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언 - 전3권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조영학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 이 리뷰는 작년에 책을 읽고 썼던 것인데...한번 올려 봅니다.. (스포일러 있음)**

우선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처녀작으로 이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조사한 기간이 무려 10년이다. 글쎄.. 정말 10년동안 조사할 것이 그렇게 많았나? 이 책은 세권짜리로 구성되어있는데, 10년이라는 조사 기간을 생각해본다면 결코 긴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이 소설의 배경으로 유럽 곳곳을 펼쳐놓는다. 당연히 드라큘라의 고장인 루마니아(특히 드라큘라가 있었던 지역은 '왈라키아'라 불렸음)를 비롯한 프랑스, 영국, 헝가리, 터키등..유럽 여러나라를 그려놓는다. 그러니 당연히 저자가 책을 쓸 기간이 길 수 밖에..

이 책은 한 소녀의 드라큘라 추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드라큘라를 찾으러 간 아버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드라큘라를 찾으러 간 어머니를 찾으러 떠난 아버지를 뒤쫓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이게 다이다..^^"

이 책의 제목은 '히스토리언'이다. 드라큘라와 별 상관없이 보이는 이 '히스토리언'은 이 책을 덮고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족의 역사이자,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던 드라큘라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이 책도 역시나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책이라 할 만하다. 나에게 있어서 긍정이란 쉽지 않은 소재를 단순히 흥미위주에서 벗어나 유럽의 역사를 소개하고 유럽속의 여러나라의 독특한 배경을 아름답게 묘사를 하였으며, 그리고 드라큘라가 '왈라키아'지방의 영주로 있을 때 대립하고 있었던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메메드 황제와의 관계등...여러 역사적 사실을 잘 버무려 멋진 소재로 썼다는데 있다. 반면 단점이란 휘황찬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그 배경이 소설속에 쉽게 녹아들지 않았다는 점(이 점은 마치 영화를 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영화속에서는 지루한 글들이 생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소설이 대부분 화자가 여럿이다보니 이야기 진행 자체가 약간은 산만하다는 점,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드라큘라와의 조우 부분이 10년이라는 조사기간과 3권이라는 책의 분량에는 훨씬 못 미친다는 점, 그리고 이 소설 역시 '팩션'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다보니(책 부록에 나와있는데, 이렇게까지 장황히 '팩션'에 관한 글을 쓸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이 책의 매력은 허구와 실제 있었던 사건들간의 적절한 조합인데, '팩션'부분을 강조한 부분을 읽고 나서는 이 작가의 10년 조사를 무위로 돌릴 수 있을 정도까지이다. 결말은 10년간의 조사후에 돌아오는 기차편에서 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속에 빨려 들어간 내 자신이 왠지 허구속에서 놀아났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인지 도통 헛갈렸다. 그 예로 이 책이 홍보로 비교했던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읽고 있는 당시엔 이 소설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신경쓰이지도 않았고, 또 내가 인터넷을 뒤져가며 사실 부분과 허구 부분을 구명지으려고 가상한 노력(?)도 하였지만, 이 [히스토리언]에서는 '팩션'을 강조하다보니 그러한 의욕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장황스런 배경 묘사는 분명 내가 소설 속 사건에 빠져들어가는데 지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사건 속에 있다보면 다음에 쳐들어 올 사건이 기대되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장황한 배경 묘사 역시 소설 속에서 비추고 있던 햇살만큼이나 나를 취하게 만들었던 적도 없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장르엔 첩보 소설이 끼어있다. 그 첩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주인공이 나에게 주는 비장미가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하는 스릴이다. 이 소설 역시 드라큘라를 향한 추적, 반대로 드라큘라가 인간(주인공쯤으로 생각하면 됨)에 대한 추적이 쌍방향간의 추적이 되어 나에게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하는 스릴감을 던져 주었다. 게다가 이 쌍방향의 추적이 언젠가 한 지점에서 조우할 것을 기대하는 나를 소설 밖에서 소설 안으로 밀어 넣는 괴상한 쾌감도 함께 했다.

