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성화에 못 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 詩 '수조 앞에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 刊






딸아이가 며칠 전에 물었다.
"야시장 언제 열려?"
"토요일마다 서잖아."
"그거 말고, 금붕어도 팔고, 엄마아빠삼촌 술도 마시는 야시장..."
"아아, 그거! 글쎄다. 봄에는 열리지 않을까?"

2년 전 봄밤, 우리 동네 공터에 섰던 야시장.
딸아이는 금붕어 네 마리를 투명 비닐봉지에 담아 데려왔는데
지금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아이들 때문에 급구매 했던, 인테리어 효과를 고려한 비싼 어항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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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1-2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로드무비 2010-01-21 11:09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최양일 감독의 <퀼> 보셨어요?
극장에서 나도 모르게 치니 님을 생각했나이다.
그리고 사진 속의 저 의젓한 아이.^^

치니 2010-01-21 11:44   좋아요 0 | URL
봤어요 봤어요!!! 아아아, 눈물을 머금고 차마 떨어뜨리지 못한 채(엉엉 울까봐서) 2시간을 봤더니 눈이 알알했던 영화.
이 영화 생각보다 안 알려져서 안타까워했었는데, 역시 로드무비님은 짱!

로드무비 2010-01-21 12:33   좋아요 0 | URL
치니 님도 역시 보셨구나. 안심.^^

2010-01-2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3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4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5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6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6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처>

              마종기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

젊었던 나이의 나여.
사고무친한 늙은 나를
초라하게 쳐다보는 젊은이여,
세상의 모든 일은 언제나
내 가슴에는 뻐근하게 왔다.
감동의 맥박은 쉽게 널뛰고
어디에서도 오래 쉴 자리를
편히 구할 수가 없었다.



새해는 세 권의 시집으로 시작하였다.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최승자 시인의 <쓸쓸해서 머나먼>
그리고 <마종기 시전집>.

언제부턴가 가슴 뻑적지근한 시를 읽고 나면 시인의 나이가 몇 살인가
확인해 보는 버릇이 붙었다.
이것도 나이 들어가는 징조.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인다는 시인의 말을 콩떡같이 알아먹겠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최승자 시인의 다음 시는 쓸쓸하면서도 참 유쾌하다.
시인의 건재함이 반가워서 몇 번을 되풀이 읽은 시편들.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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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0-01-2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곧 최승자님 시처럼 될 것같아서 조금 마음이 아프네요

로드무비 2010-01-20 15:23   좋아요 0 | URL
저런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부러운데요, 저는.^^

글샘 2010-01-2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르르 흐르르...

로드무비 2010-01-21 10:59   좋아요 0 | URL
호르르호르르...

2010-01-21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4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10-01-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 할 수 없이 반가워요.
최승자 시인도, 로드무비 님도^^

로드무비 2010-01-24 12:21   좋아요 0 | URL
rainy 님, 반갑습니다.
님 방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김에...
 

어젯밤 딸아이와 대화 중에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주하야, 이기주의는 뭐야?
- 자기 생각하는 것.
그러면 개인주의는?
-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

그 예쁜 입에서 나온 신통방통한 말, 페이퍼로 기록해 둔다. 

 







열린 창문이 마음에 들어 어디선가 업어온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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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은 사회학 해야겠는데욧!

로드무비 2010-01-20 12:35   좋아요 0 | URL
태권도 다시 배울 것을 권유하고 있는데
사회학이라굽쇼.^^

Mephistopheles 2010-01-2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이기 이전에 진리같습니다.

로드무비 2010-01-20 12:34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은 가끔 너무 진지하시더라.=3=3=3

Mephistopheles 2010-01-20 17:17   좋아요 0 | URL
어머 전 언제나 진지해욧!=3=3=3=3

로드무비 2010-01-21 11:28   좋아요 0 | URL
백 번에 한 번?=3=3=3

라주미힌 2010-01-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ㅎㅎ.. 주하 사진 못 본지 까마득...

