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산책
이현주 지음 / 다산글방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장자의 곳곳에 우리가 알고 있는 비유들이 숨어있다. 곤이라는 물고기, 붕이라는 새, 마지막의 혼돈이라는 카오스까지...

전에 장자의 우화들을 묶어 놓거나 나름의 철학으로 풀어 본 책들을 읽은 적은 있었으나, 이번 방학에 노자에 집중했었기 때문에, 새삼스레 읽은 장자는 지혜의 보고와도 같다.

이 책은 십년 전에 나온 책이어서 조판이 조악하다. 틀린 한자도 간혹 내 눈에 띈다.

그러나, 이아무개님의 혜안을 빌려서, 장자의 비유를 맛보는 즐거움이란...

노자가 한 삶의 철학의 뼈대를 오천 자의 씨앗으로 남기고 가버린 데 대한 아쉬움을 금할 길 없어, 장자는 그것을 비유의 꽃밭으로 발전시킨 것일까... 노자는 비로소 장자라는 지음을 만나,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夷(이)와 들으려 해도 듣기 어려운 希(희)와 만져 보기만이라도 하려도 만지기 어려운 微(미)의 희미한 깨우침을 웅변하고 있는 듯 하다.

장자 속에서 노자는 봄날 터져나오는 꽃망울처럼, 죽은듯이 숨죽였던 나무가 뽑아올리는 수액처럼 새 삶을 찾는 듯 하다.

한자 문맥을 곱씹으며 읽기에는 어려운 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은 내 방식의 학습법(어려운 걸 만나면 일단은 나는 초보가 아니라는 착각을 머릿속에 심어 두고, 건방지게 접근해서 속독을 한다.)으로 빨리 읽고 말았다. 때가 되면 다시 만날 일이 있으려니 하고...

주마간산 격의 독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무기, 무공, 무명의 낯선 경지였다.

무기는 무슨 일을 하는 주체가 없다기 보다 그 주체의 <나>가 없음이요,
무공은 공이 없다기 보다 공의 <임자>로 나서지 않음이요,
무명은 이름이 없다기 보다 스스로 제 <이름>을 내지 않음이다.
선행은 무철적이라,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면 그 자취가 남지 않는다.
혹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예수가 자신의 비석을 깎아 세울 수 있을까?

며칠 전 꿈자리에서 내 오른 팔을 서늘하게 쓰다듬으셔 나를 깨우치신 그분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으리라...

사람의 마음으로 도를 죽이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하늘을 돕지 않는 것이 참 사람의 길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20세기 인간이 문화유산에게 할 일은 손대지 않는 것이라던 유홍준 교수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장자는 너무도 넓어서 허황되다 볼 수도 있는 비유의 바다이다. 마치 성경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지 못하면서 천국갈거라고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장자를 읽고도 그 한 꼬투리만 보고마는 나는, 그래도, 내가 무식함을... 다음에 다시 장자를 곰곰 읽어야 함을 잘 알고 있는 어두운 사람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8-2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명이라...저도 그런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달하지만 결국엔 양아치로 산답니다.
저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군요.
그나저나 개학인데, 다시 바뻐지시겠군요.

글샘 2005-08-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은 다음 주에 개학이랍니다. 아직 가족끼리 여행도 못 가봐서... 다음 주쯤 여행으로 방학을 마치려고 합니다. 파란여우님을 위한 책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요... 제가 권해드릴 주제는 못 되고, 다만 이렇게 제 글이라도 읽고 댓글을 남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산의 중용 풀이
감산 지음, 오진탁 옮김 / 서광사 / 199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을 읽는 일은 인류의 문화 유산을 읽는 일이다.

그런데 고전에 대한 편견이 먼저 박혀 버린 것은, 수천 년간 고전읽는 방식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사 시간에 배웠을 <훈고>적 자세. 고전을 캐고 또 캐는 자세가 현대인이 고전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근원이 된 듯 하다.

저 유명한 돌 선생이 쓴 '돌 논어'와 '노자와 21세기'에서 보여준 다양한 해석들에 대한 훈구적 자세는 저자 나름의 현대적 해석을 바라는 일반 독자에게 염증을 심어주기에 적합한 책들이 되고 만다.

그래서 올 여름에 내가 만난 책들이 참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경숙의 도덕경 두 권이라든지, 장일순 선생님과 이아무개의 대화로 된 노자 이야기 같은 책은 구절의 풀이나 해석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 주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무식을 통감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온고지신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옛것을 오늘날 사람들이 쉽게 느끼도록 풀어주는 것.

감산 스님의 중용 풀이를 읽고 그런 느낌을 얻는다. 명나라의 스님이었지만, 감산 스님은 노장에서 공자까지 선승의 입장에서 풀이를 하는데, 마치 그 느낌이 무위당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감산 스님의 글을 더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상식적으로 중용이란 치우치지 않는 덕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중도에 있으면 회색 분자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본질을 꿰고 있으면 치우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렇게 성인들의 말씀은 한 군데로 치중하고 있을까... 공부하면서 새삼 놀랄 따름이다. 중이란 그 본질이고, 용이란 본질의 작용인 '체용'의 관계인 듯하다. 감산 스님을 만난 것을 감사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자를 웃긴 남자 2
이경숙 지음 / 자인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1권에서 워낙 통렬하게 도올(줄여서 돌)을 질타했던 책이어서 기대가 큼에서였을까?

