지기 시작한 것도 오랜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안 오신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겼다.
차가운 밥은 뭔가 환영받지 못한다.
따끈한 밥, 고슬고슬한 밥의 풍족함에 비하자면
찬밥 신세는 왠지 서글프고 서럽다.  

빨리 숙제를 하면 엄마를 기다릴 시간과 어두움이 두려워서 천천히 숙제를 한다.
요즘이야 투니버스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어린이의 친구들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예전에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집안엔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들리는 것처럼 환청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안 들린다.
여기서도 청각적 심상을 배추 잎이란 시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심상이 쓰였다.
(청각의 시각화)
공감각적 표현은 언어를 훨씬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心) 속에 생생한 상(像)을(심상, 이미지) 떠올리게 한다. 

어린 마음은 어둡고 무서워 진다.
창에는 금이 갔는데... 가난한 집이다.
그리고 유리창 깨진 것을 갈려면 아빠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빠도 없는 것 같다.
이제 저녁인데 고요히 빗소리도 들린다.
화자는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며 운다. 

'찬밥'은 '빈방'과 어울려 쓸쓸함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쓸쓸함의 심상을 더 강하게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는 시어가 직렬 연결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윗목'이다. 

내 유년을 떠올리면 '찬밥'처럼 '빈방'에서 훌쩍이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마치 싸늘한 방의 '윗목'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시인의 어린 시절,
지금도 생각만 하면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가난과 쓸쓸함의 트라우마(무서운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가 떠오른다.
그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시어가 바로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인 것이다.

간결한 시어를 통하여 건조한 시 속의 어린이는 참 외롭고 쓸쓸하다.
기형도 시인의 시들은 이렇게 퍼석퍼석한 뻥튀기처럼 쉽게 바스라질 것 같은 촉감을 가지고 있다.
그 뻥튀기는 고소한 냄새나 바스락, 경쾌한 소리를 내는 뻥튀기가 아니다.
칙칙하고 퀴퀴한 냄새와 눅눅함으로 무장한,
가난의 뻥튀기랄까.
다음엔 기형도의 잿빛 시를 몇 편 살펴 볼게.
그의 시에는 이런 개인적 가난의 경험과
시대적 어두움(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독재시기)도 함께 작용한 것들이어서
참으로 눅눅하고 습기가 가득한 것들이다. 

요즘 나오는 싸구려 커피는 조금 경쾌한 느낌이나마 들지.
청년 실업의 시대가 풍기는 비애가 느껴지는 장기하 노래보다도 훨씬 암울했던 시대를 노래한 어두운 시인 기형도.
그 이름을 기억해 두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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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마음이 바빴구나.
선생님들 대상으로 힘든 강의가 있어서 그거 마치고 나니깐 힘이 빠졌던 모양이다.
오늘은 송수권의 시를 몇 편 읽어 보자.
송수권의 시에서는 '설움', '울음' 이런 '한 恨'이 많이 묻어나는 시들이 제법 있다.
우선 그의 '산문에 기대어'부터...
'산문'은 산에 있는 문이니, 절의 입구를 뜻하는 문이 되겠다.
절문에 기대어 있으니 무슨 생각엔가 잠긴 화자가 등장하겠지.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 물 속에 비쳐옴을 (산문(山門)에 기대어)

'서프라이즈 진실 혹은 거짓' 같은 데 보면 느닷없이 사람이 죽기도 하고,
남은 가족이 슬퍼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
실상 우리 주변에서 죽음이란 사건을 잘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주변에서 당황스런 뜻밖의 죽음을 겪게 되면 큰 충격을 받곤 한단다.
엄마도 작은 이모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한 5년을 정신적으로 방황했던 일이 있어. 

