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라이팅 클래식 3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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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은 수유 연구실에서 고추장으로 통한단다.
수유 연구실에서 쓰는 말 중에 내가 싫어하는 게 둘 있다.
하나는 '00-되기' 하는 말이고, 또 하나는 '00-기계'란 말이다.
너무 서양식 어법이 강하고, 서양식 조어법에 얽매이는 느낌이 강해설까?

그나마 고병권은 니체를 리라이팅하고 있는데, 문체가 아주 맘에 든다.
글을 제법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어린 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쓸 줄은 모르지만...

내가 아는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뜬금없는 말과, 짜라투스트라(맞춤법이 예전엔 이랬다.)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 제목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뭐 이런 정도였다. 아, 초인이란 말도 니체가 한 걸 일본에서 번역한 말인 모양이더만...

왜 철학 책도 좀 읽고, 고전도 좀 찾아보고 했는데, 내가 니체를 읽을 적이 없는 걸까?
아마 니체가 어려워서 니체를 별로 쓴 사람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니체의 생각이 지나치게 '장자'스러운 면이 있어서, 공자님 말씀이 아직도 교과서에 실리는 나라에서 니체를 강조해서 가르치거나 알리는 것은 주류 학문 세상에서 밀려나기 쉬웠을 것 같기도 한데... 속내를 알 순 없다.

차씨(너무 길어서 줄임, 차이코프스키는 중국에서 차갑석이었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차도라 정도 되려나)는 '세상일을 어떤 목적 - 그것이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 해도-에 꿰어 맞추는 것에 질린' 사람이란다. 조선이나 대한민국의 국시에 전혀 맞지 않는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아마, 차씨는 미국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그러니 한국의 바나나 학자들은 그를 잘 모를 게지.

인간들은 '바보'지 '죄인'은 아닌데, 성직자들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147) 성직자는 죽음의 설교자이면서도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의사인 척 등장한다.(145) 그래서 그는 신은 죽었다고 한 모양이지.

주사위가 던져진 것 같은 우연의 세상(273)에서 세상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 태어나고 생성되는 것이다. 그의 초인(위버-멘쉬)의 의미도 원숭이-인간-초인의 직선이 아니란 것이다.

변증법적 부정의 세계처럼, 그는 '낙타' 같은 피동적 존재인 인간을 거부하고 '사자' 같은 용맹을 촉구한다. 그래야 위버-멘쉬의 실현을 맞을 수 있다. 인간을 넘어섬, 인간을 극복함, 결국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어떤 신이 스스로를 유일신으로 선언했을 때 다른 신들이 배꼽잡고 웃다가 죽은 것처럼 차씨는 '숭배'에 질색이다. 찬물 교회 신도들이 싫어할 만한 인간이다. 차씨. 그러니 유명하지 못할 밖에...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책에 각종 사상이 구구절절이 지저분하고도 난잡하게 늘어서 있지만, 니체는 전혀 언급이 없다. 모르니 안 쓸 밖에... 그리고 이 땅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데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 니체를 용납할 것인가... ㅎㅎㅎ 국가라는 우상도 마찬가지다. 국가란 온갖 냉혹한 괴물 가운데서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그의 입에서는 '나, 국가가 곧 민족'이라는 거짓말이 기어나온다.(184)고 썼다. 나너우리대한민국우리나라...로 국어 교과서가 시작된 학교를 다닌 내게 이 책은 혐오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이런 불온 서적을... 분서갱차할 노릇이다.

현대인들은 온전한 인격이 아닌 토막난 사람들이다. 모든 것에서는 너무 적게, 오직 한 가지에서만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전도된 불구자. (241) 고등학교에서부터 이과 문과를 나눠서 인간을 무식하게 만들고, 대학생은 지식에 대한 애정은 없고, 오로지 돈의 노예가 될 뿐이다. 토막난 주제에, 입이나 손가락으로만 존재하는 주제에...

