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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난 이 책이 나왔을때, SF소설인 줄 알았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타이틀에서 보듯이... 시간 여행자라는 어감이 아내라는 어감보다 꽤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시나 아내(혹은 한 여인)가 중심에 있다. 시간 여행자는 이 아내를 돋보이게 하는 절묘한 수식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너무나 새롭고, 독창적이다. 시간 여행자라는 말 속엔 무궁무진한 상상이 들어가 있다. 이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상상을 절묘하게 녹인 다음 사랑이라는 틀에 부어 만든 것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이다.

헨리(남자 주인공)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그가 수족(手足)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 일탈이라는 특이한 유전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작가의 생각을 읽어 볼 순 없지만, 왠지 '시간 일탈 장애'라는 것을 '기면병'에서 가져 오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이 '시간 일탈 장애'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때고 또 어디서든 과거로 미래로 불쑥 불쑥 옮겨다니기 때문이다. 또 '기면병'도 그렇듯이 무슨 큰 병 걸린 사람처럼 보이거나 그 장애가 확실히 분간되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헨리는 클레어를 만난다. 처음 이들이 만났을 때는(처음 만났다는 것은 헨리 기준이 아닌 클레어의 기준이다.) 1977년으로 헨리는 36세, 클레어는 6세때다. 30살 차이가 있는 이들의 만남이었지만, 사실 이들의 나이차는 8살 차이에 불과하다. 이게 바로 시간 여행의 묘미이다. 헨리는 30세때 어느 순간에 과거로 훌쩍 돌어가 6살의 클레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클레어는 이때 헨리를 처음 만났고, 헨리는 이미 클레어를 몇차례 만난적이 있다. 어쨌든..클레어는 이때부터 헨리라는 이상한 아저씨의 존재를 인식했으며, 이들의 운명도 함께 시작되었다.

이 소설은 그 구조가 특이하다. 먼저, 시간 여행을 한다는 소재이다 보니... 단순히 시간 진행에 따라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때는 과거에서, 어느때는 미래에서, 어느떄는 현재에서...그만큼 이 소설 역시 시간축이 뒤틀려있지만, 그러나 큰 하나의 이야기는 일관되게 나아간다. 이 이야기 자체는 시간 순서가 아닌, 사건들의 연관성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시 헨리와 클레어이며, 이 둘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간다. 한마디로 1인칭 시점이 2개가 있다는 이야기다. 헨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될때는 클레어는 제3자에 불과하며, 마찬가지로 클레어 시점으로 진행될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이것이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헨리의 경우 과거(혹은 미래)의 헨리와 현재의 헨리가 서로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24살의 헨리가 5살의 헨리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럼 역시 사건의 일관성에 따라 그에 알맞는 시점을 갖게된다. 꼬마시절의 헨리가 사건의 중심에 있을땐...성인인 헨리는 같은 1인칭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타인의 관점으로도 보여지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시점의 변화가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굉장한 중심축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존 시간 여행하면 떠오르는 상상에 더욱 더 힘을 보태준다.

가령...40대의 헨리와 30대의 헨리는 똑같은 헨리(헨리입장에서는 '나'의 시점)이다. 그런데 30대의 헨리는 40대의 헨리를 질투도 한다. 왜냐하면..클레어는 어느 시간대나 한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비약에 따라서는 몇명까지도 (이야기 구조에 상관없다면 수십명..아니 수백명의 헨리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와 또다른 내가 주는 갈등이 이 소설에는 담겨져 있다.