옛날에 어떤 어머니가 계셨는데,
무지무지 사랑하던 자기 아들을 그만 읽고 말았대.
마침 그 동네에 부처님이 지나가고 계셨어.
그래서 그 엄마가 부처님께 하소연을 했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자식을 앞세웠냐고...
도대체 왜 내 자식이 죽었어야 되냐고...
자식을 다시 살려 줄 수 없겠느냐고...
그랬더니 부처님이 이 마을을 다 다니면서, 누구도 죽지 않은 집이 있으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했지.
그래서 어머니는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아무도 죽지 않은 집이 있는지 샅샅이 물으며 다녔대.
그리고 깨달았다. 죽음은 어느 집에나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송수권이 군대갔다 나왔을 때 남동생이 죽었다든가 그런 사연이 있었대.
단짝으로 붙어 지내던 피붙이가 어느 날 죽었다는 그런 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거야.
엄마가 그랬거든. 엄마가 대학을 이모랑 같이 안동에서 다녔잖아.
둘이 붙어 살면서 얼마나 친했겠어. 그랬는데 언니가 어느 날 없어졌다 생각해 봐.
정말 숨쉴 때마다 모든 생각에서 그 죽은 사람 생각밖에 더 나겠냐고.
잠을 자면 꿈에 나와서 괴롭고... 눈을 두면 그곳마다 추억이 떠올라 괴롭고...
밥을 먹자니, 너는 없는데 나는 여기서 밥을 먹는구나... 그래도 살겠다고... 이러고 가슴이 미어지고... 

그런 마음을 쓴 시야. 산문에 기대어. 
산문에서 바라본 죽음. 그러니까, 산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지점이 되는 것이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처럼, 단절의 기능. 그리고 연결 또는 소통의 기능.
산문 이쪽은 이승, 저쪽은 저승으로 나뉘지만, 거기서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
'가을 산 그림자(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은
바로 산 그림자를 보고 동생의 눈썹을 떠올린 형상화일게다.
아니면, 기러기라도 날아가는 그림자가 두엇 비쳤는데, 그게 누이의 눈썹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아~ 아까 내가 쓴 거 기억나?
나는 지금도 여기 살아서 보고 있구나. 이런 원망섞인 목소리. 나는 밥을 먹고 있구나... 이런 거. 

깨끗한(정정한) 눈물을 <절제>하는 모습을 '돌로 눌러 죽이'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 눈물 흘린 날들을 따라 가면, 즈믄 밤(천 날, 千日)이 지났구나. 누이가 죽은 지 3년이 되었단 이야기야.
<강이 일어선다는 말이나,
강물 깊이 가라앉은 말씀이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온다는 말이나,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이나
산다화(동백꽃) 한 가지 꺾어 건네이던 것>은 세상 모든 것에서 누이의 죽음을 떠올렸던 슬픈 날들에 대한 이야기겠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그렇게 잊지 못하던 누이의 모습 말이다. 

2연에서 기러기가 보이는구나. 그걸 보고 누이의 눈썹이 떠올랐겠지.
이제 누이의 무덤에라도 왔나 보다.
내가 한 잔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니 네가 마시렴.
너와 나는 오랜 시간 지나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게 될 날이 있겠지?
죽은 사람과는 이렇게 추억을 통해서도 만나지만,
미래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도 하지. 그런 사상을 <윤회>라고 한단다.

마지막 연에서는 '누이야 너는 아는가~'하고 자꾸 부르면서
애닯은 마음을 심화하고 있단다.

누이의 죽음을 <애상적>으로 <회한어린 독백체>로 추억하고 있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가 화자의 슬픔을 또렷이 그려내고 있구나. 

박재삼의 <밤바다에서>도 비슷한 모티프를 가진 시란다.
모티프는 <시를 쓰게된 동기>같은 말인데, 영어의 모티브와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누님'의 부재를 슬퍼하는 화자가 등장하지.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 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박재삼, 밤바다에서)

1연에서 누님의 치맛살 곁에서 누님의 슬픔을 함께하지 못해 바닷가에 선 화자.
바닷가에 서면,
가슴 울렁거리고 눈에 눈물 어린 화자.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를 보며 <차라리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고 싶다고 한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니?
절친하던 육친의 상실이 불러오는 가슴 울렁이는 육체적인 슬픔 말이야.
그 슬픔을 말로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하늘의 별처럼 많겠지만,
아파할 수밖에 없는 화자.
3연에서 누님은 잠드는 섬처럼 형상화되고 있어. 섬은 저만치 멀리 있는 거잖아.
나는 섬에 도달하지 못하는, 그러나 끊임없이 섬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가늘지만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서러운 심사가 잘 드러나 있지. 