2권은 그의 도덕경 중 도경을 이미 읽은 나로서는 별로 재미를 얻을 수 없었다.

 표지에 나오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노자 할아버지께서 돌을 밟고 서 있는 그림. ㅋㅋㅋ

1권에서 너무 욕설과 비방이 난무해서인지, 2권에서는 아주 순화된 글을 적고 있고, 아무래도 앞에서처럼 신명나게 두들겨패는 맛이 없어지다 보니 이 책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희석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의 도덕경이 나오기 전에는 해석을 참고하려고 읽을 필요가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그의 도덕경이 완간된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보인다.

역시, 1편만한 속편은 없는 법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자를 웃긴 남자
이경숙 지음 / 자인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은 처음에 인터넷 통신에 올려졌던 글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말투가 웃기고 시종 그분(?)에 대한 욕지거리로 일관한다.

정말 코믹하고 웃기고,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속시원하고 통쾌하다.

노자와 21세기에서 그분은 나를 무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시고,

그리고 그분은 나를 노자라는 난해한 텍스트에서 분리시키셨던 공이 크신 분이셨다.

그렇게 공이 크신 분이셨던 만큼,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하는 이 책은 그만큼 시원한 똥침인 것이다.

저자는 학력이나 경력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이것은 노자의 생각일 것이다.

그분의 대단한 학력과 경력과 자기 자랑을 읽으면서, 그리고 방송 강의까지 들으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의 석학은 지들만 졸나 존경스러운 줄 알고

위爲에 넘어가서 꾸민 놈들, 그런 척하는 놈들에게 속아 살아온 역사가 아니었더냐...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면 인문학 책이요, 최초로 '노자'라는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던 텍스트를 우리에게 '가사의'하게 설명해준 책이다.

그리고 노자를 통째로 중학교때 배운 대로 <무위 자연>을 가르친 성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경숙의 도덕경의 도경 부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노자의 이미지가 훨씬 생동감있게 그려진다.

그의 글이 몽땅 구라라도 좋다.

책이란 것은, 글이란 것은, 사상이란 것은,

이렇게 읽고 나서 명확하게 뭔가를 볼 수 있어야 좋은 책이지...

그야말로, 똥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를 들어서는 그분들만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인지도 모를 일이니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역 이경숙 도덕경 - 도경
이경숙 지음 / 명상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노자란 텍스트는 참 특이하다.

오천 여자로 제한되었으며, 작가의 해설이 없어서 한문의 특성상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대표적인 텍스트였던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동양 철학 코너에 가면 노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말 수도없이 많다.

어떤 책을 고르느냐에 따라 노자를 쳐다보기도 싫을 수도 있고, 정말 노자에게 매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선, 노자를 풀이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텍스트를 이해시키려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느 책들이 도덕경을 풀이하고,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은 오자라고 지 맘대로 고쳐 버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대의 주해서들의 의견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도올 같은 사람도 왕필의 해석을 뛰어넘기 위해서 그렇게 세 권이나 되는 책을 폈지만, 나는 노자를 해설해 주는 책을 원했지, 왕필의 해석에 대한 비판서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좀 불쾌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을 해설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관된 생각을 함의한 책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텍스트를 마구 뜯어고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그리고 좀 두꺼워지긴 했지만, 한자의 풀이와 주해를 섞어 놓으면서 독자들이 같이 완성해가는 책으로, 요즘 하는 말로 워크북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특히 함의가 많은 노자의 경우 한구절 한구절 감상하며 읽는 것이 필요하고, 느낌으로 읽는 맛이 색다른 것 같다.

그의 지론대로, <번역문은 아무리 잘된 것이라도 원문의 오묘한 맛과 그윽한 향취를 살리지 못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책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장에서, 그리고 노자 전체 텍스트에서 서로 연관된 전체로서의 노자를 만나야 한다는 그의 의견은 자못 신선하다. 특히 이천 오백년이 넘는 시공을 뛰어넘어 한자를 그림글자로 바라보는 그의 고심은 우리에게 웃음과 함께 새로운 고전 독법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간 우리는 너무도 권위자들의 설명에 의존해 왔다. 그것은 우리 인문학의 한계라기 보다는, 동양 고전의 연구가 수천 년간 훈고적 주해에 매달린 탓이 크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경숙을 만나면서 비로소, 친절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의 해석이 노자의 의도와 <풍마우 불상급>의 거리를 지니는 것이 될지라도, 나는 그의 방법론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노자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젠 당연히 이 책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권해줄 수 있는 책을 갖게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05-07-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경숙씨의 노자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도올과 한 판 붙었을 때 나왔던 책 읽었을 때 충격이었거든요... 이 책도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글샘 2005-08-09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람이죠? 나름대로 노자 매니아인 분입니다. 요즘 그분의 해석을 한 번씩 베껴보고 있답니다.

jbk98624 2006-04-2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자-도덕경-을 몇가지 종류 경험한 사람입니다...혹시 '도덕경'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면 '이경숙님의 도덕경'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