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졸속 진행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는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는커녕 불법시위는 엄단할 것이라며
강경대처방안만 앵무새처럼 외고 있다. 그리고 오늘 실행에 옮겼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지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황우석 박사에 대해 보여준 끈질긴 기대와 미련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교육과 문화를 몽땅 미국에 내맡기는 꼴이나 다름없는 것을  
'지식기반 경제로의 전환'이라느니 뭐라느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그렇고
그가 평소 '지식' 혹은 '학벌' 쪽에 엄청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다.

오래 전 그에게 매료되었던 것이 가난한 농가 출신의 상고 졸업자로 독학으로
자신의 꿈(변호사)을 이루고, 거기다  뒤늦게 사회 현실에도 눈을 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균형감각과 용기와 실력을 갖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우리나라의 장래가 밝다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기뻐하며 축배를 들었다.

황우석 박사에 대해 그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지지와 신뢰를, 그를 사랑하여 어려운 형편에도
저금통에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그에게 전달했던 국민들에게 돌릴 수는 없을까?
나만 해도 그럴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던 때 은행으로 달려가 매달 얼마를 후원금으로
자동이체시켰다. 아까워라, 그 돈!

MBC PD수첩에 의해 모든 것이 황우석의 거짓말로 드러났을 때도 노 대통령은 
방송이 해도 너무한다며 이쯤해서 그만 덮어두자고 말했다.
자신이 점찍은 한 과학자를 무조건적으로 칭송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몇 년 동안 황우석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 
그리고 모든 우려가 사실로 밝혀졌을 때 우리 국민은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최고의 원인 제공자인 대통령은 그래놓고도 그 부분에 대해 아직 
한 마디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

사람에 대한 신뢰나 우직함인 줄 알았던 그의 덕목이 알고봤더니
겉으로 드러난 학벌이나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 그리고 똥고집으로 드러났다.
상고 졸업생으로 학벌이 판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이 그의 자부심이며
학생들을 골고루 보호하는 올바른 교육정책으로 자동 연결될 줄 알았더니
입만 열면 인재가 필요하다며 부자들이 바라마지 않는 교육정책을 획책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번 한미 FTA의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이란 부분도 그런 것과 맞닿아 있지 않나?

얼마 전 읽은, 다소 호감을 품고 있던 한 퇴직 노정치인의 책을 읽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느 정치인을 일러 서울대 출신이 아니어서 안된다는 말이 버젓이 나오질 않나,
우리 사회가 그 정도였구나.
꽤나 양식 있는 서민풍의 정치인인 줄 알았더니 그가 이럴진대, 하는 비탄이 절로!

내가 생각할 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것 같은 실수나 오판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고,
잃어버린 신뢰나 인기 그런 걸  좀 만회해 보려는 몸부림인지는 몰라도
엉뚱한 데 욕심을 부리며 그것이 확고한 소신임을 계속 내세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는 아무래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

이 태풍 속에 우비를  입고 모여 한미 FTA  중단을 외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과 의문을  몇 자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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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7-1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청와대가 로드무비님의 글을 본다면....
`대통령도 사람이다..!!' 라고 공식 성명을 발표할 껍니다..
어떠한 변명도 준비되어 있는 정치인들에겐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로드무비 2006-07-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렇게 총체적으로 계속 잘못하기도 참 어려운 일일 텐데.
어떤 의문이 갑자기 들어 페이퍼로 썼지만 마음 한구석엔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도 아직 조금 남아 있습니다.

sooninara 2006-07-1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개천에서 용 났다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죠?
맺힌게 많아서인지..고집이 센건지..이마에 한일자 주름이 안좋다고 들었는데.
로드무비님 글 읽으니 그럴수 있겠다 싶네요.

물만두 2006-07-1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생각은 하고 사는걸까???

로드무비 2006-07-1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미투!^^

수니나라님, 개천 쪽으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쩝.
아무튼 말썽꾸러기예요.
요즘은 인상조차 달라 보이네요.;;

날개 2006-07-1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생각든 지 오래됐어요,,,,ㅡ.ㅡ;;;

2006-07-10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7-1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대선 때 일편단심 초지일관 한나라당 편인 부모님 앞에서 침 튀겼던 거 생각하면 쪽팔려 죽겠어요. "그래 니가 주장하던 변화의 모색이라는 게 이런 거냐?" 하며 빈정대시거든요. 그런 말 들어도 할 말도 없구요. - -;;;

urblue 2006-07-1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꽃양배추님이랑 마찬가지입니다. -_-

로드무비 2006-07-1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그러셨구만요.
인상 좀 펴시라요.ㅎㅎ

저도 추천님, 땡큐!
우리 서로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 하나씩 몰래 주고받을까요?
전 100여 개쯤 있어요.ㅎㅎ

귀여우신 로드무비님 님, ㅎㅎ
을마만에 들어보는 기분좋은 소린지.
요즘은 지가 꼭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랑게요.
님마저 안 계시면. 흑=3
애정 표현 좀 자주 해주세요.^^

날개님, 아이참, 날개님이 그런 생각을 하실 정도면......^^;

부리 2006-07-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을쎄요 그가 못하는 건 맞지만 그걸 학벌과 연결짓는 건 갠적으론 반대인데요. "학벌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한 전여옥의 말이 맞는 게 되버리자나요.