다음엔 3년 전에 수능에 출제되었던 송수권의 <지리산 뻐꾹새>를 한번 읽어 보자.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꾹새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智異山下(지리산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智異山中(지리산중)
저 連連(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江(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南海群島(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智異山下(지리산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細石(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지리산 뻐꾹새)

이 시는 <슬픔의 본질>을 탐구한 시다.
도대체 나의 이 '슬픔'은 어떻게 생겨서 어떻게 변화하여 오늘까지 이른 것인가에 대한 탐구.
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이야기가 <산문에 기대어>에서 나왔잖아.
그런데 그 슬픔은 마치 뻐꾹새 울음이
<오랜 세월 지나> <많은 공간 거쳐> 지금 나에게는 어떤 하나의 경지.
시 속에서 진하게 우려나 있고, 삶의 모든 곳에서 진한 이미지로 각인되어버린 그런 마음을 그린 거야.  

1연에서 울음을, 많은 울음을,
석 석 삼년 = 3*3*3 = 27년이니깐 한 30년 울었던 거다.
그 세월을 더 지나고 나서야 나는 길뜬(게으른) 서러움에 적응이 되었다는구나.
서러움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거지.
이 앎은 지적인 습득이 아니라, 그저 설음에 익숙해져버린 상태겠구나.
그리고 그 슬픔의 원인은 <한 마리의 뻐꾹새> 였음도 이제 알겠단다. 

그 뻐꾹새의 울음은
2연에서 智異山下(지리산하)
3연에서 智異山中(지리산중) 거기서 흐른 물이 강이 되어 다시
4연에서 남해로, 섬들을 밀어 올리고
5연에서 지리산 (꼭대기) 細石(세석)에까지 오랜 시간과 긴 거리를 거쳐 뭔가를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나의 슬픔의 실체였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뻐꾸기는 '한과 설움을 지닌 원혼이 뻐꾸기로 환생'한다는 설화에서 차용한 것 같다.
또 이 시에서는 '알았다’, ‘보았다’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주제라면 <한과 설움을 극복한 이후에 승화된 삶의 아름다움> 같이 쓸 수 있겠다.
아니면 <뻐국새 울음을 통해 깨달은 설움의 근원 탐구> 정도거나...

이 시어 덧붙인 해설을 한번 읽어 보자.

민족의 원형적 심상을 노래한 절창

우리민족의 한의 정서나 슬픈 비극적 체험의식을 가장 잘 나타내줄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의 새가
바로 접동새와 뻐꾹새다. 접동새의 한스런 슬픔의 정서가 김소월의 <접동새>에서 절창되었다면.
송수권의 <지리산 뻐꾹새>는 뻐꾹새에서 환기되는 그런 점을 절창하고 있다.

이 시의 문체적 특징은 서술체로 되어 있고 . 시적 화자인 "나"(주어)가 보고 느낀 점을
'알아냈다" "알았다" "보았다"(3연, 4연, 5연)라는 술어동사로 각 연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각동사와 시각동사로 통일 되어 있고 . 더 나아가 시 전체 분위기를 '운다'라는 청각어가 압도하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가 쉬운 장점이 있다.

1연과 2연은 여러 산봉우리에서 울어대던 뻐꾹새 소리를 처음에는 여러 마리가 우는 울음인줄 알았으나
실상은 한마리의 뻐꾹새 울음인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 소리 는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긴 한 마리의 울음이었다는 사실 확인이다.

이는 곧 미당 서정주가 국화꽃 개화의 비의(秘儀)를 ‘한’송이에다 압축시킨 숫자개념의 기법적 효과와 같다.
여러 송이가 아니라 오로지 ‘한’송이요, 여라 마리가 아니라 ‘한’마리로 압축․극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음 3연, 4연, 5연으로 오면 이미지의 공간구조가 확대된다.
즉 산에서 울던 뻐꾹새의 울음이 3연과 4연에 와서는 드디어 눈물이 되어 섬진강을 이루어 남해로 흘러들고,
마지막 5연에서는 그 눈물이 피눈물이 되어 철쭉 꽃밭을 벌겋게 다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뻐꾹새를 노래했다고 다 절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가 절창일 수 있는 점은 민족의 원형적 심상을
이미지의 전이(轉移)와 변용이란 시적 장치를 원용해 비극감을 압축․극대화 시켜줌과 동시에 덤으로
민족사(6․25)의 비극적 공간이란 사회학적 상상력까지 자극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이유식 