정답을 부정하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생각한 니체.
니체 : 신은 죽었다
신 : 니체 너 죽었다
청소 아줌마 : 니들 둘 다 죽었다...
이런 썰렁한 개그를 듣고 니체는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그치만 니체는 평생을 아픈 몸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려한 의지적 인물로 보인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ㅎㅎㅎ
필자 치고는 최고의 개그 아닐까?
마치 글자를 삐뚤빼뚤 적어 두고는 스스로 대견해하는 어린 아이 마냥... 그가 최고로 친 것이 어린 아니다. 어린 아이처럼 사는 사람이야말로 위버-멘쉬다.
철학의 '필로-소포스'를 진리 숭배가 아니라 지혜의 친구임을, 그리고 친구가 된다는 건 그 진리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일임을(136) 읽노라니, 그야말로 철학을 아는(知者) 수준을 넘어 서서, 철학을 즐기는(樂者) 사람이며, 제대로 미친(狂者) 사람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생각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것이며, 누구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88)이라고 하는 니체는 철학자를 경멸했지만, 덕택에 철학자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하는 체 했을 것이다.

나는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리고 내가 나의 악마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악마가 <엄숙하며, 심오하며, 장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중력의 영'을 웃음으로 죽이자(255)^^... 니체 죽인다. 이 땅엔 어른이 너무 많고, 공자님 말씀으로 아랫사람을 우습게 보는 풍토가 만연하거늘, 차씨를 모시고 와서 강연회라도 열어야 할 판국이다. 자신만을 '선의 수호자'로 여기는 이들에게, 또 그 숭배자들에게 똥침의 날릴 지어다.

초인은 완성된 '명사형'이 아닌 동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고추장의 말에 동감이다.
위버멘쉬를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기' 혹은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변신하기'라고 한다고...
어쩌면 고추장의 말도 좀 싫다. 위버-멘쉬는 'over-man'일진대, 전치사를 '넘어서기, 변신하기'로 번역한 것은 다시 명사적 접근으로 치우쳐버린 감이 없지 않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 하든, '인간에서부터 변신에 대하여...'하고 하든 좀 더 동사스럽게, 전치사스럽게 표현했으면 싶다.

니체를 모르는 주제에, 고추장 책 하나 읽었다고 잡설이 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리뷰를 쓴 걸까?^^
이 글을 읽고, 고병권의 위험한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
니체 탐구는 쭈~욱 계속 해야 하는데... 사실 그의 차씨는 그냥 읽긴 너무 어려웠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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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4:53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드팀전 2007-09-2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라이팅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이 책도 그 때 봤었어요.쉽게 쓴 책이었다고 기억됩니다...그런데 요즘 나는 왜 이 시리즈에 시큰둥 해졌지??
기계... 되기 등은 들뢰즈 스타일이라는 ^^

글샘 2007-09-20 19:4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시리즈가 별로인데 자꾸 읽게 되네요.
어려운 건 싫고, 또 잘못쓴 것도 싫고 하면서...
개중에 고추장의 책이 좀 나은 듯 싶었습니다.(고미숙의 박지원과 진은영의 칸트 두 권 읽은 주제에...)
근데, 왜 저는 들뢰즈, 가타리 이 유목민들이 주는 거 없이 정이 안 들까요?

마늘빵 2007-09-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니체는 '아직'입니다. 학부 때 <도덕의 계보> 앞부분을 졸면서 읽었는데 통 정이 안가는 친구더라고요. 나중에 기회가 있겠죠. 고병권씨는 좋아라합니다. :)

글샘 2007-09-21 08:5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다 보니, 니체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만 하더군요.
금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상과 윤리 책에까지 등장하지 못하는 그 이유를요.
관심이 가는 사람입니다.
금지된 사과가 맛있다.^^
 
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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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 독자들은 가장 빠른 직선코스로 장자라는 정상에 이를 수 있는 능선으로 올라설 것이다. 여타의 다른 봉우리들에 한눈을 팔 틈이 별로 없다. 아주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비록 힘들더라도 한발 한발 능선을 향해 집요하게 오르면, 능선에 올라 땀을 닦는 독자들은 이미 능선이 끝나는 저 먼 지점에서 구름에 덮인 정상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신주

요건 최근에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 장자의 저자가 감히 한 말이다.
좀 우습다. 장자를 '가장 빠른 코스'로 그것도 '직선'으로, '정상'에 오르다니... 어불성설아닐까?
장자를 '빠르게, 경쾌하게' 움직여야 읽는 거?

