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베스트극장 - 늪 [dts] - [할인행사]
김윤철 감독, 박지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드라마 <늪>을 DVD로 보고 나서 모처럼 영화 리뷰(비슷한 것)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진을 한 장 구해야지, 하는 생각에 모 영화잡지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창에 친 것이 '덫'.
드라마를 본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늪'을 '덫'으로 착각하다니 어이없어 하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늪'을 '덫'으로 바꾸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지 싶다.
재미있는 건, 검색 중 '덫'이라는 이름의 여성 의류 매장 사이트가 눈에 띈 것.

이틀 전 영화 <괴물>을 보았다.
올케는 그 시간 아이 둘을 데리고 애니메이션 <카>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가 무서웠니 어쨌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카>보다는 <괴물>을 그렇게 보고싶어 했던 딸아이가 한마디 끼어든다.

"엄마, 나는 피가 흐르고 팔다리가 잘리고 그런 장면은 안 무서운데, 어떤 사람이 도망 다니다가
경찰이나 괴물에게 잡히는 그 전의 순간이 제일 무서워!"

아이의 그 말이 나의 공포를 정확하게 꿰뚫는 것이라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드라마 <늪>은 영화 <괴물>보다 100배로 무서웠다.

사랑이 변하는 것,  '애욕'이 사랑을 넘어뜨리는 순간,
입술만 웃고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점점 변해가는 나,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나......

'복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가 무서웠다.
특히 윤서(박지영)를 언니라고 부르며 믿고 따르는 채원이 평소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갈아온 칼날.
그래서 입술은 웃으며 싸늘한 시선으로 내뱉는 말.
그리고 남편과 바람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것이 도리어 얼마나 인간적인 건지
보여주는 윤서의 침착함.

인간의 심연은 정말 끝이 없다.
무서워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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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7-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베스트극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던 드라마예요. 제법 작정하고 만들었던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근데, 주하는 어찌 그걸 벌써 알았을까요. 심지어 저는 나쁜놈이 잡히는 것도 싫어요. 늘 도망자 쪽에 감정 이입을 해버리거든요.

로드무비 2006-07-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저도 항상 쫓기는 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봐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박지영의 징징거리지 않고
단칼에 해치우는 식의 복수가 통쾌한 면이 있더군요.
아이가 자신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할 줄 아는 게 신기해요.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의 감을 잡고 있는 듯.
인생에 대해서.

달팽이 2006-07-2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을 나이로 또는 그들의 지위로 대하기보다는
우리와 대등한 하나의 영혼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거겠죠...
불교를 비롯한 자아의 윤회에서는 우리의 영적 동반자들이 이번생에선 부모로 다음 생에선 자녀로 그리고 배우자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두 모녀가 아주 특별한 인연이란 생각, 페이퍼 읽으면서 드는군요..

플레져 2006-07-2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주하의 그 느낌, 저도 그게 정말 정말 무섭거든요.
~하기 직전의 그 무엇! 오싹하죠.
잘 만든 드라마였어요. 박지영의 연기가 참 좋았어요. 그 섹시한 입술에 서린 공포라니.

로드무비 2006-07-2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박지영도 그렇고 그 하주희라는 배우도 그렇고,
연기 너무 리얼했어요. 적역이었고요.^^

로드무비 2006-07-2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아아, 엄마와 아이는, 부부는 그렇게 세상에서 만나는군요.
맞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인연이죠.
아이를 아이라고 무시하여 건성으로 대하면
귀신같이 알고 울먹울먹하더라고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기본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하루(春) 2006-07-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보고 싶어서 사신 거예요? 저는 본방송 보고, 나중에 상탄 후에 앙코르로 해주는 거 또 봤거든요. 무섭죠. 으음.. 주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맞아요.

kleinsusun 2006-07-2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랜만이예요^^ 전 <괴물>도 <늪>도 못봤어요.
근데....차라리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것이 "인간적"이란 말은 참...와닿네요.
그건 아마츄어들의 복수? ㅎㅎㅎ

