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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시장 -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
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김병수 옮김 / 궁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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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전시회를 잘 알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여러가지의 해부학적 분류로 구분하여...전시해 놓은 것 말이다. 어떤 표본은 운동하고 있는 형상을 하며, 어떤 표본은 아이를 임신한체로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회를 가보았건, 가보지 않았건 간에...분명..사람이라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 몸이 저렇게 구성되어있구나. 뼈는 저렇게 우리 몸을 받쳐주고 있구나. 우리의 내장들이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구나' 등등...여러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가만 생각해보자..

당신은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장기 혹은 뼈, 혹은 피부, 핏줄..뇌...등등...이런 것들 때문에..충격을 받았을까? 물론 이런것들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결국..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충격은 이런 물질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이 표본들도..지금의 나와 같이..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같은 삶을 이루고 있었고, 사랑을 했었던.. 또 사랑을 받았던..한때는 숨쉬고 있었던..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결국...우리는 인체의 신비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던..사람이 어떻게 물질화되어 있는지..어떻게 상품화 되어 있는지..보러 가는 것과 같다. 과연...어느 누가...신비롭게 그리고 교육적으로 볼 수 있을까... 전시회에 가서 처음에 든 생각은 징그럽다, 내지..이 표본들이 예전에 인간이었음을 상기하면서..불쌍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7장 생물수집품과 몸의 전시 中), 이 과학 전시회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의사이자, 해부학 강사이기도 하며..또한 미술가이기도 한..'군터 폰 하겐스'라는 사람이 플래스티네이션(plastination)이라는 특수 방부처리기법을 사용하여..인체를 표본화시켜 전시한 것인데, 처음에 예술 전시회로 표방했다가 논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과학 전시회로 바꾸었다 한다.

각설하고, 과연...우리의 몸은 누구의 것일까? 내 몸을 누구에게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주지도 않았는데..다른 이가 상업적으로 쓰면 어찌할까? 또, 자신의 몸을 주었는데...자신은 철저히 소외시키고 기증받은 사람 마음대로 처리하면 그 몸의 주인 혹은 주변인들은 과연..다시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없을 것인가? 또, 기증받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고...그 다른 누군가가 처음 기증했던..사람과의 의지와 다르게..혹은 모르게 사용하면..어찌될 건가?

당신이 생각하는 이 일련의 질문들의 대답들은 대충 다 부정적일 것이다. 왜냐하면...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 아닌가..누가 자신의 몸을 해하면..법으로써 그 누군가를 응징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질문과 당신이 생각했을 법한 대답들이 바로 이 책이 던진 질문이자..해결안된 대답이고,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한 추적이다.

앞서 몇가지 질문들 속에는 거시적인 소재로..몸(body)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조금 더 미시적인 것들 그러니까..우리들의 머리카락이면, 혈액이면, 유전자이면, 심지어 사후 기증된 시체 혹은 그 일부이면..과연 어찌될까...

이것은..머리가 아플정도로 굉장히 복잡하다. 특히..재생이 가능한 인자들..혹은..주어도 티가 나지 않는 것들은..엄청난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아니다. 다만..수면 아래에서 깊이 가라앉아 있을 뿐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다. 왜냐하면..우리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의사, 연구가 들도 이 문제들을 다 알려줄 수 도 없다. 왜냐하면..이는 거대한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부분을 흔들면...모든 망들이 흔들리며, 이는 우리의 과학적 체계 그리고 의료적 체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유일하지만, 너무 거대하게 다가온 부정적인 생각이다. 이 책이 지독하게 사실적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범죄에서 해결하고, 생부를 판명하고,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유전병을 병 걸리기 이전에 인지할 수 있는 유전인자 분석과 DNA 분석같은 이런 긍정적이라 생각되어지는 모든 기술들도...우리에게 좋게 보여지고 있을 뿐인 그리고 허울만 좋을 수 있는...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즉, 범죄를 해결 할 수 있고, 유전병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을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똑같은 기술로 엄청난 윤리적 난관에 걸리기도 하며,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는 큰 문제이다. 이 문제의 본질들은 윤리적인 시각과 법적인 시각이 주는 것들인데..솔직히..시간이 흐르면서..이 둘의 시각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또, 우리라는 거대한 집단에 대입시키면..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우리 모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나 자신으로 한정시켜 접근하면...이는 거대한 벽에 혼자 머리들이받는 것과 같다. 나 혼자가 공익을 상대로 싸울 수 없듯이..나 자신이 갖는 개념과...인간 전체가 가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나 또한 인간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아니..인간의 정체성은 그야말로..백지 수표와 같다. 이 수표에 멀 쓰느냐에 따라..가치가 달라지듯이..인간의 정체성은 실제론...아무것도 없다. 오직...법적인 판결만 있을 뿐이다. 그 수위에 따라..인간의 정체성 혹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인간 스스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인체시장도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인간의 정체성은 법이 좌지우지 한다 봐도..무방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이미 인체는 상업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 상업적이라는 말은 그 기반에..법적인 허용(혹은 합법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이 법적인 허용이라는 말은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인간이라는 매우 윤리적인 기반을 어느 선까지 인지..대충 선을 그어 놓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충이라는 말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선을 그어 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들면...오류 투성이이고,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혹..어떤 사람은 대안으로 종교를 들먹일 수 있다. 물론.. 종교 또한 하나의 방벽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종교의 인식도 결국은 종교적이다. 그리고 종교 또한 다수이다. 종교지도자들끼리 합의한다고 해서...인간의 본질이 규정되는 것 또한 웃긴 일이다. 법적인 해결과 그 차이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과연...신이 아니고서야..이런 복잡하고 난해한..문제들(윤리적이면서 법적인)을 깔끔히 해결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생각해본다.(하지만..그렇기에..우리는 웃고 있다.)

