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괴물이 한두 마리쯤은 숨어 있다고 늘 생각한다.
수효가 문제일 뿐,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깊고 깊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좁고 더러운 감방 안에 추악한 괴물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김영하 <포스트잇> 책 맨 앞에...)
영화 <괴물>을 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한강 둔치 어드메쯤의,
주인공 가족이 생계를 의탁하는 손바닥만한 매점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조그만 콘테이너 박스 안 진열대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바람개비와 풍선, 뻥튀기, 캔맥주, 음료수, 과자, 컵라면, 유동골뱅이, 캐러멜, 막대사탕, 껌......
시도때도 없이 추리닝 하의 속에 손을 넣어 북북 긁어대는 양아치스럽기 짝이 없는 송강호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손님의 주문으로 오징어를 굽다가 아버지 몰래
오징어 다리를 하나 떼어먹는 모습, 그리고 들켜서 아버지 변희봉에게
잔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나는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런 소소하고 퀴퀴한 일상 속으로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군 부대에서 한강에 몰래 방류한 독극물이 씨가 되어 올챙이 같은 모습으로
낚시꾼의 시야에 잡히다가, 약 2년 후 엄청난 괴물로 출현한 것.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덮치고 닥치는 대로 해치는 장면보다
수면 속에서 부글부글 거대한 생명체로 자라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영화의 앞 장면이
가장 무서웠다.
매점과 함께 내 눈에 눈물겹게 보여진 곳이 동네 변두리의 작은 세탁소.
쫓기는 박해일과 몰래 접선한 선배가 세탁소 앞에 걸린 양복을 몰래 훔치는 장면에서
그 불켜진 세탁소의 아늑함이라니.....
세탁소 주인은 증기를 팍팍 뿜으며 손님이 맡긴 드라이크리닝이 끝난 옷을 다리고,
그의 아내는 재봉틀 앞에서 누군가의 바지 밑단을 줄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단한 노동과 남루한 일상도 <괴물>이라는 영화 속에서는 파라다이스로 보였다.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에서 작은 문방구를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키는
뚱뚱한 처녀의 일상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한강 둔치의 손바닥만한 매점 안이다.
조금전,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잇>을 꺼내들었는데 이 작가 다짜고짜
서문을 괴물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평소 군것질과 싸구려 소소한 장난감 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나는
봉준호 감독이 괴물을 통해 전달하려는 어떤 메시지보다 매점 풍경에 그만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밥통까지 갖추고 뜨신 밥을 지어 소년과 마주앉아 밥을 퍼먹는 장면은 얼마나 정겹던지.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한 초등학교 내의 작은 문구 코너에서 두어 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구나.
어쩐지 그 초라하고 작은 공간이 몹시 땡기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