로드무비 2010-01-20 12:3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 님,
저도 주하 사진 못 본 지 까마득하네요.
아예 찍질 않았으니까요.
언제 예쁜 사진 한 장 건지면 바로 올리겠습니다요.^^

2010-01-2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2010-01-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 천재닷!

로드무비 2010-01-20 15:29   좋아요 0 | URL
구은재 님이야말로.=3=3=3

BRINY 2010-01-2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짝짝짝!

로드무비 2010-01-21 11:02   좋아요 0 | URL
기말고사 국어 성적 85점과 저런 재치(?)는
별 상관이 없는 건가 봅니다.^^

BRINY 2010-01-21 20:52   좋아요 0 | URL
학년이 올라갈수록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되니 너무 걱정마십시오.

로드무비 2010-01-24 12:30   좋아요 0 | URL
BRiNY 님 말씀만 믿겠습니다.^^

조선인 2010-01-2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로드무비님, 이건 정말 명언록에 남겨야 합니다.

로드무비 2010-01-21 11:03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그래서 이렇게 득달같이 달려와 기록을 남겼잖습네까!^^

poptrash 2010-01-2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느낌인데요.
호그와트로 보내야 할지도!!

로드무비 2010-01-21 11:04   좋아요 0 | URL
poptrash 님, 님이 가고 싶으신 거죠?^^

치니 2010-01-2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주하라는 이름은 다 이쁘고 똑똑한가봐요(김주하 아나운서를 뜬굼없이 떠올리는 치니).
근데 저 사진의 집은 어디래요? 설마 주하집?

로드무비 2010-01-21 11:08   좋아요 0 | URL
헤헤, 우리 집이 저럴 리가요!
홍대앞 무슨 카페인가본데 왠지 맘에 들어 업어왔습니다.

끙끙거리며 아이 이름 지을 때가 생각납니다.
치니 님 댓글 보니 이름 잘 지은 것 같아 흐뭇합니다요.^^

향기로운 2010-02-2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아이가 제목처럼 명쾌한 답을 했네요^^ 사진 속 초록빛 창틀도 아담한 돌담도 작은 테이블까지.. 멋진 사진이네요.

로드무비 2010-02-28 15:51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 님, 저 창문 밖으로 봄이 스멀스멀 다가옵니다.^^
 





지난 여름방학 때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 UP>에서 '개망신 깔때기'를 보고
우리 모녀 자지러졌는데(정말 깜찍한 번역 아닌가요!),
다음은 딸아이가 몇 달 전 찍은, 우리집 강아지 츄투의 착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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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4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0-01-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로드무비 2010-01-15 12:3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0-01-1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사람에게도 저걸 씌워주면....하면서 혼자서 낄낄거리는 중..

로드무비 2010-01-15 12:31   좋아요 0 | URL
전 바로 누구누구가 떠오르는데요. 낄낄~

마노아 2010-01-14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망신 깔때기 너무 웃겼어요. 아, 그런데 실물은 넘흐 귀엽네요. 강아지의 미모 때문이지만요.^^

로드무비 2010-01-15 12:30   좋아요 0 | URL
영화 보고 며칠 후 귀에 염증이 생겨 저걸 목에 둘렀는데요.
얼마나 기쁘고(?) 신기하던지요.^^

twoshot 2010-01-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엽습니다!!

로드무비 2010-01-15 12:28   좋아요 0 | URL
아!하는 감탄사가 왜 이리 흐뭇한지요.^^

프레이야 2010-01-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츄투가 넘 귀여워요.
땡그란 눈망울하며...^^

로드무비 2010-01-15 12:28   좋아요 0 | URL
시추 중에서 저렇게 예쁜 아인 처음 봤습니다요.
프레이야 님, 감사.^^

마냐 2010-01-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도 이젠 아가씨겠네요. ^^;; 잘 지내시죠?

