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 프로메테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지구를 휘감는 21세기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아니 이미 엄청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말의 이면에는 <다국적기업>과 후진국 정부의 검은 고리가 '정경유착'의 형태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읽어주는 책이다.

나쁜 기업들의 검은 속을 들여다 보려는 듯, 표지는 온통 새카만데, 그 속에 번득이는 대자본들의 로고가 돋을새김으로 찍혔다. 섬뜩하다. 우리가 잘 아는 삼숭도 거기 보인다.

GDP라는 국민 총생산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지뢰가 되었든 핵무기가 되었든, 그것을 수천만의 아동이 생산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생산>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른다. 아, 아름다운 생산이여. 숭배와 경외의 대상인 물신이여!

한미FTA를 필사적으로 체결하려던 노무현은 전원일기의 '노회장'처럼 인기가 좋다. 뷁!이다.
미국은 대선으로 정신이 없는데, 바나나 국가의 국회에선 어서 그걸 비준하려고 몸이 달았다.
정철의 사미인곡의 마무리는 느끼한 사랑 고백이다.
"차라리 스러져서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족족 앉았다가 향묻힌 날개로 님의 옷에 옮기리라.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님 조츠려 하노라."
여자든 남자든 이렇게 스토커짓을 하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한국 정부의 "용미어천가"는 슬픈 메아리로 울린다. 서글프다.

나프타 이후 관련국간의 무역량은 3배 가까이 늘어난데 반해, 저임금국가 멕시코는 단지 몇백개 기업, 그것도 외국인 소유주의 큰 수출기업에서만 이익을 얻었을 뿐, 지역주민들은 더욱 궁핍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몰락을 보여준다. 한국의 미래를 보는 듯 하다. *B은행이나 POSCO 같은 영어로 된 기업이나 살아 남겠지. 역시 영어 몰입교육을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무슨 메르디앙 같은 집에라도 찾아가려면 말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국민을 실직시킨다.
가난한 나라의 정부들은 점점 더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뿐.

물론 이 책에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생명이 이해득실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고 외치는 올바른 세계화에 대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존재도 소개한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두들겼다고 일방적으로 비판받는 미국은 억울하다.
얘들보다 4년간 330만의 사망자를 낸 콩고민주공화국 전쟁에 대해 거대기업들의 원자재 이해관계가 훨씬 더 추악하고 컸지만, 소리소문없이 모르고 넘어간 데 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이 경제적 행위의 기초이자 나아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세계 무역의 발전을 기반으로 여기는 지도자들의 공약 대부분이 사회적 불균형을 고착시키려는 구실에 불과한 것(49)은 슬프지만 현실이다.

아프리카의 빈민국들이 가난한 이유는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실상 자원 부유국인 그 나라들은 기술이 부족하여 "자원과 에너지의 채굴"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 착취의 악조건과 부패정권의 이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코코아를 마시는 것은 아이들의 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54)
그렇다면 커피도 마찬가지고... 축구공도 마찬가지다.

제약회사들은 최대한 실험결과를 얻기 위해 규제 엄하지 않은 나라의 환자를 실험 원료로 이용한다. 거액의 커미션이 오가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다국적 기업들은 빈민국의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미명을 내세운다.
사실은 아동노예, 기아임금노동자, 내전 병사들, 실험용 모르모트 인간들을 양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콘체른이라 불리는 거대 기업이나 한국의 특수한 정경유착 기업인 '재벌'들의 <만행 蠻行>들을 다양한 예를 들어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기업별 만행 사례를 정리해 두고 있어 독자들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 노키아 등 거대기업의 휴대폰에 들어가는 '탄탈' 광석을 둘러싼 콩고의 불행.
바이엘 등 콘체른들이 저지르는 실험용 모르모트 인간으로 가득한 남아공 등의 현실.
셸로 대표되는 불결한 석유 산업을 둘러싼 독재세력의 악행들이 횡행하는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등 아프리카의 나라들의 비극.
네슬레, 맥도날드, 델몬트같은 바나나, 오렌지 기업들의 먹고 먹히는 식료품의 악순환들에 얼룩지는 상아해안과 가나 등의 아동노동, 노예착취, 동물 학대, 환경 오염, 살충제 등이 인체에 미치는 아득한 해악들의 실상.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가득한 현실을 그들은 <증산>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려 하지만, "기아는 생산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불평등이 기인한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거짓된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

