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소주를 마신다>.
오월 중순경 제목에 끌려 주문한 이 시집은 어찌 된 일인지 
전해받은 기억도, 책꽂이에서 본 기억도 없다.
몇 번인가 생각 날 때마다 이상타 이상타 했더니, 이틀 전에 의문이 풀렸다.

목요일 밤, 동네 맥주집에서 동생네 가족이랑 한잔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알라딘 책을 전해 주시는 택배 기사님이었다.
알라딘 책은 아닌데 아무튼 자그만 책봉투이니 복도의 소화전 속에 넣어두겠다고.
(두어 번, 내가 외출중이고 경비 아저씨마저 자리에 안 계실 때 소화전을 이용했다.)

그런데 소화전 뚜껑을 여니 책봉투가 두 개다.
궁금해서 알라딘 봉투를 먼저 북 뜯으니, <봄은 소주를 마신다>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당시 품절이었는지 함께 주문한 책들과 오지 못하고 어느 날 독자적으로 배송되었나 보다.
두 달 동안이나 컴컴한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고 주인과 만나길 기다려 온 것.

소화전 속에서 두 달 동안이나 나를 기다려준 이 농염한 시의 세계가 반가워 
한 편 옮겨 적는다.


납죽납죽 받아 마신 낮술에,
취기가,
물 오르듯
내 아랫도리를 은밀히 더듬고 있다

봄은 소주를 마신다

저기 저 먼 데 산골짜기 아래
복사꽃 불콰히 부풀어 오르는 구릉이 구렁이같이
산의 가랑이 속으로 꿈틀, 꿈틀,
기어들고 있다

                        --'봄은 소주를 마신다' , 이은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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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7-1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저도 그 취기에 취해서 후회할 일을 많이 겪었죠.

날개 2006-07-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두달간이나 소화전에서.....!^^
왠지 남의 일 같지 않군요..

sooninara 2006-07-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화전으로 자주 받았었는데..후후
지금 사는 집 소화전에도 혹시 무언가가 남겨져 있는지 볼가요?

Mephistopheles 2006-07-1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댁은 소화전마져 서재였군요..!!!

sudan 2006-07-1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오늘 택배로 조립식 책장이 왔어요. 우후훗.(택배 얘기에 뜬금없이 책장 샀다고 자랑 자랑.)

달콤한책 2006-07-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봄은 꼭 그렇게 취기 오른거 같더군요...소화전에 그런 비밀이...저 시집...마음에 쏘옥 들어오네요^^

oldhand 2006-07-1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詩에 대해서는 젬병이고 그닥 좋아하지도 않지만, 유독 술에 관련된 시들은 제 마음을 찌릅니다. 이것도 술병病 일까요?

로드무비 2006-07-1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미투!
시에 술이 나오면 너무 좋아요.
좋아하는 안주라도 함께 나오면 환장한다니께요.ㅋㅋ

달콤한책님, 뭐 비밀이랄 것까진 없고요.
소화전 가끔 애용해 보세요.
제가 평소 별로 읽지 않던 종류의 시들이네요.
무르익은 여인의 말들......^^

수단님, 조립식 책장, 조립해 보고 책 정리 마치고 나서
어떤지 좀 알려주세요. 저도 살 계획이 있거든요. 부탁.^^

메피스토님, 여차하면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비상금도 거기 숨길까요? ㅎㅎ

수니나라님, 열어보셨어요?
책이 있던가요?
누런 상자가 한 개 있었으면 좋았겠는디.^^

날개님, 건망증도 이 정도면.ㅎㅎ
어느 날 시집이 톡 튀어나올 줄은 알았어요.
그곳이 소화전인 게 의외였지만.ㅎㅎ

FTA 반대 푸하 님, 취기에 취해, 캬~~
그 후회할 일들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저와 비슷한 거디겠죠?^^

푸하 2006-07-1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마시면 너무 본능적으로 행동해요. 억압되어 있던 자아가 해방되고 기어나와요. 요놈의 정체를 알려고 푸코를 읽으려고 했는데 넘 어렵더군요. 제 정체를 알만한 수단은 그래도 '책'인데 책자체가 좀 어렵네요.ㅎㅎ 좀 딜레마적 상황이에요.