2006-07-29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3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구대학생님, 반갑습니다.
표지 보며(안 샀고요!) 저자의 헤어스타일이 멋지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장함 오픈했습니다.
나중에 참고해 주세요.^^


수선님, 저도 언젠가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다이나믹한 싦을 살아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혼 전에요.
ㅎㅎ 지금은 그런 일이 생길까봐 무섭습니다.
전 아무 말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쪽이 좋아요.
복수든 뭐든. 그것이 프로?^^

FTA 반대 하루 님, 출시 소식 접하자마자 주문했어요.
마침 싸게 팔더군요.
두 번이나 보셨군요.^^


산사춘 2006-07-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력 좋은 주하양입니다. 역시 유전은 못속이는군요.

로드무비 2006-07-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유전 쪽으로는 뭐든 자신이 없어서
모든 것이 후천적인 노력과 학습의 결과이길 바랄 뿐이랍니다.
이 맴 아시남유?^^
 
천사의 아이들 - 할인행사
짐 셰리단 감독, 사만다 모튼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둔기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얼얼한 얼굴의 부부가 뒷좌석에 아이 둘을 싣고 캐나다 국경을 넘고 있다. 그 중 언니로 보이는 열 살 언저리의 소녀는 프랭키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세 가지 소원 중 하나를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무사히 미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이 영화는 어린 아들(프랭키)그리고 동생의 사고사 이후 도망치듯 아일랜드를 떠나 맨해튼이라는 도시의 빈민아파트에 새로이 둥지를 튼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빠 조니는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장을 전전하고 엄마 새라는 집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 취직한다. 오디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조니는 택시운전사로 일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놈의 도시에는 자칭 예술가 아닌 놈이 하나도 없다. 어쩌면 조니 자신도 재능은 없는데 자신은 예술을 해야 한다고 턱없이 믿고 있는 그런 인물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도시의 폭염을 견디지 못하여 얼마 안되는 저금을 은행에서 찾아 냉방 잘 되는 극장으로 피신한 가족에게 그날 오후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관람한 영화는 E.T였고 영화를 보고 나온 이 깜찍한 자매의 시선을 붙잡은 건 1달러를 내고 구멍에 공을 던져 맞추면 준다는 E.T 인형. 조니는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다가 1달러가 2달러로, 2달러가 4달러로, 4달러가 8달러로 자꾸 판돈이 올라가는 바람에 은행에서 찾은 100달러를 다 탕진하고, 마침 새라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 월세 봉투까지  손을 대는데 아이들의 눈과 심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큰 북이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소녀는 바로 그때 마음속으로 두 번째 소원을 말한다.

이 가족이 사는 아파트의 을씨년스런 풍경도 골때린다. 약물중독자 청년,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도 견딜 수 없는지 낡은 아파트가 떠나가라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질러대는 아래층 무명의 흑인 화가 마테오는 그 누구도 자신의 방에 들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할로윈 데이, 미국에 왔으니 사탕을 꼭 얻어 먹어야겠다고 야무지게 결심한 조니의 어린 두 딸이 지치지도 않고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문을 여는데 새라가 직접 만들어준 천사 복장의 아리엘과 가을의 요정 복장의 언니, 이 깜찍한 자매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서있었던 것.  이상하게 이 흑인남자를 보고 있자니 영화 <파니 핑크>의 아파트와 복도와 그 이웃집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마법사같고, 그의 방은 이상하게 마법의 공간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날  극장에서 돌아온 이 부부, 아이들을 아이스크림 가게로 내려보내고   짐작하건대 아이의 사고 이후 처음으로 동침을 하는데 어쩌자고 그 밤 덜컥 아이가 들어선다. 간신히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이 가족 도대체 앞으로 어쩌려고.

