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오늘이 9월 1일인 것 같다. 8월은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더위에 약한 나는 올여름을 조금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먹고사는 일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내가 먹자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끓이고 데치고 볶는 일이 정말 귀찮았다. 움직이지 않고 멈춘 채 모든 게 내 앞으로 이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2024년 여름, 정확하게는 8월은 유독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8월이기도 했다.


지난번 꺼냈던 삼계탕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실패한 삼계탕, 열심히 먹었지만 끝내 다 먹지 못한 삼계탕 이야기.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한몫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삼계탕은 닭죽의 개념이 컸다. 할머니, 아버지, 오빠를 위주로 식단이 꾸려졌다. 이효리가 엄마와 여행에서 오징어 찌개 먹으면서 자신의 그릇에는 오징어도 몇 개 없었다는 말처럼 언니들과 나의 국그릇에는 닭고기는 없었다.


삼계탕으로 돌아오면 삼계탕을 끓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인삼을 비롯한 약재를 넣은 게 아니라 닭, 찹쌀, 마늘만 넣어도 충분했으니까. 냄비가 아닌 전기압력밭솥이 만들어줄 삼계탕이었으니까. 그냥 닭만 잘 손질하고 찹쌀을 품은 닭을 만들면 그만이라고 나는 착각했다. 우선 재료부터 실패의 전운이 돌았다. 작은언니가 사다 준 닭은 너무 컸다. 진짜 컸다. 10용 밥솥에 안착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닭 다리는 예쁘게 포갤 수 없었고 힘을 주어 잘라내야 했다. 급환 마음에 찹쌀을 불리는 것도 잊었다. 어떻게든 밥솥에 넣고 삼계탕 메뉴를 선택했다. 기다리면 되는구나 여겼다.


갈비찜을 해 본 경험을 믿었다. 물론 갈비찜은 훌륭했다. 나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삼계탕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압력 추가 흔들렸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맞이할 주방의 최후를 말이다. 삼계탕이 완성되었다고 친절한 목소리가 말려주었다. 밥솥을 열기 전 나에게 닥친 시련을 보았다. 밥솥 주변이 기름이 가득했다. 김이 빠지면서 상부장에도 기름의 흔적이 남았다. 처리는 뒤로하고 밥솥을 열었다. 아니, 젓가락으로 닭은 찔러보니 깊숙이 들어갔다. 문제는 찹쌀이었다. 찹쌀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 밥솥 뚜껑을 닫고 대충 정리 후 삼계탕 메뉴를 선택했다. 사진은 교훈을 삼으려 남겼다. 잘 보면 찹쌀이 익지 않은 게 보인다.





2시간을 들여 만든 삼계탕은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뒷정리는 힘겨웠다. 기름을 닦아내는 일, 밥솥 청소는 덤이었다. 그리고 삼계탕을 먹는 일이 남았다. 문제는 양이 많다는 것. 나는 끼니 때마다 삼계탕을 먹었고 결국엔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 것도 있다. 나는 닭으로 만든 요리를 좋아한다. 치킨, 닭찜, 닭볶음탕, 모두 잘 먹는다. 달걀도 좋아해서 삶은 달걀, 장조림, 달걀 프라이도 좋아한다. 하지만 당분간 삼계탕은 먹을 자신이 없다. 내년에는 삼계탕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냥 배달시켜 먹을 것이다.