장자는 속도의 개념이나 정도의 개념을 잊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빠른 코스로 정상을 오르려는 빨리 움직이는 경박한 자에게도 만병통치약이었던 모양. 저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심히 우려되는 바 크다.

다른 장자들이 지나친 설명으로 장황한 감이 넘치는 데 비해, 오강남 장자의 장점은 이야기를 듣는 듯, 그러나 그 풀이가 적절하게 궤를 지키고 있는 데 있어 보인다.

소요유를 '자유롭게 노닐다', 제물론을 '사물을 고르게 하다', 양생주를 '생명을 북돋우는 데 중요한 일들', 인간세를 '사람사는 세상', 덕충부를 '덕이 가득함의 표시', 대종사는 '큰 스승', 응제왕은 '황제와 임금의 자격'으로 풀면서, 전체적인 흐름들을 잘 설명해 준다. 설명이 역시 간명하면서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문자적인 것은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어서, 장자는 자구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응제왕에서 <메아리처럼 민첩하고, 기둥처럼 튼튼하고, 사물을 뚫어보고, 머리가 명석한> 사람을 <고된 종>이요, 일에 얽매인 <재주꾼>에 불과하다고 일갈!

저 강신주란 사람은 이런 말 읽고도 저런 서문을 썼나 싶다. 안쓰러움. 기회가 되면 함 읽어보고 까든지 감싸든지 해야겠다.

우물안 개구리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것만을 유일한 무엇이라 믿는 것까지는 자유이지만, 그런 잘못된 확신때문에 드넓은 바다처럼 훌륭하고 신나는 세계에 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 자기의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딴 사람들을 보고 자꾸 들어와 보라고 강요하는 열성은 딴 사람들을 더없이 성가시게 한다."고 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가 과연 '선교'의 사명을 질 정도로 큰 덕을 지녔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름에 매이지 말고,
꾀의 창고 되지 말고,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아,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에서 나는 내 가슴을 여러 번 두드린다.
그리고, 다시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앎의 주인 되지 말라... 모르는 주제에...
오직 그분의 종으로 살 일이다. 그게 양생이고, 웰빙 아니냐?
내가 이런 말 하면, 믿는 사람들은 같이 교회가자고 하더라! 젬병이다.
하긴, 그분이 그분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분이 그분임을 모르고, 자꾸 가자고 한다.

장자를 읽는 일은, 소나기 소리를 듣는 일이다.
내가 사는 일은 소나기를 맞는 일이다.
소나기를 맞아보지 않고서는 소나기를 경험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소나기 소리를 듣는 맛도 깊지 않은가? 소나기를 맞는 일이 시원할 적도 있지만, 고달플 적도 많으니...

이제 누가 장자를 묻는다면, '오강남의 장자'를 읽어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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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장자>는 오강남씨 걸 먼저 읽고 다른걸 건드리는게 좋은 듯 합니다. :) 이게 가장 기본이죠. 고등학교 수학으로 치면 <수학의 정석>

글샘 2007-08-16 13:49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군요. 근데도 저는 엉뚱한 다른 장자들을 읽다 보니...
영 가늠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요즘엔 정석보다 개념원리를 더 치는 사람들도 있던걸요. ^^

바람돌이 2007-08-1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지게 만드는 리뷰네요.
보충수업 끝나셨나요? 방학 얼마 남지 않았는데 푹 쉬시면서 체력보강 하셔야죠. ^^

글샘 2007-08-16 13:50   좋아요 0 | URL
일본은 잘 다녀오셨나요?
보충은 잘 끝났습니다. 보충 마치니, 곧 개학이네요. =3
체력 보강이 아니라 단식해야지... 하고 있습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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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구는 전혀 팽창하지 않는데, 이넘의 인간들이란 악머구리떼가 들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지간한 거리는 한나절이면 날아갈 좁은 곳이 되어버렸다.

80일만에 세계 일주를 한 것이 놀라운 일이던 것이 불과 한 세기 전의 일인데...