영화의 도입부, 맨해튼에서의 생활이 아직 익숙하기 전 더위를 견디다 견디다 못해 조니는 아이들을 위해 중고 에어컨을 하나 사는데 그 무거운 걸 이고 지고 끌고 온다. 작열하는 도로 위를 비틀거리며 걷는 땀이 번지는 조니의 등짝 티셔츠의 무늬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아아, 맞아. 사는 건 지금 조니의  등짝에 점점 검게 크게 물들어가는 땀의 무늬, 시금털털한 땀냄새 같은 거야!' 하는 자각.

그런데 이 가족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건 가난이 아니었던 것. 우리는 아무것도 미리 짐작하고 재단해서는 안된다. 아파트 주민들에게서 변태라고 손가락질 받던 마태오, 할로윈데이에 사탕이 없어서 동전을 모아놓은 저금통을 아이들 손에 쥐어 보냈던 마태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따뜻한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상처로 문을 닫아 걸었고 아무도 그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E.T 인형 하나를 사주기 위해 전재산을 걸던 조니와 새라 부부에게서 무모함이 아니라 희망을 본다. 사랑은 전부를 거는 것이다. '접근금지'라고 문짝에 써갈기고 가끔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며 자신을 유폐하던 마태오가 어느 할로윈데이에  자신을 활짝 열어제꼈던 것은 바로 자신이 마음속으로 기다리던 천사를 본 때문이 아닌지. 우리는 누군가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다.

<나의 왼발>과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연출했던 짐 셰리단은 '이 영화를 프랭키 셰리단에게 바칩니다' 라고 영화의 마지막에 밝혔다. 그에게는 또 무슨 기막힌 가족사가 있는 것일까? 색깔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도리스 되리 감독의 <파니 핑크>를 언뜻언뜻 떠올렸다. 비오는 날 오랜만에 엄마아빠가 정사를 치르는 동안 아이스크림 가게로 쫓겨나 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천사같은 두 소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즐겁고 흡족한 영화였다.

소녀의  마지막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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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3-1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울컥했어요. 아, 뭐예요, 미워!

로드무비 2005-03-1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왜 울컥하셨나요?^^

날개 2005-03-1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소원이 뭐였어요? +.+ 글구, ET인형은 결국 딴거예요?

urblue 2005-03-1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쭉 읽으면서 이 영화 무지 보고싶어졌는데, 감독이름 보고 좀 멈칫하네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제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의 영화라... 어쨌거나 추천!

로드무비 2005-03-1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스포일러를 피하느라 중요한 줄거리들을 비껴갔어요.
이 영화 꼭 보세요.^^

로드무비 2005-03-1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저도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별로였어요.
그런데 <나의 왼발>은 괜찮지 않았나요?^^

michelle 2005-03-1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영화 정말 보고 싶어졌어요.

하루(春) 2005-03-1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버지의 이름으로 감독.. 역시 기억력이 죽지 않았군요. ^^;;; 이 DVD 사셨나요?

하루(春) 2005-03-1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그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는 다 보기로 맘 먹은 적이 있었죠. 하지만 아직도 '라스트 모히컨'은 못 보고 있네요. 줄거리를 다 쓰신 게 아니라면, 다시 읽어봐야지.

로드무비 2005-03-1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나의 왼발'도 그의 연기 덕분에 살아난 영화였어요.
그리고 이 작품 비디오로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별님, 예. 뭔지 아주 흡족하지는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설명은 못하겠지만......그래도 좋은 영화였어요.^^
michelle님, 그게 제가 줄거리 요약을 좀 잘해요.ㅎㅎ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저는 무척 마음에 들었답니다.
두 소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으니......^^

플레져 2005-03-1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요약 잘 하셔서 부러워요. 저두 보고 싶어졌어요. 추천때려요.

