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치료다 -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의 본질, 아이들의 치료사, 교사와 부모를 위한 영적 안내서
루돌프 슈타이너 지음, 김성숙 옮김 / 물병자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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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의 교육학은 여느 사회학 범주의 교육학을 초월한다. 보통의 사회학은 학생을 지도 대상으로서의 인간으로 파악하지만, 슈타이너에게 학생은 '영혼'이다.

특히 장애 아동의 질환을(간질, 정신질환, 도벽 등) 신체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부조화로 보고, 이것을 교사가 파악하여 치료할 수 있음을 증거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육학이라기 보다는 의학 서적이라고 해야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가 아동의 영혼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장면은 자세한 것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치료교육자는 언젠가 그 아이가 죽은 후에 신들이 행할 일을 현재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도교사의 명상을 강조한다. 지도교사는 매일 밤, '내 속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나는 신 속에 있다.'는 명상을 취한다. 점은 원이고, 원은 점이다. 점은 원 안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면서, 그 원은 다시 점 안에 포함된 존재이다.

어린아이는 7년마다 새 옷을 갈아입는다는 의견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그리고 유물론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의 개념을 카르마(업)와 육화(윤회, incarnation)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도 설득력이 강하다. 영혼이 신체에 결합하여 개성체가 되는 것은 수육과정, 즉 incarnation process라는 것이다.

교육의 황폐함이 밝혀진 현 시점에서 슈타이너의 교육 사상은 단순한 개별적 교수법이 아닌 가장 본질적인 부분, 즉 인간 존재와 정신의 실존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늘 깨어있는 교사에게 시사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지식을 주입하던 소품종 대량생산식 교육의 패러다임이 노마드(유목)적 문명전환의 시대의 교육으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슈타이너의 인간을 위한 교육, 영혼을 살피는 교육이 우리 교육에도 접목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곧 교육개혁에 착수한다고 하는데, 우리 교육엔 너무 비전이 없다. 청사진이 있고, 그 설계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되는 개혁이라면 지금의 부조리함도 참고 희망을 가질 수 있으련만, 우리 교육에 희망은 너무도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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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19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보이는 것만을 쫓아온 우리들의 삶과 교육에서 보이지 않는, 하지만 보이는 우리세상을 만들어가는 보다 중요한 것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교육관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눈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4-10-19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선에서 계시는 분이니 어련히 잘 아시겠습니까마는 사회의 모든 기초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그 기초가 기존의 지식이나 방식만을 주입하는 제도는 이제 정말 개혁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글샘 2004-10-2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교사가 학생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가르치는 이로서의 teach-er로 전락하겠지요. 선생으로서 학생의 영혼을 돌보는 마음... 마음공부가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여우님... 오랜만에 오셨군요. 포도가 건포도가 돼가네요. 일선- 이거 군대용어 아닐까요? 전쟁터의 가장 앞선 말이에요. 하긴 일선에서 아이들과 치르는 전투는 힘겹다는 점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지요. 후방에서 지원이 없으면 일선의 전투는 너무 힘들답니다. 위에서의 개혁을 포기한 지 오랜지라, '나부터' 교육혁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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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수돌, 이름도 참 촌스럽다. 수돌이. 그리고 그는 촌에 산다. 촌으로 이사가서. 참 촌스런 생각이다. 좋은 말로 하면 친환경적인 이름이고, 친환경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친환경 하니깐 뭔가 있어보이지만, 사실 우린 예전에 모두들 촌스럽게 살았고 친환경적으로 살았다.

그의 글은 참 맘에 든다. 뭐니뭐니해도 그에게는 플랜이 있으니깐. 우리 나라에 가장 없는 것이 바로 '플랜'이고 '청사진'이다. 미래가 없다. 특히나 교육에 있어서는...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했는데, 우리가 해방되고 나서 생긴 근대식 학교는 군대식 학교로만 남았고 교육과 대계는 없었다. 소계조차도 없었고, 늘상 두들겨 맞는 데 이골이 났을 뿐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는 지론을 갖고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이들의 무거운 책가방을 보고는 시지푸스의 바위를 생각하는 그는 정말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남을 디디고 올라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니다. 슬기로운 눈으로 사람과 자연, 사회를 꿰뚫어 보고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데 문제가 있다면 힘을 합해 고쳐나가는 창의적인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고압적이던 문교부를 교육부로 바꾸고, 이젠 교육의 상품으로 제조된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교육인적자원부를 나처럼 아주 맘에 안 들어하는 것도 맘에 든다. 그들의 수직적 학교 모델은 인간을 중심에 두는 수평적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데, 그들은 바뀔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부터 바뀌는 수 밖에...

