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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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냄새 정도가 아니라 자기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20년 전, 조선소 용접공들.
(설마,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

그들의 작업복 등판에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허연 소금꽃.
그 조선소 용접공이었던 김진숙은 아침 조회시간마다 동료들의 등판에 주렁주렁 피는
꽃을 지켜보았다. 자신도 소금꽃들을 등짝에 가득 매달고.
며칠 전, 책 제목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듣고 바로 이 책을 주문했다.

--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 당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9쪽, 책을 내며)

'아직도'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홀로 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김진숙.
공장이라 할 것도 없는 한복 금박을 박는 가내수공업 골방에서 시작해
대우실업, 한진중공업(전 대한조선공사) 등 큰 규모의 회사로 옮겼으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2006년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그가 직접 써서 낭송한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구절처럼,
많은 이들이 운동에 잠시 투신했던 추억을 팔아먹으며 살고 있을 때도
그는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스스로 역사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공장에서 나온 그가 땡볕 아래 해운대 백사장을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팔 때
나는 단발머리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수배자로 쫓기며 새벽에 어느 집 대문간의 제삿밥을 주워 먹고 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시립도서관과 재개봉관이나 들락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성지곡수원지 나무 그늘 밑에 쪼그리고 앉아 그가 유인물을 씹어 삼키고 있을 때
난 무얼 하고 있었을까?
(반성하고는 거리가 먼 인간인데 살던 동네가 겹치다 보니
절로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고 종내에는 얼굴이 뜨뜻해졌다.)

제목은 가물가물한데 여학교 때 단체로 본 영화가 생각난다.
울산의 한 방직공장과 기숙사, 야간학교를 무대로 낮밤없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산업전사 소녀들이 주인공이었다.
소녀들의 방은 좁았지만 로션 냄새가 향긋했고 휴일엔 한껏 멋을 내고 시내까지 진출하여
돈을 모아 통닭을 뜯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처럼, 방송통신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재직증명서를 떼러 온 소녀에게
"방통고 나온다고 니 인생에 꽃이 필 것 같나?"
하고 면전에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인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영화보다 현실이 더 기막히다니 이럴 수가!

--내가 거기(대공분실)서 살아 나온 게 견딜 수 없는 자책이었던 적도 있었다.
1년 뒤 박종철 학생이 그렇게 죽어 나왔을 때, 이철규, 이내창 그들이
내가 그랬음직한 모습으로 저수지에서 떠올랐을 때......
그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새빨간 눈빛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바탕 장대비 내리는 툇마루에서 꾸었던 어릴 적 악몽처럼 지나가는 말투로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간혹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감동적이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31쪽)

하긴, '감동적'이라는 말을 그동안 얼마나 남발했는지 그만큼 안 감동적인 말도 드물 것이다.
책의 맨 마지막 '여섯' 마당에 묶인 그의 가족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벌어졌던 입이
마지막 페이지에서 절로 다물어졌다.

--잊고 있었다는 듯 큰언니가 울기 시작했다.
가게를 보던 조카가 "엄마, 와사비 얼마야?"라고 묻는 전화가 오면
"큰 거 짝은 거?" 묻고는 "짝은 건 820원." 대답하고는 다시 우는 사이......(244쪽)

코끝을 찡하게 하는 와사비보다 독한 저자의 살아온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가 직접 만난 몇몇 노동자들의 인터뷰 기사, 또 박창수, 김주익, 배달호 등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또 모르는 열사들을 보내며 쓴 추모사까지
가슴을 두드리지 않는 글은 한 편도 없었다.

출판 의사를 묻자, 책으로 만들기 위해 나무들을 벨 만큼 자신의 이야기가 가치가 있는 걸까,
물었다는 저자.
책 잘 읽은 기념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꼭 심겠다, 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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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 2007-06-0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분께 어쩌다가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대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꾸고 싶었던 비인간적인 7,80년대의 노동환경, 사람만 바뀌었더라고. 한국인들에서 이주노동자들로 사람만 바뀐 채 환경은 여전하더라고. 그 분은 그래서 이주노동자들 곁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조선소 내의 환경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어쩌면 별로 바뀌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7-06-0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제도의 명칭이든 구체적인 내용이든 허울좋은 변화일 때가 많습니다.
비인간적인 것으로 치면 지금이 더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설마 여벌의 작업복은 지급되고 있겠지요.
식품이며 물자가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그런 정도의 개선이나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rosa 님도 읽고 아시겠지만, 그때,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 아니었습니까.