휴가철이 갓지났다. 휴가철이면 도로가 북새통이고, 홀랑벗은 젊음들이 해수욕장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그러나... 휴가에서 돌아온 정신으로, 삶을 돌아본다면...
휴가... 쉬는 틈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먹고, 마셨으며, 쓸모없이 버려댔는지를 반성할 수 있을까?

큰 조직은 통일성과 조직성을 추구하여 개인과 보다 작은 무리들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결국 정체와 부패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지속하는 세계 평화를 성취하기 위하여 현재의 정치경제 제제를 분산된 작은 단위들을 이루도록 재조정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옳고, 또 옳으신 말씀이다.

이 땅에 지방 자치제가 시행된 것이 12년 되었다.
한국은 1 특별시, 1 자치도, 몇 광역시와 몇 도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설특별시와 경기특별도의 한 덩어리와 기타 시골로 나누어지는 것이 이 나라의 실상 아닐까?

스와라지는 자기 통치, 자기억제라는 말이란다. 자치에 가까운 말인데...
국가에서 행하는 자치제가 아닌, 그야말로 소규모 단위의 자치가 가능한 살림살이를 말한다.
세계가 이미 그물보다 촘촘하게 엉키고 설켜 있어서,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만드는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다.
무서운 일이다.

이미 한 세기 쯤 이전에 간디가 겪은 일들은, 지나간 과거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간디의 스와라지는 '자치'를 통한 부의 획득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의 스와라지는 가난한 사람의 스와라지다.
스와라지의 정의는 진실과 아힘사(비폭력)를 통해 구축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의 스와데시(외래품 배척을 통한 자립 경제)란 철학은 외세를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의 꼬락서니가, 푸지게 먹고 버리는 <향유국>과 굶주려 죽을지언정 쓰레기조차 먹지 목하는 <빈곤국>으로 전락해버릴 것을 미리 내다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향유국>의 배부름이 이웃을 생각하지 못할 때, 간디는 그 배려의 부족을 <악>이라 부른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개성을 잃어버리고 기계의 한 톱니가 되어버리는 것은 인간의 존엄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다. 옳다. 정말 옳다. 그러나... 이미 인간은 톱니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필요없으면 제거해 버리는 이랜드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불필요한 톱니는 제거하면 그만이다. 역시 배려의 부족은 <악>이란 말이 옳고, 또 옳다.

도시화, 국가주의, 세계화라는 <종기 또는 부스럼>을 어떻게 해야할까?
간디의 대답은 마을의 마음이다. 과연 역사의 흐름을, 시간의 방향을 거스르는 <타임 머신>을 인류는 개발할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강철 군화'에서 <형제 인류애 시대>를 꿈꾸었지만... 그 형제는 인류애는 커녕 돈에 욕심이 멀어 날마다 더 큰 싸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간디의 비폭력, 비협력, 시민불복종은 시대를 타지 않고 모든 활동의 주제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이란 가장 폭력적인 힘의 행사 앞에서 비폭력, 비협력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재 시대의 점거 농성, 각종 시위들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귀여운 수준의 저항들이었는지... 그 시절의 언론들은 엄청 겁주면서 보도하곤 했지만...

간디의 교육관 한 마디.
교육에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두뇌는 손을 통해 교육되어야 한다...
아이가 신발 끈도 맬 줄 모르고, 스스로 제 먹은 밥그릇 치울 줄도 모르는 세상.
정크 푸드는 먹고나면 몽땅 버리면 그만이고, 신발도 좀 신다가 버리면 되는 세상.
컴퓨터 키보드를 조금만 누르면 남에게 상처도 주고, 싸움도 할 수 있는 세상.

배가 불러 터진 인간들에게, 류영모 선생도 그러셨듯, 겨우겨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좀더 가난하게 살라고...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자에게,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인간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멘'이 아닐까? 됐으니 그만 집어 치우슈~ 하는 야유 대신, 아멘! 됐거든요.

