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살에 부딪쳐
다쳤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

쇠살만큼
착하고 여린 것도 없다
자르면 자르는 대로
댕강댕강 잘려나가
작아진다
구부려 놓으면
그게 저인 줄 알고
갈면 가는 대로 저를 덜어낸다
강철이건 잡철이건
금세 녹아 한 덩이 된다
1센티미터도
저를 속이지 않는다

억지로 미니까 후려친다
강제로 자르니 무너진다

          -'쇠살' 송경동, 시집 <꿀잠> 중



몇 주 전 방영된 KBS스페셜 '두 도시 이야기, 부산과 볼로냐'를
오늘 오전 뒤늦게 챙겨 보았다.
1970년대 제조업의 메카에다가 대표적인 경제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부산과,
그 당시 가장 가난한 도시였던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소개하는 다큐였다.
부산은 공장을 비롯한 지역자본이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실업률 전국 최고, 경제자립도도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거기엔 아마도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지역의 대표 브랜드인 부산우유를 외면하고 1 플러스 1 우유를
장바구니에 넣었던 소비자들의 무심한 행태와도 관계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볼로냐는 협동조합 체제를 구축,
철저하게 조합원과 지역경제를 보호하여 오늘의 번영에 이르렀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로냐의 살라미햄은
볼로냐 지역에서 생산된 고기만 사용하여 그 지역의 생산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다국적 기업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풍토.)
협동조합의 수익금은 고스란히 더 좋은 제품의 개발과
출자자인 농민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렇게도 비교될 수가 있나!
주인인 농민들을 무시하고 수익금의 대부분을 높은 급여 등
자신들 몫으로 빼돌려 물의를 일으킨 경북 상주 함창농협.
그 농협 간부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인터뷰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농협도 엄연히 금융기관인 것이고 금융기관이라면
어느 정도 레벨의 급여가 있는데 농민들 수준하고 같이 갈 순 없잖아요?"

내가 이래서 얼마 전 '개새끼들'이라는 페이퍼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거다.
입으로도 발설하지 못하는 말을 차마 글로 할 수 없어서 그냥 비워 두었지만.
(<개새끼들>은 정을병의 사회비판 소설로  입학한 후 얼마 안 되어
대학 도서관에서 처음 대출하여 읽은 책이다. 제목에 끌려...)


꼬막 껍질 하나에 옴싹 들어갈
짜디짠 말 한마디 갖고 싶다(<꿀잠> 104쪽 '詩' 전문)


'짜디짠 말 한 마디'가 그토록  갖고 싶은 송경동 시인은
최근 옮겨간 기륭의 새 사옥 앞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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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8-11-0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로냐의 경우는 우석훈이 근작에서 말한 '제3부분'과 겹치네요. 헌데 이놈의 나라는 어째 막걸리도 '서울'막걸리가 베스트셀러니...(미안하다 서울막걸리...니가 맛은 있는데)
그리고 '개쉐이덜'이라는 카테고리 이름, 맘에 듭니다~~^^

로드무비 2008-11-05 21:5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막걸리조차 서울막걸리가 제일 맛나니......
볼로냐는 공방 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보호하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여럿 탄생시킨 건 물론
관광객들도 엄청 몰려들고 있더군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피맛골도 북아현동도 모두 싹
밀어버리는 분위기니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그나저나 twoshot 님이 맘에 드신다니
저 카테고리를 살려볼까요?ㅎㅎ

2008-11-06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6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11-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분, 정말 '개새끼'시네요.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농민들한테 이익이 돌아갈까 싶어서 조금 멀리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이용해요.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구요.
근데 농협이란 조직도 관료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더라구요.
저런 간부가 그런 회의에 불을 지르네요. --;;;

로드무비 2008-11-07 09:46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님이 그리 장단을 맞춰주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뻥 뚫렸어요.ㅎㅎ
맞아요,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허튼 곳에 마음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데
순간순간 분기탱천하네요.
헤헤, 그래도 '저분' 덕분에 페이퍼도 쓰고 꽃양배추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2008-11-09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 사람 같지 않아요."
술잔을 비우고 스탠드의 여자를 향해
어설프게 미소 짓는다
서울이라고 말하기 싫다
아무데면 어떤가
나는 나머지 술을 비우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건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
때가 되면 지나온 생에
미소를 지어야 한다.
지금 나는 그저 술 마시는 남자
어떤 여자 앞에서도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다.
취해서 떠드는
이 숱한 남자들 속에서.
              -'구미시 이번 도로1', 우영창 詩



몇 개월째 나란히 동네 스포츠센터에 함께 다니는 책장수님과 주하.
어제는 좀 멀리 운동을 하러 간다기에 그 시간에 나는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극장에서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를 상영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어렵게 들어간 다이고는
거액의 빚을 얻어 첼로를 장만하는데 재정난으로 오케스트라가 해체된다.
아내와 상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집(그 카페)으로
내려오는데,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사장왈, 그 신문광고에 실수로 중요한 단어가 빠졌다고 시치미를 뗀다.
알고보니 시신을 염하고 납관하는 영원한 여행(죽음) 도우미였던 것이다.