80/20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20%를 존중하던 교사가 아니었던가. 사고치는 20%에게는 억압의 기제를 발동하고... 성적올리는데 유능하고, 자상한 선생님의 대증요법에 힘을 쓰면서 스스로 자위하고, 근본적인 변혁에는 게을렀던 나부터 바꾸지 않고는 교육에 변화는 없다는 것.

신창원이 한 말도 명언이다. "영웅도 악마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악마를 만들지 말아야 할텐데... 영웅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의 청사진들을, 제발 제도권에서 우리 목소리들을 들어 줬으면 좋겠다. 우리 교육엔 미래가 없다. 

일류대학강박증, 조급성, 그리고 옆집아줌마. 이 세가지를 극복하자는 것이 그의 청사진이다. 내가 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30년 전의 레드 컴플렉스를 이만큼 극복하기에 우리는 너무도 아팠듯이, 건강한 삶의 주장이 뿌리내리는 데 적어도 삼십 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십 오 년 정도 교단에 더 있을 수 있다. 내 작은 힘이나마 청사진의 토대에 보태야 할 것이고.

2002년 11월 8일에는 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아빠는 2일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내가 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어른보다 더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을 남기고 목을 맸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런 아이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건강한 교육을 위해 무언가 시작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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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발도르프학교
정윤경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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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는 요즘 읽은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그의 책을 읽어나갈수록 무한한 상상력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신비적 감정이 아닌 분명한 개념을 통해 정신적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정신의 영역을 신비의 요소로만 보려하지 않고 과학적 개념의 틀을 세우려 한 것이다. 이 점 어제 읽던 성철 스님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우리 몸은 세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신체는 유전 법칙에 지배되며, 영혼은 자기 창조적 운명에 따르고, 정신은 불멸하여 끊임없이 지상의 삶을 반복한다. 신체는 물질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로 이뤄지고, 영혼은 감각혼, 오성혼, 의식혼으로 구성되며, 정신은 정신의 물질체, 정신의 에테르체, 정신적 자아로 짜여져 있다. 이 책과 성철 스님의 책을 나란히 읽는 와중에 참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슈타이너의 책에도 윤회(reincarnation)와 카르마(Karma)가 나오는 것.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고, 그 이유와 관련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아이들은 우주적 존재이고, 아이들이 발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인류와 우주 전체의 진화 과정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불생불멸의 인간을 이야기한 불교와 명확히 합치하는 점이 아닌가.

학생들이 개성을 잃어버린 것은 진정한 교육은 사라지고 고된 학교생활만 있었기 때문이어서, 새로운 학교, 인간교육을 지향하는 학교라면 교사 교육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 교육 철학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우리가 숱하게 들었지만, 결국 우리 사범대학에서, 또는 교대에서 진정으로 학생에 대한 이해를 가르친 적은 없지 않았던가.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가 어떻게 '영혼을 위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교육을 중심에 두지 않고, 교육 인적 자원을 중시하는 물신숭배 사상이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지 못하고 물적 자원 차원의 수단으로 보는 현실인데, 교육이 자유로운 정신 생활을 가르치고, 정치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사립학교라고 한들 공립학교와 다른 것이 전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립학교에서 신입생을 뽑는 것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면 그것이 어이 사립학교란 말인가.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이상의 학교가 생길 때가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말을/ 나는 말한다./ 나는 말했다./ 나는 추구한다, 정신 안에서 나를./ 나는 느낀다. 내 안에서 나를./ 나는 지금 정신 세계로, 나에게로 가는 중이다.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과 학생이라면 수업에 더 열중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소중함과 내가 지금 하는 행위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고 교육에 몰두한다면.

나는 슈타이너의 '기질론' 읽기를 좋아한다. 기질이란 태어나기 이전의 정신세계에서 가져온 것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소가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아가 강한 담즙질, 아스트랄체가 우세한 다혈질, 에테르체가 성한 점액질, 물질체가 강한 우울질.

