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 맛 대 맛에서 매운지닭매운탕이 상대 요리(기억도 안 남)를
10 대 0으로 제압하는 것을 보았다.
화면으로 보여지는 그 음식의 포스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날 마침 일요일이고 포천 고모님 댁에 가기로 한 날이라
가는 길에 들른 마트의 장바구니에 구워 먹을 삼겹살 거리와 함께 닭을 한 팩 넣었다.

농사를 짓고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그시는 고모 집 냉장고에는,
마침 2년 된 묵은지가 있었다.
그날 '묵은지닭매운탕'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삼겹살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후 가나안덕의 오리구이처럼 심심하고 출출하면 슬그머니 떠오른다는......

어제는 올케가 5박 6일의 프랑스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토요일 아침 아이를 맡기며 너무나 미안한 표정이길래 이번에는 근사한 선물 하나 받겠구나
내심 기대했더니,  웬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와인 한 병을 내민다.
와인은 본체만체.
피노키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목각 볼펜이 두 개길래,
"하나는 내거지?" 하고 덥석 집었더니 동주와 주하 거란다.
아이고 무안해라.

그런 올케를 위해 내가 어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이 신김치닭매운탕.
올케는 안 그래도 그동안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면서 허겁지겁 냄비에 달려든다.
함께 뚱뚱할 땐 약간 안심(!)이 되더니, 올케는 최근 10여킬로그램이 빠졌다.
옆에 앉기가 싫다. 비교되어......

어제는 묵은지가 없는지라 신김치를 반 포기쯤 잘라 넣었다.
자르지 않고 통째 넣어 쭉쭉 손으로 찢어 먹어야 제격인데 깜빡했다.
2년 된 묵은지를 넣고 끓인 것이 깊은 맛이 났다면,
김장김치 신 것을 넣은 것은 구수하긴 한데 그에 비해 산뜻하고 깔끔하다.

어떤 날은 묵은지의 군둥내가 심오한 듯하고 좋지만 어떤 날은 지겹다.
어제는 신김치 넣은 닭매운탕이 입에 맞는 날이었다.


신김치닭매운탕(6인용)

재료 :  닭매운탕용 닭 두 팩,  신김치 반 포기, 감자 3,4알, 양파 한 개,  대파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 후춧가루, 마늘, 누런 설탕

만드는 법

1. 껍질 벗긴 감자를 2~3등분 잘라 냄비에 삶는다.

2. 닭의 껍질을 벗기고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소주를 듬뿍 뿌려준다.

3. 고추장 한 큰술, 고춧가루 서너 큰술, 후춧가루 한 찻술, 찧은 마늘 두 큰술,
설탕 두 큰술, 진간장 세 큰술을 잘 개어서 양념장을 만든다.

4. 5분쯤 삶은 감자 냄비의 물을 따라내고 손질해둔 닭 토막을 넣고 양념장을 붓는다.
신김치를 반 포기쯤 밑둥만 자르고 통째 넣는다.
양념장을 섞은 그릇에 물을 두세 잔 부어 알뜰하게 휑궈 냄비에 붓는다.

5. 5분쯤 끓었을 때 양파 큼지막하게 썬 것을 넣고 한 소끔 끓이다가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큰술과 대파를 넣어 잠시 끓인다.  맛을 보고 간은 소금으로......







**음식 페이퍼는 사진이 필수.
'허름한 밥상'에 올렸던 닭매운탕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걸쭉한 국물도 좋지만 겨울에는 후루룩후루룩 떠먹을 정도로 흥건한 국물도 좋습니다.
이 메뉴,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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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7-02-0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흔한 닭도리탕도 해본 적이 없는 저 같은 요리치도 만들 수 있을지. 일단 빈곤한 요리수첩에 옮겨적어 놓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도전을.^^

혜덕화 2007-02-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는 언제 넣나요? 닭을 넣을 때?
맛있겠네요. 저도 한 번 해봐야겠어요.

물만두 2007-02-0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운거를 통 못먹어서리 ㅜ.ㅜ

서연사랑 2007-02-0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핫케이크에 올리고당 시럽을 듬뿍 찍어 먹고 있지 않았더라면 화면으로 달려들 뻔 했어요.^^

로드무비 2007-02-0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 님, 메이플 시럽이 아니어도 되는군요.
시럽이 비싸서 핫케익을 못 해먹었는데.ㅎㅎ

물만두 님, 청량고추를 넣어주면 더 좋은데 아이들이 함께 먹는 거라.
동주와 주하도 잘 먹습니다.
그러니 님의 입에도 맞지 않을까요.=3=3

혜덕화님, 처음부터 함께 넣고 끓였습니다.
입맛에 따라 중간에 넣어도 될 테고.
꼭 해서 드셔보세요.^^

우몽 님, 마음의 준비고 자시고 필요없다니까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바로 그때!^^

하이드 2007-02-02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요즘 매운갈비찜.에 꽂혀서 어디서 먹어야하나 물색중인데, 으... 신김치 닭도리탕( 치킨 킬러입니다) 이라니, 맛있겠어요! >.<

로드무비 2007-02-0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하이드 님, 매운갈비찜 잘하는 집 소개 좀 해주세요.
신김치닭도리탕도 무지 맛납니다.^^

Mephistopheles 2007-02-0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리났군요...침 고입니다...주룩주룩....!!