재미없는 삼계탕 말고 책 이야기를 해 보자. 김애란과 조해진의 신간이 나왔다. 둘 다 장편이다. 이승우의 산문도 나았다. 궁금한데 선뜻 구매는 안 했다. 이상하다. 잘 모르겠다. 조금 천천히 읽어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이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


길고 길었던 8월이 가고 9월이다. 9월에는 조금 더 신나게 조금 더 명랑하게 지내고 싶다. 책도 좀 열심히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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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9-0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찹쌀이 생쌀이네요?! ㅋ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내년부터는 꼭 사드세요~ ㅋㅋㅋㅋ

자목련 2024-09-03 11:24   좋아요 0 | URL
맛집까지는 아니어도 식당에 가거나 배달 시키려고요 ㅋㅋㅋ

망고 2024-09-0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삼계탕 먹었어요^^ 제가 한 건 아니고요ㅋㅋㅋ 요리는 정말 재료준비랑 정리하는게 너무 짜증ㅋㅋㅋㅋㅋ자목련님 수고하셨네요 다음부턴 시켜먹읍시다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9-03 11:24   좋아요 0 | URL
맛있는 삼계탕을 드셨을 것 같아요!
잘 하는 집에서 배달하는 걸로^^

다락방 2024-09-02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삼계탕의 처참한 모습..
뒷수습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이 글 읽고 삼계탕은 사먹자고 외워둡니다!!

자목련 2024-09-03 11:25   좋아요 0 | URL
삼계탕을 쉽게 본 제 실수 ㅎㅎㅎ
우리 맛있는 삼계탕을 사 먹도록 해요^^

페넬로페 2024-09-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은 정말 너무 더웠어요.
불 옆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힘들지만, 재료를 다듬고 먹고 나서 정리할 때까지 드는 수고도 엄청나요
ㅠㅠ
외식비나 배달비가 비싸 웬만하면 집에서 직접 해 먹으려고 하니 더 힘든 것 같아요.
요즘 삼계탕 한 그릇이 거의 이만원 가까이 하더라고요.
닭 한마리에 이것저것 넣어 푹 삶으면 되니 저는 ‘집에서 요리해 먹자‘파 입니다. ㅎㅎ
내년엔 찹쌀 불리는 것, 잊지 말기!

자목련 2024-09-03 11:26   좋아요 1 | URL
내년 여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식당에 가서 먹기를 권장합니다 ㅎㅎ
페넬로페 님이 직접 요리하신 녹두가 들어 간 삼계탕은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4-09-0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위에 무척이나 취약한
닝겡이랍니다. 더위여 제발
가라 ~

지난 주말에 냉동실 정리를
했는데, 오리 닭 정리하다가
손에 기름이 묻어서 정말 고
생했답니다. 손을 닦아도 닦
아도 냄새가 지지 않더라구요.

신간이 나오면 왠지 사야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또 한편
으로는 당장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 공감합니다.

자목련 2024-09-03 11:27   좋아요 1 | URL
낮에는 뜨겁지만 그래도 서늘한 날들이 시작된 게 느껴져요.
냉동실 오리는 무슨 요리가 되었을까요?

책들 구경하다가 몰랐던 신간 소식을 듣고 고민합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4-09-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백숙으로 해 먹는데 압력밥솥보다는 냄비에다가 하는 게 뒷처리가 쉽더라구요. 기름이 참 짜증나죠? 고생하셨어요. 😓

자목련 2024-09-03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다음에는 그냥 백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ㅎㅎ
기름 청소는 끝이 너무 멀어요!!

독서괭 2024-09-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응급실이라니요. 괜찮으신거죠 자목련님? ㅜㅜ 김애란 신간 반갑습니다. 다 읽고 리뷰 못 쓰고 있는 1인…

자목련 2024-09-03 11:30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음급실, 괜찮습니다. 독서괭 님 고맙습니다.
김애란 신간 벌써 읽으셨군요. 좋으셨나요? 좋았겠죠!!

2024-09-02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9-0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먹자고 나를 위해 삼계탕을… 자목련님… 멋짐이 폭발합니다 ㅋㅋㅋ 실패하면 어쩝니까 ㅋㅋㅋ 복날에 셀프 삼계탕 끓이기라는 자기애의 실천! 본받겠사옵니다! (저녁 설거지하기 싫은 쟝쟝)

자목련 2024-09-03 11:33   좋아요 0 | URL
요리를 해 줄 이가 없으니 내가 먹자고 나를 위해서 합니다 ㅎㅎ
설거지는 정말 귀찮지만!
나를 위해서 책도 주문하고 쇼핑도 하고 ㅋㅋㅋ

구단씨 2024-09-0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기름지고 영양(?) 덩어리 음식을 먹는 건 좋은데 뒷수습은 고생이죠...
저희는 가끔 포장 삼계탕을 먹거나 식당에 가서 먹습니다.