우리가 이미 구축하고 있는 모든 체계들이 흔들림없이 제대로 굴러가길 원한다면..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외의 방법은 작든,크든...윤리적이든, 법적이든 어떠한 문제라도 야기시킬 수 있다.

이 한가지 방법은...우리 모두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양심적으로 깨끗하면 된다. 이게 유일한 해법이다. 그만큼..어렵다는 것이 아니라...해결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금지(심지어 의료행위마저)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지금도 발견되는 유전인자들 하나하나에 대해서..어떻게 법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인간의 유전자가 2만 5천개정도 된다는데...)

그래서...이 책을 읽으며..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실로 부정적인 생각도 드는 것이다.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끝으로...비록..이 책이 인간이 갖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불 수 있는 여지를 주긴 하지만...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상업성의 폐해들의 사례들을 보여주는데에 있다. 이 사례들을 본다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병으로 죽어가면..내 유전자가 상업적으로 쓰이든 말든..이것은 2차적인 문제이다. 혹...난치병이 치료가 된다면..이는 큰 문제도 아니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나 자신도 모르는 별 희귀한 시스템도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이 책을 읽어보라 권해보고 싶다.

<덧붙임..>

* 아인슈타인의 사후 시체일부(뇌)보다 아인슈타인의 이미지(사진과 같은)가 더 법적인 제재를 받는 다는 것이 제일 웃겼다.

* 이 책이 과연 자연과학 관련 서(書)인지..아니면..법학 계열의 인문서인지...좀 헛갈린다. 문제제시는 과학,기술 분야를 통해서 하지만, 그 해결은 법 속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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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행복한 물리학자 파인만에게 듣는 학문과 인생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정영목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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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1981년에 학부를 졸업한 직후 나 지산이 겪였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세계 최고의 연구시설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칼텍으로 갔을 무렵 나는 풀이 죽어 방황하고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내 연구실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의 연구실 근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서문 中에서>

이 이야기는 1973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은 이스라엘과 중동간의 전쟁인 '중동전쟁'중 네번째 전쟁인 '욤키푸르 전쟁"이 벌어진 때이다. 저자인 <믈로디노프>는 전쟁중 그때는 거의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라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밤에는 키부츠의 작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봤다 한다. 그때 저자는 대학 2학년 생으로 전쟁때문에 자원을 한 학생이자 군인이자,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 어린아이였다. 그는 그 도서관에서 <리처드 파인만>이 쓴 '물리학 법칙의 특징 The Character of Physical Law'과 '파인만 물리학 강의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를 읽고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버클리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받고, 1981년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 Caltech)'로 첫 교수직을 받고 그 곳에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분명 겁을 먹었다. 그의 논문은 훌륭하였지만(그러니까..칼텍서 오라고 했지..), 그는 자신이 없었다. 그 당시에 벌써 1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나머지 한명은 저자가 오고나서 받았다. 그는 그 당시 물리학의 거장으로 불렸던 <리처드 파인만>과 <머레이 겔만>과 한 복도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참고로 <머레이 겔만>은 1964년 소립자는 '쿼크(quark)'로 구성되어있으며, 그것의 전하는 정수(1/3 or 2/3)가 아닐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결국 1969년 미국의 스탠퍼드선형가속기연구소에서 전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 수소원자핵 안에 있는양성자와 충돌시킨 결과 확인됐으며 이로인해 노벨 물리학상을 타게된다. 아무튼..이런 과학자들과 같이 일을 하고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초보 교수로서는 분명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거장들에게 조언을 얻기로 결심한다. 결국 양대 거장인 <머레이 겔만>과 <리처드 파인만>에게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 <머레이>의 경우 그는 연구에 파묻혀 살고 있으며, 그의 성질 또한 불같아서 자신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그와 마주치는 것을 조금은 피해야할 정도였으니까..반대로 <리처드 파인만>은 그에게는 좀 더 쉬운 접근 상태였다. 하지만, <파인만>도 그의 주관이 확실하며 물리 이야기 외의 다른 이야깃 거리들로는 쉽게 다가서기가 껄끄러웠다. 그리고 그는 암에 걸려 있어서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믈로디노프>는 <파인만>과 자주 물리에 관하여, 그리고 자연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우었다. 교정안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더욱 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파인만>은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파인만>은 자신의 일을 남에게 묻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파인만>에게 접근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그는 심리학이나 심리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따라서 <파인만>은  항상 <파인만>의 답은 '네 답은 이미 네가 가지고 있다'라는 투의 대답이 최선이었다.