2005-03-19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3-19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줄거리 요약 같은 것 대신 님은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글쓰기를 하시잖습네까.
아무튼 추천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속삭이신 님, 고마워요. 제가 잠시 착각했네요.^^

2005-03-21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31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07-3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보는게 아니라 단편소설 읽는 것 같아요. 무비님표 소설은 언제 나와요?

로드무비 2006-07-3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지금 보니 스포일러가 심하군요.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는데 보고 싶으시다면 빌려드립지요.^^
 
폴락 A.E
에이미 메디건 외 출연 / 미디어 체인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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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해리스 감독,  주연의 영화 <폴락>(2000년 제작)을 비디오로 보았다. 1940년대 미국 미술이 유럽을 제치고 주도권을 잡도록 한 주요인물 중의 한 명인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1912~1956)의 예술세계와 사랑을 다룬 영화였다.

'사랑의 고통은 그 고통마저도 감미롭다'는 말이 있지만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 대신 '창작'이라는 말을 대입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문학이니 음악이니 미술이니 등등 한 장르의 예술을 꿰차고 활동하는 사람이 호소하는 창작의 고통은 부럽기 짝이 없는 것이니까.

그리니치 빌리지의 낡은 아파트, 만삭의 형수는 주정뱅이 시동생을 쫓아내지 못해 아침부터 남편을 들들 볶고 아침 식탁에서 커피 한잔 얻어마시지 못하는 무명화가 잭슨 폴락(에드 해리스 분). 예술가들의 무명 시절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보아도 감동적이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 그 한 가지 빼고는 대부분 철저하게 무능하고 내성적으로 묘사되고, 또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구차하고 고독하게 사는 모습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어느 날, 한 동네 사는 여성화가 리 크레이즈너(마샤 게이 하든 분)가 그를 찾아온다. 소문을 듣고 그림을 구경하러. 그녀는 이 내성적인 말라깽이 남자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다. 그에게 알콜 문제가 있다는 것도 가족의 노골적인 냉대도 그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귀찮은 혹을 떼듯이 그를 남겨두고 코네티컷의 군수품 공장에 취직이 되어 형네 식구가 떠나버리고 폴록은 그녀의 아파트로 기어들어간다.

'어디에 심취할까?' '내가 숭배할 짐승은?' 그녀가 자신의 집 보드에 휘갈겨 써놓은 랭보의 싯귀대로 그녀는 자신의 그림은 내팽개치고 폴록의 손에 붓을 잡게 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페기 구겐하임과 연결이 되어 전시회를 열고 그녀의 주문을 받아 초대작 벽화를 제작하는 잭슨 폴록.  무명의 가난한 화가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페기 구겐하임은 이 영화에서 신경질적이고 섹스나 밝히는 좀 우스꽝스러운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그 점이 도리어 재미있다.


페기 구겐하임

잭슨 폴록은 윌렘 드 쿠닝 등의 화가들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그건 필요에 의한 사교행위에 불과하다. 술만 취하면 "넌 가짜야!" 라는 말이나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을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다 진탕 취하여 거지꼴로 거리에 누워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돌아와 리의 집 현관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는 그 몰골과 그 냄새를 말없이 안아준다.

결국 그들은 뉴욕을 떠나 시골 폐가를 빌려 정착한다. 어느 날, 화실로 쓰는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붓에 물감을 흠뻑 묻혀 바닥의 종이에 흩뿌리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폴록. 에드 해리스는 액션 페인팅 기술을 직접 익혀 폴록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듯한 사실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 리를 데리고 형네 집에 인사하러 갔다가 식탁에서 갑자기 베니굿맨을 크게 틀어놓고  발작하는 모습과 함께 대단히 박진감이 넘치는 부분이다.

리의 요청으로 결혼을 한 이 부부. 롱아일랜드 한적한 폐가를 개조한 집에서 잭슨 폴록의 초대형 대작들은 속속 탄생하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강경한 리의 입장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균열이 찾아오는데......