2007-06-04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rosa 2007-06-0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씩은 과거보다 지금이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하는 생각은 한답니다. 여벌의 작업복에 대해서도 그렇게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언젠가 한국의 굴지의 대기업에서 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출입증 카드가 다르고, 밥 먹는 시간대도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남긴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0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막연한 기대(최소한의 것에 대한)를 배반하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를 일이지요.
집집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저렇게 넘쳐나니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알고보면 또 아니잖아요.
도처에 뚫린 구멍들.
혹, 여벌의 작업복도 모를 일이네요.
저야말로 rosa 님께 감사드립니다.^^

네꼬 2007-06-0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한 진심이 묻어나는 글이라, 닫지 못하고 한참 있었어요. 인용한 글이 참 먹먹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waits 2007-06-0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보관함에 담아놓고 언제 주문할까 하던 책이었는데, 로드무비님이 먼저 읽으시고 리뷰까지 써주시니 반갑고 고마워요. 님의 리뷰가 이 책 판매고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로드무비 2007-06-0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호호, 판매고에 적잖이 도움이 되겠지요.=3=3=3
저만 해도 두어 권 더 살 예정이니 말입니다.^^

네꼬 님, 제가 왜 엉뚱하게 와사비 어쩌고 하는 대목을 넣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2007-06-06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08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키타이프 2007-06-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이라는 말을 얼마나 남발했는지 그만큼 안 감동적인 말도 드물다는 말씀에 귀기울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 님, '안 감동적'이라니 표현이 좀 어색하죠?^^

나무 심기 요원하니 님, 컴이 자주 다운되어 댓글 쓰기도 어렵습니다.
가르쳐주신 주소는 수첩에 메모해 둘게요.
경비아저씨께 이번에도 구박을 받으셨는지?=3=3=3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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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집 마루에도 보라색의 예쁜 등이 하나 걸렸다.
지난 주말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돌아오는 날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지지난 해 가을에 갔을 때 언덕의 사랑방에  종이 로봇을 열두 갠가 조립하여
통유리 창틀에 나란히 세워두고 왔는데 없어졌다.
누구의 짓일까.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인지 우리 일행을 비롯하여 신도들이 떼로 몰려들었는데
공양주 보살 할머니는 느긋했다.
된장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았고, 쑤어논 묵에 간장을 끼얹어 내면 되고,
입에 넣으면 녹아버리는 깻잎 장아찌에  김치가 맛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사랑방의 그 묵직한 책꽂이도 여전했다.
이번에는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여섯 권과
<우키요에의 미>,  일본 강담사에서 출간된 Zen  Painting이라는 책이 유독 눈에 띄었다.
눈가에 장난기가 자글자글한 스님께 버릇없이 여쭈었다.

"이 책들 스님이 읽으시는 겁니까?"

한 번 오면 며칠이고 틀어박혀 책만 읽고 가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불교미술을 함께 읽는 스님이라니,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번주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를 꺼내어 곶감 빼먹듯 아껴가며 읽었다.
1970년대 초,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결심하고 시월 초하루 그곳을 찾아 김장을 돕고
10월 15일 결제부터 1월 15일 해제일까지 함께 한 스님들의  생활을 기록했다.
1973년 신동아 논픽션 공모전에 당선된 글이라고 한다.

수행자로서의 진솔한 독백이 마음을 흔드는가 하면,
긴긴 겨울밤 곳간에서 몰래 빼돌려 구워먹는 감자구이 동호회를 결성하질 않나,
또 별식으로 만두를 만들어 먹는 날의 소동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어느 날 밤에는 또 정신이 우위냐 육체가 우위냐 하는 질문으로부터 촉발된
유물唯物 유심唯心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기도 하며, 용맹정진 중 수마에 함락당하는
치열한 현장이 생중계된다.
세모의 고독은 또 어떻고......

내일이면 동안거가 끝나는 날, 빨래터에서 나란히 내의를 빨아 널고 
지객과 지허 두 스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재미는 각별한 것이었다.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재미있어서 단번에 읽히는데(일부러 며칠간에 걸쳐 나눠 읽었다) 여운이 길다.