이 책은 역시나 역사소설이다. 솔직히 유럽 역사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무슨무슨 유럽사..라고 포장된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외국소설속에서 유럽사를 어느 부분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준다. 앞서 말했지만, 드라큘라와 메메드 황제간의 대립,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종교와 미신간의 대립등등 수많은 대립이 있으며, 그 대립을 소설과 함께 잘 섞어서 또다른 재미를 준다. 참, 여기서 말한 대립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의 적대적 대면이 아니라, 단순히 두 가지를 대조해 볼 수 있는 관계 로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튼 이러한 역사적 대립 혹은 관계라는 거대한 세계속에서 이러한 세세한 것을 채워주는 것은(그러한 대립과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은) 디테일한 묘사이다. 소설에서 상세히 풀어낸 역사를 보면 드라큘라는 역사속의 어느 영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폭력과 과대망상의 한 인물로 피사되어 나타난다 . 인간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 허영심들이 과거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있는 지금을 지나 앞으로 흘러가게 될 미래에도 인간은 똑같은 드라큘라를 만들어내고 있을 지 모른다는 그러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로맨스가 있다. 어찌보면 드라큘라가 빨아먹는 '피'라는 속성을 가지고 에로틱하게 표현하기에는 이 책이 이 가지는 소재와 주제는 무겁다. 말 그대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코스토바'는 '피'라는 또 다른 속성을 가지고 로맨스에 접근했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서 말하는 또 다른 속성은 바로 '혈통'이자 '가문'이다. 드라큘라를 추적하는 이 용감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딸은 어찌보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아닌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드라큘라를 잘 표현한다. 가족이라는 혈로 맺어진 이들과 부녀로 맺어진 또다른 혈..(여기에선 드라큘라를 추적하는 소녀 아버지의 대학교수와 소녀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원래 드라큘라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소녀 어머니의 어머니..그러니까 할머니의 복잡한 스토리가 에로틱한 '피'가 아닌 로멘스의 '피'로 나타난다.

이 책엔 드라큘라가 폭군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지만, 사실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팩션'이라고 장황히 설명만 하지 않았어도 믿는 것인데, 좀 찾아보기가 귀찮은 면도 있다. 아무튼 이 [히스토리언]이라는 책은 결코 에로틱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은 그러한 소설이며, 또한 결코 십자가가 괴력을 발한다던지, 마늘이 무적의 건강식품이라든지 은이 성스러운 물질이라든지 하는 이러한 것들을 엮어내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이 소설속에서 무시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읽어볼 만 하다(시간과 3권짜리 책을 사볼 여유만 있다면). 물론 자신이 책을 좋아해야만한다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할 듯 싶다. 그렇다고 매니아적인 책도 또한 아니다. 자신이 [다빈치 코드]를 즐겨봤다면 흥미 면에서 좀 차이는 느껴지겠지만...어느정도 매력을 발산하는 책일 듯 싶다(소설이 주는 역사적 배경 지식과 관련하여...). 그렇다고 3권짜리가 2권짜리만큼 긴박감 있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나 몰입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끔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자신을 보더라도 다음 몰입을 기대하며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개인에 따라서 다음 몰입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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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06-09-0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평들이 다 좋진 않네요... 아마도 홍보때문인듯..저 또한 홍보가 이 책을 구매하는데 역할이 제일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책이라는 느낌도 드네요...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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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이다... 그런데..당연히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은 구차(苟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쎄... 삶이 구차하다는 말을 쓴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역시나 삶은 구차하다. 

