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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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젖다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시집-- 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자분자분 비가 내린다.

고요로 비는 내리고 논물이 찰랑찰랑 흔들린다.

함께 젖는다.

인적 없던 개심사 심검당 풍경도 흔들린다.

그립다.

내려오는 길에 얻어 탔던 택배 트럭까지도.

길이

.

.

.

그립다.

 

 

창문을 열어놓고

어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본다.

댕글댕글 떨어진다.

이렇게

금쪽같은 휴식시간이 끝나간다.

에라~

노래나 듣자.

시와 노래가 안 어울리나???

그래도 하는 수 없다.

함께 젖다도 이은미도 오늘은 땡기니까.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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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장편소설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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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시 같아, 너는 너무 무거워.

  나는 말했다. 우일이는 가느다란 목 위에 얹힌 커다란 머리통을 무겁게 끄덕였다. 그애가 무겁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매일 그애의 손가락이나 팔 다리 들을 만져본다. 그애는 나날이 말라간다. 가슴팍뼈는 나뭇가지같이 딱딱하고 가늘게 휘어 있다. 그애는 아마 날기 위해 가벼워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새는 뼛속까지 비어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그애가 점점 더 말라서 대나무 피리처럼 소리를 낼 때쯤이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일이는 어디서나 뛰어내린다. 슈퍼맨이나 토토란 꾸며낸 인물이고 거짓말이라고,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나도 슈퍼맨을 아주 좋아한다. 정의의 용사로, 하늘을 날고 지구를 거꾸로 돌려 죽은 애인을 살려내는 무서운 힘을 가진 슈퍼맨이 낮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보통사람으로, 실수를 저질러 남의 웃음거리도 되는 것이 그렇게 통쾌하고 재미있다. 내게도 혹시 아무도 모르는 깜짝 놀랄 능력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밤이면 나도 모르게 세상천지를 날아다니며 착한 사람들을 돕고 악한 무리들을 쳐부수는 게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꾸며낸 얘기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애는 언제나 나는 꿈을 꾼다. 잠을 잘 때 심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몸부림을 치고 팔다리를 버둥대는 것은 그애가 나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높이 나는 꿈을 꾼다. 나는 것이 너무 신이 나기도 하지만 너무 지쳐 그만 내리고 싶은데 좀체 내려와 주지 않을 때 아아 무서워라, 나는 새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툭 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땀이 흥건하고 정말 밤새도록 날아다닌 듯 온몸이 녹초가 되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나는 바닷새들은 지쳤을 때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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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일이와 나는 산에 똥을 누러간다. 변소 치는 사람과 안집할머니가 싸운 뒤로 변소가 넘쳐도 치러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려면 철길 건너 장선생의 집 앞을 지나가야 한다. 되도록 빨리빨리 그 집을 지나치지만 자주 나는 빈 개집과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선생을 보았다.

  산에는 바람이 산다. 바람이 집을 짓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어진다.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 우리가 지나온 길과 동네들은 낯설게 멀어진다.

  우리는 똥을 누면서 하늘을 본다. 똥을 누는 우리들을 다람쥐나 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햇살이 어른대는 나무 사이 길은 우리가 알지 못할 곳으로,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뚫린 길같이 비밀스럽다. 흐린 날이면 나무들은 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같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 철길을 건널 때면 우리는 엎드려 가만히 선로에 귀를 대어본다. 그러면 멀리서부터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가, 멀리 산모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에도 선로는 무서워서 우웅우웅 울기 때문이다. 기차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면 우리는 그 긴 몸뚱어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입을 한껏 벌리고 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구멍이 찢어지게 아팠다. 골이 뽑혀나간 것처럼 머리가 휑하니 어지럽게 흔들렸다.



                                                                                   오정희---- “새” 중에서... 부분 발췌


 




날이 흐리다.

목련 꽃잎이 투둑투둑~ 땅으로 투항한다.

제비꽃, 양지꽃, 민들레.

꽃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같이 보인다.......


머릿속이 텅 빈 듯 느껴질 때나

쓸데없이 꽉 차 있을 때

어느새 

손에 잡혀 있는 새......

오정희의 새.

오늘도 위안의 날개 짓으로 잠시 날아 본다.

우미와 우일이가 타박타박 걸어가는 정경이 보인다.

배경으로는

햇빛 한 줄기 은빛 침으로 죽은 새가 한 마리 있다.

깃털이 보르르한 새는 아주 가볍다.

손바닥에 바람 한줌이 얹힌 것 같다.

.

.

.

앵두꽃이 비 되어 날린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다.

날개에 바람을 채웠다.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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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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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누군가 열심히 씻어놓은 이가 있어,

우리 가끔은 저렇게

기분좋은 하늘도 이고 사는 것이다.