<믈로디노프>는 두려웠다. 어쩌면..그는 머지않아 칼텍에서 쫒겨날 수도 있으며, 그것으로 그는 끝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과연 물리로 어디까지 승부를 해야하는 지도 몰랐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이론이 학계를 휩쓸고 있었다. 바로 '끈이론'혹은 '초끈이론'이라는 것인데,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죽을때까지 연구했던 '통일장 이론'과 매우 관련이 깊었다. 아니, '통일장 이론'을 완성시키거나 아니면 폐기시기거나 하려면, '끈이론'에 대한 정답이 나와야했다. 그리고 이러한 '끈이론'은 <머레이 겔만>이 이끄는 quark나 여러 소립자들과 관계가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말 다 집어치우면, 즉, 줄을 서야한다는 것이었다. <파인만>쪽에서서 '끈이론'을 무시하든지 (<파인만>도 '끈이론'은 무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 자신의 동료 교수와 같이 그 당시 획기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든지, 아니면, <머레이>쪽에서서 '끈이론'을 옹호하든지...그는 그 자신의 연구를 어느쪽과 이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믈로디노프>는 n차 시,공간에 대해서 연구중이라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시,공간을 n차로 놓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와중에도 계속 <파인만>과 대화를 나눈다. <믈로디노프>는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물리쪽보다는 그쪽으로 선회하고 싶어했지만, 글쓰기 쪽도 쉽지가 않았고 그 당시 학자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리 평판에 맞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파인만>에게 왜 물리를 공부했냐고 묻는다. <파인만>은 한마디로 '열정과 재미'라고 말했다. 와병중에서도  그를 이끈것은 바로 '하고 싶다는 욕구와 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 그리고 제일 큰 동기인 재미'였다.

이 책은 분량도 작지만 그렇다고 쉽게 보는 책이 아니다. 솔직히 물리쪽의 전문지식이 좀 나오지만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시 과학계의 흐름정도로만 이해하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바로 <파인만>의 생각과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의 생각을 매치시키고 대입시킴으로써 생기는 감정을 곧 바로 정리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연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종종 힘들다고 호소하곤 한다..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그런 하소연을 들어줄 수 밖에...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파인만>의 이야기가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파인만>의 입장과 자신의 어려울때의 상황을 대입시키지 않은 결과이다.  파인만은 과학적 행동이어야 말로 '상상'이라고 말했다. 물리혹은 다른 과학 전공자들이 수학 공식을 풀고 어려운 책들을 읽고 하는 것은 '상상' 그 이후의 일이라고 했다. 그러한 수학적인 과정은 그 '상상'을 단순히 진짜로 만들어주거나 '상상'이 말 그대로 '공상'이게 만드는 단순한 일련의 작업이지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상상'이 있어야..모든 것이 차례대로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quark'나 '끈이론' 같은 것도 '대단한 과학적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개인적 상상'이다. 누가 전하의 양이 정수 차원을 떠난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한 예로 전기는 3v 뿐만 아니라 3.5v라는 정수범위를 넘을 수 있는 크기를 가질 수 있지만, 전하가 1/3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상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속에서 수많은 과학적 이론들이 제시되었으며, 이 이론들은 결국 그들을 지금까지 밥먹고 살게 해주는 거대한 원동력인 것이다.