반딧불,, 2007-02-0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신김치뼈다구탕을 먹었는데 왜 침이 고이냐구요!!!!!!

blowup 2007-02-0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하면서 이상하게 맛이 잘 안 나는 음식이 닭매운탕이에요.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닭고기에 간이 잘 안 배기도 하고. 누린내가 나기도 하고. 국물이 부족하기도 하고. 딱이다 싶은 경우가 한번도 없었어요. 서너 번인가 해봤는데. 늘 부족했어요.
근데, 로드무비 님. 이게 뭐가 허름하다는 거예요.>,<
암만 봐도, 허름하진 않지만. 페이퍼 제목은 귀여워요.

에로이카 2007-02-0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페이퍼.. 너무 하십니다. 어제 산 김치가 익으려면 한 2주, 약간 시었다 싶으려면 한 3주 정도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그 때 꼭 시도해봐야 하겠습니다. 근데 신김치와 닭고기 맛이 어떻게 어울리는 지 상상이 잘 안돼요. 그리고 볶는 과정이 전혀 없네요... 제가 알고 있는 닭도리탕 맛에서 단 맛을 빼고, 김치찌개 맛을 더한 것 쯤 되려나요.. 오.. 상상은 안 되지만, 입에 고인 침은 어쩔 수 없네요... ^^ 쩝.. 아, 그리고 "양념장을 섞은 그릇에 물을 두세 잔 부어 알뜰하게 휑궈 냄비에 붓는다", 이 구절 참 마음에 듭니다.. 히히..

마노아 2007-02-0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군침 돌아요! 너무 맛있겠어요^^ㅎㅎㅎ

로드무비 2007-02-0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정말 맛나당게요.^^
(저 사진은 제가 찍었지만 지금 보니 별로 먹음직하게 안 나온 듯.)

에로이카 님, 호호~ 예상했던 대로의 열광.
언제부턴가 겸손(?)해져서 '허름한 밥상' 을 통째 서랍 속에 처박았는데
몇 님을 생각하면 허름한 접시라도 가끔 올려야겠군요.
신김치와 국물을 푸짐하게 넣고 끓이는 게 중요합니다.
고춧가루도 아끼지 마시고 팍팍.
그리고 마음에 드신다는 건, 제법 알뜰주부의 면모가
보이는 구절이었죠?^^
(김치가 맛있게 익기를......)

namu 님, 제가 못 만드는 게 김치.
겉절이말고는 한 번도 성공 못해봤어요.
닭냄새를 없애려면 술로 목욕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고춧가루와 마늘 듬뿍 넣으시고요.
다음에는 닭매운탕 도전에 꼭 성공하시기를.^^

반딧불 님, 신김치뼈다구탕, 그, 그건 또 뭡니까요?^^

메피스토 님, 언제 시간 되는 날 직접 하셔서
사랑하는 주니어와 마님 입에 좀 넣어주세요.^^

건우와 연우 2007-02-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Kitty 2007-02-13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보다가 소주를 듬뿍 뿌려준다에서 좌절 ㅠㅠ
여긴 소주 한 병에 15000원~20000원인데 ㅠㅠ 소주 없이는 안될까요;

로드무비 2007-02-1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tty 님, 며칠 전 소주 대신 김빠진 맥주를 넣어봤더니 역시 신통찮더군요.
그러나 맛술은 괜찮지 않을까요?
(맛술도 없나요? 거기는.)

건우와 연우 님, 좋지요.^^

2007-02-26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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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엄청 감상적인 주제에, 소설가  윤대녕의 감상주의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패션에 대한 너무 세세한 묘사와, 그림이나 음악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 걸핏하면  등장시키는 짓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쓸쓸함도 어쩐지 포즈 같았다.
지나치게 우연이 남발하고 폼만 잡는 것으로 보이는 연애 행각도 시덥잖았다.
윤후명의 초기 소설에 열광하다가 어느 때부턴가 그의 소설이라면 아예 읽지도 못하게 된 것처럼
윤대녕의 소설들도 내게 그랬다.