<씨네21>에 의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체 역할 배우 오디션장이
미어터졌단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배우들은 전혀 미동이 없어야 하는
어려운 연기
를 잘도 해냈다고.

'하고많은 연기 중에 시체 연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스르르 의문이 풀렸다.
매일매일 장작불로 자신이 직접 끓여낸 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던
목욕탕집 할머니는, 곱게 단장을 끝낸 관 속에서 초절정의 미를 보여준다.

카페('和'라는 이름의 문패도 떼지 않았다)를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30대 주인공 부부의 낡은 집도 좋았고,
어린 시절에 사용했던 작은 첼로로 어른이 된 다이고가 연주하는 곡들도
묵직하면서 따뜻했고,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그 대중목욕탕의
김이 서린 내부 풍경도 좋았다.
첼로 연주자에서 납관사 도우미가 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첼로 연주는 물론 납관의 절차까지 직접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고.
(음악은 히사이시 조)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다룬다거나 또 희화화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납득이 갈 만한 선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진솔하게 펼쳐보이다니......

오늘 아침, 책꽂이에서 문득 눈에 띈 <현대시세계>(1989년 겨울호)를
펼쳤더니 우영창의 시가 나왔다.
영화 이야기와 매치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페이퍼로 올린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그는 사직권고를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차라리 이유 없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빗속을 걷고 또 걸어
생전 다시는 들르지 않을 술집에서
못 마시는 술을 마셨다
머리 속에서 콸콸
빗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갑자기
모든 기억이 흐려져 갔다

잠이 깼을 때
그는 변두리 여관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질척거리는 시장의 식당에서
국밥을 뜨며
국밥 속에 전혀 낯선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보았다
               - 우영창 詩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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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1-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바이 보고 싶어졌어요.
요새 일본 영화 중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와 기쁘답니다. *^^*

로드무비 2008-11-03 13:44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이 영화 좋더군요.
첼로의 선율과 함께 겨울 정취도 최고.^^

무해한모리군 2008-11-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보고 싶었는데, 원래 회사노는날인데 사장이 비상근무 운운하며 오전근무만 하자더니 오후 4시까지 퇴근을 안시켜주네요. 볼 수 있을라나 ㅠ.ㅠ

로드무비 2008-11-03 22:31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12일까지 한답니다.
꼭 챙겨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8-11-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보았답니다.
미안하게도 맛있단 말이야 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먹는 행위와 죽음을 밀접하게 그린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

로드무비 2008-11-04 10:17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에 사무실에서 치킨 먹는 장면 나오잖아요.
그날 밤 바로 시켜 먹었습니다.^^

Arch 2008-11-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둠의 경로(이거 아니면 볼 수가)로 봐야겠어요. 맛있고, 좋고 귀가 즐겁고 가볍지 않은 묵직함. 많은 형용사 대신 찬찬히 시간을 두고 보려구요. 로드무비님 영화 얘기 참 좋아요.

로드무비 2008-11-04 14:19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아이고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둠의 경로로라도...
몇 마디 주절거림 정도에 불과한데,
제 영화 얘기 좋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요.^^


2008-11-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 착함이고 무엇이 악함인가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려
나는 천수경을 외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 첫머리)


네게 불성이 있다니,
그럼 나는 불성을 포기하리라

마음 내킬 때마다의 선행으로 구원되리라 믿진 않는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2' 중에서)


밤새 밥통의 밥이 말라 있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은 없다
졸작을 남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4' 중에서)


오늘은 하도 아파, 이틀치 반야심경을 한꺼번에 복용했다

내겐 멀리서 찾아올 친구가 없다, 슬픔도 없다
공자에게도 신통력이 있었다면
아버지, 저는 차력사의 아들입니다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답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7' 중에서)



----------------------

-- 가을입니다요.
요즘 같으면 돌덩어리라도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쁜 일감 있으면 좀 보내주시라요.


지난주 아는 사람에게 일을 좀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아무리 능청을 떨더라도 부탁은 부탁이다.
시큰둥한 짧은 답장을 다음날 오후에야 받고 조금 무안했다.

