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정재승 추천! 이것이 디테일이다"
글자를 뺀 현대 문명은 상상할 수 없을 게 분명한데도 막상 글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을 펼쳐보는 일은 대체로 익숙하지 않다. 글자는 배경과 다른 요소를 뒤로 밀어내고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전하려고, 아니 반대로 설명해야겠다. 인간은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아차리고 나누고 퍼뜨리는 데 집중하느라, 이 과정이 안정적이고 효과적이고 유연하게 이루어지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온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게 아닐까.
이런 고민과 노력이 자리를 잡았기에 오늘날 글자와 활자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할 테니, 처음으로 돌아가 글자와 활자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만들고 가꾸어왔는지를 살펴보면, 생각을 담는 틀, 생각을 표현하는 장 그리고 그 안팎을 오가는 생각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총체가 바로 글자와 활자이니, 여기에는 과학과 예술과 철학이라는 커다란 세계가 모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미세한 획의 굵기와 각도로 감정까지 담아내는 디테일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겠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주변의 모든 글자가 달리 보일 게 분명하다. 도시마다 다른 글자의 모양, 눈에 잘 보이도록 공을 들여 조정한 도로표지판의 숫자, 눈만 뜨면 확인하는 스마트폰에 떠오르는 활자 등등. 그렇게 낯설어졌다가 다시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감각이 다시 낯선 감각으로 오가는 동안에도 글자와 활자는 변하고 있을 텐데, 한 걸음 나아가 이 변화를 감각하고 즐기며 때로는 변화의 이유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다 글자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으니, 다시 글자가 구원해줄 거라 믿을 따름이다.
- 인문 MD 박태근 (2019.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