이 기질들은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대신에 아이들의 주된 기질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주된 기질을 상반된 기질을 권함으로써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기질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교사와 부모는 심각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기질론은 학생을 단정, 재단하여 분류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되며 현재 아이들이 드러내는 서로 다른 모습을 이해하는 단서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잠은 깨어나기 마련이므로 자고 있는 상태의 의식을 보이는 아이들 역시 적합한 교육을 통해 잠자고 있던 의식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

교육은 과학이라는 지식 체계 아닌 예술이다. 그래서 학생은 전체와 균형과 조화로서의 전인교육이 되어야하며, 여기서 교사는 예술가의 역할을 담당한다. 교육의 내용은 삶과 통합되어야 하고, 삶과 유리되지 않은 내용이어야하며, 예술적이고 실제적인 포괄적 통합적 내용을 담보해야 한다.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교육, 빈부의 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로서의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슈타이너 교육의 학습은 필수과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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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 1
요하네스 키어쉬 외 / 밝은누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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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다니던 그 어둡던 시절, 목놓아 부르던 노래들에는 '자유'가 참 많이도 들어 있었다. 그 때는 무엇이 그리도 울적해서 그토록 자유를 목놓아 불렀던 것일까. 밤늦도록 골방구석에서 자유를 부르짖다가 가로등 기다란 그림자따라 돌아오는 길조차도 답답웠던 것일까? 그러나, 그 때 나는 정말 자유롭고 싶었던가? 관념적인 구속과 관념적인 자유에 파묻혀 대학생활 자체를 혐오하기까지 했던 것이었는데...

자유를 실천하는 교사가 되리라고 마음먹고 교단에 선지 벌써 십육년째. 날마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수그린 뒷꼭지만 노려보며 졸고 있는 나는, 간수가 아닌가. 자유를 묵살하고, 자유를 구속하는 간수. 학교 어디에 자유가 있다는 말인가. 노예들이 해방되고 걸어들어간 곳은 노동자라는 이름의 갑옷이었듯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좌절하고 자조하던 나에게 어깨를 툭 치며, "자네 뭘 그리 절망하는가.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절망하는 건 비겁한 일 아닌가?"하며 심장을 건드린 책이 발도르프의 자유학교였다. 작년에도 일본 사람이 쓴 슈타이너 학교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었지만, 그 땐 별로 좌절하지 않았던가보다.

우리 아이가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서 밤 열두시 넘도록 학원엘 뛰어다니면서 얻어오는 성적으로 좌절하다가 겨우겨우 들어간 대학이란 곳은 교수들의 밥통 채워주는 사기업이고, 실업자 양성소인 현실에서 무엇을 바라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시 배우러 학원에 가는가. 아니, 정말 뛰어난 어린이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정석을 배운다는데, 그래서 들어간 대학에 도대체 무엇이 있더란 말인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저 우리끼리만의 경쟁,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른 녀석을 짓밟고 '좀더 비싼 내'가 되어본들, 우리 학교의 경쟁력은 세계 어디에서도 알아주지 않는다. 진정한 경쟁력은 박찬호나 박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국인의 저력에서 그런 이들의 이름이 거론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는 향학열, 교육열은 부끄럽게도 운동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닌가.

학교는 빌게이츠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박찬호나 박세리를 기르는 곳도 아니고, 한류 스타를 배출하는 데는 더더욱 아니며, 세계적인 영화감독 김기덕을 가르칠 수는 전혀 없다. 김기덕, 그는 학교와는 연이 없는 가방끈 짧은 사람이 아니던가.

학교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자기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곳이라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학습은 대학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가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하고, 중고등학교 공부가 하기 싫은 숱한 아이들을 학원으로 밀어넣는 행위는 자살방조에 다름 아니다.

슈타이너의 교육학을 대학에서 배웠던 적이 전혀 없었건만, 그의 중심에 '사람'의 '영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지난 십육년간 나는 과연 우리 반 아이들을, 내가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났적 있었나. 성적표를 보고, 이 자식은 국어, 영어는 잘 하는데, 왜 이렇게 수학을 못하나 하고 비평만 할 줄 알았지, 얼마나 수용적이고 학생의 미래를 걱정했던가.

오늘 면담한 우리 반 아이에게도 대학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치라고 했지,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꿈을 갖도록 어떤 말을 할 수 있었던가.

"어린이는 자신이 받은 성적 평어라는 것을 이듬해에 매주 한 차례씩 말하도록 되어 있다. 거기서 무의식으로 자기 발전에 대해 직접 배울 수 있게 되어야 하며, 자기 발전을 위해 어떤 충동을 얻어야 한다."

이런 것이 교육자의 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심사원려한 끝에 적어주는 한 마디는 무의식중에도 자기 발전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하고, 학생의 발전을 위해 어떤 충동을 직관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학생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 어린이, 학생을 대상으로 보는 태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세다.