--(뒷방 조실 스님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 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니는 것 같다.(47쪽)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들이랄까, 댓돌 위의 고무신 몇 켤레의 흑백 영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35년 전 지허 스님과 함께 상원사에서  겨울을 나신 스님들,
견성의 문턱을 지나 모두 성불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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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05-2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경박하고도 경박하고, 사람들은 자꾸만 우로우로만 가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불교미술을 함께 읽는 스님이라니요...
저도 궁금합니다.
담아갑니다.^^

2007-05-25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도원/ 수녀원 님, 오래 전 사둔 책인데 절에 다녀오니 문득 생각나서
찾아 읽었어요.
감상이나 과장 없이 '딱 그만큼'의 이야기를 적어나간 작은 책자입니다.
좋아하실 듯.^^

건우와 연우 님, 전 <우키요에의 미>를 꺼내어 잠시 읽었어요.
흥미로운 책이더군요.
그러게요, 저도 그 스님이 누군지 모르면서 묘한 호감이 뭉게뭉게......^^

플레져 2007-05-2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폭풍같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아요.
그 절에 다녀오셨던 이야기,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

로드무비 2007-05-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절 사진 페이퍼 다시 퍼올까요?
플레져 님은 정말 머리가 좋아요. 감탄.^^

2007-05-2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5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5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7-05-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지리산의 암자... 전 잠시 둘러보는 것 말고는 절에 머무른 적이 없어요. 인간이 너무 소란해서 그런지 한 번 생각도 못해봤네요. 영혼이 좀 진정되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려나... 뜬금없이 부석사라도 가보고 싶네요. ^^

로드무비 2007-05-26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플레져 님, 곱게 늙은 비구니 님,
연두색 포스트잇 맨 첫 페이퍼로 그 절 사진 글 옮겨놨습니다.
반갑게 봐주시길.^^

나어릴때 님, 아는 분이 스님 친구라 묻어서 갔습니다.
2년 전 그 방에 처음 들어선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답니다.
있어야 할 곳에 당도한 느낌.
헤헤, 너무 멋을 부렸나요?^^


2007-05-25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7-05-26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단번에 읽히는 책을 그렇게 아껴두고 조금씩 나눠 읽으셨어요? ^^
정말 존경입니다.
전 서점에 서서 반 넘게 읽을 책을 사가지고 와가지고
집에 온지 삼십분만에 끝낸 적도 있어요.
얼마나 허망하던지... ㅠ.ㅠ

로드무비 2007-05-2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런 책이 있어요.
<회송전차>도 그렇게 읽었고.
검둥개 님, 먹는 것도 그렇게 자제가 되면 을매나 좋을까요?^^
(아이고, 그 책은 마저 서서 읽고 오시지!)

혜덕화 2007-06-0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소개로 이 책을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7-06-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혜덕화 님 리뷰 읽고 기분좋게 하루를 엽니다.^^
 
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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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주 전,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러 갔을 때
꼴에 소설가라는 마츠코의 기둥서방 방에서 대문짝만한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함부로 쌓인 책들과,
햇빛을 차단하는 싸구려 커튼 한 장이 전부인 그 골방, 벽에 붙은 흠모하는 소설가의 대형사진.
1948년, 다자이 오사무의 무덤 가에서 할복자살한 문학청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가 바로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지난주에는  <소라>라는, 스튜어디스가 주인공인 만화를 읽는데
'쓰가루(津輕)'가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다.
60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 작가의 살아생전 흔적을 혼자 좇는
초췌한 몰골의 청년들. <쓰가루> 한 권을 품에 안고......
(바닷가 그 스산한 언덕도 좋았지만 언젠가 나도 그 해저터널의 투명창 위에서
물결이 합류하고 부서지는 장면이 보고 싶다.)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문학강연회에 참석한 지 20일 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소년 다자이 오사무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오래 전 나는 김승옥과 이제하, 최인호의 글에서 공통된 어떤 수상한 냄새를 맡았는데
알고봤더니 다자이 오사무의 감수성이라는 향수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황홀해 하며 언급했던 <사양(斜陽)>의 그 유명한 장면은
<크레이브의 부인>(처음 본 제목!) 같은  책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그 시절의 귀부인은 궁전의 정원이나 복도 계단 밑의 어두운 곳에서
태연하게 소변을 봤다'(<나의 소소한 일상> 126쪽)고 하는데,
정원 덤불 속의 방뇨 장면으로 그렇게 멋지게 처리하다니!