간디의 노동관 중, 대중의 병은 돈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일의 부족>이란 말이 마음에 찔렸다.
도시 생활자가 많아지고, 도시가 삶의 중심이 되면서, 노인이나 장애인 또는 조금 부족한 사람들은 '일의 부족'을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되었다. '중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던 학교 교육도 고도로 기계화된 세상에서는 별로 필요없게 되어버렸다. 대중은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이 부족한 것이다... 이랜드에서 파업하던 아줌마들이 그랬다. 일이 하고 싶다고...

그의 양생법도 읽을만 했는데, 변비엔 오래 걸으란 말이나, 하반신욕을 하라는 말, 깨끗한 공기와 열린 곳에서 살면 병이 없다는 말...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가까운 곳엘 가도 차를 갖고 다니고, 반신욕을 할 정도로 여유를 탑재하고 있지 못한 우리는 꽉꽉 막힌 곳에서 에어컨을 켜고 살아야 웰빙인 줄 착각한다.

이제 나도 절반 가량 살았다.
나머지 절반 가량은 내가 분해될 흙에 가까이 돌아가 살아야겠단 생각을 늘 한다.
돌틈 사이에 끼어 살면서 하늘도 네모나다고 생각하는 빠빠라기가 흙을 꿈꾸도록 만드는 간디 선생의 글은, 간디를 얼마나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가... 무지를 깨쳐주는 독서였다.

소크라테스는 역시 훌륭했다. 네가 무식하단 걸 너는 모르냐? 그렇습니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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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를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부분에 저도 걸립니다.

글샘 2007-08-16 13:51   좋아요 0 | URL
뭐든 읽어 보면, 모르는 걸 아는 체 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사고를 이렇게 뒤틀리게 만든 주범은, 바로 초딩용 교과서였단 생각이 요즘 많이 듭니다.ㅠㅜ

순오기 2007-08-16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 제겐,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분입니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 ~~~ 또 배우고 갑니다! 꾹~~~~

글샘 2007-08-16 13:53   좋아요 0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간디의 비폭력은, 민족 자립 없는 '폭력 저항'만으론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교훈을 주거든요. 딱 우리나라잖아요. 독재 정권을 폭력 저항으로 무너뜨렸거늘... 아무 것도 나아진 게 없잖아요.
세계화를 빙자한 미국의 경제 침략이 갈수록 가시화되고있는 때여서, 간디의 거꾸로 사는 법들은 서늘했습니다.

마노아 2007-08-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녹색평론사 책이네요. 보관함에 책이 자꾸 쌓여요..;;;

글샘 2007-08-16 15:40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교과서에 김종철의 '간디의 물레'가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접 간디의 책을 읽어 보니 간디의 정신이 시원하게 느껴지더군요. 시간이 되시면 느긋하게 읽어 보시길...
 
산수간에 집을 짓고 - 임원경제지에 담긴 옛사람의 집 짓는 법 참 우리 고전 7
서유구 지음, 안대회 옮김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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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빠, 엄밀히 말하면 쓰잘데 없는 데 돈 다 쓰려고 허덕거리다가 죽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좀 허망하다.

내 나이 이미 불혹을 넘었다. 이제 20년 정도 지나면 이 안정적인 직장이지만 퇴직을 해야 할 것이고, 그후 짧아도 20년 길면 3,4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어리석은 인간이 오래만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 생각하므로...

그래서 조용한 시골 마을로 숨어 들어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점수 따는 일에 나설 마음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점수를 따 놓으면 그게 누가 되어 훌쩍 떠나지 못할 지도 모르니깐. 나도 산골마을에 숨어서 살 팔자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땅 넓고 경개 좋은 곳으로 가서 살기에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우연히 산수 간에 집을 짓고... 하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는데, 야, 이거 대단하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로 정약용은 알고 있었지만, 풍석 楓石 서유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번에 '임원 경제지'라는 책에 실린 일부, 건축에 대한 글만을 접하는데도 입이 떡 벌어지거늘, 그의 농학과 의학에 대한 실학적 접근에 대해 듣기만 해도 기함을 할 노릇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물질 문명에 개화를 할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일본이 쳐들어와서 나라를 잃고 말았지만...

