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대학 다닐 때 '맥박'이라는 노래패에서 활동했다.
오오래 전, 초대를 받고 공연을 보러 갔더니, 강당 무대에서 솔로로
'장작불'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로 시작하는 백무산의 시로 만든 노래.
(언젠가 페이퍼에 쓴 적 있다.)
썩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 있다. 심지어 '미쓰 고'를 부르더라도.
지난주 '오프앤프리'영화제 마지막 날, 차학경의 비디오아트 <망명자>를 보러
신촌의 한 대학을 찾았는데(동생의 모교) 그때 생각이 났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학번을 묻더니, 술병을 가지고 와 한잔 가득 술을 따라주었다.
오고가는 술잔 속에, 웃음 속에 여름밤이 깊어 갔다.

그 여자의 사께집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동안 30미터 남짓 떨어진 길 모퉁이에
새로운 사께집이 생겼다.
술집은 어디까지나 좀 어둑시구리하고 퀘퀘하고 술집다워야 하는데
젊은층을 겨냥한 것인지 그곳은 너무 밝고 화사했다.
인테리어뿐 아니라 안주도 신통치 않았다.
어묵 국물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살짝 흉내만 낸 듯한 맛이었다.
딸아이가 고개를 내저을 정도니 괜시리 내 가슴이 철렁, 젊은 주인이 안됐다 싶었다.
어묵국물을 얻어 돌아오던 밤, 살짝 가게 안을 들여다봤더니 주인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 오후, 반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길에서 사께집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 팔짱부터 꼈다.
털이 달린 앙징맞은 조끼에 미니스커트에 레깅스 차림, 미장원에서 막 손질을 마친 듯한 머리.
저녁 장사에 쓸 채소를 손질하다 너무 답답해서 가게를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양파 냄샌지 파 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았다.
하마터면 내 입에서는 "우리 어디 가서 한잔힐까요?"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그리고 '임시휴업' 쪽지를 붙이기 얼마 전에는 한 할머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정하게 얘기하며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아는 할머니였다.
우리 동네에는 요일별로 단지별로 임시장터가 서는데, 그 장터의 길목에서 채소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호호백발 단발이 인상적인데 어쩌다 할머니의 채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강매를 일삼아 지켜보는 시장 상인들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나도 한 번 멋모르고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가 원치 않는 채소까지
전부 싸짊어지고 와야 했다.
'내 사전에 거스름돈이란 없다'가 아마 할머니의 인생 모토인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와는 눈도 마주치기 싫은데 그 여자는 세상에,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딸처럼 손녀처럼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니는 어떻노? 채소를 일부러 팔아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남은 채소까지 억지로 다 떠안기면
그래도 그 할머니를 계속 찾을 꺼가?"
"어림도 없다. 나도 그런 사람은 못 참는다."
"그런데 이상하제? 와 나는 그 여자를 보면서 밑도 끝도 없이 '졌다!'하는 생각이 들었으까?"
술김에 나는 마음의 한 자락을 털어놓았다.
최근 부쩍 심해진 무력감과 열패감, 그리고 비애......
(일례로 포천 고모가 농사 지은 고춧가루를 좀 팔아달라고 하는데 한 근도 못 팔았다.
아예 입도 못 뗐다. 고모에게 미안해서 된장고추장을 몇 통 사서 쟁여두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무능한 인간인지 몰랐다.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알고 난 뒤의 충격이라니!)