지독한 여름이었네요. 오늘은 그래도 바람이 조금 불어서 숨이 쉬어졌습니다.

자목련 2024-09-03 11:35   좋아요 0 | URL
포장 삼계탕, 식당에 가서 먹는 삼계탕이 좋습니다.
닭을 사는 일은 자중해야 합니다 ㅋㅋㅋ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평온한 날들 이어가세요!

거리의화가 2024-09-0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독한 더위에 삼계탕을 직접 시도를 해보셨다는 것 자체만으로 박수받을만한 일입니다!
맛은 괜찮았다고 하셨지만 뒷수습 때문에 힘드셨겠어요ㅠㅠ 많은 양을 계속 먹는다는 것도 그렇고요.
음식 재료부터 만드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내년 여름에는 꼭 삼계탕 사서 드시기를!^^

자목련 2024-09-03 11:36   좋아요 0 | URL
사다 둔 닭이 노려보고 있어서요 ㅎㅎ
닭이 커서 정말 고생했어요. 음식을 버리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ㅠ.ㅠ
올여름은 여러모로 특별한 여름이에요^^

청아 2024-09-0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삼계탕을 먹어보질 않았네요. 복날에도 닭한마리 사먹었어요ㅋㅋㅋㅋㅋ
자목련님 고생하셨습니다. 서재 분위기가 더 화사해졌네요!

자목련 2024-09-03 11:37   좋아요 1 | URL
내년 복날에는 삼계탕이 아닌 치킨을 먹어야겠어요. 맥주랑!!
서재를 둘러봐 주셔서 감사하고요^^

꼬마요정 2024-09-0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계탕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크으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건 정말 멋집니다. 하지만 뒷수습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내년엔 꼭 맘에 드는 삼계탕 드시길 바랍니다^^

이제 정말 여름의 끝이 보입니다. 추석 때까지 덥긴 하겠지만, 8시가 되도록 지지 않던 해가 7시만 되어도 안 보이니 말입니다. 계절이 참 신기합니다. 응급실 다녀오셨다는데 이제 괜찮으신가요?

자목련 2024-09-04 11:44   좋아요 1 | URL
내년에는 색다른 보양식을 먹고 싶습니다!
어쩌다 보니 응급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낮의 열기도 사라질 것 같아요.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결 고운 천사들 - 두푸딩 언니의 동물 구조, 그 10년의 기록
두푸딩 언니 이현화 지음 / 시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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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 아이가 좋아해서, 아이들이 다 커서, 어쩌다 보니, 정이 들어서. 이유는 다양하다. 덕분에 나도 이름을 아는 아이가 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안부를 묻기도 한다. 친구의 식구이니 나도 챙기는 거다. 반려인의 인구가 늘고 있지만 나는 반려인에 속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임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마냥 예뻐서, 충동적으로 반려동물과 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평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는 그렇다. 그래도 냥이와 강아지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다. 봉사활동을 하거니 정기적인 기부에 동참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해한 적도 없다. 뉴스를 통해서 듣는 소식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며 지나쳤던 게 전부다. 때문에 이현화의 『결 고운 천사들』를 읽으면서 나는 많이 놀랐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더욱 놀랐다.