<제비를 기르다>는 십여 년 만에 읽는 윤대녕의 소설집인데
맨 앞의 '연'부터  매력적이고 분위기 있는 단편들이 몇 눈에 띈다.

북한산 초입의 노천식당에서 등산을 마치고 혼자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마시던 '나'는
구멍가게에서 생수를 사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한 여성(정연)과 시선이 마주친다.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기 직전인 백마의 한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셨던 게 6년 전.
그때 그 주점의 주인이었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던 정연의 언니 미선은 건대사태 때
함께 구속되었다 풀려난 친구 사이.

그로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나.
그들이 가는 인사동의 술집이며 광화문의 밥집이며 야반도주로 살림을 차린
절 밑 동네 진관외동의 허름한 골목이 어느 시절 나의 동선과 거의 비슷하게 겹친다.
여차하면 술판으로 변하는 '상회'라는 이름이 붙은 가게의 평상만큼
거나하고 좋은 술자리를 나는 알지 못한다.
스니커즈를 벗고 운동화를 꺾어 신은 소설가가, 그 평상 한 귀퉁이에 궁둥이를 걸친 느낌.

해마다 제비들이 떠나고 첫눈이 내릴 때쯤이면 입은 옷대로 가출,
돌아오면 뒤란 헛간 속으로 끌려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게 연례행사인 어머니.
그 어머니를 닮은 듯한 애인의 이야기 '제비를 기르다'는
이 소설가의 18번 철지난 유행가를 듣는 느낌이었고.
(그의 여성관은 내 눈에 고루하고 진부한 감이 있다.)

'연애'가 중심이 아니고, 존재의 시원(始原)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각자의 구체적인 쓸쓸함에 방점이 찍힌  이번 그의 소설들은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여주인공들의 미모와 개성도 묘하게  조정되어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고.

'남과 대면할 때는 방금 익모초즙을 마시고 나온 듯한 얼굴'로,
'누구한테나 남이었고 어쩌면 자신에게조차 평생 남으로 살아온'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
서먹한 얼굴의 그들이 오늘은 정답다.

중국의 비단길을 함께 여행하고 온 무리가 광화문에서 오랜만에 만나 맥주를 마시는데
각자 사진을 교환하고 맥주 두어 잔을 마신 후 훗날 또 만나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긴 채
뿔뿔이 흩어진다.

--고작 이건가? 그 추운 사막의 먼짓구뎅이에서 보름을 함께 지냈건만 그래,
두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들 허둥지둥 내뺀단 말인가
?('낙타 주머니'  198쪽)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소한 구절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옛날 최인훈의 소설 구보 씨의 이런 독백에도 좍좍 밑줄을 그었던 기억.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고의적으로 무의식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심리적인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개중에 그런 환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편백나무숲 쪽으로 160쪽)

병상에 누워 고의적으로 무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니
'고의적인 무의식 상태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고독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라고 말하려는데, 가슴 철렁하게도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삶을 완수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건 얼마나 갸륵하고 오묘한 사실인가.('고래등', 188쪽)

윤대녕의 소설이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다니,  이것도 세월의 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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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7-02-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윤대녕 소설집을 읽으셨군요. ^^;

에로이카 2007-02-0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친구들이랑 남도여행을 다녀온적이 있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해남, 땅끝, 고창을 둘러보며, 유홍준 선생이 책에 소개한 화려한 풍광과 맛집들에 감탄한 후, 완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윤대녕의 '천지간'에 나오는 구계등에 갔었지요. 소설들에서 상점이나 술집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한동안 유행했었잖아요?.. 윤대녕이 거기 한 몫 한 것 같긴 해요.. 어쨌든 구계등 풍경은 괜찮았으나, 그가 거기서 소개해놓은 횟집을 겸하는 여관은 그저 그랬어요... 유홍준 선생 책들에 나오는 집들은 정말 맛있었는데, 윤대녕 글빨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하긴 천지간 소설에 그집 음식맛이 훌륭하다는 말은 없었지요... 헤헤..

waits 2007-02-0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받아놓고 며칠째 아쉽게 표지만 쳐다보고 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게다가 좋다는 말씀이시라 더 반가운 걸요!
급한 일 끝나면 저도 '택일'해서 읽어야겠어요. ㅎㅎ

2007-02-02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0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한 느낌 님, 아까 급히 써서 올리느라(주하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ㅠ,.ㅠ)
표현이 거칠었답니다. 빼먹은 구절도 있고요. 다시 읽어주시길! 헤헤~
몇 단편은 참 재밌게 읽었답니다.
스니커즈와 운동화가 쓰면 느낌이 참 다르잖아요.
그런데 어쩐지 운동화를 꺾어서 신은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아마 그동안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세월의 선물은 제가 보내드릴게요.

