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겨울전쟁

소련은 핀란드를 협박해 발트 3국처럼 만들고자 했지만 뜻밖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1939~ 40년 겨울에 짧은 기간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소련은 초기에 큰 타격을 받았지만 결국 군 전력 차이로 승리하여 카렐리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을 획득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독립 국가로 남았고 소련군의 평판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1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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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지도자로서 푸틴의 초기 성과는 뜻밖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온건한) 러시아 민족주의자이자 정교회 신자이면서도 과거 소비에트 시절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내세우면서, 소수의 엄청난 갑부들을 통제하고, 러시아의 분열(체첸의 경우처럼)을 막고, 과도한 ‘거친 자본주의’를 바로잡고, 금융 시스템과 가스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일정 정도의 국가 통제를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국제 유가 상승의 도움을 받았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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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를 후회하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기간 전체, 즉 신경제정책부터 페레스트로이카 시작 시기까지를 공공질서, 안전, 기본 생필품 가격이 안정된 시기로 기억했다(물론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소련 국민이 재평가한 과거 지도자 중 브레즈네프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초의 많은 사람들은 브레즈네프 시대를 황금시대로 평가했다. 2002년 브레즈네프 전기를 쓴 존경받은 러시아 작가는 “전쟁도 혁명도 없었고, 기아도 격변도 없었다”라고 썼다. “평범한 소련 노동자를 위한 더 나은 삶, 대다수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삶, 간단히 말하면, 온통 고난으로 가득한 20세기 중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옐친과 고르바초프는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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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은 서구에서 찬사와 공감을 얻은 고르바초프에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인들에게 그는 민주적 개혁의 영웅이 아니라 소련을 붕괴시킨 사람이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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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실시된 똑같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중의 존경 측면에서 스탈린(응답자의 32퍼센트가 그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존경’을 선택했다)은 푸틴(49퍼센트) 다음으로 점수가 높았고, 레닌은 26퍼센트로 3위였다. 굴욕을 당한 러시아인들에게 스탈린은 국가적 자부심과 성과–국가와 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람–를 달성한 역사적 모범 인물이었다. 스탈린의 유산 가운데 억압적인 측면은 대부분의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인들에게 별 관심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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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민들은 많은 악행을 저지른 소련의 붕괴를 기뻐했다. 소수는 적어도 소련이 사회주의를 위한 역사적 시도였다고 평가하며 애석해했다. 하지만 소련에서 태어난 많은 러시아인에게 역사적 서사는 달랐다. 러시아는 후진국에서 벗어나 20세기에 기적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처음으로 세계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도록 이끌었고, 나중에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 뒤 세계의 존경과 차르 체제로부터 물려받은 제국과 함께 모든 것이 불명확한 이유로 갑자기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서구는 1990년대의 짧은 휴지기 이후 냉전 시기의 적대적 초강대국일 때와 똑같은 정도의 적대감으로 러시아를 대했다. 이것은 러시아의 눈으로 보기에 외국인 혐오증이나 다름 없었다(‘전에는 그들은 우리가 공산주의자라서 미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공산주의를 포기한 뒤에도 여전히 미워한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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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 Sovok

쓰레받기Sovok는 ‘소비에트 남자’(그리고 여자)를 지칭하는 새로운 경멸적 용어였고, 언론은 그런 미개한 사람들을 자주 조롱했다. 《구소련 러시아어 해설 사전An Interpretative Dictionary of the Language of Sovdepia》이 소비에트 언어 용법에 대한 안내서(또는 기념서)로 출간되었다. 외국어와 러시아 구어와 문어의 최근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사전이 많이 필요했다. 대중매체의 언어가 갑자기 극적으로 서구화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조어들은 한때 소비에트 두문자어처럼 괴상했다. 1990년대의 인기 소설인 빅토르 펠레빈의 《호모 자피엔스Homo Zapiens》는 새로운 광고와 텔레비전의 세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였다. 여기에서는 이미지와 홍보가 모든 것이며 핵심적인 정체성은 이미 사라졌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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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sovok)
‘소복‘은 소련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삶의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부정적인 측면들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단어로 반어와 경멸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 명사 ‘소복(sovok)‘은 형용사 ‘소비에트(소련식의 советский)‘의 준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소복‘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나라 명칭이나 (예시: ‘소복에 산다‘라고 하면 ‘소련에 산다‘라는 의미다),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때 (예시: ‘그는 어쩔 수 없는 소복이야‘라고 하면 ‘그는 어쩔 수 없는 소련식 사람이야‘라는 의미다) 사용한다. 사람을 ‘소복‘이라고 칭하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사람, 전적으로 국가에 의지하면서 적지만 국가로부터 받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시대를 ‘소복‘이라고 표현하면 뭔가가 지루하고 음울하고 정체된 시대를 말한다(소련이 해체되기 전 마지막 20년을 ‘정체된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소복‘은 공식적인 선전선동이 실제 삶과 완전히 동떨어졌던 거짓과 위선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단어이다.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소복의 시민들은 반드시 일련의 의식들을 치러야 했고(예컨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고 말로만 ‘국민을 대변하는‘ 의원 선거에 참여하여 한 표를 행사해야 했다), 국가권력이 무슨 행보를 취하든 이런저런 형태로 받아들여야 했으며 빈궁한 자신들의 생활을 심하게 불평도 하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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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몰락과 지식인의 운명

지식인들이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두꺼운’ 잡지와 같이 삶을 지탱해주던 주요 매체가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지식인들과 소비에트 국가가 높은 가치를 부여한 교육과 고급문화는 후세대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후세대들은 미국 문화를 빠르게 습득하고 벼락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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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급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실패로 실의에 빠졌고(그로 인해 지식계급은 고르바초프와 함께 다수 국민으로부터 비난받았다), 지식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잃고 도덕적 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으며 새로운 러시아에서 그들의 입지를 찾기 어려웠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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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호황, 한국과 소련

공교롭게도 1986년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역사적 고점을 찍었던 석유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해였다. 1970년대 중반 배럴당 약 60달러였던 유가는 1980년에 배럴당 120달러를 상회했다. 그러던 유가가 1985년 말 급락하여 80년대 말까지 40달러대를 유지했다. 소련의 연간 GNP 성장률은 흐루쇼프 시대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1990년에는 마이너스 2. 3퍼센트를 기록했다. 1987년 6월 중앙위원회에 보고된 소련 경제 상황을 살펴본 고르바초프는 낭비, 비효율성, 부정확한 보고가 ‘위기 직전’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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