로드무비 2010-01-16 10:22   좋아요 0 | URL
마냐 님, 잘 지내셨죠?
반갑습니다.
주하는 이제 청소년기에 막 접어들려는 지점입니다.
마냐 님댁 똘망똘망한 오누이도 많이 컸겠군요.^^

2010-01-15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6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생은 대학 다닐 때 '맥박'이라는 노래패에서 활동했다.
오오래 전, 초대를 받고 공연을 보러 갔더니, 강당 무대에서 솔로로
'장작불'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로 시작하는 백무산의 시로 만든 노래.
(언젠가 페이퍼에 쓴 적 있다.)
썩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 있다. 심지어 '미쓰 고'를 부르더라도.
지난주 '오프앤프리'영화제 마지막 날, 차학경의 비디오아트 <망명자>를 보러
신촌의 한 대학을 찾았는데(동생의 모교) 그때 생각이 났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학번을 묻더니, 술병을 가지고 와 한잔 가득 술을 따라주었다.
오고가는 술잔 속에, 웃음 속에 여름밤이 깊어 갔다.

그 여자의 사께집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동안 30미터 남짓 떨어진 길 모퉁이에
새로운 사께집이 생겼다.
술집은 어디까지나 좀 어둑시구리하고 퀘퀘하고 술집다워야 하는데
젊은층을 겨냥한 것인지 그곳은 너무 밝고 화사했다.
인테리어뿐 아니라 안주도 신통치 않았다.
어묵 국물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살짝 흉내만 낸 듯한 맛이었다.
딸아이가 고개를 내저을 정도니 괜시리 내 가슴이 철렁, 젊은 주인이 안됐다 싶었다.
어묵국물을 얻어 돌아오던 밤, 살짝 가게 안을 들여다봤더니 주인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 오후, 반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길에서 사께집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 팔짱부터 꼈다.
털이 달린 앙징맞은 조끼에 미니스커트에 레깅스 차림, 미장원에서 막 손질을 마친 듯한 머리.
저녁 장사에 쓸 채소를 손질하다 너무 답답해서 가게를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양파 냄샌지 파 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았다.
하마터면 내 입에서는 "우리 어디 가서 한잔힐까요?"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그리고 '임시휴업' 쪽지를 붙이기 얼마 전에는 한 할머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정하게 얘기하며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아는 할머니였다.
우리 동네에는 요일별로 단지별로 임시장터가 서는데, 그 장터의 길목에서 채소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호호백발 단발이 인상적인데 어쩌다 할머니의 채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강매를 일삼아 지켜보는 시장 상인들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나도 한 번 멋모르고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가 원치 않는 채소까지
전부 싸짊어지고 와야 했다.
'내 사전에 거스름돈이란 없다'가 아마 할머니의 인생 모토인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와는 눈도 마주치기 싫은데 그 여자는 세상에,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딸처럼 손녀처럼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니는 어떻노? 채소를 일부러 팔아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남은 채소까지 억지로 다 떠안기면
그래도 그 할머니를 계속 찾을 꺼가?"
"어림도 없다. 나도 그런 사람은 못 참는다."
"그런데 이상하제? 와 나는 그 여자를 보면서 밑도 끝도 없이 '졌다!'하는 생각이 들었으까?"
술김에 나는 마음의 한 자락을 털어놓았다.
최근 부쩍 심해진 무력감과 열패감, 그리고 비애......
(일례로 포천 고모가 농사 지은 고춧가루를 좀 팔아달라고 하는데 한 근도 못 팔았다.
아예 입도 못 뗐다. 고모에게 미안해서 된장고추장을 몇 통 사서 쟁여두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무능한 인간인지 몰랐다.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알고 난 뒤의 충격이라니!)

그런데 그녀는 어떤가.
두 달 가까이나 가게를 비웠는데도 바글바글 그녀를 찾는 손님들은
맛있고 푸짐한 안주에. 화사하고 싹싹한 외모에만 반한 것이 아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외면하는 노점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는
따뜻함과 천진함에 매료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께집이 잠시 문을 닫은 동안 게릴라처럼 출몰하여 재미를 봤던 새로운 사께집 주인은 
어젯밤에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어제 기말고사를 친 딸아이가 며칠 전 얻어먹은 어묵국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그 집에 가자고 해 가서 한잔했거든요.)
돌아오면서 보니 두어 테이블 손님이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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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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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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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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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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