<나의 소소한 일상>을 읽고 나서 나는 책꽂이를 뒤져  '쓰가루'와 '쓰가루 통신'을 묶은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1993년 진화 刊)을 꺼내어 다시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고 나면  하염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녹작지근해지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조그만 것이라도 행동하게 된다.
툭 튀어나와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못을 망치로 박아 넣는다든지,
엉망인 책꽂이를 뒤진다든지, 하다못해 슬리퍼를 끌고 동네 가게에 맥주라도 사러.......

-- 창작에서 가장 당연히 힘써야 하는 것은 정확을 기하는 일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풍차가 악마로 보이거든 주저말고 악마로 묘사해야 합니다.
또 풍차가 역시 풍차 이외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풍차를 묘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은 풍차가 풍차로 보이지만,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으면 예술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뻔한 궁리를 이리저리 하여 낭만적임을 자처하는 멍청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 자는 평생 가도 무엇 하나 포착하지 못합니다.(<나의 소소한 일상> 242~ 243쪽)

"예술적 도취라는 웃기는 짓은 집어치우라"는 다자이 오사무.
그러면서 그 자신은 독한 체취 혹은 감수성이라는 향수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평생 가도 무엇 하나 포착할 기미가 없는 나이지만, 그를 만나는 일은 아직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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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
그나저나 전 명성만 들었지 다자이 오사무를 읽진 않았거든요.
마츠코 영화 보면서도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다가 잊고 있었네요.
이 책이라면 쉬엄쉬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

Mephistopheles 2007-05-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동은 통속적일진 몰라도 글로 표현하면 근사해진다는 말씀이신가요..?? ^^

로드무비 2007-05-1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통속이 뭐고 근사가 뭔지......??
죄송하게도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어라.
행동은 멋진데 글로 표현하면 조잡해지는 경우는 더러 봤습니다만.=3=3

체셔고양2 님, 마츠코가 뭐가 혐오스럽다는 말이냐,라고 하셨죠?
그 페이퍼 참 멋졌어요.
저도 영화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통쾌하고 좋아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때 읽으세요.^^

Mephistopheles 2007-05-1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원 덤불 속의 방뇨 장면은 상상하면 젼혀 아름답거나 멋지지 않는데..
표현은 멋지다면서요.?? =3=3=3=3=3

로드무비 2007-05-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표현도 간명하고 좋았지만('태연한 얼굴'이나 '알궁둥이' 같은 표현)
그 장면을 상상하면 뭔가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 묘한 기분을.
나의 경우 어릴 때도 그 '귀족'이라는 표현은 거시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 대목에 특히 우리 작가들이 열광했는지 궁금해요.^^


perky 2007-05-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김승옥씨 작품에 풍기던 우수, 쓸쓸한 분위기가 참 좋았더랬는데 다자이오사무의 감수성이었군요. 둘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에요..

로드무비 2007-05-1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 님, 그랬군요.
이제하 선생은 몇 년 전 어느 글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극복했다'고
쓰셨던 것 같은데.ㅎㅎ
소설가 김승옥의 신앙수필집도 곧 읽어보려고 합니다.^^


2007-05-10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5-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읽기전에 이름만 보고 보관함에 넣게 하는 오사무의 저력.
^-^ 넣고 나서 찬찬히 읽은 리뷰의 저력도 역시 ... 오랜만이에요, 로드무비님.