이 소설은 마치..거친 고난을 역경의 삶을 산 사람이 내 앞에서..앨범을 펼쳐놓고..사진 한장 한장 보여주며...이때는 이랬지...그래서 어떻게 된줄 아나?...라고...자신의 삶을 내게 회상하듯이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우리의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판 돈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듯이..그의 인생은 피로써 이룩한 누차하지만..정이 있는 거룩한 삶이다. 하지만..어떤 특정한 에피소드들로 이 허삼관의 인생을 구현하다보니...허삼관의 지나온 삶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한권의 책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소설에 나와있지 않은 허삼관의 띄엄띄엄한 인생들 사이 사이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비록 주인공이 허삼관이지만..이 소설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의 가족들의 삶 또한 어느정도 제대로 다루어져있어야한다고 생각이 든다. 허삼관의 매혈(賣血)은 첫번째와 마지막번째를 제외하곤 자신을 위해 판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더 상세히 말한다면..첫번째 매혈 또한 호기심이었고, 마지막 매혈은 너무 나이가 들어 매혈을 거부당했기에..그는 전적으로 그 자신만을 위한 매혈은 없다고 봐야겟다.

이 책을 읽다 보면...매혈이라는 상황이 없었다면..허삼관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의 첫번째 매혈은 호기심에 이루어졌고..그걸 통해 상당한 금액을 받았으며..결국 허옥란이라는 부인을 얻게된다. 이 허옥란은 이미 약혼자가 있었지만..허삼관이 허옥란의 아버지와의 끈질긴 설득과 회유를 통해..그리고 금전을 통해 결국 이 여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허삼관의 첫번째 보너스 인생이다. 그리고 허삼관은 자식을 낳게 되는데..일락, 이락, 삼락이라는 세명의 아들을 낳는다. 이게 바로 두번째 보너스이다.

허삼관에게 매혈은 곧 보너스이자..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단한 무기이다.

비록 삶이 구차하고 대단친 않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자신이 힘들고 괴로울때마다...보너스가 주어진다면... 과연 어떨까..

이 책을 읽고...우리 스스로 보너스로 점철(點綴)된 그러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본다..

이 책...읽을만하다...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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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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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에 따라서(정말 애매한 말...)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셨거나..책을 아예 읽지 않으실 분만..보세요...
 
이 소설은 커피를 소재로 한 거대한 음모론에관한 이야기이다. 커피를 가지고 어떠한 음모론을 펼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기전에 가졌던 짧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니 문화사적인 이야기들이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니까 커피가 가지는 역사적 전통을 현대 사회를 겨냥한 음모론에 부드럽게 섞어넣었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긴박감이 흐르는 추리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커피의 주된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각성제'가 가지는 효과일 것이다. 문화사적으로 봤을때(그러니까...커피가 가지는 전통적 관념에 견주어) 커피의 상반되는 음료는 '맥주'이다. 왜냐하면...이 '맥주'라는 것은 커피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맥주는 알코올 음료이며, 다른말로는 '흥분제'라 말 할 수 있다.
 
커피는 인류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우리가 얻은 선물이다. 커피라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하던지, 못된 역할을 하던지 이제는 현대 사회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이 소설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고 다른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됐든 커피 마시는 행위는 성인남녀라면 의례적으로 마시는 하나의 양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이 책은 커피로 인한 습관적 중독이 만들어내는 습관적 망상으로 시작한다. (이 망상이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고, 구체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볼 일 만은 아니라는 뜻)
 
크리스마스를 9일 앞둔 12월 16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등지의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들 250명이 독극물에 중독된다.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때는 독일 정부의 대개혁법안 또한 며칠 앞둔 시점이다.
 
음모론을 설정하고 그것을 풀어내려는소설속 인물은 독극물에 중독된 250명중의 한명인 한 소년의 아버지이자, 보수적 커피 로스터(커피 생두를 열을 가해 볶아내는 기계 혹은 그런 기계를 다루는 사람...그리고 여기에서 생두를 볶아낸것이 바로 원두이다.)인 한 남자이다. 그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을 연상하면 좋을 듯 하다. 그는 이 세계의 문화사의 한 위상을 차지하는 커피의 지식과 애정으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접근한다. 그리고 방송사의 인턴기자와 함께 점차적으로 퍼즐을 맞추어간다. 커피 로스터의 집요한 추적은 결국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의혹까지 불러오고 경찰에 쫒기기까지 하는데...
 