반려인이나 유기견 구조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두푸딩 언니로 잘 알려진 이현화는 『결 고운 천사들』을 통해 유기견 구조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물 구조 10년의 기록은 참혹하면서도 따뜻했고 감동을 안겨주었다. 유기견을 구조하고 돌보는 일은 방송에서 연예인의 봉사활동이나 캠페인으로 본 게 전부다. 이효리를 꼽을 수 있다. 이효리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통해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의미와 기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외 입양에 대해서도 이효리가 출연한 방송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 이효리 이야기는 그만하고 두푸딩 이현화가 들려주는 유기견 구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반려견 두부와 푸딩을 키우는 닉네임 두푸딩 언니는 반려동물 동반 렌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동물 구조 활동가다. 사실 나는 동물 구조에 관해 잘 몰랐다. 고백하자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펫숍이나 번식장 개의 학대와 방치에 대해서도 뉴스에 언급되는 사건만 알뿐이었다. 구조되었다는 뉴스만 기억할 뿐 그 이후에 구조된 이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유기견들이 동물 보호소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10일이라는 것도 몰랐다. 임보(임시보호)란 말은 들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말 그대로 잠시 데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 기간 동안 함께 지내는 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두푸딩 언니는 특히 노견, 환견, 장애견을 구조에 집중한다. 이 책에서 만나는 구조견의 사연은 하나같이 아프다. 병이 들어서, 장애가 있어서, 나이가 많아서 입양은커녕 구조조차 하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건 구조 이후의 상황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구조를 한 경우 대부분 수술과 재활 치료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는 모두가 예상하듯 경비가 필요하다. 단 한 번의 수술비가 아닌 지속적인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고민할 법도 한데 두푸딩 언니는 주저하지 않고 행동한다. 그녀와 같은 마음의 후원자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수술을 해주는 동물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결 고운 천사를 지키려는 결 고운 마음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구조 후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던 아이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 구조된 개가 방송에 노출되어 이슈가 되는 경우에는 구조 요청 당시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던 단체가 구조된 개를 데리고 가겠다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조 활동이 아니라 후원금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허탈하고 가슴이 아플까. 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직접 겪고 이별해야 하는 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책을 통해 나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미용 실습견의 존재와 작고 예쁜 강아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용 실습견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이용만 하는 경우, ‘티컵 강아지’(찻잔 속에 들어갈 만큼 작은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미숙아를 태어나게 하는 행태는 경악 그 자체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상당수는 동물을 그저 예쁜 인형으로 생각해 가지고 놀다가 짐이 되면 키우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시작하지만 결국엔 동물을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동물을 버리게 되는 그 애정과 무책임의 교집합, 모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반려동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초래된다. (210쪽)


모두가 알다시피 구조견을 구조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만큼 이후의 삶도 책임져야 한다. 두푸딩 언니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그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의 끝도 같아야 한다는 것.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파양하고 몰래 버리는 행동의 시작에 어떤 마음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일의 위대함과 무게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35쪽)


유기견을 입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구조의 마지막인 입양은 두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한 아이가 좋은 가족을 만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위기에 처한 다른 유기 동물을 구해서 데리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70~271쪽)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하면서도 응원할 책이다. 구조와 봉사는 하지 못하더라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준다. 반려견과 살아갈 계획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며칠 전 본 드라마 속 장면이 함께 떠올랐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 사랑하고 길들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

여우가 말하자, 왕자도 읊조립니다.

“난 나의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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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8-2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고 길들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구절에 공감합니다. 저도 올 초에 앵무새 한마리를 떠나 보냈습니다. 동물도 마음이 있어서 인간하고 정말 교감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떠나 보낼땐 그에 따른 슬픔도 극복해야 하더라구요. 슬픔도 책임의 한 부분인 것 같아 이제는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자목련님의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자목련 2024-08-30 10:23   좋아요 1 | URL
앵무새와 작별하셨군요. 잘은 모르지만 여전히 허전하고 슬프실 것 같아요. 생명의 존귀와 책임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마힐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이어가세요^^
 
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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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나를 잊었다. 어떤 아이였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어른이 된 것처럼. 그 시절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펭귄 하이웨이』속 귀여운 주인공 아오야마를 만나면서 어린이였던 내가 생각났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살기를 꿈꾸며 TV 속 세상을 흠모하던 나.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 물로 아오야마는 훨씬 훌륭한 어린이다. 매일을 기록하며 모든 걸 연구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어린이. 멋진 어린이였다. 어른인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세계를 꿈꾸는 어린이.


