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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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지금의 현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때 말이다. 오래전 침잠하던 시절 모든 게 아득했다. 잠이 들고 아침을 맞는 반복된 일상이 무의미했고 진짜는 달아난 가짜의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무기력한 숨어들기 위한 변명이었던 것 같다. 최진영의 장편소설 『단 한 사람』을 읽으면서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작은 섬의 두 그루 나무로부터 시작되는 신비로운 설화 같은 이 소설은 좀 묘하다.


묘하다는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인간의 존재 이전 태초의 나무가 서로를 바라보며 성장하여 숲을 이루는지, 나무가 인간과 어떻게 이어져 인간의 죽음과 생명에 개입하는 과정을 들려준다고 할까. 아니, 그 모든 걸 상상하게 만든다고 하는 게 맞을까. 어쩌면 인간의 생과 사를 지켜보는 한 나무(신이자 자연)를 통해 전하는 계시인지도 모른다.


나무에 이어 소설은 장미수가 신복일과 낳은 다섯 남매로 시작한다. 세 딸 일화, 월화, 금화와 쌍둥이 목화와 목수는 자란다. 아들인 막내 목수는 누나가 아닌 언니라 부르며 지낸다. 금화는 쌍둥이를 데리고 숲으로 간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커다란 나무가 금화를 덮쳤다. 목화가 어른들을 부르러 간 사이 금화는 사라졌고 목수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목수는 그날의 기억을 잃었고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목화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열여섯 봄 목화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죽고 있었고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받으라고 했다. 단 한 사람만.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왜 단 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 한 사람도 목화가 정할 수 없었다. 꿈이었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다. 엄마 장미수, 할머니 임천자로 이어지는 믿을 수 없는 숙명이었다. 엄마 장미수가 늘 피곤했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할머니 임천자는 그냥 받아들였다. 누군가를 구하는 것 그것만으로 족했다. 하지만 엄마 장미수는 달랐다. 거부하고 경멸했다. 목화는 의미를 찾으려 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능력이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임천자는 묵묵히 장미수의 아이들을 돌보고 장미수는 자신이 끝이기를 바랐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그 모든 것을 목화는 첫 소환에서 깨달았다. (92쪽)


목화가 단 한 사람을 구하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무자비한 죽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안타까운 사고에서 가해자를 살려야 할 때 따르고 싶지 않았다. 비관했던 목화는 점차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인지. 꿈이라 여겼지만 자신이 누군가 구한 일은 현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기사를 검색하면 알 수 있었다. 목하는 자신이 구한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구한 단 한 사람. 그들은 목화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리고 목하는 그 일을 중개라고 부르고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을 받아들인다. 다행인 건 목화 곁을 지키는 목수가 있었다. 소환되어 사람을 구하는 동안 목수는 목화 곁을 지킨다.


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날 목수는 그 말을 기록했다. (104쪽)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148쪽)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누군가. 예외 없이 그를 향해 하는 말, 사랑한다는 말. 작가가 나무를 통해 전하고 싶었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능력, 대를 이어진 숙명. 목화 같은 사람이 어딘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 목화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구할 수 있으니까. 놓치는 일은 절대도 없을 테니까.


오직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신을 필요로 한다. 기적을 바란다. 먼저 떠난 존재가 너무 그리워 죽음 이후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08쪽)


아름다운 소설이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한다. 상처, 비관, 슬픔, 상실, 죽음의 소용돌이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며 전부를 내어주는 나무처럼. 어쩌면 나는 목화 같은 존재가 살려낸 단 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한 오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나의 몫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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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12-1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커피잔이 무척 잘 어울립니다. 이 책 칭찬이 자자하여 기대되네요^^

자목련 2023-12-17 15:25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 님의 첫 문장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ㅎㅎ
이 소설, 괜찮았어요^^

공쟝쟝 2023-12-1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얼마전에 본 영화 <너와 나>도 비슷한 맘을 먹게했는 데… 지금을 사는 뛰어난 작가와 연출가들은 그런 질문을 던지나봅니다.. 🥲