이 책의 제목...'커피 향기'는 단순히 이 소설이 커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해 주지만... 커피 향기는 바로 '계몽'을 뜻한다. 그러니까 닫혀있는 지식인의 지각을 열어놓음을 뜻한다.
 
"선동가들이 어디에서 만났겠습니까?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커피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역사가 커피하우스에서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커피하우스에는 열렬한 웅변이 있고 열띤 토론이 있었어요. 커피는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요. 사람들은 밤마다 논쟁을 벌이고 회의를 열고 계획을 짰습니다. ....(중략).... 그런 카페들은 그림자정부(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와 이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집합소였지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계몽의 전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격하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
...(중략)...
 
"계몽의 시작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의 냄새입니다. 바로 '커피 향기'지요!"
 
p. 229 ~ 230
 
문화사에서 커피는 닫혀있는 세상들의 교류를 만들어준 매개물중 하나이다. 그리고 커피를 통한 교류는 이 세상의 시간을 좀더 빠르게 돌아가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깨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사회의 빠른 흐름은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제의 효과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반대급부를 설정해 놓았다. '시간 늦추기 협회'가 바로 그것인데...주인공은 이 협회에 모든 의혹을 쏟아부으며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유사이래 '시간이 없다(Keine Zeit)'는 말처럼 무의미한 표현은 없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갈수록 점점 많은 동시대인들이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 불필요하게. 요즘 사람들은 전레 없이 긴 수명을 누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여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p. 90 ~ 91 '시간 늦추기 협회'의 '동기'라는 항목 中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빠름에 대한 모든 이유를 커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설속 커피가 가지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미시사적인 의미를 통해 현대사회의 조급함과 커피에 속박당한 이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됨으로써 멍해져버린 사회와 의욕을 잃어버린 좀비같은 현대인들을 조롱한다. 항상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깨어있음을 당연시하고, 그래야만 사회의 구성원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들 사람들의 풍자를 그린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자 말자'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커피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보스러운 행위는 경계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싶다. 그러니까 작가의 인물설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커피 로스터와 인턴 방송 기자이다. 비록 커피 로스터의 시각으로 커피를 풀어내고 이 사회의 병폐를 보지만 결국엔 이 로스터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부심만 부여하는 인물일 뿐이다. 하나의 현상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인 커피 로스터도 커피 마시는 것을 하나의 의식같이 치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커피 로스터는 항상 커피를 마셔대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어느정도 침착하게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인턴 기자는 커피를 마시면 몸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커피와는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커피를 마셔대는 인물과 마시지 못하는 인물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항상 깨어있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정부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좀비들에게 한마디 하는 소설이다. 물론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긴 하지만, 이들 정부는 바로 현대 좀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비판은 나를 포함하여 현대적 좀비일 수 있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통해야만 이 소설의 완성된 퍼즐을 보지 않을까 한다. 결국 커피 로스터의 입장에서 풀린 의혹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설령 의혹을 풀었다고 해서 어떠한 해법을 발견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 사회의 현상만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커피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의욕을 통제하려는 정부. 비록 한시적이지만 이는 정부의 역사를 통해 배운 고단수의 머리쓰기이다.(근대적 계몽과 혁명은 커피와 같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정부이기에 대개혁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머리쓰기) 
 
갈수록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률적인 통제를 하기 위한.
 
그렇다면 과연 커피의 향기를 풍기는 이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계몽적인 선동을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예전 역사속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고 계획과 선동을 준비했다면, 이 소설은 한시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동과 도발을 억제하려는 정부이다. 선동을 억제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선동을 이용하는.
 
웃기게도 소설속 사건과 연관된 정부 관리 또한 커피를 마시는 자이다. 그들도 항상 깨어있다.(그래서 이런 머리쓰기가 가능하다. 우리모두 좀비가 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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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0
윤대녕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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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단숨에 한권을 다 읽었다. 새벽까지 내리 쭉 읽었다. 영빈과 혜연의 무심한 대화와 그 속에 묻어있는 그들의 고통을 잊을라 쉬지 않고 읽었다.