<믈로디노프>가 <파인만>에게 자신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파인만>은 작가의 상상력과 과학자의 상상력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부분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그래서 그 자신 또한 작가들을 존중은 하지만, 자신은 작가적 상상력과는 다른 과학적 상상력이 있다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나한테는 새로운 이야기를 아주 잘 꾸며내는, 그런 종류의 상상력은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다고 나한테 좋은 상상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사실 나는 소설을 상상하는 것보다 과학자의 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해. 즉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파악하거나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지. 소규모로 또는 대규모로 벌어지는 일들은 처음 예상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네! 원자를 그려보는데도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지. 원자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일 거라고 예측하는데 말이야. 원소의 주기율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지.

과학자의 상상력은 제어를 당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는 다르네. 과학자가 뭔가를 상상하면, 신은 '부정확하다'거나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말하지. 물론 여기서 신은 실험이야. 신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아, 아니야, 그건 일치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말해. "나는 그것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해. 그렇다면 이런 것을 보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게 보일지 않을 수도 있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가 잘못 추측한 거니까. 하지만 글쓰기에는 이런 것이 없네. ....(중략).... 또 글이라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과는 달라 계속 확장되어 나가는 지식의 덩어리가 아닐세. 수학이나 과학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합쳐 거대한 괴물 덩어리를 만들지. 그리고 여기에는 진보가 있네. 하지만 전에 씌어진 것 덕분에 매일 더 나은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나? 다른 사람들이 전에 글 쓰는 법을 보여준 덕분에 이제 그 바탕에서 글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말을 들어본적이 있냐고? 과학이나 수학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본문 中>

 <파인만>의 이말은 결코 글쓰는 작가들이 과학자보다 못하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들의 능력이 과학작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의 요지는 과학적 상상력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이는 곧 또 다른 사람에게 상상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될 수 있고, 이런것이 과학의 진보와 결부되어 세상은 더 많은 진실을 알게된다는 그런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믈로디노프>는 과학자의 상상력 대신 글쓰는 작가의 상상력을 택하게 된다. <파인만>의 과학자로서 상상력에 대한 가르침도 매우 큰 것이었지만, 결국 <파인만>과 줄곧 곁에 있으면서 얻었던 가르침인 '열정과 재미, 그리고 흥분'을 할 수 있는 그 자신만의 영역을 찾은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깨달았으며, 그는 좀 더 있다 칼텍을 떠났다.

결국 그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된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라는 이 책은 그 때 당시 파인만과의 대화를 허락하에 녹음했었고,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그는 녹음테이프가 든 상자를 발견하고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유명한 '스타트랙' 시리즈의 'Next Generation'의 글을 썼으며, 그후에도 여러 헐리우드 영화를 위해 글을 썼다 한다.

이 책은 역시나 '젊은 과학도가 걸어야할 과정'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과학도를 넘어서 우리 시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열정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머레이>와 <파인만>의 성격 비교부터 그들의 입심대결..그리고 그 외 다른 주변의 연구인들과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들도 같이 소개되어 있다.

짧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얻고 싶다면, 그리고 그 무언가도 흐릿한 상태라면, 이 책을 한번쯤 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참..자신이 무언가를 상상함에 있어서..그 저변에 깔려있어야 하는 것은 확실한 '이해'이다. 그 '이해'의 과정을 끝난 후에야 자신은 '믿음이 가는 상상'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상상은 '공상'에 머무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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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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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내가 이 책을 읽기전에 가졌던 궁금증이고 이 책을 읽은 후 스스로 자연스레 다가오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자 주제이다. 또, 같은 공간안에 있으며, 같은 공기를 마시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무리들속의 한 '정상적인' 구성원으로서 이 '정상적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지와 편견의 소산인지 내 스스로 눈을 뜨게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내가 몰랐던 다양한 '불편한 삶'들을 보여줌으로써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깨우치게한 그런책이기 보다는 그런 '불편한 삶'에 대해 놀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나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책이다.  또 마지막 책장을 덮고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을 확인하며 경탄했던 그런 책이다.