로드무비 2006-07-1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그래서 의구심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단정 지은 건 아니고요.
저도 아니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슬슬 들려고 하네요.
인재 육성론을 너무 내세우다가 결과적으로 우리 교육 현실을
갈등과 반목과 파탄에 빠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콤플렉스의 유무를 떠나서.
저도 전여옥이랑 한 패 되는 건 싫습니다.=3=3=3

건우와 연우 2006-07-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때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너무 자주 들어 제자신이 비참합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다른 대안도 잘 안보이고..ㅠㅠ

로드무비 2006-07-1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침하신 분, 딸리긴요, 겸손의 말씀을.
하나씩 생각나면 우리 귓속말 해요.^^

건우와 연우님, 속상하시죠?
다음엔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 생각만 해도 힘이 빠지네요.;;
그래도 기운 내시길.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얼마 전 부산에 다녀온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불면증으로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시고
그 여파로 한쪽 눈에 염증이 생겨 안과 치료를 받고 계신데 별로 차도가 보이지 않아
불편하고 의기소침한 가운데 생활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내려앉았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잠을 못 이루시며 눈의 염증으로까지 나타났단 말인가!

친구분들 만나러 잘 나가지도 않으신다니 엄마 안 계실 때 식사는 어찌 하시나 하여
모 홈쇼핑을 샅샅이 뒤져 간단하게 해동하여 비벼 먹을 수 있는 비빔밥 세트와
봉지째 끓여 먹으면 되는 삼계탕을 몇 봉 주문해 보내드렸다.
워낙 효녀랑은 거리가 먼 인간이고,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딸아이 키우고, 아주 가끔 아르바이트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그런데 뭔지 허방을 짚고 있는 듯
불안하고 외롭다.
새벽 다섯 시에 반짝 눈을 떠서 한참 동안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내가 이럴진대 우리 아버지의 불면증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엄마는 풀무원의 노인 공략 프로그램에 빠져서 그곳에서 사시는 눈치다.
밥도 거기서 해먹고 유흥도 하고 휴지뭉치나 프라이팬을 얻어 나르다보니
구석방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몇 푼 안되는 통장도 거의 바닥이 난 듯.

두 분이 서로 다정하게 위로하면서 재미나게 지내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젊었을 때 별로 정없이 지내던 부부가 어느 날 서로 늙어버린 것을 발견하고
연민에 가득 차서 상냥하고 그지없이 다정하게 대하며 지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부라는 메커니즘에는 아주 견고한 그런 구석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

"이 세상 언제 하직해도 난 상관없어, 그런데 지금 죽는다면 내가 좀 아깝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한 자락 깔고  살다보니 도대체 인생에서
움켜쥐고 용을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손바닥 안에 나도 뭘 움켜쥐게 된 건가?

아무튼 아버지의 불면증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밤에 잠을 못 이루신다니,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무엇인가를 각오하고 산다는 것과 구체적인 현실 체험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허튼 생각과 말을 더욱 줄이고, 필요없는 일(적어도 그게 뭔지는 알겠다!)에는
마음과 시간을 쓰지 말며, 현재에 감사하며, 구체적인 일에 집중하자.

그런데 오죽잖은 그런 결심이 나는 왜 다소 서럽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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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7-0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리 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인지...

건우와 연우 2006-07-0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날이 많지 않으신 부부는 다정해도 슬프건만 더구나 소원하다면야...
저희 친정부모님 얘기같네요...

2006-07-05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7-0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도 하고 싶으셨던 취미같은 거 하심 좋을텐데요...

가랑비 2006-07-0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수록 내가 약하다는 거 알게 되어 겁나지만, 한편으론 나만 그런 게 아냐 싶어 느긋해지기도 해요. 노령사회란 강한 이들의 힘이 아니라 "약한 이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해지는 사회라고,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희망이 있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거든요... 문제는 제가 "배려"와 "연대"를 잘할 줄 모르는 인간이란 거예요.

혜덕화 2006-07-0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께서 우울해 하시면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동생이 아프고부터 저도 어머니 아버지의 한숨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비 오거나 흐린 날, 아니면 연락 없이 잠깐을 찾아가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가능한 자주 찾아 뵙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임을 요즘 절감하고 있습니다. 멀어서 자주 가시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라도 자주 해 주세요. 아버님이 빨리 불면증을 벗어나기 바랍니다._()_

nada 2006-07-05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필요없는 일" 중에 혹시 서재 활동이 들어가나요? 그건 너무 슬픈데. 부부라는 건 정말 묘하더군요. 한껏 생각해주는 것 같다가도 영원히 녹여낼 수 없는 견고한 앙금이 있는 모양이어요. 무비님은 그래도 주하가 있는데 외로우실 일이 무어 있어요오오. 치! =3=3=3=3

날개 2006-07-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어서 부부끼리 마음맞게 재미나게 지내는 분들이 생각보다 참 적은것 같아요.. 난 나이들어서 과연 어떨른지.........