자목련 2023-12-17 15:25   좋아요 0 | URL
조현철 배우가 감독한 영화죠?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7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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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이건 뭐지? 하는 소설을 만난다. 놀람과 감탄의 연속이라고 할까. 알랭 로브그리예의 소설 『진』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도대체 나는 소설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드는 거다.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게 소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정도라고 할까. 아무튼 『진』은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은 알랭 로브그리예가 미국 대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그러니까 프랑스어 문법을 위한 교재로 쓴 텍스트로 시작한다. 아, 물론 프랑스어를 공부하지도 않고, 원서로 읽을 일이 없는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 이야기에만 집중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는 거다. 소설 중간에 시점도 알라지고 시제도 달라져서(아, 교재라서 그랬던 걸까?)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뭔가 비밀스러운 장면이 계속 이어져 독자를 그 비밀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제 소설을 이야기해 보자면 젊은 남자 '시몽'이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면접을 보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곳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진'이란 이름의 여자로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한다. 그 지시도 모호하다. 파리 북부역으로 가라는 것뿐. 역으로 향하던 시몽은 어느 건물에서 나온 소년이 쓰러진 장면을 목격한다. 소년이 죽은 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몽 앞에 ‘마리’란 이름의 소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소년이 죽지 않았다고 알려준다. 소녀의 말대로 깨어난 소년의 아름은 ‘장’이다. 마리와 장은 시몽을 인도하는데, 이상한 건 시몽이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독자인 나도 뭔가에 홀린듯하다.


정신을 추스르려고 무진 애를 쓴다. 내가 아직 처박혀 있는 어둠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더욱 힘겹게 할 뿐 아니라, 잠에서 깼다는 사실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내가 잠에서 깨는 꿈을 꾸는 동안은 그 잠이 연장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관념조차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60쪽)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장이 이끄는 대로 눈을 가리고 택시 비슷한 걸 타고 낯선 장소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깨어나고 그곳에서 마리를 만나는데, 그녀는 이미 죽었다고 자신을 설명한다. 아니, 이건 도대체 뭐지? 1981년에 쓴 소설이 SF 소설이었나? 과거의 기억 한 장면, 같은 장소 다른 인물, 환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점진적으로 기억이 희미해지고……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기억은 내게서 점점 더 멀어져…… 마지막 불빛, 조금만 더…… 그러나 아무거도 없다. 결국 짧은 환생에 불과할 터. 많은 이들처럼 내게도 빈번한, 덧없이 생생한 그 느낌을 나는 잘 안다. 이른바 미래의 기억이라 부르는 현상. (91쪽)


시몽은 그대로인데, 마리와 장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존재로 등장한다. 어쩌면 나는 소설을 잘못 읽고 있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소설을 계속 읽고 멈추지 않는 이유는 시몽이 맡은 임무가 무엇이며 진이 누구인지, 진의 실체가 궁금해서다. 면접 장소에서 진과 함께 등장한 마네킹, 눈을 가리고 도착한 곳에서 자신과 같은 모습(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든)을 한 수많은 남자, 그들에게 조직에 대해 설명하는 목소리.


그나마 안도하는 건 8장(그렇다. 이 소설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었다.)에 등장하는 ‘나’다. 나의 이름은 '진'으로 '시몽'이 면접을 보러 온 장소에서 시몽과 만난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장소, 소설의 처음이다. 프롤로그부터 7장까지 실재가 아닌 환상 같았다면 8장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는 진짜 소설이라고 할까. 하지만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마지막에 등장한 진은 진짜 진일까. 그녀는 소설 초반에 등장한 마네킹일지도 모르고 어린 마리의 다른 버전일지 누가 알겠는가. 중절모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표지의 인물이 분명 진이라고 생각하다가 진짜 그럴까 의심한다.


실험적인 소설이다. 내게는 그렇다. 짧은 분량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가득하다. 미스터리, 타임슬립, 추리소설,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소설이니까. 같은 듯 다른 이미지로 변모하는 인물, 하나의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능력으로 미로 같은 소설 속에 독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이상한 건 그게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더 복잡한 미로를 경험하고 싶은 매력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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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모호하군요 ㅋ 자목련님 리뷰 읽어보니 어라? 읽어볼만 할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ㅋ

자목련 2023-12-15 12:11   좋아요 1 | URL
모호하지만 지루한 모호함은 아닌.
새파랑 님, 즐겁게 만나시길~~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궁금한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12월의 책 구매는 이 소설들로 끝을 내려고 한다. 현재는 그렇다. 사실, 사진의 맨 아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은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알라딘에 들어가 구매내역을 살펴보니 11월의 첫날이었다. 잠자냥 님의 리뷰를 보고 산 책이었다. 무려 40일을 방치(?)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 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으려고 다짐한 책들은 왜 이리 많은가. 이제 겨우 20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좋은 소설을 발견하는 일은 기쁜 일이다. 이미 좋은 소설을 쓴 작가가 쓴 다음 소설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그래서 『맡겨진 소녀』로 만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읽기 전에 기쁨이 한가득이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진』도 기대하는 소설이다. 물론 겨울이니 『소설 보다 : 겨울 2023』도 읽어야지. 가을 2023을 다 읽지 못했지만 말이다. ㅎ




누군가 연말에 많은 송년회를 하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싶다. 아니, 읽어야 한다. 지금의 게으름에서 일어나 읽어야 한다. 12월의 소설을 읽고 미처 읽지 못한(아, 너무 많구나) 책들도 차곡차곡 읽어야 한다. 도대체 뭐 하느라 책도 안 읽는지. 이러다 책들의 미움을 한가득 받을 것 같아 무섭구나.