이 소설은 역시나 로맨스 소설이다. 좀 진부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항상 새롭다. 왜냐하면...헨리는 항상 사라지고 클레어는 항상 걱정을 하며, 사라진 헨리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사건을 엮어들어오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만약...이 공간안에 나와 똑같은 내가(정말 또다른 나) 있다면...나는 또다른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찰떡궁합이 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성격과 외모는 똑같지만..결국 그때 그때 순간의 생각은 서로 다르기에 결코 똑같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암튼...헨리는 또 다른 헨리를 이해하고 이런 헨리들(복수형)을 클레어는 이해를 한다.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지만은 이래야만 이 러브 스토리는 돌아가고...또 정말 감동을 주기 때문에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정말 특이한 소설이다. 그리고 독자가 생각하는 오묘한 상상을 잘 이용한다. 이런 상상을 독자로 하여금 의도에 맞도록 유도도 시킨다. 그래서 처음 단순했던 플랫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내면이 더욱 더 실감나게 그려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애틋한(여기서는 애틋한 의미의 사랑) 감정을 풀어나가지만, 또 다른 한편엔 사랑을 지지해주고 유지해주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가족이라는 소재가 소설 전반에 에둘러있다.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며 이룩하는 것은 사랑의 절정인 가족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가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지나친 소재로 보일 법도 하지만, 남용하지 않고 적절히 사용되어있다. 절제도 해가면서...그래서 이 책이 산뜻한 것이다.(시간의 패러독스는 크게 의미없다. 이 둘의 이야기에 논리고 뭐고 들이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참...이 소설은 최근 '라스트 데이즈'로 우리 곁에 돌아온 <구스 반 산트>감독이 현재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자 주인공 클레어의 역할은 '기네스 펠트로'가 맡는다고 한다. 음...왠지..클레어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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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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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의 시각으로 봤을때 이 소설은 그리 특이한 점이 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 아마존 78주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명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문학이 범용성을 갖춘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 하다. 만약...프랑스 고유의 색채(이 색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냥 감이다)를 이 소설이 유지하고 있다면 아마도 78주 동안 1위 자리를 고수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조심히 든다. 그래서 '뤽 베송'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지만...실제론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굉장히 소비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것들을...
 
이 책은 나도 잘 모르지만 프랑스 적이지 않다. 그래서 쉽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가벼운 소설쯤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듯 싶다. 이 소설은 로맨스로 시작한다. 매우 달콤하지만 결국엔 신데렐라를 꿈꾸는 한 프랑스 여인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치유되지 않은 사랑을 마음에 담아둔채 살아가고 있는 한 미국 남자의 이야기가 뒷 따른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운명이라는 실타래를 풀어버리는 그 순간에 조우하게 된다. 넉넉잡고 1초간의 운명. 1초간의 공존.
 
짧은 운명은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들은 이미 사랑하게끔 예정되어 있었던 느낌이 든다. 소설이전부터.
 
그들의 지난 삶의 고통은 만남을 위한 준비된 아픔일뿐. 그리고 이 아픔에 대해 보상 받으려는 듯 이 두 젊은 남녀는 열정적인 사랑을 한다. 여기까지는 무척 흥미로왔다. 그들이 느끼는 사랑의 과정이 풀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풀려나갈까 생각하니 무척 기대도 되었다.
 
그런데 이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로맨스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장르가 바뀐다. 스릴러로.. 그러니까...영화 '마이 걸'이 '데스티네이션'으로 바뀌어버린다. 사랑이라는 운명은 죽음이라는 운명으로 바뀌어버린다. 하지만 소설의 색깔은 영화 '온리이프'와 닮아있다.
 
작가는 어떤 감정을 우선순위에 두고자 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 죽음이라는 감정? 그러니까..비극과 희극중 어떤 클라이막스를 원했던 걸까.
 
 
분명, 작가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감정을 다루고 싶어했을것이 분명하다. 이 소설의 제목부터 '구해줘'아닌가. 그리고 죽음 이면에 순간적으로 감정을 휘돌릴 수 있는 사랑이라는 애틋한 것으로 포장해 버렸다. 로맨스가 없다면 구해주고 싶어도 구해줄 수 없지만, 로맨스가 있으므로 구한다면 무엇이든 한다로 바뀌어버렸다.
 
이제부터 본격 스릴러이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이젠 사회라는 자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문화인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격리되어 있는 그런 조난자들이다. 싫든 좋든 이 사회에 병든 치부를 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도시속 마천루가 가지는 위용을 더 이상 보려 하지 않고...그 이면의 그림자에 감추어있는 뒷골목을 보려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할런 코벤'의 소설과 약간 닮아있다. 모든 것은 관계에서 시작하고, 누군가 행한 행동은 그들의 관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숙명이 가져다주는 보복을 알 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가야 그들은 숙명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알 수 있다.
 
구해줘...이는 누군가의 희생을 원하는 말일 수 있다. 어떠한 희생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없다. 결국 이 소설은 이 희생을 어떤식으로 최소화하고 무력화하는지에 대한 공상적 이야기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그래서 이 불가능을 사랑의 힘으로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충분히 희생시킬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이 소설은 던진다.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도우려는 자를 돕는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랑과 죽음에 관한 작가의 자문자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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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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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간이치로...

한 낭사가 있었다. 그는 난부의 번사이었고, 또 난부의 탈번자이었다. 그리고 그는 메이지 유신의 격변기를 피와 눈물로 맞이한 신센구미(신선조)였다.