BRINY 2006-07-06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찾아온 졸업생 애가 '나이 들은 후를 생각하셔서 결혼하셔야죠'하던데, 그 '나이 들은 후'를 생각하면 더 부질없어보이는 게 결혼이라서요.

sandcat 2006-07-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도 "당장 오늘 죽어도 미련 없다."라고 얘기하는 매우 유능한 후배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자기애가 결핍된 염세가 언젠가는 자신감으로 바뀌길 바랐는데 말이지요. 다소간만 서러워 하시고, 얼른 기운 내시길.

마태우스 2006-07-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에서 받은 게 많아서 일찍 죽는다해도 별로 여한이 없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꼭 이런 말을 하지요. "한 2년은 더 살아야 한다. 할일이 있다." 그놈의 할일은 계속 있더군요...

로드무비 2006-07-0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한 2년은 더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이 왜 그리 우스운지.....
제 귀에는 20년으로 들려서요.ㅎㅎ
세상에서 받은 게 많다는 말씀이 듣기 좋습니다.^^

샌드캣님, 지금까지도 자신감으로 안 바뀌는데요, 뭐.
덕분에 기운은 벌써 차렸습니다. 불끈!=3

브리니님, 꼭 그렇게 생각하실 일도 아니예요.
마음 맞는 남자랑 지지고 볶으면서 한 지붕 밑에 살아보는 건
꼭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다소간 의지가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날개님, 두 분이 사이가 무지 안 좋다는 건 아니고
좋은 편은 아니예요.
따로따로 외로워 하시는 게 눈에 보이니 안타까워서 그만.;;

꽃양배추님, 아니 그 대목에서 왜 서재가 나옵니까?
전 싫은 건 아예 상대 안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놀이터.
안 그래도 새벽 미명에 옆에서 주하가 자고 있는 얼굴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게 불끈, 의욕이나 힘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혜덕화님, 합장 아이콘이 또 구체적인 위로가 되는군요.
전화라도 자주 걸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무뚝뚝한 장녀의 역할에 워낙 익숙해서요.
하지만 님의 충고에 따르겠습니다.^^

FTA반대벼리꼬리 님,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정말
위로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치사한 인생 같으니라고!ㅎㅎ
배려는 좀 하는 편인데 연대 쪽이 어렵습니다.
혼자 팔짱 끼고 있을 때가 많아요.
벼리꼬리님의 말씀은 겸손 쪽으로 들립니다.^^

물만두님, 케이블로 바둑 보시고 인터넷으로 고스톱 치시고.
취미 프로그램이 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출석하면 님, 전 사실 알라딘 서재활동도
노인공략 프로그램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자신의 시간을 제일 맘 편하고 즐거운 곳에 갖다바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다들 자신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적극적으로 만류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갑갑한 거고.;;

건우와 연우님, 살 날이 많지 않은, 이라고 하시니 섬뜩합니다.
무조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웅다웅하시면서.^^

반딧불님, 어제 플라시보님 페이퍼 읽고 갑자기 뭔가 울컥,
이런 글이 쓰고 싶더군요.

 

찌개며 국이며 나물이며 허름한 음식 몇 가지를 남보다 재빨리
맛있게  차려낸다고 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급할 땐 식당을 차릴까 보다 떠들었는데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 소개해준 한 맛집을 보고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갔다.

1인당 5천 원짜리 백반 집인데 식당 한쪽에 잡채며 제육복음이며 나물이며
뷔페 식으로 차려놓고 얼마든지 손님들이 더 드실 수 있게  배려해 놓았다.

엄청난 반찬 가짓수나 무한리필 제공되는 음식의 양은 그렇다고 치자.
삶아서 양념 끼얹은 꼬막과, 3년 묵혀 맑게 우려낸 멸치젓국과, 
손님이 데리고 오는 아이가 자라서 단골이 될 것을 내다봐야 한다는 주인의 말에
놀라자빠졌다.

꼬막은 간단한 것 같지만 한 접시 만드는데 품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먼저 엷은 소금물에 깨끗이 씻어서 삶아서 한 개 한 개 일일이 까서
양념장을 끼얹으면 되는데 삶아도 입이 벌어지지 않는 놈들을 억지로 떼내면
손톱 모서리가 부러지는 일은 다반사요 날카로운 껍질에 베이기 일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꼬막 한 가마니를 하루종일 씻고 손질할  자신이 없다.
메인 요리도 아닌데.

다음은 멸치젓국. 멸치젓국은 어디라 하더라? 어느 섬의 것을 한꺼번에 사와서 통째로
창고와 옥상, 아무튼 엄청난 양의 멸치젓을 3년 동 묵힌다.
그렇게 숙성된 멸치젓국을 한 방울씩 맑은국물로 이슬을 받듯
받아 모아서 김치며 요리에 사용하는데, 멸치젓 담은 통의 크기와 갯수만 보고도
입이 딱 벌어졌다.