그런데 그녀는 어떤가.
두 달 가까이나 가게를 비웠는데도 바글바글 그녀를 찾는 손님들은
맛있고 푸짐한 안주에. 화사하고 싹싹한 외모에만 반한 것이 아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외면하는 노점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는
따뜻함과 천진함에 매료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께집이 잠시 문을 닫은 동안 게릴라처럼 출몰하여 재미를 봤던 새로운 사께집 주인은 
어젯밤에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어제 기말고사를 친 딸아이가 며칠 전 얻어먹은 어묵국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그 집에 가자고 해 가서 한잔했거든요.)
돌아오면서 보니 두어 테이블 손님이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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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늦가을 초겨울이 되니 어김없이 술병이 도졌다.
며칠 전 남편이 늦게 돌아오는 날은 초저녁부터 막걸리를 한 병 마시고 취해버렸다.
부산의 도서관 친구와 횡설수설 전화하다 밥을 한솥 태워먹었다.
온 집안에 밥 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당분간은 사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압력밥솥의
시커먼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다음날은 또 퇴근하는 남동생에게 술을 사오라고 해 저녁 먹으며 한잔했다.
우리 동네 사께집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들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인데 이 집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손님들로 바글바글하다.
손님들 각자가 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여인.
최근에는 일본에서 유학중인 딸아이가 돌아와서 한달쯤 가게를 쉬어야겠다고 하더니
'내부수리중' 쪽지를 떠억하니 붙여놓고 두어 달 가까이 쉬었다.
이제 문을 열었겠지 하고 갔다가 두 번째 허탕을 쳤을 때는 짜증이 좀 났다.
며칠 전 딸아이가 하도 졸라 야밤에 어묵을 먹으러 갔더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세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국가대표 선수를 환영하듯
그녀의 단골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조그만 가게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것.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녀는  2리터는 족히 되는 테이크아웃 박스에
주방에서 설설 끓고 있는 어묵 국물을 아낌없이 퍼담아 주었다.
물론 공짜로......

예의 그 어묵 국물을 한 숟가락 가득 떠먹으며 물었다.
"그 여자 아무리 봐도 대단하지 않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여름 어느 날의 일이다.
동생네 가족과 저녁을 먹고 나서 2치로 사께집에 갔더니 여자는 없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기타를 들고 가게 밖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청년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아들인데 엄마가 생일을 맞아
생일선물로 가게를 하루 봐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친구들과 놀러가고 없고, 아들은 '이때다 !'하고
노래패 동아리 친구들을 부른 것이다.
청년들이 돌아가며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니 노는 거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내 남동생이 가만 있을 리 있나.
우리 가족은 가게 바깥의 차들이 엉금엉금 달리는 길 옆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는데
동네의 먹자골목이 즉석무대가 되었다.
한여름밤, 동생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기타 연주가 온 골목에 울려퍼졌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피 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훤히 비치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사께집 주인 아들과 그 친구들이 손바닥이 터져나가도록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나도 주하도 동주도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쳤다.
동생은 앵콜을 받아 노래를 두 곡인가 세 곡 연달아 불렀다.


 

 

너무 길어서 두 번에 나누어 쓸랍니다.
저녁준비 관계로 나머지는 심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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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0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일상이 축제란 말이 생각났어요. 정말 멋진 시간이었겠는데요.
손님 각자가 특별한 대접을 받게 만드는 그녀의 재주가 정말 탐나는데요^^

로드무비 2009-12-05 15:06   좋아요 0 | URL
눈물이 날 정도로 탐납니다.^^
그리고 그날 너무 좋아서 짧은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어찌저찌 지금에야 쓰네요.

2009-12-04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4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12-0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께집이 어딘지 어여 부시기 바랍니다....

로드무비 2009-12-05 15:12   좋아요 0 | URL
메피님꺼정 오시면 큰일납니다.=3=3=3

twoshot 2009-12-0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참에 술일기를 연재하심이...

로드무비 2009-12-05 15:13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ㅎㅎ

에로이카 2009-12-0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사는 정말 그렇게 해야 되는 거 같아요... 아.. 2부 빨리 올려주세요.. 근데 제목과 내용이 아직 연결이 안 되어서 2부에서 어떤 반전이 생길지.. 기대됩니다.

로드무비 2009-12-05 15:17   좋아요 0 | URL
어제 오후 씨네21 읽는데 어느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이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드렁큰 타이거의 저 노래 가사 아시죠?
요즘 심사가 좀 사나워서 저렇게 살짝 바꿔보았습니다요.