가벼운 눈인사라도 건네야지,

목욕탕 다녀오는 청산옥 여자

하아얀 무르팍을 본 것같이


누군가 온몸으로 언 땅을 뎁혀놓는 이가 있어,

우리 봄이면 저렇게

따스한 꽃들도 보고 사는 것이다.

손이라도 흔들어줘야지.

덕수궁을 나오는 유치원 아이들

노오란 꽃망울들을 본 것같이.


                             

                                       윤제림 <시집, 사랑을 놓치다 중에서>

 

      

      

      

       

      

       

      

       

      

       

 

 

김영갑 사진전

 

' 내가 본 이어도 2 '

 

-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

 

2005년 3월 23일 (수) ~ 4월 5일 (화) 10:00~20:00
2005년 4월 5일 (화)의 경우, 13:00까지 전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신관 제1,2 전시실

 

 

 

 

 

그 바람 속에 서있는 동안 내내 시가 읽혔습니다.

사진 한편 한편이 시 한편의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인지...

바람과 시들이 가만가만 저를 흔들어대었답니다.

저녁이 내리는 구름의 풍경 사진에서는 '가만가만' 이

도라지꽃 앞에서는 '사랑을 놓치다' 가

그렇게

윤제림님의 시로

김영갑님의 시로

손세실리아님의 시로

읽히던 바람...

그 바람의 느낌이 찰랑찰랑 저를 채웠지요.

살아있음에 감사를...

 

 

이 봄을 꽃 피게 할...

4월.

자~ 다시 시작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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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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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를 땅에 묻을 수는 없었다. 그녀 몸을 짓눌렀을 흙더미와 돌덩이로도 충분했다. 엄마는 인부에게 웃돈을 얹어주며 곱게 빻아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의 유골 상자를 받아든 엄마는 폭우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곱게 빻아진 그녀의 뼈는 꼭 흰 명랑 가루 같았다. 납골당에 넣기 전, 나는 그녀의 뼛가루를 조금 덜어내 작은 상자 안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이 생각날 때마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묻힌 다음 혓바닥으로 맛을 보곤 했다.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 그녀는 내 속에서 숨쉬고 내 속에서 잠을 잔다. 그녀는 가끔 내 속에서 버선발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내 속에 있는 그녀를 위해 명랑을 먹는다. 설탕처럼 하얗고 반짝이는 명랑 가루에서는 그녀의 냄새가 난다.


                                                             천운영 소설집 -명랑 중에서... 명랑의 부분 발췌 (문학과 지성사)

 

 

  

 

  첫 번째 소설집'바늘'을 읽었을 때 이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이 젊은 작가에게는 뭔가가 있다. 딱 꼬집을 수 없는 끌림으로 나를 이끈다. 촘촘한 바늘로, 표정 없는 몸뚱이에 영혼을 실리게 하는 문신의 힘이 있다. 

  잔혹하다고 비명 지르며 도망쳐버릴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도 '바늘' 처럼 사로잡을 것인가? 첫 번째 수록 작품'명랑'에서 엄마가 후식처럼 드시던 '뇌신'과 '소다'를 떠올린다. 푸른빛을 띠는 파리한 형광등 불빛을 닮은 흰색, 입 안에 탁 털어 넣고 혀에 닿았을 때는 진저리치게 쓰다.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다가도 어느 새 또 진저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공통의 조건을 가진 '뇌신' '명랑' '소다'.......

  이 소설'명랑'도 그것들과 같기를 기대한다. 아니,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유골을 먹는 그녀, 벌써 속이 거북한 듯 느껴진다. '소다'를 먹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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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90
신용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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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저 지도를 읽을 수 없다


세월은 잠들면 九天에 가 닿는다

그 잠을 깨우러 가는 길은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많이 향하고

길 너머를 아는 자 남아 지도를 만든다


끌린 듯 멈춰 설 때가 있다

햇살 사방으로 번져 그 끝이 멀고, 걸음이 엉켜 뿌리가 마르듯 내 몸을 공중에 달아놓을 때

바람이 그곳에서 통째로 쓰러져도 나는

그 많은 길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무지 저 지도를 읽을 수 없다

작은 것들 날아와 길 잃고 퍼덕일 때, 발이 긴 짐승

성큼 마지막 길을 가르쳐주는


나는 너무 큰 짐승으로 태어났다



신용목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이미지)

 

 

 

이틀

여기에 갇혔다

싸아~ 하다

바람소리

황홀하다


이제

그 바람을 다 걸어 세상으로 나간다

 

길은

지도 속에는 없다


  

                  2005. 2. 22.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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