이 책은 '아시다 지로'가 20여년 만에 완성한 한 무사의 이야기이자, 그의 아내,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피가 흩뿌리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전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매우 거친이야기이지만, 그 속은 한 없이 따뜻하다. 

각 450여페이지나 되는 두권의 책이 주는 무게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책속에 들어있는 뜨거운 전우애의 이야기이자,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주는 이 소설은 수많은 글이 주는 무거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소설을 읽는 즉시, 한 무사에 동화되고, 이 무사의 족적이 궁금해져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예전에 무사꿈을 키워왔고, 애틋한 사랑때문에 탈번했던...오사카의 난부 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 시작부분이 그의 끝부분이다. 

과연... 이 사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권의 소설은 이 사내를 추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소설의 화자들을 통해 결국 도쿠가와 막부가 내리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를 연 그 전쟁 후 50년이 지나 어느 신문기자(이 소설에선 이 기자의 말 한마디 조차 없다.)가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문무를 겸한 한 남자를 추적하고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요시무라와 조금이라도 옷깃이 스쳤던 여러 무사들과 주변인들(바로 이들이 '화자'이다)의 탐문으로 이 남자의 생애, 그리고 그 과정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초반부에는 요시무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인물들은 그리 사건 중심적인 이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잠깐 스쳤던 인물들이 내놓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정확히 이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인지, 무술이 뛰어난 사람인지..도대체...이 남자는 무슨 공적을 세웠는지 말이다.

그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수많은 다른 무사들을 베어넘긴 이 남자는 이 남자에게 마지막 전투라 할 수 있는 '도바 후시미'전투에서 엄청 큰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할복하거나(이 시대의 이 상황에서는 가만 앉아 죽느니 할복이 가장 큰 명예였다..)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터를 떠난다. 그리고 정신을 놓지 않고, 오사카의 남부 번에 들어간다. 제발 살려달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말이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살기위해'라는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들어간 이 오사카 난부 번에서 그는 할복을 한다.

보이지 않는 화자는 이 남자의 죽음으로 향한 이 과정을 캐어낸다.

갈수록 이야기를 풀어놓는 인물들은 일개 무사에서 점점 더 계급이 올라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남자는 전설이 되어간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 구조라 시간축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 남자의 슬픔이 그려지는 가 하면, 어느 순간에 이 남자의 극도의 활약이 그려지기도 하며, 더불어 이 남자의 행복도 그려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 사랑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웃음이 있다.

이 책에 관한 리뷰를 다른 곳에서도 봤다면, 이런 문구를 한번쯤은 봤을 법도 할 것이다.

"절대로 공공장소에서는 이 책을 읽지 마라... 눈물 흘리는 당신이 매우 난처할 수 있다."라는 문구말이다.

이 '칼에지다' 상(上)권은 크게 동요할 만 한 것이 나와있진 않다. 하지만, 1권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이르고 2권에 이르러서는 그 격함이 밀려온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새벽탓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읽으니..감정이 몰입되어 눈물이 흐른다고 혼자 자탄하면서...

이 소설의 가장 객관적인 소재는 바로 사무라이이며, 무사도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이다. 이 무사도를 멋드러지게 묘사를 한 것은 무사도를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인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충의'보다도 더 본이 되어야 하는 '인의'.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바로 '충의'와 '인의'를 똑같이 보지 않고, 이 두개의 '의'가 교묘히 부딪혔을 때,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충의'대신 '인의'를 선택하는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그리고 감동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높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말단 무사에게 죽어라 죽어라 다그치는 것은

        스스로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어야말로 무사의 영예라니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시작했단 말인가

        내 나름대로 사서오경을 배우며 뼈에 사무치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공자님은 그런 말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군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하셨어도

        충효를 위해 죽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 p .237

그는 무예 뿐만이 아니라 문예 또한 출중하여...그는 그 자신의 고집을 '충의'가 아닌 '인의'에 묻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전장이든 비밀임무를 행하든 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신은 죽어서는 안되기에 그렇게 다른 이들을 베고 또 베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매우 소박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의'의 중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행할 수가 없었다. 소박했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선 인터뷰를 통해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보여주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 반대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부분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지금도 어렵다. 어떻게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들어가 화자가 주인공으로 될 수 있을지...그래서 감동이 더 클 순 있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것이 어쩌면..각기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을 짜 맞추는 과정의 또 다른 연장선이 될 수 있다고도 느껴진다. 기억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들 이기 떄문이다. '기억의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여러 인물들이 생각했던 사건들의 겹침이다. 어떤 이는 한 사건에 대해 짧게 말하는 반면에 다른 이는 그 짧은 사건속에서 궁국의 감동을 이끌기도 한다. 이것이 기억의 단편들이 주는 묘미이다.