이 책속에는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7명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들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 책의 내용을 빌어 말하자면 '정상인과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사고로 '전색맹'이 되어 자신의 목숨과 같던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고 엄청난 혼란에 빠졌으나 나중에 오히려 색감을 읽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서정연한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하는  직업이 화가인 [조너선 I]씨의 경우나 '투렛증후군'에 걸려 '틱'증상을 보이지만, 그에겐 단순한 하나의 일상인 [칼 버넷]박사의 경우 그리고 '자폐증'에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학을 연구하고 장치를 고안하는 [템플 그렌딘]교수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질병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에 순응하며 그들의 삶속에 질병이 녹아든 그러한 인생을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이 질병을 의식하는 경우는 소위 '정상인'이라고 하는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을 보는 '불편한 시각'을 '편안하고 안전한'시각으로 돌릴때에만 그렇다. 그렇다고 그 '정상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멀리하거나 불편해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해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 '불완전하며 불안전한 삶'을 사는 그들도 그들의 세상에서는 '완전하며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경병에 걸린 사람들'에 내리는 정의가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이 책은 곳곳에서 따끔한 지침을 내린다. 한 예로 태어날때부터 시각을 잃었던 사람이 40년이 지난후 일부나마 시각을 되찾았을 경우에 그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의 생각이라면 이는 아주 '비정상적인 생각'임을 알려준다. 그에겐 사물을 볼 수 있지만, 결코 사물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의 사물뿐이 볼 수 없다. 그에겐 보이는 것에 대한 정보를 통합적인 정보로 결코 쉽게 그려낼 수 없다. 그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모르며 무엇부터 봐야할 지 모르는 것이다. 그에게 그러한 것은 뇌에 충분히 연마되어있지 않으며, 이러한 그는 '시각적인 세계'보다는 '촉감의 세계'가 더 편안한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본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학습한 결과라는 뜻이다.

'정상적인' 나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결과이다. 이런 무지를 책을 읽는 내내 발견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 마시고 있는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우리를 이루고 있으며 다른 이에게 나임을 보일 수 있는 '자아'를 의식하지 않는다. 이 '자아'가 우리들 각자에게 독보적이며 유일하듯이 '신경병 환자'들의 자아 또한 그들에겐 유일하며 독보적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세계에서 완전한 '자아'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의 '자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이 '신경병에 걸린' 7명의 이야기이지만, '다름'을 지적하고 '특이'한 것을 쉽게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보기에 항상 '정상적임'을 아쉬워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똑같은 '경계선'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신경병 환자들의 '정체성 혹은 자아'에 대해  단순하게 보존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달라진 뇌와 '현실'에 적응하고 변화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신경병 가진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지만 결코 우리라는 선에서 벗어날 만큼의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이라고 보기전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을 가진 우리'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이 리뷰에서는 언급을 안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또한 그들만의 세상에서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 몇가지 맘에 드는 부분을 소개하자면..**

투렛증후군에서부터 자폐증, 기억상실, 전색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병의 습격을 받은 일곱 명의 주인공은 의학계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일종의 '사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한 독특한 인간이기도 하다. (p. 31)

저는 상대방을 외부에서 관찰하기보다 그의 내부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p. 32)

색이 아니라 파장에만 반응하는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p. 67)

하지만 차츰 문제와 갈등이 빚어졌다. 눈을 떴지만 보이자 않고, 시각의 세계를 구축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와 갈등이었다. 그는 두 세계의 중간을 맴돌 뿐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2차 실명이라는 역설적인 탈출구가 등장했다. 선물과도 같은 실명이었다. (p. 224)

PS.. 정말 이 책은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지루하지도 않을 뿐더러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페이지와 비교하여 그리고 책의 내용에 비추어서도 결코 책값이 과하지 않을 그런 책인것 같습니다. 이 책은 마치 독서의 즐거움을 내비치는 그러한 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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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 신과학 총서 4
마가렛 체니 지음, 이경복 옮김 / 양문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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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에 대해 재밌게 써놓은 웹페이지 입니다. <-- 클릭..

예전에 니콜라 테슬라에 대해 다른 블로그 이미 밝힌 바 있는데..테슬라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이미 책에서 보았던..[T : 테슬라]라는 '자기력선속밀도의 단위'로도 충분했다. 하지만..어느 웹페이지에서 우연히 본 그의 짧은 이야기를 보고 매혹당했다. 물론 그 전에 [허치슨 효과]라는 다큐를 보고 그 효과에 [테슬라 코일]이 쓰였다고 하여 더욱 관심을 갖게 된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니콜라 테슬라>라는 인물이 매우 궁금했으며(솔직히 이 궁금증은 <에디슨>과의 여러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다.) 그가 이룬 업적이 무엇인지 호기심이 갔으며, 결국 <마가렛 체니>가 쓴 이 테슬라 전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과학자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다.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물론 그가 '미적분학'을 만들어 내었기에 그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뉴턴>의 친구이자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이기도 한 <에드먼드 핼리> 물론 '핼리혜성'을 발견한 장본이기도 하다..그리고 '지구는 그래도 돈다'고 말한 <갈릴레이 갈릴레오>, 그리고..<케플러>,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레일레이>, <파인만>, <볼츠만>, <패러데이>, <허블> 등등...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중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자 한,두명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 또 한가지를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니콜라 테슬라>를 알고 있는가?" 아니.."들어는 봤는가?"라고 묻고 싶다.