평택, 나어릴때 님, 안 그래도 이 책 받고 님은 사셨을까 궁금했는데.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말 중 택일하여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셔요.ㅎㅎ
궁금합니다.^^


에로이카 님, 저는 수덕사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읽고.
땅끝마을이나 다산초당도 빠트릴 수 없네요.
윤대녕의 '천지간'은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맛집이나 술집이 세세하게 묘사되면 글이나 화면이 갑자기
생생하게 살지 않아요?
그 냄새와 소음까지 그대로 들려오는 듯하고요.
밥집과 술집이라면 눈을 빛내는 에로이카 님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요.^^

하루 님, 윤대녕 하면 또 하루 님이 떠오르지요. 헤헤~


건우와 연우 2007-02-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너무 미끈하고 감상적인것 같아 자꾸만 꺼리던 윤대녕의 신간이 나왔단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젊고 재능있는 작가들 이름사이로 이젠 그의 작품이 저도 반가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보니, 이젠 읽어야겠구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드무비 2007-02-0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 님, '연'은 정말 좋았어요.
진관외동의 허름한 길가 셋방 묘사에 자지러졌답니다.
아마 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2007-02-02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핫, 전 별 다섯 개 님,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요, 갑자기 별 다섯 개를 주려니
뭔지 낯간지러워서......
(이런 걸 이른바 본처기질이라고 하던가?ㅋㅋ)
옷, 그분들, 안목이 보통 아니군요.
즐거운 소식입니다.
가끔 속삭여 주세요.^^

2007-02-02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향'이라는 표현이 여성의 외모를 내맘대로 재단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암튼 샤프하시다니까요.^^

2007-02-03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0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성이 산들산들 님, 절로 몰입이 되던데요?
아마 님도 펼치기만 하면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작가도 작품도 만나는 때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2007-02-06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6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달래 2007-02-0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책읽기... 반갑습니다~ 재밌게 읽은 것도 비슷하나 리뷰 느낌은 사뭇 다르네요. 님의 시각이 참 흥미롭습니다. 은근히 윤대녕의 무덤덤한 매력을 닮은 듯도... ^^ 윤대녕에게도 우리에게도 세월의 선물 같아요...

로드무비 2007-02-1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 님, 무덤덤한 매력은 제가 갖고 싶은 것인데, 하하.
카페인 님을 윤대녕의 리뷰로 만나는군요.^^
 

재료 : 메생이 한 뭉치, 굴 한 봉, 다진마늘, 국간장, 소금, 참기름, 깨소금

만드는 법






1. 메생이 한 뭉치를 함지에 넣고 물을 가득 받아 한 번,
체에 걸러서 흐르는 물에 또 한 번, 깨끗이 씻는다.

2. 손으로 꼭 짜서 칼로 두어 번쯤 길이를 잘라주고.

3. 중간 크기 냄비에 메생이를 넣고 물을 절반 넣어 끓이다가

4. 깨끗이 씻은 굴을 통째,  다진 마늘 한두 찻술을 넣고 팔팔,

5, 국간장 두어 술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6. 국그릇에 담아 낼 때 참기름 몇 방울과 빻은 깨를 한 스푼 넣어서 상에 낸다.



텔레비전 맛 프로그램에서 가끔 소개되는 메생이국.
전라도 바닷가에서만 난다는 메생이.
언뜻 보면 파래 비스무리한데 초록색 가는 실뭉치처럼 생긴 녀석은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어제 마트에서 문득 눈에 띄길래 메생이 한 뭉치(5천원 정도)를 사왔다.
굴을 함께 넣으면 시원하대서 생굴도 한 봉지.


화면으로 볼 땐 숟가락으로 뜨면 점액처럼 끈적끈적한 것이 줄줄 흘러내려
저게 무슨 최고의 해장국이란 말인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묽게 먹으려고 물을 약간 넉넉하게 붓고 끓였더니
미역국과는 또 다르게 부드럽고 은근하고 깊은 맛이 그만이다.
메생이는 혀나 치아라는 암초에 걸리지 않고 이물감도 없이
목구멍으로 그냥 넘어간다.
책장수님과 주하도 맛있다고 한 그릇씩 홀라당.

아침에 데워 먹어도 비리지 않고 막 끓인 것처럼 맛나다.
난 밤새 메생이가 냄비 속에서 무슨 조화를 부렸을지 궁금해 하며 뚜껑을 열었는데.
조금 더 묽어진 것 빼곤 맛도 모양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니......