이 책을 보기전에 궁금했던것이..바다와 호랑이의 관계였다. 책을 읽기전 혼자 궁상맞은 생각을 다 해보았다. 바다와 호랑이면 무언가..용호상박인가? 아무튼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폈고, 그 뒤는 바다와 호랑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 소설은 뒤죽박죽이었다. 시간이 영빈에 따라 얽혀있었고, 영빈은 공간에 설켜있었다. 그만큼 주인공인 영빈은 그 무었때문인지는 알 순 없지만, 저 가슴속 어딘가에 저리는 무언가를 지닌채 방황을 하고 있는듯 공간적 시간적 풀어헤침이 갈지자를 이룬다. 영빈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의 슬픔을 껴안은채 살아가고 있는 중년남성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영빈이 겪었을 사건들과 사무친 감정들을 애써 외면한다. 다만 영빈에게 무심하면서도 냉소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이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들에게 계속 영빈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영빈이 이렇게 해야하는가라는 무의식적인 추측만을 하게 만든다. 영빈은 제주도에 내려가기에 앞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집 여자인 해연에게 집 열쇠를 맡기며 가끔 창문을 열고 케케묵은 먼지냄새를 없애주라며 부탁하는 것으로 그는 제주도로 현실도피를 하게 된다. 그에게 제주도는 자신의 지난 세월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자신이 입은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제주도가 이상적인 공간이라면 해연이 남아있는 서울은 현실적인 공간이며 영빈이 상처를 입었던 모든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이다. 서울에는 영빈의 사람들이 있고, 제주도는 영빈이 항상 낚아올릴수 있는 물고기가 있다.

해연은 영빈이 현실과 끊을 놓지 않게 만드는 인물이다. 해연 역시 그녀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는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영빈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인물이다. 해연도 영빈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영빈과 해연은 그렇게 각자 서로에게 비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각자의 비장한 무기를 무장해제하는 순간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영빈은 해연보다 먼저 그리고 서서히 무장해제를 한다.
이 소설은 서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아픔을 치유한다는 애정일기와도 비슷하며, 초보 낚시꾼이 차차 손맛을 들여가 낚시 전문가로 거듭나는 낚시 전문 기행 소설이라 봐도 큰 무리는 없다. 마라도, 추자도, 차귀도등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며, 어느 시각의 물때(고기를 잡을 수 있는 조류가 흐르는 시각)의 시작과 함께 돗돔, 독가시치,긴꼬리 벵에돔, 돌돔등을 낚아올리는 이야기는 마치 그림속의 또다른 그림을 보는 듯한 또 다른 재미와 스릴을 안겨준다. 단순히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그 속엔 주인공의 끈질김이 있고, 감동이 있다.

이 처럼 이 소설속엔 여러 이야기가 공존하며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기 위한 정말 감미로운 조미료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재료들은 또 하나의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일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해연에게 그녀만의 기쁨은 바로 영빈의 낚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연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와 같이 낚시질을 다니는 준전문가이다. 바로 이 낚시가 영빈과 해연을 각자의 현실과 이상을 계속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애정일기와 같은 이야기에서 낚시는 겉돌지 않고, 이야기의 또 하나의 뼈대를 구성해준다. 정말 감탄스러울정도로 탄탄하다.