빵과 장난감을 만드는 아시아 저임금 국가들의 소녀, 임산부들.
"아이들이 만드는 아이들의 장난감"은 슬프고도 슬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용품과 의류를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에선 70년대 경공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전태일과 여공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외에도 해외로 떠넘겨진 문제들로 금융업이나 원자력 등이 덧붙여져 있으며, 이런 구조들의 뒤에는 항상 부정한 정권과 거대 다국적기업의 로비가 상존함을 적나라하게 까밝히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무래도 멋들어진 로고가 붙은 스포츠 매장이나 된장녀 소리를 듣게 하는 매장들에 한 번이라도 덜 가게 될 것이고, 가게 되더라도 깨어있는 민중의 의식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랜드의 투쟁이 그렇고, 비정규직이 확산 일로에 있는 모습이 그렇다.
거대 기업의 이윤을 위하여, 국민총생산은 늘어날 것이지만 빈민층에게는 곧 '타락'의 길로 활짝 펼쳐진 신자유주의 한미 FTA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장밋빛 미래를 앞둔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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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08-04-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음을 소리 높여 말하는 클라우스 베르너와 한스 바이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쁜기업이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글샘 2008-04-28 01:4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나쁜 기업이 이 지구를 다 사들인 것 같은데 어쩌죠?
도저히 좋아질 가망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ㅠㅜ

pw0607 2008-04-2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을 읽으며 가장 섬뜩했던 것은... 기업들의 실상에 적힌 기업들이 갖고 있는 브랜드와 상품들이 우리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였습니다.
내가 먹고 있는 오렌지주스와 초콜릿이, 내가 쓰고 있는 가전제품이, 내가 타고다니는 자동차가... 등등...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있습니다. 소비자운동이 성공한 사례도 책에 나와 있잖아요,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어갈겁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글샘 2008-04-28 22:59   좋아요 0 | URL
그래요. 포기하지 않는 자세.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한 것이겠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입니다.

파란여우 2008-04-2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다 읽었고, 글샘님이 제가 할 말을 다 써버림 전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이래서 먼저 쓴 사람 리뷰 읽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낚였습니다.
정철의 사미인곡만 인용 안하면 되죠? ㅎㅎ

글샘 2008-04-29 17:18   좋아요 0 | URL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수없어요... 엥??? ㅎㅎ

pw0607 2008-05-0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과 글샘 두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정말 놀라곤 합니다.
알라딘 서재를 돌아다닌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좋으신 두분을 만나다니...말입니다.^^

글샘 2008-05-02 20:36   좋아요 0 | URL
놀라울 겁니다. ㅎㅎ
별소리를 다 적어 대니 말씁입죠. ^^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김보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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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이 과학스럽다.^^ 보일 샤를 법칙에 나오는 이름.

고교 국어 교사는 수업 시간에 별 희한한 주제를 다 다루게 된다.
그래서 박학다식하지만, 깊이있는 독서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걸 뛰어 넘었다. 과학에 대한 천착으로 과학자들조차 펴내기 어려운 책을 썼다.

세상이 점점 쪼개져서 '종합'을 잃고 '전공'을 얻게 되었다.
오죽하면 가시에 찔려 병원에 갔더니 외과 의사가 가위로 똑 잘라두고는 내과로 보냈다는 농담이 다 있을까.

그렇지만 특히 쪼개는 걸로 알려져있는 '과학'은 개별의 지식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다.
나도 한때 과학 독서에 삘이 꽂혀서 몇 권을 읽은 적도 있지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한국은 아무래도 많이 발전했다.

요즘 나오는 서적들을 보면 한국도 점점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도 만화로 그려지고, 고전도 만화로 그려진다.
지식이란 것이 몇 사람의 전문가에게 소속된 것은 더이상 아닌 세상이 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잘난 체 하던 전통은 아직도 멀쩡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환경'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책을 풀어 낸다.
환경 파괴의 주범인 '과학 정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진지하면서도 읽기 쉽다.
과학 다이제스트로서 성공하고 있는 책으로 볼 수 있겠다.

<기생충 제국>이나 <잡초>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같은 독서를 통하여, 해충인지 익충인지를 판단하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이기적 생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과학은 이제 지구를 지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서로 기대야 하고 서로 상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진보를 이야기하지 말고, '종의 다양성의 증가'란 측면에서 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처럼 종말이 시리즈와 <수소 혁명> <질병 판매학> <엔트로피> <바이오테크 시대> <에너지 주권> 들도 읽을 만 하다. 내가 읽은 책은 기껏 얼마 안 된다.

최재천 선생의 책들과 대담을 통해서 과학 독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더랬는데,
이제 과학책은 작은 세상을 쪼개 나가는 데 기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쪼개지고 상처입은 세상을 통합하는 데 더 큰 기여가 필요하다는 것이 독자이자 작가인 저자의 의견이다.