388쪽에 실린 임원 경제지의 구성을 보면,
1. 본리지 : 농업 일반
2. 관휴지 : 채소, 식물류, 약초류
3. 예원지 : 화훼류
4. 만학지 : 과실, 수목, 차, 대, 담배
5. 전공지 : 여성 농사, 길쌈, 삼베와 솜
6. 위선지 : 기상 관측
7. 전어지 : 목축, 사냥, 어업
8. 정조지 : 요리, 술과 시절음식
9. 섬용지 : 건축, 가재도구, 의복, 재봉, 교통, 공업제도
10. 보양지 : 섭생, 양생, 육아
11. 인제지 : 한방 의약 일반
12. 향례지 : 일반 의례, 관혼상제 풍속
13. 유예지 : 독서법, 수학, 활쏘기, 서화, 음악
14. 이운지 : 취미, 오락, 여행, 예술품 감상, 서적 등 여가
15. 상택지 : 주거지 선택, 지리
16. 예규지 : 상업과 재산 증식, 팔도의 시장 등
이렇게 꼼꼼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백과사전이다.

총 66권의 인용서를 붙인 이 책의 자료들의 박학함에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정약용이 경세치용의 대가라면, 서유구는 그야말로 이용후생의 대가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런 실학적 정신의 철저함에 문약한 위정자들은 무지하기 짝이 없었던 점은 너무도 아쉽다.

오늘날 헛되이 곡식만 축낼 뿐, 세상이 보탬이 되지 않는 자로는 저술하는 선비가 실로 우두머리라고 말하겠다. 그중 용렬한 자는 가짜를 빌리고 품을 팔아 죽은 사람의 울타리 아래에 붙어사는데, 좀 똑똑하다는 자조차도 궤변을 늘어 놓으며 이치 속으로 숨어들고 허위를 꾸미며 실용에 절실하지 않고, 쓸모없는 학문에 정신을 소모시킨다...

이런 비평문을 쓴 것을 볼 때, 당시에 서유구의 업적을 어느 누가 알아 주었으랴 싶으니 마음이 쓰라릴 따름이다.

한국의 건축, 주택이라고 하면 풍수 지리 정도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섬세함이 정원의 나무와 풀 한 포기, 책의 배치까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을 모르는 주제에, 알 생각도 하지 않은 주제에, 서양의 그것만을 부러워했던 일을 생각하면, 옥시덴탈리즘의 어리석음의 영향은 크기도 하다.

인가 주변에 대나무를 울창하게 심되, 집의 동쪽에는 복숭아 나무와 버드나무를 , 서쪽에는 산뽕나무와 느릅나무를, 남쪽에는 매화나무, 대추나무를, 북쪽에는 사과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면 잘 된다.
동쪽에 살구나무를 심어서는 안 되며, 남쪽과 북쪽에 배나무를 심어서는 안 되고, 서쪽에 버드나무를 심어도 안 된다. 중문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3세가 번창하며, 집뒤에 느릅나무를 심으면 귀신이 도망하여 숨는다.
뜰앞에 오동나무를 심으면 주인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 파초를 많이 심으면 시간이 흐른 뒤 재앙의 빌미를 부른다. 대청엪에 석류를 심으면 후손이 번성하고 크게 길하다. 안마당에 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다. 그늘을 드리운 곳에 화단을 만들면 음탕한 마음을 부르고 손해를 부른다. .. 큰 나무가 난간에 가까이 있으면 질병을 부르고, 문 앞에 두 그루 대추나무가 있으면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

이렇게 섬세한 관찰을 대 저서로 만들 생각을 했던 사람들의 삶을 어찌 얕볼 수 있겠는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1부의 '이운지'의 뒷부분, 형비포치 부분이다. 형비는 은자가 살아가는 집을 가리키고, 포치는 배치의 뜻인데, 소란스런 세상을 피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을 참으로 상세하게 보여준다. 가구의 배치, 집의 배치, 정자와 문, 담장, 울타리, 기와, 방아와 맷돌을 놓은 방향까지... 상세하게 다루지 않은 점이 없을 정도다.