살다보면 없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시인의 말대로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다.

간신히 인간의 흉내나 내며 사는 삶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쩐 일인지 삶이 또 아주 쾌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맙습니다!" 절을 하고 싶은 것도
요즘 같은 가을에나 가능한 일.

어제는 진이정 시인의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열 편의 연작시('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를 읽으며 밑줄을 긋다가
그 밑줄들만 한 군데  옮겨 적어 보았다.
그의 시들은 이상하게 막 섞어 놓아도 또 한 편의 시가 된다.(고 우긴다.)

10년이 넘도록 몇 번을 읽어도 눈에 띄지 않았던 시 한 편이
어제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시 읽는 맛 중의 하나다.)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詩 '어느 해거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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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10-1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학의 풀밭,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나는,/마음만 먹으면/일곱 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로드무비 2007-10-16 12:24   좋아요 0 | URL
자명한 산책 님, 전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요.
돌아갈 것도 없이 지금 마음 상태가 바로 일곱 살.=3=3=3

조선인 2007-10-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내킬 때마다의 선행으로 구원되리라 믿진 않는다... 정말 자명한 진리네요.

로드무비 2007-10-16 16: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변덕에 놀아나는 선행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생각해서
아무런 선행도 하지 않는 저의 태도는 옳은 걸까요?^^

2007-10-16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7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코죠 2007-10-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이 시집을 사러 갔더니 품절이에요... 안타까워서... 안타까워서...

로드무비 2007-10-17 11:00   좋아요 0 | URL
오즈마 님, 오래도록 절판 상태였다가 다시 나온 시집이니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알아볼게요.^^

2007-10-17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9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9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0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7-10-2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날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몇몇이 부러워 미치겠습니다.

2007-10-29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쓸만한 한 줄이 나오지 않는 장사를 그만둘
힘조차 없어 본전을 헐어 밥을 사먹는
하루가 어떻게나 긴지 앞날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도 너만은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숟가락을 놓으면
입 벌린 생선은 식어 비린내가 자자하리라

                        
--조정 詩 '불경기' 중에서



좀 이른 나이에 풍을 맞았는지 발 한 걸음 떼는 데 몇십 초가 걸리는 여인을 앞질러
조카가 내리기로 한 유치원 버스 약속장소에 서서 시집을 펼친다.
시 두 편을 읽고 고개를 들었더니 그 여인이 이제사 아파트 모퉁이를 돌고 있다.

유치원 버스는 요즘 10분 늦기가 예사다.
동주는 유치원버스에서 내려 나와 함께 5분을 기다려 피아노학원 차를 탄다.
5분 일찍 나와 기다렸으니 시를 다섯 편쯤 읽었다.

바람이 차서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찬바람 부는 길에서 읽는 시.
집에서 음악 들으며 차 마시며 읽을 때보다
한결 맛나고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본전을 헐어 밥을 사먹는
(......)
이쯤에서 숟가락을 놓으면
입 벌린 생선은 식어 비린내가 자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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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8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3-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반갑습니다.
저도 어제오늘 바쁜 일로 제정신이 아닌데, 좀전 길에서 읽은
시가 주는 감흥이 워낙 낭창해서요.
언제나 딴전을 부리는 듯한 장난꾸러기 님에게서
"파종해야 할 씨앗을 씹어~'라는 절창을 듣게 되니
흐뭇하고 기쁘옵니다.^^

에로이카 2007-03-0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풍경이 그려집니다.. 멋지십니다.. ^^

비로그인 2007-03-0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앉던 책상이나 침대나 소파가 아닌, 눈부시지 않은 햇볕과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적당히 나는 적당한 바람이 있는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것도 기분이 좋습니다.
언젠가, 어둡고 차분한 자리에 있고 싶어서 현관문과 거실문 사이의 좁은 곳에서
한참이나 쭈구리고 앉아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우와 연우 2007-03-0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너만은 내편이 되어 주어야 하는것 아니냐/그 말을 하지 못한다.
상투적인듯, 숱하게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 있는 그 구절앞에서 한동안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참으로 추웠겠구나, 사는게 무서웠겠구나, 하면서요..

로드무비 2007-03-0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 님, 그러고보니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기만 했지
끝까지 믿고 지켜준 사람이 없네요.
서글픕니다.
나의 고독은 자업자득, 저의 18번이랍니다.