그렇게...요시무라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립되어가고, 다시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전설로 끄집어 나오게 된다.

'요시무라'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또한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다. 이는 그 사람의 성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시대가 정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이 사내는 매우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남자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이 책은 역시나 사무라이 이야기이므로 전투내지 칼싸움에 대한 묘사가 매우 진지하며, 흥미롭다. 감동을 잘 못느끼는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책에 쏙 빠져들것이다.

이렇게 책을 통해...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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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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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쾌한 소설을 봤나... '오쿠다 히데오'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어? 혼자 자문해본다. 드넓은 푸른 바다,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열대나무,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새하얀 빛을 내뿜는 모래밭. 이 소설은 여름을 위한 소설이다. 그리고 인생의 봄이라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당돌하며,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과격 자체의 튀는 어른의 이야기와 더불어서...
 
그런데, 이 책은 쉬운 이야기를 담고 있진 않다. 솔직히 아이들 빼고, 한 눈에 팍 튀는 어른들 빼고...그리고 책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작가가 부르짖는 사상만 가지고 이야기해본다면...무섭도록 무거운 책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알콩달콩 지어낸 작가의 역량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 책엔...여러 세상이 존재한다. 어린이들의 세계, 어른들의 세계, 회색빛 나는 무겁도록 빠른 시간이 흘러가야만 하는 냉담한 도시의 냄새를 풍기는 '도쿄'라는 세상, 그리고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심지어 나의 자아마저 벗어버릴 수 있는 아늑한 바다와 자신들과 같은 공간안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챙겨주는 인심좋은 마을 사람이 있는 '오키나와'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리오모테'섬이라는 세상...
 
이 책은 두권으로 되어있다. 1권은 '지로(의외로 의연함을 가진 초딩 6학년인 아이..이 책의 주인공...)'와 그의 가족(과격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절망적 유머를 지닌 '이치로'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를 포함한)의 도쿄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왜 남쪽으로 야반도주 같이 튀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있고, 2권은 남쪽으로 야반도주한 '지로'의 가족이 겪는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생활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혼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뭐랄까. 책속에 묘사되어 있는 상황이나, 부자지간, 혹은 다른이들끼리의 대화가 너무 웃겼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모든 캐릭터가 정감이 가고, 특히 '지로'와 그 아버지인 '이치로'는 왜 이리 귀여운지.
 
그런데 이 책은 그리 가볍지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치로'와 관련되어서는 말이다. 그는 공산당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도 아닌, 말 그대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이다.  그는 국가에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 자체도 부당하도고 생각하며, 교육은 국민들을 쉽게 조종하려는 목적을 가진 그리고 개인에 대한 의사를 무시한 정부의 월권행위라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세계적 대도시인 '도쿄'라는데 살고 있으니 그가 도쿄를 버리고 남쪽섬으로 가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들이 날아간 이글거리는 태양과 상쾌한 바닷바람이 언제나 맞아주는 이국적인 이 섬에도 결국엔 인간의 이기심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불어오니, 곧 호텔 유치와 휴양지 개발이라는 인간이 자연에 주는 상처이다. 결국, '이치로'는 그의 전공(?)을 살려 또 한번 나서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치로'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지로'의 성장소설이다. 도쿄에서의 그 '어린 것'이 자연속에서는 이미 '성인'이다. 그의 성장은 자연속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도시'는 많은 것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막상 자연이 주는 선물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바로 자연은 인간을 달래주기도 하며, 인간을 겁주기도 하는 그런 존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로'는 도시의 과보호속이 아닌, 자연 자체의 안에서 단단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도쿄에서의 '지로'와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지론'는 확연히 다르다. 무언가 달라고만 하고, 보채기만 하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탈피해가는 것이다.
 
그런데...이런 내용들 다 던지고서, 이 이야기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화만 바라보고 있어도, 아니면, '지로'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만 읽고 있어도 대단히 즐겁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도 안되는 정치적 이야기가 아름다운 자연과 귀엽고 재밌는 아이의 이야기에 접목됐더라도 전혀 지루하지도 전혀 어렵지도 전혀 쓰디쓰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여름냄새나는 책이다. 그리고 정말 달콤하게 읽었다.
 
이 책을 읽고, 과연 내가 튈 곳은 있나하고 생각해본다. 한군데쯤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남쪽의 야자수와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그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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