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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 오정희 장편소설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강시 같아, 너는 너무 무거워.
나는 말했다. 우일이는 가느다란 목 위에 얹힌 커다란 머리통을 무겁게 끄덕였다. 그애가 무겁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매일 그애의 손가락이나 팔 다리 들을 만져본다. 그애는 나날이 말라간다. 가슴팍뼈는 나뭇가지같이 딱딱하고 가늘게 휘어 있다. 그애는 아마 날기 위해 가벼워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새는 뼛속까지 비어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그애가 점점 더 말라서 대나무 피리처럼 소리를 낼 때쯤이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일이는 어디서나 뛰어내린다. 슈퍼맨이나 토토란 꾸며낸 인물이고 거짓말이라고,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나도 슈퍼맨을 아주 좋아한다. 정의의 용사로, 하늘을 날고 지구를 거꾸로 돌려 죽은 애인을 살려내는 무서운 힘을 가진 슈퍼맨이 낮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보통사람으로, 실수를 저질러 남의 웃음거리도 되는 것이 그렇게 통쾌하고 재미있다. 내게도 혹시 아무도 모르는 깜짝 놀랄 능력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밤이면 나도 모르게 세상천지를 날아다니며 착한 사람들을 돕고 악한 무리들을 쳐부수는 게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꾸며낸 얘기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애는 언제나 나는 꿈을 꾼다. 잠을 잘 때 심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몸부림을 치고 팔다리를 버둥대는 것은 그애가 나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높이 나는 꿈을 꾼다. 나는 것이 너무 신이 나기도 하지만 너무 지쳐 그만 내리고 싶은데 좀체 내려와 주지 않을 때 아아 무서워라, 나는 새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툭 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땀이 흥건하고 정말 밤새도록 날아다닌 듯 온몸이 녹초가 되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나는 바닷새들은 지쳤을 때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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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이와 나는 산에 똥을 누러간다. 변소 치는 사람과 안집할머니가 싸운 뒤로 변소가 넘쳐도 치러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려면 철길 건너 장선생의 집 앞을 지나가야 한다. 되도록 빨리빨리 그 집을 지나치지만 자주 나는 빈 개집과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선생을 보았다.
산에는 바람이 산다. 바람이 집을 짓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어진다.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 우리가 지나온 길과 동네들은 낯설게 멀어진다.
우리는 똥을 누면서 하늘을 본다. 똥을 누는 우리들을 다람쥐나 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햇살이 어른대는 나무 사이 길은 우리가 알지 못할 곳으로,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뚫린 길같이 비밀스럽다. 흐린 날이면 나무들은 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같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 철길을 건널 때면 우리는 엎드려 가만히 선로에 귀를 대어본다. 그러면 멀리서부터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가, 멀리 산모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에도 선로는 무서워서 우웅우웅 울기 때문이다. 기차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면 우리는 그 긴 몸뚱어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입을 한껏 벌리고 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구멍이 찢어지게 아팠다. 골이 뽑혀나간 것처럼 머리가 휑하니 어지럽게 흔들렸다.
오정희---- “새” 중에서... 부분 발췌
날이 흐리다.
목련 꽃잎이 투둑투둑~ 땅으로 투항한다.
제비꽃, 양지꽃, 민들레.
꽃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같이 보인다.......
머릿속이 텅 빈 듯 느껴질 때나
쓸데없이 꽉 차 있을 때
어느새
손에 잡혀 있는 새......
오정희의 새.
오늘도 위안의 날개 짓으로 잠시 날아 본다.
우미와 우일이가 타박타박 걸어가는 정경이 보인다.
배경으로는
햇빛 한 줄기 은빛 침으로 죽은 새가 한 마리 있다.
깃털이 보르르한 새는 아주 가볍다.
손바닥에 바람 한줌이 얹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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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이 비 되어 날린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다.
날개에 바람을 채웠다.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