부모와 함께 온 취학전의 아동은 돈을 안 받고, 4학년까지의 아이들은 3천 원의 밥값을  받는데.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메뉴 탕수육에 열광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바삭바삭 맛나게 생긴.......

23년 된 식당.
식당을 차리며 1, 2년 안에 손님들을 끌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안된단다.
손님들이 데리고 온 아이가 자라서 단골이 될 것을 내다봐야 한다고.
자신의 식당에 그렇게 많은 단골들이 찾아오는 데 23년이 걸렸다니!

인내심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김치찌개 한 냄비, 꼬막 한 접시 상에 올리면서 
심혈을 기울였다느니 흰소리나 하고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유세를 떠는 나같은 사람은 식당 차릴 생각은 하면 안 되겠다.

책장수님이 어느 날  실직이라도 하면 조그만 밥집을 열어 가족을 부양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는데.....
하루아침에 그 비상금을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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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6-2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상금을 날린 것이 아니라 비상금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치유 2006-06-2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님들이 데리고 온 아이가 자라서 단골이 될 것을 내다봐야 한다고."
정말 장인정신이상이네요..참 멋진 분이시네요..
그런곳에 가면 밥이 너무 맛날것 같으네요..비상금....ㅠㅠ

oldhand 2006-06-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밥집은 어데 있는 건가요? 점심시간을 앞두고 입에 침만 고입니다. 흑흑.
꼬막은 뭐니뭐니 해도 벌교산 참꼬막이 제 맛이지요. 저희 동네 출신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명절 음식이기도 하구요.

프레이야 2006-06-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교 꼬막 정말 맛있죠. 꼬막요리만 하는 음식집을 그곳에서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건 그렇고 여정영화님(로드무비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는 소식에 한번 불러봤어요^^ ) 비상금 더 알차게 모으시기 바래요.^^ 날아간 게 아닐지도 모르죠.. ^^

nada 2006-06-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래도 꼬막이나 멸치젓국보다는 바삭바삭 탕수육에서 침이 꼴깍 하는데요..

근디 여정영화... 그것 참 거식허네요..--a

Mephistopheles 2006-06-2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막은... 뒷꼭지에 수저 끝 우겨넣고 돌리면 잘 따져요..

BRINY 2006-06-2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막~ 저희 시골이 벌교 옆 보성이라, 저도 좋아해요^^

건우와 연우 2006-06-2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욱 톱톱한 비상금을 축적하는 지름길이 되실 것이와요^^
근데 그식당이 어디래요@@

urblue 2006-06-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막 먹고 시포요...흑흑...

mong 2006-06-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주하를 마스코트로 하여
마케팅 전략을 바꾸심이~ =3=3=3

로드무비 2006-06-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오늘 저녁에 해서 드시우.
한 소쿠리 2천 원밖에 안하던데......^^

건우와 연우님, '톱톱한'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그 식당 알려드리려고 좀전 검색해 봤는데 안 나오네요.^^;

브리니님, 벌교, 보성.
참 정다운 지명이네요.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요.^^

메피스토님, 아, 그렇군요.
뭔 비법이 있을 텐데, 했지만.
당장 꼬막을 사오고 싶다는 욕심이...^^

꽃양배추님, 탕수육이 요즘처럼 천대받는 때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정말 맛나게 생겼더라고요,
그래도 전 꼬막에 더 눈길이......^^

따우님, 사실 상관없어요.
비상금이야 상징적인 것이고.
참, 그곳 가봤어요. 참 멋진 곳이더군요.^,.~

배혜경님, 벌교 꼬막이 그렇게 맛있나요?
꼭 그곳으로 가서 먹어보고야 말겠습니다. 불끈.^^

올드핸드님, 저희 동네 출신이라고 말씀하시니
뭔지 조직의 냄시가 풍깁니다.^^

배꽃님, 정말 닮고 싶은 얼굴이었어요.^^

호질님, 알았시유.^^;

로드무비 2006-06-2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전 저의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어유.
안 될까유?

하루(春) 2006-06-2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다. 이상하게 그런 식당이 생각보다 많아요. 저는 실제로 그런 식당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가보고 싶어요. 탕수육이랑 꼬막 먹으러...