또 영빈과 해연이 풀어가는 구도상 둘이의 갈등이 좀 밋밋한 감이 없진 않다. 공간적으로도 서로 떨어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그들은 서로 부대끼는 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러한 밋밋한 둘 사이에 히데코라는 일본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단순히 일본 여성이라기 보다는 할머니 쪽이 한국계인 한국 피가 말 그대로 1/4이 흐르는 여성인 것이다. 히데코의 등장은 역설적이게도 '히데코'라는 술집에서 일어난 일이며 단순히 둘 사이의 긴장감과 갈등의 구조로 등장하기 보다는 히데코의 한국계라는 정체성의 갈등을 영빈에게는 작가 자신의 시점의 관한 갈등을 내보이게 하는 어쩌면 작가 자신이 소설에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영빈도 회사 생활에 실패한 소설가이며, 히데코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지망생이라고 봤을때, 이 둘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3인칭 시점의 소설에 3인칭으로 들어간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을 읽으면 알겠지만, 작가 자체가 히데코가 되서 들어갔다기 보다는 실재 존재했던 일본작가인 [사기사와 메구무]를 영빈과 히데코의 둘 사이에 존재시킴으로써 그 둘은 또 하나의 연결 고리를 가지게 되며, [윤대녕]작가가 자신이 이 소설에 직접 개입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재밌다.

(안 읽었다면 이 부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든 것들은 관계되어있고, 갈등 구조가 있으며, 그것을 시원하게 푸는 해법 또한 존재한다. 물론 이 해법이 나로서는 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을 다들 읽었을꺼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지만, 히데코와 [사기사와 메구무]는 똑같이 한국계이며 똑같이 정체성에 고민을 많이 하는 인물들로 나온다. 다만 [사기사와 메구무]는 정식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 상실과 갈등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회복하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하지만, 히데코는 단지 그러한 [사기사와 메구무]를 부러워할 따름이다(참 여기서 둘은 친구관계로 나온다. 정확히는 동창관계).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타파하려는 이 둘에게 똑같이 자살이라는 죽음을 통해 보여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둘은 스스로 해법찾기를 포기 하게 된 것이고, 반대로 영빈과 해연은 이 둘을 통해 해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나로서는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좀 통속적이게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부터는 다시 읽어도 됨..)



다시 이 소설의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와서 과연 영빈은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까? 영빈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이상적인 공간인 제주도로 왔다. 그 곳에서 제주도에 몰입을 하게 되고, 낚시라는 삶의 도구를 통해 마음속에 무너져 있는 자신의 현실의 해법을 낚는다. 하지만, 제주도도 거대한 죽음의 섬이라는 것을 영빈은 어느 순간 알았다. 태풍과 히데코의 죽음을 통해 제주도가 더 이상 이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빈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와 조우하게 된다. 그동안 영빈이 키워만 갔던 호랑이..그 호랑이와 어느 순간 맞딱뜨리고만다. 태풍과 함께..

영빈은 가족과 영빈 자신 주위에 걸터앉았던 죽음의 끈, 항상 영빈이 생각했던 것이 자신은 죽음과 관련있다라고 생각했었던 그 죽음의 끈을 놓아버림으로써, 호랑이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히데코의 자살을 마지막으로..그는 감지할 수 있었다.

현실 어디에도 영빈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빈은 영원한 순간과 조우하게 되는 제주도로 내려간다. 하지만 결국 제주도 또한 다른 이들에겐 엄청나게 아픈 현실임을 알게된다. 그 현실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제주도 주민들이 있던 것이다. 영빈은 또 다른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고 자신의 거대한 호랑이를 보내게 되는것이다.

과연 나는 언제 나의 호랑이와 조우하게 될 것이며 호랑이를 떠나 보낼까..나도 제주도가서 낚시를 해야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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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체스판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전쟁이 자신의 뜻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가고 있어 판을 뒤엎고 싶다면..어찌겠는가?

상황은 호전이 안되고, 바로 윗 상관은 구역질나는 전쟁터로만 몰고 있고, 자신은 하루,하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간다면...

전쟁은 더 이상 신분상승의 보증수표가 아님을 알고 있다면...그리고 붙잡은 포로중에 한 여인이 가난에 짓눌려 유곽에 팔려만가야했던 자신의  누이와 닮아있다면...