물론 나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진 들어 본게 전부다. 하지만 이 책을 본 지금 어찌하여 이 같은 사람이 현대 과학에서 숨어있는가하는 것이 정말 수수께끼다. 물론 이 책을 알면 어느정도 답은 나오지만 말이다...

<니콜라 테슬라>..그는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이다. 그는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홀연단신으로 왔으며, 이때부터 그는 그때 당시의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된다. 오히려 지금 조용한 것과 비교한다면, 그때는 어떠한 슈퍼스타 못지 않는 대접도 받았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오자 마자 <에디슨>의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에디슨> 밑에서 그의 천재성을 유감히 발휘한다. <에디슨>도 그의 천재성에 대해 놀라워했다. 하지만, <에디슨>과의 마찰은 끊이지 않았다. <에디슨>은 특허와 그 특허를 이용한 상품화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테슬라>는 오직 연구가 목적이었다. 그 자신만의 목적..그 당시 전기라는 것에 세상관심이 온통 쏠리고 있을 무렵..<에디슨>은 '직류전기'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했었고, <테슬라>는 '교류전기'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결국 전기회사들은 '교류'에 손을 들었다. <에디슨>은 그가 두려워했던..<테슬라>에게 완패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테슬라>는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만든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60 Hz교류전기'도 <테슬라>가 주장한 것이다. 물론 같은 교류로 '133 Hz' 교류도 있지만 <테슬라>는 '60 Hz'에 힘을 더했다. 참..우리가 알고있는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미국 회사는 처음으로 <에디슨>이 처음 전기상회로 시작한 회사이다. 그후 많은 합병이 있었고, 지금의 이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또.. 우리가 거리낌없이 통화하는 '무선통신'은 <마르코니>가 창안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이것도 <테슬라>가 먼저 주장한 것이었고, 실지로 여러 분야에 대해 특허도 가지고 있다. 결국 미국 정부에서도 <테슬라>가 죽고나서 <테슬라>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테슬라>또한 <마르코니>를 특허도용으로 고소한 사실도 있다.

또, 그는 인공위성의 원리, 헬리콥터의 원리, 우주통신의 원리, 레이다의 원리, 유도무기, 원격 조종 보트, 지열 발전소, 풍력 발전소, 인공번개에 따른 인위적인 기상 조절, 미래에 무섭게 사용할 수 있는 '입자 빔' 무기..(이것은 우주통신에 쓰일 빛(입자 혹은 파)를 가지고 응용한 것), 형광등, x-레이의 원리 등등..연구를 안해본 것이 없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지금 현대의 과학자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것 들이다.

'x-레이'만 하더라도 그는 륀트겐을 앞지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론 앞지른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이 분야에 그리 깊은 연구는 하지 않았다. 그는 <에디슨>과는 달리 어느 한 분야의 연구만 할 수가 없었다. 연구를 하다보면 또 다른 연구 분야가 생각났고, 즉시 하던 연구를 그만두고, 다른 연구쪽으로 눈을 돌렸으니 말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전에 하던 연구는 중단한 것이 아니라, 잠시 보류상태였지만, 자신이 큰 목적을 가진 연구가 아닌 이상 곧 그 연구에 힘을 쏟기란 어려웠다. 그가 아주 큰 목적을 가지고 임했던 연구는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것들이 아닌 바로 '무선 에너지 전송'이라는 분야이었다.

즉, 전기가 전선을 타고 흐르듯이 그는 공기중을 통해 전기 혹은 다른 에너지를 전송할 수 있다는 고차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에너지 방식은 어떠한 부가적인 전송 설비없이 직접 에너지를 모든 인류가 공용으로 충분히 쓸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기에너지를 어떠한 도파관이나, 도체를 통하지 않고 공기중으로 직접 통신하듯이 전송하겠다는 그러한 생각이 너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연구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 제약은 실험의 어려움이 아니라, 바로 연구비, 돈 이었다. 그가 받는 돈들은 대부분 전기회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회사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공간 에너지 전송 연구에 돈을 대주겠는가..<테슬라>의 큰  기부자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JP 모건]의 창시자 이라는 금융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돈을 대주지는 않았다.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 경우 전선회사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돈을 대주겠는가..

하지만, 그는 여러 특허료와 여러 회사에서 얻은 돈을 가지고 연구를 하지만, <에디슨>의 방해와 여러 신문매체들의 부정적 기사로 인해 대단한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돈이 떨어져 연구를 중단하게 된다.

