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책을 읽으려고 했다. 아예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독을 하거나 집중을 해서 읽지는 못했다. 역시 연휴에는 뒹굴뒹굴이 최고다. 2월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벌써 절반이다. 올해 2월은 29일까지 있으니 하루를 번 셈인가. 아무튼 명절도 지나고 연휴도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2월이다.


2월의 책은 단출하다. 단출하다고 해서 2월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장담을 하지 않겠다. 아무튼 2월에는 이런 책을 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벌써 50번째다. 꼬박꼬박 챙겨 읽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일까 눈여겨보는 시리즈다. 이장욱의 소설은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구매했다. 그러니까 이장욱의 소설은 오랜만이다.


나머지 두 권은 계속 리스트에 읽던 책이다. 록산 게이의 『헝거(Hunger)』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 받기를 신청했지만 매번 구매에 실패했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은 영화로 먼저 만났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일부 장면은 기억에 담아 두었다. 소설로 읽고 싶었고 소설을 다 읽으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지금 읽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감탄하는 중이다. 작가가 생태학자라 그런 걸까. 지나친 비유가 아닌 꼭 맞는 적절한 비유와 묘사, 주인공 카야의 심리를 솔직하면서도 풍부하게 그려냈다. 습지에 흐르는 빛과 바다, 그 안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호흡과 성장이 눈부시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는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에서)


영화를 보았기에 사건의 전개나 결말에 대한 기대를 갖기는 어렵지만 영상이 아닌 소설을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이 있다. 소설의 감각이라고 하면 맞을까.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문장을 읽는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그 문장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싹을 틔우거나 준비하는 2월, 시골에서 2월은 아직 여유가 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할까. 어쩌면 숨 고르기 중인지도 모른다. 2월은 그런 달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4-02-14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영화보다 소설이 훠얼씬 좋았어요 저는 소설 먼저 읽고 영화 봤는데 영화가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자목련 2024-02-15 11:55   좋아요 0 | URL
그러니 영화를 먼저 본 저는 이 소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stella.K 2024-02-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설 연휴 마지막은 저도 암것도 안하게 되더군요. 뭐 평소 때랑 다름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ᆢㅋ 이왕 아무 것도 못할 거 영화나 보자했죠.
가재가...는 좋다는 사람 참 많았는데 여기서 보니 정말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24-02-15 11:54   좋아요 0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 좋았습니다. 기회 되시면 읽어보세요.
남은 2월 활기차게 보내시고요^^

coolcat329 2024-02-15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서정적인 작품이죠. 작가가 생태학자 출신이라 자연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구요. 저는 영화는 안봤는데 책이 더 좋을 거 같긴 해요.

자목련 2024-02-15 11:53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어보니 영화를 먼저 본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해요. 좋은 소설이었어요^^

은오 2024-02-1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헝거 저도 이번달에 읽었는데 자목련님 페이퍼에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역시 자목련님이랑 저는 통하는 사이~! 💕 2월 3일에 읽었네요. 저도 전부터 담아놨다가 절판된 바람에 중고로....🤣🤣
저도 어쩐지 연휴가 지나니까 더 잘 읽히는 느낌이에요. ㅋㅋㅋ 연휴는 싱숭생숭....

자목련 2024-02-16 08:50   좋아요 1 | URL
은오 님 헝거 읽으셨군요. 그것도 최근에. 근데 왜 백자평, 리뷰, 페이퍼 없죠?
뭐가 그리 바쁜가요? 잠자냥 님 흠모하느라 바쁜가요? 글도 써주면 안 되나요?