로드무비 2006-07-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ㅎㅎ 가끔 술 마시고 자아 좀 해방시켜 주자고요.
본능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의외의 낭패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게 또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사실 무서워요.=3=3=3

blowup 2006-07-1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가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키득키득.
로드무비 님이 쓴 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큭큭.

푸하 2006-07-16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 무서운 것을 꺼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대로 그 녀석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요. 난감한 질문이죠?ㅎㅎ

건우와 연우 2006-07-16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농염한다는 표현이 딱 떨어지는 시네요^^.
참, 소화전과 농염이라...^^

nada 2006-07-1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기사님이 무비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그 기사님 맞죠? 달랑 한 줄로 처리하고 넘어가시다니. 새침하셔요~=3=3=3=3

로드무비 2006-07-17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떽끼!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ㅎㅎ
y택배의 그 아자씨는 얼마 전 정말 그만뒀어요.
'새침히다'는 말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들어봅니다. 히히~

건우와 연우님, 농염과 불길과 소화전, 그럭저럭 연결되죠?ㅎㅎ

FTA반대 푸하님, 그 무서운 것을 꺼내서 정체를 확인하시고 난 후
제게도 살짝 알려주세요.^^

namu님, 제가 쓴 시라고 해도 믿겠다니,
너무 저를 유능하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ㅋㅋ
 


장작을 패며 나는 배운다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두 눈 부릅떠 결을 가눌 것

옹이는 절대 피할 것

순서는 마른 것에서 젖은 순으로.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도끼질할 때

원칙과 자세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1990년, (<한국대표노동시집> 475쪽)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는  제목이 좋아서 나도  지니고 있는 시집인데
이상하게 이 시는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인 듯  내 눈에 들어온다.

백무산의 '장작불'이란 시가 있었다.
노래를 만든 이는 백창우였던가?

아무튼 가사도, 비장한 멜로디도 너무 좋아서
한때 음주 후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로 즐겨불렀던 곡이다.

자취 때부터 지금까지 결혼하고도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남동생은
신촌의 대학가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노래패('맥박')에서 활동했다.
오오래 전,  학교 강당에서 공연이 있다고 오라 해서 퇴근 후 갔더니
조금 늦었는데,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내 남동생이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멤버들이 옆에 포진하고, 잠시 솔로였다.

내 가족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이라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장작불'이라니......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장작불

                                      백무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만국의 노동자여』,청사,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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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장작 패는 걸 생활화 하면 주먹이 단단해 진다고 하더군요..^^

푸하 2006-06-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며...
장작을 패는 자세로 일을 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6-0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왜 아니겠습니까!

메피스토님, 마치 주먹이 단단한 싸움꾼인 듯이!=3=3=3

mong 2006-06-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눈 부릅떠 결을 가눌 것-
부릅~

비연 2006-06-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퍼갈께요^^ 물론 추천도!

로드무비 2006-06-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뿔씨를 불씨로 고쳐주세요.
지금 읽어보니 눈에 띄네요.^^

mong님, 이제 그만 '게슴츠레' 모드로!
눈 아파요!ㅎㅎ

프레이야 2006-06-0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시, 잘 읽고 갑니다. 백창우의 곡으로 불린 노래, 저도 듣고 싶어지네요. 뭉클했을 것 같아요 정말..

건우와 연우 2006-06-0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을 도끼질할때 원칙과 자세는 언제나 생명이었지요!!
이제는 그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사람으로서 백무산은 조금 쓸쓸...

로드무비 2006-06-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시인이 너무 멀리 가버렸나요?
어디쯤에서 잠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거라면
그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잘은 모르지만......'쓸쓸'에는 동의.

