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적의 아들 정조

 

역린, 이해를 돕는 역사책.

 

'비극 3대' 시리즈 1권. 누구보다 고독했지만 백성을 가장 사랑한 애민의 군주, 비극 3대, 인간 정조를 말한다. 영화 [역린]을 백배 더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설민석의 역사책이다.

 

2. 소소한 행복

 

우리 시대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이 '갈망 3부작', '자본주의 폭력성을 비판한 3부작' 이후 '논산집' 호숫가를 쓸쓸히 배회하며 완성한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으로 돌아왔다. <소소한 풍경>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스승인 소설가 '나'의 제자인 ㄱ이 스승에게 간만에 전화를 걸어 난데없이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ㄱ은 어렸을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었으며,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여자로 지금은 '소소'시에 내려와 살고 있다. 남자인 ㄴ 또한 어렸을 때 형과 아버지가 모두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요양소에 가 있으며, 그 자신은 평생 떠돌이로 살아왔다.

또 다른 여자 ㄷ은 간신히 국경을 넘어온 탈북자 처녀로, 그녀의 아버지는 국경을 넘다가 죽고 어머니는 그녀가 증오하는 짐승 같은 남자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녀 자신은 조선족 처녀로 위장해 어머니에게 돈을 부쳐야 하는 고된 삶을 살다가 소소까지 찾아들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파르게 넘어온 자들이 소소에 머무르게 된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소소한 풍경>에서 펼쳐진다.

 

3. 스님, 계십니까

 

사찰과 암자 25곳을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참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하기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자연이 있고, 의미가 깊은 25곳의 사찰과 암자와 옛 절터를 골랐다. 늘 사람에 치이며 살지만 외로운 도시 사람들에게, 인적 없는 산중에서 오히려 더 진정한 사람의 내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4. 저지대

 


  줌파 라이히는...

 

  다 읽고

 

  리뷰를 하나도 못쓰고 있다.

 

 

 

 

 

 

 

 

 

5. 음악의 기쁨

 

 

 

 

 

 

 

 

 

 

 

 

 

 

 

 

졸졸 흐르는 샘, 파도의 노래, 갈대를 스치는 바람 소리로 돌아가죠. 이 모든 소리에 젖어들고, 자연에 흠뻑 빠지는 것도 물론 기분 좋죠. 이 수동적인 즐거움을 라모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반 베토벤과 클로드 드뷔시가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음미했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즐거움을 느끼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지만요. 드뷔시는 “자연에 새겨진 음악을 해독해야 한다”고 했었죠. 땅과 하늘의 허다한 소리들을 해석하고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음악은 무엇으로 하는가?_ 우리는 왜 음악을 하는가?

 

6. 고병권, 괜찮은 책이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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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자국어로 문예활동을 해서 기념할 만한 세르반테스의 기일을 '책의날'로 삼았다는데,

 

셰익스피어도 이날,

몽고메리도 이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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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고 나면 다시 보기 싫은 책은 안 되고, 그렇다고 난쏘공처럼 가슴 아픈 책은 안 되고, 중립을 지키면서 개념서 스타일인, 이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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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읽기 쉬운 텍스트는 아니다.

식민지 알제리의 한 청년이 횡설수설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횡설수설이 오역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신선하다.

 

새로운 <이방인>이 나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번역된 것이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펴낸 바 있는 이정서가 번역을 맡았다.

 

아, 김윤식은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하나의 성채였다.

그의 표절 문제를 다룬 사람이라니,

이 남자, 충분히 불온하다. ㅋㅋ

불온한 남자는 멋지다.

비록 그의 논리가 온갖 기득권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지라도...

그래서 결국 피를 흘리며 장렬하게 전사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불온한 전사는 그럴수록 더 멋진 법.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기묘한 역설을 안고 있었다.

이방인의 말뜻 그대로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와서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작품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이방인>이 얼마나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인지는 당시 원고를 처음 접했던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날 오후 <이방인>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갈리마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_게르하르트 헬러(허버트. R. 로트먼 저, 한기찬 역, 한길사, <카뮈, 지상의 인간>, 481쪽)
그렇다면 저들이 느꼈던 저 감동을 우리는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문제는 번역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역, 민음사, 135쪽)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이정서 역, 새움, 161쪽)


이번에는 불어권의 성채를 공격한다.

불어 번역의 바스띠유 김화영의 번역을 웃기는 짜장으로 치부한다.