L-SHIN 님, 약간 어둑시구리한 구석자리가 좋아요.
책을 읽는 것도 잠시 조는 것도.
요즘은 햇볕 아래 대로에서 차 기다리면서도 책 읽어요.
독서가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그거라도 하고 있어야
마음의 안정이......
어린이용 텐트 같은 걸 하나 사서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책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는데.
L-SHIN 님의 그 자리도 괜찮네요.^^

에로이카 님, 멋지긴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비로그인 2007-03-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둑시구리한".....가끔가다 '로드'님의 글속에서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당황스럽습니다. (웃음)
큰 박스 안에 들어가 있거나, 침대 밑에 들어가 있거나, 옷장 안에 들어가 있으면
상당히 마음이 안정되고... 포근합니다.
뭐랄까.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와 같은 편안함 이랄까.

로드무비 2007-03-0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그래서 빈 박스 큰 걸 보면 자기 집 한다고
그리도 탐을 내나봅니다.
하하, 그래도 옷장 안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요?
부서질까봐.^^


비로그인 2007-03-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핫....;;; 저는 아직도 아이인가 봅니다.
아기 때부터 철이 들 때까지 저는...옷장 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내일 박스집을 만들어야지 하고..계획하고 있다는...(웃음)

로드무비 2007-03-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기 때부터 철이 들 때까지 저는...옷장 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L-SHIN 님, 철이 들긴 들었어요?=3=3=3=3
전 아직 안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가끔 쓰는 이상한 단어는 그때그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건데, 사투리일 때가 많습니다.

비로그인 2007-03-0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아직 철 안들었습니다. (웃음)
'철이 들다' 라는 보편적인 단어를 빌려 7세까지의 연령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
새로운 단어를 어디서 배우고 와서 내 글에 쓸 때는 으쓱해진 기분을 느낍니다. (웃음)

2007-03-11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6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솔기를 털고 주름을 편
옷들이 씨앗봉지처럼 가지런하게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묵은 먼지가 빛을 피해 앉는다.
나도 겨우내 샛길을 따라왔다
되도록 따뜻하게 웃었지만
되도록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낮은 지붕들 사이에서 하늘이 내려다보았다
많은 옷이 나를 가리지 못했다
수의보다 따뜻한 옷을 찾아
헝클어진 서랍을 더 방바닥에 쏟는다
얘야, 너는 숨을 자리도 없이 사람을 몰아치는구나
아버지, 이제는 제가 저를 몰아요
생은 기름져서 심어도 싹트지 않는 죄는 없었다
다행히 흉터가 환하게 남아서 낡은 몸뚱이가 조금씩 겸손해진다
내 보풀들
내 늘어진 팔꿈치들
옷도 어둠 속에서 내가 그리울지 몰라
손을 한 번 쥐여준다
헐거운 나

                                         
 -- 조정, <이발소 그림처럼>, 2007년, 실천문학 刊



기다리던 시집을 전해 받자마자 평소의 버릇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시를 한 편 읽는다.

낯선 우리가 만났는데 그는 인사도 안한다
나는 만곡이 심한 강을 내려와
하류에 이르기 전 모서리를 잃었고
두루 닳았고
커피 두 잔을
좌우로 기립하여 흐르는 산더미처럼 손에 들었다
                                      (시 '비로자나와 티타임을' 중에서)

시를 한 편 읽고 나도 모르게 시집 앞표지를 뒤져 시인의 얼굴과 약력을 본다.
1956년생, 단발의 안존한 얼굴이다.

삶이 나를
이발소 그림처럼 지루하게 여기는 눈치였다(시 '이발소 그림처럼'  중에서)

저 멋진 시구처럼 낡은 몸뚱이가 조금씩 겸손해져야 하는데 
요즘은 숫제 땡깡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도 지겨워 미칠 지경인데......

베스트 음반 같은 시집을 만났다.
약력에 의하면 시인의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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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3-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스트 음반 같은 시집... 보관함에 담습니다.^^

로드무비 2007-03-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장바구니엔 언제 옮기실 거예요? 히히~

2007-03-07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7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3-0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옷이 나를 가리지 못했다."

히피드림~ 2007-03-0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문학사에서 나왔군요.
시가 멋져요. 소개자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에로이카 2007-03-0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헐거운 나"를 "날씬한 나"로 읽으면서, 부러워하는 저는 저질독자겠지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7-03-0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마음은 헐겁고 몸은 뚱뚱하면요?( '')
님의 말씀에서 젊음의 여유가 느껴지는군요.^^

punk 님, 리뷰 쓰고 싶은 시집이었어요.
어제는 급한 일이 있어 가볍게 소개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답니다.
제겐 정말 '베스트 음반 같은 시집'입니다.^^

L-SHIN 님, 전 또 다른 이유로다가 옷이 저를 가리지 못하는데.
시를 좋아하시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