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 최승자 詩 '하늘 도서관' <문학사상> (20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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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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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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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袋風俗 2010-10-0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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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 일을 좀 해주고 몇 푼 받을 돈이 있어 메일을 보냈는데
담당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몇 달째)
약속을 두세 번 어기더니, 그예 용기(본격적으로 약속을 어길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래봐서 잘 안다...

'메일로만 채근하는 게 찌질하고 좀 우스운가?'
그래서 오늘은 담담하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이름을 밝히니 화들짝 놀라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또 그럴 수 없이 정중한 어조로 결제를  미룬다.
그 정중한 어조가 되려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도 약속을 어기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가서 사무실을 급습해
머리채를 확, 잡으리라!
(이번 주 영화  <아저씨>와 <악마를...>을 몰아서 보았다. 예상 외로 좋았다!)

며칠 전 <육조단경>을 읽는 중 혜능 대사는
'24세에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치셨다'(40쪽)고 하여
그 구절이 무엇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몇 페이지 뒤 각주에 얌전히 소개돼 있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42쪽)

나는 몇 년 전 수첩 앞머리에 <금강경>의 저 구절을 한자로 빼뚤빼뚤 옮겨놓고
이렇게  적어 넣었다.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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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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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1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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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0-09-1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출판사에 가서 번역료 내놓으라고 싸우던 김수영이 생각나네요^^

로드무비 2010-09-10 23:05   좋아요 0 | URL
양주동 박사님이 생각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요.
(그랬다고 해도 영광이지만...)

渋谷風俗 2010-10-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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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소설을 썼을 때는 문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었을 텐데,
존경하는 작가는 누가 있습니까?

장률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귀족 가정의 몰락을 사랑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책인데, 한 사람이 느끼는
고독감을 다루고 있어요. 그는 그걸 쓴 뒤, 돈도 별로 없고, 술주정뱅이로 죽었어요.
<홍루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만지황당언 滿紙荒唐言  일파신산저 一把辛酸沮

(한 페이지 가득 황당한 말들이 적혀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한 줄의 쓰린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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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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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08-19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책이에요. 그런데도 며칠 전에 (쓸데 없는) 다른 책은 잔뜩 샀으면서 이 책은, 그리고 함께 나온 또 다른 책은, 쏙 빼놓았더랬죠. 내 맘 나도 몰라요.

어쩌면 한 줄의 쓰린 눈물이 두려워서?

로드무비 2010-08-19 12:54   좋아요 0 | URL
두 권 함께 사려니 책값이 너무 비싸서...잖아요.=3=3=3


(한 줄의 쓰린 눈물이 흐르는 인생의 순간을 사랑합니다.^^)

릴케 현상 2010-08-2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로드무비님이 골라낸 한 줄

로드무비 2010-08-20 17:55   좋아요 0 | URL
헤헤헤~~~(비굴한 웃음)
 

어젯밤 잠자리에 드는데 문득 '인색함과 게으름이 내 인생에 초를 쳤다!'라는 생각이
묵직한 망치처럼 뒤통수를 쳤다.
무슨 대단한 깨달음이나 되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첩에 기록했다.

조금 전 토요일에 주문한 알라딘 50프로 세일 도서 슬라보예 지젝의 책값 결제를 하려는데
권정생 선생의 글에 가락을 붙였다는 백창우의 음반이 눈에 띄었다.
(<바보처럼 착하게 서있는 우리 집>)
알라딘 소개에 나와 있는, 권정생 선생이 빨래 너는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낭송으로 수록되었다는 <도모꼬>라는 제목의 시!
잠시 고민한 끝에 지젝을 포기하고 음반을 주문했다.
(서동만 선생 1주기  추모집 <죽은 건 네가 아니다>와 함께...)

한 번쯤 꼭 읽어보고는 싶으나 냉큼 손이 가지 않을 게 확실한 책들은
이제 보관함에도 담지 않으련다.
 

 

 도모꼬
   -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2학년인 도모꼬가
1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가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 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서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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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0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려고 찜해두었습니다.

로드무비 2010-06-07 13:49   좋아요 0 | URL
돈 생기면 빨랑 사셔요.
뭘 또 준다는군요.^^

L.SHIN 2010-06-0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로드님.^^
종종 로드님의 새 글이(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긴 하지만..-_-) 올라오면 보러 오긴
하지만, 이렇게 댓글 다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아요.(웃음)
나는 아직도, 4년 전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담아 썼던 리뷰에 로드님이 남겨준 다정한
댓글을 기억하고 있고, 리뷰를 쓸 때 마다 그 때의 기분에 힘을 얻고는 합니다.

날 더운데, 더위 조심하세요 -

로드무비 2010-06-07 16:50   좋아요 0 | URL
L.SHIN 님, 반갑습니다.
제가 얼마나 다정한 댓글을 남겼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헤헤~
(지가 좀 다정한 인간이긴 하죠... 한달에 이틀 정도!)

데쓰노트 캐릭터 피규어를 보면 님이 떠오릅니다.
(가끔 가는 CGV 극장 로비에 피규어 진열장이 있거든요.)
어찌나 상큼하신 분인지, 무더위도 L. SHIN 님은 피해 갈 듯합니다.^^




L.SHIN 2010-06-07 17:01   좋아요 0 | URL
그렇지는...않아요. 슬프게도..( -_-);
더위가 저만 따라다니는 듯..그래서 여름엔 도망다니느라 바쁘답니다.^^;
그런데, 어디 CGV인지, 착하군요.(읭?)ㅋㅋ

로드무비 2010-06-07 17:14   좋아요 0 | URL
방금 미역냉국 페이퍼 보고 왔습니다.
냉국에 든 미역은 너무 미끈둥해서 별론데.

오이 많이 드시고 더위 물리치세요.^^



2012-04-16 0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9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 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 중 '선택의 가능성' 전문 (문지 刊,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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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전쟁반대, 평화실현 10만 네티즌 시국 서명운동을 제안합니다'라는
이정희 의원의 서명운동 제안을 메일로 받았다.
몇 명이 참여했는지, 무엇이라고 한마디 남겼는지 궁금해서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

'안됩니다. 모내기해야 되는데 뭔 소리여!'

2만 몇천 명의 사람들의 발언보다
한 농부(아마도!)가 서명과 함께 남긴 저 한 마디가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말은 몇 개월 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에서 내가 밑줄을 그어놓은
다음의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물었다. 때로는 행복하냐고.

아직도 일을 합니다.
- 그가 대답했다.

'때로'는 행복하냐는 물음.
'아직도' 라는 대답의 간명함과 솔직함.


http://www.heenews.co.kr/sig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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