암튼,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번역의 문제를 쉽게 손댈 순 없는 것. 문제 제기는 신선하다.

 

 새움판 새 번역 <이방인>에서 역자는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는 문장을 근거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라고 '탄핵'했지만, 나는 '사이렌 소리' 대신에 '뱃고동 소리'라고 옮길 만한 근거도 있으며 그렇게 옮긴 번역본도 적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면,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뱃고동파'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번역은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고 단언할 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그런 번역이라면 구글이 더 잘할 수 있다). <이방인>의 인용 준거가 되려는 번역이라면, 좀더 많은 걸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로쟈)

 

이쯤 되면, 점입가경이다.

인터넷 서점 최고의 서평꾼 로쟈가 그를 깐 것이다.

이번엔 알라딘 서재에서 '외롭고 웃긴 책방'이란 사람이 로쟈를 깐다.

은근한 반박이 아니라, 정면 반박이다.

 

이쯤이면 로쟈의 지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지적이 새로운 번역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경스럽다.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로쟈가 좋아하는 지젝의 문장을 보라. 얼마나 기막힌 역설과 시적 진술로 가득차 있는가. 비판을 위한 비판처럼, 전체의 맥락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극히 지엽적인 부분만 가지고, 그것마저도 아무런 근거 없이 달랑 케이스 하나만 가지고, 누군가의 고된 작업을 깎아내리는 짓은 삼가야 한다. 그게 진정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곡학아세! 지식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짓 아닌가?(외롭고 웃긴 책방)

 

헐~

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자에게 던지는 욕치고 가장 쎈 걸로 던졌다.

곡학아세라니... 경멸하는 지식인이라니...

 

또 하나 아무리 그래도 기존의 번역이 0일 수는 없을텐데 그게 마치 0인걸로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걸로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걸로 취급해버린다. 이게 가당키나한 일일까? 자신감인가?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해줄 말이 이거다. 과유불급 특히 노란색 띠지의 워딩들은 어찌나 닭살돋는지 아무리 영업상 과장을 어느정도 한다는걸 감안하더라도 진실이 어쩌고 비밀이 어쩌고 속았다는 둥 어쩌고 하는건 너무 심하다 나라면 닭살돋아서 그런 워딩은 못골랐을텐데 ... 아무튼 그렇다.
그런 식이라면 기존의 역자와의 대화는 불가능해보인다. 사실을 지적하기만 하면 대화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역자와 출판사의 생각에 일부 공감이 되면서도 마치 죽일놈을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기존 번역을 취급해버리는 순간 서로간에 한 마디도 말이 오가기 힘들거라는 생각이다.(옥탑방, 과유불급)

 

이 책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아니 읽는대도, 불어라고는 보아시 응 갸르송~~ 보알라 윈느 퓌어~ 이런 거 조금 읽다 말았으므로,

책을 읽어도 요령부득일 노릇이다.

그렇지만, 나의 심정적인 동조는...

아무리 과유불급이라 해도,...

비판이 지나치면, 그 비판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슬픈 만화 26년 처럼...

공고한 성채에 부딪치는 일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일이라고 여겨 미리 포기하라는 말로 비칠까 우려되었다.

 

이 나라는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가진자들의 권력은 정말 공고하다.

외화 번역계의 이미도 씨가 정말 얼마나 훌륭한 번역가인지~

불어 번역계의 김화영 씨가 어떤지~

내가 비판하긴 쉽지 않지만,

번역이란 세계가 돈이 쏟아지는 돈방석도 아닌 바에야,

이런 불온한 시도가 더 많아져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말랑말랑해지고, 민주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지나친 비판은 불편하다.

하지만, 주례사 비평이나,

번역 세계처럼 돈이 안 되는 분야의 권위자에 대한 도전 없음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시대는 가야 한다.

 

책을 읽기도 전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만,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과유불급이군... ㅉㅉㅉ 혀를 차는 보수적 세대임을 확인하고 말는지도...

 

인간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 (노엘레 노이만)

 

'침묵의 나선이론'이란 것이 있다.

침묵하긴 쉬워도, 발언하기 어려운 소수 의견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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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망각과 자유...

 

장자 읽기의 즐거움이라는데... 잘나가니 재판이 나온 모양이다. ^^

 

역시 강신주가 대세군.

 

 

 

 

 

 

 

 

 

 

 

 

 

 

 

아버지의 그림자 밟기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관심 도서,

 

황학주 시집

 

삼국지,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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