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지하철을 타다 청소년 철학 소설 1
김종옥.전호근 지음 / 디딤돌(단행본)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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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표방한 것은 청소년 철학 소설이다.

철학 같이 딱딱한 소재를 <소설>같이 말랑한 틀에 집어 넣으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중간에 희곡으로 등장하는 부분도 있다.

과연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공자라는 인물의 고지식한 <인>의 추구에 대해 막연한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술주정뱅이 장자의 생각을 풀어내기엔 작가들의 역량이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술집 주모 맹자에 대해선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의 화통한 성격과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을 만들어 주려는 시도는 높이 사 주고 싶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자와 장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것이 핵심에 서지 못하고, 복잡 다단한 사회의 여러 측면 - 장애자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애완견 문제, 환경 문제 처럼 지엽적인 문제들과 얽혀서 단편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고 만 느낌이다.

마치 어린애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동화책처럼...

이 피비린내나는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 학생, 청년들에게 공자와 노자, 맹자와 장자 이야기가 얼마나 절실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용두사미격이 되어버린 소설이 아쉽다.

저자들의 고군분투로 한층 더 훌륭한 이야기책이 나와서 청소년들의 환호성을 울려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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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 산문선 3
박지원 지음 / 학고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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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글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그지없다.
소설로 분류할 책도 있고, 기행문으로 분류할 책도 있지만,
대체로 산문이다. 소설이라 하는 것도 요즘 하는 이야기이고, 그의 글은 '문'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지만, 박지원의 말하기는 노자의 그것처럼 뒤집어서 말한다는 특징이 강하다.
그렇다곤 해도, 역설적 접근의 시각이 주된 것인가 하면 실학자의 실제로 보는 눈이 강조되기도 한다.

여느 사람이라면 별로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사는 것에 대하여,
박지원은 '문제의 눈'을 들이댄다.
보통 사람들이 '눈으로 보아 무섭다'고 하는 강물을 그는 밤에 건너니 '귀로 들어 무섭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느 사람이 '눈이 시원한 장관'이라 할 것을 그는 '통곡할 만한 경치'라고 뒤집는다.

박지원은 '잘나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조선 사람들이 '잘난 척, 가진 척, 아는 척'해대는 통에 미치겠던 사람이다. '3척 동자'는 지금 한국에도 넘쳐 난다.

연암이 '천하 대세를 살핀다'는 글에서,
중국을 유람하는 자의 병통을, 다섯 가지로 말한다.
1. 지위와 문벌이 서로 높다고 뻐긴다.
2. 우리 상투만이 최고라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3. 명나라만을 섬기고, 만주국을 멸시하는 망령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4. 중국에서 모든 학문을 배운 주제에, 중국을 멸시하는 태도도 웃긴다.
5. 중국인들에게 지조가 없다고 욕하는 태도도 망령이다.

즉, 당시의 현실에서 중국의 만주족 나라, 청을 받아들여서 배울 것을 배워야 할텐데,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은 마치 루쉰 선생의 <아큐정전>에서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을 웃기고 자빠진 일로 묘사한 것처럼, 조선인들의 '정신적 우월감'의 착각을 날카롭게 꼬집는 살아있는 비판정신이라 할 수 있다.

역대로 사람이 많고 땅이 적은 것이 걱정이 아니라, 법을 세우지 못했거나 법을 준행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었다는 말은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새로 짓는 아파트가 그리 많아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 많으며,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저리 많지만, 미국은 필요도 없다는 한국에 쌀을 팔아 먹으려 한다.
땅이 적거나 쌀이 부족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서로 종교가 다른 것도 아니고, 신분이 다른 것도 아닌데도,
네 분파로 흩어지고 쪼개어져서 다툼에만 전력하는 것을 본 홍대용은,
오히려 중국에 가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필담을 통하여 고담준론을 펼치고 온다.

아, 박지원을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일이다.
내가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면 당연히 보았어야 할 부조리함들을 애써 눈감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백 년 전의 상황을 조금도 낫게 하지 못하는 이 부조리한 땅덩이에 살면서,
자동차 좀 기어다니고 비행기 좀 날아다닌다고 발전이란 말을 할 수 있을까...를 돌아보는 일이다.

장자가 <기심>에서 기계를 만들어 부리면 그 혜택에 눈멀어, 잃어버리는 것을 다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고 했다.

맹인같던 이들이 <얕은 꾀에 눈이 뜨여> 흐트러진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나 아닌지... 도로 눈을 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진저... 조용하게 냉수 마시고 속 차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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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3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자 (양장) -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김홍경 지음 / 들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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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이라고 해서 텔레비전에서 한의학 강의를 한 그 사람인줄 알았다.
흔한 이름이 아니고, 한의학과 노자는 왠지 가까운 느낌이어서...
그런데 동명이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처럼 노자를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에게 적합한 책은 아니었다.
백서와 왕필의 주해서를 분석하는 책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부분의 해석들을 주로 읽어나갔다.
노자는 비유로 가득한 책이라서, 내맘대로 읽는 노자가 제일 좋다.