은오 2024-02-16 21:11   좋아요 0 | URL
계속 글 안쓰는 은바오에게 점점 단호해지시는 자목련님ㅠ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요즘 읽느라 바빠서 쓰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다 읽고서 빨리 또 다음 책 읽고 싶은 다급한 마음......인데 이제 정말 써야 할 시기인가봐요? ㅠㅠ
 
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아가신 엄마는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희미한 존재가 엄마가 아닐까 하는 그런 등장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마를 만나는 꿈이라 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큰언니는 뚜렷한 존재로 꿈에 나왔다. 이상하게도 큰언니의 꿈을 꾸고 나면 뭔가 위로 받거나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 큰언니가 엄마의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해진의 『겨울을 지나가다』를 읽으면서도 엄마가 아닌 큰언니가 생각난 것도 그 때문이다.


큰언니의 부재는 여전히 크다. 큰언니가 선택한 살림살이와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남은 가구와 화분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 동시에 그것들을 통해 나는 큰언니의 존재를 느낀다. 그러니까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이다. 조해진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곁에 없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것, 남겨진 것들에서 전해지는 사랑과 온기 말이다.


소설에서 화자인 ‘정연’은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고자 애썼다. 일을 정리하고 엄마 곁으로 내려왔고 엄마의 통증을 지켜보며 어루만질 뿐 통증의 고통을 줄일 수 없고 함께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아니,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일상, 엄마가 보낸 하루를 정연은 살게 된다. 엄마가 돌보던 '정미'란 이음의 개와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며 산책을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 팔던 칼국수를 만들었다. 엄마의 손길이 남은 식당, 냉장고에 남은 엄마의 김치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정연이 엄마의 털신을 신는 것을 시작으로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화장품을 바르고 정미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일, 엄마의 가까운 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전하는 일, 그것을 통해 엄마의 일상을 짐작한다. 엄마가 운영하던 ‘정미식당’을 아는 사람들, 손님들,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 엄마가 만든 칼국수의 맛을 아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사소한 대화, 그 안에 존재하는 엄마.


정연은 엄마의 맛을 재현할 수 없지만 엄마의 레시피대로 칼국수를 만들어 그 맛을 아는 이들과 함께 먹으며 엄마를 느낀다. 상실의 기억이 아닌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모과나무 아래 작고 둥근 봉분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상실의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애써 그것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을 것이다. 정미식당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정연은 현재의 삶이 충분하다고 느낀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132~133쪽)


부모의 부재는 언젠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부모뿐일까. 가까운 이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상실과 이별은 삶의 수순이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감당할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은 삶의 일부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동지冬至로 시작해 대한大寒을 지나 우수雨水로 끝나는 조해진의 『겨울을 지나가다』는 삭막하고 황폐한 상실과 슬픔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따뜻한 동행자가 된다. 그들이 나가지 못할 때 가만히 멈춰 그들을 기다려주고 다시 걷기 시작할 때 함께 걷는다. 날카로운 추위가 끝나고 곧 입춘이 온다는 걸 가만히 알려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을 지나고 환하고 포근한 봄이 온다는걸. 그리하여 다시 만날 겨울은 조금 덜 쓸쓸하고 조금은 덜 추울 거라는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4-02-0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해요. 인생이니 당연히 상실이 있는데, 나이들수록 더 무서워져요.

자목련 2024-02-07 14:08   좋아요 0 | URL
평범하면서도 담담한 내용인데, 경험한 바가 있어 더욱 공감하는 소설이었어요.
저도 큰언니의 옷을 입고, 물건을 사용하고 있거든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만들어졌다는 말은 좀 이상하고 나를 채운 것들은 무엇일까라고 말하는 게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어린 나를 돌본 손길,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알려준 이들, 개인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알아야 할 것들,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나는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까? 가장 가까운 이들의 영향은 언제나 막강하다. 그냥 지나칠 정도의 소소하고 사소한 것, 습득하지 않으면 끝내 모르고 말 작은 예절 같은 것, 그리고 선과 정의에 대해서 나는 누구를 통해 알게 되었는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삶의 기본적 존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아름답지만 비참하고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그저 중년의 가장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잔잔하고도 평온한 삶의 풍경이면서 추악한 삶의 이면을 들쳐내는 목소리다. 그렇다고 지독하게 불편하거나 괴로운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더 훌륭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사려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제 소설을 들여다보면 주인공 펄롱은 착실한 가장이다. 석탄 목재상을 하는 그에겐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이 있다. 풍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살림, 건강하고 예쁜 딸이 있으니 충분하다. 그럼에도 쉼을 위한 여유는 없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마저 내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 무엇이 필요한가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상념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바쁘게 살아온 시간, 쫓기듯 살아온 삶, 무언가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ㅡ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29쪽)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쪽)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와 자신을 거두고 돌봐준 미시즈 윌슨 덕분에 잘 성장할 수 있었다. 미시즈 윌슨에겐 그런 의무가 있었던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펄롱은 그분의 돌봄에서 시작되었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펄롱은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고 도우며 살았다. 자신은 운이 좋았다.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마주친 소녀를 지나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상관없는 소녀를 그냥 모른 척 지나쳐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펄롱은 아버지였고 자신의 딸들을 떠올렸다.