잭슨 폴록의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무의식적으로 쓱쓱 그려나가는 듯한 에드 해리스의 손끝에서 우리의 눈에 익숙한 그의 그림이 한 장 한 장 탄생하는 장면은 마술에 가깝다.

한가지 아쉬운 건 그의 고독과 절망이 너무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덜났어! 드 쿠닝은 그렇게 잘나가는데......" 하며 손님들 앞에서 술 퍼먹고 부활절의 칠면조 식탁을 뒤집어 엎는 장면에서도 그의 구체적인 절망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리가 그를 떠난 후 마을의 가슴 큰 처녀(제니퍼 코넬리 분)와 시시덕대는 생활을 하던 도중 어느 날 그는 마흔 몇 살에 술이 떡이 되어 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죽는다. 리는 그를 떠난 후 자신의 그림을 다시 찾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숭배했던 그 천재 화가를  떠나 정말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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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3-1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져요!

로드무비 2005-03-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고마워요.
님도 보면 좋아하실 영환데......^^

Phantomlady 2005-03-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록 사후 그림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뛸 때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화가의 미망인들을 보면 늘 그 생각부터 나요 ^^.

니르바나 2005-03-1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거야 말로 이 주일의 리뷰이군요.
저도 꼭 보겠습니다.

로드무비 2005-03-1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다른 페이퍼에 비해 댓글이 너무 없군요.^^;;;
스노드롭님, 화가의 미망인들은 좋겠죠?
살아선 생고생을 시키던 남편들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브리즈 2005-11-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봉했을 때 봤던 영화였어요, "폴록"은.
에드 해리스 팬인 데다가, 그가 잭슨 폴록 일대기를 영화화해 감독으로 나섰다는데, 안 볼 도리가 없었죠. ^^..
하지만 영화는 사실 실망이 컸지요. 예술가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겪는 갈등이 너무 진부하게 표현됐다고나 할까.(폴록의 내적 갈등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 와중에도 마르시아 게이 하든의 연기는 정말 좋았구요.
당시에 관객이 너무 적어서 썰렁하기까지 했던 극장이 생각나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산사춘 2006-07-30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의 삶을 그린 영화 좋아했는데(예술적 소양은 없지만 비교적 논픽션이고 대체로 주연배우들이 짱인지라) 이 영화는 나온 줄도 몰랐네요. 움, 멋진 무비님...

 
꽃피는 봄이 오면 - [할인행사]
류장하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때 순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뚱뚱한 아줌마였고 막걸리집을 하고 있었다. 연산동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그 막걸리집은 미닫이 문을 열면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린시절부터 그런 냄새가 참 좋았다. 허름한 가게 안에 조그만 살림집이 붙어 있었는데 내 친구 순희는 자신이 손으로 직접 그린 꼬질꼬질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놀았다. 별로 넉넉지도 않은 우리집에는 당시 피아노학원을 하는 이모가 강매하다시피 하여 사들인 중고 외제 피아노가 마루에 놓여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니 순희가 봤을 땐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이었을까.

순희가 여상으로 가면서 우리는 소식이 끊겼다. 10여 년 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여름휴가 때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남포동인가 시내 거리 한복판에서 순희와 마주쳤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손에 들고 있는 미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인근 도시 시향의 정식 단원이었다. 결혼을 하여 아이도 있다고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직, 학비를 마련하여 기어코 음악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도화지를 이어 붙여 만든 피아노 음반으로 피아노를 치던 막걸리집 소녀는 자신의 손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성취한 것이다. 그때 나는 직장이랍시고 서울에서 다니곤 있었지만 참으로 어리버리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노처녀였다. 순희의 반짝반짝 윤이 나는 모습과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참 초라하게 여겨졌다.

