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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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우연히 밑줄 그어진 부분을 발견하고,

심지어 마지막 부분에 권해주는 책까지 만나서 이어지고 이어지는 이야기.

 

밑줄 긋는 남자는

내가 고독하고 곁에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49)

 

상상을 현실에서 만족시키려 들면 실망하게 마련.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91)

 

이런 착각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착각은 깨어나게 마련.

 

책을 매개삼아 교신을 하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걸 걸고,

인생에 기대를 갖는다는 것.

그것은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일이 다른 뭔가를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98)

 

그러면서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이라고 한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책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틀린 한자...

 

뒤표지에 '그것은 문학에 바치는 송시(訟詩)'라고 적었는데, 저 글자는 '송사할 송'이다. 고소한다는 뜻이다. ^^ 頌 칭송할 송을 써야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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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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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쓰는 일은 대단하다.

 

십오 년 뒤의 보충 수업, 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의 엉망이 되어버린 기억을 차근차근 복기하면서,

현재의 아름다운 사람을 견실히 엮어내는 모습이 튼튼하다.

 

이십 년 뒤의 숙제, 편에서는

숙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결국 그 숙제를 제시한 사람의 원점으로 회귀되는 재미를 준다.

 

세상사는 일면으로는 결코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역시 복잡한 인간사를 엮어 주고,

사람의 심리는 일반적인 추리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다들 나를 보고 웃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그제야 안심하고 웃는(55)

 

세상엔 이런 소심한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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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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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의사의 고단한 삶이 가득한 책이다.

대학 병원의 시스템 역시 일본의 그것을 본딴 영향이 큰 탓으로,

인간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희생으로 돌아가는 병원 구조는

결국 의사들을 비교적 덜 위험하고 돈 되는 곳으로 빠지게 만든다.

 

시골의 병원에서 365일 진료를 하겠다는 의지는 좋으나,

몇 되지 않는 의사의 격무는 2권에서도 참혹하다.

결국 늙은 여우 선생은 타계한다.

 

신슈의 산 이름을 딴 작은 월셋집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산다.

화가도 있고 목표를 묻는 젊은 아이도 있다.

 

눈앞에 있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그것이 꿈으로 변해.

인생이라는 것, 그런 거야.(267)

 

인생이란 것, 꿈을 가지라는 말도 헛되고,

최선을 다하란 말도 헛되다.

눈앞의 삶을 계속 하는 이외에, 수가 없다.

 

샤라쿠는 작은 양조장이에요.

영세기업이지만 요즘은 어디든 이런 작은 양조장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어요. 신슈만 해도...(349)

 

신슈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 지역이다.

일본의 북알프스로 불리는 고산지대로,

이 책에서도 고산을 즐기는 아내 하루코가 등장한다.

 

산과 산이 이어져있고 어디를 봐도 온통 산뿐이다.

후카자와 시치로의 단편집 '나라야마부시코'는 이러한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짧지마 신슈의 산야를 잘 묘사한 명문장이다.(229)

 

작가의 신슈 사랑이 가득하다.

 

이 세상은 출세라는 걸 하면

책임과 의무와 답답함이 늘어날 뿐이야.

명예 같은 것은 가능한 던져 버리고

그저 인간으로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45)

 

다쓰야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가정사를 돌봐야 해서 정시퇴근하는 의사 선생.

생활인으로 사는 것은 참 고단하다.

나도 아내가 아프고 나서는 직장에서 최소한의 시간만을 보내려 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습성은 생활을 잃어버리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고등학교 교사는 또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잊지 못한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170)

 

풀베개의 소세키를 읊조리는 이치토와 맞장뜨는 다쓰야가 중얼거리는 말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한다고 하지.

이 나라의 의료는 미쳐 있어.

의사가 생명을 갉아먹으며

가족을 버리고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세계.

밥에 잠도 못자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세계.(223)

 

이 비판은 한국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휴가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노동에 지치는 나라.

이제 민주주의 국가된 지 1년차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고민해야 할 일이다.

 

직업인으로 만족하다 쓰러질 것인가.

생활인으로 인생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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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타노 쇼고 지음, 한희선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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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참혹하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단편들로 구성된 책.

 

쇼고의 장르물은 그래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 배후의 비밀이 가장 재미있고, 사건의 해결보다는 사람들의 삶이 진하게 묻어난다.

 

'거주지 불명'에서는 끔찍한 사건과 코믹한 우연이 재미있게 엮어 있고,

 

'인형사의 집'은 삶의 미스터리는 밝혀보면 허망한 것임을 보여준다.

 

'집 지키는 사람'의 사연은 추리물 속에서 숨겨진 삶의 비애를,

 

'즐거운 나의 집'은 치매와 유명인의 삶에  얽힌 스토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우타노 쇼고의 소품들은 끔찍하지 않아 좋고, 그래서 임팩트보다는 즐거운 독서를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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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화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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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코미체...

우주 코믹들...이란 이태리 말이렷다.

 

온갖 과학의 지식을 토대로 거기서 농담과 우스개를 시작한다.

지구와 달이 아주 가까워져서 사다리를 놓고 건너뛰기를 하기도 하는가 하면,

은하계가 확장되기 전, 한 지점에 응축되었던 우주의 기원을 상상하면서,

그녀와 나의 친근함을 웃기도 한다.

 

그녀가 내게 준 행복은

그녀 속에 저처럼 작은 나를 감추는 것이자,

내 속에 점처럼 작은 그녀를 느끼는 것이었소.

방탕하면서도 동시에 순결한 생각.(61)

 

빅뱅 이전의 그녀와 나를 생각하면 ㅎㅎ

방탕한 상상은 할 수 없겠지...

 

우주에 대한 환상이나 픽션들은  

상상력이 다소 결핍되거나,

첫 상상력은 그럴싸 한데, 연역적으로 이어지는 상상들이 시시하기 쉽다.

 

그렇지만,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이탈로칼비노야말로

베르나르 같은 이의 선배가 될 수 있겠다.

 

조개류에게,

우리 눈에 매우 아름다워보이는 선명한 색의 줄무늬와 모양이

시각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175)

 

인간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 보면 아름다움 역시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조개에게 아름다움은 건축적인 탄탄함인 셈이고,

그걸 본 인간이 황금비 운운하고 있으니 웃기는 노릇이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면,

이런 소설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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