지역의 수녀회와 수녀원의 힘은 막강했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그 소문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미혼모와 그들의 아이들을 수녀원에서 어떻게 대하는지 말이다. 그저 소문과 무관하기를 바라며 살았고 자신의 딸들이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살았다. 그게 가장 현명하다고 믿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펄롱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를 거부할 수 없었다. 단지 딸 다섯을 둔 아버지라서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고 배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펄롱처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19쪽)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소녀와 함께 둘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펄롱은 가볍고 당당함을 느꼈다. 펄롱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냉대에 가깝다. 그러나 펄롱은 집으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는다. 아내 아일린과 딸들의 태도를 짐작할 수 없다. 어떤 내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자신이 받아온 것들을 소녀에게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다. 대단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것들로 자신을 이끌어 준 미시즈 윌슨처럼. 아마도 그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나아갈 것이다.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펄롱이라는 한 개인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을 따뜻하다고 믿는 펄롱의 믿음과 행동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이다. 그의 손길에 모두의 손길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그의 뭉뚝하고도 다정한 손길이 시리도록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전한다. 그 온기가 당신에게도 닿았으면 한다.


『맡겨진 소녀』에 이어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로 만나는 벅찬 감동을 기대해도 좋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02-0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제작되었군요!
이런류의 영화는 텍스트보다 좋기가 여간 쉽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문장 사이에 담겨있는 의미가 많은 소설이란 생각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자목련 2024-02-05 11:56   좋아요 1 | URL
<맡겨진 소녀> 영화로도 좋았다(저는 영화로는 못 봤어요)는 호평이 많으니 아마 이 영화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물감 2024-02-05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되게 짧던데 영화로 가능한 분량인가보네요. 신기...
그나저나 저는 아일랜드 문학하고 영 코드가 안맞는데, 키건의 작품은 좀 다를까요?
자목련님 보시기에 타 아일랜드 문학 풍하고 비스무리한지요?

자목련 2024-02-06 09:01   좋아요 1 | URL
단편도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음, 저는 아일랜드 문학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물감 님도 키건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으실까 싶어요.
분량이 많지 않으니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한 번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blanca 2024-02-0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작가 대단하죠. 아주 짧은데 문장 하나하나가 고도로 응축된 뭔가가 있고 그게 탁 마음을 건드려요. 이 소설도 영화로 제작됐군요.

자목련 2024-02-06 09:03   좋아요 1 | URL
이 작가의 소설이 계속 많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소설은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꼭 두 번 읽게 되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4-02-05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얼마 전에 K문고에 갔을
적에 만났어요.

벌써 18쇄나 찍었더라구요.
여차하면 예전에 아니 에르노의
책처럼 서서 볼 기세였답니다.

아마 앉아서 읽을 자리만 있었다
면, 실행에 옮겼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예 시작도 안해 보는 것보다
시도해 보는 게... 안되면 이어서
읽기라도. 오늘 가면 한 번 시도해
보려구요.