이 책 두권은 자유 발도르프 학교의 하나인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의 이야기를 1권에서는 행정적인 측면에서 2권에서는 교육과 학습의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슈타이너의 깊은 사고의 힘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건물의 설계에서부터, 음악, 율동, 외국어, 문학, 미술과 각종 학습의 방식(오이리트미, 포르멘, 에포트 등)에서 얻은 영감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다만,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너무도 멀리 있어서 자유학교를 꿈꾸기에는 내가 너무 늙은 게 아닐까 하는 좌절이 다시 너스레를 떨지만, 좌절의 끝에서 만나는 희망은 숨통을 조금은 틔어 놓는다. 깊이 공부할 것이 생긴 이 가을 아침이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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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10-0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젊은날 지녔던 생각을 놓치지 않으시려는 모습이 아름다와 보입니다.
말해도 소용없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어떤 괴리를 느끼시고 또 어떤 대안을 찾으시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전 아직 아이가 없지만 ...후에 아이가 생기면 과연 만연한 체제로 부터 소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무었을 할 수 있을까요? ... 제대로 된 책을 읽고 현실을 한탄하고 현실의 잘못된 걸 지적하고 무엇이 좋고 나쁜줄 알고.....뭐 그렇습니다.근데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앞으로 해야할까요? 늘 궁금합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다른 대안을 꿈꾸면서 미래에 수능과 내신을 위해 아이를 떠밀어야한다면 전 자기모순에 빠지게될 것이고 ..... 머릿속에서 꿈을 꾸며 현실을 쫓으며 부질없는 타협에 남들도 다들 그런다는 자기위안-마스터베이션-을 하며 머리만 큰 기형으로 살아야하는 건 아닐까...심히 걱정되는군요.
저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님의 학교 학생들을 봅니다.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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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상' 선생님이다.

 안준철 선생님이 쓰신 글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읽은 적도 있고, 아이들에게 소개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읽게 되니, 역시 사랑이란 것도 급수가 있고, 경력이 있고, 체계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님은 역시 나보다 한 끗발 위시다. 한 급수 높으시고, 한 경력 하신다. (여기서 한 급수는 무한급수이다.)

제목에 '아이들'이 크게 인쇄되어 있다. 마음이 뭉클해온다. 선생에게 아이들은 존재의 이유 아니던가. 사소한 포인트의 차이에서도 아이들은 존재론적 가치를 드러낸다.

난 오늘도 가녀린 여자애들 팔뚝을 뭉툭한 30센치 자로 찰싹찰싹 때려 주었다. 어제 수업에 도망간 죄로. 덕분에 오늘 오후 자습 시간엔 교실 가득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공부하는 애들 뒤에서 안준철 선생님의 글을 읽자니 도저히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다. 혹시 애들이 이 책을 어깨 너머로라도 읽고 '선생님은 뭐하는 거예요?'하고 묻는다면, 난 사표라도 내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역시 사표를 낼 필요는 없다. 안준철 선생님의 글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성공하고 있는 해피엔딩인 것으로 보이지만, 선생 경력 십오년이 넘은 내 눈에는 행간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고민들이 더 인간미로 다가왔다. 선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받게 되는 아이들의 상처와, 교사 중심의 학교에서 당하는 아이들의 패배, 굴욕, 굴종, 반항, 증오의 보이지 않는 커리큘럼들.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새로 받을 때의 서운함과 설레임, 날마다 패배하는 교사의 무거운 어깨와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는 빈 심장의 사랑. 졸업식 마치고 아이들을 다 돌려 보낸 뒤 빈 둥지를 잠그며 느끼는 우울증.

난 실업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없지만, 아이들이 두렵다. 내가 아이들을 포기하게 될 것이기에 두렵고,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고, 무엇보다 삶에 지기만 한 아이들을 만나서 싹을 틔울 자신이 없어서 두렵다.

안준철 선생님의 들풀이란 시를 분필통 뒤에 오년을 붙이고 다녔더니 너덜너덜해 졌다. 가끔 뒤집어져 있는 분필통을 보며 나를 부끄러워했는데,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 마음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 눈빛으로 알고, / 따스히 흘러 /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 화사하지 못하여 / 키에 가리워 / 먼 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 한번 더 다가섰으면 /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여름방학도 없이 매일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학교에서 형광등 불빛 밝히며 형광지공을 쌓는 우리 반 마흔 명의 꽃송이(아, 한나는 수시1로 합격했으니 39명)들에게 내일은 맛있는 점심이라도 사 줘야 겠다. 그리고 해운대 바닷가 가서 미니 소풍이라도 시켜주고싶다.