월례 독서 모임 http://www.sciencebook.or.kr/과학독서 아카데미 사이트에서 독서 목록을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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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숲이 있다 -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
이미애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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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네이멍구 자치주는 원래 몽골 땅이었던 모양이다.
몽골의 사막화가 심각하단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여기 사막 저리가라 할 무모한 여인을 만난다.

텔레비전의 무모한 도전과 1박 2일이란 인기 프로가 있다.
그들의 도전은 정말 무모하고 황당하다. 그렇지만 그걸 이겨가는 과정을 담아 적절한 편집으로 방송하여 관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별로 무모하지 않아 보이며, '조디만 까는' 입담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는 듯 하다. 아쉽다.

인위쩐은 스무 살의 꽃띠 나이에 사막 한복판에 휙, 버려진다.
아버지가 시집이라고 버리고 간 집엔 게으른 남편 바이완샹만이 살고 있었다.
감옥보다 더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인위쩐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을 한다.
풀씨를 모아다 뿌리고, 종일 고여야 조금 나오는 물을 모아서 붓는다.
돈이 만들어지면 부지런히 나무를 사다 심었다.
사막에 몇 년 살면서 사막의 생리를 터득하여, 물주는 시간도 조절하고, 물붓는 방법도 궁리한다.
결국 그녀는 그 갈라터진 손으로 풀의 싹을 틔우고, 나무를 자라게 했으며,
채소도 재배하게 되었고, 숲을 만들어 중국을 너머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내가 걷고 걸으면 길이 되고, 내가 씨를 뿌리는 곳에 숲이 생긴다.
사막을 사막이라고 속상해하다간 심장만 상하고, 포기하면 폐인만 될 뿐이다.

나무가 살 수 있으면 채소도 산다. 채소가 살면, 인간도 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남이 못하는 일이라도 나는 한다.

누가 한국인을 '의지의' 한국인이라 불렀던가. 이제 '의지의'는 중국인 인위쩐에게 떼어 줘야 할 헌사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생명을 쓸쓸하게 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이러면서 나무를 찾아가 물을 주는 그의 마음은 테레사 수녀의 그것이고, 바로 부처님의 사랑이 아닐까?

삽자루와 잘 어울리고, 노새를 점점 닮아가는 사막의 여인의 말은, 배운 사람의 것이 아니지만, 힘이 있고, 거기 길이 있다.

"사막을 피해 돌아가서는 숲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었더니 그것이 숲으로 가는 길이 됐지요."

서재 머리에 걸어 두고, 두고 두고 곱씹을 말이다.

교육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불모의 학교에 서서, 탄식만 할 일이 아니다.
풀씨도 뿌리고, 나무를 심다 보면, 나중에 나중에 숲을 보는 이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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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2-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여인이네요. 사막에 풀씨를 뿌리는 마음이라... 갑갑하고 답답해도 그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다지게 되네요.

글샘 2008-02-13 11:31   좋아요 0 | URL
요책 한번 읽어 보세요.
정말 대단한 여인이면서도, 지식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조선인 2008-02-1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디만 까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ㅋㅋ 역시 사투리의 힘.

글샘 2008-02-13 11:3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조디만 까는 텔레비전, FM 라디오의 수다들...
숫제 외국인 지지배들을 떼로 모아 두고는 수다를 떨더군요.
구역질나게스리...
풀씨를 심으러 맨날 돌아댕겨야겠습니다.
 
달려라 냇물아
최성각 지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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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 최성각은 소설가란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고, 그가 쓴 소설집의 이름을 들었어도 아는 바가 없었다.

이 글들을 읽다 보니, 앞으로 그의 소설이 깊어질 법도 하단 생각을 한다.

모든 운동은 서로 통한다.
어느 비꼬인 놈이 '운동할 것이 없으니 환경 운동한다'고 했던가.
운동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먹고 사는 데 급급했던 70년대만 해도, 그리하여 최소한의 인권을 되찾겠다고 나선 80년대만 해도, 사람이 죽어갈 판인데 자연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90년대 이후, 과학은 기술의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적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고, 미국이란 초강대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도 미국의 본을 받는 데 열심인 게 현실이다.

최성각이 여기 저기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64쪽에서 그가 말한다.

민주화 세력들이 싸우던 때를 회고하는 걸 꼬투리 잡으면서, 그때 싸운 것은 외로운 사람을 위하여, 더 좋은 삶을 위하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싸운 것임을 말하고, 이 노골적인 토건 국가의 '약한 존재'인 '산천과 갯벌과, 철새들과 늪들'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일은 당연한 일임을 말한다.