반전은, 그, 글쎄요.=3=3=3


paviana 2009-12-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심야인데 왜 안 오시는거에요..

로드무비 2009-12-05 15:18   좋아요 0 | URL
제 심야는 아직 멀었는디...
파비아나님 댓글 쓰신 시간을 보고.^^
 

화 - 마다가스카2
딸아이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 둘을 데리고 가까운 극장에 갔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버스로 30분 거리.
날씨가 몹시 추워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춥기도 하고 오전 시간대여서 요금을 천 원씩이나 더 지불해가며 콜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택시는 15분 후에야 도착했다.
아이들과 미리 나가서 벌벌 떨며 서 있는데
차는 보이지 않고 한 초로의 노인이 엉뚱한 동 앞에서 내게 고함을 질렀다.
택시 불렀냐고.

이제 오시면 어떡하냐고 영화 시간 늦겠다고 한마디 했다.
60대 중반의 기사님은 노련하게 영화 이야기로 내 입을 막았다.
살면서 이때까지 본 영화가 총 서너 개.
용팔이 어쩌고 하는 제목의 영화 두세 편과, 
<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제목까지 기억한다는 것이다.



수 - 후배와의 점심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 약속대로  후배가 딸아이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1990년대 초,
내 발로 찾아든 한 직장인 단체에서 그녀를 만났다.
신입회원 교육을 마친 어느 날 강당에 삥 둘러앉아 막걸리를 앞에 놓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쩐지 세련이 철철 흘러넘치더라니,
외국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간단한 자기 소개 후 열창하는 노래가 '가슴이 빠개지도록~'으로 시작하는
<의연한 산하>였다.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머리끝까지 발끝까지 거부한다며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며
굳게 서 있으라 의연한 산하
쉬지 않고 흘러라 강물아

내가 불렀던 노래는 <서울 야곡>.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내 노래가 좋았다고 했고
나는 반대로 그녀의 씩씩한 노래가 좋았다.
그렇게 만나온 지 어언 20년.

내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소고기불고기와 찐양배추 막장 쌈,
달걀물을 씌워 부친 새우버섯전이었고
이번주 중  꽤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후배는 천만다행히 맛있게 접시들을 비웠다.


주말 - 송어낚시
주말에는 1박 2일로 강원도 '눈꽃축제'에 갔다.
'송어축제'에서 잡아들인 송어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오대산 월정사나 상원사에 오른 후,
밤에는 한우를 구워 먹는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송어낚시에서부터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네, 다섯 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더니
세상에나, 기껏 해봐야 학교 교실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얼음판 위에
오륙십 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각기 자기 앞의 조그만 구멍을 들여다보며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송어축제'라는 플랭카드가 없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였다.
어른 1인 입장료는 1만 원,가짜 플라스틱 고기 미끼가 달린 허술한 낚싯대가 3천 원.
조그만 얼음구멍을 하나 차지하고 추위에 떨며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는 동안
송어를 한 마리라도 잡은 사람은 달랑 세 명이었다.
우리 일행은 전부 맨손.

이게 무슨 축제냐고 출입증을 반납하며 투덜거렸더니 주최측에서는
간이천막에서 송어 세 마리를 얻어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선심쓰듯 주었다.
그런데 송어 한 마리를 굽거나 회 뜨는 데 드는 비용이 한 마리당 5천 원.
우리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몇 병이나 깠다.
새벽부터 일어나 눈곱을 떼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 그렇게 무안할 수 없었다.

다음날은 눈꽃축제고 뭣이고 간에 폭설 때문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올라오는데
며칠 전에 만난 택시 기사분의 '내 인생 베스트 무비' 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저 강은 알고 있다>.

얼음판에게, 또 강에게 묻고 싶다.
그날, 그 얼음장 밑에서 송어들이 몇 마리나 헤엄치고 있었는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무슨무슨 축제들이며 거창한 일들이 
내 눈에는  왜 모두 야바위판으로만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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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1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슬처럼(러러러엄)~~ 꺼진~~ 꿈 속에는(느느느는)~~ 잊지못할 그대 눈동자(자자자자자)~~
괄호 안의 추임새는 현인선생풍입니다. 저도 이 노래 댑따 좋아한다죠.