아무튼 그는 엄청난 연구들을 했으며,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빨리 내놓고 싶어했다. 그것이 <테슬라>의 사명이었다. 그래야만 힘없는 자들이 똑같이 평등하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의 믿음은 사업가들의 야심에 무너졌다. 그리고 같은 일부 과학자들도 그러한 믿음을 없애버렸으며, 언론은 단순히 그를 몽상가라 부르며 비판을 가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든 생각은 <테슬라>는 시기적으로 행복했으며, 불행했다. 시기적으로 아직 개발되고 발명되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많았기에 <테슬라>는 모든 연구를 스스로 일인자가 되어 해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그렇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산업과 공업 그리고 현대 물리학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긍정이라는 희망의 단어를 뽑아내기가 어려웠다. <테슬라>는 심지어 자기 사후, 후배들이 이끌어주기를 희망했던 것들도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에 연구가 끝나고 발명품이 나오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기대를 했으며, 기대가 큰 만큼 그들의 실망도 대단히 컸다. 또 경제공황은 그의 연구의 발목을 잡았다. 이게 시기적으로 불행했던 일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시기적으로 매우 자유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그 자유스러움은 웬지 모를 여유로 보여졌다.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박사의 특유의 여유로움이랄까..<테슬라>의 친구 중 유독 눈에 띄는 친구는 <마크 트웨인>이다. 그와 절친했으며, 그와 문학적인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테슬라> 또한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의 조합은 매우 환상적이다. 그리고 그 시대 <테슬라>와 같이 했던 수많은 문학자, 과학자들..이름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했던 그의 매력은 매우 크다. 그는 <아인슈타인>과도 원자와 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큰 재미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물씬 자유스러움을 풍겼고, 여유로움을 비춘것 같다. 만약 요즘 시대와 비교한다면, 그들은 사업상, 그리고 연구 목적상 교류를 할 것이다. 낭만적인데라고는 내가 지금 이시대를 살고 있어선지는 몰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했던 연구는 지금도 누군가의 손에서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이면성이 그렇듯, 누군가 그의 연구를 잘못 이용하여 서로 다치거나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개발 할 수도 있다. 그래점에서 미국정부를 보는 시각이 불편한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미국정부가 <테슬라>의 비밀일지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으며, 미국 정부도 어느 선까지는 인정을 했다.

<테슬라>가 그의 연구에 쏟았던 열정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그의 연구에 방해될까봐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런점을 보고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일에 가진 열정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스러움..그도 돈을 원했지만, 궁긍적으로 그 돈은 자신을 위한 최소의 품위 유지비와 연구비였다. 비록 말년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도 한때 돈을 만졌으며, 그는 돈의 가치와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서 연구를 뺐을 수도 있고, 연구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그의 연구에 필요한 부차적인 것이지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그가 풍미했던 시대가 지나자 그의 모든 것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의 기록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가 만약 그의 연구를 몇가지로 제한해서 수행했더라면은 이 세상은 어찌될지 몰랐을 것이다.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에 기여했던 인물을 기억하지도 않고,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우리들의 과오가 될 것이다.

그가 비록 보통의 인물이 아니었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을지라도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가 노벨상이 결국 거부되었던 것은 그의 성과가 약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반을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어쩌면 앞으로 수백년이 더 걸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 희망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네..
                            
<본문 中>

ps..그리고 물리 혹은 공학(전자나 통신쪽)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에 좀 빡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공자이어도 읽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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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뭘까?

단순히 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때...그리고 전통적으로 봤을때...

죽음이란...영혼이 있고 없고를 떠나 더이상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치내지 그 효용성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당연하다고?

음... 당연히...당연하다. 그런데...이걸 약간만 비틀어..죽어서도 그 가치나 효용성을 계속 유지시킨다면 어떨까?

그럼 죽음이 아닌가? 이 책에선...부제(한국어판 제목)로 달아놨다. 원제는 '스티프'이고..부제는...'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으로..