암튼 도대체 이 슬픔이란 것은 어떻게 형성된 것이냐? 그것을 탐구한 결과를 시로 형상화한 거라고 보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여승>이란 시를 한번 보자.
시에서 <여승>이란 소재가 많이 쓰이지?
교과서의 '백석의 여승', 또 '조지훈의 승무'에서 두 뺨이 고와서 서러울 정도로 이쁜 여승 ㅋ
이 시에서의 여승은 어린 아이가 바라본 아름다운 '여승'이란다.
어려도 사내는 사내다. ㅎㅎㅎ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女僧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릿대를 든 女僧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小僧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되돌라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뒤로 나는 女僧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女僧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事物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詩를 쓴다. (여승)

어린 시절의 '봄날'을 회상하고 있지.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낀 풍경은 <병자>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조금 서러운 풍경이다.
고뿔은 <코+불>에서 나온 말로, 감기다. 여기서는 심한 병을 앓는 아이를 뜻한다.
이 아이는 창호지에 <구멍>을 내서 세상과 통하고 있다.
그 <구멍> 밖에서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고깔 쓴 여승>이 있지.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꼭 어떤 상황이 그대로 기억에 담겨있는 건 아니란다.
어떤 감촉이나 향기만으로도 한 순간이 오롯이 살아날 수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라는 작가는 어린 시절 먹던 <마들렌>이란 빵 냄새를 떠올리면서 7권이나 되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썼단다.
김종길의 <성탄제>에서도 어린 시절의 <서늘한 아버지 옷깃>과 <새빨간 산수유 열매>로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고 있잖아.
여승의 음색(목소리의 아름다움), 설움에 진 눈동자,
그 당시의 낮달까지 아직도 아련하게 마음에 잔상으로 남아있구나.
(낮달에 포름한 향내가 풍기니 공감각적 심상이 있다.)
참 강인한 인상이었던 모양이다.  

어린 화자는 너무 마음이 안타깝고 아쉬워서
바리때(스님의 밥그릇, 4개가 한 벌이 된다)를 들고 시주를 얻으러 다니는 여승을 따라 나선다.
그걸 알지만 그저 나아가던 여승은 마을 입구 네 거리에 가서야

(도련님, 小僧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보셔얍지요.)

이렇게 합장을 한다. 아마도 괄호를 한 이유는 환청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마음 속 서늘한 기억이 화자에겐 오래오래 남아있던 것인데,
화자는 아직도 그 때의 순수함을 추억하고 있단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事物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詩를 쓴다. 

화자에게 그 마음.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 넘쳐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그것이 이 시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어린 시절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 넘치는 시 세계 추구> 이런 것. 

민우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마음을 다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그 세계가 조금씩 쪼개져 나가면서 어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만,
또 그 세계의 온기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시란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내가 해보지 않은 경험의 속내까지 읽어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단다.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아프고 쓰라린 추억들을 담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시를 읽으며 배워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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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중학교 교과서에 '파랑새'란 시가 실렸더랬다.
한하운은 '한센씨 병' 환자였단다. 나환자라고도 하지.
경상도 사투리로 '문둥이'라고 하던 병이었다.
하늘이 내린 병이라고 해서 '천형'이라던 문둥병은
이제 거의 발병이 많지 않은 질병이 되었지만,
못먹고 헐벗던 시절엔 가끔씩 이 병에 걸리곤 했단다. 

그러면 마을에서도 격리되고 이 세상에서 버림받아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마을에서도 박대받을 일만 남은 인생들에게 삶이란 죽음보다 못한 것이었을 게다.
일제는 이 나환자들을 전라남도 고흥의 '소록도'란 섬에 격리할 생각을 하고 모든 나환자를 거기로 모았다.
질병 치료보다는 격리를 위한 목적이 크겠지.
그곳의 참상을 그린 소설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란 작품도 있다. 