12월의 소설은 하나같이 얇다. 열심을 내야지. 얇다고 나중으로 미루면 또 책장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 소설인지는 나만 아는 것도 좋겠다. 먼저 읽은 사람은 바로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정확히 도착했다. 여섯시 반. 벌써 거의 어두컴컴하다. 창고는 닫혀 있지 않다. 나는 자물쇠가 없는 문을 밀면서 들어선다. 내부는 온통 조용하다. 좀더 바짝 귀를 기울이자, 꽤 가까운 곳에서 맑은 소음 하나가 규칙적으로 탐지된다. 제대로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 물이 새면서 통이나 대야 또는 고인 웅덩이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읽지 않은 소설을 생각하는 일, 제목만 보고 소설을 상상하는 일, 즐거움이다. 체득하는 즐거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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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1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2월 책 네권이 딱 아담하고 읽고싶어지는 두께네요~!!
제목에서부터 좋아보입니다~!!

자목련 2023-12-11 11:50   좋아요 2 | URL
네, 얇아서 빨리 읽을 것 같기도 한데..
모두 기대하는 소설이에요!

잠자냥 2023-12-11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40일이나 방치하다가 발견! ㅋㅋㅋ
올해가 가기 전에 읽으세요.
그리고 <진>은... 이미 사셨네요. 제 리뷰 읽고 사신다고 했는데 리뷰가 오늘 올라옴;;;

자목련 2023-12-11 11:50   좋아요 1 | URL
<소네치카>, <진> 모두 자냥 님 리뷰 덕분에 탱투하고 샀어요. <진>리뷰도 좋을 거라 여기고!!

거리의화가 2023-12-11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0일 방치에 저는 몇 년간 묵힌 책도 많은데 중얼거리며 자괴감에 빠져듭니다^^;;; 얇은 책들이 오히려 더 내용이 더 압축적인 경우가 많아 읽기 어렵더라구요. 자목련님 남은 12월 즐거운 독서 생활 이어가시길!

자목련 2023-12-12 17:12   좋아요 0 | URL
몇 년간 묵힌 책은 당연 무지 많지요. 다만, 그 책은 책장에 보이거든요. ㅋㅋ
화가 님 말씀처럼 얇은 책이 읽기 어려운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레이스 2023-12-14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미안한 맘도 못느끼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 ㅎㅎ

자목련 2023-12-14 14:28   좋아요 0 | URL
아마도 서재 대부분의 이웃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희선 2023-12-1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십이월이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소설 만나시기 바랍니다 책을 사두면 언젠가 보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군요 출판시장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여전히 책이 많이 나오네요


희선

자목련 2023-12-15 12:28   좋아요 0 | URL
읽고 싶은 소설, 책들이 계속 나와서 걱정입니다.
희선 님, 비 오는 금요일 따뜻하게 보내세요^^
 
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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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소설이 반갑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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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2-07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항상 자목련님이 반갑고 궁금합니다.

자목련 2023-12-11 09:35   좋아요 2 | URL
이거 고백인가요? ㅋㅋ

잠자냥 2023-12-11 11:4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곰탱이 표정 진실성 1도 안 느껴지는....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2-11 18: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진짜 너무웃기고기엽게생겼죠ㅜ
하지만 오해를 부르는 얼굴일뿐... 전진심입니다 고백이고요!! 😍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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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시골도 항상 공사 중이다. 그러니까 빈 공터만 있으면 어김없이 아파트가 들어선다. 시골 인구를 생각하면 그 집을 누가 살까 싶지만 주변 아파트를 검색하면 빈 집도 없고 전세도 없다. 매번 드는 의문, 저렇게 집들이 지어지고 있는데 왜 많은 이들이 살 집을 구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다 보니 최근에 집을 소재로 한 책을 이어 읽는다. 김혜진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에서 만난 단편들도 하나같이 집, 공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 더 나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힘들어도 그 마음이 커지기를 바라게 된다.


김혜진은 이 소설집에서 집이 갖는 의미,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하나의 집에 관련된 이들, 집을 소유한 집주인, 그 집에 살고 있는 거주자, 관리인, 부동산 업자까지 집을 향한 마음을 통해 집이 무엇이냐 묻는 동시에 나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8개의 단편 모두 좋았지만 그 가운데 조금 더 좋았던 단편은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나 서로를 챙기며 가족처럼 지내지만 결국 이사를 두고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마는 '만옥'과 '순미'의 이야기 「목화맨션」, 한때 자신이 살아왔던 빌라의 관리인이 되어 빌라를 청소하고 세를 독촉하고 세입자들에게 소유주의 뜻을 전하는 일을 하는 '호수 엄마'의 이야기 「산무동 320-1번지」, 누구와 사느냐에 따라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사랑하는 미래」였다.