저자인 '메리 로취'의 말을 빌어  "이 책은 사체들이 해온 일에 대한 것으로, 기괴하고(간혹) 충격적이며(종종) 흥미롭다.(언제나)" 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은 사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령 단두대(기요틴)에서 잘린 머리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 대한 이야기, 사체를 해부하는 과정과 사체의 부패과정에 대한 이야기, 총알과 폭탄에 폭발력을 알아보기 위해 쓰이는 사체에 대한 이야기, 비행기 폭파 사고의 원인을 찾고자 그 사고에서 죽은 시신을 통해 진실을 추적해가는 이야기, 그리고 사체를 요리해 먹는 이야기...등등...사후 인간의 몸과 관련된 잡다하면서도 굉장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 책은 역시나 좀 끔찍하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미국 드라마 CSI의 검시 과정은 미성년자 관람용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그러한 비위 상하게 하는 표현들을 이 책의 저자인 '메리 로취'의 특유의 유머로 상당부분 완화시킨다. 도대체 이 여자('메리 로취')는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지..혹은 시니컬하게 생각하는지 알수가 없다. 비록 보기엔 추하게 보일 지 모르는 시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대단히 긍정적이지만, 말도 할 줄 모르고 고통도 느낄 줄 모르는 사체의 처리 혹은 대우는 그리 별 문제될게 없다는 부분에서는 대단히 시니컬하다. 저자 입장에서는 보기 드문 구경들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이든, 냉소적이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스티프'는 미국 속어로 사후 경직화된 시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 자체에 '딱딱한, 경직된, 굳은'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시체라는 말로 쓰여도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단두대(기요틴)에서 잘린 머리가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왔다. 이 점은 나도 예전부터 궁금해왔던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인간의 영혼이 뇌에 있는지 심장에 있는지에 관련한 또 다른 역사적 논쟁도 뒤따라 소개한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앞서 말한 비행기 폭파 사고와 관련하여 희생자들의 시신들을 통해 폭파과정 혹은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암튼, 사체를 기증한 뒤 이 사체들이 어떻게 쓰이는 지에 대한 여러 예시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충격적이면서도 역시나 흥미를 끌었다.(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의 모순이 생기더라...) 

누구(혹은 어느것)는 부패과정에서 실험체로 쓰이고, 누구(혹은 어느것)는 자동차 충돌 실험에서 어느정도 부상당할지의 물리적 손상에 대한 연구에 쓰이고, 어느 사체(혹은 '누구'이거나 '어느것')는 역시나 해부학 실습용(여기서는 특히 성형외과쪽)으로 쓰이는 것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수많은 부분에서 이미 쓰여지고 있는 시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 그 당사자(사체 기증을 한 죽은이)가 죽은 뒤에도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혹은 새로운 삶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듯이 낭만적으로 그리고 숭고하게(단순히 보기에는) 쓰이는 지에 대해 좀 반감도 들 것이다. '나는 죽어서 사체 기증을 할 것이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자연스레 인상 찌푸리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힘든 것이기에 사체 기증은 역시나 숭고하다고 말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인체시장>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이 책은 인간의 몸을 떠나 아주 미세한 부속물(유전인자까지를 포함한)을 다루는데 반해..이 책은 거시적으로 우리의 몸 혹은 그것의 부분(절단되거나 파헤쳐진)을 다룬다. 두 책이 그만큼 차이는 있지만, 전자의 책은 법률적인 해석의 바탕으로 인체를 가지고 하는 실험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말했다면, 이 책(후자)은 법적인 것을 떠나, 오직 기증된 사체를 가지고 요리(?)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저자의 생각들을 보여준다.(특유의 유머로서...)

분명... 우리 사회는 산 자와 더불어 죽은 자들의 노력의 결과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들의 노력이 없다면, 분명... 산 자는 죽은 자와의 경계가 지금 처럼 분명하지 않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죽은 자를 이용한 연구를 통해 산 자들의 목숨이 더욱 더 연장되고 있다는 의미...)

저자의 생각은 곳곳에 잘 드러난다. 죽은 자를 가지고 행하는 끔찍한 연구는 어떻게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그녀는 이미 결론 지어 놓고 이 책을 썼으리라. 그래서 너무나 리얼하고..그리고 정말 끔찍하며 불쾌하더라도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결론을 짓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녀가 이 책을 저술하는 와중에 자신이 죽고 난 후 시신을 기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녀는 필히 이런 식으로 리얼하게 쓰지는 못할 것이다.) 시신을 기증한 망자나 혹은 그 유가족에 대한 배려는 이미 그 시신을 다루는 분야의 사람들이 충분히 했을 거라는 것이 역시 그녀의 생각이다. 그녀가 배려할 부분은 아니지 않은가.

암튼..왠지..어딘가에서 무슨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책은 시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후각적인 부분에서도 굉장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롭다.

참...자신의 시신을 기증할 사람은 되도록이면 보지 않는게 좋을 듯 싶다.

그래도 봐야겠다면, 그리고 본 후에도 결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사람은 인류를 사랑하는 성자(聖者)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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