날개 2006-06-2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반찬을 하나하나 설명해놓으신 탓에 입에 침이 고입니다...ㅠ.ㅠ

ceylontea 2006-06-2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이 어딘지 무척 궁금해요... 저도 그런 식당은 가본적이 없어요.. --;;
모든 식당이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단 음식점이니 기본적으로 맛은 있어야 겠지만... ^^
로드무비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식당의 분위기나 특징이란 것이 있겠지요...
막연히 저도 갑자기 생각하니 떠오르지 않지만.. 글,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한 식당... 그런거요.. 히히.. 아니면 다른 것이어도 좋구요.. ^^
어차피 1,2년내로.. 시작 하실 것도 아니시고... 아무리 빨라도 10년안에 하실 것 같진 않아요...
10년을 두고 생각하시면, 로드무비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정겨운 밥집은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화이팅~~!! ^^

에로이카 2006-06-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밥집 꿈 접지 마셔요.. 근데.. 그보다... 한 번.. 시의원부터 시작해서 좀 제대로 된 국회의원 자리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지... 전 진짜 로드무비님 같으신 분이 생활정치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아... 그런데.. 밥집 사장님 하시거나, 정치에 입문하시면 바빠서 책 읽으실 시간이 없겠네요... 그리고... 정치가 또 안 되는 이유가 있네... 퀵 아자씨 스캔들이 흑색선전으로 회자될테니.. ㅋㅋ (다 그냥 웃자고 쓴 얘깁니다.. 미워하지 마시기를..)

플레져 2006-06-2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들렀는데 23년동안 온 것처럼 만드는 비법이 있으시잖아요 ^^

마태우스 2006-06-28 0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리는 데는 소질 없어요. 근데요 요즘같이 빨리바뀌는 시대에도 그런 인내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 갑자기 그런 생각이....

로드무비 2006-06-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23년은커녕, 2년도 못 기다릴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이 슬며시...

플레져님, 어머, 저도 모르는 저의 비법이 있다고요?ㅎㅎ

에로이카님, ㅋㅋ 미워하긴요.
퀵아자씨 얼마 전 정말 그만뒀어요.
실연의 상처를 달래고 있습니다.=3=3=3
(그리고 제가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은 일 중 하나가
세일즈와 정치활동입니다.)

실론티님, 이런이런, 너무 다정하시잖아요.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젠가, 그냥 막연하게...
아니면 말고, 이런 식으로.
그런 생각만으로도 비상금을 숨겨둔 기분이 되더라니까요.
그날 아침 프로 보며 마음이 휑헸던 걸 보면.....
님의 댓글 읽고 따땃해졌어요.^^

따우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
놀랐답니다.^^

날개님, 음식은 무조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야 먹힙니다.ㅎㅎ

하루님, 글쎄, 저런 식당은 남의 동네에만 있다니까요.
식당 어딘지 알게 되면 갈챠드릴게요.^^



반딧불,, 2006-06-2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 어디래요?아..정말..침 고여요.
(냉면 한사발 먹은 아짐 올림)

로드무비 2006-06-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저도 간식으로 냉면 한 사발 때려야겠네요.ㅎㅎ
 

만약에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올리브유와 생리대와 샴푸가 한꺼번에 떨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
시장에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을 것이다.
평소 시장비가 5만 원이라면 10만 원을 써야 한다.
10만 원이라면 2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거기다 소고기 국거리라도 큰맘먹고 한 근 사게 되면
계산대 앞에서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 게 틀림없다.

그런데 만약 지갑 속에서 현금을 꺼내어 계산한다면
시장바구니는 절반 정도로 줄지 않을까?
카드로 지불하면 아무래도 자신이 쓴 돈의 구체적인 액수가 실감나지 않게 마련이다.

살 것이 많을 땐  대형마트가 편하다.
매대 사이를 누비며  메모해 온 물품을 집어 카트에 던질 때는 묘한 쾌감이 인다.
메모에는 분명 없는데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은 물품들도 있다.
1 플러스 1 상품이 그렇고, 사은품이 본품을 능가하는 물건도 있다.
사은품으로 주는 밀폐용기 같은 건 찾아보면 한 박스는 될 텐데 볼 때마다 욕심이 난다.
예전에는 동네에 슈퍼가 새로 문을 열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통을 개점 선물로 주었다.
그 플라스틱 통이 탐나 온 식구를 동원해서 슈퍼에 가는 아줌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부가 되고 보니 플라스틱통의 용도는 어쩜 그리도 다양하고 쓸모가 있는지
나도 가능하면 아이들까지 줄 세워서 한 개 더 받고 싶다.
더구나 플라스틱은 분리수거가 가능하니 낡아서 버릴 때 따로 애쓸 필요가 없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
동네의 농협슈퍼를 이용한다.
달걀 한 줄이나 급히 필요한 두부, 맥주 큐팩 같은 건 단지 앞의 작은 가게에 가서 해결한다.
장사가 안 되어 술만 드시고 있는 아저씨를 보면 가슴이 무겁다.
채소나 나물 같은 건 되도록 노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땡볕에 시든 나물 바구니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들이 우리 동네엔 어쩜 그리 많은지......

지난주 겉절이 하려고 연하디연한 열무 한 보따리를 샀더니 그걸 봉지에 담으며 할머니,
"이 채소로 반찬 맛있게 해먹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오!"하는 인사를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부추와 생강을 사러 농협슈퍼에 들렀더니 부추단이 너무 실하다.
'부침개 한 번 해먹고 겉절이에 좀 넣고 그래도 남겠네?'하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자니 조금 전 부추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아뇨, 딱 절반이면 좋겠는데......"