도모유키는 바로 이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엄숙하기도 하며, 처절하기도 하다. 자신의 알량한 위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졸들을 지휘할때는 엄숙하며, 비열한 상관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주군앞에서는 처절하다. 그는 바로 전쟁터 한 구석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자신의 아군이 죽어가고 포로들이 죽어가고...그리고 이놈의 조선군들은 악바리같이 몰려든다. 이쯤되면, 그만 좋게 보내줘도 되지 않나.. 왜군은 명나라 장수에게 그만 길을 터주라하며 온갖 뇌물을 가져다 바쳐도 이 놈의 조선 수군 통제사는 어찌된 일인지 바닷길을 막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그런 사람이 있을까. 도망간다해도 끝까지 죽인단다. 도모유키는 살고 싶었다. 고향땅에 가서 다시 농사도 지으며, 자신의 누이도 찾고 싶었다. 그런데 바닷길을 막고 있는 조선의 한 장군은 이마저도 허락치 않는다. '도모유키'의 동료는 그게 바로 조선의 힘이란다. 그는 전쟁에서, 그리고 바닷속에서 죽으려한단다. 어찌 그런 사람이 있으리요. '도모유키'는 살고 싶은데...

이 이야기는 [도모유키]에 나오는 개괄적인 스토리다. 이 처절한 주인공의 이름은 '도모유키'. 그는 한 인간으로, 군인으로, 자식으로 전쟁터에 나왔다. 전쟁이 시작된지 벌써 꽤 오래전이고, 전쟁이 막판까지 왔다는 생각을 한지도 오래전이다. 밀고 올라가기는 커녕, 일본으로 가는 뒷길마저 봉쇄당하여 언제 퇴각할지 모른다. 과연 퇴각이나 할 수 있을지도 장담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소설이 전쟁이라는 상황을 묘사하기에 이 소설의 필체는 빠르다. 그리고 대담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 탄복했던 이유는 비록 왜군의 하급 지휘자의 시각에서 쓰여졌다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으며. 이름 자체도 거론되지 않는다. 다만 '수군통제사'로서 왜군들의 운명에 드리운 그림자같은 인물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런데도 '이순신'장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일생일대의 마지막 전쟁을 그리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혀오는 것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이순신 장군]을 더욱 더 경지 높은 인간으로 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그는 정말 그림자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거북선도 등장하지도 않고, 얼마의 조선함대만 묘사될 뿐이다. 그래도 훌륭하다. 탁월하다. 도모유키의 애절한 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이순신 장군의 고귀한 모습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오히려 명나라의 장군은 실속파로 나온다. 왜군이 쌓아놓은 성앞에 진지만 쳐놓고, 조선과 일본 모두를 충족시킨다. 쳐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반면 신속히 철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왜군 병졸들 몇몇을 언급시킴으로써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전쟁의 희생자로 묘사한다. 그들도 고향에 처자식과 자신때문에 애간장이 녹아만 가는 늙은 부모가 있다. 이 점이 은연중 왜군이 임진왜란에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고 있다. 그들은 조선의 강이 바다의 파도만큼 세차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막상 조선에 와보니 자신의 고향에 있는 강과 별반 다를게 없다. 왜군도 결국 그들의 주군과 그의 가신들에 속아서 출병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관심은 커녕 상상도 못해봤던 조선출병. 하지만 그들에겐 현실이 되어있고, 그 현실은 벌써 악몽 그 자체인 것이다.

일본의 '가도입명(假道入明)'은 커녕 '가도입왜'마저도 차단되어진 이 상황을 왜군의 하급 지휘자를 통해 감정적인 묘사와 전쟁의 정황묘사가 세밀하다. 이 하급 지휘자인 '도모유키'는 자신의 포로로 있다가 마지막 퇴각할 무렵 처형당할 것을 우려해 도주시킨다. 그동안 조선에서 모은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그만큼 그는 한 여인에게 절박하다. 자신의 목숨보다 절박했다.

이 '도모유키'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이 책을 보지 않으면..그 이후 조선의 운명은 알 수 있어도 힘없는 왜군 '도모유키'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ps. 이 소설을 읽고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을 읽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불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가만보니 이순신 장군 관련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한심해진다.

-- 임진왜란을 1592(선조 25)년 부터 1598년 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라면, 정유재란은 1597년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일컬으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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