내가 별 생각없이 부르기 좋아하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던 징그런 노래를 요즘엔 부르지 않는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지렁이가 나와서 '사람이 더 징그러워요.'했다는... 그래, 사람은 지렁이보다 더 징그럽다. 옳다. 태안 앞바다에서 죽어간 고래들과 굴들에게 징그러운 사람들은 미안해 해야한다.

찬드라 구릉이란 네팔 여인을 정신병동에 가뒀던 미개국이 있었다. 그 여인은 이주 노동자로 일하러 왔다가 라면을 사먹고 라면값을 잃어버려 경찰서로 갔다가 바로 정신병원으로 직행하여 6년을 갇혀 산다. 네팔사람이라며 버벅거리는 한국어를 했다는 것이 정신병의 근거였다. 풀꽃나라 사람들은 한국이란 미개국을 대표하여 찬드라 구릉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리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미개국.

오늘 정말 정신병 걸린 어린이집 교사 한 명이 5세 여아를 최고기온 영하 1도였던 어느 날 발가벗긴 채 비상구 난간으로 쫓아낸 사진을 외국인이 찍어서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 취재를 갔더니, 그 미친 계집은 아이가 제 분을 못이겨서 막 옷을 벗었다고 했다. (젠장, 애가 술이라고 취했단 말여?) 나중에 학부모가 따지자 머리를 처박았다. 아, 인간을 돈 버는 수단으로 보는 것들에게 아이를 맡긴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정말 짐승같은 나라다. 그 사진 찍은 외국인이 얼마나 미개국 운운하며 다닐까... 이 인테넷 세상에서 이 아동 학대 사진은 얼마나 전 세계로 떠돌며 미개국의 국위를 선양할 것인가... 핸드볼 잘 하고 축구 잘 한다고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핵 쓰레기장을 핵 폐기장으로, 나중엔 방사성폐기물 관리 시설로, 원전 수거물 센터로 핵심을 빗겨 나가는 것을 '수사법'이라 한다. 미화법의 하나겠다. 쓰레기 소각장은 자원회수시설이라 미화하고, 대량강제감원을 구조조정이란 미화어를 쓰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하긴 이 나라의 '군인과 경찰'은 모든 <정의> 앞에 가면을 쓰고 나오는 폭력배의 모습이다. 부안 핵쓰레기장 시설에서,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다이옥신 발생장치 앞에서... 그들은 방패를 갈고, 열심히 찍어 댄다.

IMF이전 우리 국민의 환경 의식은, 환경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50% 이상이었으나, 2000년에는 5%로 줄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생존만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정부의 개발을 저지할 건강성을 잃는다... <시민의 신문> 오성규 차장(271)

이제 새로운 정부는 오로지 효율만을 이야기한다. 무조건 경제 발전, 개발만을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인간도 환경도 없다. 지금 당장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눈을 까뒤집고 다 한다. 무섭다.

그나마 성성적적하게 깨어있는 최성각같은 이가 거위에게 등을 맡겨두고, 거위의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음으로 서늘한 글을 던져 주기에, 그 그늘에서 가끔 환경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여 고맙다.

태안 앞바다에 수천 톤의 원유를 뒤집어 엎은 것이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백만에 이르는 이들이 기름을 퍼내고 닦아내지만, 기름을 뒤집어쓴 갯벌이 살아남는 일은 얼마나 멀고 멀 것인지... 죽어 나오는 바닷가재와 돌고래와 바닷새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반성할 줄 모르고, 공동 과실이라서 다행이라는 삼성의 지랄같은 작태에 분노가 끓지만, 온갖 특검이 난무해도 성공한 쿠데타, 사기꾼이나 돈놀이 등은 <무죄 방면>한다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관습법에 따라 휠체어를 타고 큰 돈을 환원(이 말이 도무지 무엇을 어찌한다는 것인지를 한국이란 나라에선 누구도 모르지만...)하시어 큰 복을 받으실 것임이 불보듯 번하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부끄럽다.

그럼에도 내 자식이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랄 일인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나 잘 먹고 잘 사세요' 의 금자씨 철학을 가르칠 일인가? 깊이 고민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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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3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할 것 없어서 환경운동한다'는 말하는 주체의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읽힙니다.전통적인 우파 개발론자들의 '운동'에 대한 혐오로 읽히는것이 우선입니다.그들은 80년대 운동하던 놈들 다 환경운동한다 라고 들 말하지요.
그런데...이렇게 이야기하면 비비꼬인 놈이 될 듯도 하지만 '환경운동의 탈정치화' 라는 측면에서 보면 '주류환경운동'에는 또한 '탈정치화'의 한계가 분명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수구정당도,좌파진보정당도 '환경'을 공약 사항에 집어넣고 있습니다.또한 어떤 정치 지평을 갖던지 '환경'담론에는 딴지를 걸지 않지요.