로드무비 2007-05-1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반가워유.
영화며 만화며 도처에 다자이 오사무더군요.
오늘은 또 '갓파'를 뒤집어쓰고 나온 만화 여주인공이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책을 자꾸 들이미네요.^-^

김채원의 글 님, 전 김채원 씨보다 언니 김지원 씨의 글들이
더 좋아요. 아스라한 것이......
왜 아니겠습니까.
저도 예전에 그런 충동을 느꼈는데 충동으로 그냥 끝났어요.
이 게으름은 아마 영원히 우리를 질질.......
('우리'라고 물귀신작전을 씁니다. 헤헤~ 그 얼굴 참 멋져요.^^)


진달래 2007-05-1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모르는 작가인데 글을 읽으니 무척 감상적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드네요.
"태연하게"라는 표현이 유독 맘에 들어요. 음... 관심 가는 책입니다. ^^*

네꼬 2007-05-1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흔들릴까봐, 이달엔 더이상 책을 사지 않겠노라고 공표하였는데.. 너무나 간단하게 흔들립니다. ㅠ_ㅠ

로드무비 2007-05-1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이 책만 주문하세요.
괜시리 5마넌어치 장바구니에 채우지 마시고. 헤헤~

카페인 님, 그의 감상과 통찰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태연하게'가 관건이거든요.^^

sudan 2007-05-1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이 있어요. ^^ 사양의 유명한 장면이 뭔데요? 분명 읽은 소설인데, 왜 저는 기억이 안 나는걸까요.

waits 2007-05-1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드무비님 반가워요. 히히~
여전히 보고 읽고 '포착'하고 계시는군요. ^^

나비80 2007-05-1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로드무비 2007-05-1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부답 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어릴때 님, 포착은요.
손가락 사이로 술술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수단 님, 산책 중에 갑자기 요의를 느끼고 정원 덤불 속에 쪼그리고 앉잖아요.
그것이 하나도 불결하게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다며
진정한 귀족이란 저런 모습인가, 감탄하던 장면.
우리도 뭘 하든 태연하기로 해요. 하하.^^


kleinsusun 2007-05-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꼴에 소설가라는..."
로드무비님의 리뷰는 시작부터 화끈하다니까요! 호홋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작은 행동이라도 하게 된다.......
오.... 저도 읽으면 이런 반응을 할까요?ㅋㅋ 궁금해서 읽어봐야 겠어요.^^

로드무비 2007-05-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 님, 님은 저랑 달리 스케일이 큰 행동을 하실지도 모르죠.
'꼴에'라는 말 무지 좋아합니다.
'꼴에 주부라고'는 저를 놀려먹는 말.^^

로드무비 2007-06-1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內外 님, 대수로운 걸 포착한 건 아니고요.
아무튼 기미 정도.
(반갑습니다.^^)
 
관계의 가면
러셀 윌링엄 지음, 원혜영 옮김 / IVP / 200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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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구절에 공감하면서, 또 반발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제일 많이 밑줄을 친 곳은 '회피자'와 '비껴가는 자'  유형의 페이지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알라딘 페이퍼에는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가볍디가볍게 처리하려고 하는 나의 의지(!)를 담은 제목이다.
그런 자신이 나이에 비해 많이  미숙하다고 생각하지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게 종주먹을 들이대었다.
그게 과연 수많은 고민과 모색 끝에 나온 결론이냐?
'수많은 고민과 모색'이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건 아마 살면서 내가 여러 번 구르고 깨어지면서
본능적으로 선택한 포지셔닝이었을 것이다.
포지셔닝을 가면이라고 야단을 쳐도 할 말은 없다만, 크게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다.
오죽하면 그랬을라구.

이 책은 세상을 살다가 자기도 모르게 뒤집어쓰고 잘 때도 벗지 않는 당신의 가면을
피하지 말고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종용하고 있다.
러셀 윌링엄은 그것을 여섯 개의 가면으로 분류하여 잘 진열해 놓았다.

회피자 가면 / 비껴가는 자 가면 / 자기 비난자 가면,
구세주 가면 / 공격자 가면 / 영적인 해석자 가면.

사실을 말하면 이 여섯 개의 가면은 나도 모르게 바꿔가면서 잠깐씩 모두 써보았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다. 지나놓고 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그건 한 자루에 달린 여섯 색 볼펜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다.

여섯 색 볼펜 중에  좋아하는(혹은 필요한) 특정 색만 사용하다가 그 색이 나오지 않으면
그 볼펜은 수명을 다하는 게 된다.
그처럼 어떤 가면은 너무 편해서 벗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뒤집어쓰고 있는 그 두꺼운 가면(거짓)을 벗으라고.
상처와 두려움을 직시하라고.
자신의 신神 앞에서도 꽁꽁 싸매고 있는 그 보따리를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개별적인 상처와 고독, 공포라는 코드에만 끼워맞추는 건 재미없지만
자신의  보따리를 한 번은 꼭 햇볕 아래 풀어헤쳐 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러는 데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당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회피자'의 자세라는 친절한 설명이다.