로드무비 2009-01-1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저는 이은하풍으로.ㅎㅎ
(메피스토 님, 오랜만에 불러보니 가사 댑따 좋지요?)





2009-01-20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01-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의연한 산하 - 지금도 가끔 듣는데 들을때마다 눈물이 나요. ㅎㅎ(서울야곡은 앞부분 밖에 모름..ㅎㅎ) 요즘 눈이 엄청 쌓인 오대산 월정사 가고 싶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아이들 데리고 버스 타고 가자니 그 시간과 고생이 장난 아니고, 차끌고 가자니 눈길운전 도저히 자신없고..(이놈의 동네는 체인도 안팔아요.ㅠ.ㅠ)
근데 서울에서는 콜 부르면 천원을 더줘야 하나요? 워매 징한거.... ㅠ.ㅠ

로드무비 2009-01-20 11:2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신기한 게 노래로 맺어지는 관계도 있더라니까요.ㅎㅎ

그나저나 그 놈의 체인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차가 막혀서 국도로 달렸는데요
기껏 사서 끼운 체인을 풀었다 다시 끼웠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겨울산 겨울 마을 정경은 참 좋았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참 좋지요?
봄방학 때 아이들 데리고 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 서울 시민 아닙니다요.^^

2009-01-20 0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1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4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7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7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3주 전, 영화를 보고 나서 들른 가까운 마트에서 월계수잎을 보았다.
싼 가격과 비닐봉지에 든 두세 주먹 정도의 분량이 좋아 보여
어디에 소용될지도 모르고 무조건 집어들었다.

며칠 후 또 조조영화를 보러 갔던 날
그 마트에 들러 수육용 돼지고기 한 덩이를 사왔다.
정육 코너 진열장의 이런 팻말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월계수잎과 커피와 된장을 넣고 30분 끓이다가...(맛있는 수육 삶기)

그날 저녁, 메모해온 레시피대로 모든 재료를 넣고 심혈을 기울였건만
내가 삶은 돼지 수육은 어딘가 어색했다. 흉내만 낸 것 같다고 할까.
비계는 물컹거렸고 고기는 질깃질깃했다.
냄새도 수상하고 한마디로 날탕이었다.

'돼지고기 수육을 직접 삶는 것'내게는 진정한 주부라고 할까
성숙한 어른의 로망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삶은 돼지고기를 싫어했다.
그게 이유다.)

지지난 주 일요일, 김장을 도우러 형님댁에 갔다.
새벽까지 70포기의 배추를 절여놓은 형님은
큰 들통 가득 고춧가루와 젓갈과 마늘 등 온갖 것을 퍼붓고
쓱쓱 휘젓더니 우리가 버무리는 동안 상을 차리겠다며
잠시 자리를 뜨셨다.

정확하게 45분 후 우럭매운탕 냄비를 한가운데 두고
김이 술술 오르는 돼지고기 수육과 막 절인 겉절이와
맛있게 버무린 굴과 무채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식구들을 불렀다.
그 수육은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하고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났다.
그 며칠 전 내가 만든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너 근의 돼지고기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형님은 나보다 열두 살 정도 많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형님을 만났을 때 형님은 지금 내 나이였다.
그때도 형님은 김장 몇십 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월계수 따위는 넣지 않고 돼지고기를 몇 근씩 삶았다.

어쩌다 사둔 월계수잎이 생각나서 돼지고기 한 덩이를 사고,
커피와 생강, 된장과 술, 좋다는 건 모두 넣고 아무리 끓여봐라.
그런 맛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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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2-0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계수잎은 생선 구울 때도 좋아요.