나병은 느닷없이 살이 썩고, 신경이 삭으면서 손가락 발가락이 짓물러 덜어지고
눈썹이 빠지면서 얼굴에 버짐같은 것이 피는 병이다.
그러자니 먼 길을 걷노라면 발가락 몇 개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 힘든 삶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하운의 노래는 목이 메인 울음을 대신한 시였을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파랑새)

아주 간단한 시다.
그렇지만, '파랑새'란 한 단어로 '나병환자로서의 비통, 병고, 저주의 사슬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를 형상화 했다.
나환자에게는 성한 인간들의 세상이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파랑새가 되면 푸른 하늘, 푸른 들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담겼다.

거기서 '푸른 노래, 푸른 울음'을 자유로이 울겠다는 것은,
현실이 얼마나 부자유스러운지를 절절히 읊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의 시 중에서 노래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바로 <보리피리>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매 연이 <보리피리 불며~~ 그리워>로 되어 있다. 피 - ㄹ 닐니리는 후렴이지.  

오로지 '그리움'만이 노래되어 있다.
고향의 봄언덕, 어린 시절...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니 얼마나 그리울까.
'인환의 거리'는 '임금이 살던 경기 지역'에서 온 말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쉬기를 좋아하지만,
또 깡촌에 가서 처박혀 있으면 도시가 그리울 것이다. 

마지막 연에
방랑한 산하가 <얼마나(기幾)> 많았는지...
그 눈물 지으며 넘던 언덕은 얼마나 많았던지...
형상화 되어 있다. 
이 시로 한하운은 <보리피리 시인>이란 별칭을 갖게 된다.

기산하의 '기'는 중국어 또는 한문에서 '몇'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의문사로 보면 된다. 중국어로 '지'로 읽는다.
몇 명~ 이러면 '지 웨이 幾位' 이렇게...
그런데, 이 한자의 쓰임이 특이한 것이 있다.
수학에서 쓰이는 '기하 幾何'란 말.
'몇 기'에 '어찌 하'가 쓰인다. 붙이면 '몇어찌'가 된다.
이 말은 뜻으로 풀이하면 안 된다.
기하라는 말은 기하학의 영어 어원 'geometry'를 음차한 것으로 봐야 된다.
소리만 빌린 것이지.
'지오메트리'에서 '지오'만 따온 것이다. 그걸 한자로 '기하'로 쓴 것을 일본에서 다시 '기하'로 쓴 거지. 

한하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청운의 뜻이 어허,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겨진다.
나를 사로잡는 것,
그것은 울음 속에서 터지는 모든 운율이 나의 노래가 되고 피리가 되어 조국땅 흙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다음은 <전라도 길>이란 시를 읽어 보자.
소록도가 전라남도 고흥에 있어서 생긴 시일 것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전라도 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포장도로가 아닌 <붉은 황톳길>은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이 걸어야 하는 유형(流刑)의 길이다.
숨막히는 더위도 문둥병을 얻은 화자의 운명적인 고통을 더욱 강화한다. 

'우리들 문둥이끼리'란 표현에서 동병상련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하루를 걷는 '쑤세미 같은 해'는 '거칠고 힘든 하루 '가 저물어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들의 '쩔름거리며' 걷는 길은 문둥병을 가진 화자가 감내해야 하는 운명적 고통이 담긴 표현이다.

지까다비는 일본식 '작업화'다.
걷다보니 '발가락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오히려 담담하다.
그래서 슬픔이 더 짙은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벗어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을 이렇게 표현하니 더 슬프구나.
가도가도 천 리... 아~ 이 먼 길은 그저 고단한 길이 아니라,
천형의 병을 앓고있는 이의 바스락 바스라질 듯한 가슴이 그대로 묻어난다. 

절망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지만, 그 슬픔이 금세라도 묻어날 것 같다.
비극적 운명은 떠돌이(유랑)의 여정에 비유되어 형상화되고 있다. 

사람이 '잘사는' 일과 '잘 사는' 일이 있다.
앞의 것은 그저 풍요롭게 사는 것이고, 뒤의 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잘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쓰지는 않아야 하겠다.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가 아닐까? 

이런 시를 읽으면서,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한번 되돌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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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24 2014-08-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은 잊혀진 나병, 소록도 등 그 시대의 아픔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써 표현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가슴이 찡하게 젖어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