배혜경님, 그 순간, 가슴이 좀 설레더군요.^^

플레져 2006-06-0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제목 참말로 좋아요.
로드무비님 동생분이 동주 아빠시죠?
참 멋지십니다 ^___^
저 가사에 어떤 멜로디가 붙여졌을지 무지 궁금.

2006-06-0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6-09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변에 '장작불'을 잘 부르던 선배가 있었지요.. ^^ 그 노래는 술이 거나해져서 들어야 제 격이었는데...

비로그인 2006-06-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시네요 .장작불. 추천 꽝!

로드무비 2006-06-1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서린님, 힘도 좋으셔라.^^

에로이카님, 자칫하면 멜로디가 처지기 쉬워서 부르는 사람도
거나해져서 부르는 게 좋지요.^. ^

마음으로 다가와님,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도 선물받아 읽은 책이고, 또다른 주인이 있으면
책으로서는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딨겠습니까.
마음 내키실 때 말씀해 주세요.^^

플레져님, 동주 아빠 맞아요.ㅎㅎ
그때는 멋졌지요.^^;

2006-06-1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겠다는

지원비가 드디어 한달에 100만원씩

1200만원으로 올랐다, 용렬하게

이 몸도 신청했다. 문득 화곡역 청소부에게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63만원이라고 했다.

시집도 내고 목돈으로 1200만원이나 벌었으니

행복은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의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배때지가 꼴린다, 내가 못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이 말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그 청소부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고도 그것밖에 가지지 못하나

예술은 허구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시인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시인들이여

행복은 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대는

시인은 못되리라. 행복은 누구나의 의무이다

우리의 행복함은 곧 우리가 선함이요

우리의 불행은 곧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원리는

화곡전철역에서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월급이 63만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 최종천 詩, <창작과 비평> 2006년 여름호




오래 전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모 여성지에 한달에 닷새쯤 나가 품을 판 적이 있다.
특히 만화와 여성잡지 쪽을 잡고 있던 그 유수의 출판사는 편집부 직원들 연봉이 높기로 유명했다.
나야 일감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희희낙락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어느 달에 내가 나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문지에서 시집을 내기도 한 젊은 시인에게
내 대신 며칠 나가  일을 할 테냐고 물었더니 하겠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비도 얼마 안 되는데......
그런데 시인이니 뭐니 그런 소개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시 잘 쓰기로 유명한 젊은 청년이 돈이 궁하여 여성지 사무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교정을 보는 게 얼마나 안됐던지 이틀이나 일부러 나가서 밥을 사주었다.
아무데나 빈 책상에 앉아 시무룩한 얼굴로 교정지를 들여다 보다가
내가 나타나면 엄마를 만난 소년 같은 얼굴이 되던 시인.

그런데 어느 날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나보다 몇 살 젊기라도 하지, 등단해서 시인이지, 더구나 시 좋다고 소문났지, 
뭐가 안됐다고 어쭙잖은 연민을 품었던 것일까?
더구나 모성애가 너무 강하면 매력적인 여자로 대접도 못 받는 세상인데!

몇 달 뒤 술집에서 그 시인이랑 시인이 되려고 준비중인 어느 출판사 편집부 직원이랑
싸움이 붙었다.
마침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둘이 피던 담배를 집어던지며 싸우는 바람에
오른쪽 손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그 싸움은 시인의 지나친 자부심과 시인이 아닌 자의 열패감이 술에 취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가,  담뱃불을 던졌던 인간도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린 시를 읽는데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나는 자신이 시를 써서 밥을 벌어먹는 행위를 '정직한 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
자신을 높은 곳에 두고 의기양양하는 인간은 질색이다. 

이 시는 요즘 내가 한 편씩 올리는 '노동시' 카테고리에  알맞아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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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6-06-0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여름호네요...63만원도 2006년 시세(?)인가요? 아아아아.....

