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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정재환 지음 / 김영사 / 2005년 3월
평점 :
정재환이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그의 한국어 사랑은 대단하다. 방송인이면서 바르게 말 쓰기를 실천하려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노현정 아나운서가 '한 되'와 '한 말'을 잘못 설명해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미터법으로 도량형이 통일된 이후, 들이의 단위로 되와 말을 쓰지 않은 탓이리라.
우리 어렸을 적엔 2홉들이 소주와 됫병 소주는 헷갈릴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말술이라고 하면, 어려서 보았던 막걸리 말통을 생각했으면 됐을 것이다.
말글살이를 돌아본 책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너무 전문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사진도 넣고, 이야기도 웃기게 많이 적어 놓았다.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 국어에 대해서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지만, 국어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고, 특히나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에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논문도 맞춤법에 대해 썼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정재환도 한국어에 대해 애정을 가졌으면서도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있단 생각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겠지만, 합성이 명백한 사진을 실어 두고 국어를 바르게 쓰자는 논설을 쓰는 것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77쪽의 "도로변 성행위 교통사고 유발"이란 사진은 그런 예가 되겠다. 원래 사진이야 투기 행위 정도가 아니었을까?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overclassss&bno=32000&nid=8905&page=1 (댓글 : 있긴있는데 성행위가 아니고 상행위입니다. 전주에서 군산으로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 있습니다. 그쪽부근에 포도 농장이 많이 있는데. 그쪽분들이 도로변에서 판매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구요. 성행위가 아니라 상행위 금지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판매행위 금지로 바꿨더라구요.)
78쪽. '내용인즉슨'이란 말이 나온다. 우리말 조사 중에 '-인즉슨'이란 말은 없다. '-인즉은'이 옳을 것이다. '-이다'라는 특수한 동사(이걸 조사라고 하는 웃기는 법이 학교 문법이다. 영어로 be 조사라고 들어나 봤을는지...ㅋㅋㅋ) 뒤에 '-ㄴ즉'이란 어미가 붙었는데, 거기에 다시 '-은'이란 조사가 붙은 것이다.
그의 이야기 중에 좀 오버하는 부분도 있다. '설렁탕집'보다 '설농탕집'이 많고, '찌개'보다 '찌게'를 더 많이 끓인다는 102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사진이 103쪽에 실렸는데... 정말 설농탕집 많은가? 그리고, 사진에서 보면 찌게보다 찌개가 더 많은데...
105쪽에 '모듬'을 '모음'으로 바룬 것은 좋다. 그런데 모음집이란 말이 좀 이상하잖은가? '모음'은 '集'의 중복 표현인데... 이런 책을 쓰는 이라면, 노현정 말대로 '공부하세요' 소리를 들어도 싸다.
191쪽에서 받아쓰기 대회 프로그램에 나가서 '서당개삼년이면풍월을읊는다'는 말의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망신당한 일화를 쓰고 있다. '서당 개'를 띄어 써야 하는데, 붙여 써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1쪽의 반쪽에 예닐곱번이나 나오는 서당 개를 계속 붙여 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부적절한 영어 없애기는 나도 동감이다. 미쳐 돌아가는 한국어 오염의 현장에 등장한 KB(국민은행), CHB(조흥은행), KT&G(한국담배인삼공사, 미친 것들... 코리안 투모로우 앤 글로벌... 꼴깝이다) 뿐 아니라 시에미가 못 찾아오도록 만들었다는 갖가지 아파트 제목들...(쌍떼빌, 위브...) 이런 것들을 보면 정신이 있는 놈들인지 푸념도 나오고, 국어 선생들이 얼마나 할일을 못했는지... 반성도 한다.
한국엔 한글이 있음을 알릴 수 있던 2002년 월드컵때, 는 정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왜 <붉은 악마>로 귀엽게 도안하지 못했던지...
의혹의 或 자로 보인다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았다던 노회찬 위원에게 <국회>란 글자가 새겨진 배지를 달아준 사람들. 국회의원 명패도 거의 한글로 바뀌는 이 세상에, 아직도 한자는 판치고 영어는 꼴깝을 떤다.
중국이 세계 1위국으로 떠오른다고 해도, 한자를 모든 사람이 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것은 확실하지만, 영어를 한국처럼 숭배해서는 안된다.
국가엔 내용(콘텐츠)으로 가득차야 하는 것이지, 껍질(영어나 컴퓨터 같은)로 가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 정재환은 공부 많이 했다.
한글 맞춤법 공부 한 사람은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는 것을 통감한다.
그렇지만, 한글 맞춤법이 자주 바뀐 것에 대해서는 그도 잘 모르는 것이 있다.
한글 맞춤법은 그가 주장한 것처럼 89년에 한번 바뀐 것이 옳지만, 외래어 표기법 등의 정서법이 수시로 변화되어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익히도록 지도하려는 교육 과정이 대한민국 '국어' 교육과정엔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구조적인 잘못을 교사, 학생의 개인적 잘못으로 전가하지 말자.
그리고 '공부하세요'를 강조하자.
'외국어를 잘 못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임을 알리기 위해 이런 책을 쓰는 그는 그래도 훌륭한 한국인이다. 내가 몇 가지 딴지를 건 것은 그의 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다르다는 표현일 따름이다.
이 어린이의 생각은 얼마나 건전한가.
자랑스런 우리 한글 바르게 또박또박
힘차게 우리나라 세계로 뚜벅뚜벅.(두 문장의 문장 구조가 달라서 좀 갸웃거리게도 하지만,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