참기름은 먹기 직전 살짝 향이 날 정도로만 넣는 것이 포인트.
사진을 업어오려고 나물이네에 가봤더니 메생이를 처음부터 참기름에 볶는다고 나온다.
다음에는 그렇게 해서 한 번 먹어봐야겠다.
조리법은 간편한데 맛과 영양은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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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1-3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 수제비도 맛있어요!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

2007-01-3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7-01-3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동네 굴국밥가게에서 매생이랑 굴이랑 넣어서 끓여주는데..
그맛에 반해서 아이들도 잘 먹어요. 엄마가 집에서 해주면 좋으련만..게을러서...
저도 한번 시도해 볼까요?(은영이가 굴국밥 집에서 끓여달라고 하드만요.ㅠ.ㅠ)

조선인 2007-01-3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마로가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손도 못 댔어요. 반성.

서연사랑 2007-01-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오늘 저녁 메뉴 결정!^^(방학인지라....매일 반찬 걱정이어요. 흑흑)

Mephistopheles 2007-01-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원래 전라남도 토속음식이였는데..어느순간 여기저기 많이도 팔더라구요.^^
초등학교때 아버지 따라 갔다가 아버지 친구분이 식사대접때 저거 나온걸 보고
기겁했죠..왠 국사발에 머리카락이 엉켜서 둥둥....ㅋㅋ

Kitty 2007-01-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국은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끓이는 법은 미역국이랑 비슷하네요. 집에 가면 해먹어봐야겠어요~

ceylontea 2007-01-3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안먹어봤는데... 맛나다는 것이죠?? 음음.. 맛이 정말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7-01-3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tty 님, 만드는 법이 정말 간단해요.
꼭 해서 드셔보세요.~

메피스토 님, 그러니까요, 산발한 머리카락.
그래서 아침에 냄비뚜껑 열 때 가슴을 졸였지 뭡니까요.
무슨 괴상망측한 일이 벌어졌을까 했더니.ㅋㅋ
제 입엔 딱이던데요?
(초등학교 때라면 먹기 싫었을 수도...)

서연사랑 님, 서연이가 맛있다고 하면 좋겠는디.^^

FTA 반대 조선인 님, 바지락 넣고 끓인 미역국이 전 제일 맛나더라고요.
점점 입이 깔끔하고 단순한 맛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미역국 한 냄비 끓여 놓으면 한 이틀 편하잖아요.
오늘 저녁에 당장 끓여주시라요.
(반성만 하지 마시고!=3=3=3)

수니나라 님, 굴은 무조건 좋아요.
메생이국은 가끔 한 번씩 끓여 먹으면 별미일 듯.
겨울이란 계절과도 잘 맞고요.
잘하시잖아요. 솜씨 직접 발휘해서 사진도 올려주시길.^^


로드무비 2007-01-3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 님, 제 입엔 맛나던데요, 헤헤.
식당에 가서 정통본격 메생이국을 한 번 먹어봐야겠습니다. 불끈=3

뚜껑을 열고 님, 전 그런 정보도 모르고 뚜껑을 열고 끓였잖습네까.
메생이 전문가이신 님의 어머니가 긇인 국 맛이 궁금하군요.
그런데 메생이가 오래 보관이 되나요? 냉동으로?
우와, 그렇다면 저도 몇 뭉치 겨울이 가기 전에 사두고 싶어요.
부침개도 한 번 해먹어 볼까요?
군침이 돕니다.
아무튼 벌린 일들 일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하시길!
(저도 뭐 하나 가지고 무지 오래 끌고 있답니다.)

블루 님, 메생이수제비, 칼국수 식당도 있더라고요.
곰치는 맛없다더니 메생이는...ㅎㅎ 다행입니다요.^^


건우와 연우 2007-01-3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 좋다는 얘기만 듣고 어찌 끓이나 궁금했는데, 저 이거 퍼가요.^^

깍두기 2007-01-3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고 시댁에 갔더니 '감태'라는 걸 주더라구요.
메생이랑 비슷한데 아마 좀 더 얇을 걸요? 청정지역에서만 자라는 아주 귀한 거라고.
국을 끓이지는 않고 물 많이 부어서 간장, 고춧가루 양념해서 훌훌 떠 먹으면
바다맛 나고 아주 시원했는데.
메생이도 시원하고 맛있을 것 같아요. 조리법도 쉽네요.

2007-01-3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7-01-3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 칼국수는 먹어봤어요..^^ 맛이 괜찮더라구요..
메생이 따로 손질하거나 하는건 없나보죠? 마트에 파나 잘 살펴봐야겠어요..

2007-01-31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7-01-3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 이름만 들어서는 어째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이 떠오릅니다. 시각적으로도 먹음직 한가요?

국경을넘어 2007-01-3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의 계절이군요 ^^* 감태하고 메생이하고 어찌어찌 구별한다는데 잘 모르겠고 하여튼 맛있다는 생각 밖에...