그레이스 2024-02-05 15:22   좋아요 1 | URL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목련 2024-02-06 09:0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의 댓글처럼 충분히 가능합니다^^
 

2월이라서 그런가, 1월보다는 한결 포근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날씨가 풀려서 그런 것 같다. 곧 입춘이고 설날이다. 2월은 왠지 빨리 흐를 것 같다. 똑같은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느껴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다. 지겨울 정도로 시간이 가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던 날도 있었으니까. 빠르게 달리는 시간과 반대로 나의 1월은 게으름이 차오르는 날들이다. 차오르는 게으름을 잠재우는 2월이면 좋겠다.


유디트 헤르만의 단편집 『레티파크』를 읽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을 샀다. 나에게는 그녀의 단편집이 두 권 더 있다. 아직 읽지 않았다. 그 사실이 참 기쁘다. 내게 읽어야 할 그녀의 책이 있다는 게, 그녀의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읽은 이 소설집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것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유디트 헤르만의 글에 매력을 느꼈고 그가 던지는 그 말투, 그가 바라보는 시선, 그러니까 특정한 인물이 아닌 어떤 풍경이나 먼 곳을 바라보는 게 좋다. 그뿐이다.


『알리스』, 『여름 별장, 그 후』는 어떤 계기로 구매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읽은 이의 글을 읽고 구매했거나 추천하는 글을 보고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다. 놀라운 건 내가 정리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나는 책을 소장하는 마음이 아닌 버리려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게 그때그때 달라서 어떤 날은 다 버리고 싶고 어떤 날은 버린 날을 후회한다. 그러니 어떤 책의 운명은 갈팡질팡한 나의 마음 때문에 그 존재 가치를 알리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책은 알 수 없는 끌림이 계속 내 곁에 남는다.





순간의 감정, 나를 붙잡는 한 문장, 기어이 상상하게 만드는 풍경과 인물, 그런 것들이 내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또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엔 그 문장이 그저 그렇고 시시하다고 느낄지. 아무튼 나는 지금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공교롭게 앤드루 포터의 소설과 유디트 헤르만의 최근 소설은 읽었지만 이전의 단편은 읽지 않았다. 또한 두 작가의 이번 소설은 모두 40대 이후의 삶을 그렸다. 그러니까 젊음의 감각이나 소비, 열정 같은 것을 지나온 이야기, 사라진 것들과 잊힌 것들, 상실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한 글이다.

나 역시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왔기에 두 작가의 소설에 깊이 빠져든다. 소설의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2-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2월도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초봄입니다. 모르긴해도 다음 주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올 2월은 하루가 더 있어서 조금 길다고 느껴질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무려 24 시간입니다. ㅋㅋ

자목련 2024-02-02 12: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2월은 완전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따뜻해서 봄 같아요. 2024년의 2월은 조금 더 특별하겠어요. 29일이 있어서^^

꼬마요정 2024-02-0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지 유령일 뿐>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자목련 님 글보니 확 땡깁니다. ㅎㅎ 저도 점점 책을 쌓아두는 게 버거워져서 비우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ㅠㅠ 일단 읽어야 정리가 될텐데...ㅠㅠ 많이도 사 모았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복한 2월 함께 보내요^^ 제발 극한 한파는 안 오면 좋겠어요. 추운 거 너무 힘들어요ㅠㅠ (부산 사는 주제에... 라고 생각합니다만 ㅋㅋ)

자목련 2024-02-02 12:54   좋아요 1 | URL
<단지 유령일 뿐>, 저는 없어요. 나머지 두 권을 어서 읽어야~~
부산 사시니 한파가 더 강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은오 2024-02-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 앤드루포터 읽고있는데 왤케좋아요?ㅠ미쳤어요ㅠ

자목련 2024-02-02 12:54   좋아요 1 | URL
진짜 진짜 진짜 좋죠?