SF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반할 주인공이다. 그래서 나는 아오야마의 연구와 그런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린 시절에 상상력을 다 소진해서 그런지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어른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좋은 아버지와 훌륭한 아들이라고 할까.


소설을 엉뚱하다. SF의 조건을 충족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의 등굣길에 펭귄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상한 모습이다. 거기다 그 무리는 이동 중에 사라지고 만다. 그 펭귄은 어디서 왔을까,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놀라지 말기를 바란다. 그 펭귄을 만들어낸 이가 있으니까. 그는 바로 아오야마가 다니는 치과의 누나다. 아오야마와 체스를 두는 누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의심하지 않는다.


신기한 건 계속 등장한다. 아오야마와 친구가 숲속을 탐험하면서 발견한 기인한 생물체인 ‘바다’. 자신만의 연구 노트를 지닌 아오야마와 하마모토, 그리고 우치다. 펭귄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만들어내는 누나. 이상한 건 펭귄을 만들고 난 후 누나가 아프다는 사실이다. 숲속에서 발견한 ‘바다’는 나름의 규칙대로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아오야마와 친구들은 ‘바다’와 누나가 밀접한 관계라는 가설을 세운다. SF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게 뭔 소린가 할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어린이 아오야마를 떠올리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훌륭해지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 아오야마 곁에 친구들과 아버지가 없었다면 소년의 노력은 헛된 것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큰 의미가 된다는 걸 안다. 치과 누나는 펭귄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아오야마의 질문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주고 답해준다. 누군가는 단순하게 재미있는 판타지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성장소설이라 할 것이다. 나는 예쁜 철학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 아오야마와 우치다가 나누는 죽음에 관한 대화, 세계의 끝에 대해 아버지와 아오야마의 대화가 그렇다. 엉뚱한 생각을 그만 두고 공부나 하라고 할 어른의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난 살아 있는 동안 여러 사건을 만날 거고, 그때마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어. 어떤 순간이든 그 어느 한쪽이겠지? 그때마다 세계는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게 돼. 그래서 난,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반드시 이쪽의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한쪽 세계에 있는 너는 죽은 거잖아? 그쪽 세계에 내가 있는 거라면, 난 우치다는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너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난 반드시 살아 있어. 가지가 갈라질 때마다 난 이쪽의 사는 쪽으로, 계속 사는 쪽으로 나아갈 거야.” (아오야마와 우치다의 대화, 322쪽)


“거기에도 세계의 끝이 있구나.”

“어디요?”

“네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넌 어떻게 할 수 없는 그것 말이야.”

“난 아직도 세계의 끝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무척 까다로워요.”

“그래도 모두 세계의 끝을 봐야 해.” (아버지와 아오야마의 대화, 417~418쪽)


내 앞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체스판에서 박쥐가 피어오르고 망고가 나무가 아닌 우산에서 열린다면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와의 만남, ‘바다’처럼 이상한 생물이 그 정점에 있다면 그 모든 걸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렇게 계속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상상력이 바닥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아오야마가 얼마나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 확신하고, 먼 훗날 치과 누나를 좋아했던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청년 아오야마를 생각하면 기분 좋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기분 좋은 소설이다. 명랑하고 명랑한 SF소설이다.