그리고 어린 왕자를 몇 번 읽을 때마다, 가슴을 치는 구절이 다르듯이, 노자도 그렇다.
한국에서 노자를 시장 바닥으로 내놓은 선구자가 도올이다.
그를 '돌'이라고 유사품을 만들어 강의한 코미디언도 있는데, 멋진 아이디어다.
도올과 돌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그의 강의록이 노자와 21세기란 책으로도 나왔는데, 지나친 현학과 천박한 어휘 사용으로 노자를 웃긴 남자로 취급당했다.
난 개인적으로 '도올'이란 말이 우습다. 올이 높다랗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도가 높다랗다고 하는 이름을 짓고서는 노자를 강의하다니... 수능 점수는 높다란 사람일는지 몰라도, 험담을 입에 담고 사는 그가 높다랗게 보이진 않았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노자>는
'전국 시대'는 지극히 '남성성'이 강조된 시대였다. 그래서 노자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이다.
노자란 이름, 즉 늙은이의 노래란 제목이 이미 남성적이기 보다는 여성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어로 가득한 노자에는 정언약반 正言若反(올바른 말은 마치 삐딱한 듯 하다.)의 수사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에선 덕도경의 순서로 해설을 달았다.
도는 좋은 삶의 길, 좋은 삶의 근거가 되는 <윤리적, 존재론적 범주>라면,
덕은 구체화된 무엇으로 도의 결과, 작용, 드러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덕은 도의 집인 것이다.
도가 만물을 태어나게 한 뒤, 덕이 그것을 기른다는 것에서 덕을 앞세운다.

이번에 덕도경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구절들은 이렇다.

나에겐 항상 세 가지 보물이 있다. 자애, 검소함, 천하에 감히 나서지 않는 것이다.

내 말은 무척 쉽고, 행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알지도 행하지도 못한다.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것 같다. 大巧如拙

爲學者一益 聞道者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也 無爲以無不爲 將欲取天下也 恒無事 及其有事也 又不足以取天下矣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를 들은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에 이르니 무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바야흐로 천하를 취하려 한다면, 언제나 일이 없음으로 해야 할 것이니, 만약 일이 있음이면 천하를 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성인은 모두를 어린이로 대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은 눈이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덕을 두텁게 머금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含德之厚者 比於赤子
억세지면 곧 늙어버린다. 이것을 부도라고 말한다. 物壯卽老 謂之不道

%%%%%%%%

이 책은 두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전문가가 만든, 전문가를 위한 책인 듯 한데,
'수컷 모 牡' 자와 '암컷 빈 牝' 자를 혼동해서 수컷 모 牡자만 잔뜩 적어 놓은 것을 보고 신경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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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人 2006-06-05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는데요. ^^ 도올의 뜻을 잘 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라도 찾아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느림과 비움 -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
장석주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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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얼마 전, <시인세계>란 시잡지에서 '마지못한 친일까지 중죄인 취급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하는 개념없는 이야길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줄 모르고,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제목은 <느림과 비움,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

내용은 노자를 한 페이지에 실어 두고, 자기 잡문을 써나간 것이다.
안성 땅에 집을 하나 지어 두고, 시를 쓴다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시는 내 취향이 아니기에 언급을 말자.

노자라는 텍스트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그의 시골 이야기는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왜 시골로 갔지? 시골이 시쓰기 좋으니까 갔겠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그의 삶은 별로 느리지도 비운 것도 없어 보이는데... 흙 내음을 맡으면서 땅에 코를 가져다 대는 모습은 드물고, 그저 시골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 6시간 읽고, 6시간 쓰고, 두 시간 걷겠다는 그의 욕심은 시골 생활을 팍팍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런 마음이 들게 한다.

다시 노자를 읽으면서 눈여겨 보고, 곱씹어 본 구절.

寵辱若驚.
칭찬과 욕됨에 깜짝 놀라는 듯하다. 인간의 심사가 그렇게 얕다는 것. 항심이 없는 것.

大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최고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그의 존재를 겨우 알고, 다음은 친하고 자랑하며, 다음은 두려워하고, 마지막은 업신여긴다. 나는 어떤 선생인가... 생각해본다. 모지아닐까? ㅠㅠ 모지라는 인간. 侮之.

絶學無憂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진다. 여기서 학문은 <相>을 갖는 것이다. 고정관념으로서의 상. 판단의 근거로서의 상. 어쨌든 잘난체 하려면 고민 많이 해야한다. 박사 과정 안 가니 근심이 전혀 없다. 공부하기 싫을 땐, 이런 핑계로... 이거 갈수록 노자가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요상한 방향으로 쓰인다.

장 루슬로의 시를 읽어 보는 일은 느림과 비움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섣불리 도우려고 나서지 말아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골나게 하거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지 말고 참아라.
별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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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3-16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하루에 여섯시간 읽고, 여섯시간 쓴다고요???
회사원들 평균 근무시간 보다 많네요.ㅎㅎㅎ

글샘 2006-03-1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적인 글쟁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나요?
 