독서괭 2024-02-03 12:57   좋아요 1 | URL
저도요. “라인벡” 읽고 크아~~ 했어요 ㅎ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 먹은 마음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믿음과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이 삶이며 그게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20~30대에는 말이다. 2년마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긴장하고 두려울 거라 그때는 짐작했을까. 늙어간다는 게 어떤 건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냐는 거다. 내가 도달한 나이에도 삶은 여전히 어렵고 알 수 없는 게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런 소설을 만나면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든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을 읽으면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장의 사진과 기억들. 몇 달 전 정리하다 발견한 사진을 친구에게 문자로 보냈더니 친구는 “오래전이네” 란 답을 보내왔다. 오래전 내 곁에 있던 친구와 머리 염색에 대해 건강에 대해 농담 어린 대화를 나눈다. 아무렇지 않던 그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친구는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몰랐으니까. 앤드루 포터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같은 지역의 같은 학교를 다니고 곳곳을 어울려 다니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좋아하는 배우에 열광하며 영화를 보던 시절. 그 시절을 추억하기에는 여유가 없고 삶의 일선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은 애틋한 동질감을 불러온다. 그들은 모두 사십 대로 학생을 가르치고 영화나 음악 등 예술에 관련된 일을 한다. 직장에 매여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가정을 이루고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그렇듯 선뜻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도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도 두려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예전과는 다른 것에 몰두해야 하고 나 아닌 가족이나 연인에게 집중해야 한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오스틴」의 나가 겪은 감정들.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쇼팽 음악에 집중했다. 이제는 다른 곳이었다. 녹턴. 섬세한, 서정적인, 부드러운( 「오스틴」, 21쪽)


밤중에 자다가 깨어 뒷마당을, 세탁실을, 차고를 확인하는 일, 이상한 소음의 정체를 알아보는 일, 창문을 단속하고 잠금장치를 더 단단하게 세우는 이런 일. 이것이 우리가 들어온 새로운 세상, 우리가 꾸기 시작한 새로운 꿈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 굼에 균열이 생기는 때가 있었다. 과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 다른 삶이 살짝 윙크를 보내는 때가 있었다. ( 「오스틴」, 24쪽)


누군가 마치 자신의 감정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며 안도할지 모른다. 괜히 적적해지고 서글퍼질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다양성에서 점차 줄어드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일이며 선택에 있어 주저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인, 가족, 동거인의 감정에 무뎌지고 비밀 아닌 비밀을 간직하는 것,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공유하지 못하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


그런 마음을 예술 단체에서 일하는 아내 칼리와 말이 프로젝트 진행이지 백수로 지내는 나와 아파트 아래층에 거주하는 이십 대 후반의 여자 히메나의 관계를 그린 「히메나」 속 부부에게서 만난다. 서른여덟 동갑 부부에게 히메나는 특별한 의미로 존재한다. 아내나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 그러면서도 베일에 싸인 것 같은 히메나를 통해 부부가 찾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어떤 나이가 되었을 때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았던 삶은 오히려 살면 살수록 불투명 그 자체라는 걸 알려준다. 뭔가 잃어버리고 결국 사라지게 만든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 분노하고 통곡한다. 어떤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음을 받아들지 못해 고통스럽다. 과거의 내가 아니듯 상대도 그때의 그가 아니라는 걸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도착한다. 어디 마흔세 살뿐일까? 그 이후의 시간이 와도 미래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지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 「라인벡」 , 127쪽)


사라진 친구의 집을 친구의 연인과 정리하는 표제작 「사라진 것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실종될 거라 상상하겠는가.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 연락을 하면 나중에 만나면 된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사라져 영영 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그러니 죽은 친구의 연인과 같이 수영장 물 위에 뜬 채로 보내는 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것이 된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사라질 거라는 자명한 사실. 도저히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4-01-30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근하면 이 책이 와 있을 듯 합니다. 까오~~ 빨리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24-01-31 16:47   좋아요 0 | URL
어젯밤은 이 책과 함께 보내셨을까요?
즐겁게 읽으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