좋아하는 배우 미셀 파이퍼는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꽤나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죠. 자신의 마지막 카드는 절대 보여주지 말라고......

그 마지막 카드가 무엇일까 가끔 생각하는데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남의 패는 기웃거리지 않는다'는 정도의 원칙만 서 있을 뿐.

이 책은 인간들이 쥐고 있는 그 마지막 카드조차 가면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이지만 결혼 전의 몇 해 나는 '유쾌한 사람'을 연기했다.
어디까지나 선선하고 유쾌한 태도의 견지.
그랬더니 어느 때보다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고, 나 스스로 그런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연기이고 가면을 쓴 거란다.
'포지셔닝'을 '가면'이라고 끝까지 우기니 조금 마음 상하지만.

책을 읽으며 모처럼 자신을  들여다보니 가슴 뜨끔하면서도 좋았는데,
바라노니, 내 서랍만 정리하고 남의 서랍은 함부로 헝클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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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4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7-04-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이야기'를 읽고 가볍게 생각안하는
메피스도 댓글 남기고 갑니다..^^
(리뷰의 내용을 보고 중국영화 "변검"이 생각났습니다.)



 


2007-04-24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4-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만난 로드님의 글, 역시 좋군요.
'神 앞에서도 꽁꽁 싸매고 있는 그 보따리'

건우와 연우 2007-04-2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가면인지 알 수 없으면요?

진달래 2007-04-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주먹을 들이대셨다는 게 전 왜 이렇게 속이 다 시원한지요... ^^;;
마지막 구절도 정말 멋져요...

rainy 2007-04-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 치고 보관함 생각이 안나는 리뷰는 얼마만인지 헤헤..
요즘엔 이런 책 안 읽고 싶어요.
나름 있는 용 없는 용 다 써가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참이거든요.
'가면'이든 '포지셔닝'이든 그 것밖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할 때는
하는 수 없다고 뒤집어 써야 한다고 ..
제가 너무 까칠한가요? 로드무비님 글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데 ^^

에로이카 2007-04-25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면을 포지셔닝과 대비시키는 게 참 맞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가급적 일상을 단순하게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쓰고 다니는 가면이 여섯개 씩이나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전 그런 것 같아요... 가면 하나 벗었다고 그것이 맨 얼굴이란 보장도 없지 않을까요? ... 오랜만입니다.. ^^

로드무비 2007-04-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반갑습니다.
가면과 포지셔닝은 사실 다르지만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고 싶었어요.ㅎㅎ
하마터면 음산하고 칙칙한 리뷰가 나올 뻔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사례와 인물들이 떠오르는지.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의 가면이 하나라야 말이지요.
양파껍질처럼 켜켜이 쌓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ainy 님, 보관함 생각이 안 난다니 다행입니다.( '')
언젠가 '용을 쓰던' 페이퍼를 몇 편 계속 올렸던 생각이 나는군요.
맞아요, 아무리 용을 써봐도 다른 방법이 없을 땐
그 중 마음이 움직이는 쪽으로 해야지요.
하나도 안 까칠하고 봄비처럼 촉촉한 님입니다요.^^

카페인 님, 카테고리를 저는 평소에도 '서랍'으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왠지 제가 쓰기엔 너무 화려한 단어 같아서요.
확신 하에 남의 서랍 마음대로 헝클어뜨리는 사람들
정말 싫어요.
님도 그러시군요.^^

건우와 연우 님, 긍게요.
그 가면에 자신마저 깜짝 속아넘어간다니까요.
맨얼굴에 자신없으면 옅은 화장이라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가 가면인지, 생각하면 골치 아파서 이만.=3=3=3

L-SHIN 님, 神 앞에서도......
저도 아직 냄새나는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안 풀었어요.

