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빼빼로데이 다음날 저녁, 우리 집에선 작은 행사가 열렸다.
'푸른버섯 공화국' 빼빼로데이 이벤트.
주최자는 우리 집(즉 푸른버섯 나라) 대통령, 딸아이였다.
대선 후,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의 면상을 보자
자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딸아이는 멋대로 선거일을 정했다.
그리하여 바로 옆동에 사는 외삼촌 가족까지 모두 참여,
압도적인 지지 속에 대통령으로 뽑히고 취임했으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그렇게 불러쌓더니
'푸른버섯 나라'에서 거창하게 '푸른버섯 공화국'이 되었다.)
얼마 후 다가온 만우절에 우리 가족은 대통령령으로
거국적인 첫 행사를 치렀다.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탈락, 남편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빼빼로데이 행사도 대통령 마음대로였다.
몸치인 동주는 누나가 작사작곡율동까지 담당한 괴상한 노래를
며칠 동안의 강훈으로 모두 소화해야 했다.
행사 전 날, 아빠와 외삼촌 외숙모가 바쁜 일이 있어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하자
딸아이는 친한 친구 세 명을 제멋대로 초대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답게 민지는 두 살 아래의 남동생까지 데려와
참가자는 모두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우엉조림을 잘게 다져 넣은 유부초밥을 한 접시 만들고
분식집에서 사온 김밥 네 줄과 어묵찌개로 기본 식탁을 차린 후
메인 요리로 프라이드 한 마리와 양념치킨 반 마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순간적인 기지로
빨간색 모직 담요를 롱스커트라며 뚱뚱한 허리에 두른 후
아이들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동시 두 편을 낭송했다.
주하와 4-3반 소속 세 친구는 얼마 전 학예발표회 때 했던 깃발춤을
멋지게 재연했다.
딸아이의 깃발춤은 특히 얼마나 절도있고 씩씩한지
<어떤 나라>(북한의 소녀 둘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의
군무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남의 집은 아이가 부모님 앞에서 춤과 노래 등
재롱을 열심히 부린다는데,
우리 집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결혼식날에도 안 입은 뻘건 드레스를 입고......
이런 기록은 꼭 필요하다.
나중을 위해서......
('양질의 모정'의 증거자료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