"그러면 우리 절반 노눕시다. 부추는 꼭 남아서 버리게 되더라고."

화끈하신 할머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절반 딱 나눈 부추를 비닐봉지에 넣어 내게 내미셨다.
급히 지갑에서 동전을 찾아 반에 해당하는 돈을 드렸더니 안 받으시겠단다.
죄송해서 어쩌냐고 했더니 서로 좋은 일이란다.
참으로 쿨하고 멋진 할머니였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내가 부추든 뭐든 사겠다고 인사하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좀전 알라딘에 들어오니 노마트, 즉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기사를
라주미힌님이 퍼오셨다.
그날 두 분 할머니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써야겠다 생각하면서 집으로 왔는데 까먹고 있었다.
잊기 전에 급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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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6-2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동네에 제법 큰 재래시장이 있는데 지금 이 곳이 재개발이란 명분아래 다 헐려지고 있어요. 길에선 사람들이 살 터전을 달라고 농성을 하고.. 옹기종기 앉아 채소를 팔고 국수를 말아 팔던 이 곳이 싹 쓸려 없어 지고 새로운 대형 건물이 들어 선다고 하니깐 마음이 뭉클했어요.
시장에서 찌게에 넣을 쑥갓 한웅큼만 있으면 된다고 할때 그냥 집어 주시던 그런 정은 이젠 사라지겠지 하는 마음이 무겁답니다.

저도 노마트를 외치는 중인데 잘 안돼요..^^

로드무비 2006-06-2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마트의 쾌락에 너무 깊이 중독 되어서요.
님 사시는 동네가 어디더라? 잠시 머릴 굴려봤습니다.
그러니까요. 재래시장 참 좋은데.
주전부리 할 것도 많고.^^

nada 2006-06-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가 없는 동네에 살다 보니 얼떨결에 동참하고 있군요. 캬캬.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이 부분에서 살짝 웃었어요.
무슨 선문답처럼 느껴져서..ㅋㅋ 쿨한 할머니 만세!

rainy 2006-06-2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정말^^ 나도 기회되면 그래야겠다고 불끈..
좋은 건 쑥스러워 말고 따라하자 할만큼은 나이먹은 내가 이럴땐 좋아요..
인터라겐님.. ? 혹시 성북구청 쪽에 사시나요? 바로 우리동네 이야기네요...

로드무비 2006-06-2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그걸로 제목 바꿔야겠슴돠.
필이 오는데요?
제목에 시장을 넣고 싶었는데 '부추'로 통합하지요.
힌트 감사!ㅎㅎ

(할머니 말투도 독특하죠? 그대로 옮겼어요.)

플레져 2006-06-2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가 생긴뒤로 씀씀이가 커졌어요. 수퍼 규모인데도 말이죠, 물건이 다양하니까.
트럭에 야채싣고 오는 아저씨도 우리 아파트 단지가 작아서 오지 않아요.
우연히 만나 이천원에 감자 한봉지 샀는데 싱싱하고 맛난 데다가 양이 정말 많아서 넘 행복했잖아요 ㅎㅎ 대형마트가 멀어서 다행이에요. 한번 다녀오면 이십만원은 우스워요. 게다가 뭐 산 것도 없는 데 돈만 날린 기분, 저도 노마트!

로드무비 2006-06-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님, 나이 먹는 게 좋은 점도 더러 있어요. 그죠?
그리고 언제 부추 사실지 말씀해 주세요.
가서 얻어 오게!=3=3=3

플레져님, 어마어마한 카트가 계산대 앞에 줄서 있는 광경도 장관이에요.
도대체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물품이 어느 정도인지.
식재료며 옷이며 책이며.
가끔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뭐 그러면서 아구아구 사들이지만.....

하루(春) 2006-06-2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할머니 참 멋지네요. 캬~ 갑자기 왜 소주가 생각나지? ^^;

조선인 2006-06-2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뚜벅이족이 된 지금, 아파트 토요장의 단골이 되었어요. 후한 인심은 아니지만 딱 먹을만큼 살 수 있어 좋더라구요. 대형 마트에선 못 느꼈던 거죠. 할머니의 말씀, 기억해둘게요.

paviana 2006-06-2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urblue 2006-06-2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에서 부추가 상해가고 있어요. 저도 그런 할머니를 만났으면 좋았을걸. 아니, 그 할머니처럼 할 걸 그랬나요?

건우와 연우 2006-06-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할머니 진짜 쿨하시네요.^^

sooninara 2006-06-2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 다녀오면 반성하다가 또 마트가면 눈이 뒤집혀서 잔뜩 사온다는..ㅠ.ㅠ
요즘은 동네 슈퍼도 묶음 포장이라서 부추는 정말 남아요. 부추전에 부추겉절이에 해 먹지만 다른 야채도 냉장고에서 버려지는게 만만치 않죠.
저 할머님 정말 멋지십니다.