메피스토 님, 저도 그 영화 재밌게 봤는데.
'의도적으로 가볍게~'는 킬킬거리며 읽어주세요.
그나마 요즘은 하고 싶은 말도 없네요.^^

연두색 커튼 님, 요즘 같은 날은 그림 액자가 따로 필요없어요.^^




아키타이프 2007-04-2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모두들 가면을 내던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순수만이 남을까? 아니면 벌거벗은 본능만이 남을까?
왜 가면을 쓰기 시작했지?
한두 사람도 아니고 거의 모두가....
놓여나지 못하는건지 놓치고 싶지 않는건지.
전 벗고 싶은 마음 보다는 그저 좀더 착한 가면을 쓰고 싶은 바람입니다.

로드무비 2007-04-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 님, 오, 노!
절대 그런 상황 원하지 않습니다.ㅎㅎ
모두 가면을 내던진다면 그런 아수라장이 없을 거예요.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훨씬 괜찮은 세상이 될랑가는 몰라도.


로드무비 2007-04-2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뜻 손이 님, 전 몇 달 전 알라딘에서 이 책 제목을 발견하고
망설임없이 바로 질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하고 잘 지내고 싶어서요.^^*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멋지기만 한 님입니다만......)

2007-04-30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05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1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적금 님, 무슨 일일까나.
그 작은 우환이 별것 아니기를......
<물장구 치는 금붕어>를 우연찮게 입수했어요.
혹 안 보셨으면 빌려드릴게요.
가지고 계실 듯하기도 하고.^^
 
서른의 당신에게 -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성찰
강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서른의 당신에게>를 읽었다.
제목에 '서른'이라고 콕 집어놓아서 책을 주문할 때 찔려서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꼭 서른인 거지?

아마도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충분히 어필되는 지성과 미모와
사회적인 신분과 인간적인 호감까지 모두 획득한 그를 전면에 내세워
구체적인 타깃을 정해놓고 책을 좀 팔아보겠다는 심산이리라.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참으로 옹색하고 촌스러운
마케팅 전략(전략이라는 이름이 아까운)이다.
그의 글은 그런 궁색한 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

1994년인가 한겨레에서 <허스토리>라는 여성지를 창간했을 때
나는 강금실 법무장관의 글이 실려 있다는 소문만 듣고도 책을 샀다.
그 글은 이 책에도 실려 있고 아마도 편집회의에서 제목을 뽑을 때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하는 구체적인 스토리보다
그의 마음자리가 궁금했다.
오래 전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고종석과 시인 황인숙과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그 때만 해도 아직 그리 친숙한 상태가 아니었나 본데 
고종석이 마이크를 잡은 채 혼자 소리로  "마음의 감옥"이라고 중얼거리는 데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무슨 구체적인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고.
글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시선은 깊고도 명료하다.

종로 2가 뒷골목 어느 허름한 주점에서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앞에 앉은 남자가 무슨 말 끝에 "마인드가 비슷한 사람끼리"라고 하는데
전후 아무 맥락 없이 그 '마인드'라는 단어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술자리에서조차 너무 심각하게 인생에 대해 떠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마인드'라는 말은 비스킷도 아니고 크래커처럼 가볍고 부서지기 쉬운
그 무엇으로 여겼건만, '마인드'라는 별 대수로울 것 없는 단어를 발설한 남자랑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인생은 그날의 사정에 따라 이렇게 사소한 일로 엮이고 결판이 나기도 한다.

얼마 전 황인숙의 산문집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스페인 여행기를 읽을 때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동행 친구 둘이 짐작되더니, 짐작은 사실로 맞아떨어지고,
이 정도면 돗자리를 펴야 하는 걸까.

--어쩌다 운이 좋아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텃세로 평생을 먹고 사는 듯하여
요즘도 문득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내 장례식에 틀고 싶은 음악' 중, 94쪽)

간단히 소개하면 그의 마음자리, 베이스 캠프는 이것.
겸손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안주도 술도 음악도 은은한 조명도  다 마음에 드는데
흠모하던 주인이 스페셜 안주 접시를 들고 합석한 술자리 같았다고 할까.
너무 경박한 소감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에서 그런 자리를 경험하기는 흔치 않다.

덧붙이자면 영화 <라디오 스타>에 대한 그의 감상은 읽어본 평 중 최고였다.
그 여관, 그 이부자리, 그 짜장면, 그 순대국에 대한 표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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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 대충 훑어보고 내려놓았는데 알라딘으로 사서 봐야겠네요. ^^

로드무비 2007-03-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그에 대해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추천할만합니다.
옮기고 싶은 글이 꽤 많아 도리어 안 옮겼습니다.
막무가내 리뷰.ㅎㅎ

비로그인 2007-03-0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자리"................마음의 자리. 마음의 자리. 마음의...자리.
어떻게 그런 멋진 단어를 끄집어 낼 수 있는거지...라고 감동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정말 머리만 달려 있는 생물인가.