그나저나 어쭙잖은 연민...ㅋㅋ
우린 너무 마음이 여려서 세상 살기 힘들어요? =3=3=3=3=3=3

릴케 현상 2006-06-0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직한 시라는 생각을 해도...맘에는 안 들더라구요. 문득 김수영이 신동엽의 어느 시를 보며 '민중만 달리게 하고 시인은 가만히 서 있는 시'라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래도 추천은 할게요^^=3=3=3

로드무비 2006-06-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저도 뭐 쏙 마음에 완전히 드는 시는 아니어요.
하지만 괜찮지 않나요?
김수영이 한 저 말은 직접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노동시를 쓰는
모두에게 해당하겠지요.
추천 감사!ㅎㅎ

꽃양배추님, 우린 너무 마음이 여려서라니, 호호~~
그런데 왜 부리나케 내빼시는 거유?^^


프레이야 2006-06-0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예술은 사기다.. 추천~

mong 2006-06-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니 뭐니 해서 말로만 부추겨 놓지만
실은 그들도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노동자가 맞지요
그나저나 담배불은 왜 던져서 남의 손등에 화상을 입히고 그랬대요!
에이 화상같은 시인들...흥

비로그인 2006-06-0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남푠이랑 '예술가' 에 대한 주절거림을 했던 생각이나네요. 감수성이 너무 뛰어나 세상 살기가 힘든 사람' 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자부심과 열패감이 괴로워서 술깨나 마셨을 그들이 아직도 펜을 잡고 술을 마실것 같은 생각이드네요. 머리와 가슴을 펜에 담으려니 말이죠. 참 힘든길이에요. 예술이란 일.

호홋^^ 마치 해본냥 =3=3

플레져 2006-06-0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구 한강로... 어딘지 알 것 같아요 ㅎㅎ
나중에 창비, 빌려주삼~ ^^

이리스 2006-06-0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그 잡지사 기자인데..연봉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요. 연봉 높기로 치자면 그곳이 아니고 시청에 있는 모 잡지사 겸 출판사겠죠. --;

로드무비 2006-06-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연봉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니깐요.ㅎㅎ
내 연수입(수입이랄 것도 없는)과 비교했을 때는 엄청 높게 느껴졌나 보죠.;;

플레져님, 제가 묶어두고 있는 책들 조만간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름호에 김윤영 씨 소설이 하나 실렸는데 읽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캐서린님, 남푠이랑 그런 얘기도 하시는군요.
열패감조차 없는 제가 이상한 인간이었을까요?
문득문득 캐서린님에게서 그 감수성이란 게 느껴지는데.=3=3=3

mong님, 그나마 그 화상들과도 완전히 소식이 끊겼네요.^^

새벽별님, 님의 말씀이 오묘하십니다.^^

배혜경님, 앗쌀하십니다.^^

치유 2006-06-0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을 들여다 보다 추천만 누르고 갑니다..

릴케 현상 2006-06-06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괜찮'네요=3=3=3

로드무비 2006-06-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호호호~~~

배꽃님, 고맙습니다.^^
 

청전 이상범의 '귀려'

에 빠져 있다가

고등어 조림을 태우고 말았다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옥살이를 했으나 훗날

일장기 아래서 나팔 부는 병사를 그려

부역자로 몰린 청전


학비가 없어

미술 강습소에 들어가 화가가 된 그가

 말년에 정성을 쏟아 그린 소재는

누룽지였다

가마솥 바닥에서 조심스레 뜯어내

쟁반에 엎어 놓은 듯

입맛이 당겨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는

누룽지 모양의 구릉이었다


평생 짓눌리고 타서 구수해진 탓일까

외진 산골 구릉과

가난에 찌든 오두막을 그리며

그 속을 드나들며


1960년대

수묵담채

 77 x 196cm

--<토종닭 연구소> 장경린 시집, 2006년, 문학과 지성사 刊




 


                                                                             청전 이상범, '귀려(歸旅)'

 

 

어떤 이의 경우 딱 인생의 어느 부분까지의 그만 알았으면 참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친일을 하기 전, 변절하기 전, 그리고 그의  치명적인 과오를 알기 전 등.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서 안타깝고 서글프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사무실의 여주인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남달라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점심을 먹는 게 취미였다.