결국 '환경운동'이 '정치적 옳바름'을 의미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군요.

언젠가 페이퍼에도 썻듯이 불행하게도 나치도 환경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환경과 정치가 괴리를 빚어내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에코파시즘'이라고 하더군요.

많은 이들이 이미 노력하고 있듯이 '환경'과 '정치'가 어떤 지점에서 관계 맺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전통사회적인 환경론은 어떤면에서 상당히 급진적이면서도 또한 토대를 넗히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현실적입장에서-'탈정치적'담론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저 개인적으로 '환경'을 환경대로 이야기하고 '정치'를 정치대로 이야기하는 방식의 소통방식 대해 고민합니다.

물의 흐름들을 한가닥으로 모아내기...환경운동도 그런 소통문제를 고려해야 할때겠지요.

대중적인 신자유주의 최고비판자는 삼성과의 대타협을 대안이라고 말하고...태안에서 돌을 닦는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더 많은 쓰레기와 욕망의 배설물들을 뿜어낼 겁니다.

이렇듯 조약돌의 무늬처럼 하나가 되어 있는 복잡한 가치들이 어떻게 분리되고 또 어떻게 종합시켜야 하는지 늘 고민입니다.

글샘 2008-01-30 15:26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도 쓰레기 분리 배출하면서 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그렇다고 쓰레기를 안만들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율배반적 생태를 생각하죠.
이 조그만 나라도 이렇게 복잡한데... 그런 걸 한 가지 논리로 풀어낼 수는 없는 거겠죠.
그 사회의 타협점과 지향점에 대해 공감하고, 그런 걸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데요. 이 사회는 국가가 <제시하는> 그런 지점이 없지요. 무조건 각자 잘 벌어서 잘 살아라. 이러니 교육하기도 힘들고요. 쉽지 않은 문제지만, 놓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혜덕화 2008-01-3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성각이란 이름을 읽는 순간, 아, 그 엽편 소설 작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님의 리뷰를 읽으니 같은 사람이군요.
그에게서 잎사귀처럼 짧은 소설의 매력을 한껏 느끼며 그의 글을 읽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환경운동과 정치에 대한 논의는 잘 모르겠고, 드팀전님의 댓글도 제겐 너무 어렵지만, <그냥 불편한대로 살기>가 제겐 환경운동의 하나일 뿐입니다.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꾸는 단계가 발전이 아닌가 싶어, 인간만을 위한 편리함은 조금씩 덜어내며 살아야지, 생각할 뿐입니다.
 
몸살 - 한승오 농사일기
한승오 지음, 김보미 그림 / 강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하긴 먹물이 농사지으면 몸살이 떨어질 날이 없겠다.

한승오 씨가 고집스레 유기농을 배우면서 농사를 지어가는 이야기는 전에 '그래, 땅이 받아 줍디까'에서 읽었는데, 이 책은 연간 농사의 진행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2년간 적어온 것을 묶은 것이다.

글로 치자면 먼젓번 것이 더 찰지고 알찬 듯 한데, 농사꾼은 역시 1년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니, 일기 형식의 이 책이 농사일엔 더 가깝다 하겠다.

쌀에 대한 애착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착한 어린이였으므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는 습관을 익혔을 뿐,
쌀이 어떤 땀방울을 지니고 태어났고, 그 쌀에 담긴 땅심까지를 알기엔 내공 부족이다.

한승오 씨의 글을 읽으면서 미래의 농촌을 걱정해 보기도 하고,
정책의 갑갑함을 안타까워해 보기도 한다.

이적지 불러오던 '대통령 당선자'라는 말도 '놈者 字'가 싫었는지 '당선인'으로 부르는 존경스런 님이 대통령이 된 모양인데, 과연 얼마나 한미FTA 같은 일에 적극적일는지 두고 볼 일이다.

핏빛 마른 고추를 말리는 심정이나, 시골 도로에 황금빛 이삭을 가득 말리고 있는 그의 심사를 내사 헤아릴 길 없으나, 온 몸이 몸살날 지경으로 땀을 흘리고 고집스레 일해야 하늘이 주는 황금빛 곡식을 얻을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배워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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