에로이카 2007-02-0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며 얼핏 보았던 메생이국이 무언지 처음 알았던 것은 허영만 만화 "식객"에서였어요. 거기서 메생이는 겨울에 나오기 때문에, 아무때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하면서, 맛 심사위원들에게 상상의 메생이국을 먹게 했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허영만의 "식객"보다 로드무비님의 맛 페이퍼가 맛을 더 잘 전달하는 것 같네요.. ^^ 허영만 선생은 로드무비님의 페이퍼를 쭉 보면서, 자신의 만화가 뭐가 문제인지 반성 좀 하셔야 할듯... 얼마전 굴국밥이나 영양굴밥은 제대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메생이국은 못 먹어봤네요. 언제고 다시 돌아갈 겨울에 꼭 먹어봐야 하겠어요. 몸도 마음도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를...

로드무비 2007-02-01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맛을 더 잘 전달한다 하시면 이유는 단 한 가지.ㅋㅋ
지가 주부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명색이 주부라도......
그런데 벌써 방학이 끝났어요?
괜히 아쉽네요.
짧지만 풍성한 시간 보내셨겠지요?
맛난 것도 원없이 드시고?^^

폐인촌 님, 감태 역시 텔레비전에서만 얼핏 봤어요.
감태와 메생이, 광어와 도다리의 관계일까요?ㅋㅋ
메생이국 좋아하시니 흐뭇하군요.
전 너무 늦게 합류했다는 생각이......^^

우몽 님, 그게 시각적으로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요.
제가 끓인 건 물을 좀 낙낙하게 잡아 그나마 안존해 보였는디.
대접에 담을 때 우짜든동 굴을 위에 두세 개 보이게 담는 게 중요합니다.
초록색이라도 좀 어두운 초록색이라......포인트가 필요.
그런 의미에서 깨소금도 필수고요.(맛도 맛이지만.)

상자 두 개 님, 앗, 테이프로 연결시키면 하나로 처리되는데.
하긴 분량이나 무게가 좀 되지요?

날개 님, 잘 보셔야 눈에 띄어요.
파래랑 헷갈려서.......
꼭 해서 드셔보시길.^^*

센스 일품 님, ㅎㅎ 게으른 게 때로 도움이 되어요.
전 텔레비전에 나온 메생이국으로 유명한 어느 식당의 주방장을
그대로 따라해봤는데.
담에는 꼭 어머님의 레서피대로 해보겠습니다요.
물을 조금만 넣어 끈적끈적한 상태로도 끓여 먹어봐야겠군요.
아무튼 맛나게 먹었으니 다행이지요.
보관상태에 관한 말을 들으니 제 욕심이 좀 과했군요. 히히~~

깍두기 님, 감태도 알아요.
화면을 보며 생긴 건 별로다 했는데......
바다맛 나고 시원하다니 아마도 메생이국이랑 맛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우와 연우 님, 님도 저같으셨군요.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엄두가 안 났는데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보고.
건우 연우와 온식구 함께 맛나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07-02-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시원해 보여요. 전 사실 메생이를 지난주에 우연히 한 식당에서 알게 되었어요. 파래 비슷해 보이면서도 훨씬 가늘고 부드러워보여 이게 뭐냐고 연세 많으신 분께 물었더니 매생이라고 하더군요. 왠지 이름이 친근해요.
와, 이걸로 국도 끓이군요. 굴도 넣고...^^

oldhand 2007-02-0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원래 그쪽 동네 출신이라, 겨울철이면 자주 먹었습니다. 걸쭉하게 먹으면 더 좋아요. 아, 벌교에서 나는 참꼬막도 꼭 한 번 드셔 보세요. ^^

sudan 2007-02-0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마트 들러서 변기 커버 사야하는데요, 가는 김에 메생이도 있으면 사와야겠어요. 메생이국에 도전!

sudan 2007-02-0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전 메생이국을 한번도 맛 본 적이 없어서 맛 없게 만들어져도 이게 솜씨탓인지 메생이가 입맛에 안 맞는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에요.

로드무비 2007-02-0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님, 저도 같은 케이스.ㅋㅋ
아무렴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메생이국이라고 최면을 걸어야죠.^^
(변기 커버는, 사셨어요?)

올드핸드님, 그쪽 동네 출신. ㅎㅎ
멋집니다.
뭔가 좀 있어 보이고. ^,.~
벌교 참꼬막은 꼭 벌교에 가서 먹어야 하나요?
영광에서 굴비백반 먹을 때 꼬막이 나왔는데 전 그걸 벌교 꺼라
믿고 있었지 뭡니까요.
꼬막 좋아해서 한달에 두 번은 밥상에 올린답니다.^^

배혜경 님, 시원하고 담백해요.
굴과 환상의 커플이더군요.
꼭 드셔보시길.^^

라로 2007-02-0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생이를 파는 마트가 궁금하네요~.