재벌 사모님이 부르면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달려와 문앞에서부터 굽신굽신하던 예술가들.
거기에는 정말 의외의 인물도 포함되었다.
둘아갈 때는 사모님이 벽장 속에서 꺼내어 주는 선물(남자는 넥타이, 여자는 스카프)을
병신같이 품에 안고.
(그들은 그 순간 자신이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초라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청전 이상범 화백의 귀퉁이가 헐은 산수화 한 점을 한 작고문인의 집에서 기증받아
사무실의 비밀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잘 복원하면 몇 억이라고 귓속말로 얘기해 주시던
어느 분이 생각난다.

그 기억이 먼저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오늘 아침 읽은 시가 마음에 당겨
소개하다 보니 저절로 따라 나온 이야기다.
아주아주 낡았지만, 정갈하고 담백하고, 이상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하던 청전의 그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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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6-05-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예술가의 天品이란 게 거기까지라고 봅니다.
그에게 지조까지 기대하고 또 거기에 부응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예술가에게는 후원자가 따라야 활동이 가능하지요.
서구의 음악가들에게 왜 유부녀를 포함한 유한마담들과의 관계가 뒤따랐을까 생각해보아도 거기까지가 그들 몫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지조를 지키시고 절개를 잃지 않은 예술가에게는
마땅히 더욱 더 찬사를 보내야겠지요.^^

로드무비 2006-05-2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전 사실 어떤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술 속에서는 이해 못할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명명백백한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됩니다.
니르바나님의 인간 이해가 너무 깊어서 다시 한 번
님의 서재 이미지를 쳐다보게 되는군요.^^

blowup 2006-05-2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룽지, 토종닭연구소(헤헤)
어제 오랜만에 막걸리 마시고 배달시킨 짬뽕 오기 기다려요.

로드무비 2006-05-2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런데 진짜 이상범 화백이 말년에 누룽지를 그렸나요?
시인의 상상력이겠지요? 아무튼.ㅎㅎ
전 방금 무파마 라면 고춧가루와 파 듬뿍 넣어 얼큰하게 끓여 먹었어요.^^

waits 2006-05-2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하지 못하는 예술가는 고독하게 내버려지거나 세상을 떠난 후에나 몇 배의 찬사를 받는 것도 같아요. 문득, 예전 언제 삐까뻔쩍한 벤츠를 함께 얻어타고는 감탄과 흥분과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던 한 민중가수가 떠올랐어요. 비난할 마음은 없었지만 좀은 실망스러웠던...ㅎㅎ

로드무비 2006-05-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내비치는 표정과 한마디 말에서 의외의 모습을 볼 때가 있지요.
그런데 또 어찌 보면 그게 천진한 마음 아닐까요?
예술가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일일이 헤아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좋은 건 좋고, 아닌 건 관심을 끄고.^^

비로그인 2006-05-2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에서의 지조와 굽신거림과 초라함을 누룽지 씹듯 씹을까 했으나..



배가 고픕니다.

2006-05-26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5-2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도덕하다해도 욕망은 어쩔수 없다고 봐요. 그것까지 비난할수는 없지만 부도덕한 욕망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범인이든 예술가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죠. 다만 두고두고 사족이 붙겠죠, 그의 예술은 훌륭하였으나....
평범하디 평범한 저는 그저 안타까이 타산지석으로 삼는거죠뭐...