로드무비 2008-12-04 13:55   좋아요 0 | URL
생선의 몸통에 앞뒤로 잎을 붙여서 구우면 됩니까?^^

2008-12-04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4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8-12-0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군침이 도네요. 저흰 요즘 집에서 보내준 고기와(저희집이 정육점이어서)아내네 집에서 보낸 김장으로 행복한 밥상을 차리고 있어요. 평소에는 콘프레이크가 주식^^저희집은 시간이 지나도 어른스러워질 일이 없을 듯해요

로드무비 2008-12-04 17:38   좋아요 0 | URL
산책 님 저도 그 무렵에 연사흘 삶은 돼지고기를 먹었답니다.
수육도 버스처럼 한꺼번에 몰려오더군요.
그나저나 콘프레이크가 주식이라니...
흐뭇합니다.(우리 집이 좀 나은 것 같아서.)^^


瑚璉 2008-12-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월계수 잎은 별로라능... (그냥 청주랑 우유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로드무비 2008-12-04 17:34   좋아요 0 | URL
월계수잎 하니까 뭔가 좀 있어 보이더라고요.=3=3
그런데 청주 대신 소주는 안 되나요?^^

Arch 2008-12-05 09:25   좋아요 0 | URL
소주도 되긴 하지만 청주가 향이 좋죠^^ 저도 어른이 되려나봐요. 오야붕^^

로드무비 2008-12-06 00:44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듣고 보니 그렇구만요.
뜨거운 수육에 청주향이 잘 어울립니다.
요리용 맛술이니만큼 큰 '됫병'으로 사볼까요? (흐뭇)

치니 2008-12-0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 저도 저거 수퍼에서 보고 아무 계획도 없음서 사둬야 될 것 같았는데.
로드무비님 글을 보니 자신 없어서 안 사게 될 것 같...ㅋㅋ

로드무비 2008-12-06 00:12   좋아요 0 | URL
치니 님, 님도 망설이셨군요.
그런데 찬장의 월계수잎을 보면 이상하게 흐뭇해요.
푸드 코디네이터라도 된 것 같은 기분.=3
천 원어치 사보시는 것도.^^

BRINY 2008-12-0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토소스에 넣어 끓이고 삷은 스파게티면에 부으셔도 될 거 같아요~~

로드무비 2008-12-06 00:08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스파게티도 아직 해본 적이 없습니다.
별로 즐기질 않다보니.
매콤한 해물스파게티는 먹을만하던데
언제 한 번 브리니 님 말씀대로 해볼까요?^^

2008-12-05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6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8-12-0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게 읽었어요. :)

로드무비 2008-12-06 00:00   좋아요 0 | URL
딸기 님, 고맙심더.^^

2008-12-19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 일찍 깨어 최일남의 소설집 <아주 느린 시간>을 읽고 있는데
마루의 텔레비전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바라만 봐도 그냥 괜히 좋은 그런 사랑이 나는 좋아

읽던 책을 손에 들고 나는 홀린 듯이 밖으로 나왔다.
가수 이적을 닮은 신인가수가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을 열창하고 있었다.

'왕중왕'을 가리는 도전가요 프로그램.
이적을 닮은 신인가수는 2 A.M.의 멤버란다.
'왕중왕' 특집답게 노래열전을 벌이는 가수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1980년대 노래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사회자가 물었더니
해사한 얼굴의 그 청년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곡이라고.

그들이 준결승에서 맞붙고 있는 상대는 이모뻘,
혹은 어머니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수라였는데
그녀는 올백으로 앞머리를 넘기고 궁둥이까지 닿는 긴 말총머리와
짝 달라붙는 검정색 로커의 복장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묻어버린 아픔>뿐만이 아니다.
도전자들이 부르는 한 곡 한 곡이 어찌나 가슴속을 파고드는지,
김양이 부르는 방실이의 <첫차>와 뮤지컬 가수 최정원이 부르는
<찬바람이 불면>도 좋았다.
김양과 짝을 이뤄 나온 송대관의 <낭만에 대하여>도 구수했다.
최정원의 끼와 실력은 단연 돋보였는데 정수라도 막상막하.
이효리의 노래 <Hey Mr. Big>을 멋지게 부르고 나자
최정원이 다가가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는데 보기좋았다.

