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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노래 ㅣ 창비시선 36
김정환 지음 / 창비 / 1982년 10월
평점 :
늦가을 노래
김정환
저문 날, 저문 언덕에 서면
그래도 못다한 것이 남아 있다
헐벗은 숲속 나무 밑, 둥치 밑에
스산한 바람결 속 한치의 눈물 반짝임으로
마지막인 것처럼, 가랑가랑 비는 내리고
그래도 손에 잡힐듯
그리운 것이 있다
살아남은 것들이여 부디
절규하라 계절이 다하는 어느 한숨의 끝까지
우리들 사랑노래는 속삭여지지 않는다
기억해다오 어느 외침의 미세한 부활과
절망과 기대와
그리고
어떤 질긴 사랑의 비린 내음새를. 안녕.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중에서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1980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예수전], [사랑노래], [해방 서시],
[좋은 꽃], [회복기], [순금의 기억], [하노이 -서울 시편], [레닌의 노래],
[드러남과 드러냄], [거룩한 줄넘기], [유년의 시놉시스] 등 다수.
소설로 [파경과 광경], [세상 속으로], [사랑의 생애], 등.
산문집 [ 고유명사들의 공동체], [이 세상 모든 시인과 화가] 등.
교양서 [음악이 있는 풍경], [내 영혼의 음악], [한국사 오디세이] 등.
번역서로 [더블린 사람들], [세익스피어 평전]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 작가상] [백석문학상]을 수상
저문 날, 저문 언덕에 서면
소멸해가는 하루가 번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애틋하고 애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움을 만나는 것을 반복하는 고단한 생애가
어찌 계절뿐이겠습니까.
그리움조차 잠시 비워두어도 좋을 늦가을,
……
지금의 말줄임표
그 여백을 기억해주십시오.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한 시인의 사진이 실린 첫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재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막하던 20대의 시절
많은 편지에 베껴먹은 시편들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감회가……
오래 묵은 책에는
그때의 낙서와 함께
추억까지 가득하더군요.
그리고 시는
다르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사흘,
혹독한 몸살을 앓고 나갔더니
[늦가을 노래]가 사라졌습니다.
저장해둔 파일도 날아가버리고 겨우 겨우
다시 만든 [늦가을 노래] 이래저래 애틋합니다.
2010년 11월,
이렇게 지나갑니다.
그대, 어찌 지내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