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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세대가 본 논어 1
배병삼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평점 :
마구간이 불탔다.
선생님(공자) 퇴청하여 말씀하시길, 사람이 상하였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10 : 12)
사람이 여섯이나 죽었고 많이 상했다.
뉴스에서는 전문 시위꾼 탓이라 한다.
경찰특공대 탓이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과잉 진압해 미안하단 놈 한 없다.
사람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어질지 못한, 몹쓸 세상이다.
배병삼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 1에서는 10편 향당까지가 풀이되어있다.
논어는 워낙 많은 판본이 존재하는지라, 그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10편까지가 논어의 정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주로 공자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공자님의 안회 사랑이 지극하고, 자로는 옆에서 늘 한템포 못맞춰서 구박을 받는다.
나는 논어를 읽노라니, 자로가 되어 공자님이 좀 얄밉고 원망스러웠다.
자로는 이렇게 순박하다.
공자왈, 해진 솜두루마기 입고서, 여우나 담비 갖옷을 입은 사람과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자로야. 해치지 않고 탐내지도 않으면, 어찌 착하지 않으랴.
자로가, 죽을 때까지 그 말을 외워 지니겠습니다. 하니,
자왈... 이 말 정도를 갖고 어찌 넉넉히 착하다고 하랴!
아이고, 그냥 그 정도면 충분히 칭찬해줄 만 하구만.
콕 찍어서, 야, 너는 착하긴 하지만, 지극한 선(에이 플러스)까지는 안돼! 해야 맛인가.
야속하기도...
자왈,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떼를 엮어 바다로 뜰까보다. 날 따를 이는 자로뿐이겠지?
자로, 좋아했더니,
저 녀석 용기를 좋아함은 나보다 나으나...(요기까지면 좋았으련만...)
재료를 취할 게 없다니깐.(ㅠㅜ 자로, 아임 쏘뤼)(5:06)
공자 선생님, 너무하셔요... 편애의 경지가...
실로 배우려는 자가 조급해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나머지 세 모서리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7:08)
정말 냉정한 교육 철학이다.
자공도 마찬가지로 불쌍하다.(그래도 그는 돈이나 많이 벌었지.)
자왈, 너와 자공이 누가 낫냐?
자공왈, 회는 문일지십이고 저는 문일지이...정도. 헤~(저 잘했죠?)
자왈, 그래. 알긴 아네. 네가 같지 않음을 아니 됐다.
자공 : ㅠㅜ
고기는 비록 많이 먹을지라도 밥기운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오직 술만큼은 정한 양이 없었으나, 휘둘리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不及亂)(10:08)
너무 먹어대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술도 어지러움에 미칠 정도로 마시면 안 된다. ㅠㅜ
공자의 이야기의 핵심은 인(仁)이다.
어짊...으로 풀이되는 이 말은 '둘 + 사람'의 회의문자다.
두 사람이란 곧, 사람 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단언하기 어려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허물이란 각기 그 유형이 있더구나. 허물을 헤아려보면 그 '사람다움'을 알 수 있느니. (4:07)
장점을 모를 때는, 허물을 찾게 된다.
허물이 적다면, 인에 가깝다고 읽을 수 있다.
인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好學'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공자가 취하는 학문은 단지 인문학 뿐만 아니다. 르네상스 형의 만능인으로서의 호학이다.
그리고 배부름과 편안함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배부름과 편안함 사이의 경계를 부릅뜨고 지켜보기,
또는 그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 바로 '도'를 닦는 길이다.
이 두 진영 사이의 좁은 길, 좁은 문은 "오로지 한 길 뿐인데..." 이것이 '중용'이다.(59쪽)
아, 어렵고 어렵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좁고 좁은 가운뎃길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이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거듭하지 않는 것.(不遷怒 不二過)(6:02)
중용의 길은 멀고 험하다.
이런 중용을 알았으니 회를 그리 사랑했지. 잘난 동기를 둔 자로와 자공은 안쓰럽다. ^^
선생님은 네 가지가 없었다. 사사로운 뜻, 반드시, 꼭, 그리고 나도 없었다.(9:04)
이런 것이 인에 가까운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사사로운 뜻과, 반드시, 꼭, 나를 집어 넣으면... 이것은 '부조리'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공평무사한 관계. 이런 것이 인인데...
한국 공무원 사회가 정말 공평무사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수사적인 말놀음에나 있을 뿐...
오죽하면, 선공후사(공적인 것 앞세우고 개인적인 것 나중에 한다.)의 좋은 뜻이 이 땅에 와선,
공적인 돈 먼저 빼 먹고, 내 몫은 천천히 먹어도 된다는 비아냥이 되었으랴.
그 자리에 있지 아니하면, 그 업무를 논단하지 말아야 하느니(8:14)
남의 일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이다. 옳다.
내가 해 보면 정말 어려운 것도 남이 하면 뒷담화가 무성하니... 입조심 할 일이다.
논어 안에선, 어디서 들어본 말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오는데...
안회를 칭찬하는 말에
어질구나.
회는 한 그릇의 밥과 한 모금의 물로 누항에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는데 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구나.(6:09)
'일단사 일표음'과 '누항'이 이런 데서 나온다.
자왈, 묵묵히 마음에 새기고, 배우며 싫증내지 않으며,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 것.
이중에 내게 능한 건 무엇일까?(7:02)
덕이 닦이지 않고, 배움이 몸에 익지 않고, 의를 들어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들이 다 내 근심이려니...
아, 늘 이렇게 자기 반성에 익숙한 이라야, '인'에 가깝겠거니...
조선조에서 지나치게 떠받들렸던 공자의 권위가
근대화의 시대에 모든 인습의 주범으로 몰려 쫓겨나 버렸으나,
이제 다시 인간이 중심에 서는 시대를 만들려면,
무릇... 논어를 조근조근 읽을 일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옛것을 익혀 새 것을 알아내는 경지에 다다르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