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매우 빠르게 달려갈 작정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의 신념이다. 오늘 계산해봤더니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3000 하고도 748일이 남았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면 내가 얼마만큼 훌륭해져 있을지 짐작도 안 간다. 나는 분명 밤이 되어도 졸리지 않는, 하얀 영구치를 갖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419~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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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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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상식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인간의 행동.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욕망을 부정할 수 없지만 비뚤어진 욕망은 제재가 필요하다. 올바른 길로 이끌 어른 같은 존재도 필요하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야말로 그런 어른이 아닐까. 조만간 AI가 존경받는 어른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캐드펠 수사가 존재하면 좋겠다. 서두가 길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를 만나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이야기엔 나환자가 등장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르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는 수도원 가까이에 있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으로 향한다. 주로 나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환자들에게 허브 치료제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캐드펠을 보자 그곳에 있던 마크 수사는 반가움을 표한다. 캐드펠의 조수 마크 수사는 제법 어엿한 수사의 모습이 보인다. 때마침 수도원에서 혼례식을 치를 예정인 귀족들이 도착하는 날로 병원 앞을 지나는 일행을 보기 위해 나환자들이 가득했다. 귀족을 호위한 이들이 나환자들을 몰아내고 소리를 지르자 피했지만 유독 한 사람만은 꼿꼿하게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의 이름을 라자루스, 보통의 나환자와 달랐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의 주인공일까.


그건 그렇고 신랑 휴언 드 돔빌은 육십을 바라보는 노인이었고 신부 이베타는 겨우 열여덟 살이라는 사실에 캐드펠은 경악한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이런 혼례를 승낙했을까. 소녀의 보호자는 부모가 아닌 외숙 부부였다. 소녀에게 남겨진 막대한 유산을 갖기 위한 거례가 바로 이 혼례였다. 외숙 부부에겐 무사히 이 혼례식을 마치는 게 중요했다. 조카딸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선 안 되었다.


그런데 혼례식 당일, 아무리 기다려도 신랑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제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다행인데 들려오는 소식은 돔빌의 사망 소식이었다. 혼례 전날 하인도 없이 혼자 수도원 밖을 나갔다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밤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타고 어디로 가려 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베타의 주변 인물이 용의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베타를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돔빌의 하인 조슬린이었다. 돔빌도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해고했다. 이쯤 되면 나 같은 독자도 알 수 있다. 용의자가 된 조슬린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도망친 조슬린은 나환자가 있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조슬린은 친구인 사이먼의 도움으로 이베타에게 연락을 하고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얼굴을 가렸지만 손이 깨끗한 새로온 환자를 마크 수사는 조용히 관찰한다. 그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게 다 캐드펠 수사에게 배운 것이다.


마크 수사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둔 건, 약속이나 한 듯 그자를 감싸는 환자들의 행동이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설명도 없이. 고통받고 있는 환자 모두가 침묵의 연대로 그의 불행을 함께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 수사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히 그 물결을 거스르거나 그들의 판단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169쪽)


캐드펠 수사는 돔빌의 행적을 추적한다. 밤이 지나면 어린 신부를 맞이할 신랑이 향한 곳이 어디이며 그의 죽음으로 큰 이익을 얻을 이에 대해서. 돔빌의 조카 사이먼도 모른다고 하니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은 접어두자. 설마 우리의 캐드펠 수사가 놓치는 게 있을까.


말을 타고 나갈 때 썼던 모자가 시체에는 없었다. 시체의 근처에서 찾은 모자에는 캐드펠 수사만이 알아차릴 게 있었으니 바로 허브였다. 그 허브가 어디서 자라는 곳을 찾으면서 캐드펠 수사의 추리는 급물살을 탄다. 놀랍게도 돔빌에는 여자가 있었고 어디를 가든 동행하고 만남을 지속했다. 오랜 만남의 주인공이 배신감에 돔빌을 죽였을까. 진실은 달랐다. 여자는 단 한 번도 돔빌을 사랑한 적이 없었고 그 밤의 만남을 끝으로 수녀가 된 상태였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여자도 범인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이베타의 외숙부까지 살해당한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묘한 분위기의 나환자 라자루스의 정체와 범인이 밝혀지며 소설은 나름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마주하니 애처롭고 안타깝다. 부와 권력을 다 지녔지만 사랑은 얻을 수 없었던 돔빌, 오직 재산만이 전부였던 이베타의 외숙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마지막은 처량하다. 흉악하고 추한 인간의 욕망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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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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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있다면 알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슬픔은 객관화될 수 없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누군가 괜찮냐 묻고 누군가 괜찮아질 거라 말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괜찮아질 수 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말이다. 오롯이 혼자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있었기에,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말이다.