로드무비 2007-02-1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아파트 알뜰장터 같은 데도 나오고 흔하던데요.
전 홈플러스에서 샀습니다.^^
 

-- 한 개인의 올바름은 도덕적 순수에 있다.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한 영웅의 허약함. 연약함과 속수무책.
(평생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뼈빠지게 일했음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중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97년, 두레 刊


오래 전 평전이나 일기만 줄기차게 찾아 읽던 시기가 있었는데
정작 타인에 의한 그 사람의 평가보다  사소한 일화들,  그 사람의 친필 일기와
벗들과 주고받은 편지, 사진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애인의 집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 얼마나 긴장했던지
쩔쩔매다가 급기야 간질 발작으로 쓰러졌다는 일화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병폐였지만!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형제 앞에서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까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본 걸까?)

어제 김병욱 감독 인터뷰를 페이퍼로 올리면서 소심함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렇게도 지긋지긋해 한 타인의 소심함은 바로 내 속에 있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어떤 이와 '매력'과 '성실'이라는 덕목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성실함의 우스꽝스러움이라니!"하고  시건방을 떨었지만
(마치 자신은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인 것처럼,)
기본적으로 나는 수줍고 소심한 사람이 좋다.
지나친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 뼈빠지게 일했음에도'라는 타르코프스키의 어느 날 일기에
소스라치며 밑줄을 친 게 딱 10년 전.
(좀전 책장을 훑다가 눈에 띄어 펼쳤는데, 97년 1월 22일에 이 책을 샀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
나 자신, '이상'이라고 할 것도 없고, 더구나 뼈빠지게 일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평생 뼈빠지게 일하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사람에게 또 있을 것인가?
설령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연약하고 속수무책이라는 결론이 나더라도.

아무튼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왜 저런 구절에 눈이 자꾸 가는지 모르겠다.
'한 개인의 올바름은 도덕적 순수에 있다.'는 구절은 10년 전과  좀 다르게 읽힌다.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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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7-01-3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딱 그런 사람입니다.. 수줍고 소심한..
그래서 로드무비님이 절 좋아하시는 거였군요..히히~ ^^

2007-01-30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7-01-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운감독의 소심함에 놀랐었는데..세상엔 소심한 사람이 참 많네요.
덕분에 저도 힘을 얻습니다. (제가 보여지는 이미지보다 실제론 엄청 소심해요ㅠ.ㅠ)

로드무비 2007-01-3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 님, 보여지는 이미지도 그런데요?=3=3=3
헤헤, 님이 가끔 페이퍼에 그런 이야기 쓰시면 씩 웃습니다.
유쾌해서요.
김지운 감독 <숏컷> 읽으셨나 봅니다.
저도 마저 읽어야 할 텐데.......^^

날개 님, 날개 님은 그 반대라서 지가 좋아하지유.^-^*
(거짓말을 할 땐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생각하시는 게? 님, 님 책꽂이 좀 뒤벼보고 메모 남길게요.^^

2007-01-30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1-3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뼈빠지게 일하지 말자는 님, 잘 생각하셨어요.
전 '공동선'보다 제 '영혼의 이익' 쪽에 손을 들어줍니다.
'이상'이 없는 게 콤플렉스고요, 심정만 있는 게......
무지 반갑습니다, 그 아디와 이미지.^^
(골방에서 깊은 밤 혼자 생각할 때 아마도
자신이 대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듯......)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나남포에지 1
김영승 지음 / 나남출판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난'과 '술'이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시인 김영승.
제목에 이끌려 진작부터 사고 싶었던 그의 시집을 이제서야 읽었다.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이라니, 그의 시 '극빈' 중의 한 구절이다.
 이문재의 해설을 보니, 이 시집 제목이 어느 날 자신에게 영감처럼 왔다고 한다.

김영승 시인은 自序에서 태어나 자신을 한 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데,
그의 친구들은 내내 지지리도 가난하고 사는 데 요령이라곤 없는 이 시인의 존재가
뭔지 미안하고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슴에 탁 걸렸던가 보다.

술취해서 자고 있을 때
부엌에서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뭐, 씹는 게 먹고 싶어서요..."

다락에 두었던
먼지 쌓인
어머니가 갖다주신
北魚를 방망이로 두들겨
뜯어먹고 있었다

이제 아내는
나와 함께 늙어
몸도 아프고

"그럼 오징어라도 사다먹지..."
말이 없었다.