며칠 전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을 비디오로 빌려보았다. 내 친구 순희가 절로 생각나는 영화였다.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최민식이 주연이라는 점, 지난해 도계중학교 관악부의 다큐멘터리를 텔레비전 '인간극장'으로 재밌게 본 것, 배경이 삼척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탄광지대라는 것, 겨울에 찍었다는 것 등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세 명인가 네 명의 아역배우를 제외하곤 도계중 관악부 아이들이 실제로 출연했다. 그런데 누가 전문배우이고 누가 아닌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인 캐스팅(?)이 아닌가!

현우(최민식 역)는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도 떨어지고 오래도록 사귀던 여자친구 연희(김호정 역)에게서도 이별 통보를 받는다. 막막한 심정으로 손을 내밀어 잡은 것이  바로 탄광촌 중학교의 임시교사 자리. 때는 바야흐로 겨울. 깊은 산골의 겨울 풍경이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적막하게 펼쳐진다. 그곳에서 수연(장신영)이 운영하는 약국의 불빛만이 제법 따뜻하고 화사한데.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해산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 관악부. 현우는 특별히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 아이들과 어울려 전국대회를 준비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현우가 관악부원 아이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 지역 나이트클럽에 트럼펫주자로 취직, 번쩍이는 무대의상을 입고 무대에 선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술집에서 혼자 술마시다가 엄마(윤여정)에게 전화, "엄마,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가슴이 찡하다. 나도 가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

누구에게나 자신이 인생의 막장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는 쓸쓸하고 쓸쓸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그럴 때 이 영화를 본다고 현우를 만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담담하게 그냥 보여준다. 사람이 사는 골목과 지붕 밑의 고단한 삶과 서글픔을...... 하지만 연이약국 난로 위에 항상 끓고 있는 물주전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잠시 떠오르지 않을까.


탄광촌의 꽝꽝 얼어붙은 풍경이 좋아서 디카로 한번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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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2-1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순희님께 이 추천을 바칩니다. (아, 생뚱맞게... ^^)

깍두기 2004-12-1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문단에 추천을....

로드무비 2004-12-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순희에게 이 영광을 전할까요?(추천 고맙습니다^^)

깍두기님, 님도 가만 보면 좀 질펀한 구석이 있어요. 그죠?

추천 고마워요.^^

날개 2004-12-1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싶던 영화였는데...벌써 비디오로 나왔군요.. 빌려봐야겠습니다..^^*

마냐 2004-12-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졸면서 본 영화가 바로 저랬단 말이군요...쩝. 순희님의 이야기가 훨 감동적이네요...

로드무비 2004-12-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너무 재밌진 않지만 최민식의 팬이라면

꼭 봐야겠죠? 좀 추레하게 나와요.^^;;

마냐님, 그때 몹시 피곤하셨나 봅니다?^^

밥헬퍼 2004-12-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겨울에도 흐드러지게 꽃이 피니 다행입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덜 추웠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꽃피는 봄을 기다리면서.가져가서 보고 싶은데요.

로드무비 2004-12-1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밥헬퍼님. 올 겨울은 좀 덜 추웠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별 신통찮은 제 글 가져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icaru 2005-03-1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락 이야기를 읽으러 왔다가... 님의 이 감상평에 너무나 심취해 있다가 갑니다~
 
후아유 - [할인행사]
최호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비디오로 빌려왔다가 차일피일 미루다 보지 못하고 반납한 영화 <후아유>를 다시 빌려와서 보았다. 한마디로 안 봤으면 큰일날뻔했다. 오래전에 보고 기절할 뻔했던 <세 친구>만큼이나 좋았다. 더구나 주인공 이나영의 친구로 영화 <눈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조은지가, 조승우의 친구로는 <세 친구>의 삼겹 이장원이 나와 이 영화에 더 큰 재미와 리얼리티를 보태어 주었다.