매튜 퀵의 장편소설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어 사라지고 싶은 순간, 현실을 부정하고 나만의 시간으로 도망치는 이를 가만히 지켜봐 주고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정하고 뜨겁게 안아주는 소설이다. 그들이 같은 상처를 가진 이라면 그게 가능하다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강력한 위로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의 루카스는 마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난 참사로 아내 다아시를 잃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슬픔을 공개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다. 모든 건 루카스의 정신분석을 맡았던 칼에서 보낸 편지로 이어진다. 칼 역시 머제스틱 극장 사고로 아내를 잃은 피해자였다. 그 사건으로 모두 열일곱 명이 죽었다. 도대체 극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사건과 칼이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궁금증을 안겨준다. 루카스가 칼에게 보낸 편지만을 통해 독자는 짐작할 뿐이다.


루카스에겐 비밀이 있다. 다아시가 천사가 되어 자신의 곁에 있다. 증거도 있다. 아침마다 다아시의 천사 날개 깃털을 모은다. 그건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이다. 오직 칼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다. 루카스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 다아시의 절친 질에게도 말해선 안된다. 루카스는 학교에서 상담 교사로 일했지만 사고 이후로 그만둔 상태다. 칼에게 정신 분석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게 일상의 전부다. 루카스의 일상은 머제스틱 극장 사고의 가해자 제이콥의 동생 앨리의 등장으로 변화한다. 앨리가 루카스 집의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왔다. 앨리 역시 마제스틱 극장 사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앨리를 상담했던 루카스는 앨리를 내보내는 대신 함께 지낸다.


앨리가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언인가 찾는다. 앨리의 제안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마제스틱 극장의 사고를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머제스틱 극장의 사건을 괴물로 설정하고 괴물을 어떻게 물리치고 나가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그건 사고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질을 비롯해 루카스의 친구들과 사고 관련자인 마을 사람들이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같은 상처를 지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담하며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그들을 연결시켰고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후, 비탄에 젖은 내 일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괴물처럼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운명에 감염된 사람 같았어요.”


“우리가 괴물로 만든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을 받은 사람들. 자신이 너무나 비천한 존재라고 느껴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 (134쪽)


루카스는 이 모든 과정을 칼에게 편지로 전한다. 앨리가 입을 괴물을 깃털로 표현하는 일부터 가장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전한 인물을 설득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칼에게 말한다. 루카스는 앨리와 함께 조금씩 나아간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영화 상영회를 할 때 루카스가 연설도 할 예정이다. 질이 끝까지 만류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루카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로 편지만큼 완벽한 게 있을까. 혼자만의 기록인 일기가 아닌 수신인이 있는 편지는 일종의 고백이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오래된 상처와 트라우마를 루카스는 칼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알기에 루카스는 앨리를 보살피고 보듬는 게 가능했다. 상처와 고통의 공간인 머제스틱 극장을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용기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더라도 말이다.


매튜 퀵의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아프지만 아름답다. 어둠을 통과하는 소설이다.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암담하고 온통 칡 흙 같은 어둠의 세계에도 끝이 있다고 말한다. 혼자만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라고. 처음엔 약하지만 연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삶은 단단하게 나가가는 거라고. 마침내 마주할 빛을 향해서 말이다.


저 빛 속에 우리가 있어.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머제스틱 마을 사람들이.

우리.

우리가 빛이에요.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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