2007-03-04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3-04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금실, 참 멋있는 사람 같아요.. 앞으로 망가지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쫌 있어요..

로드무비 2007-03-0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설마 그런 일이!ㅎㅎ
아주 야무진 사람이던데요?. 그러면서도 인간적이고.
중간에 한 장씩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모습까지 사진들이 실려 있어서
더 좋았답니다.

막무가내 리뷰에 한 표 님, 이 리뷰 급히 써서 올리고
밖에 나가 저녁을 먹고 왔는데요. 식당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제목도 너무 이상하게 잡은 것 같고 씰데없는 소릴 너무 많이 지껄인 것 같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 앞에 달려들어 제목을 고치고 어떤 부분을 삭제했답니다.
갈수록 주책이 되어가는 것 같아 서재활동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런 쪼가리 글에도 전전긍긍할 때가 있는데
님은 오죽하시겄습니까.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L- SHIN 님, '마음자리'가 그렇게 멋진 말인가요?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겠습니다. 헤헤~




얼음장수 2007-03-0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그런 책이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고민되네요.
딴 거 다 떠나서 저도 앞으론 술자리에서 '마인드'를 열심히 떠들어야 겠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7-03-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 님, 그냥 그런 책일 수도 있어요.
전 워낙 풍덩 빠질 준비를 하고 읽었거든요.
하긴 어느 님은 30대가 아니면 읽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하셨더군요.
'마인드'라.ㅎㅎ
별로 좋아하는 단어도 아닌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몰라요.( '')


에로이카 2007-03-0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딴 마음이 있었던 게지요.. ㅋㅋㅋㅋ

2007-03-0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4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피드림~ 2007-03-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첨 보는 순간 확 땡기긴 했는데,,, 사진 않았거든요.
로드무비님 서평 읽으니까 관심이 다시 생기네요.
님 글 읽으니까 정말 알라딘 다시 시작한 실감이 나는데요? ㅎㅎ

로드무비 2007-03-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nk 님, 하하, 모두 제목에 걸려서.
제목 때문에 책 안 샀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 그래도 언제부턴가 모습이 안 보여서 궁금했답니다.
punk님, <헌티드 하우스> 지금도 잘 있어요.^^

콧방귀 감 님, ㅎㅎ, 긍게요.
생각해 보세요. '마인드'는 그렇다 치고 누가 노래방에서 혼자 인상 쓰며
마음의 감옥이 어쩌고 중얼거렸다면 얼마나 재수 없을지.
어느 날 괜시리 어떤 단어가 마음에 와 박힐 때가 있지요.
부러운 커플이라니, 좋아서 코가 벌렁벌렁하네요.^^

술이 땡기잖아요 님, 아이고 그래 엊저녁 한잔하셨습니까?
어제 같은 날은 대보름날 귀밝이술 핑계대고 퍼마셔도 좋은데.
저도 새벽 한 시에 한잔 생각이 나더라고요.
잠깐 기다리세요. 님 방에 갈게요.^^

에로이카 님, 딴 마음이요?
저야 항시 딴마음으로 사는 인간인디.
마인드가 먼저인가 블루스가 먼저인가 리와인드 해보고 있습니다.
아무렴 어때요, 잘살면 되얐지.ㅋㅋ


얼음장수 2007-03-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김훈은 내가 인생을 좀 더 겪고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산문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더군요. 여튼 고민되는군요.ㅎㅎ

2007-03-0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3-0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 님, 윤대녕의 책을 읽으며 확인했지만 김훈이든 누구든
책도 작가도 다 만나지는 때가 따로 있더라고요.
그게 꼭 지성이나 연륜에 의한 결과는 아닌 것 같고요.ㅎㅎ
깅금실 씨의 이 책은 평소 그에게 호감이 있고 신뢰가 가면 읽으시고
아니면 뭐 굳이......
전 좋았어요.^^

2007-03-06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6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6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7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0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08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