-- 찬바람이 불며언 내가 떠난 줄 아아세요~

<찬바람이 불면>을 최정원이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질금질금 나왔다.
요 며칠 잠자리에서 읽고 있는 책이 최일남의 본격노년소설
<아주 느린 시간>이다.
소설 속 노인들의 심경과 상황들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쯤해서 갱년기를 받아들여야지,
콧물을 들이마시며 나는 그런 결심을 얼핏 한 것 같다.

심드렁한 열창
젊어서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열창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열창하는 사람들을 보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오금이 저린다.
노래방에서도 아주 심드렁하게 부르나마나한 노래를 부르는데
이광조의 나들이, 이상은의 언젠가는, 그리고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노래들이다.
다행히 수상한 나의 열창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나저나 흘러간 유행가는 힘이 세다.
재밌게 읽던 책을 덮게 하더니 사람을 마루로 불러낸다.
그리하여 아침밥도 미루고 이 시간에 이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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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8-11-3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와...정말 재밌었겠어요. 보았음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드네요

로드무비 2008-11-30 13:23   좋아요 0 | URL
트로트 가수 김양의 <노바디>도 멋졌답니다.^^

Arch 2008-11-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이 프로 보는데 오래된 노래 나오면 저도 좋던걸요. 내가 언제, 저 노래를 들었는가 싶어지다가도 금세 입에 착 달라붙어서 응얼거리게 되더라구요. 옛날 가요들을 7080으로 묶는건 낯뜨겁지만 옛날 가요라 일컬어지는 노래들에서 가을을 느낄때가 많아져요. 가사를 보면 무심하게 툭툭 간단하게 지어냈을 것 같은데 어느 한 순간 아, 싶어지는. 겨울도 아닌데 괜히 몸서리가 쳐지는. 그런 노래 중의 하나가 제겐 '세월이 가면'이랍니다. 이 무슨 일요일 낮부터의 긴 댓글인지^^

로드무비 2008-11-30 18:23   좋아요 0 | URL
한경애의 '세월이 가면'인가 최호섭의 노랜가,
갑자기 헷갈리네요.
심지어는 하춘화의 노래도 좋더라고요.
이 무슨 심리인가 싶어 의아하기도 합니다.^^

Arch 2008-11-30 21:19   좋아요 0 | URL
최호섭이요. 전 이분의 이 노래만 알고 있는데도 참 좋더라구요. 음... 로드무비님 살짝 귀 좀...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아니면 취향이 바뀌어서던가. 전 예전 노래 들으면볼이 발그레해지고, 민망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로드무비 2008-12-01 10:56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살짝 귀 좀.
저 하춘화 송대관 무지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꽤 괜찮더라고요.
맞아요. 나이 탓인 것 같아요.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듣고 싶네요.
인터넷 뒤져봐야겠어요.
어느 분이 올려 놓으셨을라나?!

waits 2008-12-0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출근해서 이 페이퍼를 읽고는 저도 모르게 '찬바람이 불면'을 죙일 흥얼거렸답니다.
일하다 중간에 담배 피러 나갈 때마다 어찌나 찬바람이 불던지 얼어죽는 줄...ㅎㅎ
12월이예요, 향수와 함께 시작되는.. 훈훈한 페이퍼,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12-01 10:52   좋아요 0 | URL
나어릴때 님, 이번주 춥다네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저도 어제 티셔츠 바람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요.^^

2008-12-01 0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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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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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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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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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12-0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광조의 나들이... 그거 쉬운 노래 아닌데..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이 땅에 흙냄새 나면 아무데라도 좋아라' 이제 가사도 잘 생각 안 나네요...

로드무비 2008-12-01 15:44   좋아요 0 | URL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정답게 얘기하리라.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니~~~

에로이카 님의 기억을 돕기 위해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고음불가의 제 목소리랑은 잘 맞습니다.ㅎㅎ

2008-12-19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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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9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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