검둥개 2006-05-28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림으로라도 좋으니 당장 누룽지를 먹어보구 싶어욧. ^^

로드무비 2006-06-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누룽지 좀 부쳐드릴까요?
연말에 카드 대신?^^

건우와 연우님, 그렇지요.
우리는 반면교사, 타산지석, 그런 걸로 위안을......^^

캐서린님, 가끔 님은 시인 같아요.^^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壯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

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

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

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

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

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

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

사일 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

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신동엽 시인(1930~1969), <한국대표노동시집> 217쪽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가는 풍경을 그려본다.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도 그렇고, 이 책에는 이상하게 평택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역사여서 그렇겠지.
문병란 시인의 '땅의 연가'를 읽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처음 읽는 시도 아닌데 말이다.
다음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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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2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로드무비님의 감성의 무게는 몇 근일까요...
반근만 신문지에 싸 주오.

로드무비 2006-05-2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반 근 떼드리면 아무것도 안 남아유.^^
님이야말로 보태서 뭐하시게?
안 그래도 넘치시는구만.=3=3=3

건우와 연우 2006-05-2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무렵 무척이나 좋아했던 시인이네요. 로드무비님덕분에 좋은시 많이 읽어요. 감사...

nada 2006-05-2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거 헹궈서 육수라도...

가끔 옛날 시의 모던함에 놀라요. 근데 왜 학교 땐 그걸 모르는 걸까요.

waits 2006-05-2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이상하게 평택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도처에 황새울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기고가 생각나네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소극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금 함께 안 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된다"라는 저열한 설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어느 노동운동하시는 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가난하더라도 함께 평화롭기 위해서,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진 세상인지도...

바람돌이 2006-05-2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저 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직은 앳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때 저 시가 참 충격적이었어요. 아 시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풍경도 있구나...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듯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소망은 아직도 이리도 멀다니...

2006-05-24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맑아지면 님, 마이리스트에 간단한 인사 남겼어요.
이해합니다. 그런 마음.^^
(약속 꼭 지키세요!)

바람돌이님, 신동엽 시인 전집에도 저 시가 실렸던가요?
어떤 시는 몇 년 만에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사람처럼.^^

나어릴때님, 하는 일도 없으면서, 시 하나 올리면서
평택, 평택,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그래요.
모든 시가 그런 쪽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네요.
사실 전 자신의 이익을 좀더 지키려고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정규직들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먹고살기 힘든 거야 모두 마찬가지라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외면하면
결국 철퇴를 맞는 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고통을 겪는 인간을 바라보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우정, 진심은 전달이 되겠지요.

꽃양배추님, 저도 그 모던함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오래 전 지하련(임화의 아내로 유명)의 짧은 소설을 읽는데
소름이 쫙 끼치는 거예요.
이런 감수성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견뎠)을까?
아무튼......

건우와 연우님, 시 한 편 옮기며 저도 모처럼 시를
온전히 즐기는 기분이 듭니다.^^

2006-05-24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5-2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처럼 팬많은 분이 계속 평택, 평택, 해주시면 좋지요...^^;;
정규직의 비정규직 투쟁 연대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말씀을 하신 분은 공공연맹 분이셨는데... 실제로 연대투쟁을 제안하기 어려울 만큼, 정규직 노동자들도 직무관련한 난관과 갈등(?, 팀 단위 성과급 같은 미끼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국가와 자본의 노동자 분리정책은 노동자 집단 전체를 짓밟고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떠들기라도 하면 한 번, 두 번, 세 번 들은 사람들의 마음도 더불어 움직이리라는 희망으로...^^;;;;

2006-05-25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저 팬 하나도 안 많은데.ㅎㅎ
노동시는 당분간 계속 올릴 거예요.
단 두세 명에게라도 소개하고 싶은 시가 더러 있어서요.
저도 옮겨 적으며 한 번 더 즐기고.

무슨 이야기든 깊이 들어가면 저 무지 버벅거립니다.
정색을 하고 심중의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아직 붙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어릴때님은 제게 좋은 모범을 보이시는 것 같아요.^^

2006-05-2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5-28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올려주세요. ^^ (좋아서 헤벌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