샛별이, 효정이, 미희a, 미희b, 민정이, 수빈이, 수영이, 이은이, 현주, 희야, 수진이, 재희, 혜성이, 인혜, 자영이, 민혜, 예원이, 지선이, 혜란이, 선애, 세령이, 지윤이, 햇님이, 소연이, 유리, 혜림이, 또 혜림이, 근영이, 선아, 지영이, 지윤이, 혜진이, 수민이, 지현이, 이슬이, 나혜, 미나, 혜원이, 40번 지선이까지(서른 아홉 명 외우느라 한참을 걸렸지만, 번호대로 외운 게 대견하다.) 마지막 여름 방학을 잘 보내고 올 가을엔 머지 않아 열매 맺은 가을을 향하여 좋은 결실 가지길 기도한다.

내가 대학 시절에 이상석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읽고 감동에 젖어 저자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답장도 받았고.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나의 '교사 성적표'는 정말 볼품 없다.

십오년 동안, 주변의 선후배들의 나쁜 점은 곧 배웠으며, 좋은 점은 비판하는 교사였고, 불평이 많았으며,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교사였다. 그러나, 이제 좀 알만도 하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가르쳐 왔던가를, 그리고 정말 교사는 어떻게 살아 보여야 하는지를 요즘 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십년 정도만 더 배우면 나비가 되어 아이들에게 날아가 앉을 수 있을 것이다. 안선생님처럼 꿀벌처럼 벌집을 만들어 로얄제리를 만들진 못할지라도, 그저 나비로 꽃들의 가루받이에 나풀나풀 옮겨다니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리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지만, 오늘은 선물이라고, 그래서 오늘을 프레즌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날마다 온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돼서 행복한 밤이다.

내가 초임 시절에는 방학 때, 아이들이 그리운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면서 방학에는 아이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개학이 두려워지기도 했고... 요즘은 방학이 없는 일반계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기다려 질 때도 있고... 이제서야 철이 들어가나 보다.

어떤 상품 광고처럼, 정말 "교사라서 행복해요"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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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4-07-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라서 행복해요.. 라고 '아직도' 말할 수 있다니 진심으로 마음 깊숙히 부럽습니다. 초심을 잃는 것이 두려워야 되는데, 아이들이 두려워 교실로 돌아갈 것이 두려운 저는, 영원히 덜큰 미숙한 교사인가 봅니다. 그래서 늘, 두렵고 우울합니다. T.T

책읽는나무 2004-07-3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라서 행복하시다구요??
글샘님의 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글샘 2004-08-0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방학 중인 토요일. 방학중인데도 매일 학교를 나오는 방학아닌 방학. 우리 반 아이들 두 명이 수시 1학기에 합격을 했습니다. 지영이랑 세령이랑. 나도 기쁘고, 합격한 아이들도 기뻐서 울고, 옆의 친구들도 감격해서 같이 눈물을 뿌리고... 그런 모습이 아름다워 모두 같이 닭갈비집 가서 점심을 볶음밥으로 먹었습니다.
자기들 즐기기도 벅찰텐데, 아무 것도 해 준 거 없는 담임한테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한 통이랑 5천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 사서 쥐어주더군요. 고맙다면서.
십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보다 더 귀한 도서상품권 한 장.
오늘은 정말 교사라서 행복했답니다. 삼천원짜리 밥을 사십명 사 줘도 십만원이면 되는데, 아이들과 느끼는 밥맛은 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꿀맛이었답니다.
이제 남은 서른 일곱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피곤해도 힘을 내야죠.
제가 초심을 잃지 않은 걸 대단하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일 아닐까요. 가능성 덩어리인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일.

해콩 2004-09-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충, 야자, 수능, 결국은 대학.. 실업계 4년 근무 후, 인문계로 옮긴지 2년째 인문계 담임 경력 1년차인 제겐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아이들이랑 '살아가고 싶은데, 삶을 나누고 싶은데' 어떤 아이들은 제게 자신을 감시하고 감독해 달라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중심 못잡고 늘 갈팡질팡하는 담임입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지는 못하면서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를 떨치지 못하는.. 희망과 노력과 성공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있는 것 같아 (혹은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실업계 아이들이 생각나서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어차피 그런 곳이라고 하기에는 안준철 선생님의 글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인문계 아이들도, 실업계 아이들도 행복한 오늘을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