서로를 처지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힘들어도 살만하다고 느낀다. 「목화맨션」속 '만옥'과 '순미'가 그랬다. 순미는 집주인 만옥을 언니처럼 대하고 뭐든 나누려 했다. 세입자와 친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옥은 그런 순미가 고마웠다. 재개발이 될 거라는 말에 사들인 '목화맨션'에서 순미는 8년을 살았지만 만옥이 사정이 생겨 집을 팔게 된 상황이 오자 둘 사이의 단단한 우정은 헐거워진다.


집을 두고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둘은 어땠을까. 「산무동 320-1번지」의 호수 엄마도 그런 처지였다. 자신이 살던 곳이 얼마나 열악한 공간이지 잘 알지만 집 주인의 말과 세입자의 말을 그대로 전할 수 없었다. 잘 아는 처지였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철거될 공간이라 누구도 돌보려 하지 않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의 삶이 지속되는 곳이다. 세입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호수 엄마'의 삶도 그곳에 있었다.


창 너머로 서서히 멀어지는 산무동 일대가 그들 부부에겐 마지막 직장이고 어쨌든 지금은 그 빌라에 누군가 살아야지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으므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죽을힘을 다할 거라는 다짐을 되뇌면서였다. (「산무동 320-1번지」, 171쪽)


「목화맨션」과 「산무동 320-1번지」를 읽으면서 3층짜리 주택을 지어 1,2층은 세를 주고 3층에 사는 고모가 생각났다. 집 주인이었지만 오히려 세입자의 눈치를 보고 세를 올리지도 못하는 고모. 세입자에게는 마냥 부러울 주인이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집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편할 수많은 없다.


그래도 집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그저 빈 공간이었을 때에는 없던 애정이 살림살이가 들어오면 커지기 시작해서 누군가 함께 살게 되면 공간은 색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저 퇴근 후 잠을 자고 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어느 순간 반짝반짝 빛나는 마법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고 할까. 「사랑하는 미래」가 딱 그렇다. 일상의 재미와 즐거움은커녕 휴가 계획도 없던 ‘주인’이 '마크'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은 변화한다. 자발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눈다는 모임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마크는 배우를 꿈꾼다. 촬영 장소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주인의 집에 마크가 오게 되면서 집은 활기를 띤다. 친구는 그런 주인을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주인은 마크와 함께하는 미래를 고대한다. 주인이란 이름의 왠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집의 주인으로, 삶의 주인으로 사냐고 묻는 것만 같다.


멀리 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녀를 채근하던 조바심이 기대심으로 바뀐다. 그 순간, 그녀의 집은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아니다. 오랜 세월, 권태와 지루함을 견디며 낡아가는 그렇고 그런 주택이 아니다. 그 집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진실이 마음에 머물러 있다. 이 순간, 그녀의 집은 특별하고 유일한 장소다.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미래」, 227쪽)

집을 향한 마음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 집은 투자이자 상품이고 누군가 집은 안식처이고 누군가 절박한 공간이다. 나와 다른 목적을 지녔다고 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자신에게도 골칫거리가 아닌 좋은 기회를 안겨다 줄 집을 만날 희망을 하는 「이남터미널」 속 '남우 사모님'을 비난할 수 없다. 어쩌면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기대였고, 우려였고, 가능성이자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방향을 조금만 틀면 완전히 달라 보이는 홀로그램처럼 밤새 그녀의 내면에서 반짝거렸다. 아니, 그건 그녀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던 자신의 미래였는지도 몰랐다. 빛바랜 집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집들. 누구도 원하지 않고, 가지려 않는 집들. 그러나 길고 긴 세월을 이기고 견디며 살아남은 집들.( 「이남터미널」, 113쪽)


그런 마음은 재개발 동네에 살면서 집을 대하는 어른들이 이상하게만 보이는 「20세기 아이」속 아이 '세미', 사는 곳이 좁아서 이사 가고 싶은 손녀를 위해 보험비를 더 타고 합의금을 받으려는 「자전거와 세계」 속 할머니, 집 청소를 하는 '인선'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축복을 비는 마음」 속 '경옥'의 마음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더 나은 공간을 바라는 마음, 가까운 이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소중한 사람의 축복을 비는 마음, 그 마음은 바로 모두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걸 알기에 우리가 머무는 곳이 삶이 피어나고, 따스함이 전해지는 특별하고 유일한 공간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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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자목련 2023-12-07 10:49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포근한 연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