치유 2006-06-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할머니예요..
우리도 가끔 그럴때가 너무 많아요..
한단 사기엔 너무 많아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이웃들과 알게 지내다 보면 나누어 먹을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닐땐 참 아깝더라구요..결국엔 썩어 버리게 되니..
전 또 가지가 썩어가고 있더라구요...한묶음이 여섯개나 들어있었거든요..ㅡ,.ㅡ


sudan 2006-06-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추를 부츠라고 읽고는 신발 얘기인줄 알았어요. 로드무비님은 구두 쪽으로 사치하시는 분이신건가 생각하면서 들어와봤더니. ^^

혜덕화 2006-06-2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은 거의 마트에 안갑니다. 정말로 꼭 마트에서 사야 할 물건이 있으면 몰라도 대개는 군것질거리만 카트 가득 실어오게 되더군요. 메모해서 가면 동네 수퍼에서 5만원 안팎이면 해결 될 것이 마트만 가면 십만원 넘는 것은 순간이예요. 아이들에게 과소비를 가르쳐서 좋을 것도 없고, 노마트 운동에 찬성합니다.

로드무비 2006-06-2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네, 마트에 가면 눈이 뒤집히지요.ㅋㅋ
책장수님왈,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합니다.
전 사실 야채 손질이 귀찮아서 야채를 잘 안 사요.
그러다 또 큰맘먹고 이것저것 사와서는 미루다가 썩혀서 버리고.
할머니 인상도 참 유쾌하고 좋았어요.^^

건우와 연우님, 확 열려 있는 느낌이었어요.^^

블루님, 부추 반단 나눠먹기 운동 해볼까요?^^

파비아나님, 샤프한 외모에 쿨한 할머니, 잘 어울리는데요?^^

조선인님, 아파트 알뜰장터도 좋지요.
정말 싼 것 같아요.
전 어쩌다 그 옆을 지나가게 되면 이용하는데
일부러 가지지는 않더라고요.
그것도 부지런해야...^^;;

하루님, 맥주도 아니고 소주가 생각난다고요?ㅋㅋ

로드무비 2006-06-2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아이의 눈을 생각해서라도 뭘 좀 덜 사야겠어요.
며칠 전 저에게 "엄마는 돈이 아깝지 않지?"라고 말해서
가슴 철렁했답니다.
제가 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구석이 있거든요.;;

수단님, 저는 사치를 모르는 인간입니다.
정신적인 사치 외엔.=3=3=3
(님의 사치 쪽 아킬레스건은 뭔가요? 궁금.)

배꽃님, 가지야말로 이상하게 꼭 요리를 미루게 되는 채소.
희한해요, 그죠?^^;

클리오 2006-06-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만 가면 적자가 나서 동네 슈퍼를 애용하려고 노력중이예요.. 이상하게 더 싼 물건만 사는데도 왜 마트에 사면 살게 그리 많은지 이해가 안되요.. ^^; 마트에 가면 할인품목만 얌체같이 사오자~~ 고 다짐하는데 안될 때도 있어요. 흐..

가시장미 2006-06-2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추.. 저희 집에도 너무 많아서. 부침개하고 김치에도 넣고,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도 많이 남은 것 같더라구요. 전 사실 장을 본적이 별로 없어서 부추 한단에 얼마만큼인지 잘 몰라요. -_-;; 솔직히 저렇게 말을 건네준 할머니도 대단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하자고 동의한 로드무비언니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상대의 호의를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아름다움이죠. :)

릴케 현상 2006-06-2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트만 따라가면 앤님이 사주는 옷이 한가득=3=3=3

로드무비 2006-06-2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결혼 전에는 본래 그런 거라오.ㅎㅎ

붉은가시장미 님, 그래도 집 냉장고 사정을 잘 아시네요.
워낙 말 길게 하는 거 싫어해서 할머니의 제안 그냥 받아들였어요.
다른 분께라도 갚으면 되지 마음 편하게 생각했고요.
뭐 떼먹어도 할 수 없고.ㅎㅎ

클리오님, 마트에 가면 모처럼 왔는데 안 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도 주워담게 되고.
안 가는 게 돈 버는 거예요.^^


반딧불,, 2006-06-2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공산품하고 놓치기 아까운 몇가지가 있어요.
저도 반성합니다.
회사하고 넘 가깝다보니 꼭 가게 되요ㅠㅠ

로드무비 2006-06-2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마트에 절대 가지 말자고 쓴 글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흘렀네요.
아주아주 얌체 손님으로 필요시 가끔은 마트를 이용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헤헤~

balmas 2006-06-26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있어요, 로드무비님. :-)
부추 나눠주신 할머니도 ...

로드무비 2006-06-2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호호, 새삼스럽게.=3=3=3
(부추 할머니 만나고 나니 세상이 잠시 환해지는 듯.
그런데 열무 할머니도 괜찮았는데......)

야클 2006-06-2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갑자기 비도 오는 날씨에 부추잡채랑 공보가주 생각이 났다는.... ^^
잘 지내시죠?