타샤 할머니 집처럼 울타리에 꽃사과 나무를 가득 심고, 수선화며, 접시꽃이며를 피워올리고, 수줍게 딸랑거리는 꽈리도 울타리 아래 둘러친 조용한 집에서 방바닥에 배깔고 누워 책읽고 있는데, 마당을 두들기는 소낙비 거센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이 아니 즐거울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흐뭇한데, 이런 책을 발견하게 된 것도 한껏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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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쉽게 만나는 장자
윤재근 지음, 김광성 그림 / 나들목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장자를 읽노라면 장자의 넓음에 놀라고 만다. 다른 책들은 읽다 보면 '기시감'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전에 '선생님'이란 책을 아이의 초등학교 선생님께 선물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읽다가 몇 년 전에 읽은 책이란 걸 깨달은 적이 있다. 그런데 장자나 노자 같은 책들은 다시 읽어도 낯설고 새롭기만 하다.

그게 장자의 맛이다.

만화로 된 장자는 원래 장자의 순서를 마구 뒤헝클어 두었다. 인물 중심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페이지도 두 페이지 아니면 네 페이지 정도로 이야기를 간추려 두었다.

장자란 이야기책이 원래 자잘한 이야기들의 집합이니 이렇게 만화로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의 장자가 좀 신선처럼 생겼지만, 어떻게 생긴들 어떠랴. 나비나 장자나 그놈이 그놈인 걸.

이번엔 장자를 읽으면서 아이들 생각을 좀 했다. 아무래도 학년말이라 새학기 계획도 마음에 잡히고, 지난 해 아이들에게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그런가보다.

안합과 백옥을 이야기를 읽으면서였을까? 문제아 태자를 가르치게 된 안합이 백옥을 찾아갔다.
안합이 문제아 태자를 올바로 고쳐야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자, 백옥 왈,
"등잔을 보게, 어디서나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네. 하지만 등잔 밑을 밝히기 위해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불은 꺼지고 온 방 안이 어둠으로 변하지. 태자의 무모함도 이와 같네. 태자에게 나는 현인이니 나를 따라 하라고 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태자를 무결점 인간으로 만들려는 것은 자네의 욕심이란 말일세.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모르는 법이라네. 그러니 힘쓸 필요가 없네. 태자가 애처럼 군다면 그렇게 굴고, 철없이 군다면 같이 굴고, 방종하면 그렇게 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뀔 것일세."

그래도 안합이 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자,
"자신의 훌륭함에 도취되어 상대방을 거역하면 위험한 법."이라며 당랑거철, 수레바퀴에 맞서는 어리석은 사마귀의 예를 들어준다. 스스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태자를 가르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이다! 아!
호랑이 사육사의 예도 같다.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끌고가려 하면 화를 당하는 법. 호랑이를 말 잘 듣는 토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아무리 다그쳐도 호랑이는 호랑이일 뿐, 인위로 되는 일이 아니다...

양자거를 비웃는 대목도 재미있다.
"훌륭한 왕의 정치는 공적이 아무리 커도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한다.... 올바른 정치가 베풀어지고 있지만 나타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만족하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무의 세계에서 노니는 사람이 진정한 왕이다. 분별하지 않는자, 욕심내지 않는 자. 무엇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 그것이 진정한 왕의 모습"이라고 한다.

재주에 매여서 개줄에 매인 개가 되지 말 일이다.
호랑이와 표범의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 들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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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그 맛을 저도 봅니다.
아마 세월이 흘러 우리들의 아상이 조금씩 녹아내릴수록..
그 의미가 선명하게 와닿는 이유라 생각됩니다.
쉬운 한자로 된 노자는 글의 쉬움과는 달리 그 뜻이 현묘하고 어렵고..
웅대하고 화려하도록 풍자적인 장자는 그 품은 뜻이 깊고 웅장하니..
그야말로 읽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 매력에 더욱 빨려드는군요..

글샘 2007-03-0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떨 땐 쌉싸롬한 술맛이고, 어떨 땐 시원한 음료수 맛입니다.^^
이번엔 아무래도 학년말 방학이라 아이들 생각을 하며 읽은 모양입니다.
달팽이님도 행복한 새 학기를 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