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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이어온 봄도

가난한 자의 마당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작아진다

울타리 말목 끝에 참새 지저귀다가

가곤 없었고

두꺼운 흙을 열고 나타나는 애기상치도

금새 뽑혀가곤 없었다

둥우리에서 막 기어나온 병아리가

걷기 시작하자

장바닥에 팔려가곤 없었다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가난한 자에 이르러서는

끝전만 돌아왔다


                               -- 이병훈 시인(1925년~ ), 도서풀판 b <한국대표노동시집>,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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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상치도 병아리도 미처 자랄 새가 없는 가난한 자의 마당.
탄식하지 않고 하소연하지 않고 가난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목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끝전만......

이런 시를 만나면 시인들이 몹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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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생각.
저 익숙한 가난이 절망으로 변하지 않길, 그리하여 그들의 희망이 나에게도 희망이 되길...

라주미힌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공감만이 시를 살리는 것 같아요...
가난한 자의 마당에는 봄조차 빗겨가는군요...
저의 노동 또한 계절을 지워버려요.. 출퇴근의 옷차림이 바뀌는 정도... ㅎㅎㅎ

로드무비 2006-05-2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나온 <한국노동시선집>에 수록된 시들도 많아요.
괜히 핏대만 올리는 시들도 있지만, 이렇게 노동시 전체를
훑어 보는 것도 괜찮은 듯.

싸늘한 체념이 엿보이는 시가 더 무섭고 힘있지 않아요?^^

twoshot 2006-05-2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릿합니다...헌데 "그 큰 햇볕"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하늘바람 2006-05-2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새는 금세인데요. 원래 시에 그렇게 되어 있나요?

로드무비 2006-05-2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cus님, 한 줄 한 줄 옮겨 적는데 아릿했답니다.
그 "큰 햇볕"들은, 글쎄요....

로드무비 2006-05-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저도 그건 아는데, 오래 된 시들이 많아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요.

waits 2006-05-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어수선해서 솔직히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사해요. '오늘 읽는 시'가 쌓이는 만큼, 제게도 위로가 되리라는...;;;

2006-05-2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5-2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연 '천 년을... 갑자기 작아진다.'에 동의(?)하기 어렵네요. 전 가난한 조건이라고 해도 별과 따사로운 봄 날을 느낄 권리를 뺐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생각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ㅠㅠ 그래도 가난한 자에게도 봄은 아름다운 법,
그럼에도....

로드무비 2006-05-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물론 그렇게 읽으실 수도 있습죠, 암만.
님의 말씀이 아름답고 애틋한데요?

우덜끼리만님, ㅎㅎ 님도 알고 계시군요.^^

나어릴때님, 어느 날 님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시가
올랐으면 좋겠어요.^^

싸이런스 2006-05-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 닳았다 식었다 정신 없는 요즘인데... 마음 차분해지는 좋은 시여요.

로드무비 2006-05-2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저도 이 시 올리고 마음이 좀 차분해져서
일 좀 했답니다.
아까는 하루종일 서재에서 노닥거리고 싶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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