로드무비 2006-06-26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부추잡채 먹고 싶어요.ㅎㅎ
공보가주는 뭔공?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야클님도요?^^

2006-06-26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랑비 2006-06-2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추천 하나 얹어요. ^^

로드무비 2006-06-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흐뭇하옵니다.^^

잊지 않으시고님, 별 말씀을.^^
 

<지하련 전집>을 읽고 있다.
임화의 아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래 전 옛책들을 만지는 일을 할 때 우연히 내 눈에 띈
'가을'이라는 그의 단편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수첩에 이름을 적어놓았었다.

십몇 년 전에 읽은 짧은 글 하나가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는 일도 신기한 일이다.
좋아하는 건 꼭 챙겨먹는 식탐은 책이라고 예외가 없나보다.
그의 전집이 나와 있는 걸 알고  화들짝 얼마나 반가웠는지.

오늘 아침, 축구경기가 끝난 뒤 덮어두었던 그의 책을 펼쳤더니 두 번째가
문제의 작품  '가을' 인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산모가 젖이 안 나올 때  돼지족이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사려고 들렀다가 좋은 게 없어서
대신 돼지고기를 두어 근 샀다는......
(그러니 돼지족이 산모의 젖을 잘 돌게 한다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있었나 보다.)

아이고, 그것도 모르고!

마이 도러를 낳고 집에 누워 있을 때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이 족발을 사들고 왔던
8년 전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늦은 저녁, 산모답게 헐렁한 면원피스를 입고 택시에서 내리라고 가르쳐 드린 지점까지 마중을 나갔다.
분유 몇 통과 족발 봉지를 바리바리 손에 든 시인이 택시에서 내렸다.

족발 봉지 속에는 상추와 깻잎 등속과 서비스로 넣어주는 소주까지 한 병 들어있었는데
그게 '두꺼비'였다.
분유 봉지가 더 무거울 것 같아 그쪽을 받아들며 시인을 놀렸다.

"산모 집에 오면서 돼지족발이랑 두꺼비 한 마리까지 챙겨오시는 분
아마 대한민국에 선생님밖에 없을 거예요."

내 구박 아닌 구박에 시인은,

"이상하게 족발이 사오고 싶더라고,  그리고 술은 이제 한잔 마셔도 되지 않나?"

"젖을 먹이지 않으니까 한잔쯤은 상관없겠죠!"

간단하게 준비한 저녁상에 족발이 올라와 그날 시인과 나는 아주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족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쌈은 가끔 먹었지만.

그 시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는 막연히 그의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몇 살이라도 젊고, 아무래도 시인보다는 세상을 잘 아는 편이니까 그를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연락조차 끊어졌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간다.

아이는 금요일 오후 삼촌네 따라 부산에 가고, 다음날 남편과 단 둘이
동네 산 기슭의 노천 장어구이집에 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튼  개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나의 옛 친구들 이야기도 나왔고,
냄새가 나서 그냥 보자기로 슬쩍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었다.

문제는 결국 나자신.
골백 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뾰족한 결론이 있을 수는 없었다.
눈물이 좀 났고,  가슴이 뻐근했다.

우리는 늙고, 세월은 이러구러 지나가는 거겠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도 지나는 말로 가볍게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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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9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06-1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마지막 후 18줄짜리 여백이 왜이렇게 쓸쓸하게 보이나요....

아키타이프 2006-06-1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줄인데.....
그나저나 여백을 읽는 님도 대단하세요.

로드무비 2006-06-1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님, 여백까지 읽어주시는 님들이 있어
오늘 아침 다소 행복하네요.^^

메피스토님, 18이든 19든, 고마워요,(그런데 뭐가 맞는겨?)
모처럼 쓸쓸하자 작정하고 쓴 뻬빤데요.=3=3=3

눈물냄새님, 한 방울밖에 안 흘렸는디.^^;;
고마워요.

2006-06-1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1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가 없으니 많이 쓸쓸하셨나봐요 ^^

날개 2006-06-1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이 꽤 되요.. 저도..
그게 다 무심함에 게으르기까지 한 제 탓이지만....ㅠ.ㅠ
근데, 아키타이프님이 서재에 댓글도 다시는군요!

로드무비 2006-06-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엊그제 저도 아키타이프님 발견했어요.
세월 흐르면서 연락 끊어지고 하는 것도 당연한데
어떤 날은 그게 너무 애통하게 느껴져요.
술 한잔 하며 이야기가 그날 이상하게 흘러갔어요.;;
(무심과 게으름, 하면 아조 뜨끔뜨끔합니다, 저는!)

건우와 연우님, 헤헤, 그 정돈 아니고요.
어쩌다보니 옛날같이 오만 가지 이야기를.
주하가 무지 보고 싶긴 하더라고요.^^;

속삭이신 님, 왜 요즘 자주 볼 수가 없나요?
저도 뭐 거시기하지만.
함께 찔끔 눈물 한 방울 흘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열 마디를 세 마디 정도로 줄인 페이퍼예요.
너무 많이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때로는 불결하게 느껴져서요.;;


2006-06-2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