서인주(이나영)는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 지금은 청각을 잃어 보청기에 의지한 채 63빌딩 수족관에서 일한다. 매일 30층까지 계단을 뛰어서 오르는데 체력 훈련도 몸매 관리도 아닌 것이 그냥 먹먹한 기분으로 무작정 뛰는 것 같은 표정(자기 자신을 반쯤 죽여놓은 것 같은)이다.

같은 건물의 게임 개발 사무실에서 먹고자고 하는 지형태(조승우)는 거대한 수족관 속을 인어공주 복장으로 유영하는 서인주를 만나고 돌아와서 그녀가 바로 자신이 만든 게임 '후아유'에 별이라는 닉네임으로 가끔 나타나는 그녀임을 알게 된다. '멜로'라는 닉네임으로 게임 속 가상공간에서 별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데......

무겁다면 무겁고 한없이 가라앉을 수 있는 영화를 도리어 산뜻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건 전적으로 여주인공 이나영의 일견 맹한 듯 투명하기 짝이 없는 그 페이스(이건 꼭 영어로 써줘야 할 것 같은 기분)와 구멍 뻥뻥 뚫린 그물 사이로 새어나가는 듯한 그 묘한 말투에 기인하는 바 크다.

조승우는 또 어떤가. 게임 개발하는 젊은이답게 영악하고 현실적인 요즘 젊은이의 얼굴 속에 적당한 피로와 허무가 언뜻언뜻 보여 그게 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친근한 매력을 풍긴다. 한마디로 현실 속에 살아있는 캐릭터의 완성이다. 회의 도중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투덜대자 그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월급에 목매지 말고 자신이 만드는 상품의 가치에 목을 매라구!"

'후아유'라는 영화 속 게임 같은 가상공간이 있다면 나도 가끔 그곳에 가서 노닐고 싶다. 그곳에서 별이와 멜로가 나누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괜찮을까? 조심해 친구, 인생은 사고야.(별)

--여어, 투명인간 친구. 언제나 네 옆에는 내가 있어. (멜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별이는 점점 게임 속 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별이가 꿈에도 그리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호수라는 티티카카호수를 말이 떨어지자 말자 척 대령해 주고 모든 인생의 문제는 앞으로 그가 다  해결해 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투명하고 싶은데 현실 속에선 입을 꽉 다물고 도망만 가게 되는 그녀로서는 멜로의 등장이 꿈만 같고 반갑다.

그런데 가끔 꼬질꼬질한 몰골로 냄새를 풍기며 짠하고 엘리베이터 앞 같은데서 마주치는 지형태라는 남자는 별이의 꿈에 초를 친다. "모니터 뒤에 숨어서 만나는 친구들 다 변태야!" 하면서......형태는 별이가 목을 매는 멜로에게(그게 바로 자신인데)  맹렬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또 스스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언제 어떻게 그녀에게 자신이 바로 그 투명인간 친구라고, 멜로라고 고백해야 하는지......고백하는 순간 그녀를 잃게 되는 건 아닌지......

멜로가 별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라이브 스피커 켜!" 라고 명령하고 기타를 가져와 고래고래 노래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제일 통쾌하고 가슴 설레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 음악 선곡도 참 좋다.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는 평소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인데 겨울밤 거리에서 달리는 청춘의 백뮤직으로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댈 만난 후로 난 새 사람이 됐어요......" 조승우가 고래고래 직접 부르는 그 노래도 감미롭기 짝이 없다.

조승우가 이나영에게 자신이 멜로임을 밝히며 고백하는 대사도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않아서 가슴에 와 꽂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해봤어. 그게 너야. (너는 자꾸 숨고 도망가지만) 넌 멋져. 최고로 멋진 친구야!"