장자 이야기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조성진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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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언명의 연속으로 이어진 <노자>가 글자와 구절의 풀이에 힘을 싣는 이론서라면,
우화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에 너무 무게를 두면 그저 우화집에 머물고 말고,
그렇다고 장자의 사상을 캐내기에는 이야기가 난삽하다.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 모로하시 데쓰지의 <장자 이야기>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장자의 사상을 공맹의 사상과 비교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두께가 두꺼운 책들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이 두려움을 불사하고 내가 봄방학동안 빌려온 책이 이 책과 <감각의 박물학>이다.
그런데, 사실은 두께가 두꺼운 것 외엔 별로 두려울 일 없는 듯 하다.
이 책에 얻어 맞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얽어주는 역할을 저자가 잘 하고 있다는 점과
사이사이에 장자의 이야기가 허황한 점을 공자와 비교해서 알려 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장자 이야기에서 얻어야 할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하기도 한다.
때론 노자를 인용하기도 하고, 절묘하게 이야기를 끌어 대기도 한다.

원래 장자란 텍스트는 사물에 빗대어 얘기하는 우언(寓言), 남의 권의를 빌어다가 자신의 얘기에 힘을 싣는 중언(重言), 비었다가 차는 술잔처럼 이렇게 얘기했다 저렇게 얘기하는 치언(梔言)의 형식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교훈적이라고 하기에는 변설이 강하고, 역설이 많아서 곤란을 겪게 된다.
동양의 고전들이 지나치게 교훈적인 측면에 완전히 파격을 부른 셈이다.
이 책에선 그 변설과 교훈의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해내고 있는 것이 저자의 힘이다.

<양생>의 방도로 장자를 읽을 수도 있지만, <삶의 철학>으로서 장자를 택할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치 필요없는 군살이나 혹이 붙어있을 뿐이고, 죽어야만 이것이 말끔히 사라진다.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은 없고, 삶을 살려고 애쓰는 자에게 삶은 없다.
이런 철학적인 측면은 불교에 닿아있다고도 하겠다.

그렇지만 보통 <장자>라는 텍스트는 노자의 후예로써, <소요유>에 처하며 <무하유의 이상향>을 지향한다고 읽히기도 한다. 무하유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아득히 넓어서 아무 것도 없는 세계. 크고 작음, 옳고 그름, 삶과 죽음의 차별이 없는 세계. 이건 불교의 <我相>을 없애라는 말과도 유사한 생각이기도 하다.

춘추 전국 시대는 <삶>의 시대라기 보다는 <죽음>의 시대였다.
고우영의 십팔 사략에는 얼마나 도너츠 표식을 단 주검들의 그림이 많이도 그려져 있는지...
이 죽음의 시대를 넘어 <살 수 있는 처세술>로서의 책이 장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을 때에는 굳고 강해진다. 살아있는 만물과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모든 것은 말라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이라는 노자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에서 풀어낼 따름이다.

마음을 거울과 같이 쓰면 至人이라 할 만하다. 거울은 지난 일을 좇지 않고 장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다.(不將不逆) 요즘 서양인들도 명상을 배운다고들 하는데, 마음의 다스림, 마음 공부의 요체는 이것 아닐까? 지난 일은 거울에 없다. 장래도 거울에 없다. 지금 여기나 살아라...

마음을 비우면(虛) 맑아지고, 맑아지면 고요해 진다.(靜)
한국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스포츠로 양궁과 쇼트트랙이 있다.
이들의 기예는 어찌하여 그리 뛰어난 것일까? 그 답은 장자에 있다.
진정한 경지에 오르려면 활을 쏜다든지, 칼을 쓴다든지 하는 생각을 잊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완전히 허심의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금메달을 따려고, 추월을 하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전을 연습처럼... 하는 말처럼, 연습에서 <지옥을 넘나드는 훈련>을 거친 자들이 아니고서는 이 허심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양생>이다. 영어로 웰빙이라 한다.
잘 먹고 영양이 과다하고 스트레스가 많아 생기는 질병들.
길어지는 노후 생활과 맞물려 <양생>은 최고의 지향이 된다.
장자는 말한다. 인생 전체를 보신해야 한다고.
보통 섭생이라 하면 건강을 지키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노장의 섭생은 그런 생각을 뛰어 넘어 <삶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고 유유히 살아가는 양생법이다.

내가 읽은 철학적 측면, 전국 시대 노장 사상의 측면, 처세나 마음 공부, 양생의 어떤 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장자>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우언들은 궤변으로 읽고 욕할 수도 있지만, 여느 철학서가 지닐 수 없는 <역설적 직관>이 장자엔 있다. 그래서 소요하고 싶을 때, 장자의 한 마디를 읊조릴 수 있을 것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 다리가 짧다고 덧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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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곧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로그인 2006-02-2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 노자 석가>보고 실망한지라 이 분이 쓰신 책 읽기 싫었는데, 이건 볼만 한가봐요~

글샘 2006-02-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함보세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답니다.
나를 찾아서님... <공 노 석>은 저도 실망이었답니다. 이 책은 재밌어요. 요 밑에 보니 <공노석>에 제가 별을 두개 줬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