"돈이 없어요."
(詩  '北魚'  중, 80쪽)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되어 몸이 허한 아내가 한밤중에 북어대가리를
뜯어먹고 있는 걸 본 시인은 그 아픈 마음을 시로 썼고,
이문재는 해설을 쓰기 위해 친구의 원고를 읽으며 이런 시를 볼 때마다
달려나가 술을 퍼마셨다고 한다.

시인은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인천광역시 문화상 시상식에 수상자의 신분으로 참석해서
진행자로부터 '奇人'이라고 소개를 받았나 보다.

奇人?  奇人이라고?
(......) 내가 어쩌다가 奇人이
되었을꼬... 나는 운다

Elephant Man처럼

사는 날까지 살자
죽는 날까지 살지 말고
(詩  '奇人' 중에서, 114쪽)

십몇 년 전, 천상병 시인 추모행사장에서 직접 만나본 시인은
누구보다 눈빛이 맑고 여리고 수줍은 사람이었다.
행사 후 원고 때문에 잠시 찻집에 들렀는데 우리는 차 대신 술을 한잔 마셨다.
일 관계로 만나면 밥값이든 찻값이든 담당자가 내는 건 세상의 불문율.
그런데 시인은 계산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몇푼 안되는 돈이었고 경비로 처리하면 됐는데.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일조차 그에게는 어색하고 죽을 맛이었나 보다.

-- 너무 오랫동안 무슨 마른 '北魚대가리'같은 삶을 살아서 그런지 어떤 부드러움,
부드러운 육체와 영혼과의 스킨십이 조금은 그리웠나 보다.
좌우지간 7년 만에 일곱 번째 시집이라니... 폐일언하고 눈물겹다.
시집을 냄으로써 나는 겨우 이런 式으로 내가 그리워(?)한 이 세상과의 스킨십을 할 뿐이다.
"잘 먹고 갑니다..."
음식을 먹고 각자 음식값을 지불하듯 이 地上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아니 나도 겨우 이런 式으로 스킨십을 하며 이런 式으로 더치페이를 한다.
나는 堂堂하다.(시집 앞의 自序 중에서)

이렇게 영롱한 글과 시들을 읽으며 세상은 왜 그에게 자꾸
'기인'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멀쩡하고 당당하다.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게 웃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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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01-2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던 시인이라, 반갑게 보관함에 넣습니다.

로드무비 2007-01-2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께 다소간의 여윳돈이 생기기를!=3=3=3
시집이 좀 비싸죠?^^


건우와 연우 2007-01-2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써 세상에 내보내는게 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더치페이라면 제 몫은 사서 읽는 것이겠지요.^^
꼭 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보관함에 담으며 살펴보니 로드무비님 말씀처럼 좀 비싸긴 합니다.^^

로드무비 2007-01-29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 님, 그래도 전혀 아깝지 않답니다.^^
(댓글이 예술입니다그려.)

2007-01-29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1-2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들은 참 해맑더군요 님, 시인이라고 뭐 모두 그럴라고요. ㅎㅎ
해맑은 소설가도 있겠죠.
요즘 이모저모 바쁘시군요.
그 너구리굴 속에서 님의 화사한 자태가 빛났을 듯.^^

waits 2007-01-30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예요. 십 년도 더 전에 '아름다운 폐인'이었나... 무지 심란하게(?) 읽으며 어줍잖게 황폐의 공감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 팍팍해도 다들 제 나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주제넘는 안심이 새삼.
로드무비님 아니면 시집 들춰 볼 일도 없는데 좋은 시, 시인 얘기 자주 써주세요.^^

로드무비 2007-01-3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나어릴때 님, 맞아요, 그런 제목의 책도 있었죠.
제목이 좀 웃겼어요.
'황폐함'의 정서가 예전에는 매력적이었는데 요즘은 무서워요.
끝장과 바로 연결이 된달까.
나이 탓일까요......

님의 그런 안심은 절대 주제넘지 않습니다.
얼매나 미더운데요.^^

라로 2007-02-0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보는 반가운 <시>리뷰군요~.^^
소설 리뷰가 대세인걸 보면
시 읽기가 쉽지 않아서겠죠~.
느리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니,,,,그런 시간이 어딨어지요...
<너무 오랫동안 무슨 마른 '北魚대가리'같은 삶을 살아서 그런지 어떤 부드러움,
부드러운 육체와 영혼과의 스킨십이 조금은 그리웠나 보다.> 라는말에 괜시리 눈물지어지네요...

로드무비 2007-02-1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bi 님, 반갑습니다.
시집은 자주 읽는데 리뷰를 쓸만큼 흥이 나진 않아요.
북어대가리는 씹기보다 국물로 오래오래 우리는 게 훨 나은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