게임방에서 진을 치고 아무 생각없이 개구장이 같은 모습으로 건들건들 살아가는 듯 보이는 청춘이라도 가슴속엔 저 혼자 아는 상처와 절망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감을 잃는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이제 모니터 앞으로 나와 진짜 사랑을 한다. 지지고볶고 때로 냄새나는 그 사랑을. 입김이 모락모락 나는 겨울 거리의 건널목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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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9-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승우의 저 고래고래 노래부르는 장면은 정말이지 압권이죠. 그 장면에서 말예요, 노래를 못 해도 전혀 상관없는 장면인데 노래를 너무 잘해버렸죠.. 어찌나 잘 부르던지, 감동감동..^^


2004-09-24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그죠?
조경수 아들이라더니 정말 노래 잘하던데요.
이 영화 음악 선곡 참 잘했어요.^^

로드무비 2004-09-2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까지......매번......^^;;;

urblue 2004-09-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실 케이블 TV로 왔다갔다하면서 보다 말다 했거든요. 조승우의 매력도 영화의 매력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네요. 님의 리뷰가 더 매력적이네요. 안그래도 조승우에게 푹 빠져서 이 영화 다시 보려고 했는데. 추천!

선인장 2004-09-2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형태, 나의 이상형... 클래식에서처럼 눈 먼 사랑을 하지도 않고, 와니와 준하 속에 나오는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도 아니고,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깐죽거리고, 적당히 느글대는, 그 녀석...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이 영화를 보고, 완전히 조승우에게 꽂혔더랬죠. 그리고 장국영이 죽던 날, 일 년 만에 재상영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더랬죠. 지금도 가끔 우울한 날이면, 전 이 영화를 봐요. 63빌딩 아찔한 그 높이를 실감하면서요....

로드무비 2004-09-24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저는 겨울 거리에 두꺼운 스웨터 입고 나오는 풍경이 그렇게 좋아요.
조승우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이 영화 보고 눈을 크게 떴다오.^^
선인장님, 맞아요. 적당히 지저분하고 깐죽거리고 느글대는 역할이었죠.
이거 테이프 하나 사야겠다 생각했어요. 저도.
가끔 조승우 노래 듣게......^^

바람구두 2004-09-2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한 번 봐야겠네요. 로드무비님의 취향을 확인해보는 차원에서라도...
어케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로드무비님 서재에 오면 제일 즐거운 일들 가운데 하나가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다는 거죠. 물론, 로드무비님을 포함해서....

바람구두 2004-09-2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 흐흐.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생각지 않았던 영화인데 또 기억해둡니다. ^^
그런데 딴소리 좀 하면요, 어젯밤 로드무비님 말씀하시던 아일랜드를 그렇게도 봐야지 하다가 드디어 조금 봤거든요. 이나영도 이나영이지만 김민정의 대사는 왜 그렇게 떨리게 다가올까요? 또 이나영의 눈에서 눈물이 어슷하게 흐르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얼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김민정의 충혈된 눈에서 검은 눈물이 떨어지는 것도 감동이더군요. 웬 삼천포인지... ^^ 아무튼 조만간 조승우의 하류인생도 보려고 찜해두고 있는 터였는데 후아유까지... 스케줄이 꽉 찼습니다. 하하.

2004-09-24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량 2004-09-25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극장 개봉 다 지나고 누군가가 추천해서 뒤늦게 보게 되었던 영화였어요..
좋았어요..많이. ^^ (더 멋지게 말하지는 못하나..ㅜ.ㅡ)

로드무비 2004-09-2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제 취향이 궁금하세요?
이미 밑천을 다 드러낸 걸로 알고 있는데......
님이 며칠 안 나오셔서 저도 궁금했어요.
추천 고맙습니다.^^
이 안님, 저도 김민정 대사가 좋아요.
그 되라진 얼굴 뒤의 고독도......^^
불량유전자님, 그렇죠,뭐 좋다는 말밖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어요?
속삭여주신 님,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DJ뽀스 2005-05-1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보고 극장문을 나설때 여자셋이서 얼마나 열광발광을 했던지..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 한마디로 조승우 열혈팬이 되어버렸죠. 마지막 부분에 좀 허전하긴 했지만 참 좋았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